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창작과정에 대한 감상 ◈
카탈로그   본문  
1935.5.16~
김남천
목   차
[숨기기]
1
창작과정에 대한 감상
2
―작품 이전과 비평―
 
 

1. 1

 
4
이곳에 질서 없는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혹은 나는 이 질서 없는 이야기 속에 한 개의 지극히 빈약한 작가적 병졸로서의 비평가에 대한 요망을 포함시킬지는 모른다. 아니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글이 비평태도로부터 도식성을 구축하고 비평가는 다른 한 개의 비평방식에 대하여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경종, 다시 말하면 비평태도의 새로운 일면을 타개해보려는 외람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5
그러나 이 감상이 비평가에 대한 지시가 될 것을 희망하는 것도 또한 비평가를 계몽하려는 기도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여기에는 오직 비평에서 무엇을 배우려는 작가, 비평가에게서 수업이 많이 배우고 싶어하는 가장 빈약한 일 작가의 갈망의 표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만을 오로지 지원하고 있는 지식욕의 창일(漲溢)이 있을 뿐인 것이다.
 
6
그러므로 이 질서 없는 감상문 속에서 우리에게 있어서의 비평공작의 여태껏의 성과에 대한 말살, 혹은 비평의 무용 내지는 그 부정을 간직하는 사람은 진정히 사유하는 학도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언구(言句) 내지는 언사(言辭)의 피상에 구니(拘泥)하여 그 이야기되고 있는 의지적인 열정을 억압하는 한 개의 관료적 야만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
그리하여 감상은 지금 한 개의 논쟁의 회고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8
1933년 내가 ‘겔만의 삼림’속에서 자유로운 사바(裟婆)의 바람에 씻기게 되어 반년도 안된 8월에 종래에 시행되면서 있던 비평의 권위에 대하여 잡문을 가지고 항의한 데 의하여 나는 한 개의 우를 범한 적이 있었다. 이 ‘미욱한 제언’의 범행에 의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창작방법에 대한 빈약한 상식이 폭로의 앞에서 걸인과 같이 떨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내용한 독단에 의하여 나는 사면으로부터 조소와 경멸의 중심이 되었었다. 많은 선배 예컨대 임화, 백철, 이갑기, 박승극 등등 제군에게서 뿐 아니라 어떤 독자에게서까지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들이 비평과 반박과 조소와 경멸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그리고 이들이 설명해주는 친절한 과학적 분석에서 자신의 ‘반항과 항의’를 이론적으로 설복시키면서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너가 떠날 때에 너의 예술은 파탄하고 이 비평가의 분석에 너가 반항할 때에 너는 혼란과 독단으로 흘러가 드디어는 망막한 대해의 격랑 속에서 자기의 노정표와 행로를 상실하리라고 자신을 수긍시키면서도 마음 속 깊이 자기를 속이고 싶지 않은 의지와 자기의 창작적 체험에서 얻은 정열을 억제할 수 없었다 . 그리하여 이 두개의 상극은 그 후도 나의 심내(心內)에 있어서 맹렬한 격투를 그치지 않아 한때는 다보시 나의 ‘우(愚)’를 비웃어도 보았다. 이리하여 이 모순과 갈등은 나의 내심에서 아직도 종적을 감추기를 꺼리면서 말 안 듣는 억지쟁이 아해같이 바람벽을 두드리며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9
(『조선일보』1935. 5. 16)
 
 
 

2. 2

 
11
그렇게 해서 이것은 2년 전의 ‘미욱한 제언’을 다시 두 번 나의 손에 들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
 
12
그러면 이 ‘이년간이나 계속된 우’는 어떻게 해서 그 시초에 나의 마음에 싹터 왔으며 어떻게 하여서 폭발 되었을까? 또 그 ‘미욱’은 수많은 비판과 조소의 일제 사격 속에서 시달리고 부대끼면서 어찌하여 커다란 매력을 가지고 마치 숙명적인 독단인 것 같이 2년 뒤인 지금에도 나를 붙들고 떨어지지를 싫어하는가?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악마의 수레바퀴’인가?
 
13
이 모든 것을 사실에 즉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이것의 해명은 나로서는 다분히 자연적인 요소를 가진 서술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서는 모든 추, 모든 약점을 털어놓고 진심을 토로하는 마당을 만들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내 자신의 가면 박탈을 위한 만용의 칼을 쥐고 일로(一路), 논리를 잃고 열정 위에 몸을 싣고자 하는 것이다.
 

