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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륙 놀이,66
​쌍륙雙六 놀이는 편을 갈라 차례로 주사위를 던져 말을 써서 말이 먼저 궁에 들어가기를 다투는 놀이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상류계층 사이에서 국한되어 전해오다가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게까지 알려져 폭넓게 행해진 것으로 보이며, 주로 정초나 농한기에 많이 놀았다고 합니다. 이번 설날에 쌍륙놀이를 해보면 어떨까요?
​쌍륙雙六 놀이는 편을 갈라 차례로 주사위를 던져 말을 써서 말이 먼저 궁에 들어가기를 다투는 놀이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상류계층 사이에서 국한되어 전해오다가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게까지 알려져 폭넓게 행해진 것으로 보이며, 주로 정초나 농한기에 많이 놀았다고 합니다. 이번 설날에 쌍륙놀이를 해보면 어떨까요?
 
신윤복 풍속화 : 쌍륙에 빠지다.(쌍륙 삼매)
 
 
 
 
●쌍륙(雙六)의 역사와 놀이방법
 
Ⅰ. 쌍륙의 명칭
쌍륙(雙六)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 행해졌던 주사위놀이로서, 그 기원을 고대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갖는다. 그리고 놀이가 행해진 지역이 광범위한 탓인지 명칭 또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쌍륙(雙六)은 우리나라에서 쌍륙(雙陸), 악삭(握鷺), 상륙(象陸:吏讀), 상육 등으로, 중국에서는 쌍록(雙鹿), 박륙(博陸), 악소(握塑), 십이기(十二), 육채(六采), 선채(選采), 육갑(六甲), 장행(長行) 등으로 불리었는데, 각각의 명칭은 놀이방법, 놀이도구 등 다양한 측면에서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쌍륙(雙陸)은 말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쌍륙판 양쪽으로 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리고 악삭(握鷺)은 나무 말을 잡고 놀기 때문에, 선채(選采), 육갑(六甲)은 놀이도구인 주사위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 한다. 쌍륙은 보통 15개의 말을 사용하여 놀지만 12개나 16개의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십이기(十二)라는 이름은 12개의 말을 가지고 놀았던 것에서 연유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쌍륙, 장행, 악삭이 같은 종류의 놀이일 뿐 동일한 놀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문헌『중화전통유희대전(中華傳統遊戱大全)』(1990)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대의 유희 중 장행이 있는데, 이 놀이의 도구는 말과 판으로 이루어진다. 말은 노란색과 검정색 각 15개가 필요하며 주사위는 두 개를 던져 말을 옮기며 논다. 놀이방법은 악삭에서 기원해서 쌍륙에서 변해 왔다(今之博戱, 有長行最甚. 其具有局有子,子有黃黑各十五, 擲采之狎有二. 其法生于握鷺, 變于雙陸)
 
위의 글은 장행을 설명한 글로 악삭이 쌍륙의 원형이며, 장행은 악삭과 쌍륙을 기초하여 중국에서 생겨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들 모두 비슷한 시기에 행해졌으며 비슷한 놀이도구와 놀이방법을 갖춘 놀이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 쌍륙을 범어(梵語)로는 파라새희(波羅塞戱), 일본어로는 스코로쿠(すごろく), 영어로는 백게몬(Backgammon)이라 하는데, 그 명칭만 보아도 이 놀이가 전 세계에 걸쳐 널리 행해졌던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현재까지도 이 놀이가 행해지고있는데, 지금의 놀이규칙은 1920년경에 자리잡기 시작하였으며 1931년에는 국제규칙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1964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까지 개최되었다.
 
Ⅱ. 쌍륙의 역사
쌍륙이 시작된 시기는 고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데, 쌍륙의 가장 오래된 형태가 발견된 곳은 바빌로니아의 아브라함 성지(聖地)이다. 이것은 B.C. 3천 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의 것으로 나일 강변의 피라미드,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시대의 여러 유적 및 폼페이 유적 등지에서 여러 놀이판이 발견되고 있다.
 
이 놀이가 중국에 전해진 것은 훨씬 후 2세기경 조위(曹魏)시대로 추정된다. 천축(天竺)에서 호국(胡國)으로 전해진 것이 다시 중국 내륙지역으로 퍼졌으며 이후 수당(隋唐)시대까지 인기를 누려 왔다고 한다.쌍륙은 서축(西竺: 고대 인도)에서 시작하여 조위시대에 중국에 전해졌는데 양, 진, 위, 제, 수, 당 시대까지 유행했다(故名雙陸始于西竺流于曹魏盛于梁陳魏齊隋唐)
 
쌍륙은 쌍록(雙鹿)이라고도 한다. 고대 놀이의 하나로서, 천축에서 전해져서 남북조, 수, 당시대까지 널리 행해졌다(雙陸雙陸又名‘雙鹿’.古代博戱之一, 傳自天竺(印度), 盛于南北朝, 隋, 唐)
 
