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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麥) ◈
◇ 맥(麥) 2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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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2
김남천
 

1. 2장

 
2
테이블과 양복장 같은 것은 방에 붙은 것이 있으니까 새로이 끌어들일 턱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참고 서적도 많을 것이요 침구라든가 신변 도구 같은 것의 운반으로 하여 적지 않이 시간을 잡아먹을 이사일 줄 예상하였고 어련히들 주의야 하겠지만 동숙인들이 잠든 시간에 혹시 안면 방해가 되는 일이나 없을까고도 생각해보았던 만큼 자정도 되기 전에 발자국 소리 외엔 별반 요란스러운 음향도 없이 아주 쉽사리 간단하니 반이나 끝난 듯싶어졌을 때엔 무경이는 일변 안도하면서도 다소 실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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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집이 서울 안에 있으니까 간단히 가방깨나 날라오고 뒷날 차차 소용되는 대로 짐을 날라 들일는지도 모를 것이므로 무경이는 그런 것을 오래 생각지는 않았다. 이관형이와 문란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상상할 수가 없어서 다소 궁금하다면 궁금하였으나 이사 오는 사람이나 동숙인의 가정 관계를 소상히 알고 싶다는 필요하지 않은 악취미에서 벗어난 지도 이미 오래인 그이므로 이사가 끝나고 한참 있다가 하이힐이 복도를 지나 층계를 내려가버리는 것을 듣고는 그런 것에도 별반 오래 머리를 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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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도 물론 새로운 일이 생겨날 리 만무였고 여느 때보다 출근하는 사람이 많은 이 집안은 아침이 가장 뒤숭숭한 시간이라 문소리 발자국 소리 말소리 같은 것이 어느 방 어느 사람의 것인지를 분간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무경이는 어느 날이나 진배없이 일찌감치 일어나서 물을 끓여 세수를 하고 간단히 아침을 지어 먹었다. 9시가 출근 시간이므로 그때가 되기까지는 방안에서 책을 읽었다. 9시 치는 것을 듣고야 사무실로 나갔다. 무경이가 나가는 것과 교대해서 사무실을 치워놓고 스팀에 석탄을 지피는 일을 끝막은 강영감이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 10시가 되어 점심 벤또를 끼고 강영감이 나타나고 조금 있다가 주인이 나타났다. 무경이에게 2년 동안이나 일을 맡겨둔 주인은 오전중에 아무 때나 잠시 얼굴을 내놓고 장부나 검사해보고는 다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무경이는 그가 들어올 때를 기다려서 장부를 정비해두었다가 하루 동안의 일을 소상히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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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3층 22호에 있던 회사원이 나가고 밤 안으로 이관형이라고 하는 대학 강사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나간 사람의 보증금 중에서 이번 달 치를 제하고 지출한 것이 이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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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그는 전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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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온 사람의 회계는 아직 보지 않았으나 오전중에 계약이 끝날 것입니다. 오늘 들어온 걸루 헐라구요. 그리구 이건 각각 이번 달 치 방세들하고 또 이 지출은 전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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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가느다란 도장을 들고 하나하나 장부와 전표 위에 인장을 눌러 치고는 아무말 없이 입금 중에서 얼마를 남겨놓고 사무실을 나갔다. 식당을 한 번 돌고 복도를 삥 시찰하듯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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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나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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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뚱뚱한 몸을 길 위로 옮겨놓았다. 주인이 나간 뒤 얼마가 지나서 보일러를 돌아보고 온 강영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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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새루 들어온 양반 회계 끝났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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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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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여태 아무 소식두 없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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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감은 숙직실 앞으로 가다가 멈칫하고 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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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의 직업이 무엇이라구 허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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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돌아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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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사랍니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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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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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나직이 뇌이기만 하고는 그 이상 이야기를 잇지 않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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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번 채근해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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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무경이 앞으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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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오늘 일찍이 회계를 보기루 일러두었는데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학자님이시라 그런 건 통히 잊어버린 게로구먼요. 그럼 영감님 수고스럽더래두 한 번 올라가보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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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감은 잠시 눈을 꿈뻑꿈뻑하고 서 있었다. 오래지 않아 봄이라는데 그는 여태 털 떨어진 방한모를 귀밑에까지 푹 눌러 쓰고 보일러 칸으로 드나든다. 바지 위에 작업복이 낡아서 푸르등등한 놈을 껴 입고 윗저고리 위에도 털 떨어진 체부 옷을 단추가 2개나 떨어진 대로 껴 입고 있었다. 