 
14
나는 그때 감옥이야기를, 서투르게, 가장 졸렬한 수법에 의하여 「남편, 그의 동지」와 「물」이라는 두개의 소설로 취급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우선 당시의 활동적인 비평가 임화 군에 의하여 엄격한 비평의 대상으로 조상(俎上)에 올랐다. 그는 이 두개의 소설, 특히 「물」에 대하여 해부의 메스를 들고 이 속에는 계급적 인간의 동물적인 생물학적인 측면만이 추구되어 있고 또 한 개의 적극적인 일면이 묘사되어 있지 아니하다고 지적하고는 이 두개의 작품 경향은 「공장신문」의 작자로서는 지극히 유감을 남기는 우익적인 일탈이라고 단정하였다.
 
15
나는 그의 비평의 전부에 긍정을 가지고 대하였다. 그리고 나의 작품경향의 우익적 일탈과 당시의 나로서 가장 부끄럽게 생각되었던 기회주의의 낙인까지를 나는 감수하였다. 그러난 나는 일찍이 취하지 못하였던 완고한 태도를 표시하면서 임화의 창작평에 항의를 제출하였다.
 
16
“「물」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비평사업은 끝나지 않는다. 단순한 작품상의 지적을 가지고는 작가는 그의 오류에서 구출될 수 없다. 비평가의 「물」의 오류의 근원을 「물」의 작자의 실천에서 찾아서 그것을 해명하는 데까지 그의 분석의 칼을 아껴서는 안 된다.”
 
17
이렇게 해서 결론된 독단이 ‘비평과 작품과 작가의 실천의 결합’이라는 것이었고 이것을 사상적으로 보장시키기 위하여는 유물변증법에서 ‘이론과 실천의 결부’라는 의장(衣裝)을 빌려 왔었다.
 
18
용이하게 상상할 수 있음과 같이 이 제언은 조소에 쌓여서 그의 자태는 연화(煙火)의 폭주 속에 매장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19
혹자는 유물변증법의 속물화라고 비웃었고, 혹자는 비평이란 작품에 나타난 것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작가의 실천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기도 하였고, 또 혹자는 실천이라 하니 너무도 지나친 실천의 남용이라. 만일 너의 말과 같이 비평가는 작가의 사생활, 이력까지를 아는 사람이어야만 된다면 비평가 될 자격이 누가 있겠느냐 등의 성실치 못한 태도까지를 취하였다.
 
20
나의제언은 아무에게서도 이해되지 않았고 그것은 수많은 관념적인 독단이 스스로 가고 마는 ‘라마(羅馬)에의 길’, 다시 말하면 절규의 열정의 순간적인 체온에서 그대로 필연의 냉각의 길로 자멸하여 버리고 그곳에 남은 것은 적막을 안은 자아의 고독이었다. 그러나 열정은 항복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끝까지 이겨보겠다는 젊은 야심은 두개의 대립을 극도로 상극시키고 이 상극과 격투의 다음에 남는 것을 고요히 기다려 보자는 잔학(殘虐)한 아음을 안게가지 하였던 것이다.
 
21
유물변증법에서 빌려왔던 이론의 완벽을 위한 의장이 벗겨져도 좋다. 문맥과 논지만을 보는 수사학적인 태도가 모든 나의 문장을 독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도 좋다. 미약한 세계관이 벌거숭이가 디어서 울고 있어도 좋다. 모든 부끄러움 모든 무지가 여기에서 폭로되어라. 나는 한낱 내가 「물」을 쓰던 창작적 과정, 그것을 엄밀히 추구하여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찾아보자고 하였던 것이다.
 

 
22
‘비평과 작품과 작가적 실천의 결합과 통일’- 이 독단에서 모든 문구상 난삽과 착잡한 개념을 여과하고 순화하여 이것이 이야기된 진의가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것만이 두 번째의 ‘우(愚)의 제언’을 이해케 하는 가장 좋은 행로 앞에 문을 열 것이며 이 글의 논리의 논리가 아니라 심리의 논리를 엿보고 이 제언에 나타난 한 작가의 의지적인 열정에 대하여 진실로 그릇되지 않은 추구의 정신을 가지는 데 의하여만 문제는 보다 더 이해의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23
(『조선일보』1935. 5. 17)
 
 
 

3. 3

 
25
결론의 해석이 아니고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과정의 탐구라고도 할 것인가! 이랬거나 저랬거나 우리들은 너무나 결론된 것만을 불경 외우듯 되풀이하고 또 그 결론에 머물러 그것의 복사에만 만능(萬能)하면서 어떤 인간, 혹은 사회적 현실이 그 결론을 얻기까지 여하한 사색적, 내지는 실천적 과정을 통과하여 왔는가의 면밀한 탐구에 대하여 너무 등한한 데서 혹은 불행하지나 않았던가!
 
