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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료(授業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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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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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료(授業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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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직원 회의에서 결정을 하기까지는 그까짓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던 것이 막상 이런 여학생들을 정면으로 딱 대하고 보니 수업료를 못 가지고 왔다고 책보를 싸 가지고 당장 돌아가라는 말이 그렇게 수월히 척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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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입에서 지금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그저 전과 같은 국어 시간이거니만 여겨 새끼 제비가 먹을 것을 지니고 돌아오는 어미를 반겨 맞듯이 교단에 올라서자 일제히 경례를 하고 머리를 들어 책을 펼쳐 놓으며 배우고자 반가이 맞아 주는 학생들을 대할 때 선생은 그만 혀가 굳어졌다. 더욱이 서무실에서 지적하여 준 미납자 명부를 보면 전 반(班)의 반수 삼십여 명이 거의가 모두 성적이 좋은 모범생들뿐이었다. 언제나 이 애들 때문에 시간이 재미있었고 또 가르침의 의의도 있었다. 백 번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고 장난만 치는 말괄량이 말썽꾸러기들은 애초부터 상대도 안 되는 존재, 이 학생들 삼십여 명을 몰아내고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수업료 이야기는 차마 나오지 않고 선생은 어리둥절 학생들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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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 시간은 말이죠, 어제 배운 것 다시 한 번 해석해 주세요. 한문 문자가 퍽두 많어서 아니 무척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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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제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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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시간은 학생의 이런 제의를 받음으로 시간을 시작하는 것이 시간의 순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직원 회의에서 결정이 된 일. 어차피 이야기는 이 시간에 하여야 될 판, 한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그 방법만이 다만 자유의사에 허용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감정을 보다 상하지 않게 말을 고이 해서 돌려보내야 할 것만이 생각할 문제였고, 먼저 하여야 할 순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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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학생의 제의를 또한 들은 척 만 척 그대로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우선 그것은 뒤로 미룬다는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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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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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하여야 할 말의 본 궤도로 말을 몰아넣기는 하였으나, 다음 말에 여전히 용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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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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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선생은 다시 한 번 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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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아니하고 ‘그런데……’로 말을 돌리고, 또 더듬는 그 ‘그런데……’ 소리가 어째 학생들은 이상한 것 같아 남의 옆구리를 쿡쿡 쥐어지르며 끼득거리던 말괄량이들까지도 이 ‘그런데……’ 소리에 귀들을 쫑긋이 모으고 새카만 눈동자를 깜박깜박 선생의 얼굴로, 얼굴로만 너도나도 건너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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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에, 수업료를 못 가져온 학생들은 에, 에, 오늘부터 집으로 돌아가 자습을 하기로 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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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말은 여전히 더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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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법한 일이었다. 언제부터 가져오라는 수업료다. 최후의 단안이 아니 내리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일을 당하고 보니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찢어질 듯한 긴장 속에 힘없는 고개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책상 위로 힘없이들 숙숙 수그러진다. 묻지 않아도 미납자들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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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책보를 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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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말을 한번 낸 선생의 태도는 단호하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보를 싸는 학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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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전 내일 가지고 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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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숙였던 학생 하나이 부끄러운 듯이 자세를 바로 가지지도 못하고 일어서 용서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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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은 돌아가야지. 오늘은 오늘까지 완납한 학생에게만 수업을 시키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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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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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설움이 터지는 것 같은 눈물 어린 소리가 들리더니 그 아이는 머리를 숙인 채 책가방을 들고 일어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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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나가나를 기다리기나 하였던 듯이 그제야 머리를 숙였던 학생들은 슬금슬금 다들 책보를 정리하여 가지고 그 애의 뒤를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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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끝내고 복도로 나오던 선생은 운동장 기슭 산턱 아래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일군의 여학생들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책보를 든 채 학교 주위를 배회한다는 것은 누가 본다 해도 그것은 학교의 명예를 위하여 재미 없는 일이었다. 선생은 백묵을 든 채 학생들이 몰려 있는 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반에서 나온 아이들은 하나도 가지 아니하고 모두 몰려들 있었다. 책을 펴들고 앉았는 아이, 뜨개질을 하는 아이, 혹은 한심스러운 얼굴로 턱을 고이고 앉아 무엇인지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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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집으로들 돌아가지 않고 여기 모여 앉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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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마땅한 듯이 선생의 어조는 좀 흥분하였다. 고개를 한 번 거들떠볼 뿐, 누구도 대답하는 아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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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집으로들 가서 내일은 다들 수업료를 마련해 가지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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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여기에서 책이랑 보면서 놀다가 하학 후에 딴 애들과 같이 돌아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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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앉았던 한 아이가 새침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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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을 여기서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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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놀지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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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애들하구 같이 갈 이유는 무엇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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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이십일 날까지 가져오라는 월사금을 못 마련해서 그저께도 어머님은 우셨는데요. 오늘 쫓겨나가서 돌아왔다면 우실 거예요. 