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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麗水市) 이순신(李舜臣) # 송현마을 # 여수 자당공원 # 장보고글로벌재단
최근 3개월 조회수 : 14 (3 등급)
【문화】
(게재일: 2024.04.01. (최종: 2024.04.01. 09:54)) 
◈ 이순신 어머니, 5년간 살았던 곳을 공원으로 꾸며
여수 자당공원
장보고글로벌재단에서 주최한 ‘세계인 장보고의 글로벌 정신과 전남 미래발전방안’ 연구를 위해 모인 유적답사 단원들은 여수 진남관 전시장을 돌아보고, 다음 방문 장소인 ‘이순신 자당기거지’를 가려고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방문지를 찾지 못하고 버스를 송현삼거리에 있는 웅천 이순신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수 자당공원
 
 
장보고글로벌재단에서 주최한 ‘세계인 장보고의 글로벌 정신과 전남 미래발전방안’ 연구를 위해 모인 유적답사 단원들은 여수 진남관 전시장을 돌아보고, 다음 방문 장소인 ‘이순신 자당기거지’를 가려고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방문지를 찾지 못하고 버스를 송현삼거리에 있는 웅천 이순신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는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에 ‘자당공원’을 입력했으나 내비게이션은 이순신공원을 알려주었다. 황상석 박사가 자당공원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어 버스는 2분 만에 여수 송현초등학교 앞에 있는 자당공원에 도착했다.
 
 
▲ 충무공 이순신 자당기거지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초계변씨(草溪 卞氏, 1515~1597) 부인이 5년간 살았던 집을 보려고 공원 길을 걸어갔다. 주변을 보니 자당공원 아래에는 부영아파트 대단지가 있고, 위쪽에는 여수 송현초등학교가 있었다. 작은 어촌 마을이 개발되면서 바닷가에는 여수웅천마리나가 생기고 호텔 및 상가가 입주했다. ‘이순신 자당기거지’를 가는 길을 못 찾아 시멘트 도로 길을 따라갔더니 바로 길이 끊겼다.
 
그곳에는 공원을 관리하는 분들이 봄을 맞이하여 화사한 꽃모종을 심고 있었다. 이 마을은 원래 소나무 숲이 많아 솔개, 솔고개, 솔곡이라고 했다. 솔개는 소나무가 있는 포구란 뜻이다. 솔고개를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 송현(松峴)이다.
 
송현마을의 입향조는 정계생(丁戒生)으로 1519년 전북 남원에서 이곳으로 이사 와서 손자 때에 정철, 정린, 정춘 등이 웅동, 웅서, 웅남마을로 분가하여 나갔다. 1789년 호구조사에서는 웅천의 서촌과 중촌만 있었다.
 
1908년에는 송현리라는 지명이 쌍봉면의 40개 리(里) 중 하나였다. 여수시에서는 2013년에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거주하던 솔고개 마을의 집터를 여수시 문화유산 1호로 지정하고, 2014년과 2015년에 본채, 사랑채, 사주문, 협문, 담장을 건축했다.
 
 
▲ 충무공 이순신 자당기거지 비석
 
 
본래 솔고개 마을의 집은 순천부 고음천에 있는 충정공 정대수(1565~1599) 장군의 집이었다. 정대수는 10세 때 온갖 경전과 책을 읽고 잘 해석하여 동네 사람들이 신동이라고 불렀다. 15세에 아버지를 여의자, 문과 과거를 접고 1588년(선조 21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임진전쟁이 1592년 발생하자 의병을 모아, 이순신 장군 밑에서 순초장(巡哨將)을 지냈다.
 
특히 별장(別將)으로 참전하여 순천 벌교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이순신의 건의로 당진 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왜군과의 전투에서 입은 총상으로 부임하지 못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금도에 있는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를 찾아가 종군하였다.
 
노량해전에서 전공을 세우고 거제, 옥포에 주둔하며 전과를 올리다가 철수하는 적을 추격하다 전사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채록되었다. 이후 병조판서로 추증되고, 가곡사에 제향하였다. 정대수(丁大水) 신도비(神道碑)는 영의정 홍순목(洪淳穆, 1816~1884)이 비문을 지어 1881년에 세웠고, 2021년 8월 전남 문화재자료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 여수 오충사
 
 
오충사는 원래 이순신 장군과 함께 출정했다 전사한 정철에게 충절공이란 시호가 내려지자, 1847년(현종 13년) 후손 정재선(丁載璿)이 여수 쌍봉동 가곡리에 정철(충절공), 정춘(충의공), 정린(충숙공), 정대수(충정공) 네 분의 위패를 모신 사충사(四忠祠)를 건립했다.
 
서원은 인재 양성과 선현 제향 및 유교적 향촌 질서의 긍정적 기능을 담당했으나, 17세기 이후 정치 사회적 폐단이 나타나 영조는 서원을 ‘당쟁의 소굴’로 지목하고 서원 300개를 철폐하였다. 조선은 서원의 신설을 계속 억제했다.
 
