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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수집(屑穗集) ◈
◇ 낚시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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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2. ~7.
계용묵
1
설수집(屑穗集)
 
2
낚시질
 
 
3
난생 처음으로 당고 쓰봉에다 등산모까지 받쳐 쓰고 낚시 도구를 메고 나서니, 어쩐지 그저 어색한 것만 같아 마음이 활짝 펴이지를 않고 몸매에만 자꾸 눈이 간다. 더욱이 손때라고는 묻어 보지도 않은, 아직 칠이 채 글지도 않은 것 같이 반들거리는 새 다랭이가 처음으로 낚시질을 나서는 신출내기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아 거기에도 신경이 쓰여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괜히 그저 낚시 다랭이를 이 손 저 손 바꿔 쥐게 만든다.
 
4
하긴 내가 낚싯대를 메고 나서게 되리라고는 내 자신조차도 참으로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조군은 아마 자기의 권유에 내가 자기와 같이 낚시질을 나서는 줄로 알는지 모르나, 무슨 낚시질은 고상한 취미라거나, 건강에 어떻다거니 하고 권유를 하였으나, 나에겐 하등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는 나대로 한번 하여 보고 싶은 충동을 새삼스럽게 받았을 따름이다. 어쩐지 요새 나는 사람이 싫어지며 무슨 우리에나 갇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함을 더한층 심절히 느끼게 되어 나를 온통 잊고 한번 살아 보고 싶은 생각이 나를 이 길로 이끌게 된 것 같다.
 
5
그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조군의 낚시질 강의에 낚시질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된 것이, 이 길로 나서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혹 모른다. 그리하여 조군이 애초에 낚시에 손을 아니 대었더라면 나 역시 그와 같이 낚싯대를 지금 메고 나서게 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6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가 나선 길로 같이 나서는 짓을 반가워하거니와, 낚시질꾼처럼 반가워함을 나는 일찍이 본 일이 없다. 어제 다방에서 만나, 나도 내일부터 낚시질을 나서련다고 그 뜻을 전했더니, 아, 그 반가워하는 품이란……. 조군과 더불어 사귀어 오기 무릇 20여 년에, 그것도 거의 매일같이 마주 앉아 놀면서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같이 즐거워하고 진심이라고 알게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왔지만 내가 낚시질을 나선다는 그 말을 듣고 반가워하는 그 표정은 실로 일찍이 그가 반가워 하는 표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그런 반가운 표정이었다. 이렇게 반가운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그런 심정이 그 표현 속에 흔연히 서리어 있음을 나는 확실히 보았다.
 
7
나도 반가웠다. 고기 잡는 것을 본위로 삼고 나서는 낚시질꾼이야 어디 있으랴만, 그까짓 고기는 못 잡더라도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 다 피하여 좋은 벗으로 더불어 수변에 나란히 앉아 자연인 그대로가 되어서 그날그날을 보내게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건 우리의 생활 주변에선 일찍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8
버스에서 내리니 행보로는 불과 십 분 미만에 낚시터인 장자못을 접어들게 된다. 조군은 선배답게 여기는 깊다느니, 저기는 얕다느니 하고, 또 수초가 많은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느니 하고 설명을 하며 앞장을 서서 걸어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낚시질꾼은 더 많이 앉은 것 같았다. 우리도 꽤 일찍이 나오느라고 서둘렀건만 벌써 나와 앉은 사람이 좌우의 뭇 주위에 얼마씩의 상거를 두지 않고 점재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냥 걸어 내려가던 조군은 활직같이 구부정하게 패어 들어간 우무러진 곳에 이르자, 이미 그곳을 마음속에서 점치고 나왔던 것처럼 다짜고짜 거기에다 도구를 내려놓았다. 나도 따라서 그 곁에 앉았다.
 
9
“자.”
 
10
하고 조군은 낚싯대 케이스의 단추를 떼며 나를 바라본다.
 
11
“자, 우리 멀지시 앉세. 낚시질은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는 재미없네. 더욱이 가까운 처지에서는.”
 
