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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獨逸 文學)
【인문】
(2024.01.18. 20:19) 
◈ 독일문학의 시대별 개요
Tip. 독문학과 교수진이 가장 질문과 문제를 내는데 선호하는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기, 낭만주의 시기를 뽑을 수 있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는 괴테의 젊은 시절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대변되는 격변기이며,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기점으로 독일문학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신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간다. 낭만주의는 괴테, 쉴러 등의 대문호들을 낳은 시기이자, 괴테의 경우에는 이탈리아 여행으로부터의 과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 문학에 연동되면서 풍성한 대작의 시기로 넘어감을 보여준다. (Ex: 파우스트)
▣ 독일문학의 시기적 흐름 개요:
 
1. 고대문학
 
2. 중세문학
1) 중세초기
2) 중세중기
3) 중세후기
 
3.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시대의 문학
 
4. 바로크문학
 
5. 계몽주의 문학
 
6. 질풍노도의 문학
 
7. 고전주의& 낭만주의
1) 고전주의
2)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
3) 낭만주의
 
8. 비더마이어 문학
 
9. 청년독일파와 삼월전기(Vormärz) 문학파
 
10. 사실주의 문학
 
11. 자연주의 문학
 
12. 20세기 전반기 문학
1) 표현주의
2) 신즉물주의
 
13. 20세기 후반의 문학
 
 

 
 
▣ 독일문학의 시대별 개요
 
일반적으로 독일 문학은 현재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발생한 문학뿐만 아니라 과거에 독일어를 사용했던 지역의 문학도 포함된다.
 
 
1. 고대문학
- 독일문학의 뿌리 : 고대 게르만족들의 문학
 
• 「은박성서」: 게르만어로 씌여진 가장 오래된 된 문헌. 4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고대 게르만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
• 「에다」: 고대 게르만의 신화와 영웅 설화 등에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아이슬란드에서 기록되었고, 이 시대의 문학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힐데브란트의 노래」: 독일 땅에서 보존된 가장 오래된 독일 문학으로, 고대 혹은 게르만족의 민족이동기(4C말~6C)에 생성된 무용감의 일부가 8,9세기 초에 기록된 영웅서사시 이다.
 
 
2. 중세
 
1) 중세초기(750년~1170년)
- 고고 독일어 시대 (프랑크 왕국 카롤링 왕조 시기)
 
• 베소브룬의 기도서(Wessobrunner Gebet): 800년경 기독교적 내용을 두운법과 같은 독일어 특유의 음색으로 표현한 짧은 시
• 구세주: 830년경 서사시. 중세 라틴어 문학(오토대제시대의 문예부흥기를 전후로 한1025년경까지)
• 발타리우스, 루오틀리프(Ruoddlieb) 등: 중고독일어 시대(클리니 수도원의 개혁 운동의 성과가 많이 반영된 초기)
• 알렉산더의 노래, 롤랑의 노래 등
 
 
2) 중세 중기(1170년~1270년)
- 기사문학의 융성
 
• 니벨룽겐의 노래: 고대 독일의 역사와 민족성을 엿볼 수 있는 영웅 서사시로서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시 되고있는 작품
• 파르치팔(Parzival. 1200~1210년 경):기사 서사시의 대표작
•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세최고의 사랑이야기. 서사시
• 중세 연애가요(Minnesang)과 기사서사시
 
 
3) 중세 후기
 
•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동로마 제국과 아라비아 세계의 문물이 유입되고 중계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점차 기독교적 성격이 약해지고 세속적인 내용이 많아짐.
• 풍자문학과 익살문학이 성행해 세속적인 연극이 발달.
• 운문 중심의 문학에서 산문문학이 발달.
•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민중본도서들이 보급되기 시작.
• 세속적인 합리성이 번져가는 문화 풍토 속에서 이에 반대하여 비합리주의적인 세계인식을 내세우고 감성적인 직접 체험을 중시하는 신비주의가 확산.
• 대표적인 인물로는 에크하르트와 조이제, 타울러
 
 
3.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시대의 문학
– 중세 후기부터 시작된 세속의 이러한 현실적인 흐름은 14세기 후반부터 그리스, 로마시대의 인간중심적인 이상들을 주로 문학과 예술 속에서 재생, 부활시켜 구현 하려는 르네상스로 발전하여 중세를 밀어내고 근대를 여는데 기여했다.
 
- 종교극, 세속극이 발달, 찬송가, 격언, 민요, 장인가 등이 유행
• 한스 작스: 「천국을 여행하는 학생」 희곡과 장인가를 비롯한 모든 문학 장르에서 6천 여 작품을 남긴 이 시기의 대표 작가.
• 요한 피샤르트 :「가르간투아」수많은 풍자소설과 풍자시를 남긴 언어의 연금술사
• 마르틴 루터: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 신교의 찬송가 창작. 이를 계기로 독일어권에서는 수 많은 방언들을 넘어서는 표준독일어가 형성. 이로써 근대 독일 문학의 토대 마련
 
 
4. 바로크 시대의 문학
 
◎ 바로크 시대:
 
– 프랑스 왕 루이14세로 대표되는 절대 왕정과 식민지 개척으로 상징된 는 중상주의, 종교개혁의 여파인 종교전쟁의 시기. 이시기의 문학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시기로 성(聖)과 속(俗)의 양극성과 내면의 긴장이 깃들여있었고, 통일된 문학어가 형성된 시기
 
• 마르틴 오피츠: 이 시기의 최고의 문학 이론가.
– 「독일 시학서」(1624)는 이시기 최초의 시학이론서.
•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 시인이자 극작가.
– 「살해된 폐하 혹은 카롤루스 슈투아르두스」1657년 바로크 희곡 문학의 정상에 오름
• 그리멜스하우젠은 가장 성공적인 바로크소설 「짐플리치시무스」 를 남김
• 시문학의 파울 플레밍. 희곡의 그뤼피우스와 다니엘 폰 로엔슈타인. 소설의 필립 폰 체젠이 시기의 시문학: 사교적인 시+종교적인 시
 
– 서사문학: 목동소설+부랑자소설+영웅적 연애소설
 
 
5. 계몽주의
 
◎ 계몽주의 시대:
 
– 신과 성직자 중심의 기독교 질서와 귀족 중심의 억압적인 봉건제 지배구조에 맞서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내세우며 이성과 합리주의로 진리를 인식하고 현실을 개혁하려는 시기. 이시기의 문학의 중심지는 궁정에서 상업적인 대도시로 이동. 궁정에서 오락을 제공하는 것보다 시민생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독자들을 계몽하는 일에 몰두.
 
• 독일인을 위한 비평문학 시론: 1730년. 계몽주의 문학이론의 선구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고췌트의 작품으로 문학의 규칙과 규범을 특히 강조
• 레싱: 독일 최초의 시민비극「사라 샘슨 양」, 희극「민나 폰 바른헬름」, 독일 시민극의 대표작 「에밀리아 갈로티」,「현자 나탄」 등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라 불림
 
 
6. 질풍노도의 문학(1786~1832)
 
– 젊은 작가들이 천재성, 개성, 감성 등을 표어로 내걸고 기존질서의 권위, 인습과 같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구가하겠다는 문학운동.
 
– 표면적으로 이성중심의 계몽주의에 대립. 그러나 인간의 또 다른 측면인 감성을 통한 인간 해방을 목표
 
▶계몽주의의 고차원적 계승
• 헤르더, 하만에게서 사상적 자극을 받은 청년 시절의 괴테, 쉴러에 의해 주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쉴러의 「군도」 등이 있음
 
 
7.고전주의와 낭만주의
 
1) 고전주의 (1786~1832)
 
– 인문주의라는 시민계급의 이상을 내걸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을 모범으로 조화와 균형, 객관성, 보편성, 총체성, 정제된 우아한 형식 등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예술 사조 중심지는 궁정, 담당자는 교양시민, 주된 장르는 희곡
 
– 독일문학은 고전주의 시기 황금기를 맞아 세계 문학의 수준에 오름.
 
 
2)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
 
• 장파울:「샛별」,「거인」과 같은 장편 교양소설로 인기
•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희극「깨어진 항아리」와 역사극「헤르만 전투」,「홈부르크 왕자」 등 독일 희곡사에 큰 영향
•프리드리히 횔덜린: 소설 「희페리온」, 서정시 분야의 천재시인
 
 
3) 낭만주의 (1798~1835)
 
– 19 세기 초반에 독일에서는 낭만주의 문학이 발흥. 독일의 예술사조를 유럽의 다른 나라에 전파 시킬 수 있는 계기가 최초로 마련. 고전주의에 반기를 들고 감성과 상상력, 동경, 신비, 무한한 것, 민속적인 것 등을 추구하던 예술 사조
 
– 상상력에 의한 자유로운 소재 발굴과 형식 융합, 장르통합, 낭만적 반어 등이 그 특징으로 적합한 장으로 동화가 애호 됨.
 
▶ 낭만주의의 철학적 배경: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철학+쉘링의 주객동일성의 자연철학+슐라이어 마허의 낭만적 종교철학 등
 
▶ 대표적 낭만주의 문학가
• 노발리스:「밤의 찬가」와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
• 브렌타노:민요집 「소년의 마적」
• 그림형제: 그림동화로 「아동과 가정의 동화」를 수집
• 바켄로더. 티크. 아르님. 아이헨도르프. 아른트. 호프만. 울란트. 케르너. 헤벨 등 낭만 주의 작가들은 상류층에 많았음
 
▶고전주의 vs 낭만주의
– 고전주의: 고대 세계를 이상으로 삼으면서 객관적인 내용을 정적이고 통일적인 방식
– 낭만주의: 중세를 동경하면서 주관적인 내용을 유동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표현
 
 
8. 비더마이어 문학(1820~1850)
 
– 나폴레옹 몰락 후 혁명 이전의 구체제가 다시 지배▷이시기 일부 작가들은 사회변혁에 거리를 두고 은거하며 소박한 소시민 문학을 추구
 
– 이 문학은 쇼펜하우어와 헤겔 우파의 보수주의 철학에 근거를 두고 순수 문학을 견지하려 했기 때문에 향토적. 자연적. 일상적 내용과 내면의 평화, 은둔의 행복 등을 체념 섞인 익살과 해학으로 소박하게 표현
 
• 산문에서는 「늦여름」을 쓴 슈티프터와 「아류들」을 남긴 임머만 등이, 희곡 분야에서는「거짓말하는 자는 화를 입어라」의 그릴파르처와 「악령 룸파치바분투스」의 데스트로이 등 이 활약
 
 
9. 1830~1850년까지의 청년독일파와 삼월전기(Vormärz) 문학파
 
– 자유와 평등, 민족해방을 외치는 시민혁명이나 운동의 영향으로, 이 시기에 청년 독일파와 삼월전기 문학파라는 정치 의식이 뚜렷한 문학 운동이 최초로 출현.
 
• 청년독일파: 루트비히 뵈르네, 하인리히 하이네, 카알 F.구츠코, 하인리히 라우베, 테오도르 문트, 루트비히 빈바르트
• 삼월전기 문학파: 페르니난트 프라일리그라트, 게오르크 헤르베크, 호프만 폰 팔러스레벤
 
 
10. 사실주의 문학(1850~1890)
 
– 산업혁명이 19세기 중반에 뒤늦게 급속도로 진행, 유물론(Materalismuss)사상이 확산되고 자연과학의 발달로 현실주의적 의식이 널리 퍼졌다
 
▶ 문학에서도 현실에 관심을 두고 구체적 현실을 충실하게 형상화하려는 문학 대두. 대중 문화의 시대가 열려 오락. 교양 잡지가 잇따라 발간되고 통속문학이 늘어남. 사실주의 문학은 간결하고 구체적인 일상어가 주로 사용되며 주된 장르는 소설이다.
• 주요작가 : 「녹색옷의 하인리히」를 쓴 고트프리트 켈러, 「백마의 기수」의 테오도르 슈토름, 「배고픈 목사」의 빌헬름 라베, 「에피 브리스트」와 「슈테힐린」의 테오도르 폰타네 등
 
▶ 독일의 사실주의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사실주의와 약간의 편차를 보인다고해서 흔히 ‘시적 사실주의’라고도 한다.
 