신발만은 아파트의 손님이 신다가 내버린 틀어진 것도 단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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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 올라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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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벗어서 놓고 맹숭맹숭하게 갓 깍은 머리를 갈구리 같은 손으로 한번 써억 젖혔다. 그리고는 슬근슬근 복도를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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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이는 강영감의 태도에서 마땅치 않아 하는 눈치를 느낄 수 있었으나 제 비위에 맞지 않을 때엔 가끔 있는 일이므로 공연한 오해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연세가 연세인지라 자기가 못마땅히 생각하여도 남의 앞에서 그런 것을 경솔히 지껄이지는 않는 성미였다. 그저 꿈뻑꿈뻑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것이 그러할 때의 표정이었다. 어젯밤 찾아왔던 양장한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도 강영감은 그런 표정을 지어 보였었다. 역시 그런 것이 원인이 되어서 일종의 오해까지도 품어보게 된 것일 게라고 생각은 해보는 것이나 아침 일찍이 회계를 보자고 언약해놓고서 일언 반구의 이렇다 할 말이 없는 것도 심상치 않은 일이거니와 11시가 되어오는데 식당에도 내려오는 기척이 없으니 어느 새 취사 도구를 정비해놓고 아침을 손수 지어 먹은 것인가 도무지 어인 일인지 감감 동정을 알 수가 없었다. 양장한 여자가 그런 사연을 통히 전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또 그랬었다면 그 양장한 여자라도 이르게 얼굴을 보이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도 노상히 생각되어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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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있는데 한참만에 강영감이 저으기 뚜우한 낯작을 하고 어슬렁어슬렁 위층으로부터 내려왔다. 하회가 궁금한데도 이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단 불유쾌한 표정이었다. 잠시 책상 언저리를 빙빙 돌다가 혼잣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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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얀 친구여 젊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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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마디 툭 배앝았다. 무경이는 종시 말썽이 생기나보다고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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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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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입술 위엔 웃음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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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 사람이 대학교 선생이라구?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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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그렇게 뇌더니 무경이의 앞으로 와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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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최 어떻게 된 사람인 걸 알 도리가 있어야지. 자아 이거 보겠나. 늘 하는 본새로 떵떵떵떵 그 노크라는 걸 허지 않었나. 대여섯 번 겹쳐 해두 도무지 하회가 없겠다. 그래서 또 한 번 커다랗게 두드렸더니 그제서야 누구인지 들어오시오, 점잖다면 점잖고 또 거만하다면 거만하달 대답이 들리길래 문을 비틀어보았더니 참말 문을 잠그지는 않었어. 그래서 낯을 문틈으로 들여보내려구 허는데 방안에 자욱한 연기 그대루 곰을 잡을 작정인지 그냥 담배 연기가 눈을 뜰 수 없게시리 가득히 찼더란 말이여. 그러나 나야 또 무어 글이래두 쓰면서 딴 정신이 없어서 담뱃내 찬 것두 모르는 줄 알었지. 침대에 번듯이 자빠 누웠는 줄야 알었을 도리가 있나. 그 입은 것허며 그 머리라 낯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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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입에다 옮길 수 없다는 듯이 주름살진 표정을 잠시 쭈그려뜨려 보이고 말을 끊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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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벌써 어젯밤부터 꼬락서니를 보고서 콧집이 찌그러진 줄 알었었지만, 자아 어젯밤 최선생 올라간 뒤에 그 양반들 이사오던 꼬락서니 좀 보았나. 그저 가방 하나만을 들고 차에서 내려서 껑충껑충 들어오는데 그 야단스런 부인네는 조고만 보꾸러미를 하나 들고서 앞서서 뛰어 들어가고 이 대학 선생이란 양반은 모자를 썼겠다, 무어변변한 양복깨미나 허긴 낡아빠진 외투는 꺼칠하게 뒤집어 썼으면서두…… 어쨌던 벌써 콧집이 틀려먹은걸…… 그런데 이 사람이 오늘은 번듯이 침대에 누워설랑은 그저 담배만 죽여대인 모양이지. 그래서…… 저 여기 규칙대로다 보증금 석 달 치하구 한달 치 선금일랑을 치르셔야 하겠는뎁쇼 하고 말했을 것 아니여. 그랬더니 그저 암말 않고 나가 있어 한마디뿐이라. ……아니올세다, 규칙대로 한다면 보증금과 선금 치른 뒤에야 이사하는 건뎁쇼. 선생님껜 특별히 규칙 위반으루다 대접해드린 것이올세다. 이렇게 또 한 번 공손히 설명해드렸는데도 그러게 잔말 말구 내려가 있으라는군 그래. 부아가 나서 견뎌배길 도리가 있나. 아니올세다 규칙대로 이행하시기 싫은 분은 부득불 방을 내기로 되어 있는뎁쇼. 하구서 한 번 을러놓았더니 허 허어 거참! 영감은 소용없으니 주인을 보내래눈! 돈은 사무실에 내려오셔서 치르게 되었는뎁쇼. 하고 또 한번 빈정거렸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잔말말고 나가서 주인을 보내! 하구 호령이겠지. 난 당최 그 입은 것하며 낯바다기가 무서워 수작을 걸기두 싫어서 앵이 문을 찌끈 닫고 내려와버렸지. 거참! 그 무슨 오라질 대학교 선생이람! 대체 어저께 왔던 그 여편네가 잡년야, 그게 바루 여급 아냐, 술집에서 술 따르는 그렇잖으면 활동 사진 박히는 광대년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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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점 경영하는 부인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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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변호해준다는 의식은 없었으나 좀 과장하는 버릇이 있는 강영감인지라 무경이는 나직이 그렇게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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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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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인네들 양복 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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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강영감은 기가 좀 사그러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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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점을 허는지 무얼 허는지 모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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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숙직하는 방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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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내 그럼 올라가 만나보지요. 