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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壁) ◈
◇ 제 2 막 제 1 장 ◇
카탈로그   목차 (총 : 4권)     이전 2권 다음
1959년 6월
이무영
1
벽(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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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막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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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막으로부터 약 삼개월 후. 팔월 중순경. 여름 밤. 계곡의 물소리, 밤새 소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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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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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경의 요정. 독립된 산장. 반침 달린 조그만 방. 약 간반 내지 이간 정도로 족하다. ㄴ자로 된 툇마루. 무대의 기타 여백에는 정원목, 암석, 축산, 연 못, 좌우에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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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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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이 오르면 맥주와 간단한 안주 정도. 윤임숙, 안 교수, 마주 앉았다. 윤임숙, 안 교수한테 부채질해 주고 있다. 안 교수 진장보다 깔끔해진 인상이다. 넥타이(늦추었다)도 눈에 뜨이게 생기가 난다.
 
 

 
 
8
임숙 -   생각할수록에 우습군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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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뭐가요?
 
10
임숙 -   선생님하구 이렇게 된 게요.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 이렇게 되고 말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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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나두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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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도시 모두가 꿈 같아요. 연극 같구요. 연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이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이 방에 올라올 땐 꼭 무대에 나가는 기분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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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무대에 서 보신 일이 있으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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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학생 때 딱 한번 서 본 일밖에 없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서두 그 방면으로나 가 볼까 했었지만 아버지가 너무 반대하셔서 그만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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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난 아직두 윤 여사의 어디서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분간을 못하고 있습니다. 윤 여사와 만날 때마다 오늘은 정말 연극이 아닌가 이렇게 날 끌어내 놓구서 집사람을 살짜기 불러내는 게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나요. 그래, 윤 여사와 약속을 하고서도 지켜야 할 껜지 안 지켜 야할 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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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선생님, 너무하십니다. (쌀쌀하게) 남의 순정을 그렇게 조롱하실 수가 있을까요? (시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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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낭패해서) 아니,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내 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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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아니긴 뭐가 아니세요? 아직까지도 절 의심하시는 것 아니셔요? 저두 교육 받은 여성입니다. 제딴에는 교양두 갖고 지성두 있구요…
 
19
교수 -   글쎄, 윤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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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판단력도 있구 도덕관·윤리관두 서 있는 여성이어요! 그뿐이 아니죠. 아무리 난봉꾼 남편이라고는 하지마는 제게두 어엿한 남편이 있는 유부녀 입니다. 그런 제가 남편의 눈을 속이구 그뿐인가요? 20년내의 친구를 속여가면서 이렇게 선생님과 밀회를 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선생님께… 저두 괴로워요. 괴로우면서도…
 
21
교수 -   윤 여사! 그만해 두시오. 그걸 누가 모릅니까. (가까이 가서 어깨에 손을 얹고) 우리가 지금 그런 설명을 할 단계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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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좀 풀렸다. 또 시계를 본다.) 그럼 왜 섭섭한 말씀을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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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그럼 윤 여사는 왜 연극하는 것 같다고 그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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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웃으며) 그러구 보니까 그렇군요. 그럼 피장파장이니 화해하지요! (안의 손을 끌어다 입맞춘다.) 정말 전 이렇게까지 되리란 생각은 꿈에도 못 했었습니다. 선생님두 그렇게 생각하였다지만 전 정말 장난이었어요. 혜경인 이런 줄도 모르구서 우리집 양반 한번 바람내 본다더니 왜 못하는 거냐구 서둘러 댄답니다요. 죄는 죄지만 혜경이가 하두 선생님한테 무관심하구 그러면서도 너무 자신이 있어 하기에 한번 곯려주자던 거랍니다. 그렇게 시작한 장난 이었는데… 선생님을 뵙던 첫날 그만 선생님한테 되려 사로잡히구 만거예요. 그뒤 두 번, 세 번 만나뵈올 때까지두 순전한 존경이었답니다. 그 선생님께 대한 존경이 저 자신도 모르게 그만 애정으로 변해 버리는군요. 저 자신 어찌할 수 없었어요.
 