26
그러므로 나의 주장은 결론의 이식(移植)이 아니라 결론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중요시하자는 것이다.-
 
27
이것이 만약 우리들의 결점에 대하여 기분(幾分)이라도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미욱한 제언’의 독단을 얻게 되었던 그 심리적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서만 ‘미욱’은 완화되고 이것에 의해서만 ‘독단’은 결박을 풀고 자유로운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8
여기에 한가지 사람을 가상하자! 그는 스물이 되기 전, 학생시대에 ‘나는 한 개의 적은 정치적 병졸로서 싸워질 때, 모든 예술을 집어던져도 좋다!’하고 외쳤다고 하자. 사실 나는 이런 예술지원자를 수없이 많이 보았었고 이 열정을 지극히 고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9
이 청년의 말에는 예술에 대한 경멸이 있는가? 아니었다. 예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자기의 예술을 가공에서 끌어다 현실적인 생활 속에 파묻고 그것과 끝까지 격투시키겠다는 가장 열렬한 불길이 이 속에는 있었다. 지식층으로서의 자기와 위대한 전 실천과를 연결시키고 그 새에 있는 구렁텅이(溝[구])를 급속히 메우려고 하는 열의, 작가이기 전에 우선 사회적 공인으로서 사회적 현실과 흙투성이가 되어 씨름하고 그 속에서 예술을 기르고 문학을 생산하자는 성급한 숨결이 이 속에는 있었던 것이다.
 
30
이것이 어느 정도에서 성공할 때 「공장신문」은 그의 형상성의 미약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찬사를 받았었고 이것이 쓰러져서 부서져서 재가 되었을 때 「물」은 그의 시체를 노변의 개굴 속에서 발견하였다.
 
31
그리고 작가의 정치욕이 아직 쓰러지지 않고 그의 속에서 고민이 용솟음을 치고 상극과 모순과 갈등이 성급하게 반성되고 뒤범벅을 개는 속에서 “비평과 작품과 작가적 실천을 연결시키라”는 독단은 모든 파탄을 각오하고 또 모든 논리를 상실하는 위험한 지대에 서서도 오히려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아! 제한(際限)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여! 그것은 정히 칸트의 정히 ‘경쾌한 비둘기’의 덧없는 몽상일런가!
 
32
그리고 이 상극과 고민에서 헛되이 자기를 회피하였을 때, 작년 1년간의 박화월의 문학적 업적의 형해(形骸)가 있다.
 

 
33
이미 감상이 여기 도달하였을 때 나는 두 번째의 ‘우의 제언’을 지시함이 결코 이르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34
그것은 그러나 2년 전의 그것과 같은 독단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비평 방식의 일면의 타개로서, 작품만이 아니라 작품 이전 작가의 창작과정(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작가의 인간적 실천이 예술을 담아지는 과정이다)에 대한 추구 - 이것이 이야기될 순서에 도달하였다.
 
35
(『조선일보』1935. 5. 19)
 
 
 

4. 4

 
37
비평은 작품을 현상적으로 해부하고 분석하고 지적하는 것만으로 시종하는 것을 유일의 방식으로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비평하는 정신이 만일 다른 사람의 일(문학)을 높은 고처(高處)에 앉아서 이모저모를 건드리며 ‘이것은 잘되었다, 못되었다’라고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작가와 함께 사회적 현실과 씨름하고 자기 자신의 인간적 존재를 그 속에 거짓없이 투입하는 것이라면, 비평가는 작가가 객관적인 대상을 향하여 그 속에 자기를 집어넣고 어떤 방식으로 생활을 영위하며 그 생활을, 그 보는 눈을 어떻게 수립하였고 그것이 어떻게 터져서 작품 속에 창일(漲溢)되어 있는가를 각자 자신이 되어서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38
작가는 현실과 생활과 실랑이하고 수다한 착잡한 창작과정을 지나서 한 개의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작가를 교육하고 지시하고 계몽한다는 비평가는 모든 창작과정과 작가의 인간적 육체적 실천을 무시하고 작품의 현상에 대하여만 냉각(冷却)한 분석을 내림에 그칠 때 작가가 이곳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건가!
 
39
신창작방법의 수립을 위한 비평가의 논의에서 지극히 고창된 과거에 대한 비판의 한가지를 찾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비평에 있어서의 관료적 태도와 정론적(政論的) 비평태도의 지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지적은 정당하다.
 
