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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 마라톤 영화 《1947 보스톤》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앞에는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조각상이 있다. 필자는 주경기장을 자주 방문하여 공원에 있는 빗물 정원과 초본식물을 구경하고.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찾아가 대화한다. 요즘 사람들은 손기정 선수를 얼마나 기억할까?
추석 명절날 아내와 함께 마라톤 영웅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든 강제규 감독의 마라톤 영화 〈1947 보스톤〉을 관람했다. 손기정 감독과 남승룡 선수에 대한 이야기는 책이나 드라마, 만화책, 음악회로 많이 접했지만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당당하게 1등을 한 서윤복(徐潤福, 1923-2017년) 선수에 대한 영화는 처음이라 무척 스토리가 궁금했다. 미남 배우 임시완이 마라톤 선수를 얼마나 잘 해낼지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능숙하게 연기했다. 역시 배우는 팔색조처럼 놀라운 마술사인 것 같다. 강제규 감독이 다큐멘터리처럼 술술 풀어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잘 고증해 영화가 더욱 빛이 났다. 재미로 영화 평점을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9.9999를 줄 만큼 재미있고 유쾌했다.
영화 〈1947 보스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서울 송파구에 있는 롯데월드타워 영화관은 전 세계에서 제일 멋진 최신극장이다. 항상 영화관이 썰렁했는데 추석 명절날이라고 해서 그런지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항상 오늘처럼 영화관이 북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1947 보스톤〉은 손기정 감독 배역에 배우 하정우가 맡았고, 남승룡 선수는 인기배우 배성우, 서윤복 선수는 젊고 싱싱한 매력이 넘치는 임시완이 맡아 즐겁게 연기했다. 미국에서의 보증인 역할을 맡은 배우는 김상호가 맡았는데 능청스럽고 코믹한 연기와 통역을 잘하였다. 특별출연한 박은빈 배우의 연기는 신선하고 좋았다. 단역배우들도 모두 자기 배역을 충실하게 연기해 영화가 깔끔했다.
여기에 충무로에서 제일 유명한 미술 감독들이 모두 협력하여 멋진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최찬민 촬영감독, 박일현 미술감독과 최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놀라운 장면을 연출한 류재환 VFX 슈퍼바이저님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류재환 감독은 〈설국열차〉 〈신과 함께-죄와 벌〉 〈헌트〉를 통해 놀라운 장면을 보여준 감독이다.
현대 영화는 스토리도 매우 중요하다. 영화는 시나리오와 함께 시대성, 예술성, 작품성, 공간성, 대중성. 접근성, 홍보력, 자금력이 함께 뭉친 종합예술로 영화 한 편이 주는 경제적 효과는 정말 놀랄 만큼 엄청나다. 많은 사람이 영화관을 자주 찾아주고 사랑해 한국 영화가 더욱 활기차게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스포츠 영화가 별로 없어 심심했는데 추석에 신작이 공개되어 기쁜 마음에 아내와 같이 롯데월드타워 영화관을 찾았다.
응원하는 손기정 감독 '1947 보스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임시완을 마라톤 선수처럼 만든 권은주 감독에게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권 감독은 1997년 10월 열린 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26분 13초로 우승했던 여자 마라토너 선수이다. 이 기록은 당시 대한민국 여자마라톤 최고 기록이었다.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마라토너 서윤복 선수 배역을 맡은 임시완은 권은주 감독의 의해 마라톤 선수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임시완은 현역 선수들의 훈련량을 70% 이상 소화하며 마라톤 선수의 자세와 표정, 숨소리 등을 거의 똑같게 연기했다. 권은주 감독은 독하게 식단관리를 하여 배우를 완벽한 마라톤 선수로 변신시켰다. 마라톤 선수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훈련부터 시작해 강도 높은 실전 트레이닝까지 3개월간 계속 이어졌다.
