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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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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1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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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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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판도는 대체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 마치 독재자가 세계지도를 잠식해 들어가면서 몰릴 줄을 모르듯이 사람은 대개 드디어 애욕의 포화를 모르고 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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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평 뜰 안의 단란을 알뜰히 지키면서 한 걸음도 밖 세상을 모르는 사내가 있다. 나는 그런 사내를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그들 부부의 사이에 참으로 짙은 사랑이 흐를 때 그 좁은 영토의 권내같이 행복스런 곳이 또 있으랴. 그러나 세상에는 참으로 일컬어 사랑이라고 할만한 경우가 드문 것이요, 사람은 왕왕이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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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평생에 꼭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함이 옳은지 어쩐지 각각 나라와 경전과 습속을 따라 다를 것이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람 같이 커다란 자유를 갈망해서 마지않는 것도 없다. 팔에 사랑을 안고 다시 한눈을 팔게 된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태고적에 갈라진 각 개체의 분신들은 현대에 이르러 인총이 무한히 불은 까닭에 혼돈한 속에서 착각에 빠지고 만 것이다. 단원체를 이원(二元)으로 갈라 놓은 제우스 신의 실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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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사랑의 행장을 차례차례 더듬어 볼 때, 나는 참으로 참회의 의식없이는 그 한 가지 한 가지를 생각할 수가 없다. 첫째 내 자신에 대한 참회요, 둘째로 가버린 아내에게 대한 참회다. 아내에게 대해 허물이 많았었음을 나는 얼마나 뉘우치면 다 뉘우칠 수 있을꾸 생각한다. 나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그가 나를 사랑한 10분지 1도 갚아주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한다. 그는 왜 그리도 나를 끔찍이 여겼던지. 오매지간에 한시라도 내 건강을 걱정해 주고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그것은 일종 무슨 술기에라도 걸린 것 같은 일률적이요, 헌신적이요, 희생적인 사랑이었다. 나는 그 행복을 때로는 도리어 휘답답하게 여기면서 그의 놀라운 심조(心操)를 속으로 두렵게 여기고 공경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의 주락(酒落)한 자유를 구해마지 않았던 것이다. 다욕스러운 불가신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하늘에 부끄럽고 땅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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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한 나는 두터운 참회록을 쓰게 되어야 할 것이나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의문이다. 한 구절도 빼지 않고 진실을 말하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참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월한 노릇이 아닌 까닭이다. 루소에게도 그것은 어려웠다고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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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모두 사랑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랑인 경우도 있었고 사랑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돈 환의 경우는 사랑이 아니라 방랑이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 로미오와 줄리엣─그런 경우만이 참으로 사랑인 것이다. 다섯 손가락을 꼽아도 남는 경우─그것은 일일이가 죄다 반드시 사랑은 아니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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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생전에 가끔 나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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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상의 여자란 대체 어떤 여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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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으나 나는 아내에게 내 이상의 대부분의 구현을 보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아내에게 미칠 여자는 아무데서나 그리 수월하게 눈에 띠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나의 마음의 자랑의 하나였다. 그러나 사랑에 부질없이 이상만을 찾는 것도 여학교 졸업생의 설문 답안 같아서 신선미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내에게서 충분히 내 이상을 가지면서도 그에게 말하지 못한 가지가지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비밀을 종시 모른 채 그는 갔다. 생각할수록 뼈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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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일찍 가는 법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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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렵에 모든 것을 예료했던지 병실 침대에서 아내는 누차 이 말을 되풀이했다. 참으로 그는 착했던 까닭에 너무도 단순했던 까닭에 일찍 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악한 까닭에 나는 남은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금 내게는 가장 마음 편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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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만 정도의 참회로야 도저히 아내의 영(靈)을 위로할 수는 없다. 언제면 충분한 고백의 날이 올는지 그날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걸일까.
【원문】사랑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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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 춘추(잡지) [출처]
 
  1941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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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