그래서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과 함께 돌아갈 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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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월사금을 못 내서 쫓겨왔다는 말은 안 하고 어머님을 속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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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속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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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월사금을 속히 마련해 주나? 쫓겨왔다고 집에 가서 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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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뭐 마련할 데가 있는 돈을 우리 집에서 등한히 하는 줄 아세요? 쫓겨났다면 어머니의 마음만 더 아프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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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하얀 눈물이 별안간 눈알에 씌운다. 거짓없는 마음의 표현인 것 같다. 선생의 가슴도 찌릿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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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버지는 신문사에 다니신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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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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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얼마나 받으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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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팔천 원이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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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몇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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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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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니는 학생은 너밖에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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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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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원도 못 되는 수입으로 여섯 가족이 생활을 해야 된다! 게다가 두 아이의 학비를 대야 하고 - 과연 어려운 처지다. 이만 사천 원을 봉급으로 네 가족에 학비 하나를 대는 자기도 살림이 되지 않아 딸년의 수업료 독촉을 날마다 받는 형편이다. 그까짓 모른 척하는 것이 상책인 것을 공연히 이런 것을 다 물었다고 선생을 짐짓 후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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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가거라. 임시 시험이 월요일부턴데 공부들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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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책 봄 어때요? 오늘은 날두 춥지 않어 바깥두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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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 어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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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월사금은 못 내두, 날마다 학교에 왔다 감, 공 안 맞죠? 전 지금껏 공 하나두 안 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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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석이 아쉬운 학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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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도 못 했던 질문이다. 선생은 순간 그 가름이 어려웠다. 원칙적으론 수업료 납입까지는 결석으로 간주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질문을 받고 보니 딱하다. 대답이 어려웠다. 다시 캐어 물을 것 같은 추궁이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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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수업료 없이는 학교에 오지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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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학생의 입을 막기 위하여 어세를 높였다. 그리고 이것은 체조 선생의 명령을 빌지 않고는 돌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교실로 돌아오다보니, 학교 뒷산턱 아랫기슭에도 딴 반에서 쫓겨나온 학생들이 곳곳에 몰려서 점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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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어떤 젊은 여자가 급한 일이 있으니 잠깐만 뵙겠단다는 서무실의 전달이다. 특별한 경위가 아니면 시간이 끝나기까지 면회를 기다려야 하는 총칙을 무시한 이 젊은 여자, 급한 볼일, 대체 여자란 누구며 볼일이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예측이 가지 않은 아득한 생각을 더듬으며 선생은 교실을 나섰다. 교장실을 지나, 서무실 쪽으로 꺾어들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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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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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가 별관 쪽으로 갈라져 들어가는 복도 어귀서 났다. 보지 않아도 귓맛에 익은 아내의 음성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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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일까? 좀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겠는데 그동안을 못 참아 학교까지 찾아온 것은 필시 심상치 않은 일일 것이다. 순간 무엇인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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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순자가 수업료 때문에 쫓겨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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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를 어쩌냐 하는 듯이 아내는 남편을 대하기가 바쁘게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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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턴 임시 시험인데 수업료를 못 냈다고, 시험 때에 축출을 하는 모양이 안됐으니까 아마 미리 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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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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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늘은 어떻게 변통해야 되겠기에 왔어요. 그래야 내일 결석을 하지 않죠. 아이, 결석두 결석이려니와 수업료를 못 내서 풀이 죽어 늘 돌아가는 아이가 불쌍해서 우선 안됐어요. 글쎄 첫시간에 쫓겨났다고 아예 돌아와선 여지껏 찌일찔 짜고만 쭈그리고 앉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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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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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탄비 오천 원은 추후에 내두, 수업료 일만 구백 원하고, 증축비 이천원하군 같이 바쳐야 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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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 걸 누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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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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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선생도 잘 아는 처지다. 더욱이 저도 교원, 나도 교원, 사정도 서로 모르는 형편이 아니다. 수업료를 못 냈다고 자기의 딸에게도 이렇게 일률적으로 사정이 무시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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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탄비를 추후로 미니까, 예산보다 오천 원이 헐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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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남의 집 식구 같애! 그래두 일만 삼천 원 돈이야 돈이! 그게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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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듯이 폭 쏘고 선생은 교실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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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산 기슭에는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서성이는 처녀들이 구름 떼처럼 밀려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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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신경향》(195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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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현대한국단편문학전집』제 8권 (문원각,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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