허긴 나두 주인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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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이는 농말을 지껼여서 가볍게 취급해버리며 사무실을 나왔으나 물론 강영감의 보고는 그를 적지 않게 불쾌하게 만들었다. 22호실 앞에 서니까 제법 마음이 긴장되었다. 노크를 하니까 강영감의 이야기처럼 참말 ‘누구신지 들어오시오’하는 느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혼자 들어 있는 방이라 주저도 되었지만 가만히 핸들을 비틀고 얼굴보다 스커트 자락과 구두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찾아온 사람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그에 합당한 예의를 갖추라는 예고로서 하는 것이다. 잠시 동안을 두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연기에 찬 방안의 공기가 문 틈으로 새어 나왔다. 이윽고 그는 얼굴을 나타내고 열어젖힌 문으로 몸을 완전히 방안에 들여 세웠다. 그러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내는 그대로 번듯이 천장을 바라보며 담배만 피우고 있을 뿐 이편 쪽으론 눈길도 보내지 않았고 그러니 무경이가 구두나 스커트를 먼저 들여놓았다든가 하는 세밀한 기교도 알아줄 턱이 만무하여 통히 들어온 사람이 젊은 여자라는 것에도 생각이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얇다란 차렵이불을 배통이께로부터 발치 위에 덮었고 상반신은 여자의 것이기 확실한 화려하고 화사한 가운을 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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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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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내의 귀에 들리도록 인기척을 만들었다. 사내는 뻐끔히 머리를 들어 보았다. 여태껏 여자인 줄을 몰랐었던지 이윽고 벌떡 자리에서 상반신을 일으킨다. 머리가 뒤설켜서 구숭숭한데 면도를 넣은지 오래되는 얼굴 전체에는 지저분한 반찬 가시 같은 수염이 쭉 깔렸다. 얼굴은 해사했으나 몹시 창백한 것 같았다. 옆구리에 놓았던 빵 조각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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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자기의 모양하며 옷 주제하며가 여자의 앞이라 다소 부끄러웠었던지 잠시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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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주인은 안 계시고 제가 그 대리를 맡아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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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침착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다시 무뚝뚝한 낯색으로 표정을 고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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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네 집에선 어째 손님에 대한 예의가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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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외면을 한 채 항의 비슷한 트집을 쏟아놓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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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올시다. 여러 분을 대하게 되는 관계상 소홀하게 되는 수도 많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지금 올라왔던 영감님께서 어떤 실수를 하셨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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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이도 지지 않고 따질 것은 따져놓자는 뱃심이었다. 사내는 잠시 말을 끊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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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고 보증금이고 치르면 될 거 아닙니까. 손님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않고도 받을 돈은 받을 수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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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렇겠습지요. 그러나 말씀하셨던 언약이 잘 지켜지지 않고 또 어젯밤에 하신 말씀과는 잘 부합되지 않는 곳도 있으니까 아마 영감님의 욱된 생각에 그만 실수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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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든가 어젯밤에 하던 말과 부합되지 않는 곳도 있다니 대체 내가 당신네들과 무슨 굳은 맹서를 하였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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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이는 잠시 말을 끊었다. 사내는 침대에 다리를 뻗고 앉은 채 자기는 문 지방에 선 채 이런 다툼을 서로 건네고 있는 것이 우습기도 하였지만 아파트를 대표해서 이야기하는 이상 따질 대로는 따져본다고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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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는 지금이 초면이니까 그런 약속이 있었을 리 만무하지만 어저께 오셨던 부인네의 말씀을 신용하고 방을 빌려준 것이지 본시부터 선생님을 친히 뵈옵고 언약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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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자부심을 다소 건드려주는 말투였다. 사내는 침대에서 내려섰다. 양복 위에 여자의 가운을 입은 품이 어쩐지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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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내용의 언약입니까. 손님에게 아무런 무례한 짓을 하여도 움찍달싹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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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면바로 무경이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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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부인네의 말씀에는 손님의 직업은 제국대학의 강사요, 방을 빌리는 목적은 논문을 쓰시는 데 있다 하였고 방세와 보증금은 오늘 새벽에 치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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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문이 막혀버렸을 뿐 아니라 몸 자세에서도 기운이 쑥 빠져버리는 것이 옆의 사람의 눈에도 현저하게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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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만히 외면하고 침대 옆으로 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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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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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직하니 외듯 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다시 몸을 돌리어 이편 쪽을 보면서,
 
