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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석(木石) 부인 ◈
◇ 제8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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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9~10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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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석(木石) 부인
2
제8장
 
 

1. 제1절

 
4
그날 오후 나는 통일호 식당차에 있었다. 2등에는 갈 엄두도 못 냈고 3등칸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다. 식당을 들여다보니 역시 자리가 비어 있었다.
 
5
사실 나는 그 반나절을 어떻게 보냈던지 전혀 기억에 없다. 송 노인이 콩 튀듯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 자리를 떴었다. 송 노인도 송 노인이었지만 아들도 아들이다. 송씨는 그저 멍청하니 서 있기만 했던 것이다. 아무리 엄한 아버지라지만 이런 경우에 그렇게 두 손 모으로 서 있을 수만 있으랴 싶기도 했던 것이다. 돌아서 오는 나의 행동을 방해하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다만 누구의 울음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으되 여자의 가느란 울음소리가 귓곁에 들렸을 뿐이다.
 
6
'인애였겠지…'
 
7
그 울음소리의 주인공을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하니 인애가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으리라 싶다. 인애는 저 자신이 그렇게 부르고 있듯이 목석 부인이다.
 
8
송씨 가문에 들어간 후로는 자기만의 이성도 판단력도, 아니 감정까지도 잃어버린 여인이었다. 모든 사고 방식은 송씨 가문의 전통 속에 흡수되어 있었다 부창부수라하여 지아비 . 이사에 아내는 좇으라 했고 제하자에 입이 있을 리 없고 보니 울음인들 있을 것 같지가 않다.
 
9
'은희였던지도 모르지…'
 
10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도 영동 가는 혼성 찻간에서다. 나는 내 숙소로 돌아오는 길로 초라한 나의 행장을 들고 역으로 나왔었다. 과목밭 관리인인 영감 내외의 눈에도 뜨이지 않았다. 몇 자 적어놓고 기려다 그것도 그만두고 말았다.
 
11
역에 나오니 통일호까지는 여섯 시간이나 여유가 있다. 마침 며칠 전 송씨가 책상 위에 놓고 간 용돈이 다행히도 차비는 되었고, 서울을 떠날 때 남은 돈도 몇 푼은 남아 있었고 또 다행히도 영동까지의 구간 열차가 있던 것이다. 나는 닥치는 대로 그것을 잡아탔다.
 
12
그렇게 하고 나왔고 보니 통일호에는 송씨가 나올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13
나는 송씨 가족은 더 말할 것도 없었지만 K시 사람의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영동까지 가면 약 삼십분 기다려서 통일호로 옮겨탈 수가 있다던 것이다.
 
14
말이 객차지 화물 혼성 차여서 걸상 판자란 것도 말이 아니었다. 해방 십 년이 되었고 정부가 선 지도 팔 년이나 되었다건만 아직도 객차의 걸상 하나 제대로 손길이 되지 못했던가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했으련만 나는 그런 것까지에 머리를 쓸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도 갖고 있지 못했었다.
 
15
생각하면 송씨 집에서 보낸 몇 달이 마치 꿈을 깨고 난 때와도 같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처음 읽었을 때의 바로 그런 감상이었다.
 
16
나는 어려서「보물섬」을 읽다 말고 잠이 깜박 들었다가 정말 보물섬 같은 별세계에 가본 일이 있다. 사람은 분명 사람인데 눈이 계란만큼씩 하고 코는 주먹 푼수나 되었으며 뿔까지 나 있었다. 한번 다리를 들면 웬만한 강은 성큼 건너뛰기도 하던 것이다.
 
17
마치 그 꿈을 깨고 난 때와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18
차에 올라서야 나는 그대로 K시를 떠난 것이 후회되었다. 극진히도 사랑하고 있던 사람을 마굴 속에 둔 채로 혼자 도망쳐 나온 그런 후회였다. 주 부인─인애는 구했어야 한다고 생각된 것이다. 개성도 잃고 감정도 말라버린 내 불행한 여성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오직 나만이 있느니라 했다.
 
19
그런 내가 이렇게도 비겁하게 혼자만 살짝 빠져나와버리지 않았던가?
 
 
 

2. 제2절

 
21
보통 한 정거장에서 이삼십분은 쉬면서도 혼성 열차는 그래도 겨우 통일호 시간을 대주었었다. 불과 십분을 남기고 나는 겨우 통일호로 옮겨탈 수가 있었던 것이다.
 
22
그렇게 조바심을 해서 겨우 붙든 차 통일호였건만 차에 오르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어두워진다 . 서울, 서울에서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던가?
 
23
자리를 잡고 나니 그동안 절제해왔던 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치밀어온다.
 
24
'술!'
 
