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7~1392] 고려 말의 충신, 학자.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357년에 감시에 급제하고, 1360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 여진 토벌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고,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2년에
조준,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고 끝까지 고려조를 지키려다가 이방원의 부하인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는
의창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하였으며,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 이학(東方理學)의 시조로 불리었다.
‘고려 3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뒤에 영의정 벼슬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