25
교수 -   나두 그렇게 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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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선생님과 이렇게 된 것을 지금 와서 비겁하게 우리집 양반한테 책임 전가를 시킨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되게 한 책임의 절반은 저의 집 그이한테 두 있다구 전 생각해요. 이집 저집 다니며 점심 사먹듯이 계집한테 손을 대는 그이와 자진해서 여자가 내밀어 주는 손도 만지지 못하고 벌벌 떠는 선생님과를 비교해 볼 때 전 저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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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나두 같은 경우지요. 사실 내 처가 조금만 더 아내로서 마음을 썼더라면 나두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지 모르지요. 난 윤 여사를 알고서야 비로소 여성이란 이렇게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여성이란 이렇게도 상냥하고 부드러운 감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인가 진실로 놀랐습니다. 내 아낼 바보랄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그런 감정의 세계를 모른 채 50년을 살아왔습니다. 내게는 어려서 처음 동물원 구경을 했을 때와 같은 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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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그런 얘긴 인저 우리 그만하시지요. (시계를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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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시계는 왜 그리 자주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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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괜히요. (사이) 약줄 못 잡수시니까 재미가 없어요. 선생님은. (또 시계를 보고서) 저 선생님, 혜경이한텐 요전 제가 말씀하시란 대루 하셨지요?
 
31
교수 -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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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그럼 어디 한번 그대루 ─ 꼭 그대루 말씀해 보셔요. 단 한 자라도 틀리면 안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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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웃으며) 아니, 이거 나이 오십이나 다 돼가지구 유치원엘 들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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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단 한 자라두 틀리기만 해보세요. 한 자에 매 한 대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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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허 참, 연애란 게 이렇게두 힘이 드는 겐가? 늙바탕에 와서 큰 단련 받는군.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내가 변했어. 아주 어린애가 돼버렸어, 바보가. 나 자신 상상 할 수가 없어졌어요. 이게 안현식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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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글쎄, 딴소리 말구 해보세요. 그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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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나 오늘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누굴 좀 만나러 갔다 오겠소. 나중엔 당신두 다 알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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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다섯 자 아니 (꼽는다.) 여덟 자나 틀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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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틀리긴 뭐가 틀렸다고 그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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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나 오늘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생’겨서였구요. 누굴 좀 '만나러 갔다 오겠소.’가 아니라 '만나야겠어서 가요.’ 도합 여덟 자지만 석 대만 맞으시지요. 손 내미세요. (팔목 세 대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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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아예 뒤늦게 연애할 건 아니군! 이런 꼴 학생들이 본다면 뭐라구들 할꼬? (자신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이다.) 몰라졌어! 연애란 사람을 이렇게 유치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 대담하게!
 
42
임숙 -   저두 놀라구 있어요! 바우처럼 엄하시던 선생님이 그렇게 다정다감하실 줄은 몰랐어요! 마치 소년 같으셔. (또 시계를 보고 새삼스럽게)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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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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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조금 있다 가요!
 
45
교수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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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아니, 먼저 다짐부터 받아야 하겠어요. 오늘 밤은요. 제가 꼭 하라는 대루만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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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그건 또 무슨 소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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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글쎄, 제 말대루 하셔야만 할 일이 있어요. 만약에 제 말씀을 어기셨다간 정말 큰일이 나요. 저두 집에서 쫓겨나구요. 선생님두 혜경이한테 쫓겨나는 판 입니다. 아시겠습니까?
 
49
교수 -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게 다 무슨 소린고? 아니, 그럼 혜경이가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구 있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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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글쎄, 제 말대루만 하시면 그만이어요. 조금 있으면 이리루들 와 몰켜올 거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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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펄쩍뛴다.) 뭐? 몰려오다니? 누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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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침착하게 최계숙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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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놀란다.) 최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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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박인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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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더 놀란다.) 어? 뭐 박인혜가? 그분들이 뭣하러 여긴 온다는 거요. 어, 임숙 씨! 아니, 그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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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그렇게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땔수록에 침착하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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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아니, 대체로 그 사람네가 여길 뭘하러 온다는 거요. 이 자리에를? (좌불안석이다) 어떻게 알긴 알구? 응, 임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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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침착하시래두 그러시네. 네, 선생님. 선생님이 그렇게 침착을 잃으시면 모두 허사가 됩니다. 평시에는 바우처럼 의젓하시던 선생님이신 줄 알았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당황해하시기만 하실까. 겁두 많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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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아니 윤 여사, 글쎄, 대체로 어떻게 그 사람들이 우리가 여기 있는 줄을 알았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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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그야 제가 알켜주잖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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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뭐라구? (어이가 없어서) 아니, 임숙이! 당신이 정상적이오? 무슨 필요가 있어서 그분들한테 그런 연락을 했다는 거요? 우리 사이를 그분들이 알아서 윤 여사나 내게 소득이 있단 말입니까? 무슨 소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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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글쎄. 진정하셔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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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무슨 필요가 있어서 그런 연락을 했다는 겝니까? 생각해 보시오. 윤 여사. 윤 여사도 부군이 계십니다. 자녀도 있고, 나도 내 아내 정혜경이란 여자가 있고 내게도 자식들이 있습니다. 부군만 해도 닥터시고 나도 어쨌든 학계 사람이 아니오? 작으나마 사회지위란 것도 갖고 있구. 안 그렇습니까?
 