68
“내 직업이 대학 강사라든가 내가 이 방안에서 논문을 쓴다고 말했다면 그건 거짓이었으니까 내 입으로 취소하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결국 보증금과 방세 문제 아냐요. 남에게 방해되는 일이 아닌 이상 논문을 쓰던 글을 읽던 그런 것에 관계할 필요는 없을 테구 또 직업 같은 것두 대학 강사라야 된다는 규정이 있을 턱은 없을 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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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렇게두 말씀하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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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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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내는 양복 주머니에다 손을 넣었다.
 
72
“돈은 오늘 안으루 해드릴 터이구 또 그때까지 믿으시기 힘들다면 나를 인질로 잡아두는 겸 내가 몸에 지니구 있는 소지품이라곤 이 금시계가 하나 있을 뿐이니까 이걸 그럼 그때까지 맡아두십시오.”
 
73
시계를 꺼내서 보이었다.
 
74
“온 별 말씀을! 여기가 무어 전당폰 줄 아십니까?”
 
75
“그럼 어떡하라는 겁니까? 몇 시간의 여유도 할 수 없으니 당장에 나가라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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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으기 난처한 장면이 벌어지려 할 때에 마침 층계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고 어저께 왔던 양장한 여자가 커다란 물건 꾸러미를 들고 또 한 사람 운전수에게 이불 보퉁이 같은 짐을 들려갖고 올라오고 있는 것이 무경이의 곁눈에 띄었다.
 
