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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4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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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와 주제와 작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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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창작 1인 1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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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곡(李雲谷) 작 「이초시(李初試)」, 『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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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된 현실의 가치란 말이 이즈음 유행한다. 어떠한 작품에 대하여 예술적 가치는 신통치 않으나 묘사된 현실이 매력이 있다든가 가치가 있다든가 하는 등류(等類)로 이런 말이 사용될 때에 그것은 실상 소재의 가치를 말하는 데 불과하여 유행어의 대부분이 그러함과 같이 그다지 과학적 엄밀성을 기하기 힘든 용어이다. 작가의 손을 떠나 버린 하나의 작품의 가치 판단에 있어서 예술적 가치와 구별되는 이른바 묘사된 현실의 가치라든가, 소재의 가치, 정치의 가치라든가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엄밀하게 말하여 예술적 가치란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아울러 가장 정당하고 훌륭한 그의 문학적 표상화의 도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작품에 대한 평가 내에서 소재의 가치가 점(占)하는 지위란 결국 전체에 대한 부분의 관계로 운위(云謂)될 수 있음에 불과하다. 따라서 무엇을 그렸는가 하는 명제는 작가가 취급한 소재가 무엇인가를 묻는 말임에 그칠 뿐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파악하였는가까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에 비로소 하나의 비평적 명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바꾸어서 말하면 현실에 대한 인식이 주체화되어 문학적 표상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묻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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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품에 있어서의 주체의 문제란 태반 주제의 문제 즉 테마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었다. 실상 그 작가에 진정한 과학적 인식이 있는가 또는 이른바 세계관이란 것이 어느 정도까지 일신상 진리로 비약되어 있는가. 통틀어 그 작가에게 모랄이 있는가 없는가는 그 작가가 어떠한 주제를 어떠한 각도로 설정하였는가만 본다면 뻔해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단편소설에 있어서 테마의 점령하는 지위란 거의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노벨이란 광범한 현실의 세계에서 작가가 일정한 각도로 간결성과 압축성을 가지고 하나의 적은 갈등을 사회적 관계의 본질에서 일탈함이 없이 개시하는 산문적인 소형식이기 때문이다. 풍속이라든가 커다란 행동의 묘사라든가는 자연히 적어지고 이론적 모랄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작가의 주장이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은 것도 이러한 노벨의 장르적 특수성에서 오는 결과이며 또한 지난날의 세계적 단편 작가들이 가끔 구성의 배설(配設)과 묘사의 진행에서 ‘우연’을 남용한 것도 이런 점으로 보아 일리(一理) 없음이 아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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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단편 소설 중에서도 풍자적 효과나 역설적 묘미나를 목표로 한 작품에선 테마와 문화적 표상이 엄연히 융합되지 않는 한, 작가 정신은 거의 죽은 것으로밖에는 제시되지 못한다. 주제는 뚜렷하게 솟아나서 작가의 주관적 정신이 펄펄 뛰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작가가 의도한 풍자나 역설은 거의 독자의 눈 밖에 서서 나타나지 않을 만큼 풍부한 문학적 표상 가운데 그림자를 감추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풍자와 의도가 노골적으로 나타나서 독자의 비위를 상하게 만든다든가 예술적 긴장미를 감쇄(減殺)한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와는 반대로 풍자의 대상은 왕왕 그 반대물로 전환되어 버린다. 작가 정신은 땅에 떨어져 버릴 뿐 아니라 테마의 비속성이 드러나고 예술적 가치 판단에선 거의 영(零)의 기준으로 저하됨을 면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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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풍자나 역설을 살리기 위하여 단편 소설이 어느 정도까지 ‘우연’을 동원하는 것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어떠한 경우에서보다도 이 풍자나 역설을 겨눈 때 이상 작가의 수완이 필요한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완이란 물론 기교만을 말함이 아니다. 주제에서 노출되고 폭로되는 작가의 주체적 파악까지를 함께 합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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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히 내가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작품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문학적으로 독서적 세련을 어느 정도까지 치르고 나온 독자로서는 이 작품의 전반을 읽어 가기도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초시가 고보(高普) 설립 기성회 위원들을 남겨 두고 뒷방으로 도망쳐 버린 뒤부터는 작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너무 옅어서 풍자는 샘스러 오히려 작가적 수완이 풍자거리가 된 느낌을 준다. 잡지가 왔길래 읽다가 이초시네 집에 강도가 들었다고 경관과 군중이 몰려가는 대목에서 내던져 버렸다. 평을 쓰라는 통지가 와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결국 희화적인 존재는 평자 자신이란 느낌을 굳이 하였다. 이 곳에 우롱 당한 것은 이초시도 사법 주임도 아니요, 우리 불쌍한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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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8년 5월 4일)
【원문】소재와 주제와 작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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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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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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