64
임숙 -   (침착히) 암, 그렇구말구요. 어째서 있는 정도겠습니까? 뭐 저의 집 양반이야 달리 적당한 말이 없어서 학자지 병자수보다두 다 많은 의사의 사회적 지 위란 보잘것이나 됩니까? 그렇지만 선생님이야 우리 한국 고고학계에서 선생님을 내놓고 또 누가 있으십니까? 그야말로 우리 한국에서야 국보적 존재 아니십니까?
 
65
교수 -   (흥분했다.) 글쎄, 국보적 존재고 떡보적 존재고 그게 문젭니까? 그분들한테… 남의 말이라면 성실한 반장들보다도 더 신바람이 나서 퍼뜨리구 다니는 그런 여자들한테 우리 비밀을 알켜줘서 무슨 이익이 있다는 것인지 내가 알구 싶다는 것은 이 점입니다.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66
임숙 -   국보시니까 그렇죠?
 
67
교수 -   국보라서 그렇다? 국보니까 떡보를 만든다는 겁니까? (기가 막혀서) 허기야 국보보다도 떡보가 더 좋겠지. 큰일났소. 큰일이야. (절망적이다.)
 
68
임숙 -   모두 선생님의 사회적 지위를 아끼구 선생님이 가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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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윤 여사! 난 가겠소! (일어날 기세다.)
 
70
임숙 -   (발끈해서) 가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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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그럼 내가 여기 뭣하러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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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우리가 여기 와서 있는 것을 모두들 알구 있으니까 우리가 여기를 떠나시는안 돼요. 되려 의심을 받거든요? 안 그렇습니까? 번연히 여기서 저녁을 먹기로 되어 있을 줄 알구서 몰켜들 오는데 우리가 살짝 피해버리면 점점 더 의심을 사지 않겠어요? 더구나 혜경이가 요새 와서 선생님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 같다구 그러시지 않으셨습니까?
 
73
교수 -   (딱해서) 그러니까 더욱 그렇잖소? 윤 여사, 그분들이 어떤 여자들인데 한번 알아놔 보시오. 내일루 당장 혜경이 귀에 안 들어갈 줄 아시오?
 
74
임숙 -   그러니까 혜경이 올 때까지 우리가 여기 있어야 한다니까요.
 
75
교수 -   아니, 뭐? 아니, 누구라구?
 
76
임숙 -   혜경이 말예요!
 
77
교수 -   아니, 혜경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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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선생님, 큰일나셨네요! 늙게 연앨 해보시더니 20년이나 사신 부인 이름까지 잊어버리셨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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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기가 막혀서) 큰일이다! 큰일났어! 윤 여사가 아주 돌았나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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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 -   글쎄, 진정하시래두 그러시네. 선생님, 좀 진정하세요!
 
81
교수 -   (벌떡 일어나며) 알았소! 인저 알았소! 윤 여사가 그런 여자였구려? 그런 여자 였어! 나는 윤 여사를 그렇게 보지 않았었소! 나는 윤 여사를 믿었었소! 부군이 방탕한 것두 잘 알구 했기 때문에 윤 여사가 그 분함을 호소 했을 때두 난 그것을 진정으로 들었었구 그래서 나도 윤 여사한테 나의 순정을 바쳤던 거요!
 
82
임숙 -   그 점은 저두 마찬가집니다! 혜경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진심에서 전 선생님께 동정을 했던 거야요. 같은 동성으로서 혜경이가 못 메워주는 그 부분을 저라두 메워드려야 한다구 생각했던 것야요.
 
