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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석(木石) 부인 ◈
◇ 제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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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9~10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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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석(木石) 부인
2
제6장
 
 

1. 제1절

 
4
"물 드세요"
 
5
속눈썹 끝에 메어달렸던 이슬방울이 호득호득 떨고 있다. 주 여사의 말소리는 첫사랑을 깨달은 소녀의 우정처럼 달가웠으련만 그때의 내 귀에는 무서운 형의 언도처럼 차게만 들렸다.
 
6
사실 이 한마디는 내게는 무서운 형의 언도나 진배없었다. 유리컵에 가득히 부어진 것도 물이 아니라 독약 같은 착각을 일으켜주고 있다.
 
7
나는 물을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8
사실 벌써 목도 타지 않았다.
 
9
"물 드시죠"
 
10
주 여사의 두번째의 명령을 받고서야 나는 손을 내어밀었다. 손이 떨리는 것을 나 자신의 눈으로도 볼 수가 있었다. 주 여사는 내 손을 바라다보며,
 
11
"저 보세요. 약주 인전 너무 잡수시지 마세요. 손을 몹시 떠시는군요. 나중에는 수전증이 생기게 된답니다."
 
12
주 여사의 말소리는 살갑기까지 했다. 나는 나의 손이 떨리는 것을 주 여사한테 보여서는 안 된다 싶었다. 그래서 무서운 노력으로 최소한 팔의 경련을 제지시키며 주 여사한테서 컵을 받아 담숨에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물이 아니라 약을 먹기나 한 사람처럼 눈을 딱 감고 말았었다. 사실 그때의 내게는 빛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었다. 나는 혹시 빛이 새어들지나 않나 싶어 눈까풀에 힘을 주었었다.
 
13
정말 이대로 영원히 빛을 안 보았으면 했다. 이대로 죽어버릴 수만 있다면 싶었다.
 
14
그런다면 다시는 주 여사를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 했다.
 
15
"선생님께 실망해보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16
검사의 논고문을 읽듯 주 여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17
"정말입니다. 오늘 이 순간처럼 제가 선생님에게 대해서 절망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집양반을 통해서나 잡지의 가십을 통해서 선생님이 질서 없는 생활을 하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래도 나는 그것이 선생님의 생의 전부는 아니리라 했었습니다. 선생은 지금은 그런 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그 반면에 인간으로서나 예술가로서의 자기 완성을 하는 그 어떤 노력이 한구석에서 따로이 이루어지고 있느니라 했었어요. 「생활백서」란 선생님의 생활 기록을 읽었을 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짧은 글을 선생의 유서이기나 한 것처럼 보았을지 모릅니다. 아니 선생님 자신도 그런 심정으로 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생활백서」란 글 속에서 아직도 이 양반은 죽지 않았느니라 했었어요. 선생 자신은 온 육체가 흐물흐물 썩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그러셨지만 전 그 흐물흐물 썩어가는 육체를 해치고 새로 돋아나오는 생의 새싹을 본 것처럼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전 그것이 저만의 착각이요, 저만의 욕심이라는 것을 지금 발견하고 있습니다…"
 
18
이 무서운 논고 앞에 피고인 내가 무슨 항변을 할 수 있었으랴. 나는 오직 눈까풀에 힘만 주고 있었다. 빛을 안 보는 것─주 여사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써 나는 감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19
그러나 이 긴 논고 끝에 주 여사는 내가 나의 귀를 의심했을 만큼 엉뚱한 언도를 했던 것이다.
 
20
"그렇다고 제가 선생님을 저버린다는 말씀만은 아닙니다. 그런 선생님일수록에 전 선생님을 감싸드려야 하겠죠."
 
21
"주 여사!'
 
22
나는 눈을 감은 채 이렇게 부르짓었었다.
 
23
"나를 이 이상 더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 나를 보내주시오. 나를 보내주시는 것이 가장 나를 위해주는 방법입니다."
 
24
이런 나의 하소연에 주 여사는 차디찬 한마디로 대답해주었다.
 