25
그렇다! 술이다. 술을 절제해야 할 필요는 없다. 술을 절제하고 살았던 송씨 집에서의 몇 달 동안이란 실로 내 생애에서 가장 무모한, 그리고 무의미한 생활이었다는 생각이 세삼스러워 온다.
 
26
"못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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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에 정종을 청해서 우선 한컵 쭉 들이켜고 나니 막혔던 혈관을 터놓기가 한듯이 온몸에 생기가 든다. 술! 술,이는 정말 고마운 존재다. 이 단, 이 보람있고 값있는 것을 주리고 산 그동안이 정말 무의미했다. 나는 모파상의 「목걸이」란 소설을 읽은 생각이 나서 또 한번,
 
28
"못난 것!"
 
29
하고 커다랗게 웃어지던 것이다.
 
30
가짜 목걸이를 진짜 진주인 줄 알고 십 년간의 여생을 바쳤다는 그 주인공 부부도 그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지금의 나의 이 심정과 똑같았으리라 싶어진다.
 
31
네 홉짜리 두 병을 마시고 나니 얼근해온다. 나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돈의 부피를 만져보잔 것이다. 어쩌면 한 병쯤 더 해도 무관할 성싶었지만 혹시나 싶어 단념을 하고 말았다. 주머니 속을 무시하고도 얼마든지 술을 먹을 수 있던 명동이 세삼스럽게 낙천지 같다.
 
32
술기가 돌더니만 나는 나도 모르게 집을 떠난 소년처럼 슬퍼지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몽롱하니 취기가 도는 눈에 차창이 흐려보이는가 싶더니만 보고 있는 동안에 빗줄기가 가로 때린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었다. 나그네 한테는 비란 언제나 애수를 자아주는 법이지만 그날의 내게는 더욱 그러했다. 빗방울이 아니라 나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이라는 감상에 젖어 있노라니,
 
33
"여기 계셨군요!"
 
34
하고 호들갑스러운 여인의 음성이 나의 어깨를 잡아흔든다. 나도 순간 꿈인가 했다. 그래서 얼결에 고개를 홱 돌리고 나니 은희다.
 
35
"은희 씨가 어떻게?"
 
36
꿈같았다.
 
37
"저 서울 가는 길이야요!"
 
38
은희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아 앉으면서 장난치듯 웃어보인다.
 
39
"뭐 잘못했어요, 선생님?"
 
40
"아니, 은희 씨가 어떻게?"
 
41
"저 서울 가는 길이라니까요! 개학을 해서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것이 뭐 잘못이어요?"
 
42
"그야 그렇지만…"
 
43
"아이, 다리 아파 죽겠네… 식당 생각은 못하구 이 긴 찻간을 세 번이나 돌았네요! 누가 이런 데 이렇게 판을 차리구 앉으셨으리라구 상상이나 했대요?"
 
44
"대관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언제 타셨어요?"
 
45
"어떻겐 뭐 어떻게. K시서 선생님하구 한칸에 탔죠."
 
46
"나 영동서 탔는데?"
 
47
"아, 옳지! 그래 그랬군요! 그러면 그렇지. 바늘이 아닌 다음에사 이렇게 눈에 안뜨일 리가 없지. 꼭 세 번 맴을 돌았어요!"
 
48
"미안합니다."
 
49
내가 이렇게 사과를 하려니까 은희는 그 사과는 받지도 않고,
 
50
"그보다두 저두 뭣 좀 먹어야겠어요! 배가 고파 죽겠네! 선생님도 뭣 좀 잡수셔요! 약줄 더 하시든지. 빗줄기는 차창을 후려치구 애인은 두구 왔구… 예술가의 심희 어찌 술 한잔 생각이 없으시겠어요. 그러시죠, 선생님? 제가 잘 알지요?"
 
51
너무 재빠르게 조잘대는 바람에 말대답도 못하고 앉았으려니까 손가락을 까딱하여 보이를 부르더니,
 
52
"비프 둘 하구, 맥주 좀 주세요."
 
53
"난 먹었는데요."
 
54
하고 말리는 내 손을 밀어치우듯이,
 
55
"안 잡수시면 제가 먹겠어요!"
 
56
이렇게 나는 은희를 앞에 놓고 또 술을 시작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57
은희는 식사를 하면서도 종달새처럼 조잘거렸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맥주도 한두 컵은 하는 모양이다. 맥주가 처음이란다면 상이라도 찌푸리려만 은희는 찡그리기는커녕 몹시도 흥겨워해하는 낯빛이기도 했다. 은희의 얘기를 들으면 송씨가 은희를 정거장에 내보냈던 모양이다.
 
58
"오빤 당신이 나가시면 선생님이 더 안 들어오실 줄 아셨던 모양이야요. 전 여자니까 제가 나가서 붙들면 들어오시라고 생각하신 게죠."
 
59
"그럼 날 붙들러 정거장에 나오셨던가요?"
 