– 시적 사실주의: 오토 루트비히(Otto Ludwig)가 만들어낸 용어로, 그는 시적 사실주의를 ‘현실의 객관적 서술(Objektive Poetisierung des Wirklichen)’이라고 정의하면서 사실주의적 창작에는 환상(Phantasie)이라는 작가의 창조 정신이 개입된다고 함. 즉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되 작가의 창조정신이 서술 과정에 개입
 
 
11. 자연주의 문학(1880~1900)
 
–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내적 모순이 서서히 발현: 노동 문제, 실업자, 도시 빈민과 같은 산업화・도시화의 문제들, 이와 함께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와 실증주의 및 과학주의가 만연, 이는 실험과 관찰의 자연과학적인 방식대로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술 할 것을 목표로 유물론과 다윈의 진화론 등에 기반
 
– 대표작가: 하우프트만「직조공」, 주더만, 할베, 토마
 
▶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 사실주의: 서사적 문체, 총체적 내용, 본질적이고 사회적인 소재, 변증법적 철학 배경 등
– 자연주의: 사실주의를 좀 더 극단화 시킨 것으로서 묘사적 문체, 장면의 삽입과 나열,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내용, 소재의 비속성, 실증주의적 철학 배경 등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12. 20세기 전반기 독일 문학
 
– 20 세기의 독일 문학은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양식의 문예사조가 세기의 전환기에 동시에 등장하는 양상으로 시작되었다. 이 세기의 전환기의 문학에는 이전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반작용이라 할 수 있는 인상주의・상징주의・신낭만주의・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
 
– 특징: 현실을 더 이상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재구성하고 다양한 양식을 사용해서 표현
 
 
1) 표현주의(1910~1925)
 
– 주관주의적 문학 경향들이 제 1차 세계 대전 전후의 격변기에는 더 강렬한 예술운동으로 표현된 운동을 표현주의라 하는데, 독일에서 시작해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건축 분야까지 퍼짐. 이것은 전쟁 전후의 긴장감과 불안감 속에서 세계에 대한 격렬한 항의와 현실 개혁에 대한 강렬한 요구를 표현
 
• 대표적 시인: 고트프리트 벤, 요하네스 베혀, 게오르크 하임, 게오르크 트라클 등
• 극작가: 카알 슈테른하임, 게오르크 카이저,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 소설가: 알프레트 되블린, 하인리히 만 등
 
– 이 시기에는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을 비롯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때
 
▶프롤레타리아 혁명문학이 강세
 
 
2) 신즉물주의(1924~1933)
 
– 제 1차세계대전 후 위세가 약해진 표현주의를 대신해 등장. 신즉물주의 문학은 상징주의와 표현주의에서 보이는 과도한 주관성과 프롤레타리아적 혁명문학에서 보이는 문학의 정치화에 반대하여 현실을 객관적·합리적으로 다루려 함
 
• 대표적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파비안」, 한스 팔라다「소시민」 등
 
▶ 독일의 이런 다양한 조류는 1933년 히틀러의 파시즘 통치가 시작되면서부터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게된다. 1933~1945년까지의 나치시대에는 주로 망명문학이 활발했다. 당시 유명한 독일 작가들이 파시즘을 피해 독일을 떠났다. 대표전 반 파시즘 소설로는 하인리히 만의 「앙리 4세」, 토마스 만의 「요제프와 그의 형제들」, 아나 제거스의 「제 7의 십자가」
 
▶ 작가와 작품들
– 20세기 전반기 독일 시문학은 상징주의 경향의 시인들인 게오르게, 호르만스탈, 릴케와 표현주의에서 출발한 세 시인인 벤, 베혀, 브레히트에 의해 주도
- 게오르게「제 7의 반지」등 시집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엄숙하고 고귀한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
- 호프만스탈「시 전집」등에 실린 시들을 통해 상징주의적 서정성과 시적 인상주의를 혼합한 독특한 언어의 마술을 펼침,「티치안의 죽음」에서 대화체의 시들을 선보임으로써 서정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 릴케:「기도시집」,「형상시집」,「두이노의 비가」등 깊이 있는 작품들을 통해 인상주의에서 출발. 상징주의의 최고봉에 올라 다가오는 표현주의의 물결을 예고하였고 괴테, 하이네 이후 독일 최고의 세계적 시인으로 평가.
- 벤: 표현주의 시인으로 출발, 한때 나치에 협력하기도 했지만 몽타주 기법의 비정치적 순수시로 유명.
- 베혀, 브레히트 역시 표현주의 시인으로 출발. 철저한 현실주의적 정치 지향의 시인으로 변모, 베혀는 「대열에 서서 가는 남자」와 같은 시집들 속에서 혁명, 투쟁, 프롤레타리아의 비참한 생활 등을 주제로 글을 씀.
- 브레히트는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서푼짜리 오페라」,「억척 어멈과 자식들」, 「사천의 선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 등 우리나라 연극계에도 큰 영향을 끼침(브레히트는 연극론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서사극 이론에 따르면 서사극은 ‘낯설게 하기 효과’를 통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이나 무대 위의 현실에 몰입하지 않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 이 시기 대표적 작가 및 작품
– 토마스만:「마의 산」,「부덴브로크 일가」
– 하인리히 만:「빈민」,「운라트 교수」
– 프란츠 카프카:「소송」,「변신」,「성」등
 
 
13. 20세기 후반의 문학
 
– 전후 문학(1945~60)은 제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과 함께 시작된다.
– 이 시기 독일인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복구와 건설에 매진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문학에는 폐허 문학, 영 시점, 언어 벌채와 같은 용어들이 유행했다. 폐허의 참담함과 나치 시대에 대한 단절 및 새출발의 의지 등이 표현되었다. 한편, 큰 사회적 소용돌이의 고통에서 갓 벗어난 시기여서 주로 기성세대 작가들에 의해 비정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경향의 문학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 시문학
– 볼프강 보르헤르트를 비롯한 몇몇 젊은 시인들이 간결한 문체로 절박한 감정을 표현. 그러나 대체적으로 전통적인 시형식을 추구했다. 이 무렵 옛 서독의 시단은 주로 고트프리트 벤과 파울 첼란에 의해 주도되었다.
 
• 벤: 표현주의시대부터 시를 써왔으며 이시기에는 「정시」,「도취의 물결」과 같은 시집을 통해 현실에서 독립된 절대시를 선보임
• 첼란: 「죽음의 둔주곡」,「언어 창살」등의 시집을 통해 응축된 시어와 풍부한 이미지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룸
– 전후 1950년까지의 독일 희곡 문학은 주로 보르헤르트, 브레히트, 막스 프리쉬,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등을 중심으로 전개,
• 보르헤르트: 그의 유일한 희곡 작품「문 밖에서」를 통해 전쟁의 참혹성과 전후 독일의 비참한 상황을 고발하여 큰 반항을 불러일으킴
• 카알 추크마이어: 「악마의 장군」,「난로 속의 노래」등에서 히틀러 정권에 대한 투쟁과 전쟁에 휩싸인 인간성의 문제를 다룸
• 프리쉬: 「만리장성」,「비더만과 방화범」과 같은 유희성 짙은 희곡을 통해서
• 뒤렌마트: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등 그로테스크한 희비극을 통해 독일 희곡을 세계 문학 수준으로 고양시키는데 기여했다.
• 브레히트: 이 시기 독일 희곡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 전후 독일 산문에서 초기의 유약했던 독일 문학을 보충했던 것은 나치 시대에 금지되었다가 봇물처럼 소개되었던 외국 문학, 그동안 사장되었다가 30년 만에야 부활한 카프카의 문학, 제한적으로나마 소개되기 시작한 독일 망명문학이었다.
 
▶이시기 대표적 망명 작가
 
• 토마스만의 「파우스트 박사」,「선택된 인간」
• 헤르만 헤세의「유리알 유희」
– 한편, 전후 독일 문학의 새로운 기운은 1947년에 시작한 작가들의 모임인<47년>에서 하인리히 뵐, 마르틴 발저, 알프레트 안더쉬 등에서 대표되는 이 모임은 ‘언어 벌채’운동 을 주장했다. 나치 시대의 선동적 문체와 잔재를 털어버리고, 전후의 보수적 전통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홉시 반의 당구」등 전쟁과 전후 독일사회 문제를 진솔하게 다루었다. 독일문학의 이러한 새 경향은 1950년대 말에 오면서 더욱 뚜렷해진다.
 
 

 
▣ 읽어본 독문학 작품에 관한 질문 예제
- 아래 내용들은 현직 모 대학의 독문과 교수가 쓴 글을 인용해 놓았다. 이를 통해 개괄적 작품의 내용들을 파악하고, 읽어본 독문학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경우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아래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보다는 참고하여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다듬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서부전선 이상없다 (Im westen nichts Neues)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반전문학
 
ㄱ. 작가 소개
–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1898.6.22~1970.9.25) :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 출생. 18세 때 제1차 세계대전에 출전하였다. 종전 후에 돌아와 한때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나 얼마 후 퇴직하였는데, 그 동안의 경위는 ‘귀’의 주인공에게 투영되어 있다. 몇몇 직장을 전전하다가 9년간이나 무명의 저널리스트로 있었으나, 1929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의 체험을 소재로 한 ‘서부전선 이상없다’ (Im Westen nichts Neues)를 발표, 세계적 인기작가가 되었다. 18개월 동안에 25개 국어로 번역, 총발행부수는 350만을 넘었다. 이것은 한 병사의 눈으로 본 전쟁의 갖가지 양상의 기록이고, 같은 입장에서 전후의 양상을 그린 것이 제2작 ‘귀로’ (Der Weg zuruck)(1931)이다. 두 작품이 모두 반전적인 감정이 노골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므로, 19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스위스로 갔다가 1939년에 미국으로 망명, 1947년에 시민권을 얻었다. 나치스는 그의 작품에 판금 ·분서 처분을 내렸고, 아울러 그의 독일 시민권을 박탈하였다. 망명 후에도 그의 붓은 꺾일 줄 모르고 외국을 방랑하는 난민의 비운을 엮은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Liebe deinen Nachsten)(1940), 파리를 무대로 한 망명가 소설 ‘개선문’(1946) ‘생명의불꽃’ (Der Funke Leben)(1952), 전쟁이 사랑을 앗아간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4) 등을 발표하여, 망명작가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조화되지 않는 갈등, 현실의 압도적인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 속에 생겨나는 절망과 삶의 충동, 낡은 가치와 그 수호자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자포자기적인 분노 등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그의 처녀작 ‘서부전선 이상없다’에 이미 나타난 것을 생각한다면, 이 작가가 현대라는 시대에 대하여 얼마나 예민한 예술적 후각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엿볼 수 있다.
 
ㄴ. 줄거리
–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6명의 학우와 함께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하여 군인이 된다. 그들은 전쟁에 대하여 열광하는 젊은 이들이다. 그러나 군사 훈련 중에 받은 학대와 병영 내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하급 장교의 독선적 행동 등으로 전쟁에 대한 열광은 싸늘하게 식어 버린다. 그들이 더욱 실망한 것은 훈련 기간 중에 받은 고된 훈련이 전투라는 위험한 실제 상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화자인 주인공 보이머와 그의 친구들은 전선에 배치되어 악전 고추한다. 그들은 포성과 절망 그리고 남성 창녀촌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인간이 인간 동물론 전락 했음을 알게된다. 이러한 인간 이하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인간적인 측면은 전장에서의 전우애이다. 생사를 건 전투가 되풀이되고 가스 공격으로 수백 명이 한꺼번에 죽어 나자빠지는 현장의 경험이 반복된다. 이러한 경험에 대하여 철학적 성찰을 하는 전우는 거의 없고 종종 우수에 젖은 파토스만 있을 뿐 희망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와 함께 출정한 6명의 학우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주인공 파울 보이머 밖에 없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1918년 여름부터 휴전할 것이라는 풍문이 돈다. 그도 1918년 10월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해 10월 전쟁은 끝난다. 군부의 발표는 ‘서부전선 이상없다’ 는 것이다.
 
ㄷ. 이 글에 나타난 독일 사회
ㄱ) 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이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s.18-15 : 허황된 애국심을 유도하여 무참히 전쟁터로 이끄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ㄴ) 전쟁터 속에 희생되어가는 독일 젊은이들이 한낱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 함을 보여준다.
ㄷ) 독일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기성세대의 허위의식과 전쟁의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ㄹ) 황제는 철십자 훈장을 수여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무에게나 말을 ... 그런데 이들은 다들 전쟁을 원했던 거야 ... 우린 우리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왔어 그런데 프랑스인들도 자기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왔어 그런데 프랑스인들도 자기 조국을 지키겠다고 여기에 온 거 있지? 서부전선 이상없다 s.161~162 : 주인공은 기성세대가 말하는 것처럼 절대적이고 숭고한 이유 따윈 없었다. 독일의 젊은이가 독일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온 것처럼 프랑스의 젊은이도 똑같은 이유에서 총칼을 들었을 뿐이다. 독일 젊은 이들을 전선으로 보낸 어른들은 애국심을 강조했지만 전쟁이란 결국 정치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른것이다.
ㅁ) 이봐 전우 널 도와주려는거야 전우 전우 전우 서부전선 이상없다 s.175-1 : 주인공에게 대적하는 프랑스 군도 결국 전쟁이란 괴물에게 깊은 성처를 입은 동지이며 다 같은 피해자인것이다.
ㅂ) 포로들이 갖고 있던 전단지에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 생각해봐 우리가 벨기에 어린이들을 잡아먹었다고 되어있어 : 후방에 있는 기성 세대와 시민들은 전방에서 들려오는 진실을 외면한채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고 말로만 조국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즉 독일 시민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군국주의적 모습이 드러나있다.
ㅅ)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평화가 찾아온다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전쟁에 참여한 독일 젊은이들은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짓밟고 인간성마저 빼앗아 갔다. 병사들은 살기 위해 무의직적으로 적군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는가 하면 죽어 가는 친구를 걱정하기보다 그의 장화를 탐낸다. 이런 모습을 보는 주인공은 괴로워 할수밖에 없으며 이는 독일 젊은이들의 자포자기한 심정을 보여준다.
ㅇ)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있을 따름이다. : 주인공의 죽음과 그 날 군 당국이 작성한 보고서는 전쟁의 비정함과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2. 붉은 고양이 (Die rote Katze)
ㄱ. 작가 소개
–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년 4월 30일 ~ 2002년 3월 17일) : 독일의 여류 작가이다. 장편소설, 수필집, 기행문, 일기, 대담록 등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을 내놓았는데, 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산문작가로 평가받는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소련, 미국, 스페인, 인도, 인도네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을 여행한 바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여러차례 방문했다. 윤이상과의 대담록 ‘상처받은 용’, 북한 방문 후 쓴 ‘또 하나의 조국’등 한국 관련 저서도 많이 집필했다.
 
ㄴ. 줄거리
– 2차 대전 직후 주인공은 폐허가 된 집에서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그가 먹고 있던 빵을 깡마른 붉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날쌔게 한 입 물어뜯어 달아나자 그는 고양이에게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힌다. 주인공은 미안한 마음에 고양이에게 빵 한 조각을 던져 준다. 그의 동생들도 그들의 빵에서 일부를 떼어 고양이에게 먹인다. 하지만 이를 본 주인공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마당에 고양이에게 주는 것은 잘못이라며 꾸짖는다. 이에 어머니까지 합세하여 가족들이 고양이를 둘러싸고 같이 살아야하는 지에 대해 갈등을 겪는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가족들의 식량을 축내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들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같이 살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일도 하지않고 부족한 식량을 소모하게 하는 고양이를 못마땅히 여긴다. 결국 주인공은 고양이를 죽인다.
 
