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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女子)의 일생(一生) ◈
◇ 마지막 호궤(犒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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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5
채만식
1
女子[여자]의 一生[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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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지막 犒饋[호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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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뒷짐을 넌지시 지고 가만가만 걸어나온 것이 대문 밖 연자방앗간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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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 훨씬 많이 겨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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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두레마당에서 치는 풍장 소리가 단조로이 들려온다. 동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끌어나 절반은 두레마당으로 쏠리고 절반은 읍내 난장으로 쏠리어 텅 빈 동네같이 길이고 고샅이 헤성헤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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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겨운 해는 아직도 칠팔월 노양이라서 제법 싱싱하게 불볕을 내리쪼이고 있다. 이삭이 무긋무긋 숙은 텃논에서는 좋은 햇볕에 벼가 마지막 익느라고 솨아 소리가 금시로 이는 듯하다. 쓰러지게 벼가 잘 되었다. 그리고 늦더위에 잘 익어가고 있다. 텃논뿐 아니라 들녘도 고래실도 도처가 농사가 잘 되었다. 밭곡식도 잘 되었다. 금년은 풍년이다. 대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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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이 드니 추석이 우선 푸짐하다. 햇벼 장만하여 섬쌀로 술을 빚고 떡을 치고 통소 잡고 도야지 잡고 오색 과일 따다 놓고 배불리 먹으며 취토록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저마다 새옷으로 호사요 동네마다 즐겁게 노는 빛이다. 위청(양반축)에서는 재인 불러 풍악 잡히면서 놀고 아래청(농민축)에서는 고깔 쓰고 풍장 치면서 논다. 어른들은 골패를 하고 투전을 뽑고 윷을 논다. 아이들은 돈을 친다. 읍내는 난장이 터져 씨름이야 노름판이야 걸궁패야 협률사(協律社 : 移動舊派劇團[이동구파극단]) 같은 여러 가지 놀이와 굿으로 더욱 흥청벙청한다. 낮에는 동네서 놀고 밤이면 읍내로 난장 구경을 간다. 아침에 읍내로 들어가 온종일 난장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밤이면 동네서 놀기도 한다. 추석은 이렇게 얼마든지 푸지고 즐거웠다. 놀기 좋기로는 그리하여 추석이 설보다 더 치는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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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푸지고, 남들은 다들 즐거운 추석이었으나 오직 소년 준호에게만은 명절이 도리어 심심하였다. 장가를 가서 상투 짜고 갓(草笠[초립]) 쓰고 한 명색은 어른이었다. 그러나 열두살박이 초립동이로 짜장 어른들 청에 감히 어찌 참예는 하며, 붙연들 줄 이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다고 장가간 새서방이요 상투 짜고 갓 쓰고 한 명색이 어른 쳇것이 또래의 동자패 선머슴들 축에 끼여 콩조각으로 윷이나 놀고 돈이나 치고, 돈치던 흙 묻은 손으로 주머니 속에서 밤 ․ 대추나 꺼내 먹고 하면서 함부로 놀 수는 없었다. 그야 한 낫세의 학교도 같이 다니고 글방에도 같이 다니고 하는 동무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채 늘어뜨린 놈도 있고, 사포 쓴 중대가리도 있고, 또 두엇이나는 같은 초립동이도 있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애들은 단순히 글동무로서의 동무였지 섭쓸려 장난하고 놀 바의 동무는 아니었다. 그애들은 학교에서랑 학교와 글방엘 가고 오고 하는 길초에서랑 곧잘 ‘지구쌈’ 도 하고 ‘기와쌈’ 도 하고 ‘팔방’ 도 하고 ‘비석치기’ 도 하고 한다. 읍내 이께다네 가게 앞을 지나면서는 으례 모지떡을 사먹는다. 엿장수를 만나면 사서 먹기도 하고 ‘엿치기’ 도 한다. 밤 이슥토록 글방에서 글을 읽고 나서는 일쑤 ‘서리’ 들을 한다. 