40
그러나 비평이 관료적인 것은 정치주의적 편향의 탓만도 아니었고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의 탓만도 아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41
작품을 작가의 창작과정과 작품 이전에서 연구하지 않고 작품된 결과만을 가리켜서 일률적인 태도로 대하였음에, 다시 말하면 작가에게 제재와 형식과 장르의 일률을 요구하였던 그릇된 정신으로 비평에 있어서도 관조주의에 가까운 객관적 비평태도만을 유일의 도식으로 대우한 것에 중요한 죄과의 씨의 한 알이 있었던 것이다.
 
42
작가가 작품만이 아니고 작가의 실천을 문제로 하여 달라고 말하였을 때 그것은 비평가의 할 일이 아니라고 공소(空嘯)한 비평가들이 지금 다시 신 창작방법의 결론만을 가지고 그것이 외쳐지는 정당한 과정을 무시하려고 덤벼든다.
 
43
(『조선일보』1935. 5. 20)
 
 
 

5. 5

 
45
광범한 객관적 대상의 대해(大海) 속에 두 손을 부르쥐고 뛰어들다가 그 속에 있는 모든 잡초의 가면을 박탈하고 모든 진주를 찾아내고 오직 이것을 잡아보려는 열정의 불길 속에서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이 과정이 아름다운 가장 고귀한 과정을 돌보지 않고 얻어 내인 진주의 어느 모에 티가 있고 어느 모가 광채가 없다 등등으로 마치 그 진주는 생활의 속에서가 아니고 사회적 공인으로서의 인간적 실천의 속에서가 아니고 기도나 천계(天啓)에 의하여 우연히 습득한 것으로 취급하는 비평가의 태도 - 이것만을 유일의 과학적(!) 비평이라 하여 신주대가리같이 모시는 비평가의 앞에 가장 더러운 개울물이 하수구통을 향하여 문을 열고 있다.
 
46
이렇게 해서 나는 예컨대 이기영씨의 『고향』의 주인공을 생각하여 본다. 이럴 때마다 나는 “김희준을 잘 그려졌다. 그것은 지식계급의 전형이다. 아니다”를 이야기하는 비평방식에서 한층 더 나아가 작자가 김희준을 창조하는 과정, 그로 하여금 이것을 창조케 한 작자의 전사회적 실천이 지식계급의 일 전형의 가면을 박탈하려는 용서 없는 리얼리스트적 정신에 의하여 작가 자신의 내면적 가면까지를 잡아 찢음에 주저치 않는 육체적 열정, 김희준 속에 던져서 창일된 작자의 생활과 세계관, 이것들의 탐구에 보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47
계급적 갈등이 비교적 평화한 시기에 있어서는 저주할만한 ‘이데올로기’가 그의 인간의 실질적인 육체를 떠나서 비약하기를 마음대로 한 때가 있었다. 화려한 가두적(街頭的) 진열과 슬로건의 공허한 부르짖음이 작가를 그의 육체적인 실질에서 떠나서 작위로 세계로 여행시킨 적이 있었다.
 
48
30년대 전후의 작가가 경형(經亨)한 바 작가는 당면과제의 형상화에 급급하였다. 그리하여 붓을 들 때 테제를 생각하고 붓을 놓을 때 다시 명제를 회상하였다. 그러나 한 개의 인물, 한 개의 진실을 추구하여 머물 줄을 모르는 리얼리스트작가의 열정은 그것이 객관적 현실을 향하여 용서 없는 칼을 둘러 열중할 때에, 그의 앞에는 공허한 테제도, 실질을 떠나고 육체를 떠난 슬로건도 보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혼미한 안개의 연속만 있을 것이다. 이 혼미의 속에서는 작가의 전 실천이 뭉쳐지고 빚어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전모가 적나라한 몸을 가지고 모든 관념적인 명제 앞에 거인과 같이 나서서 광분에 가까운 춤을 출 것이다.
 
49
그러므로 작가의 세계관과 머리와 마음과 전사회적 실천을 고양시키지 않고 헛되이 육체적 실질을 떠나서 모험을 시험할 때 그것은 공허한 슬로건의 절규로 되었고 자기의 사회적 실천을 고양시키는 대신에 자기의 계급적 국한성을 자각하고 그 안에 머물러 안이(安易)를 질락(質樂)할 때 작품은 정체되고 고정되고 심경소설의 아류에로까지 흘러가 버리었다.
 
50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격파하려는 정신은 리얼리스트 작가의 역사적 숙명일 것이다. (1935. 5 巴明山房[파명산방])
 
51
(『조선일보』1935. 5. 22)
【원문】창작과정에 대한 감상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8
- 전체 순위 : 4922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001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석방
• (1) 우마마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김남천(金南天) [저자]
 
  1935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창작과정에 대한 감상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