1864년 대원군은 전국의 사원을 조사하고 47개소만 남기라는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고종 5년)에 사충사는 철거되었다. 1927년 창원 정씨 후손들과 충무공 후손들이 힘을 모아 현재 여수시 웅천동 624번지에 오충사를 건립해 충무공 이순신을 주향으로 모시고 좌우향에 정철(충절공), 정춘(충의공, 1594년 옥포 해전에서 순절), 정린(충숙공), 정대수(충정공)를 배치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에 총독부 경찰이 강제로 철거하였다. 오충사는 1962년에 복원되고, 1976년에 한차례 중건되었다. 2000년대 들어 조용한 어촌 이 신도시 웅천택지개발(280만㎡)로 변화될 때 정씨 집성촌이 모두 이주하고 오충사만 남게 되었다. 오충사 주변 건물과 도로 및 환경문제로 여수시와 창원 정씨 종친회 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으나, 논의를 거쳐 현재의 오충사 충의공원이 완공되었다.
 
 
▲ 여수 오충사
 
 
오충사 앞에는 필식문(必式門)과 충의문(忠義門)이 차례로 있으며, 오른쪽에 월천재(月川齋)가 있어 매년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석제례를 올린다. 여수시는 2014년 9월 2일 문화유산위원회 회의를 개최해 오충사를 여수시 문화유산 기념물 제2호로 지정했다.
 
1591년 임진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1592년 충청도 지방이 전란에 빠져들자 가족과 어머니를 전라도 순천부로 모셔온다. 이순신 장군의 가솔(家率)은 순천도호부 관내 고음천(古音川, 현재 여수 웅천동)에 집성촌락을 형성해 살던 창원 정씨 집안의 도움을 받아 1593년 5월부터 1597년 4월까지 살았다.
 
대안산 자락에 있는 고음천은 아래로 가막만을 바라보는 한적한 시골로 동네의 옛 지명은 곰칭이, 곰쳉이로 한자 표기 고음천으로 되었다가 웅천이 되었다. 곰쳉이는 바닷가나 강가에 안쪽으로 들어간 지역에 쓰이는 말이다.
 
 
▲ 충무공 이순신 자당기거지(여수 송현마을)
 
 
이순신 장군은 칠순이 훨씬 넘은 어머님을 5년간 가까운 지역에 모셨다. 전쟁 중에도 이순신 장군은 수시로 어머니를 찾아뵙고 건강을 보살폈다. 효심이 아주 극진해 보는 사람마다 모두 칭송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무공은 잘 알지만, 이순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위대한 어머니인지를 잘 모른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제대로 키우려고 집을 자주 옮겨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듯이 초계 변씨도 따라 했다. 한양의 건천동은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여든 동학과 가깝고, 무과생을 교육시키는 훈련원과 가까워 자식들 교육에 도움이 되었다.
 
할아버지 李百祿은 평시서 봉사(종8품)로 일찍 작고했고, 아버지 이정(李貞)은 창신교위(종5품)였지만 실직이 없는 산관이었다. 이에 초계 변씨는 이순신이 10살 때 아산으로 이사했다.
 
 
▲ 방진과 이순신
 
 
이순신이 20세 되던 1565년에 덕수 이씨 이백록과 사마시(司馬試) 동기인 영의정 이준경의 중매로 상주 방씨와 혼인을 하게 된다. 상대는 무과에 급제하여 보성군수까지 지낸 방진(方震)의 딸 상주 방씨(方守震)로 2세 연하였다. 방진의 집안은 양반이었고 외동딸이라 이순신은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순신은 무관 출신의 장인 방진과 함께 살면서 진로를 무과로 바꾸었다. 방진은 당대의 명궁으로 이순신은 장인으로부터 궁술과 병법을 모두 물려받았다. 방씨 부인도 이순신의 무예 연습을 옆에서 도왔다. 이순신은 27살이던 1572년 무과에 응시했으나 말에서 떨어져 낙방했고, 4년 뒤인 1576년 식년 무과에 병과 4등으로 급제했다.
 
이순신이 1576년 2월, 32살에 무과 과거에 급제하자 어머니는 이를 축하하려고 노비와 토지를 증여한다. 이순신은 과거에 급제한 해에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종9품)으로 발령받아 갔다가 임기 2년을 채우고 한양 훈련원 봉사(종8품)으로 올라온다. 듬직하고 믿음직하게 처신하는 이순신을 본 병조판서 김귀영은 자신의 서녀를 이순신에게 연결하려고 하지만 이순신은 거절한다.
 