25
"그렇게 전 잔인한 인간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부인이 모시러 오는 그날까지 이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26
"주 여사! 날 이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시오. 그만 돌아가주십시오."
 
27
"지금의 선생님한테는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만이 선생님을 가장 아껴드리는 방법 일지도 모르지요. 가장 사랑하는 방법도 되겠구요… 인간은 가장 괴로울 때 가장 선량해진답니다. 가장 괴로울 때라야 또 가장 솔직해지구… 제가 보구 싶은 것도 그 점입니다. 괴롭고 괴로워서… 아니 가슴이 아파서, 아파서아파서 못견디어하는 선생님의 모습이어요! 방바닥을 호비어 손톱이 닳아빠지고 그래서 피가 흐르고 가슴의 통증에 견디가견디다 못해서 가슴을 발기발기 찢고서 넘어져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전 선생님을 놓아보낼 수가 없어요!"
 
28
무서운 포악이었다. 무서운 저주였다. 주 여사는 나중에는 이런 소리까지 했던 것이다.
 
29
"선생님이 괴롭다 못해서 피를 토하시고 원 방안에 흥건한 피 속에 쓰러져 계신 것을 보지 않고서는 전 단 한 발자국도 선생님한테서 물러나지 않겠어요!'
 
30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였던가!
 
31
그러나 이 한마디로써 주 여사가 나를 얼마나 깊이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무서운 저주였지만 또 무서운 사랑의 고백이었었다. 주 여사의 한마디 한머다눈 벌(蜂)의 살처럼 나의 가슴속을 파고들었었다.
 
32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주 여사가 나를 이토록이나 사랑하고 있을 줄을 몰랐었다.
 
33
주 여사가 나를 끌어내린 것은 물론 애정의 표현이니라 한 나였다. 그러나 이 애정 뒤에는 또 여성만의 교활이 있느니라 한 나였었다. 부잣집으로 출가한 여성이 구차하게 사는 동무집에 일부러 여왕처럼 차리고 가는 그런 우쭐해보고 싶어하는 심리도 있었더니라 했었다.
 
34
그러나 폭포 물줄기처럼 내게 쏟아준 주 여사의 애정은 만들어진 그런 애정이 아니라, 오직 순수하고 오직 깨끗하고 오직 뜨거운 주 여사의 피 그대로였다.
 
 
 

2. 제2절

 
36
이 주 여사의 애정은 나로 하여금 다시 뭇을 잡게 했다.
 
37
내가 다시 붓을 든 것은 그런 일이 있은 날로부터 십여 일 후였다. 벌써 완전히 여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햇살이 뜨거우지기 전 두 시간을 제작 시간으로 정하고 한사날 나는 마음을 잡고 일에 정진할 수 있었다.
 
38
데생만은 겨우 일단계를 넘어섰었다. 이 오인의 전신에 흐르고 있는 강인성이 겨우 손에 잡힌 느낌이었다. 나는 송 노인한테서 한말의 대원군을 연상하고 있었다. 교과가 다르다 하여 단번에 일만 명이라는 인간을 처단할 수 있던 대원군이 송 노인으로 되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덥석 쥐어질 만큼 숱이 많은 눈썹, 토끼눈처럼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 이 눈은 만 명 아니라 백만 명도 한칼에 무찌르고도 한번 깜빡 하고나면 다 잊을 수 있는 그런 눈이라 했다.
 
39
이렇게 하루하루 송 노인의 초상이 완성되어간 것은 오직 주 여사의 내게 대한 애정의 공이다. 사실 나는 잠시도 주 여사의 애정을 잊어본 적이 없다. 하루에 세 끼니를 먹는 것도 나는 내게 대한 주 여사의 애정에의 보답이니라 했고 물 한 모금 산책까지도 , 주 여사의 애정을 읊조리기 위해서다. 내가 찍어 쓴 화료도 기실은 주 여사의 애정이었다. 흰 빛을 쓸 때는 주 여사의 순박한 그 정을 생각했고 붉은 빛이 잘 안 날 때는 나는 또 주 여사의 가슴으로 붓을 가져갔던 것이다. 회색은 주 여사의 애수에서 찍어 왔었고 누런색은 주 여사의 우수로 분홍빛은 그의 미소로 검은색은 주 여사의 내 앞에서 보여주던 절망에서 찍어다 썼었다.
 