83
교수 -   나도 그렇게 믿었었소! 믿었기 때문에 나도 윤 여사한테 나의 순정을 바친것이 아니겠소? 그러나 이제 와 알았습니다. 윤 여사는 처음부터가 계획적 이었던 것이오! 나의 사회적 지위라든가 학자로서의 위신, 학계의 신망 ─ 이런 것을 추락시키고 단란한 내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서 꾸며논 함정 속에 내가 빠지고 만 것이오. (분노에 타서) 좋소! 좋아. 나는 속았소. 모든 것을 잃었소. 당신의 소원대로 사회적 지위도 학자로서의 신망도! 난 학교에도 나가지 않겠소. 가정도 깨어졌고 처신도 잃고… 당신은 아름다운 대신 악마의 마음을 가진 여자였소!
 
84
임숙 -   선생님… 오해세요… (애원한다.) 무서운 오해세요. (하고 달라붙는 임숙의 뺨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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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악마! 마녀! 날 하나 매장해서 당신이 그렇게 유쾌할 것이 무엇이었단 말요! 마녀!
 
86
임숙 -   너무하셔요! 너무하셔요! (울면서도 착 달라붙어서 안 교수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다.) 오핼 푸세요. 오핼 풀어드리겠어요! 무서운 오해세요! (또 키스) 전 선생님을 사랑해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요! 모두가 파괴될 직전이었어요! 그걸 방지하잔 것이었어요. 네, 선생님!
 
87
교수 -   아니, 난 어떤 것을 믿어야 한다지? (혼자말. 멍청하니 임숙을 안은 채로) 어디서 어디까지가 연극인지 알 수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어디서 어디까지가…
 
88
임숙 -   네, 선생님. 절 믿어주세요! (늘어붙는다.) 절 믿어주세요! 선생님께 대한 애정에 전 백만분의 일의 허위도 기만도 없어요! 오직 순정입니다! 오직 순수합니다. 저도 이런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혜경이 이외의 여성의 손을 만진 것이 저였듯이 저두 제 일생에는 오직 제 남편과 그리고 선생님이 계셨을 뿐이었어요! (운다. 사이) 선생님이 순결하셨던만큼 저두 순결한 여성 이었어요.
 
89
교수 -   잘 알아. (자기를 의심하듯 나직히) 이것은 연극이 아니겠지? 임숙!
 
90
임숙 -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고) 진정이에요! 전 한 방탕한, 아니, 횡포하기까지한 한 사나이에 대한 20년간의 갖은 분노와 갖은 모욕을 참고 견디어 온 윤임숙이었습니다. 제게도 유혹도 많았어요. 그래도 참고 견디어 온 저였습니다. 물론 처음 시작은 장난이었어요. 혜경이 저하구두 짠 연극이었어요. 그랬던 것이 그날 만나뵌 후로는 그 사실을 혜경이한테도 숨기고 싶어졌어요. 저도 모르게. 선생님도 그것을 숨겨주셨으니까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혜경이한테 선생님과 만나는 것을 속이는 동안에 과거 20년간 억 눌러 온 반항의식이 폭발하고 만 것이어요. 20년간 억울하게 갇혀 있던 정열이 막았던 물 터논 때처럼 한꺼번에 선생님께로 폭주했던 것입니다.
 
91
교수 -   나두 잘 알아. (사이. 지그시 안으며) 잘 알아. 나 자신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혜경이한테 우리가 이런 데서 만나는 것을 일부러 알린 것은 실수야. 무슨 필요가 있어서 하필 이런 자리를…
 
92
임숙 -   필요해서 한 일이에요. 네, 선생님! 절 믿어주세요. 네, 믿어주시겠지요?
 
93
교수 -   (손을 잡고 흔들며) 믿지. 우리 윤 여사를 안 믿구 지금 내가 누굴 믿겠소.
 
94
임숙 -   (웃으며) 악마 같은 여성을 믿으시다가 어떻게 되신다죠?
 
95
교수 -   취소! 자, 그보다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대관절 그네들이 몰려올 때까지 우린 여기서 이러구 있어야 하는 겐가?
 
96
임숙 -   (시계를 보고) 거의 돼가요. 그러니까 선생님 저 하라는 대로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좋아요. 또 선생님이 선생님을 유혹하고 타락시킨 제게 대한 복수 감에서 저를 구렁 속에 밀어넣지 않으시겠으면 저 하라는 대로 해주세요.
 