ㄷ. 이 글에 나타난 독일 사회
ㄱ) 내가 우리집 정원안 폭탄에 맞아 패인 구덩이 옆 돌무더기 위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붉은 고양이 s.11-3 : 전쟁 직후 폭격으로 인한 독일 건물의 모습을 묘사해주고 있다.
ㄴ) 어머니는 오래된 빵이 갓 구운 빵보다 건강에 더 좋다고 말씀하셨다. 붉은 고양이 s.11-8 : 오래된 빵은 더 오래 씹어야 하는 것을 의미 하는데 이를 통해 독일 사회 경제적 궁핍과 함께 절박한 독일 가정을 볼 수 있다.
ㄷ) 석탄 차 한 대가 지나갔는데 곧 잘 석탄을 흘리곤 하기 때문에 나는 거리에 그것이 떨어져 있는지 빨리 나가서 찾아보려고 마음 먹었다. 붉은 고양이 s.14-19
ㄹ) 우리는 정말로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 몇 주동안 고기없이 냉동감자만 공급되었으며 우리가 입은 옷들은 헐렁하게 되었다. 레니가 배고픔을 못 이겨 빵가게에서 빵 한 개를 홈쳤다. 붉은 고양이 s.18-10
 
 
3. 빵 (Das brot)
ㄱ. 작가소개
– 보르헤르트 (Wolfgang Borchert, 1921~1947.11.20) 교사의 아들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서점의 점원 노릇을 하다가 배우가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 소집되어 동부전선에서 부상하고, 황달과 발진티푸스 때문에 제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병역 기피의 혐의와 나치스 비방의 죄명으로 투옥되어, 전선과 감방 사이를 오갔다. 전후에 무대생활로 돌아왔으나, 지칠 대로 지친 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그의 뛰어난 작품들은 모두 병으로 쓰러져서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동안에 쓰여졌다. 대표작은 희곡 ‘문 밖에서’(1947)이다. 시베리아로부터 제대한 베크만은 아내는 남에게 빼앗기고, 부모는 자살하였으며,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가고, 자살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다. 전쟁이 준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의미를 물으면서 폐허를 헤매지만, 대답은 없고 문이란 문은 그의 눈앞에서 모두 닫힌다. 밀도 짙은 단문으로 ‘잃어버린 세대’의 전형을 그린 이 작품은, 초연(그가 죽은 다음날)에 앞서서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되어, 비상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집으로는 ‘가로등과 밤과 별’(1946), 단편집 ‘민들레’(1947) 등이 있다.
 
ㄴ. 줄거리
– 2차 대전 직후 어느 노부부가 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이 너무 배가 고파서 일어나 부엌에 있는 빵을 마누라 몰래 잘라먹는다. 다음날 부인이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자신의 몫을 양보하여 한 조각을 남편에게 더 건네준다.
 
ㄷ. 이 글에 나타난 독일 사회
ㄱ) 그녀는 그가 접시 위에 몸을 깊이 숙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모습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붉은 고양이 s.27-10: 전쟁 직후의 소시민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몰래 빵을 먹은 남편의 부끄러움과 삶의 힘듦이 녹아나있고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안타까움이 보여진다. 독일 가정의 곤경과 절망 그리고 경제적 궁핍을 묘사할 수 있다.
 
 
4. 숨결에 관한 기도문 (Liturgie vom Hauch)
세계대전 전과 후 독일 사회에 대한 어느 시인의 관점
 
ㄱ. 작가소개
–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 2. 10 - 1956. 8. 14) : 20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극작가, 시인, 그리고 무대 감독이다. 주로 좌파적인 작품을 연출했으며, 소격효과라는 개념을 연극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 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동안은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잠시 일했다. 1928년 연극‘서푼짜리 오페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데,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이 베를린에서 있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베르히트는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 ‘서푼짜리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의 집권과 나치가 좌파탄압을 위해 날조한 사건인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미국에 망명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1947년 12월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뜻하는 매카시즘때문에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많은 동료 좌파작가들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을 택했지만, 그만은 동독을 택했다. 하지만 동독 공산당(SED) 간부들이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던 동독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여 풍자시를 쓰기도 했으며, 정부가 인민을 버렸다면서 1953년 동독 노동자 봉기 진압을 비판하기도 했다. 1956년 8월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가족으로는 1929년 결혼한 아내 헬레네 바이겔과 두 자녀(슈테판, 바바라)가 있다.
 
 
5. 책 읽어 주는 남자 (Der Vorleser)
2차 대전 이후 과거 청산
 
ㄱ. 작가 소개
– 베른하르트 슐링크 :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1944년 7월 6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서 자랐다.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75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관공서 간의 공무 협조에 관한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었고 이후 본,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예시바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겸임하고 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1987년 추리소설‘젤프의 법’(SELBS JUSTIZ)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추리소설 ‘고르디우스의 매듭’(DIE GORDISCHE SCHLIEF)(1988) ‘젤프의 기만’(SELBS BETRUG)(1992) ‘젤프의 살인’(SELBS MORD)(2001)과 장편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DER VORLESER)(1995) 그리고 단편소설집 ‘사랑의 도피’(LIEBESFLUCHTEN)(2000)를 펴냈다. ‘젤프의 법’은 1991년 독일 ZDF 방송국에서 ‘죽음은 친구처럼 왔다’(DER TOD KAM ALS FREUND)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 방영했으며,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그의 장편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로 제작중이다.
 
ㄴ. 줄거리
– 황달에 걸려 몸이 몹시 허약해져 있던 소년은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구토를 한다. 낯선 담장 밑에서 토사물을 내려다보며 속수무책으로 서 있던 그에게 한 여인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여인은 소년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더러워진 옷을 벗기고 몸을 씻겨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다시 찾아간 여인의 집, 그날부터 열다섯 살 미하엘 베르크와 서른여섯 살 한나 슈미츠의 사랑이 시작된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그러고 나서 잠시 나란히 누워 있기. 이는 어느새 두 연인의 사랑의 의식이 되고, 미하엘의 모든 생활은 한나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전을 시작한다. 《에밀리아 갈로티》(레싱) 《간계와 사랑》(쉴러) 《전쟁과 평화》(톨스토이) 등 책 읽어주기로 시작되는 둘만의 사랑의 의식이 계속되는 동안, 미하엘에게는 점차 그가 한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싹 트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하엘이 그녀에 대해 뭐든 묻기만 하면 한나는 번번이 대답을 회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달리 한나는 책을 읽어달라고 하지 않고, 사랑을 나눈다. 한나의 집을 나와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미하엘은 멀찌감치 서 있는 한나를 발견한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그 잠깐 사이에 한나는 이미 자리를 뜨고 없다. 그것이 한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미하엘은 다시는 한나를 만날 수 없었고, 미하엘은 자신이 그녀를 모른 척하고 배반했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에 몹시 괴로워한다. 그리고 몇 년 뒤 미하엘은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나치 시대의 전범 재판에 관한 세미나의 일원으로서 미하엘은 어느 재판을 방청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한나와 재회한다. 나치 시절 강제 수용소의 여자 감시원이었던 한나는 수용소의 여자들을 교회에 가둬놓고 불을 질러 몰살시킨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이 점차 진행되면서 미하엘은 한나가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녀가 전범으로 법정에 서게 된 것, 과거에 자신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것, 언젠가 함께 떠났던 여행에서 자신이 남긴 쪽지를 그녀가 끝내 못 보았다고 우겼던것, 전차 회사에서의 승진 기회를 거부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 이 모든 일이 그녀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하엘은 그녀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자신이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나는 마치 살인범이라는 낙인보다도 그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 더 수치스럽기라도 한 듯, 없는 죄까지 뒤집어쓰고 실형을 받는 쪽을 선택한다. 결국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법학자로 살아가면서도 미하엘은 늘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잠 못 이루는 밤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하엘은 그가 좋아하는 책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고, 곧이어 한나를 위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하면서 읽게 된다. 그는 감옥의 한나에게 이 카세트테이프들을 보내고 이 새로운 의식은 한나가 사면될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미하엘은 카세트테이프를 보내면서 단 한 줄의 편지도 보내지 않는다. 마침내 한나가 사면되기 전날, 거의 20여 년 만에 둘은 재회한다. 그리고 사면되는 날 아침, 한나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은 채로 발견된다. 한나의 유품 한가운데에는 신문에서 오려 낸 듯한 소년 미하엘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미하엘은 한나의 유언에 따라 그녀가 그동안 모은 돈을 유대인 관련 단체에 기증한다.
 
ㄷ. 이 글에 나타난 독일 사회
ㄱ) 나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한나의 체포를 당연하고도 잘된 일로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비난이나 고발된 내용의 무거움 그리고 혐의의 중대함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나는 자세한 것을 아직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가 나의 세계와 나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감방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 : s. 119-13 : 주인공이 한나와 법정에서의 첫 모습에서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한나를 예전의 사랑의 존재로써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이 처한 상황처럼 뭐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전범재판에 대한 피의자로 볼것인지 갈등 하고 있다. 이는 독일 시민이 과거 청산 이후 피의자에 대해 생각하는 혼란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ㄴ) 그때 나는 왜 그가 화난 표정을 그의 결정적인 얼굴 표정으로 택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가면이었다. 그 가면 뒤에 얼굴을 숨기고서 그는 답변을 찾기 위하여 잠시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 그러니까 내가... 내가... 지멘스 회사에 취직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인가? : 법정에서 한나가 재판장에게 자신이 상부에서 시킨일을 했을때 재판관 같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본 상황이다. 그때 재판관이 애매한 답변을 하자 한나가 맨 처음 군 입대 전에 있었던 지멘스 이야기 를 꺼내며 모두의 답변이 흐려짐을 보인다.
ㄷ)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고 해서 우리가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는없었다. 책 읽어 주는 남자 : s. 202-16 : 과거 세대의 죄값이 후세 사람들에게 짊어지는 데 여기서 생기는 독일 후세 사람들의 무거운 짐이 옮겨진다는 것에 대해 보여준다.
 
 
6. 나누어진 하늘 (Der geteilte Himmel)
분단의 비극
 
ㄱ. 작가소개
– 볼프 (Christa Wolf, 1929~) : 폴란드의 렌츠베르크 출생. 1949년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에 입당하였다.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마이어를 배웠는데, 문학적으로는 A.제거스의 영향이 강하다. 이론가로서 출발했으나 ‘모스크바 이야기’(1961)를 계기로 창작으로 전환, 동서분열과 동독의 현실을 다룬 ‘나누어진 하늘’(1963)은 사회주의의 일상을 묘파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당중앙위원 후보에 선출되었으나, ‘크리스타 T.에 대한 추념’(1963)에서 개인으로서 자기를 재발견하고, ‘유년기의 구도’(1976)에서 국민의식의 간극을 역사의 문체라는 차원에서 비판하면서 당의 문화노선과 결별하였으며, ‘카산드라’(1983)에서 독자적으로 문학의 소외의 발생과 역사와의 연관문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ㄴ. 줄거리
– 보험회사 자국에 근무하는 19세의 시골처녀 리타는 1959년 가을 도시출신의 화학박사 만프레드를 알게 되어 그를 따라 도시로 가서 사범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리타는 동독의 교육규정대로 학기 시작 전과 방학에 차량공장에서 일함으로써 생산과정의 기본을 익히고 사회주의적 연대를 체험하게 된다. 또한 많은 긍정적, 부정적 체험을 통하여 자아의 발전을 이룬다. 그러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에 애인을 잃게 된다. 부르주아 가정 출신이고 허무적인 성향의 애인 만프레드가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의 실현이 어렵게 된자 서쪽으로 넘어가버린것이다. 리타는 서베를린으로 그를 찾아가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생소함을 경험하며 결국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일요일에 베를린장벽이 세워짐으로써 그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리타는 레일에 몸을 던지게 된고 이러한 자살 시도 이후 요양원에서의 회복과정에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상처를 극복해나간다.
 
ㄷ. 이 소설에서 나타난 독일 사회
ㄱ) 요새는 선생이 되자면 거친 공장을 알아야해요! 나누어진 하늘 s.47-18 : 주인공이 사범 대학에 가려고 하는데 남자친구인 만프레드의 아버지가 일자리를 주선해준다. 그이유는 국가청책에 호응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실재로 동독에서는 대학에 가려면 우선 공장에서 노동을 해야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ㄴ) 요즘처럼 많은 차량이 이곳에서 만들어진 적은 없지 라고 메터나겔이 말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차량을 포개 쌓아야할 걸 안 그럴수 도 있지라고 헤르베르크 쿠울이 지적했다. 나누어진 하늘 s.51-16 : 많이 생산하지만 그만큼 수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ㄷ) 메터나겔은 공장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고 에르미쉬는 자기 담당 작업조에 따낼 수 있는 만큼 한껏 유리함을 따내려고 한다구요. : 어느 정도 노동력의 한계가 있는데 계속 독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어느 분야에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은 영웅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면 그 영웅을 다른 노동자들은 본받아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목표치가 영웅이 한 양까지 도달하여야되고 이것이 되풀이 되면 점점 일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다. 또한 ㄴ) 과 함께 연관지어 생각해본다면 업무량은 늘어가는데 노동력이 부족한 현실을 보여준다.
ㄹ) 서쪽으로 떠난 사람들과 남은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보여준다.
ㅁ) 하늘이야 적어도 사람들이 찢을 수 없겠지... 그렇지 않아요... 하늘이 맨먼저 나누어 지는 걸요 나누어진 하늘 s.295-24 : 동독은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걸쳐 커다란 경제부흥을 이룬 서독 경제에 도달하기 위해서 총력적으로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려있는 서베를린과의 경계를 넘어 점점 더 많은 기능노동자들이 유출되고 있었다. 서독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노동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 여파로 동독은 그리하여 몇겹으로 생산상의 어려움을 겪겨 있었다. 게다가 동독이 농업을 국유화하여 집단 농장화함으로써 피난의 물결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어졌다. 그리하여 동독과 소련의 권력자들은 동독이라는 국가체제를 유지하자면 이를 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동독은 장벽 건설로써 경제상황의 점차적인 정상화와 개선을 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여행의 자유를 박탈한 베를린 장벽 건설이라는 극단적 조처는 동독인들의 좌절과 불만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당시의 침체된 동독경제는 자본주의적 라이벌 서독과 대조되어 동족의 정치적 상황을 고도로 긴장시켰다. 서독은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을 채택 동독과 국교를 맺는 국가와는 국교를 단절함으로써 동독을 범세계적으로 고립화했다. 동서냉전의 직면, 냉전이 열전으로 변할수도 있으리라는 불안은 60년대초 의식에서나 무의식에서나 범세계적 현상이었다.
 