이순신은 충청병영 군관(종 6~7품)으로 임명되어 해미(海美)에서 근무하다, 이듬해 겨울 전라도 발포진 만호(종4품)로 18개월 머물렀다. 발포 만호로 있을 때 오동나무를 베어 바치라는 전라좌수사 성박의 명을 거절했고, 병조정랑 서익이 온갖 이유를 들어 발포 만호 이순신을 파직해 이순신은 고향 아산으로 갔다가 1년 만에 훈련원 봉사직(종8품)으로 복직한다.
 
 
▲ 전남 보성 역사교육 방진관 방수진(方守震) (2012년 개관)
 
 
초계 변씨는 재산관리에도 아주 꼼꼼하여 모든 분쟁 거리를 남기지 않으려고, 문서 작성 시마다 증인을 세우고, 별급문기를 손수 발급했다. 초계 변씨는 집안의 화재와 1583년 남편 이정이 73세로 죽었을 때, 큰아들, 둘째 아들의 죽음에도 아주 초연했다. 변씨는 항상 순신에게 자립, 자주, 충성의 가치관을 깊이 심어주었다.
 
필자가 이순신 자당기거지 안방을 바라보니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 초계변씨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었고, 다른 방에는 부인 상주 방씨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초계(草溪)는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초팔혜현(草八兮縣)이다.
 
초팔혜는 수읍(首邑)의 뜻으로 남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부족국이었다. 이 지역은 교통의 요지로, 경덕왕 때 팔계(八溪)로 고쳐 강양군(江陽郡, 합천)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초계로 이름을 고쳤고, 1914년에 합천군에 편입되어 초계면이 되었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어머니 초계 변씨
 
 
다빈치지식지도(www.davincimap.co.kr) 난중일기(亂中日記) 제5권 병신년 원문을 읽어보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에게 행한 효행을 알 수가 있다. 난중일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기록일이 80일이나 있다.
 
8월 12일(정미) 맑다 (양력 9월 4일)
샛바람이 세게 불어 동쪽으로 가는 배는 도저히 오갈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안부를 알지를 못했으니, 몹시도 답답하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땀이 두 겹 옷을 적셨다.
 
1596년 윤 8월 12일 (병자) 맑다 (양력 10월 3일)
“종일 노를 바삐 저어 밤 10시쯤에 어머니 앞에 이르니, 흰 머리카락이 에부 수수하신데, 나를 보고는 놀라 일어나셨다. 기력은 숨이 곧 끊어질 듯하여 아침, 저녁을 보존하시기 어렵겠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앉아 밤새도록 위안하며 기쁘게 해 드리면서 그 마음을 풀어드렸다.”
 
윤 8월 12일(정축) 맑다 (양력 10월 4일)
“아침 식사를 곁에서 모시고 드시게 하니 대단히 기뻐하시는 빛이다. 저녁 나절에 하직 인사를 여쭙고 본영으로 왔다. 오후 여섯 시쯤 작은 배를 타고 밤새도록 노를 바삐 저었다.”
 
9월 27일(경신) 맑다 (양력 11월 16일)
“일찍 떠나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10월 3일(병인) 맑다 (양력 11월 22일)
“배를 돌려 어머니를 모시고 일행과 더불어 배를 타고 본영으로 돌아와 종일토록 즐거이 뫼시었다. 이날도 다 갔는데, 흥양현감이 술을 가지고 왔다.”
 
10월 9일(임신) 맑다 (양력 11월 28일)
“공문을 처리해 보냈다. 종일 어머니를 모셨다. 내일 진중 한산도로 들어갈 일로 어머니께서는 많이 서운한 빛이었다.”
 
10월 10일(계유) 맑다 (양력 11월 29일)
“어머니께 절하고 하직했다. 한밤 한 시쯤에 뒷방으로 갔다가 밤 두 시쯤에 수루의 방으로 돌아왔다. 정오에 아뢰고 나갔다. 오후 두 시쯤에 배를 타고 바람 따라 돛을 달고 항해하면서 밤새도록 노를 재촉하여 왔다.” 전라좌수영 통제사 이순신은 1596년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는데도 한시도 근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잠시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 이충무공 고택, 사적 제155호 (사진:디지털아산문화대전)
 
 
이순신이 간신배들의 모함과 선조의 미움을 받아 한양 의금부에서 갇히자, 늙고 병든 팔순이 가까운 어머니는 “내가 죽고 아들 순신이 살 수만 있다면 내가 마땅히 죽겠다.”라고 말하고는 전남 순천 고음천 솔고개(헌재 여수 송현동)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때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초계변씨는 아들 이순신이 걱정되어 작은 배를 얻어 타고 뱃길로 상경하다가 심한 뱃머리 속에 5일간 표류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오랜 항해 끝에 기력이 딸려 안타깝게도 이순신을 만나지 못하고 음력 4월 11일(양 5월 26일) 배에서 세상을 떠났다.
 
 
▲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임란유물전시장(사진: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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