97
교수 -   윤 여사! 무슨 소리야. 그게 다?
 
98
임숙 -   절 믿어주시지요? 제 순정을?
 
99
교수 -   내게서 믿는다는 말을 꼭 들어야만 하겠소? 그것은 순정에 대한 모독이야!
 
100
임숙 -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러면 이렇게 해주세요. 제가 선생님과 맨 처음 만나 뵙던 날 제가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겠지요?
 
101
교수 -   나의 대학생 때부터 날 잘 안다던 그 여자 이야기 말이지?
 
102
임숙 -   네, 그래요. 조금만 있으면 혜경이랑 인혜랑 계숙이랑 셋이 바루 요 뒤에 와서 우리 이야기하는 걸 다 엿들을 거야요!
 
103
교수 -   그래서?
 
104
임숙 -   엿들으러 올 께니까요.정신 바짝 차리시구 그날 선생님과 제가 주고받던이야기만 고대로 되풀이하면 돼요! 그러면 혜경이두 깜박 속구 말 거야요. 요새 혜경이 눈치가 좀 수상하잖아요? 그렇지요?
 
105
교수 -   덜컥 의심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좀 수상하게는 여기는 것 같더군. 윤 여사가 사준 넥타일 학생이 사왔다구 그랬는데 반신반의하는 눈치면서도 날 믿긴 합디다.
 
106
임숙 -   혜경이하구 그런 장난들을 하자구 그래놓구서 몇 달을 암말두 않으니까 요새 와선 되레 제가 선생님을 한번 시험해 보아야겠다는 거예요. 좀 수상하게 보이는가봐요. 거기다가 인혜가 자꾸 또 충동을 하거든요. 참,그 얘긴 몇 번 하셨지요?
 
107
교수 -   뭔 얘기?
 
108
임숙 -   아, 제 얘기 말씀예요. 제가 선생님과 만나구 헤어질 때 일러드린 말씀 말예요. 윤임숙이가 전활 걸구서 누굴 소개해 주겠다든가 어쩌든가 그러기에 시간이 없다구 그랬군… 이런 말씀 해두셨죠.
 
109
교수 -   했지. 그럼.
 
110
임숙 -   몇 번이죠?
 
111
교수 -   세 번일 거야. 아니, 두 번이야.
 
112
임숙 -   내가 말씀하긴 세 번인데 한 번은 떼잡수셨군그랴. 허지만 됐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그런 전화 끝에 처음 만나는 거야요. 저 하군요? 아셨죠?
 
113
교수 -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 인저 알겠어.
 
114
임숙 -   이래서 의혹을 확 풀어놔야 해요! 박사 논문 때문에 바쁘시단 얘기두 빠뜨리시면 안 됩니다.
 
115
교수 -   인저 알아들었으니까 염려 말아요. 그러니 언제부터 엿듣는지 알 수가 있나. 이런 땐 프롬타라두 하나 있으면 좋겠군. (웃는다.)
 
116
임숙 -   원작에 연출. 주연까지 맡은 제가 프롬타 배치 안 시켰을까봐 그러세요?
 
117
교수 -   아니, 어떻게? 누가?
 
118
임숙 -   인혜!
 
119
교수 -   인혜?
 
120
임숙 -   네.
 
121
교수 -   인혜는 그럼?
 
122
임숙 -   인혜만은 다 알구 있어요. 선생님과 저와의 사건을.
 
123
교수 -   첨부터?
 
124
임숙 -   네.
 
125
교수 -   아니. 저 큰일났구려. 인혜가 입이 매우 가볍다면서 어떻게 인혜한테?
 
126
임숙 -   인혜만은 저하구 통해요!
 
127
교수 -   아무리 통하기로니.
 
128
임숙 -   글쎄. 그건 염려 마세요. 인혜는 저보다두 더 큰 비밀을 갖구 있어요! 그러니까 저 앞에선 꼼짝 못해요. 또 절대로 제 일만은 입밖에 낼 아이가 아니구요. 인혜만은 제게다 맡기구 절대 안심하세요.
 
129
교수 -   그러구 나니, 아니 인저 정말 몰라졌소. 인혜 같은 분한테도 그런 비밀이 있다? 이거 아내라구 어디들 믿구 다니겠나.
 