'1947 보스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서윤복 선수의 단단한 체구를 비롯한 외적인 요소를 완벽 재현하기 위해 맞춤 운동 트레이닝, 철저한 식단 관리까지 병행하며 체지방을 6%대까지 낮추었다. ‘2019 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 10km 코스에 참가하여 실존 인물과의 일치율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배우는 촬영이 시작된 이후로도 틈틈이 마라톤 연습을 지속해 42.195km의 장거리를 버텨내는 근성과 차분한 성격까지 표현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훈련도 병행했다. 실제로 이봉주 선수 등 여러 마라토너의 조언을 받아들여 완벽한 선수가 되었다. 배우 임시완은 대회에 임할 때의 심경과 스타트, 피니시 라인에 섰을 때의 감정, 달리는 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세의 변화까지 체화하며 한 치의 의심 없는 마라톤 선수로 보이게끔 노력을 기울였다.
1947년 보스톤마라톤 서윤복 선수 우승장면
1945년 광복 후 손기정은 전국의 마라톤 꿈나무 20명을 자신의 안암동 집에 데려다 손수 밥을 지어 먹이며 정성을 다해 훈련을 시켰다. 마라톤 합숙소에 들어온 제자들의 모든 합숙 비용을 손기정이 혼자 뛰어다니며 마련했다. 그는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많은 선배로부터 사랑을 받고 지원을 받아 그 고마움을 후배들에게 그대로 실천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미국이 독립을 위해 종주국 영국에 봉기한 1775년 4월 19일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인 렉싱턴 콩코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마련한 대회로 1897년에 시작되었다. 손기정은 선배 남승룡이 알려준 미국 ‘애국의 날’ 기념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온갖 방책을 강구하다 미군정청 공보과장 이용선을 찾아갔다. 이용선 과장은 체육과장 스미들리(Guth Smedly) 여사를 소개해 주었고, 스미들리 여사는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프랭크 브리스톤 공보관을 소개해 준다. 브리스톤 공보관은 보스턴 마라톤조직위원회로부터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3명의 정식 초청장을 받아준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참가비용이 없어 고민할 때, 1946년 신한은행(현 한국은행) 총재를 지내고, 1947년 3월 대한육상연맹 회장으로 임명된 정환범(鄭桓範, 1903-1977) 총재가 앞장을 서고 대화를 해 미군정청(美軍政廳)이 초청비용을 마련한다.
대한육상연맹 회장 정환범
정환범은 1919년 3.1 독립투쟁 당시 캐나다 국적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년) 박사가 건네준 제암리학살사건 필름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16살 소년은 고무신을 싣고 서울을 출발하여 기차를 타지 않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상해까지 걸어갔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도착하여 김구 선생에게 필름을 전달해 사건을 국제적으로 알렸다. 소년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원과 임시정부 외무차장을 역임했다. 그는 20대에 유럽으로 건너가 일을 하면서 런던대학, 제네바대학,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경제학 박사를 받은 독립투사였다.
5개 국어에 능통한 정환범 박사는 1948년 대한체육회장을 잠시 역임하고 주중화민국 특사를 맡았다. 1949년 1월 주일본 대표부 공사로 임명되어 국가 간의 복잡한 문제를 잘 해결하였다. 대한육상연맹 회장을 2년간 맡고는 스포츠 행사에 관여하여 공로자이면서도 앞에 나서지 않고 공적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정환범 박사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조국의 독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세계적인 세균학자로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박사님은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캐나다에서 조달하여 많은 중고생들이 학업을 마치도록 도움을 주었다. 정운찬 전 총리와 김근태 등 많은 대학생이 도움을 받았다. 박사님은 외국인 1호 안장자로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독립유공자인 박사님 묘비에는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소년, 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박사님은 국가보훈처에 의해 2016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마라톤 선수단은 제51회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하여 1947년 4월 3일 미 군정청이 마련해준 미군 수송기를 타고 서울을 출발한 후 일본, 괌, 하와이를 거쳐 프란시스코를 경유해 보스턴에 도착했다. 베를린 올림픽의 우승자가 보스턴에 직접 온다고 소문이 나자 많은 기자가 들떠 인터뷰를 하려고 기다렸다. 서윤복은 보스턴에 도착해 무척 피곤한 상태였지만 컨디션을 조절하며 불타는 의지를 계속 불태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