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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과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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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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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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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나는 열다섯 살 보통학교 3학년 적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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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3·1운동이란 무엇인지를 자세히 몰랐다. 일본 사람이 알면 안 되는 일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되는 일인 줄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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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사랑방에는 동리 어른들이 밤마다 모여서 「삼국지」「춘향전」같은 소설을 보며 어떤 때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야 헤어지곤 하였다. 나는 이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서 밤마다 소설 읽는 소리를 듣다가 어른들과 같이 헤어져 안방으로 들어가 자곤 했다. 그런데 이 3·1운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 밤에도 소설 읽는 소리를 듣기에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앉았다가 역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야 모두 돌아가 잘 채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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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먼저 문을 열고 나오던 나는 토방 위에 하얗게 널린 종잇조각들을 보았다. 조금 전에 소변을 보며 나올 때에는 없던 종잇조각이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니고 토방을 덮다시피 무수히 쫙 깔려 있는 것이 이상하여 "이게 머에요!" 하고 나는 내놓던 발걸음을 다시 문 안으로 들여놓으며 방안을 향하여 눈을 둥그렇게 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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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거 웬 종이쪽지가 그렇게 떨어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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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내 뒤로 나오던 동네 청년 한 사람이 종이쪽지를 집어 들고 오더니 신들을 찾으라고 문 밖으로 내드는 램프 불에다 비추어 보았다. 한참이나 유심히 들여다보던 청년은 놀라운 표정으로 눈이 둥그래지며 좌중을 둘러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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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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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물었으나 청년은 말하기가 힘이 드는 듯이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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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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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둥그래졌던 눈이 좀더 둥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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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독립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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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중의 눈도 일시에 그 청년의 눈을 따라 같이 둥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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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가 가져다 던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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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도 독립군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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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좌중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의아한 눈초리로 서로를 쏘아보며 이 종이쪽지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무슨 큰일을 저지른 듯한 태도로 한동안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남의 얼굴만 마주 건너다보다가 한 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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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도 야순을 돌지 몰으니 어서 그걸 다 집어 들여오게. 들여다가 불에 태워 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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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또 한 노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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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괜히 여기 모여 있었던 사람들까지 경을 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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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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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어른들의 이야기와 태도에서 나는 그 ‘독립선언문’ 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랐으나 어쨌든 그것은 심상치 않은 글이오 그 쪽지를 가져다 뿌린 사람은 대담한 사람이요, 또 그것은 일본 사람이 알아 서는 안 될 것인 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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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그 ‘독립선언문’ 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알고 싶어서 이튿날 아침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것은 약시약시한 것이라고 조용히 일러주고 우리 사랑에 그런 글이 떨어졌더라는 말을 행여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고 두 번 세 번 주의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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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독립선언’ 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나 는 그 순간 어쩐지 마음이 벅차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 는 우리 집 사랑방에 그날 밤 모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글을 보았을까 또 보았다면 어떤 생각들을 가졌을까 그것이 괜히 알고 싶었고 또 학교에 가서도 그 많은 학생들이 이런 글을 다 보았을까.