130
임숙 -   그렇지만 인혜 비밀이란 그런 종류는 아니어요! 정치적인 것이지.
 
131
교수 -   아, 그렇기나 하다면.
 
132
임숙 -   쉬, 좀 있어 보세요. 밭은 기침 소리가 날 테니 그때부터 시작할 겝니다. 밭은 기침 소리에 막이 올라간 거야요. (안, 고개 끄덕인다. 그때 무대 뒤에서 혜경, 인혜, 계숙 숨어서자 인혜 밭은 기침을 한 번 한다. 혜경, 주장질을 하고 엿듣는다. 임숙, 어서 시작하라고 눈짓 한다)
 
133
교수 -   그래, 윤 여사께서 (어색해서 웃는다. 윤, 눈흘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신가요?
 
134
임숙 -   뭐 다른 의미는 아니니까 한번 만나보아 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만.
 
135
교수 -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136
임숙 -   물론 선생님한테야 필요가 없으시겠지요. 필요가 있는 것은 선생님이 아니라 저의 친구 쪽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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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   대체 그럼 그 부인께서 나를 만나서 무엇을 청하겠다는 것인가요?
 
138
임숙 -   참, 선생님처럼 목석 같으신 분하군 통 이야기를 할 수가 없군요. 여태껏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런 의미는 없다. 아무런 요구도 않는다. 그저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것뿐이라니까요.
 
139
교수 -   그것뿐이라니까 난 나대루 통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나서 꼭 청을 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 청이 무엇인가를 들어보기 위해서라도 한번 만 나본 다지만 할말이 없으니 만나다오… 우습지 않아요?
 
140
임숙 -   글쎄, 참 답답하세요, 선생님은. 그만하면 알아들으실 수도 있지 않아요. 어려서 부터 선생님 존함을 많이 듣고 존경을 했고, 커서는 선생님의 저서와 강연을 통해서 사모를 해왔지만 만나뵈올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 자기도 고고학에 취미를 갖고 있는 중 우연히 선생님의 저서 일부분을 미국 아는 친구한테 소개했더니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이번 미국에를 가게 되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거기에서 취직을 해도 좋고 뜻이 맞으면 그 사람과 결혼해서 다시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떠나기 전에 저녁이나 한번 뫼시었으면 하는 것뿐 아니어요? 그런 꿈쯤 이해해 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141
교수 -   그 여성이 그렇게도 날 존경한다나요?
 
142
임숙 -   존경도 하지만 무척 사모하고 있어요. 선생님만 허락하신다면 일생 결혼도 않고 선생님 연구실에서 선생님의 손발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여성이 랍니다. 그런 여성한테 애정은 못 나누어 주실망정 한번 만나주시는 것에까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다구 생각돼요.
 
143
교수 -   그렇다면 만나지요! (여자들 놀란다.) 그 대신 단 한 번만입니다.
 
144
임숙 -   그럼요! 선생님이 받아주질 않으신다면 미국으로 떠날 사람인데요.
 
145
교수 -   어쨌든 한번 만나주지요. 지금 어디 있다구요?
 
146
임숙 -   곧 부르겠어요.
 
147
교수 -   여기 전화 있겠지요?
 
148
임숙 -   있을 겝니다. 왜요?
 
149
교수 -   우리 옆집에 전화 좀 걸어서 내 아내도 함께 불러주시오. 기왕 차려논 음식 이구 하니 집에서 평생 된장찌게만 먹는 아내 입가심이나 시키구두 싶구 내 아내와 같이라면 나 자신두 떳떳하구.
 
150
임숙 -   부인을 한자리에 뫼실 테면 댁으로 찾아갔을 것 아닙니까?
 
151
교수 -   그럼 나 그만두겠습니다. 내 아내 있는 데는 찾아올 수 없는 심정의 여자 라면 난 만날 필요가 없지요. (혜경이 제일 신이 난다.) 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아내와의 그런 약속만은 지키고저 하는 사람입니다. 난 원래 윤 여사도 안 만날 생각이었습니다.
 
152
임숙 -   저까지도요?
 