중국의 고문헌『오잡조(五雜俎)』에 전해져 오는 고사를 통해서도 쌍륙이 호국(胡國)을 통해 중국에 전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고사의 내용을 보면 호왕(胡王)의 동생이 죄를 지어 죽게 되었는데, 동생이 감옥에서 악삭(握鷺)을 만들어 바쳐 자신의 뜻을 알리고자 하였다. 악삭은 말이 홀로 있으면 위험하지만 두 개 이상이면 상대편 말에게 쉽게 먹히지 않으므로, 이를 본 호왕이 느끼는 바가 있어 동생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중국으로 건너간 쌍륙이 다시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 무렵으로 보인다. 중국 당나라 학자 이연수(李廷壽)가 편찬한『북사(北史)』 권94 백제전(百濟傳)을 보면 ‘백제에 투호, 저포, 농주, 악삭 등의 잡희가 있다(有投壺, 樗蒲, 弄珠, 握鷺등 雜戱)’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백제시대에 이미 우리나라에 쌍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시대의 쌍륙판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것은 없으나, 그 모습을 일본 정창원(正倉院)에 전해지는 쌍륙판의 모양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쌍륙판은 ‘목화자단쌍륙국(木畵紫檀雙六局)’이라고 불리는데, 신라의 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 주장된다.
 
쌍륙은 일본에서 스코로꾸(すごろく: 雙六)로 통칭되는데, 쌍륙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으로 보아 7세기경으로 추측된다. 『일본서기』권30 지통천황(持統天皇) 3년조(年條)에 ‘쌍륙을 금지한다(十二月己酉朔丙辰禁斷雙六)’라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비슷한 시기의 유품인 목화자단쌍륙국(木畵紫檀雙六局) 등이 일본 정창원에 전해오고 있다.
 
 
목화자단쌍륙국(木畵紫檀雙六局)을 신라의 유품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3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쌍륙판에 새겨진 문양이 신라의 것과 매우 유사하며, 판제작에 사용된 공예기법은 그 시대의 일본이 갖고 있던 기술을 능가한다. 둘째, 판 제작에 사용한 재료들이 일본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인데, 당시 일본의 조선술과 항해기술로 외국에서 그러한 물건을 수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신라는 발달된 조선술로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셋째,판을 제작하는 데 사용된 공예기법들이 후대에 전승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창원 쌍륙판은 당시 부유한 일본귀족들이 신라로부터 구입한 물품들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을 보았을 때, 쌍륙은 바빌로니아, 인도, 이집트가 밀접해 있는 아시아 서남부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는 동시에, 동쪽으로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 까지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Ⅲ. 우리나라의 쌍륙
우리나라에서 쌍륙이 처음 행해진 것이 언제인지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나 백제때 악삭이 행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 무렵이나 그 이전부터 이 놀이가 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상류계층 사이에서 국한되어 전해오다가 조선 후기에는 민간까지 알려져 폭넓게 행해진 것으로 보이며, 주로 정초나 농한기에 많이 놀았다고 한다.
 
쌍륙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헌으로는『취설(聚說)』,『쌍륙해(雙六解)』,『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고려사(高麗史)』, 『목민심서(牧民心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견한잡록(譴閑雜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재물보(才物譜)』, 『조선부(朝鮮賦)』등이 있다.
 
송나라 문헌『북사(北史)』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무렵 쌍륙 놀이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지만, 연대를 알 수 있는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최초로 쌍륙이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문헌『동국이상국집』이다. 이 책은 고려시대 학자 이규보(李奎報)의 시문집인데,‘전 이지와 문 장로가 찾아와서 쓴 나의 강남집 중의 시운을 차하다(次韻全履之文長老見訪用吾江南集中詩韻)’라는 시에 ‘옥으로 만든 판에서 쌍륙을 친다(玉局爭雙六)’라는 구절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쌍륙이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옥으로 쌍륙판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쌍륙은 특정계층의 호사스런 오락이었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김시습(金時習)의 매월당집(梅月堂集)을 보면 ‘륙이야! 라는 외침에 놀라 취해 졸다 깨어나다(六大呼來午夢醒)’라는 시구가 나오는데, 이 구절을 통해 이 놀이가 얼마나 흥미진지하게 진행되었는가 짐작할 수 있다. 놀이주체들의 열중과 몰입은 이 놀이에 대한 사회적 우려로 이어졌는데, 『조선왕조실록』중종 20년(1525년) 기록에는 형조 판서 조계상(曹繼商)과 도승지 이세정(李世貞)이 자주 집에 모여 쌍륙을 두었으며 두 사람이 자주 모여 오랜 시간을 보내므로 역적모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받은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 놀이에 대한 우려는『견한잡록』과『조선부』에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바둑과 쌍륙 같은 놀이를 민간 자제들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局雙陸之類民間子弟皆不許習) 다만 혹 즐기다가 뜻을 상실하는 자도 있으며 혹은 도박으로 재산을 날리는 자도 있으니, 잡기는 이로움은 없고 손해만 있다 하겠다(但或有耽玩喪志者或有賭博傷財者雜技可謂無益而有損也)
 