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을까. 나와 같이 마음이 벅차 오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말들은 못하고 혼자만 알고들 있을까. 이러한 생각만으로 마음이 가득 차서 나는 큰 기쁨을 얻은 것처럼 가슴을 혼자 뛰노이며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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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그날(3월 1일)도 이러한 생각을 역시 되풀어 보며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일꾼들이 마당에서 가복(家覆)과 개바자를 엮는 구경을 하다가 장에 갔다 돌아오는 장꾼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독립선언문’ 이 오늘을 말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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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에서는 언제 그렇게 태극기들을 장만해 주었던 것인지 모두 태극기를 휘두르며 "대한 독립 만세" 를 부르며 행진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헌병들이 말려도 듣지를 않고 그냥 만세를 부르게 되어 나중에는 총 끝에다 박은 나창으로 그 만세 부르는 사람들을 무수히 찔러 죽은 사람도 있고 붙들어 들어가기도 하여 오늘은 장은 못 보고 질서는 살풍경한 속에서 절절 끓고만 있더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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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복을 하던 일꾼들도 일손을 쉬고 눈들이 둥그래서 서로 얼굴들만 마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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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려고 사랑방으로 뛰어 들어가다가 문득 놀라고 걸음을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선지 갑자기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그윽히 고막을 뚫고 흘러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귀를 쫑긋이 모으고 그 만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살피었다. 만세 소리는 삼봉산 쪽 에서 연이어 들려왔다. 일꾼들도 모두 일어서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만세 소리는 차츰 더 커지며 뚜렷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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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으로 들어가 아버지에게 장꾼들이 전하는 이야기와 또 지금 삼봉산께서도 만세 소리가 들려왔다고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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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하고 아버지는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그것이 거짓말이 아닌 사실임을 자신의 귀로도 막 들을 수 있었던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였음인지 일꾼들에게 인제는 날도 저물었으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르고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사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이렇게 일꾼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그들도 이에 격동하여 우리 마당에서 만세를 부르면 난처할 것을 염려했음인지 혹은 돌아가 다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 보라는 뜻이었는지 그것은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아버지도 그 만세 소리에 숨이 좀 차지는 것 같음을 나는 감지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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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을 먹고 나니 만세 소리는 삼봉산 쪽 그 한 곳에서만이 아니고 어디선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곳에서 나는 소리가 한데 어울리어 범벅으로 들여왔다. 이윽고 날이 어둡기 시작하자 극히 가까운 뒷산에서도 만세 소리가 일어났다. 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자꾸만 뜀을 느꼈다. 내 또래인 동 네 아이들이 이 만세 소리를 따라 뒷산으로 달음박질을 치며 기어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어느 새인지 나도 그리로 내달렸다. ‘군현재’ 라는 서당 뒷 산의 커다란 바위 위에 수삼십 명의 동네 청년들이 모여서 만세를 불렀던 것이다. 그때 우리 동네에서는 힘이 세기로 유명하고 씨름도 해서 오월 단 오면 소를 늘 상으로 타 오던 일갓집 아저씨뻘 되는 이가 한가운데 윗통을 쭉 벗고 두 다리를 쩍 벌려 디디고 서서 있는 목청을 다하여 "대한 독립 만세" 하며 양팔을 공중으로 버쩍 들곤 하였다. 그러면 그 주위에 비잉 둘러선 청년들은 그 소리를 받아서 역시 "대한 독립 만세" 하고 팔들을 버쩍 들었다. 그 군중 틈에 낀 나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아저씨가 만세를 부르면 내 입에서도 만세 소리가 나오며 손을 드는 나임을 알았다. 나뿐이 아니라 역시 올라온 사람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여기에 합세 아니 되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뒤에 보니 산마루가 하얗게 사람들이 모여들 었고 그들이 모두 이에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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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읍에서는 만세를 부르다가 헌병의 창에 찔리어 죽은 사람도 많고 붙들리어 들어간 사람도 많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경찰관 주재소가 불과 5리 상거에 있었는데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아무러한 두려움도 없이 만세를 모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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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소학생으로 아니 나 또래의 동리 아이들이 이렇게 이 운동에 가담해서 만세를 불렀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누가 만세를 부르라고 가르친 것도 아닌 자발적인 행동들이었던 것이니 같은 민족의 피란 역시 같이 끓게 되는 것이 피의 생리이었음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하는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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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이웃 동네에서 만세를 안 부른 동네가 없었으니 우리 또래의 학생들도 모두 가담을 했을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학교에 모인 학생들 간에서는 누구 하나 동무들 사이에서도 이 ‘만세’ 라는 소리에 대해서는 불렀던 안 불렀건을 고사하고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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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만세를 부른 학생은 손을 들라고 날마다 엄포를 하였으나 한 아이도 손을 드는 것을 못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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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의논을 한 것도 아닌 철없는 아이들의 이러한 단결력을 생각하고는 나는 지금도 그 때의 그 3·1 정신의 무서움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원문】3·1운동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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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