12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러면 자연히 이야기도 주고받고 하게 될 것이니까 낚시질에는 정신 통일이 잘 안 될 것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우리로서 느낄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느낌 속에서 나는 날을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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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우리 여기 그저 가지런히 앉아서 같이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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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도 케이스 단추를 같이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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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단추를 나도 따라서 떼는 것을 본 조군은 좀 당황해하는 기색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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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저기 저 아래로 내려가 앉게. 한참 내려가면 수초도 별로 없고 좋은 곳이 많이 있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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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좋다든 싫다든 이짝의 의견은 들어 볼 여유도 주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만 그저 훌쩍 일어서 도구를 걷어들고 총총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올라 갔다.
 
18
평소에 낚시질을 그렇게도 권하던 조군이, 아니, 어제 낚시질을 나도 하기로 마음을 결정하였노라는 소리를 듣고는 그렇게도 반가워하던 조군이, 오늘 낚시질 터로 나를 급기야 데려다 놓고는 평소에 볼 수 없던 싹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칼바람이 얼굴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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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의 이러한 거동을 보는 그 순간, 나는 장자못 가에 데려다 버림을 받은 존재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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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서 낚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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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 한 올이 안 잡히는 잔잔한 수면 위에 곤두선 두 개의 찌가 조용히 내 시야에서 가물거렸다.
 
22
해 뜨기 전에 나가야 큰 놈을 잡는다고 항상 붕어의 생리를 설명하던 서군은 지금에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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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물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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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맛도 못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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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위에서 들은 벌써 여러 마리씩 잡았던데. 조군은 일곱 치 가웃이나 될 놈을 한 마리 낚아 놓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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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급한 듯이 걸음을 멈추려고도 아니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27
그러나 자기의 찌에는 여지껏 이상이 없다. 나는 낚시를 들어 보았다. 미끼도 물린 그대로 있다. 다시 낚시를 던지고 깻묵을 또 한 번 더 뿌렸다.
 
28
보면, 건넌짝에서들도 가끔 한 마리씩 들어내는 눈치요, 옆 어디선지는 모르나 머지 않은 자리에서는 어지간히 큰 놈을 낚는지 낚싯대를 꺾이었다고 수선거리고들 있는데, 참 이상도 했다. 자기의 낚시찌는 오정이 가깝도록 까딱도 않으니. 초수면은 고기를 낚지 못하고 놓쳐 버릴 우려는 있을는지 모르나, 초수의 낚시라고 통 고기가 아니 올 이치는 없을 게 아닌가. 깻묵이 약한가, 나는 깻묵을 또 한 줌 찌 가에 널찍이 쥐어뿌리고 다시 낚시를 들어 미끼를 검사해 보았다. 피라미새끼 한 마리 와선 건드려 보지도 않은 흔적이다.
 
29
“오늘 참 낚시질 풍세 좋습니다. 바람두 한 점 없구.”
 
30
돌아다보니 이 변두리 사람인 듯한 풍채의 초로(初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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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잡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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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인커녕 고기라곤 구경도 못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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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세요! 저 아래서들은 꽤 많이들 잡던데요. 어떤 젊은 친구가 낚시 세 틀을 가지고 하기에 한 대 달래서 잠깐 동안에 내가 큰 놈을 한 마리 잡아 주고 올라오지요.”
 
34
하고 그 초로는 내 옆에 쪼그리고 앉더니, 내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한짝 낚싯대를 집어 든다. 그리고 줄을 당기어 미끼를 검사해 보려고 더듬어 잡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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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선생님 낚시질이 처음이로군요. 그러니까 고길 못 잡으셨지. 이 못물이 두 길도 넘는데, 요 지혜를 주어 가지고야 피라미 새낀들 집적거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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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이 두 길로 넘는다는 물속에다 두 뼘 가웃의 지혜! 만일 이 시골 사람이 아니었더면 진종일을 그 두 뼘 가웃의 지혜를 그냥 달아 놓고 앉아서 고기가 물릴까 하고 기다리고 앉았을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37
“아, 그것두 신통히두 지혜가 같습니다그려. 아니, 수심이 두 길두 넘는데다! 아침 한나절을 괘니 눈씨름만 허시구.”
 
38
“흐! 그게 다 세태 인심의 반영인가 봅니다.”
【원문】낚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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