60
"그렇죠."
 
61
"그래놓고서 이렇게 서울로 가버리면 댁에서 기다리지 않으시겠습니까."
 
62
"밸 걱정 다 하시네요! 여성 아니라 여왕이 붙들기로니 다시 끌려들어갈 사람이 있겠어요? 오빠 생각이 어리석지! 전 선생님이 세상없어두 되 안 돌아오실 줄 알았거든요! 그래, 전 미리 떠날 채빌 하구 나왔어요!"
 
63
"점까지 갖구?"
 
64
"점이라야 있나요, 뭐. 다 서울 두구 온걸. 내려올 때두 조그만 빽 하나만 달랑달랑 들구 온걸요!"
 
65
나는 도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한다는 말도 안되고 그렇다고 나를 놀림감으로 삼자는 말도 안 된다. 첫눈에도 은희란 만만치 않은 아이인 줄 알았었지만 그저 귀엽게 구느라고 그러느니라 했던 것이다.
 
66
"아니, 그래 선생님, 정말 춤두 못 추셔요! 어머나! 참 지금 삼십대치구 춤 못 추는 사람이 어딨다죠? 그러구서 어떻게 명동 신사 노릇을 하셔요?"
 
67
이런 은희이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귀염 떠는 것으로만 보아온 내게는 은희가 갑자기 당돌해 보여지기 시작했다.
 
68
'송 노인과 은희… 그 아버지와 이 딸…'
 
69
이렇게 생각할수록에 나는 자꾸만 은희가 다시 보여진다. 은희한테 끌리어 나는 이등칸으로 옮아갔다. 물론 음식값도 은희가 치렀다. 내게 남은 돈으로는 부족도 했지만 돈이 있었다 해도 은희는 치르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비는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70
은희는 상상했더니보다도 대담했다.
 
71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사랑한다구 그런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72
다짜고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73
"선생님 대답은 제가 먼저 알구 있지요! 언닌 어떻게 하구?… 그렇죠? 제가 잘 알죠!"
 
74
"아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75
하도 어이가 없어 하는 말에 은희는 까르르 웃고는,
 
76
"관두세요. 다 알구 있어요! 모르는 줄 아시지? 모르구 계신 분은 우리 아버지밖에 없으세요!"
 
77
"아니, 그럼?"
 
78
"오빠 말씀이죠? 오빤 천친가, 뭐?"
 
79
"아니, 그게 다 뭔 소리야. 은희 씨, 무슨 착각을 하구 있잖으시오?"
 
80
"호호호, 다 관두세요, 그렇지만 염려하실 건 조금두 없으셔요. 오빤 그런 분이세요. 그럴 수 있는. 언니두 그럴 수 있는 분이구. 그러니까 같이 살지 않아요? 혹 선생님은 아직두 언니한테 희망을 붙이구 계실진 몰라두 건 착각이세요. 그야말루. 언닌 목석인데요 뭐. 목석 부인이셔. 성자라면 성자구. 오빠만 해두 그러시지. 모르실 리가 없거든. 알아두 모른 체할 수 있는 분이시지. 아버지하구두 그렇거든요. 뭐 아버질 존경하구 사랑하신다구? 천만에요."
 
81
"그림 은희 씬?"
 
82
"난 아버질 우리집 은행나무나 같이 생각해요. 몇 백 년 묵은 아버지 생앤 끝나셨거든요. 아버지 세댄. 지금 살아계신 건 아버지의 육체뿐이시죠."
 
83
"그럼 오빤?"
 
84
"오빠? 오빤 위선자구."
 
85
"언닌?"
 
86
"언닌 목석일 따름이죠 . 선생님이 언니 앞에서 금방 운명을 하신대 보셔요. 언니가 눈 한번 깜짝할 줄 아셔요? 무인 신중이란다면 모르죠. 하지만 누가… 나래두 옆에만 있다면 눈 한번 깜짝두 않으실 거야. 그러니 언니만은 선생님, 깨끗이 단념하셔요. 목석 부인보다는 저 같은 것한테 흥미를 가지시는 게 얼마나 의의 있을지 모를걸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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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깜찍스런!"
 
88
하고 나는 내 몸을 도사렸다.
 
89
이야말로 요새 말하는 전후파의 전형적인 인물이 아닌가 생각하니 나는 처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부터가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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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징계해온 아니 경멸해온 은희와 나는 지금 식을 올리지도 않은 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구원받을 기회를 또 한번 잃은 것이다. 나는 또 술을 먹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의 술은 전보다도 몇 곱절 늘었다. 양이 는 것이 아니라 횟수가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
 
 
91
<「사상계」, 1962년 9·10월호(유고)>
【원문】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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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석 부인 [제목]
 
  이무영(李無影) [저자]
 
  196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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