 
7. 아동 수집가 (Der Kinder sammler)
ㄱ. 작가소개
– 자비네 티슬러 (Sabine Thiesler) :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독일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한 후 몇 년간 TV와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이후 그녀는 연극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독일 TV 범죄 드라마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아동수집가’는 그녀의 데뷔작으로서 2006년 출간 이후 독일에서 3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세계 주요 7개국에 수출되는 기록을 세웠다. 살인범과 희생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묘사해냄으로써 스릴러 소설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ㄴ. 줄거리
– 1970년부터 2004년까지 약 34년 동안 우발적 살인으로 시작하여 일곱 번이나 어린 소년을 납치해서 성폭행을 가한 후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에 관한 이야기이다. 범인은 알프레드 하인리히. 그는 차가운 증오심만을 보이며 힘없는 늙은 어머니를 욕조에 방치해서 죽게 하는 냉혹한 살인범이다. 그의 불행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유일하게 그를 사랑해주었던 롤프 형이 백혈병으로 죽자, 주인공 알프레드는 혼자 세상을 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 한 번도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냉혹한 성격의 어머니, 그의 존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의붓 쌍둥이 누이들, 언제나 괴롭히고 때리고 놀려대던 같은 반 친구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한 번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그는 점점 ‘영혼의 불구자’로 자라나게 된다. 이후 그가 살인범이 되는 결정적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차를 향해 재미 삼아 돌을 던지는 장난이 엄청난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살인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후 그의 인생은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지고 만다. 그의 왜곡된 자기 정체성은 자기보다 연약한 대상에 대해 전능한 힘을 발휘하려는 욕망으로 분출된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신으로 자처한다. 그리고 미소년들을 납치해 살해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3년을 주기로 부드러운 피부에 금발인 어린 미소년들을 납치하여 성폭행한 후 잔인하게 살해하는 알프레드. 그는 전리품을 챙기듯이 아이들의 송곳니를 모으고 마치 전시하듯이 살해현장을 꾸며놓는다. 독일을 배경으로 이뤄지던 이 연쇄 살인은 이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그는 이곳에서도 역시 3년 주기로 미소년들을 납치해 살해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또한 성폭행과 살인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고통스런 긴 제의의 과정을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천사로 태어나게 해주는 작업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는 또한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감쪽같이 속이는 재주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며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선행을 베푸는 천사와 같은 존재로 위장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이중성은 죽은 아이의 어머니인 안네를 만나게 되면서 서서히 그 마각을 드러내게 되고, 결국은 그것을 계기로 해서 살인범인 사실이 드러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ㄷ. 생각해보기
ㄱ) 유괴범의 어렸을 적 피해로 인한 범죄에 대한 책임은 누구인가? 그리고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들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ㄴ) 유괴된 부모님의 심정을 이 소설에 나타난 부모님의 심정을 통해 느껴보자
ㄷ) 유괴하는 사람, 쫒으려는 사람,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심경 변화와 충격도 느껴보자
 
 

 
 
▣ 독문학 용어 정리
 
1. ‘독일문학’ 이란:
 
– 독일 문학(獨逸文學, 독일어: Deutschsprachige Literatur, 영어: German literature)은 유럽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쓴 문학작품의 총체를 말한다.
 
– 최초의 기록은 고트어로 된, 주교 울필라스가 번역한 성서의 단편(369경)이다. 서(西)게르만족의 기록은 8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나타났고, 중고(中高) 독일어 시대에는 기사계급이 시인으로 등장했다. 이때의 문학은 대부분 연가와 서사시였다. 15세기는 궁정문학의 시대라 할 수 있고, 1450년 이후에는 인문주의 운동이 등장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이후 독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17세기 독일의 바로크 문학은 소재나 형식에서 양극성을 나타내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영국문학의 영향이 강했고, 합리주의를 벗어나려는 질풍노도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가 독일 문학에 있어서는 전성기라 할 수 있다.
 
– 19세기 이후 '시적 사실주의'가 등장했다. 20세기의 문학경향 가운데 독일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표현주의 운동이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등장했다.
 
 
2. 고고 독일어(古高 獨逸語) 시대:
(독일 고대 오래되고 남부 높은 지역의 독일어 의미)
 
– 독일어 가운데 최초로 기록에 사용된 언어는 고트어로, 남아 있는 것은 고트족의 주교 울필라스가 번역한 성서의 단편(369경)뿐이다. 서(西)게르만족이 남긴 최초의 기록은 8세기 후반에야 나타나지만 그 이전에도 문학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게르만 용사들이 전투에서 세운 공적을 찬양하는 짤막한 영웅시라든가,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적 제례와 결부된 찬가, 전투가, 죽은 이를 애도하는 노래 등이 입으로 전해지면서 후대에 널리 유포된 영웅서사시의 바탕이 되었다. 한편 그리스도교를 보급하려는 노력에서 씌어 최초의 주요 문헌들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라틴어에서 번역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소수의 운문 작품 가운데는 종교적·교훈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보다 독창적인 것도 있는데, 그중 바이센부르크의 수도사 오트프리트의 〈복음서 Evangelienbuch〉(870경)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일생을 마치 이교도의 영웅처럼 그린 이 복음서는 독일의 전통적인 두운법 대신 중세 라틴식의 각운을 쓴 최초의 독일어 작품이다. 그밖에 이와 비슷한 내용의 것으로 고대 작센어로 쓴 작자 미상의 〈구세주 Heliand〉(830경)가 있다.
 
– 그리스도교 이외의 것에 대한 관심을 배격하는 교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소수이지만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교도적 작품들이 있는데, 가장 흥미를 끈 것은 〈힐데브란트의 노래 Hildebrandslied〉(800경)이다. 이것은 원본을 필사한 단편으로 남아 있으며 저지 독일어와 고지 독일어의 기묘한 혼성어로 씌어 있다. 그러나 시대 전체로 보면 대부분 라틴어를 문어로 사용했으며, 특히 식자층(識者層)은 라틴어를 계속 선호했다. 장크트 갈렌의 수도사 에케하르트가 썼다는 〈발타르의 노래 Waltharlied〉(9세기말)도 독일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웅전설에서 소재를 취했지만 라틴어로 쓴 작품이다.
 
 
3. 중고 독일어(中高 獨逸語) 시대 :
(독일 중세의 남부 높은 지역에서 사용한 언어)
 
– 10세기 초반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에서 시작된 개혁운동이 독일을 휩쓸면서 인간의 죄악과 현세의 무상함을 강조하고 금욕과 참회를 설교함에 따라 성직자들은 일반인들을 위한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고, 독일어로 된 문학은 거의 1세기 동안 중단되고 만다. 하지만 12세기 중반 슈타우펜 왕조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문학에서 성직자들의 주도적인 역할은 끝나고, 대신 십자군 원정으로 소명의식을 갖게 된 기사계급이 시인으로 등장하며 기사들의 후원자인 영주의 궁정이 문학 창작의 요람이 된다. 이 중고 독일어 시대의 중요한 문학형식은 남녀간의 애정을 궁중의 법도에 맞춰 독특하게 표현한 연가(미네장)와 서사시였다.
 
 
4. 서사시:
 
– 방랑하는 음유시인(슈필만 Spielmann)들은 민간에 유포되어 있는 전설을 바탕으로 서사시를 엮어냈고 그것을 낭송하고 다녔다. 그 중 <로터왕 König Rother>(1160경)은 신부를 약탈하는 내용을 다룬 가장 초기의 것으로 당대의 생활에 대한 흥미로운 논평이 실려 있다. 〈잘만과 모롤프 Salman und Morolf〉(1160경)· 〈오렌델 Orendel〉(1180/1200)· 〈성(聖) 오스발트 St. Oswald〉(1170경) 등도 역시 그리스도교도와 이교도 간의 갈등을 묘사하는 등 십자군 원정시대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서사시를 모범으로 한 〈알렉산더의 노래 Alexanderlied〉(1130경)와 〈롤란트의 노래 Rolandslied〉(1170경)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러한 음유시인들의 서사시는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1200경)에서 최고의 완성 단계에 이른다. 이것은 현존하는 서사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민족서사시로, 작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오스트리아의 한 음유시인이 썼으리라 추측되며 비범한 시적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독특한 4행1절 형식의 약 5,000행에 달하는 방대한 이 서사시는 이후 독일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하나의 영웅서사시 〈구드룬 Gudrun〉(1210경)은 약탈자에 대항하여 정절을 지키는 구드룬을 노래한 것이다.
 
– 한편 프랑스 서사시를 모델로 한 궁정서사시도 발달했다. 아일하르트 폰 오베르크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쓴 〈트리스탄트와 이잘데 Tristrant und Isalde〉(1170경)가 주목할 만한 최초의 작품이다. 〈에나이트 Eneid〉(1175~86경)를 쓴 네덜란드인 하인리히 폰 펠데케가 흔히 궁정서사시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가장 유명한 궁정시인은 하르트만 폰 아우에, 볼프람 폰 에셴바흐,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로, 그들의 작품은 대개 1190~1210 년경에 나왔으며 겸손·충성 등 기사의 덕목들이 이야기된다. 하르트만이 쓴 〈에레크 Erec〉(1180/85)와 〈이바인 Iwein〉(1200경)은 프랑스의 크레티엥의 작품을 모방하여 쓴 아서 왕과 원탁기사들의 이야기이며, 〈그레고리우스 Gregorius〉(1187/89)· 〈가련한 하인리히 Der arme Heinrich〉(1195경)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었다. 볼프람의 <파르치발 Parzival>(1200/10)은 궁정서사시의 최대작으로 독일 교양소설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고트프리트가 남긴 미완성작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1210경)는 후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의 자극제가 되었다.
 
 
5. 궁정서정시:
 
– 궁정문학시대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학형식은 사랑을 주제로 한 미네장인데, 이 대표작들은 〈미네장의 봄 Minnesangs-frühling〉이라는 제목으로 스위스인 마네세가 정리한 '마네세 필사본'(14세기)과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소장된 '하이델베르크 가요사본집'(14세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궁정서정시의 선구자는 디트마르 폰 아이스트·프리드리히 폰 하우젠 등이며 완성자로는 라인마르 폰 하게나우를 든다. 궁정서정시는 라인마르의 제자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으며, 잠언 형식의 단창구(Sprüehe)에 나타난 세속적 지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발터의 제자 라인하르트 폰 로이엔탈을 비롯하여 프라이당크의 〈분별 Bescheidenheit〉(1230경)과 후고 폰 트림베르크의 〈경주자 Renner〉(1300경)까지 이어지며 15, 16세기 교훈적 시민문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
 
 
6. 산문과 희곡:
 
– 중고 독일어 시대의 산문문학은 운문으로 쓴 것보다 덜 중요하지만 13세기 수도사 베르톨트 폰 레겐스부르크의 설교집은 깊은 감동을 주는 훌륭한 독일어로 씌어져 있고, 메히틸트 폰 마그데부르크의 저작은 이미 14세기 독일 신비주의를 예시하고 있다. 자신의 영혼 속에 침잠함으로써 신을 파악하고자 한 신비주의는 정신·종교·사상·개념 등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어휘를 개척함으로써 독일 산문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는데, 그 대표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로 알려진 요하네스 에크하르트 폰 호흐하임, 하인리히 조이제, 요하네스 타울러이다. 그밖에 요하네스 폰 테플이 쓴 〈보헤미아에서 온 농부 Ackermann aus Böhmen〉(1400경)는 신이 이끄는 세상에서 죽음이 정당한가를 사신(死神)과 농부가 논하는 형식으로 독일 인본주의 전통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 연극에서도 부활절극이나 성탄절극, 또는 그리스도 수난극 등 종교극이 우세하여 거대한 민중축제로 확대되었으나, 15세기에는 세속적인 사육제극이 문학적 형태로 나타나 대중에게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익살스럽게 희화한 이 사육제극의 초기 개척자로는 마이스터징거 한스 로젠플뤼트와 한스 폴츠를 들 수 있으며, 한스 작스에 와서는 높은 예술적 차원을 지니게 되었다.
 
 
7. 중고 독일어 시대에서 바로크 시대까지의 특성:
 
– 1440년경 구텐베르크가 새로운 인쇄술을 발명함으로써 유럽 문학에 혁신적인 계기가 마련되었고, 풍자·비유·민요·연애시·자연시·발라드 같은 기존의 문학형태가 계속되며 풍부한 자취를 남겼다. 한스 폴츠가 보다 자유로운 규칙을 도입하여 마이스터징거 예술의 부흥을 꾀했고 클라라 헤츨러린은 여러 시와 노래를 엮어 〈노래책 Liederbuch〉(1471)에 집대성했다. 또한 희극적 일화( 슈방크)들이 필리프 프랑크푸르터의 〈칼렌베르크의 성직자 Der Pfaffe von Kalenberg〉(1473)처럼 흔히 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엮어져 널리 읽혔으며, 이 가운데 14세기의 익살스런 농부 틸 오일렌슈피겔과 관련된 일화들은 범유럽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일렌 슈피겔에 관한 민담본 Das Volksbuch von Eulenspiegel>, 1515).
 
 
8. 궁정 르네상스:
 
– 프랑스 부르고뉴같은 궁정에서는 중세 기사문학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독일에서도 엘레오노레 공작부인의 〈폰투스와 지도니아 Pontus und Sidonia〉(1456경)처럼 프랑스 기사 로망스를 산문으로 각색한 작품이 나왔으며, 특히 볼프람 폰 에셴바흐를 비롯한 시인들의 중세시들이 원형대로 혹은 산문으로 개작되어 출판되었다.
 