77
“아이 안녕하십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78
하고 문란주는 문지방에 서 있는 최무경이에게 인사하였으나 그들의 소 닭 보듯 하고 서 있는 엉거주춤한 몰골을 보고는,
 
79
“어째 이러십니까. 무어 말썽이 생겼습니까?”
 
80
무경이를 향해서는 유쾌한 웃음을 보내면서 일변 운전수의 손에서 보꾸러미를,
 
81
“영치기.”
 
82
소리를 내어서 옮겨놓고 눈살을 찌푸리고 뚜우해서 서 있는 사내에겐,
 
83
“왜 이렇게 장승처럼 서 있수.”
 
84
그러나 곧 무경이 쪽을 보면서,
 
85
“내 인제 곧 내려갈께요.”
 
86
하고 말하였다.
 
87
무경이는 어떻게 또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갈 멋도 없고 부인네에게 지금 지낸 사연을 옮겨 들려주고 따져볼 맛도 없어서 그대로 멍청하니 서 있었고 또 이관형이라고 하는 방안의 사내도 어떡하라는 것이냐고 따지는 것도 한낱 실없는 일이었다. 생각이 든 것처럼 시무룩해서 침대에 가서 벌떡 누워 버린다. 어이가 없어서 무경이는 그대로 문을 닫아주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사무실에 돌아오니까 강영감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음이 불쾌하고 노엽다느니보다도 우스꽝스런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판국인지 저도 한몫 끼긴 하였으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 같다.
 
88
이관형이라는 사내는 어떠한 부류의 사람일까, 모양이나 차림차림은 그 지경이지만 물론 강영감이 보는 바와 같은 인상만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학 강사가 아닌 것도 확실하고, 그러면 문란주는 어째서 거짓 직업을 주워 부르면서 하필 대학 강사를 골라 대게 되었던 것일까. 회사원이래도 그만이요, 광산가래도 그만이요, 그밖에 어떠구레한 직업으로 손쉽게 불러댈 것이 많은 중에서 하필 대학 강사이었던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89
문란주가 내려왔다. 그는 사무실로 들어오며서 대강한 사연은 들었는지,
 
90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91
하고만 말하고는 상냥스레 웃어 보였다. 오늘도 역시 화장은 짙으게 이쁘장스럽게 하였다. 눈과 입술과 턱 밑으로 자세히 보면 퍽 솜씨 있고 능숙한 화장이었다. 그는 그 이상 아무말도 않고 핸드백을 열어서 지갑을 꺼냈다. 가느다란 흰 손가락 끝이 빨간 에나멜이어서 이상스레 연약하고 화사스런 인상을 주었다.
 
92
“보증금이 석 달 치니까 105원이죠! 그리군 1개월분 방세가 35원, 140원이면 되겠지요?”
 
93
무경이는 별로 대꾸도 하지 않고 펜을 들어 서류를 꾸미고 돈을 세어서 금고에 넣었다. 그러고도 숙박기를 꺼내서 정식으로 이관형이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94
“직업은요?”
 
95
하고 새삼스럽게 물어놓고는 직업란 위에 펜 대를 세운 채 가만히 기다려본다.
 
96
“글쎄, 직업이 생각해보니 우습게 되었군요.”
 
97
하고 머리 위에서 문란주가 말하였다. 시방 위층에서 그것 때문에 말썽이 있었던 것인지,
 
98
“실상인즉요, 얼마 전꺼정 대학 강사루 있었는데 그만 그 방면에서 실패를 하셨답니다. 그래서 어저께는 그냥 대학 강사라구 했었는데 그러니 지금이야 따져 말하자면 무직이지요. 당자두 무직이 좋다니까 그대루 무직이라구 적어두세요. 연령은 스물 일곱 아니 작년에 스물 일곱이었으니까 지금은 이십 팔…….”
【원문】맥(麥)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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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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