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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 ◈
◇ 젊은 사람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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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이무영
1
젊은 사람들
 
2
2
 
 
3
그날 밤, 진숙은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서 애를 썼다.
 
4
도시 모두 어떻게 된 일인가? 일주일이면 휭하니 갔다오겠다던 오빠는 무슨 일로 한 달이나 서울에서 지체가 되었으며, 무슨 일이 있든지 꼭 끌고오겠다던 종호는 어떻게 오지 않았으며, 또 오늘 온 청년은 누군데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오빠와는 어떠한 관계인가? 짐 하나 없는 것을 보면 하루 이틀 묵어갈 사람이겠지만, 서울서 여기까지 데리고 왔을 제는 오빠와도 이만 저만 한 사이가 아니기도 한 모양이다.
 
5
'그이도 학병 출신인가?’
 
6
이렇게 생각하노라니, 문득 종호가 온 것도 작년 이맘때였더니라 싶다. 그날은 마침 읍에서 대분란이 있었던 날이었다. 징병, 징용, 보국대 등으로 끌려 나갔던 청년들이 '귀환 징용자 원호동맹’이라는 것을 만들어가지고 왜정 때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람들의 집을 이잡듯 하면서 마구 부수는 판이었다.
 
7
이날 하루에 읍내에서만도 세 채에 불을 질렀고, 사람이 둘이 죽었었다. 상한 사람은 무려 수십 명이나 된다고 했다.
 
8
진숙의 아버지 신구영 씨도 이날 봉변을 당한 사람 중의 하나다. 두드러지게 한 일은 없었지만, 외국 유학을 하고 왔다는 약점이 있어서 두어 번 끌려나가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그때에는 누구나 해야 할 말을 한 십오분씩 떠든 것이 해방이 되자 치인 것 이었다.
 
9
군중들은 큰사랑 앞 열두 칸 마루에 빽빽하니 자리를 잡고서 진숙의 아버지 신구영을 돈대 밑에 꿇어앉히었다.
 
10
"너 이눔, 네 죄를 아느냐?"
 
11
하고 두목이 거드름을 피우며 심문이 시작되었다.
 
12
"나 한 일은 나 자신보다도 그대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
 
13
신구영의 대답은 이러했다.
 
14
"뭐 이 자식, 그대들? 그대들이란 어디다 쓰는 문자냐? 누굴 보구서 그대들이라는 거야?"
 
15
말이 옥신각신하더니 한 자가 몽둥이로 신구영의 어깻죽지를 후려쳤다.
 
16
신구영은 그 자리에 푹 엎어지고 말았다.
 
17
"그놈을 죽여라!"
 
18
"자백을 시켜라!"
 
19
"달구쳐라!"
 
20
군중 속에서 이런 소리가 빗발치듯 했다.
 
21
바로 그때였다.
 
22
군복 셔츠 바람에 키가 후리후리한 한 청년이 썩 나타났다. 머리는 더부룩하나 막 깎은 머리였다. 얼굴빛은 누렇고 퉁퉁 부었다.
 
23
얼핏만 보아도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 분명했다.
 
24
"여러분! 조금 진정하시오!"
 
25
하고 그 청년은 손을 번쩍 들어 군중의 주의를 이끌어 모아놓고서,
 
26
"나는 이 댁 아드님 신재덕 군의 동창생입니다. 학병 시대의 동지였기 때문에 지금 감옥에서 나오는 길로 동지를 찾아왔다가, 이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나는 아직 재덕 군도 만나지 못했고, 또 재덕 군의 춘부장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릅니다. 죄를 졌다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주는 사람이 한 개인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죄는 법만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죄는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서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27
웅변은 아니었다. 그러나 차근차근 따지는 그의 말은 군중의 흥분을 가라앉히었다. 이쪽 저쪽에서 울근불근하는 소리도 없지 않았으나, 그가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군중으로 하여금 생각할 여유를 주었던 모양 이었다.
 
28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나도 친일파, 민족 반역자에게 희생이 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만일 이분에게 정말 죄가 있다면 나 자신도 용서치 않을 것 입니다. 뜯어먹을 죄면 뜯어먹고 갈아먹을 죄면 나도 갈아먹겠습니다."
 