 
9. 인문주의:
 
– 궁정문학의 부흥과는 반대로 1450년 이후의 독일문학에는 인문주의 운동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1450~80년의 인문주의자들은 이탈리아에서 자극을 받았는데, 알브레히트 폰 아이프, 하인리히 슈타인회벨, 니콜라스 폰 빌레, 하인리히 슐뤼셀펠더, 안토니우스 폰 포르등은 주로 라틴·그리스·인도의 고전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비롯한 이탈리아 작품들을 번역하여 독일 산문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콘라두스 첼티스, 에오바누스 헤수스 같은 1480년 이후 독일 인문주의자들은 방향을 바꿔 거의 전적으로 라틴어로 저술했다. 그 가운데 야코프 빔펠링이 쓴 〈게르마니아 Germania〉(1501)에는 강한 애국적·정치적 특성이 드러난다.
 
– 극분야에서는 인문주의자의 영향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대중들은 여전히 신비극이나 사육제극을 좋아했지만, 인문주의자들은 테렌티우스 등 로마 희극 및 근대 작가가 쓴 라틴어 극을 도입해 도덕적 교훈과 수사법을 가르치고자 했다. 중세극과는 아주 다른 유형의 이 라틴어 희곡들이 16세기 독일 연극 발전에 기여했으며, 나중에는 종교개혁에 활용되었다. 하지만 재능있는 작가들이 라틴어로 작품을 썼으므로 1490~1520년 독일어 문학은 아주 드물었고, 다만 풍자적·교훈적 작품들이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들의 배 Das Narrenschiff〉(1494)는 여러 외국어로 번역될 만큼 유명해졌다.
 
 
10. 종교개혁과 마르틴 루터, 독일문학의 관계:
 
–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이 전 독일을 휩쓸 때 인문주의자들은 대체로 경원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울리히 폰 후텐, 필리프 멜란히톤 등은 종교개혁의 인문주의적 요소에 공감하면서 루터를 지지했다. 개혁 찬반에 관한 격론이 벌어지며 전단 형태로 숱한 인쇄물이 쏟아져 나왔으나 문학적으로는 별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다.
 
– 종교개혁은 독일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첫째, 루터의 성서 번역(신약 1522, 구약 1534)은 처음으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뿐더러 힘차고 생생한 독일어가 구사되었기 때문에 후대 독일 작가들의 문체 및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둘째, 루터가 신교의 예배용 찬송가를 씀으로써 이후 독일 작가들도 찬송가를 쓰는 전통이 수립되었다. 셋째, 루터가 중세 신비극을 비난하고 성서 속에서 연극에 적합한 주제를 찾아냄으로써 직스투스 비르크, 파울 레프훈, 요아힘 그레프, 부르크하르트 발디스, 외르크 비크람같은 극작가들이 루터의 가르침을 전하는 독일어 희곡을 쓰는 데 고무적인 계기가 되었다.
 
 
11. 16세기 기타문학:
 
– 종교개혁으로 1520년 이후의 문학이 전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어가 라틴어 대신 학술논문에도 쓰이기 시작했고, 여전히 풍자적·교훈적 작품들이 우세했으며, 다시 그리스의 이솝 이야기가 인기를 누리면서 에라스무스 알베루스의 〈우화집 Fabeln〉(1534)과 부르크하르트 발디스의 〈에소푸스 Esopus〉(1548)에서 우화는 활기찬 문학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한편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닌 한스 작스는 희극적인 운문 일화와 사육제 극을 쓰는 데 최대의 역량을 발휘했다.
 
– 종교개혁의 물결이 뒤로 물러가면서 순수 오락물들이 각광을 받게 되어 이른바 '민담본'(Volksbuch)이라든가 요하네스 파울리가 쓴 〈욕설과 진지함 Schimpf und Ernst〉(1522), 외르크 비크람이 쓴 〈손수레 책자 Rollwagenbüchlein〉(1557) 같은 우스운 일화집이 인기를 끌었다. 이무렵 비클람의 〈금실 Der Goldfaden〉(1557) 같은 작품과 스페인 기사 로망스 〈아마디스 Amadis〉의 독일어 번역(1569~95)은 독일 근대소설의 태동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12. 17세기 바로크 문학:
 
– 바로크 시대로 알려진 17세기 독일문학은 무엇보다도 시대와 상황의 산물이었다. 보편주의와 국가주의, 시민적 계몽의식과 궁정문화, 세속적인 쾌락추구와 죽음의 공포 및 내세에의 동경이 양립 또는 대립하는 시대의 기본구조가 문학에도 투영되어 비그리스도교적 고대형식과 그리스도교적 내용, 규범의 강제성과 사상의 유동성, 궁정의 과시욕과 현세의 무상감이라는 대립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30년전쟁의 와중에도 특히 주변세력들의 각축장으로서 큰 희생과 격변을 치른 독일의 바로크 문학 역시 허무와 무상의 세계체험을 바탕으로 소재·형식·표현방법에서 양극성과 내면의 긴장을 보여준다.
 
 
13. 17세기 독일 서정시:
 
– 서정시는 급속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은 마르틴 오피츠의 〈독일 시학서 Buch von der deutschen Poeterey〉(1624)의 힘이 컸다. 그는 뛰어난 독일어 문학의 창작을 위해 고대·이탈리아·프랑스 등 외국의 문학이론을 바탕으로 시작(詩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공식화하는 이론 작업과 아울러 스스로도 〈독일시 Deutsche Poemata〉(1624)에서 시범을 보였다. 그의 시학은 게오르크 베케를린과 파울 플레밍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서정시는 주제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한데, 그 시인으로는 연애시와 소네트를 쓴 파울 플레밍 외에도 짙은 염세주의와 종교적 열정을 보인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 단순하고 따뜻한 찬송가를 쓴 루터파 시인 파울 게르하르트, 종교적 전원서정시를 쓴 예수회 신부 프리드리히 폰 슈페, 격언시를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신비주의적 경향의 앙겔루스 질레지우스 등이 있다.
 
 
14. 17세기 독일희곡:
 
– 연극은 유럽 각국에서 바로크 문화의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궁정극, 시민계층의 학교 극, 민중이 대상이 된 순회극단, 아마추어 극 등 관객의 신분과 계층에 따라 다양한 장르가 생겨났다. 그러나 언어예술로서의 희곡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대사·노래·무언극·발레 등 각종 연희의 가능성들을 복잡하고 화려한 무대장치와 함께 활용하는 특징을 지닌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야코프 비더만의 예수회 학교극 〈체노독수스 Cenodoxus〉(1602)와 그리피우스가 쓴 희극·비극 작품들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그가 쓴 〈부조리 희극 혹은 페터 스크벤츠 씨 Absurda Comica oder Herr Peter Sqvenz〉(1658)는 새로운 희극의 탄생이었고 〈카르데니오와 첼린데 Cardenio und Celinde〉(1657)는 시민비극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15. 17세기 독일소설:
 
– 영웅연애소설·목동소설·악한소설 등이 유행했고 대부분 스페인·프랑스 등 외국소설의 영향을 받아 씌어졌지만 요한 베르와 한스 야코프 크리스토펠 폰 그리멜스하우젠의 작품은 뛰어나다. 특히 그리멜스하우젠의 피카레스크(악한) 소설 <모험가 짐플리치시무스 Abenteuerlicher Simplicissimus>(1669)는 독일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16. 18세기 계몽주의:
 
– 합리주의로 대변되며, 이전 세기를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라고 한다면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으로 본질이 규정되는 계몽주의 시대는 이에 대한 반동의 시대였다. 교조적 종교는 이신론(理神論)에 자리를 양보했고 우주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인과율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개인의 영적 체험을 강조한 경건주의가 독일 종교계에 되살아난다. 문학 역시 교육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계발하고 인류가 진보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현저하게 교훈적인 성격을 띠었다. 특히 영국 문학의 영향이 점차 강해졌는데, 조너선 스위프트, 다니엘 디포, 존 밀턴 등의 작품이 번역되었고, 영국의 선례에 따라 많은 도덕적 주보(週報)들이 발간되었으며 제임스 맥퍼슨의 <오시안 Ossian>이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은 후에 독일문학의 새로운 시대, 즉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17.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
 
– 1724~40년 독일의 비평가 요한 크리스토프 고체트는 프랑스 고전주의에 입각한 문학개혁에 성공했다. 그는 〈독일의 비평적 시론에 관한 소론 Versuch einer kritischen Dichtkunst vor die Deutschen〉(1730)에서 보다 나은 문학을 생산하고 평가하는 데 기준이 되는 원칙들을 규정했는데, 스위스의 요한 야코프 보드머와 요한 야코프 브라이팅거는 그의 경직된 이론에 강한 반론을 제기했다. 그들은 밀턴의 〈실락원 Paradise Lost〉을 바탕으로 상상력은 이성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의 여파가 고체트파 자체에도 영향을 미쳐서 브레멘 기고파가 형성되었고, 1748년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의 〈구세주 Der Messias〉(1773)가 일부 그들 기관지에 발표되자 굉장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천재성은 서정시에서 더 유감없이 발휘되어 감상적이고 애국적인 주제가 주종을 이룬 그의 송가들은 대단한 예찬을 받았다. 이 시기 서정시는 아나크레온풍의 서정시가 우세했는데, 바르톨트 하인리히 브로케스의 자연시, 요한 빌헬름 루트비히 글라임의 애국시, 프리드리히 폰 하게도른의 사교시, 알프레히트 폰 할러와 잘로몬 게스너의 전원시, 에발트 크리스티안 폰 클라이스트의 감상적 자연시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18. 레싱(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의 영향: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유럽 전역에 알려진 최초의 독일 비평가였다. 그 역시 고전주의를 신봉했지만 프랑스 고전주의가 아니라 동시대의 요한 요아힘 빈켈만과 같이 고대 그리스 예술과 문학을 모범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프랑스 고전 극작가들보다는 셰익스피어를 우위에 놓았으며 〈최근 문학동향에 관한 서한들 Briefe, die neueste Literatur betreffend〉(1759~65)·〈함부르크 연극론 Hamburgische Dramaturgie〉(1767~69), 빈켈만을 연상시키는 비평 〈라오콘 Laokoon〉(1766)에서는 조형예술과 시문학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레싱에 의해 독일문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는 이론 작업뿐만 아니라 〈사라 삼프손 양 Miss Sara Sampson〉(1755)· 〈미나 폰 바른헬름 Minna von Barnhelm〉(1767)· 〈에밀리아 갈로티 Emilia Galotti〉(1772) 같은 작품을 써냄으로써 다음 세대의 시민극을 예고했으며 〈현자 나탄 Nathan der Weise〉(1779) 같은 바이마르의 독일 고전주의 관념극의 선구적 작품을 낳았다. 그는 프랑스 문학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영국 문학에 관심을 가졌고 독일 본연의 창조성을 추구하는 길을 튼 사람이었다. 또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는 이국적인 문학을 소개함으로써 독일인의 상상력을 확대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운문 로망스 〈오베론 Oberon〉(1780) 외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심리소설 〈아가톤의 이야기 Die Geschichte des Agathon〉(1766~67)와 풍자소설 〈아프데라의 사람들 Die Abderiten〉(1774)은 독일 산문소설을 진일보시킨 작품이었다.
 
 
19. 괴테 시대:
 
– 독일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시기인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살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대는 계몽주의의 이성 만능적 태도에 한계를 느끼고 감정의 가치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충동·본능·감정·상상·직관을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수단으로 여겼다.
 
 
20.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시대:
 
– 괴테는 질풍노도운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합리주의를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이 운동의 핵심사상은 이미 클롭슈토크를 비롯한 경건주의에서 찾을 수 있으며, 영국의 에드워드 영과 셰익스피어, 프랑스의 루소에게서 큰 자극을 받아 자연성·천재성·독창성이 이 운동의 표어가 되었다. 이른바 문명화된 세계에 실망한 이 새로운 세대는 세계고(世界苦 Weltschmerz)라는 염세적 세계관 아래 자연을 신격화시켰고 개인의 양심 이상의 어떠한 법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곳곳에서 긴장·저항·반항·열망·환멸의 태도를 드러냈다. 문학과 사상에서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주된 특징으로 나타났다.
 
– 비평계에서는 하인리히 빌헬름 폰 게르스텐베르크가 취미 문제에서 개인의 감정을 강조했고, 요한 게오르크 하만은 언어가 지닌 영감과 상징의 기능을 역설했다. 그는 시를 인류의 모어(母語)라고 하며 인간 내면의 영혼 세계를 언제나 새로운 표상 속에 표현하는데 문학의 과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제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는 진화의 개념을 역사에 도입하여, 문학에서 역사적 연속성의 중요성을 갈파하고 민요·발라드와 중세 로망스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의 비평은 질풍노도 운동의 기본방향이 되었으며 특히 헤르더와 괴테의 논문이 수록된 〈독일 예술과 미술에 관하여 Von deutscher Art und Kunst〉(1773)는 이 운동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었다.
 
– 괴테는 질풍노도 운동 최초의 중요한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 Götz von Berlichingen〉(1773)을 썼고 최초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쓴 여러 형식의 문학은 시대적 유행이 되어 야코프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 프리드리히 막시밀리안 폰 클링거, 요한 안톤 라이제비츠, 하인리히 레오폴트 바그너, 프리드리히 뮐러 등 많은 극작가들이 그의 〈괴츠 폰 베를리힝겐〉을 모방한 작품을 썼다. 극문학은 질풍노도 운동에서 가장 특색있는 성과로 실제 이 운동의 명칭은 클링거의 동명 희곡에서 따온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주목할 만한 소설가로는 요한 야코프 빌헬름 하인제와 카를 필리프 모리츠가 있는데,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 Anton Reiser〉(4권, 1785~90)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를 예고하는 작품이었다.
 