『조선왕조실록』에도 쌍륙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조선 중기까지 이 놀이를 즐겼던 계층과 그것이 행해졌던 장소의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부원군(府院君), 빈(嬪)과 공주들, 형조판조 등 비교적 상류계층이 즐겼던 놀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풍속화가인 신윤복(申潤福)과 김득신(金得信)의 그림을 보면 평범한 차림새의 여인과 선비가 쌍륙을 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따라서 조선 후기로 가면서 이 놀이가 좀 더 다양한 계층으로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한제국 말의 풍속화가 김준근(金俊根)의 기산풍속화(箕山風俗畵)와 1930년대에 나온 최운식의 춘화첩에도 쌍륙판이 등장하고 있어, 20세기 초반까지도 계속 행해졌던 놀이임을 알 수 있다.
 
 
 
 
Ⅳ. 놀이도구와 놀이방법
쌍륙을 놀기 위해서는 쌍륙판, 주사위 두 개, 그리고 서른 개의 말이 필요하다. 쌍륙판은 말판이라고도 부르는데, 가로 70~80cm, 세로는 40cm 내외 크기의 직사각형이다. 테가 높게 둘려진 것이 일반적이나 테가 없거나 낮게 드리어진 쌍륙판도 있다.
 
 
쌍륙판 안에는 <그림 4>에서처럼 검은 선으로 밭(田또는 梁)이라 부르는 구획을 그려 넣는다. 각 판마다
크기나 모양은 차이가 있지만 여섯 개의 밭을 상하, 좌우가 대칭이 되도록 모두 네 군데에 그려 넣는 것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좌우의 여섯 개의 밭 사이에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칸을 크게 그려 넣는다.
 
말의 모양은 <사진 2>, <그림 5>와 같이 반구(半球)모양에 뾰족한 탑이 올라와 있는 형태이다. 중국의 말은 <사진 3>, <그림 6>와 같이 우리나라 말에 비해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말은 두 가지 색으로 채색하는데 상하(上下)의 색을 다르게 칠한다. 상하 두 색의 배치를 다르게 하여 상대편 말과 자기편 말을 구분한다. 색은 홍색과 녹색을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견한잡록』의 기록을 보아 흑색과 백색의 색을 사용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간혹 쌍륙판에 서랍이 달려 있는 것도 볼 수 있는데, 말과 주사위를 사용한 후에 넣어두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그런데 국립민속박물관 3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쌍륙도구를 보면 쌍륙판에 말을 담는 망사 주머니가 딸려 있다. 망사 주머니는 종이를 꼬아서 만든 것인데, 놀이가 끝난 후에 여기에 말을 담아 보관하였다고 한다.
 
 
 
 
쌍륙의 놀이방법은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15개의 말을 갖고 노는 놀이를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쌍륙은 두 사람 또는 두 편으로 나눠 각기 15개씩의 말을 정해진 방식대로 배치한 뒤 2개의 주사위를 동시에 던져 나온 눈의 수에 따라 말을 옮기는 놀이이다. 말을 처음 놓은 위치는 정해져 있는데, 자기 편 안육에 말 5개, 바깥육에는 3개를 놓고, 다른 편 안육에는 2개, 바깥육에는 5개를 놓고 시작한다. 그 모양은 <그림 7>과 같다.
 
그러나 말을 놓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북한 학자들이 쓴 책인『조선의 민속놀이』(1964)에는 16개의 말을 사용하여 쌍륙을 논다고 기록하고 있다.이 때 말을 처음 놓는 위치는 <그림 8>과 같다.
 
 
 
 
쌍륙판에 정해진 위치에 맞게 15개씩 벌여 놓은 후에는 2개의 주사위[采]를 죽통(竹筒)에 넣거나 손으로 흔들어 던져, 나온 수만큼 말을 전진시킨다 말을 자기편의 안육에 모두 넣거나, 집을 지은 다음 말을 놀이판 밖으로 모두 빼내면 승리한다. 다시 말해 승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6개의 밭에 한 개 이상의 말이 들어가는 방법과, 집을 지은 다음 말을 놀이판 밖으로 빼내야 이기는 방법이다. 최남선의『조선상식』을 보면 ‘狎兒이 쌍을 던져 사위대로 행마하여 먼저 입궁(入宮)함을 다툰다.’라고 표현하고 있어 이 놀이가 전쟁놀이처럼 행해진 것일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나온 수(눈)의 조합을 잘 이용해서 상대편 말을 많이 잡고 유리한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주사위를 던져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스물한 가지이며 각각의 경우를 부르는 명칭이 있다. 주사위의‘눈1’은 백(白), ‘눈2’는 아(亞), ‘눈3’은 삼(三), ‘눈4’는 사(四), ‘눈5’는 오(五), ‘눈6은’육(六)이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나온 눈이 순서쌍(1, 2), (5, 6)이면 각각 백아(白亞), 오육(五六)이라고 한다. 만약 같은 눈이 나오면 중(重)을 사용하여 중일(重一), 중아(重亞), 중오
(重五), 중육(重六)라고 한다.
 