29
그가 이렇게 부르짖었을 때는 한귀퉁이에서 박수까지 일어났었다.
 
30
그때다. 두목 격인 한 청년이 내려와서 그의 손을 잡고서,
 
31
"얼마나 고생하셨소."
 
32
하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군중은 흐지부지 흩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공교 롭게 도 이 단장은 사흘 전 청주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자기 사촌 매부를 맞으러 갔다가 인사를 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33
이 소동이 지난 뒤에서야 송종호와 재덕이는 만났던 것이다.
 
34
이것이 인연이 되어 종호는 감옥에서 병든 몸을 진숙의 집에서 조 섭했던것이다.
 
35
병명은 황달이었다. 황달이 그만해지자, 이번에는 관절염이 도졌다. 뼈를 깎듯이 아픈 모양이었다.
 
36
전후 반년간 진숙은 충실한 간호원이었다. 여름방학에 집에 왔다가 해방을 맞은지라, 몇 달만 다니면 졸업이었지만 학교가 시원치 않았다기보다도 종 호의 간호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37
그만큼 진숙이는 송종호에게 충실했다.
 
38
그러나 진숙이가 정말 송종호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발견한 것은 송종호를 떠나보낸 후이다. 소위 '신탁통치안’이 계기가 되어 틈이 벌기 시작한 송과 재덕이와는 그들 말대로,
 
39
"우정은 우정, 사상은 사상."
 
40
이렇게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41
이놈저놈 하고 싸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헤어질 때의 그들은 역시 서로의 몸을 아껴주는 정다운 친구였었다.
 
42
"자네와 내가 총을 맞대고 쏠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43
재덕이가 헤어지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을 때 송종호는,
 
44
"그런 날이 오기를 빈다."
 
45
하고 손을 흔들어대었다.
 
46
"우리가 서로 총질을 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자기 신념대로 살았다는 증거니까."
 
47
"그럼 잘 가게!"
 
48
"잘 싸워주게!"
 
49
이렇게 그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옆에 서서 진숙이는 소리를 내어 울고 말았었다. 정이 들었던지라 어머니도 눈물을 머금었고, 진숙이와 함께 정성껏 시중을 들어준 금녀도 어머니의 어깨에다 얼굴을 대고 울어대었었다.
 
50
"그 사람 가는데 금녀년이 젤 서러운가보더라. 그냥 엉엉 울잖겠니."
 
51
이런 이야기만 꺼내면 금녀는 지금도 얼굴이 새빨개진다.
 
52
이렇게 한번 간 종호로부터는 그후 반년이 되도록 이렇다는 소식 한 장 없었다.
 
53
그렇던 종호가 다시 병이 도져서 자리에 누워 있다는 소식이, 그나마도 풍 편으로 전해온 것이 두어 달 전이었다.
 
54
"오빠, 서울 한번 안 가시우?"
 
55
"서울은 왜?"
 
56
진숙이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종호를 다시 만나느냐 만나지 않느냐 를 결정 짓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7
"글쎄 … "
 
58
믿고 사랑하는 오빠면서도 털어놓고 말할 수 없는 진숙의 안타까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59
"진숙아!"
 
60
"응."
 
61
"너 지금두 송 군을 생각하구 있냐?"
 
62
한번 불시에 이런 질문을 오빠 재덕이한테서 받은 일이 있었다. 재덕이가 서울을 떠나던 바로 며칠 전, 별빛이 달밤처럼 밝은 밤이었다.
 
63
은근히도 기다리던 말이었다. 안타까이도 바라던 질문이었다.
 
64
그러나 진숙이는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그대로 울음만이 터져서 어린 애처럼 울고 말았던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알면서도 훌훌이 떠나간 종호, 가서는 이렇다는 편지 한 장 없는 종호 ─ 그 종호에게 대한 원망보다도, 누 이의 마음을 그토록이나 몰라주는 오라비에 대한 원망의 설움이었다.
 
65
"진숙아, 잊어라."
 
66
이 말에 진숙은 몸을 발딱 일으켰다. 진숙이가 일찍이 오빠 앞에서 취 해본 적이 없는 반항의 태도였다.
 
67
"네 맘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단념해야지 옳다. 종호는 나의 친구다. 그러나 오늘날의 송 군과 나는 동지는 아니다. 나는 그에게 있어서 적이다.
 