153
교수 -   누구든지요. 내가 거리를 걸어도 눈 딱 감고 다니는 이유의 하나는 내 아내 이외의 여성은 가급적 보지 않기 위해서지요. 깨끗하니 화장도 하고 옷 도제 몸에 맞게 입고 언제 보나 생기가 나고 그런 여성을 보면 자연 우리 혜경이와 비교해 보게 되거든요. 언제나 더벅머리에 전쟁이 끝난 지가 언 젠데 몸빼나 걸치구 지지궁상을 하구 있는 혜경이한테 싫증이 난다는 것은 어쨌든 내게는 큰 불행이니까요. 내가 더구나 친구집 초대에 안 가는 이유가 시간 낭비가 싫어서도 그렇지만 남의 집 가정부인은 가급적 보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계숙, 혜경을 막 쥐어박듯 한다.)
 
154
임숙 -   어쩌면! 혜경인 정말 행복해! 선생님 같으신 남편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요. (응석처럼) 선생님? 그럼 오늘은 그 여자는 그만두고 선생님하구 저 하구만 단둘이 여기서 저녁이나 먹구 놀다 가시게 하십시다요. 네, 선생님? 기왕 오셨으니까요. 네, 선생님?
 
155
교수 -   글쎄요. (망설이듯 하다가) 그럴 필요가 있나요? 더구나 윤 여사는 우리 혜경이 친구 아닙니까. 혜경이가 나중에 듣더라도 우습지 않은가요?
 
156
임숙 -   그런 얘기 않으시면 되잖습니까? 그런 얘기까지 할 필요가 어디 있어요.
 
157
교수 -   그런 것 기이는 것이 바루 아내를 기이는 것이지요. 제 양심을 속이구, (혜경, 신바람이 나서 어깨춤이 나온다.) 그러구서 내 아내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158
임숙 -   아니, 정말 목석 같으신 분야, 선생님은 ─ 아이구, 완전히 선생님 앞에선 손 들었어요. (뒤로 대고) 완전항복을 선언함. (세 여자 와 몰려나오면서 떠들고 웃고 한다. 안 교수는 처음 놀라지 않다가 윤임숙 눈짓에 새삼스럽게 놀라고 모두가 발이 맞지 않는다. 혜경은 신바람이 나서 그런 눈치도 못 챈다.)
 
159
혜경 -   (윤보고) 봐라! 어떠냐, 응, 이래두 큰소리야?
 
160
임숙 -   무조건 항복. (손 번쩍 든다.)
 
161
교수 -   (그제서야) 아니, 이게 대관절 어떻게 된 거요, 응? (둘러본다) 옳아, 그러면 윤 여사하구 모두들 짜구서 연극을 한 게로구려. 그렇소, 여보?
 
162
혜경 -   왜 아니래요. (좋고 우스워 죽는다.) 아, 글쎄, 저것들이 말이오. 당신을 한번 바람을 내본다구 큰소릴 하는군요. 뭐 염려 없다나? 그래, 석 달 동안 공작을 해서 꾸민 연극이 끽 요고랍니다.
 
163
교수 -   아, 분하다. 완전히 속았거든! 여보시오. 윤 여사, 그게 무슨 장난이란 말요. 난 지금 박사 논문 때문에 밤에도 집엘 못 가는 날이 수두룩한데 오늘 이래놨으니 인제 하룻밤을 완전히 연구실에서 새워야 하게 됐잖아요. 에이, (풀어지며) 분하군. 그런 눈칠 챘더라면 우리 집사람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는 것을.
 
164
인혜 -   아니,그러구 보면 속인 건 누구구 속히운 건 누구야? 어떤 게 어떤 건지 통 몰라졌네.
 
165
임숙 -   (혜경보고) 저게 속았지.
 
166
혜경 -   속긴 정말 지가 속구서.
 
167
교수 -   속은 거야 나지.
 
168
임숙 -   진짜 속은 건 나군. (서로 손가락질하며 웃는다.)
 
169
혜경 -   완전히 안 속은 건 그러구 보니까 나 하나뿐이로구나. (박장대소) 어쨌든 임숙이 진 값은 내야 할 거 아니야?
 
170
임숙 -   내야지! 그럼 저 넓은 데루 가자들. 여긴 무슨 특별실이라나 보더라.
 
171
인혜 -   그래, 우리 딴방으루 가자. 숨막혀서. 너 가서 맘대로 시켜라, 이겼으니. (혜경. 신이 나서 나간다. 안 교수, 윤만 남자 포옹)
 
172
임숙 -   (속삭인다.) 요담엔 남한산성 가요! (포옹하는 데서 막.)
【원문】제 2 막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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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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