40
내가 하루하루 완성되어가는 나의 작품에 대해서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주 여사의 애정 때문이다. 오랜 동안 붓을 놓고 살아온 나는 날이 갈수록에 나 자신에 대한 허무감과 모멸감으로 가슴이 찢기는 것 같은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그래도 나 자신의 천재를 어느 정도 믿어왔었다. 절망을 느낄 때면 그 천재 의식을 되살리어 자신을 매질해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절대로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천재라는 어감과 통하는 일제로부터 나는 멀리 격리되어 있었다. 빈말로서도 나라는 인간과 천재와를 맞붙여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절망 속에서도 내가 꾸준히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로지 주 여사의 애정에 보답해야만 한다는 의무에서다.
 
41
"오늘 몹시 피곤해보이시는데 하루 좀 쉬시지요."
 
42
본격적인 여금날이 된 어느 날 아침녘이었었다. 주 여사는 둘째아들의 손을 잡고 신장으로 나를 찾아와주었다. 송 노인이 사회에 간 날이었다. 둘째아들 손에는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스트리트 두 갑에 파인 주스 한 통이 들려져 있다. 파인 주스는 돈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지만 스트리트만은 이런 시골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담배다.
 
43
"가져왔으니 아저씨께 올려야지?"
 
44
주 여사는 이렇게 아들을 돌아다보고 있다. 날개만 붙이면 천사라고 볼 수 있도록 맑게 생긴 아이다. 이 여름에도 살빛은 석고빛 그대로다. 어머니 살빛은 그대로 물러 받은 모양이다.
 
45
"아저씨, 담배!"
 
46
하고 담배를 내어주고,
 
47
"아저씨, 파인 주스!"
 
48
"아아니, 우리 도련님이 어디서 이렇게 좋은 담배와 주스를 사왔을까!"
 
49
하고 담배와 주스를 받으면서도 이것을 받아야 할 것인지, 안 받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짓지 못해서 나는 주 여사를 슬쩍 훔쳐보았다.
 
50
담배만은 내게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주스는 어린애한테 돌려줘어야 할 성질의 불건인 것이다. 어린것이 이 먼데까지 들고 온 것을 받아 먹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스를 돌려주어서도 안 되는 나였다. 며칠 전 주 여사가 왔을 때 무슨 말말끝에 주스 말이 났던 것이다.
 
51
"둘 다 나 주는 게지?"
 
52
"네."
 
53
"그럼 이건 다 내 물건이야요!"
 
54
"네."
 
55
"그러니까 내 말대루 해두 좋지."
 
56
"네!"
 
57
"그럼 자, 이건 아저씨가 피우구 이건 먹는다구요?"
 
58
주 여사는 상그레 웃고 섰다가,
 
59
"아이, 선생님두, 뭐 소유권까지 그렇게 따지시구… 그래, 받아주 좋아요. 아저씨가 주시는 게니까… 그 대신 혼자서 먹어선 안 돼."
 
60
"응."
 
61
셋은 주스를 한 컵씩 나누어 먹고 주 여사의 제안대로 시가지로 내려갔다.
 
62
주 여사의 부군 송 사장과 그 저수지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를 거기에서 보내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63
"일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64
주 여사는 이렇게 단정히 사과를 하고 앞을 선다. 연옥색 생고사 치마에 모시 적삼은 나일론만 보고 살아온 나의 눈에는 먼 나라에 간 것 같은 인상이었다.
 
65
"오늘 저의 집에 여성 한 분이 오시는데 선생님 놀라시면 안 되어요."
 
66
과목밭 울타리를 돌면서 주 여사는 이런 소리를 한다.
 
67
"한국 안에두 천오백만이나 되는 여성이 있다는데 한 사람 보고 놀랄 까닭은 없지 않습니까."
 
68
"아니어요. 이분은 그 천오랙만 속에 드는 여성이 아닙니다."
 
