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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19:07) 
◈ 덕유산 백련사
2015년 2월14일 덕유산 백련사 사찰기행입니다.
2015년 2월14일 덕유산 백련사 사찰기행입니다.
​먼저 마음에 드는 법정스님의 글로 시작합니다.
보드랍게 흐르는 물도 한겨울 꽁꽁 얼어붙을 수 있듯
우리들의 마음도
바늘하나 꽂을 틈없이 옹졸해 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닫혀있다면
 
오늘부터 모두 플어 버리싶시요.
 
마음이 물처럼
너그럽고 따뜻하게 흘러야
 
인생에서 화창하고
향기로운 몸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백련사(白蓮寺)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산107에 있는 조계종 소속으로 금산사의 말사입니다. 덕유산 구천동 계곡의 거의 끝부분인 해발 900여m 지점에 위치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 가운데 하나입니다.
 
덕유산 중심부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백련(흰 연꽃)이 피어나자 짓게 된 것이라고 전해옵니다. 무주구천동 14개 사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 하며 이 절은 구천동사(九千洞寺) 또는 백련암 등으로 불렸습니다. 1820년(순조 2)에 혜언(慧彦)이 백련사에서 화엄회(華嚴會)를 개설하였고, 1900년(광무 4) 무주부사 이하섭(李夏燮)이 가람(伽藍)을 중수(重修)하여 오다가 한국전쟁에 불타 1960년대 들어 옛 사지(寺址) 위에 선수당, 요사, 일주문,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천왕문, 우화루(雨花樓)등을 세우며 복원하였습니다.
 
이 곳에는 백련사지(白蓮寺址, 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 백련사 계단(戒壇, 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堵,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정관당 부도(靜官堂浮堵,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등의 유적(遺蹟)이 있습니다
 
백련사 유래입니다.
 
 
배치도 - 경사면을 활용하여 배치하였습니다.
 
 
 
눈 덮인 풍경(삼성각에서 바라본)
 
 
구천동 삼공리주차장에서 계곡따라 백련사 가는길(6km)은 무주 33경 중 제15경부터 32경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일주문(一柱門) -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덕유산 백련사" 현판은 탄허스님 글씨입니다.
 
 
 
 
 
석종형(石鐘形) 부도(스님 사리를 모신곳) 5기중 가운데가 매월당 설흔 스님입니다.
 
 
 
 
 
매월당 설흔 스님 부도 - 높이 1.6m, 둘레 2.8m.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백련사(白蓮寺) 일주문(一柱門) 옆에 위치하는데, 부도의 형태는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던 석종형이며, 3단으로 된 원형 지대석 위에 석종형 탑신을 올려놓았습니다.
 
 
엄청 나게 큰 전나무 사이로 백련사 천왕문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정관당 부도(靜官堂 浮堵,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1609년(광해군 1)에 건립된 정관당 일선선사(一禪禪師, 1533∼1608)의 부도입니다.
 
 
 
 
4천왕상 - 동서남북 상징합니다.
 
 
 
 
 
 
 
 
탄허스님의 우화루 글씨입니다.
 
 
범종각-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는 보았지만 목어(木魚)는 칮지못했고 연꽃 받침의 석종형태를 보았습니다.
 
범종각 - 일중 김충현의 글씨입니다.
 
 
원통전 -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명부전 -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입니다.
 
 
대웅전 - 정면 5칸,측면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대웅전 현판은 한석봉, 주련은 탄허스님 글씨입니다.
 
 
대웅전 - 한석봉 글씨입니다.
 
 
대웅전 주련(탄허스님 글씨) - 주련(柱聯)은 건물 기둥에 세로로 적은 글입니다.
 
 
조실당과 요사채입니다.
 
 
삼성각입니다.
 
 
 
 
 
백련사 현판 글씨 모음 (한석봉 = 한호, 탄허스님, 일중 김충현 등)입니다.
 
 
​▶한석봉
한석봉으로 더 잘 알려진 한호는 1543년 개성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의 서예가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온 아들에게 "자, 이제 불을 끌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떡을 썰테니.." 라는 가래떡 써는 어머니와 글을 쓰는 아들 한석봉간의 들었던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며 해(
楷)ㆍ행(
行)ㆍ초(
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능했다고 한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존숭도감서사관을 지냈다. 명나라에 가는 사신을 수행하거나 외국사신을 맞을 때 연석에 나가 정묘한 필치로 명성을 떨쳤으며, 「서경덕신도비」, 「행주승전비」 등 비문이 주로 남아 있다.
▶탄허(呑虛)스님​
​탄허는 전북 김제 만경에서 유학자였지만 천도교 신자로 개종한 항일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김금택(金金鐸). 13세까지는 정읍의 증산교의 일파 차천자교(車天子敎)에 있는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배웠고 1918년부터 1928년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득도하겠다고 결심한 후 1929년 에는 충남 보령으로 옮겨 14세 때 충청도 기호학파 최대 유학자인 면암 최익현의 문하 이극종(李克宗)으로부터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1934년 22세에 오대산 상원사(上院寺)로 출가했다. 이후 3년간 묵언(默言) 참선의 용맹정진으로 수행했으며, 15년간 오대산 동구 밖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1936년 6월에는 선교(禪敎) 겸수(兼修)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상원사에 승려 연합수련소를 설치했고 한암스님 앞에서 <금강경(金剛經)> <기신론(起信論)><범망경(梵網經)> 등을 강의했다. 월정사(月精寺) 조실(祖室), 오대산연수원 원장으로서 승려들을 지도했고, 1964년부터 1971년까지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을 역임했다.
1967년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 원장을 지내면서 팔만대장경의 한글 번역작업에 직접 투신,〈한글대장경〉간행에 공을 세웠다. 동양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그는 해외의 석학들을 위해 일본 도쿄대학의 동양학 세미나에서 화엄학 특강을 했다. 또한 타이완 국립 타이완대학교의 심포지엄에서 비교종교에 대한 특강을 하여 세계적인 석학으로 추앙받았다. 1983년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方山窟)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입적했다
 
​▶일중 김충현金忠顯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은 한국 서예계의 대가다. 그는 동생인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과 함께 한국 서예를 이끈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일중은 모든 서체에 두루 능했지만 예서에 특히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북 부안 내소사의 천왕문 주련(柱聯·기둥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귀)이 대표적이다. 일중이 일생의 영광으로 삼았다는 경복궁 ‘건춘문(建春門)’과 ‘영추문(迎秋門)’ 글씨 , 한글로 쓰인 ‘독립기념관’ ‘한강대교’ 등 다수가 남아있다.
 
 
 
2개중 1개는 하단만 남아있습니다.
 
 
다른 풍경 사진
 
 
 
 
 
 
★ 백련사 특징
▶​숲, 바람과 물을 만나는 구천동 계곡 6km의 평탄한 길은 풍경과 어울려 걷기에 참 좋습니다.
템플스테이 안내 063-322-3395 : 10월~익년 4월까자는 템플스테이가 운영되지 않습니다.
​출처 : 직접촬영. 포털 편집. 한국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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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