68
그는 내게도 적이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누이를 적에게 주고 싶지는 않다. 네가 간다면 구태여 막지는 않겠지만, 가도록 권할 수는 없다. 네가 나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들을 버리고까지 가야만 한다면 모르되, 나는 네가 거기까지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너는 지금 송 군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단지 옳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만으로서 송군을 쫓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송 군의 육체와 송 군의 사상과 같이 죽고 같이 살 수 있다면, 나도 굳이 막지는 않을 것이다."
 
69
재덕이는 이런 긴 말을 하고 나서,
 
70
"어떠냐? 그만한 신념이 있나? 없지? 없으면 단념해야지."
 
71
그날부터 진숙은 일체 종호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재덕이한테뿐이 아니라, 진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도 종호에 대한 기억은 깨끗이 씻어 버리기로 했던 것이다.
 
72
그러던 중 재덕은 갑자기 서울로 떠났다. 혹시 종호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변했다면 다시 손을 잡아보자 함에서였을 것이다.
 
73
그러나 오빠가 혼자 온 것을 보면 종호가 아름다운 우정을 박절히도 거절한 것이 분명했다.
 
74
'족히 그럴 사람이지!’
 
75
눈앞에서 영원히 끊어져 가는 인연의 실끝을 바라다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약한 처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다.
 
76
진숙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대로 앉았다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무데고 훨훨 좀 싸다니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아서 만여 평이나 되는 정원을 헤메어보나, 종호의 기억이 맺혀지지 않은 한 개의 돌도 한 포기의 꽃도 이 정원에는 없었다.
 
77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진숙이가 얼싸안고 나니, 종호에게서 미국 독립전쟁 이야기를 듣던 소나무다.
 
78
진숙은 질겁을 해서 그 자리를 떴다.
 
79
비틀거리면서 자리를 옮기고 나니 걸상처럼 된 느티나무 뿌리였다. 종 호가 서울로 떠나던 바로 전날 밤, 긴 작별을 한 것이 바로 이 나무뿌리가 아니었던가? 한 처녀가 순정을 바쳐 눈물로써 만류하는 것을 칼로 베이듯이 뿌리치던 나무뿌리, 종호는 낙타 등처럼 생긴 뿌리에 앉았었다. 그 옆 갈라진 뿌리가 진숙이의 앉았던 자리였다.
 
80
"진숙 씨!"
 
81
"네."
 
82
"날 더 잡지 말아주시오. 나는 가야 할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 있든지 가야만 할 사람입니다. 진숙 씰 위해서나 재덕 군을 위해서 ─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나 ─"
 
83
"이유가 뭘까요?"
 
84
"이유? 얼마만 있으면 알 것입니다. 나란 사람은 여기에서는 용납도 못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아니 벌써 오고 있습니다. 나는 벌써 생리적으로 이 고장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기가 물 없이 어떻게 삽니까? 여기는 육지입니다. 나는 물을 찾아가야 살 수 있지요. 바다를 ─ 자, 약속 해주시오, 더는 붙잡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십시오. 네, 진숙… "
 
85
그때까지 진숙의 손은 종호의 포갠 손 속에 들어 있었다.
 
86
그러나 종호는 이 말을 최후로 한 손으로 진숙의 손을 아스러지게 쥐었다놓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방으로 되어 있는 작은사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87
진숙은 그때의 종호의 마지막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아니, 비틀거리다가 몸을 지탱할 수 없어서 쓰러졌다는 자리가 바로, 불로초 밭, ─ 진숙이가 스물두 해 동안 살뜰히도 지켜온 처녀의 입술을 종호한테 허락한 자리였다. 진숙이가 일생에 한 번 허락한 키스는 실로 긴 키스 였다. 그때 아찔하는 현기를 느꼈던 것을 진숙이는 이 불로초 밭을 지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추억했던 것이다.
 
88
'일어나야지. 이 무서운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89
진숙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일어났다가는 그대로 푹 엎어질 것만 같았다.
 
90
'어머니!’
 
91
진숙은 횟배 앓는 아이처럼 불로초 잎을 바닥바닥 뜯어대며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92
'왜 그를 따라가지 못했던고?’
 
93
지금의 진숙에게는 오직 이 원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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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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