–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군도 Die Räuber〉(1781)와 더불어 이 시대의 희곡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무대에 올려질 수 있기 위해서는 보다 기술적으로 각색되어야 했던 실러의 비극은 그밖에도 〈제노바에서 일어난 피에스코의 모반 Die Verschwörung des Fiesko zu Genua〉(1784)·〈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1783), 그리고 고전주의를 예고하는 무운시의 형식을 사용한 〈돈 카를로스 Don Carlos〉(1787) 같은 걸작이 있다. 이 질풍노도시대에 독일 여러 곳에서 국민극장이 설립된 것은 특기할 사항이다.
 
 
21. 이탈리아 여행 중의 괴테 (신고전주의):
 
– 조화된 인간성과 자기규율을 등한시한 질풍노도운동은 곧 쇠잔해졌고,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주장한 헤르더의 '인간성' 사상을 기초로 신고전주의가 시작되었다. 독일 고전주의는 계몽주의와 그 후속인 질풍노도, 그리고 경건주의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즉 계몽주의에서는 지성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요소를, 질풍노도와 경건주의에서는 정감적이며 비합리주의적인 요소를 계승했다. 하나의 유기적인 자연관, 일종의 관념론이라 요약할 수 있는 고전주의는 문학에서도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 내면생활의 표현으로 나타나며 조화와 통일,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미적 이상으로 했다.
 
– 이 시대의 독일 사상과 문학의 토대는 이마누엘 칸트의 비판철학이었다. 실러는 칸트의 영향을 받아 미학 연구에 몰두했고, 그의 미학이론은 독일 고전주의의 절정기인 1794~1805년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 괴테는 〈파우스트 Faust〉(1부 1808, 2부 1832)로 세계문학에 최대의 공헌을 했다. 그는 노년에 들어와서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1~29)를 비롯하여 체념을 주제로 한 〈친화력 Wahlverwandtschaften〉(1809) 같은 소설과 숱한 서정시, 자서전적인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1811~33),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22. 낭만주의:
 
– 바이마르 고전주의가 내용과 형식이 조화된 인간성의 완성을 추구했다면, 낭만주의는 환상과 몽상 속에서 무한성을 꿈꾸었다. 특히 초기에는 고대문학에 대한 동경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는 문학사에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과도기 시인으로 여겨지는 프리드리히 횔덜린에게서도 확인된다. 그는 독일 최대의 서정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소설 〈히페리온 Hyperion〉(1797~99)의 작가인데, 고대 그리스의 이상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절망에 빠졌다. 이 과도기에 속한 또 한 사람의 재능있는 작가는 장 파울(요한 파울 프리드리히 리히터)로, 〈티탄 Titan〉(1800~03)과 〈한창 장난할 나이 Die Flegeljahre〉(1804~05)를 비롯하여 예리한 해학과 풍부한 상상력을 내보이는 많은 작품을 썼다.
 
 
23. 전기 낭만파:
 
– 1798년경 예나에서 시작된 전기 낭만파의 주요 이론가는 슐레겔 형제(아우구스트와 프리드리히)였고, 주도적 작가는 빌헬름 하인리히 바켄로더, 루트비히 티크, 노발리스(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 등이었다. 바켄로더는 예나 낭만파의 첫번째 주요작인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승의 심정 토로 Herzensergiessungen eines kunstliebenden Klosterbruders〉(1797)를 썼고, 노발리스는 서정시 〈밤의 찬가 Hymnen an die Nacht〉(1800)와 소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 Heinrich von Ofterdingen〉(1802, 일명 〈푸른 꽃 Die blaue Blume〉)으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예술형식을 창조했다. 또 뛰어난 번역과 개작으로도 유명한 아우구스트 슐레겔의 셰익스피어 번역(1797~1810)은 낭만주의 업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24. 후기 낭만파:
 
– 1804년 예나 낭만파는 와해되었고, 2년 후 하이델베르크에서 클레멘스 브렌타노와 그의 매제 아힘 폰 아르님, 요한 요제프 폰 괴레스를 중심으로 후기 낭만주의가 일어났다. 이들의 업적은 국민의식을 고취하는 전설과 민요들의 수집에 있었는데, 아르님과 브렌타노의 민요집 〈소년의 마술피리 Des Knaben Wunderhorn〉(1805~08)와 그림 형제(야코프와 빌헬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 이야기 Kinder und Hausmärchen〉(1812~15)가 중요한 성과이다. 또한 이들의 독일 언어학 및 중세문학의 연구를 통해 독일 언어학이 학문적 체계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특기할 사항이다.
 
– 1809년 이후에는 낭만주의 운동이 북독일(베를린과 드레스덴)과 남독일로 분산되어 일어난다. 북독일의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서 〈암피트리온 Amphitryon〉(1807)·〈펜테질레아 Penthesilea〉(1808)·〈프리드리히 폰 홈부르크 왕자 Prinz Friedrich von Homburg〉(1821) 등의 희곡과 수많은 노벨라를 내놓았다. 에리히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도 북독일이 낳은 천재적인 소설가로서 환상적이고 괴기스러운 이야기 속에서 삶의 어둡고 섬뜩한 측면을 묘사했다. 후기 낭만주의의 최대 서정시인 가운데 하나는 슐레지엔 출신의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이며 〈어느 무위도식자의 생활에서 Aus dem Lebeneines Taugenichts〉(1826) 같은 흥미 있는 노벨라를 남기기도 했다. 낭만주의의 최종단계는 남독일의 슈바벤파이며, 루트비히 울란트와 에두아르트 뫼리케 같은 재능있는 작가도 있었으나 이 무렵 낭만주의 본래의 독창적인 활력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25. 19세기 독일문학:
 
– 괴테의 죽음으로 한 시대는 끝이 났다. 정치적·종교적 보수주의가 개혁을 원하는 자유주의를 탄압하는 가운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 환멸이 창작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고전적·낭만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
 
 
26. 19세기 초기 독일희곡:
 
– 19세기초를 대표하는 극작가는 오스트리아인 프란츠 그릴파르처와 독일인 게오르크 뷔히너였다. 그릴파르처는 독일 고전주의 극을 빈의 무대위에 실현해보려는 소망에서 〈사포 Sappho〉(1818)·〈황금양털 Das goldene Vliess〉(1820) 등의 비극을 써냈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자신의 비극적 좌절을 힘차게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위대성에 접근하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음울한 비극적 염세주의는 희극작가 페르디난트 라이문트와 네포무크 네스트로이의 통속적이고 낭만적인 연극에서도 엿볼 수 있는 작품 경향이다.
 
–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던 그릴파르처와는 달리 사회비판적 의식을 드러낸 뷔히너는 그의 대표작 〈당통의 죽음 Dantons Tod〉(1835)에서 프랑스 혁명의 실패를 다루었고 〈보이체크 Woyzeck〉(작가 사후 1879년 출판)에서는 처음으로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현실에 대한 저항정신을 사실적 수법으로 그려냄으로써 독일 사실주의 연극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두 희곡은 현재도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27. 19세기 독일 서정문학:
 
– 이 시대의 독일 시인들은 일반적으로 전시대의 고전·낭만주의 시의 전통을 이어받아,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와 아우구스트 폰 플라텐의 경우처럼 형식적인 면에서는 세련되었지만 독창적인 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면모를 보였다. 그중에도 깊은 감정을 담은 우울한 서정시로 유명한 니콜라우스 레나우, 뛰어난 형식으로 목가적 자연을 그려낸 에두아르트 뫼리케, 역시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생의 비합리적인 힘에 대한 불안을 힘찬 리듬과 음산한 언어로 표현한 아네테 폰 드로스테휠스호프(〈영적인 해 Das geistliche Jahr〉, 1851)가 주목할 만한 시인이다. 그러나 이 시대 최대의 시인은 하인리히 하이네로서, 그의 〈노래책 Buch der Lieder〉(1827)은 섬세한 형식, 극적 구성, 감동적 열정 등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서정시집이다. 그는 또한 반어적 산문의 대가이기도 한데, 개인적인 적과 당대의 정치상황을 가차없이 공격한 〈독일:겨울동화 Deutschland:Ein Wintermarchen〉(1844)는 큰 효과를 거둔 정치풍자이다.
 
– 1835년 독일 연방의회는 하이네와 함께, 루돌프 빈바르크, 카를 구츠코, 하인리히 라우베, 테오도어 문트의 저술에 금서령을 내렸다. ' 청년독일파'로 지칭되는 이 현실 참여문학의 작가들로는 그밖에도 루트비히 뵈르네, 게오르크 헤르베크,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국외로 망명하여 독일의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 중 뵈르네의 〈파리에서 온 편지 Briefe aus Paris〉(1830~33)는 당시의 사회기록으로서 귀중한 작품이다. 정치적·사회적 개혁을 뜻하는 청년독일파와는 달리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보인 에마누엘 가이벨, 파울 하이제, 빅토르 폰 셰펠 등은 당시에는 독자의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대다수 잊혀진 작가들이다.
 
 
28. 19세기 독일 사실주의와 지방주의:
 
– 정치적으로는 복고주의가 주도권을 다투었고 사회적으로는 이른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여러 사회문제들이 나타남에 따라 카를 마르크스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같은 사회비평가가 출현했으며 문학도 같은 맥락에서 객관적인 사실의 묘사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는데, 이런 사실주의야말로 이 시대 독창성의 원천이었다. 삶이 예술적인 의미와 내적인 가치를 지닌 경우에만 문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일명 ' 시적 사실주의'라고도 부르며, 종종 지방주의와 겹치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의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려는 객관적 목표를 지닌다는 점에서 주로 생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키는 자연주의와 구별된다. 사실주의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로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고트프리트 켈러, 테오도어 폰타네를 꼽을 수 있다.
 
– 소설에서는 정확한 현실묘사에 집중하면서 소박한 삶을 고향의 풍경과 결합시키는 작품들이 나왔다. 카를 이머만의 농민소설 〈언덕 위의 농가 Der Oberhof〉(1839)와 베르톨트 아우어바흐의 〈슈바르츠발트 숲속 마을의 이야기 Schwarzwalder Dorfgeschichten〉(1843~54), 예레미아스 고트헬프(알베르트 비치우스)의 스위스 농민 생활과 문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담아낸 〈하인 울리 Uli der Knecht〉(1846)와 〈소작인 울리 Uli der Pachter〉(1849) 등이 그 예이다. 그밖에 클라우스 그로트는 서정시집 〈샘물 Quickborn〉(1853)로서 독일 지방주의 작가의 전형처럼 되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를 연상시키는 교양소설 〈늦여름 Nachsommer〉(1857)을 쓴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역시 〈다채로운 돌 Bunte Steine〉(1853)에서 고향 보헤미아의 풍물을 차분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일문학에 색다른 기여를 했다.
 
– 산문 서사문학에서 시적 사실주의의 최고봉은 스위스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였다. 반자전적 교양소설 <녹색의 하인리히 Der grüne Heinrich>(1854~74)와 노벨라 연작 〈젤트빌라의 사람들 Die Leute von Seldwyla〉(1856~74)이 대표작이며 하층계급의 사실적 묘사와 자연현상의 정밀한 관찰이 뛰어났다. 또 다른 중요한 사실주의 작가 테오도어 슈토름은 북독일 출신으로 서정적 정취가 넘치는 노벨라를 주로 썼다. <임멘 호수 Immensee>(1850) 같은 슈토름의 초기작에는 현실에 환멸을 느껴 과거를 돌아보는 낭만적·감상적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났는데, 이런 경향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사회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 빌헬름 하우프, 구스타프 프라이타크 등이 여기에 속하는 작가로, 프라이타크의 소설 <차변(借邊)과 대변(貸邊) Soll und Haben>(1855)과 희극 <기자들 Die Journalisten>(1854)은 당대의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성공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예리한 사회분석으로 유명한 독일의 작가 빌헬름 라베는 <배고픈 목사 Der Hungerpastor>(1864)를 비롯하여 부르주아의 속물 근성과 비스마르크의 국가주의를 해학적인 문체로 다루었다. 180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에서도 당대 부르주아 및 농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우세했는데 그런 작가로는 페르디난트 폰 자르, 마리 에브너 에셴바흐, 페터 로제거, 루트비히 안첸그루버 등이 있다.
 
– 19세기 중엽 근대 희곡 발전에 큰 공헌을 한 2명의 작가로는 프리드리히 헤벨과 오토 루트비히가 있다. 헤벨은 시적 사실주의를 힘차게 표출한 독창적인 극작가로서 〈유디트 Judith〉(1840)· 〈마리아 마크달레나 Maria Magdalena〉(1844)· 〈니벨룽겐 Die Nibelungen〉(1861) 등 심리분석과 형이상학적 신념의 종합을 이룬 작품세계를 펼쳤다. 루트비히는 작품보다는 이론으로 극문학에 기여했는데 시민비극 〈세습산림관 Der Erbförster〉(1850)이 그 중 문학적 의미를 지닌 희곡이다. 시적 사실주의의 특성으로 나타나는 해학(Humor)과 반어(Ironie)가 뛰어난 작가인 테오도어 폰타네는 독일에서 최초로 진정한 사회소설을 쓴 작가로, 〈뒤죽박죽 Irrungen Wirrungen〉(1888)· 〈예니 트라이벨 부인 Frau Jenny Treibel〉(1892)· 〈에피 브리스트 Effi Briest〉(1895) 등 심리적 통찰과 사회조건에 대한 이해를 결합시킨 작품을 남겼다. 그밖에 작가는 아니지만 독일문학에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리하르트 바그너와 프리드리히 니체를 들 수 있다. 바그너는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1848~74) 같은 음악극으로 독일예술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음악의 정신에서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ödie〉(187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1892) 등의 저술에서 니체가 피력한 예술론·초인론 및 그의 허무주의·회의주의는 독일 근대 사상 및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9. 19세기 독일 자연주의:
 
– 프랑스의 에밀 졸라에게서 영향을 받은 독일 자연주의 운동은 단명한 문학운동이었다. 〈시대의 책 Buch der Zeit〉(1886)으로 독일 자연주의 최초의 중요 시인으로 등장한 아르노 홀츠는 요한네스 슐라프와 함께 〈파파 함렛 Papa Hamlet〉(1889) 이라는 3편의 이야기에서 이른바 초간(抄間) 양식(Sekun-denstil)을 내세워 삶의 한순간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선전했다. 자연주의에서 중요한 극작가는 입센과 스트린드베리의 영향을 받은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인데, 〈해뜨기 전 Vor Sonnenaufgang〉(1889)· 〈직조공들 Die Weber〉(1892) 같은 작품들을 통해 산업화로 야기된 여러 사회문제들을 고발했다. 그의 영향을 받아 헤르만 주더만은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성을 비판한 〈명예 Ehre〉(1889)·〈고향 Heimat〉(1893)을, 막스 할베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룬 〈청춘 Jugend〉(1893)을 썼다.
 