(1, 1) 중일(重一) (2, 2) 중아(重亞) (3, 3) 주삼(朱三)
(4, 4) 주사(朱四) (5, 5) 중오(重五) (6, 6) 중육(重六), 육육, 줄륙
(1, 2) 백아(白亞) (1, 3) 백삼(白三) (1, 4) 백사(白四)
(1, 5) 백오(白五) (1, 6) 백육(白六) (2, 3) 아삼(亞三)
(2, 4) 아사(亞四) (2, 5) 아오(亞五) (2, 6) 아육(亞六)
(3, 4) 삼사(三四) (3, 5) 삼오(三五) (3, 6) 삼육(三六)
(4, 5) 사오(四五) (4, 6) 사육(四六) (5, 6) 오륙(五六)
 
위에서 보았듯이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것을 중(重)이라 하는데 (3, 3)과 (4, 4)는 독특하게 주삼(朱三), 주사(朱四)라고 한다. 이에 관련된 고사가 있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는 평소 쌍륙을 즐겼는데, 하루는 현종이 중삼(重三)이 나오면 양귀비에게 5위(오위: 오품) 벼슬을 내릴 것이라 약속했다. 그런데 던진 주사위가 실제로 중삼이 나왔다. 이를 본 양귀비가 중사(重四)가 다시 나오면 5위를 정말로 자신에게 달라고 하였는데, 말한대로 중사가 나왔다. 그래서 현종은 양귀비에게 오위의 벼슬을 내렸는데, 오위는 붉은 옷을 입는 벼슬이므로 이 때부터 중삼과 중사를 주삼, 주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중일을‘빽빽이’라고도 하는데 백백(白白)이라는 발음을 세게 발음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 6이 나오면‘육육’또는‘줄륙’이라 하는데 줄륙은 중륙을 부드럽게 발음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쌍륙에 적용되는 규칙은 지방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데 공통적인 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상대방의 말이 둘 이상 있는 밭에는 말을 놓을 수 없다.
(2) 한 밭에 5개 이상의 말이 들어갈 수 없다.
(3) 같은 숫자가 나오면 말 2개를 한꺼번에 옮길 수 있다.
(4) 말들을 밖으로 내는 데는 주사위의 숫자가 지나쳐도 상관없다.
(5) 던지지 않고 쉴 수 있다.
(6) 뒤로는 갈 수 없다.
(7) 말 2개가 있는 곳을 지나쳐 갈 수는 있다.
(8) 귀향말이 있으면 다른 말을 움직일 수 없다.
(9) 잡혀 나간 말은 반드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쌍륙 놀이에 사용되는 용어 또한 지방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귀향말’‘바깥육[外陸]’‘안육[內陸]’‘행마(行馬)’‘바리’등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귀향말은 상대편 말에 잡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말, 즉 말판 밖으로 쫓겨난 말을 뜻한다. 바깥육과 안육은‘집 밖’과‘집 안’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신의 말을 모두 자신의 집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행마는 말이 움직이는 것을 뜻하고, 바리는 혼자 있어서 상대편이 잡기 쉬운 말을 뜻한다. 『광주의 민속놀이』(1994)에서는, 말을 넘어뜨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때린다’라고 하고, 그리고 상대편 말이 2개 이상일 때에는 때릴 수 없어 그곳에
진행할 수 없는데 이럴 때를 ‘발 디딜 데가 없어서 못 넘어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김영진 : 국립민속빅물관 연구원
 
● 전통놀이 지도사 양성 과정의 쌍륙 실전 : 이상주
 
2014년 하반기 서울시민대학에서 전통놀이 지도사 과정에서 받은 교보재를 중심으로 작성합니다.
 
 
 
 
말판(15개의 말)
 
 
 
말(밑이 자석으로 되어 있어 말판에 잘 붙음)
 
 
 
주사위 2개
 
 
 
 
 
 
 
 
 
말 놓기(15개)
 
 
 
 
 
 
 
 
 
1.4(백사)
 
 
 
6.6(쌍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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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쌍륙 놀이,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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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