69
"미인인가요?"
 
70
"미인입니다."
 
71
"나야 뭐 영어 밑천이 짧아노니까."
 
72
"한국말을 영어보다 더 잘하는 미인이어요."
 
73
"송 선생과 사업 관계루?"
 
74
"친족 관계루요?"
 
75
"친족?"
 
76
"네, 송씨 댁의 막네따님입니다. 저의 시누이시지요."
 
77
나는 그제서야 미인이란 말의 뜻을 깨달았다.
 
78
"미인이라시기에 난 또… 그렇게도 미인이신가요?"
 
79
"모두가 자기 표준이지요. 저보다 아름다우면 미인으로 뵈는 것이 아닙니까."
 
80
"주 여사보다 미인이란다면 그것이 미가 아니지요. 요라구 할까? 미란 한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81
"뭐 저두 미인 축에 들던가요?"
 
82
이런 이야기를 하며 송 사장의 회사까지 내려가니 마침 송 사장은 외출을 하고 없다는 것이다 정각 . 열한시까지 만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볼일이 생겼으니 삼십분 가량 다방에 가서 기다리라는 여사무원의 전갈이었다.
 
83
우리는 셋이서 찻집으로 들어갔다. 냉커피를 마시고 앉았으려니까 십분도 못 되어서 송 사장이 나타나서,
 
84
"사업 관계로 미인이 와서 아마 실약을 해야 할까보오. 이건 선생님께 죄송합니다."
 
85
"그럼 가보세요. 철일 데리구 나왔으니 거리 구경이나 하다 들어가겠어요."
 
86
불만은커녕 당연하다는 말투다.
 
87
"아니, 그럴 것 있나. 철이하고 먼저 가구려. 나두 어쩌면 그리루들 나가게 될지 몰라. 뭐 여기선 정말 누구 손님이 와두 대접할 만한 집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답니다."
 
88
송 사장은 이런 소리를 해가며 먼저 나가더니 차를 대령해놓았다는 것이다.
 
89
주 여사가 부군 송 사장의 이야기를 내게 털어논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3. 제3절

 
91
일요일도 아니었건만 저수지에는 사람이 들끓고 있었다. 대부분이 학생이었지만 가족들도 있고 아직 오정인데 아침부터 취했는지 유행가를 부르는 패까지도 있었다.
 
92
"존엄하신 어른의 영을 어기어 죄가 될까봐 그렇지 여기보다는 강변으로 나갈 것을 그랬어요."
 
93
주 여사가 이런 소리를 해가며 방죽을 타고 산부리 쪽으로 건너간다. 산이라고 값에도 가지 못하지만 호수가 조그만 산과 잇닿아 있다.
 
94
"엄마, 나 배 태워줘."
 
95
"배?"
 
96
주 여사가 나를 쳐다보는 것이 내 의견을 묻는 것처럼 느끼어졌지만 중뿔나다 싶어 잠자코 섰으려니까,
 
97
"보트 태워주실까?"
 
98
나의 손은 머리로 갔다. 보트에는 별로 자신이 없는 나다.
 
99
"오랜 동안만 아니면 저도 조금은 저어요."
 
100
이렇게 의논이 되어 우리는 보트를 타고 방죽에서 보이지 않는 산모퉁이 뒤를 돌아 기슭에다 배를 대었었다.
 
101
철이가 산백합을 꺾으러 다니는 동안이었었다. 주 여사는 조그만 바위에 수건을 깔고 앉으면서,
 
102
"언제던가 선생님이 저의 집에 오신 지 며칠 안 되셨을 때 절보구서 아시아에서 제일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으셨지요? 기억하십니까?"
 
103
"기억에는 없는데요."
 
104
"그러세요? 우리 과묵밭 위 연못가에서 그러셨던가 한번 그런 말씀을 하신 일이 있으셨습니다."
 
105
연못가에서였을 갭니다 " . 기억해둘 필요가 없는 것이 나는 이 댁에 첫 발을 들여놓은 그날부터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106
"부러우십니까?"
 