 
30. 20세기 독일 인상주의:
 
– 전통적인 문학형식으로는 복잡해진 이념이나 사회상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 20세기 작가들은 수많은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최초의 시도는 사물을 보고 받은 인상을 강조하여 마음의 상태를 환기시키려는 인상주의였다. 데틀레프 폰 릴리에크론, 리하르트 데멜 등이 이런 경향의 서정시를 썼다. 상징주의에 영향을 받은 시인들도 인상주의적 요소를 내보이는데, 프랑스 상징주의의 계승자인 슈테판 게오르게가 대표적이다. 그는 엄격한 형식을 중시하고 일상적인 것이나 평범한 것들을 멀리하며 품위 있는 언어를 골라 썼다. 그를 중심으로 한 시파(詩派)가 형성되었고, 게오르게는 1892년 〈예술 회보 Blätter für die Kunst〉를 창간하여 추종자들이 시를 발표할 수 있게 했다. 오스트리아의 후고 폰 호프만스탈은 낭만주의에 뿌리를 둔 예술지상주의자로서 극히 음악적인 언어로 섬세한 감수성을 분석해냈고, 아르투르 슈니츨러는 세기말 문화 중심지였던 빈의 분위기를 인상주의적인 수법으로 포착했다. 카를 크라우스가 단독으로 풍자지 〈횃불 Die Fackel〉(1899 1936)을 발행하여 부르주아 언론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동안, 로베르트 무질은 〈특성 없는 사나이 Der Mann Ohne Eigenschaft〉(1930~43)에서, 헤르만 브로흐는 〈몽유병자들 Die Schlafwandler〉(1931~32)에서 더욱 냉정하고 깊은 시대분석을 보여주었고, 같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와 역사소설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31. 20세기 독일 상징주의:
 
– 새로운 문학의 실험적인 유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징주의였다. 예술이란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진상을 알리거나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상징의 힘을 통해 보다 심오한 현실을 밝혀야 한다고 본 상징주의자들의 작품은 강한 주관성과 신비성이 깃들어 있다. 하이네 이후 가장 잘 알려진 시인이자 프란츠 카프카와 더불어 오스트리아·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역시 상징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시도시집 Das Stunden-Buch>(1905)에서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의 수기 Die Aufzeich 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1910)· 〈두이노의 비가 Duineser Elegien〉(1923)에 이르는 그의 작품세계는 신과 인간, 자연, 시인의 소명에 관한 내적 성찰로 가득하다.
 
– 상징주의는 산문작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독일 최대의 소설가 중 하나인 토마스 만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덴브로크가 Die Buddenbrooks〉(1900)· 〈마의 산 Der Zauberberg〉(1924)· 〈요제프과 그의 형제들 Josef und seine Bruder〉(1933~43)· 〈파우스투스 박사 Dr. Faustus〉(1947) 등의 대작과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1903)·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1912) 등의 중단편에 이르기까지 상징과 신화를 이용하여 현대 인간의 정신상태를 조명하고 현대 서구문명을 상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의 형 하인리히 만도 탁월한 소설가로서 〈운라트 교수 Professor Unrat〉(1905)와 〈충복 Der Untertan〉(1918) 같은 독일의 정치와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또 한 사람의 거장 헤르만 헤세는 신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간내면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추적하여, 〈데미안 Demian〉(1919)·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1927)·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1943) 등에서 서구문명에 의문을 던지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다.
 
– (주요작가: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32. 20세기 독일 표현주의:
 
– 독일에서 핵심이 되는 문학운동은 표현주의 운동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간과 그 직후에 일어난 이 운동은 본질적으로는 전통적인 여러 가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물의 외적 형식보다는 내적 의미를 강조했다. 표현주의 희곡의 선구자는 프랑크 베데킨트였지만 최초의 완전한 표현주의 극작품은 요하네스 라인하르트 조르게의 〈걸인 Der Bettler〉(1912) 을 꼽는다. 이 작품은 발터 하젠클레버, 파울 코른펠트, 프리츠 폰 운루, 에른스트 바를라흐, 오스카르 코코슈카 등의 작품과 더불어 사물의 본질, 개인의 배후 이념, 삶의 정신적 의미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에른스트 톨러는 표현주의 기법을 써서 정치극 〈기계 파괴자 Die Maschinenstürmer〉(1922)를 썼고, 주도적인 표현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는 후에 성숙한 전통적 양식으로까지 발전했으며 카를 슈테른하임은 날카로운 풍자로 부르주아의 위선을 폭로했다. 표현주의 시인으로는 아인스트 슈타들러, 게오르크 하임, 게오르크 트라클, 아우구스트 슈트람, 고트프리트 벤, 엘제 라스커쉴러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로 현대 도시 생활과 기계문명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서 출발하여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을 드러내는 이들의 관점은 나중에는 다다주의로 확대되었다. 체코의 프란츠 카프카 역시 그런 부정적 관점으로 현대 사회를 본 작가로서, <심판 Der Prozess>(1925)· <성 Das Schloss>(1926)을 비롯한 여러 장·단편, 우화들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불확실성을 그로테스크한 방법으로 그려주고 있다. 그밖에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Berlin Alexanderplatz〉(1929)이 표현주의 소설의 훌륭한 예로 꼽힌다.
 
 
33. 20세기 독일 표현주의 이후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 제1차 세계대전 후 표현주의는 이른바 객관성을 획득하려는 신즉물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길을 양보했다. 아르놀트 츠바이크(〈그리샤 상사에 관한 논쟁 Streit um den Sergeanten Grischa〉, 192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서부전선 이상없다 Im Westen nichts Neues〉, 1929)가 한스 팔라다, 에리히 케스트너와 함께 전쟁을 소재로 한 즉물적인 고발문학의 대표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객관성은 안나 제거스, 카를 추크마이어, 에른스트 윙거 등의 작품에도 계속되어 나타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주창자이자 서구 희곡계의 거장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른바 ' 서사극' 형식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 비판을 시도했다. 그의 사회 개혁을 위한 교육의지는 〈서푼짜리 오페라 Die Dreigroschenoper〉(1928)·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1941)·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1943)· 〈코카사스의 백묵원 Der kaukasische Kreidekreis〉(1948) 같은 많은 서사극과 교훈극을 낳았다.
 
 
34. 20세기 독일 제3제국:
 
– 나치 정권은 문학활동의 연속성을 파괴시켰다. 그 결과 많은 재능있는 작가들이 추방되거나 스스로 망명했으며 독일에 남아 있던 작가들 중에도 출판금지 처분을 받은 사람이 허다했다. 나치 작가로는 에르빈 구이도 콜벤하이어나 한스 그림 등이 있고, 나치 이념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있던 작가 가운데 한스 카로사 등이 나치시대의 정신적 공백을 메꾸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35. 20세기 독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1945년의 패전으로 독일은 완전히 황폐해졌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문밖에서 Draussen vor der Tür〉(1947)에 잘 포착되어 있듯이, 이 피폐한 분위기 속에서 문학 역시 다시 힘을 가다듬어야 했다. 서독에서는 47그룹이 결성되어 하인리히 뵐에서 귄터 그라스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작가들을 망라하여 향후 20년간 문학기후대를 조성했고, 동독에서는 시인이며 문화상이었던 요하네스 베허의 주도하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동독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은 브레히트를 비롯하여 제거스, 아르놀트 츠바이크, 헤르만 칸트, 하이너 뮐러 등을 들수 있으며, 크리스타 볼프는 독일 통일 이후에도 각광을 받고 있다. 전후 독일시는 아주 풍부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19세기 전통과 관련되어 인간 정신의 평화와 조화를 추구하는 시를 쓴 베르너 베르겐그루엔, 루돌프 알렉산더 슈뢰더 등이 있는가 하면, 시어를 전통에서 해방시키고 형식실험을 통해 자신들이 겪은 혼돈의 체험을 표현하려는 잉게보르크 바흐만, 귄터 아이히,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카를 크롤로브, 하인츠 피온테크 등이 있었다. 특히 파울 첼란은 환상적인 언어로 미적·도덕적 가치를 독특하게 잡아냈고 넬리작스는 난해한 언어로 유대 민족의 운명을 그렸다.
 
– 희곡에서는 막스 프리슈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등 스위스 작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Besuch der alten Dame>(1955)·<물리학자들 Die Physiker>(1961), 프리슈의 <이제 그들이 다시 노래하니 Nun singen sie wieder>(1961)는 현대의 도덕극이 다. 프리슈는 희곡뿐만 아니라 <슈틸러 Stiller>(1954)·<호모 파버 Homo Faber?(1954) 등의 소설을 써서 현대 지식인의 위상을 탐색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정치극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롤프 호흐후트의 <대리인 Der Stellvertreter>(1963)·<병정들 Die Soldaten>(1967), 페터 바이스의 <수사(搜査) Die Ermittlung>(1965)·<사드 후작의 연출 지도 아래 샤랑통 정신병원의 극단에 의해 상연된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암살 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 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s zu Charenton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1964, 흔히 <마라/사드 Marat/Sade>로 약칭)은 이른바 기록극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 오스트리아의 극문학은 볼프강 바우어와 페터 한트케로 대표되는데, 특히 한트케의 <관객모독 Publikumsbeschimpfung>(1966)·〈카스파어 Kaspar〉(1968)는 극단적인 언어실험극이다. 그밖에 특기할 현상은 귄터 아이히, 바흐만, 뵐, 뒤렌마트 등 많은 작가들이 방송극이라는 새 장르가 형성될 정도로 라디오를 통한 드라마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 전후 소설가로서 가장 명성을 떨친 작가로는 뵐과 귄터 그라스를 들 수 있다. 그라스는 특히 단치히 3부작인 <양철북 Die Blechtrommel>(1959)· 〈고양이와 쥐 Katz und Maus〉(1961)· 〈개 같은 시절 Hundejahre〉(1963)에서 활력이 넘치는 문장과 풍부하고 그로테스크한 풍자로써 독일 역사를 그려냈고, 현대 부르주아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전후 독일의 대표적 소설가 뵐은 〈지키는 사람 없는 집 Haus ohne Huter〉(1954)· 〈아홉시 반의 당구 Billiard um halb zehn〉(1959)·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 Ansichten eines Clowns〉(1963) 등의 작품으로 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주목할 만한 소설가로는 볼프강 쾨펜, 알프레트 안더슈, 지크프리트 렌츠, 마르틴 발저, 페터 바이스, 크리스타 볼프를 들 수 있다.
 
– 20세기 독일 문예학에서는 19세기 실증주의를 대신하여 사상사의 측면에서 문학을 조명해 보려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나타난다. 빌헬름 딜타이, 프리츠 슈트리히, 헤르만 아우구스트 코르프로 대표되는 이 방법론은 이른바 독일정신을 강조하는 나치 시대의 경험과 신비평의 영향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에밀 슈타이거를 대표로 하는 작품 내재분석 방법에 길을 양보하고 만다. 그러나 이 방법론은 1960년대 발터 벤야민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 비평이 재발견되면서 힘이 약화되었고, 이후 독일 문예학은 크게 보다 사회정치적 시각과 보다 형식적·이론적인 시각으로 나뉘지만, 현재 문학 연구방법의 상호보완성·다원성에 미루어 볼 때 그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문예학이 과학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나온 독일 현대 문예비평은 한마디로 문학에 대한 합리적 접근방법을 찾으려는 노력과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다.
 
 

 
 
◈ 괴테시대의 문학사조
 
1. 감상주의 Empfindsamkeit (1740-1780)
 
1) 개념
 
– 감상적 empfindsam이란 단어는 Lessing이 영어의 sentimental 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2) 역사적 배경
 
– 1740년부터 계몽주의의 테두리안에서 합리주의적 계몽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감정을 강조하는 문학운동이 발생하였다.
 
– 시민계급의 정치적 사회적 억압 상황이 감정의 충만과 도취에서 출구를 찾으려 하였으며, 이에 따라 감정이 실린, 열광적 기조의 감상주의 문학이 발생하게 된다.
 
 
3) 특징
 
– 감상주의는 경건주의(Pietismus: 17세기말 발생한 독일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신사조로서, 계몽 주의의 합리주의적 운동에 대한 반응으로서 오성(Verstand)에 대해 감정(Gefühl)을 내세운다.
 
– 독단론에 대한 반대, 마음의 대화의 강조, "내적인 부활", 신비주의적 몰두/집중/침잠에 의한 종교 생활의 내면화, 정신적 과정을 위한 감수성, 내면의 소리 경청 등에 의해 특징지워며, "감상적 sentimentale" 세계관을 반영하여 영적인 움직임의 관찰, 감동, 자연의 발견과 의식적 체험, 목가적이며 밝은 인생의 향락 (서정시, 전원시)이 주 테마로서 감정과 우정의 강조가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2. 질풍 노도 Sturm und Drang (1767-1785)
 
1) "Stum und Drang"의 명칭
 
– Strum und Drang이라는 명칭은 Friedrich Maximilian Klinger의 희곡 제목에서 유래한다. 원래 Klinger는 "뒤죽박죽 Der Wirrwarr (1775)"이었던 희곡의 제목을 당시 »천재 使徒 Genieapostel«라고 일컬어지던 Christoph Kaufmann의 제안에 의해 Sturm und Drang 으로 바꾸었다.
 
– 폭풍과 충동 Stum und Drang이라는 명칭은 당시 20~30대의 젊은 세대를 결속하고 있는 삶의 감정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다가, 당시대의 정치적, 이념사적 혼돈 상태와 문학적 표현의 독특한 통일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용어로서 대략 1767년부터 Goethe의 이탈리아여행(1786) 사이의 문학사조에 대한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2) 성격규정
 
– 저항운동이며, 동시에 청년운동으로서 Sturm und Drang 작가들의 저항의 대상은 국가의 절대주의적 권위와 귀족계급의 궁정세계 (이 점에서는 계몽주의와 일치), 시민계급의 편협·고루하며, 기쁨이 없는 틀에 박힌 직업생활과 시민계급의 도덕관 (이 점에서는 계몽주의와의 대립), 예술과 문학의 낡아빠진 전통 (이 점에서는 계몽주의보다 과격) 등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이념에도 불구하고 Sturm und Drang은 일차적으로 문학적 사조이다.
 
– 슈투름 운트 드랑의 작가들은 그룹을 형성하였다는 점(Straßburg의 Goethe와 Herder를 중심으로 한 그룹과 Frankfurt 와 Darmstadt의 Goethe 중심의 작가들) 이외에도 특히 정신적 내용에 대한 미학적 일치로서의 문학 형태의 파괴는 이들이 급진적 개혁파임을 보여준다.
 
 
3) 문학적 모반으로서의 Sturm und Drang
 
– Sturm und Drang은 표현과 형식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과격한 운동으로서 "문학적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크에서 계몽주의로의 전환이 전통의 단절이라기 보다는 완만한 해체였던데 반해 S. u. D.의 20~30대 젊은 작가들은 전통과 전래의 도덕관에 대한 과격한 저항으로 특징지워지며, 차가운 합리주의로 전락한 비생산적인 계몽주의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오성(Verstand)이란 이들 새로운 세대에게는 무기력하며 변질된 궤변으로서 영혼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억압하는 멍에였다.
 
– 젊은 세대의 과격한 사상은 전통적인 형식에 부합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바로크와 계몽주의의 규범시학과 예술의 인습들을 거부하였다. 감정, 자신의 자아가 고찰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인간의 주체성을 마음껏 발산하고, 예술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 이 시대의 대표적 장르는 희곡으로서 희곡의 주인공들은 천재, 정열적인 사랑, 타협없이 현실에 저항하는 반항아들이며, 시간, 장소, 줄거리의 통일이라는 의고주의적 형식이 지속적인 장면의 교체, 대중의 장면, 곁줄거리를 통해 지양되고 파괴되었으며, 언어는 중얼거리는 문장의 단편조각들로 구성되고 속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며, 경외(Furcht)와 동정(Mitleid)이 아니라 분노와 공포(Schrecken)의 효과를 추구하였다.
 
– 소설에서는 Goethe의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가 대표적이다. 기혼녀를 사랑하는 젊은이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자살하고 마는 줄거리는 Sturm und Drang의 격정과 정열, 반항과 저항을 반영한다.
 
 
4) 천재벽(Geniesucht)
 
– 슈튜름 운트 드랑 시인들의 사고의 중심에는 소위 천재사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에게 천재(Genie)란 위대한 독립된 개체로서 Prometheus에서 그 완전한 전형을 본다. (Vgl. Goethe의 시 Prometheus 1773)
 
– 교육을 받고 모든 장르의 작품을 쓸 수 있고 도덕적 교훈을 표현하는 시인(poeta doctus)이 이상으로 간주되지 않고 자신의 규칙과 법칙을 스스로 창조하는 독창적인 천재가 칭송되었다. 천재 안에는 자연의 창조적인 힘이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연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이며, 신적인 것의 총체로서 더 이상 계몽주의에서처럼 이성적으로 정돈된 것이 아니다.
 
– 진정한 인간이란 "Kraftkerl", 스스로를 돕는 자로서 사고와 행동이 통일되고, 자신의 정신적, 영적, 신체적 힘의 지배자이며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스스로 멸망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세계와의 대립을 꺼리지 않는자이다.
 
– 프로메테우스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영웅은 위대한 완전한 인간으로 정력적이며(vital), 속세에 매어 있고(erdverbunden), 반항적이며(aufbegehrend), 종종 거칠고(ungehobelt), 항상 직접적(unmittelbar)이다. 또한 고상하고(edel) 고결하며(아량이 넓고 großmütig), 힘이 넘치고(kraftvoll) 양보가 없는(kompromißlos) 인간으로서 반항과 저항을 구체화하는 인간이다.
 
– 동시에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 결정적인 것은 세계를 포괄하는 무한한 사랑과 극렬한 절망속에서 표현되는 감정의 깊이로서 모든 미덕지근한 것과 세련미를 배척한다. 따라서 슈투름 운트 드랑의 작가들은 Rokoko의 대변자인 Christoph Martin Wieland와는 철저히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 Johann Heinrich Voß는 당시 아방가드의 과도한 성격을 <천재벽 Geniesucht>이라고 칭했다.
 
 

 
 
◈ 고전주의 (Weimarer Klassik): 1786-1805/1832
 
1. "Weimarer Klassik"의 개념
 
– 어원: "고전적 klassisch"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classicus"라는 형용사에서 유래하며, 원래 로마의 조세법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세금을 내는 시민"을 지칭. 후기 고대에 이르러 문학의 영역에 전이되어 로마의 작가 Aulus Gellius (AD. 130~180)는 모범적인 1급 작가를 scriptor classicus라고 칭함. 고대의 모범성을 강조한 계몽주의 이래 "auctor classicus"는 고대의 작가를 칭하거나 아니면 모범적이고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를 지칭.
 
– 유럽문화권에서 "고전주의"는 각 민족문화의 절정기 또는 중요한 작가들을 배출한 시기를 가리킨다.
 
- 그리스의 Perikles시대 (B.C. 5세기경): Sophokles, Euripides
- 로마의 Augustus 황제시대 (기원초 전후): Vergil, Horaz, Ovid
-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14~16 세기): Dante, Petrarca, Boccaccio, Ariost, Tasso
- 영국의 Elisabeth I세 시대(1600년 경) Shakespeare
- 스페인의 "황금의 백년/세기 (Siglo de oro)" (16~17세기): Cervantes, Calderòn
- 프랑스의 Siècle classique (17세기): Molière, La Fontaine, Corneille, Racine
-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1200년대를 "슈타우펜 고전주의 Staufische Klassik"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Walther von der Vogelweide, Gotfrid von Straßburg, Wolfram von Eschenbach, Hartmann von Aue.
- 르네상스 이래 "Klassik"은 그리스의 예술 이상을 지칭함.
 
– 독일 고전주의는 Goethe와 Schiller의 활동시기를 특징지우는 사조로서 일반적으로 Goethe의 이탈리아 여행(1786)과 Schiller의 죽음(1805) 사이의 시기를 지칭하며, 혹자는 Goethe의 죽음 (1832)을 독일 고전주의의 종결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대공비 Anna Amalia가 Weimar에 Musenhof 를 설립함으로써 Weimar가 예술과 문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따라서 독일 고전주의는 Weimarer Klassik 이라고 칭해진다.
 
– 18세기의 독일에서는 "고전적 klassisch"라는 단어가 "고대에 속하는"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고전 작가란 "고대의 작가"를 지칭했다. 그러다가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고대 이후의 작가들에게도 사용되면서 "고대를 모방하는, 모범적인, 높은 수준에 도달한 작가"를 지칭하였다. 괴테와 쉴러는 자신들을 고전적인 작가라고 칭하지 않았으며, 1842년 문학사가인 Georg Gottfried Gervinus가 괴테와 쉴러가 독일 민족문학의 완성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사조의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2. 역사적 배경
 
– 바이마르 고전주의는 자유, 평등, 형제애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헌법투쟁, Robespierre 의 공포정치/혁명독재, 보나파티즘이 19세기의 정치·사회적 기본구조를 가져왔다. (민족주의, 자유주의, 제국주의) 정치적 역사는 고전주의 문학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배경을 형성한다. 프랑스 혁명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Ludwig 16세의 처형 이후에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했다. 프랑스혁명의 상속자인 Napoleon은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의 국가적·정치적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 나폴레옹이 지배하던 1803년 <제국대표자회의 주요 결의>에 의해 교회의 영토인 주교령이 폐지되고 독일 중부국가들이 확장되었다. 프란츠 II세(Franz II.)는 나폴레옹에게 3번째 패하고 16명의 제후들이 라인동맹을 결성하여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자1806년 신성로마황제의 칭호를 포기하고 나폴레옹과 대항하기 위하여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승격시키고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즉위. 프로이센은 해체되어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하게 되며, 개혁주의자들(Freiherr von Stein, Scharnhorst)은 개혁을 통해 프로이센을 재건하려고 했다.
 
 
3.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이념과 인간상
 
a) 이상관념:
인간성, 관용,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의 조화, 자연과 자유의 화해
 
– 이러한 이상관은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대표자들로 하여금 유혈적이고 정치적인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당시대의 정치·사회적 사건에 대해서는 단지 철학적으로만 언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바이마르 고전주의는 비정치적이다. Sturm und Drang 시대의 민족주의적 이념은 낭만주의에 이르러서야 다시 거론된다.
 
 
b) 인간상:
 
– 바이마르 고전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인간이 신과 동물의 중간존재라고 믿었다. 인간은 정신에 의해 신성을, 본능에 의해 동물성을 나누는 존재로서 이상적인 인간상은 육체와 정신, 사고와 감각의 조화속에서 균형을 찾은, 내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감각과 이성, 의무와 충동의 화해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정신의 소유자이다.
 
– Goethe와 Schiller는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시대 (프랑스 혁명, 절대주의의 위기, 초기 산업화)에 맞서 미학적 교육 프로그램 (Programm der ästhetischen Erziehung)을 제시: 예술과 문학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성(Humanität)을 갖추게 하고 사회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하며, 사회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세계시민들의 조화로운 공생을 향해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진화 과정이 되어야 한다.
 
– 괴테와 쉴러 두 시인은 질풍노도 시기의 자신들의 작품과 구분되는 고전주의의 문학적 구상을 구상하였다. 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대의 사회적, 정신적 상황의 변화(프랑스 혁명)에 의해 의문시되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제 감정의 충일과 천재숭배에 작별을 고했다.
 
– 이들에게는 또한 더 이상 그들 작품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이 우선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은 전체적 인간상(gnazheitliches Menschenbild)의 미학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르네상스 이래 지속되어온 낡은 교육 가치의 개혁을 둘러싼 투쟁의 종결을 기대하였다.
 
– 독일 고전주의 시대는 계몽주의의 이념, 경건주의와 감상주의의 내면성, 질풍노도의 비합리적 힘의 전개 등에 의해 준비되었다. (Lessing, Wieland, Klopstock, Herder)
 
– 새 사조는 빙켈만 Johann Joachim Winkelmann에 의해 도입되었다. 그의 『회화와 조각예술에서 그리스 작품의 모방에 관한 고찰 Gedanken über die Nachahmung der griechischen Werke in der Malerei und Bildhauerkunst』 (1755), 『고대 예술의 역사Geschichte der Kunst des Altertums (1764/67)』를 통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독일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리스 상>의 매개자가 되었다. 빙켈만은 고대와 그리스 문화를 현대의 삶과 예술창작을 위한 전범으로 제시하였다.
 
– Das allgemeine Kennzeichen der griechischen Meisterstücke ist eine edle Einfalt und stille Größe - sowohl in der Stellung als im Ausdruck. So wie die Tiefe des Meeres allzeit ruhig bleibt, die Oberfläche mag noch so wüten, ebenso zeiget der Ausdruck in den Figuren der Griechen bei allen Leidenschaften eine große und gesetzte Seele.
 
– 그리스 명작/걸작들의 보편적 특징은 고상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이다 - 포즈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바다는 표면이 사납더라도 그 심층은 항상 잔잔한 것처럼 그리스인들의 (조각)상들의 표현은 모든 정열에도 불구하고 위대하고 침착한 영혼을 보여준다.
 
– 이 문장 속에는 독일 고전주의로 이끄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표현되고 있다. 빙켈만이 제시하고 있는 조화를 바탕으로 하여 작가들은 이제 이성과 감정, 정신과 감성의 균형을 추구하였고, 이것은 섬세한 시학 속에 반영되었다.
 
– 독일문학의 고전주의 시기는 한편으로는 괴테와 쉴러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후 고대에서 유추한 문학/미학의 이상적 요구에 부응하던 수십년간을 가리킨다. 이들은 삶의 태초의 상들(Urbilder)을 시간을 초월하여 지속적인 형태로 묘사하려고 하였다. 그밖에 소재와 이념, 내용과 형상을 전형적이고 상징적인 문학 속에서 통합시키려 하였다. 두 시인의 이러한 창작 시기를 Hochklassik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문학의 전성기"라고 일컬어지는, 위대한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1775~1830의 시기를 광범위하게 고전주의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경우 Hölderlin, Kleist, Jean Paul, Hebbel 등이 괴테와 쉴러와 더불어 고전주의 작가로 간주된다.
 
– 오늘날 고전주의가 독문학사에서 지니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독자들의 관심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괴테와 쉴러의 작품보다는 August Wilhelm Iffland 과 August Kotzebue 의 감상적 멜로물이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Friedrich Schlegel 과 Novalis와 같은 초기 낭만주의 작가들은 고전주의의 이상에 열광하기도 했지만 Jean Paul에게는 바이마르 고전주의에서 부각된 Winkelmann의 고전주의 이상이 사회적 인간적 현실로부터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으며, 이러한 입장은 후에 <3월전기>의 시인들에 의해 이어진다. 예를 들어 Georg Büchner는 쉴러의 미학과 인류학에서 "인간 본능의 치욕적인 경멸 eine schändliche Verachtung der menschlichen Natur" ("Lenz")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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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