107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는데 내 영역 밖의 행복에 내가 뭣하러 신경을 쓰겠습니까."
 
108
"그럼 선생님은 삽화도 미술 영역 아니라서 그러셨군요? 그 과하신 약주도?"
 
109
"조롱은 그만하십시다."
 
110
하고 달아나려는 나의 팡을 잡듯,
 
111
"취소해주세요. 조롱이란 존경과 사람의 영역은 아닙니다. 제가 뭐때문에 농담으로라도 선생님을 조롱하겠습니까, 영역이란 말씀을 쓰셨지만 애정이란 영역 안에는 그런 용어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행복이란 영역 밖에 사신다구 그러셨지요? 그 말씀두 함께 취소해주셔야 해요. 정말 행복 영역 밖에 사는 사람은 아시아까지는 몰라두 송씨 집안에서는 저 한 사람밖에 없답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면 선생님은 믿어주시지 않으실 겁니다. 행복에 겨워 그런 소리를 하느니라 하실지도 모르지요."
 
112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행복을 모르는 법이지요. 불행한 사람만이 행복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나도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불행하다고도 행복하다고도 생각지 않았스니다. 도시 난 자신의 행복의 위치를 행각해 본 일도 없었어요. 첫째 내게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이번 주 여사를 보고 내 아내가 얼마나 불행한 여성이었던가를 깨우쳤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서 있는 행복의 위치란 것도…"
 
113
"제가 하려던 말씀을 선생님이 하셨군요."
 
114
주 여사는 쓸쓸히 웃어보이고서,
 
115
"정말 선생님이 말씀대로입니다. 행복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한테는 어떤 것이 불행이란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전 지금까지는… 선생님을 직접 뵈온 순간까지는 저란 인간이 얼마나 불행한 인간인가를 볼랐어요. 첫째 제게는 행복과 불행이 구별이 서지 못했으니깐요. 부인께서 선생님을 버리구 가신 것을 전 처음에는 커다란 불행으로만 믿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모셔야 하겠다구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지금서야 깨달았습니다. 불행한 것은 선생님도 부인도 아니십니다. 저와 저의 집양반이지요. 우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행복된 부부의 표본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표본입니다. 가장 불행한!"
 
116
하고 말끝을 맺었다가 주 여사는 다시 정정을 한다.
 
117
"아니죠, 행복이 뭔지도 모르는 부부의 표본이라는 것이 옳겠죠!"
 
118
이러한 주 여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이것이 정말 행복된 증거니라, 이렇게 자기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야' 했다.
 
119
"그래도 못 알아주시는 것 같군요?"
 
120
주 여사는 아타깝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121
"선생님 부부를 정말 행복된 부부라고 말씀을 하니까 또 혹 이유나 아닌가, 야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로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만 그건 절대로 아니어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생님네 부부는 현제 불행할지 모릅니다. 내외분은 자기네 자신의 불행을 불행으로 인식했고 또 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 피비린내나는 고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희들 부부는 저나 집양반이나 우리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불행은 커녕 행복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행복된 사람은 불행을 면할지 모르나 위대해볼 수는 없다─이런 말이 있지 않았습니까? 선생님네와 저희와는 이런 차이입니다. 이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 있을까요? 더 무서운 불행이?"
 
122
아무리 들어도 주 여사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선물받은 스트리트를 파이프에 한 대 담아 천천히 빨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이 이상 더는 못 알아 듣겠노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싶어 멀리 호수 너머의 퍼언한 들을 건너 포플러 가로수가 기차 선로처럼 나란히 줄을 짓고 있는 신작로에 눈을 던져두고 무료하니 앉아 있으려니까,
 
123
"저희가 얼마나 불행한 부부라는 것을 아주 단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증거를 하나 보여드리지요."
 
124
주 여사는 이렇게 말하며 핸드백을 되작되작하더니 소중판의 사진 한 장을 내어주고는 발끈 일어나면서 언제부터 쥐고 있었는지 돌 한 개를 휭하니 호수에다 던진다.
 
125
'풍'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제법 깊은 모양이다.
【원문】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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