남의 콩 뽑아다 삶아먹는 ‘콩서리’ , 남의 참외 따다 먹는 ‘원두서리’ , 남의 닭 잡아다 먹는 ‘닭서리’ , 때로는 남의 집 뒤 울안에 쪄다 논 고사떡을 시루째 들어다 먹는 ‘떡서리’ 까지 한다. ‘서리’ 는 풍속이요 글방 도령들에게 눈감아 주는 장난으로 선생이나 부형들이나 항용들 보고도 모른 체하고 심히 말리지 아니하거니와 피해를 당한 편에서도 대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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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놈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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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입맛이나 다시고 말지 깊이 미워를 한다든지 말썽을 일으키는 법은 별로 없다. 자기의 어려서 일을 여겨서 혹은 자기네 자제 역시 그런 글방 도령의 하나임을 여겨서 그러기도 하고, 철없는 아이들의 한때 장난을 허물치 아니하는 너그러움과 순박함으로 그러기도 하였다. 하기야 현장에서 들키어 가지고 무섭게 쫓기는 수도 있고, 그러다 오줌독에 빠지는 아이도 있고, 또 사람 따라 뒤를 밝혔다 글방으로 쫓아와서 기어코 말썽을 일으키어 선생을 책망한다, 선생으로 하여금 이면상 아이들을 달초하지 아니치 못하게 한다, 서리 맞은 것을 도로 빼앗아 간다, 값을 물린다 하는 경우가 노상 없는 바가 아로니되 극히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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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옇든 ‘서리’ 란 짓궂은 장난이요 악동(惡童) 짓임엔 갈데없으나 그런만큼 글도령들은 ‘서리’ 가 큰 매력이었다. 가서 ‘서리’ 를 하는 그 아슬아슬한 맛이나 ‘서리’ 하여 온 것을 먹는 맛이라니, 천하에 거기 덮을 재미는 돈을 주고 사자 하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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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지도 재미있는 ‘서리’ 하며 그 밖에 동무아이들이 하고 노는 장난이 소년 준호에게는 그러나 모두가 그림 속의 떡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장난을 엄히 금하는 단속을 늘 받으면서 만약 범하였다 탄로가 나든지 하면 무서운 형벌을 당하면서 골샌님 본으로만 치어난 그는 영영 아주 주눅이 들어가지고 좀처럼 장난판에 낄 생심부터 하지를 못한다. 또 혹시 어찌하다 한 몫 끼더라도 줄창 하여 보지 않는 노릇인데, 일변 겁을 먹기 때문에 손이 잘 맞지 아니하여 매양 숙맥짓이나 하고는 핀잔이나 듣고 하였다. 그것이 금년 봄 장가를 든 뒤로부터는 더우기 그놈 상투가 야속히 남의 눈에 뜨이는 물건이 되어서 모친이 두렵기 이전에 스스로 상투가 꺼리어 차마 못하는 적이 가뜩이나 많았다. 이께다네 가게의 그 달고 설설 녹는 모찌떡을 한 개나 사먹자 하여도 머리 딴 도령 적에는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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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시지나 아니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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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고 가서 어머니께 일러바치지나 아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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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걱정뿐이요 사먹는 그 자리는 비교적 거리낌이 덜하고 하던 것이 장가를 들어 상투 짜고 갓 쓰고 다니면서부터는 보는 사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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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저 초립동이가 모찌떡 사서 우물우물 먹는 꼴 좀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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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끌 어른허군 알뜰하지! 행길에서 군것질하고 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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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조롱을 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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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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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죽은 아무개 자식이지? 온 저 무슨 장난이람? 어린애도 아니요 창립한 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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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욕하는 아는 사람한테 띄면 어찌하나 하는 저어운 마음이 앞을 서서 사먹고 싶은 생각이 나다가도 곧 움츠러지고 하였다. 그리하여 상투는 결국 박씨부인 대신으로 소년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그의 일동일정을 감시 제약하는 눈초리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노라니 자연 본시부터 그닥 길지 못한 소년의 생활 행동은 반경이 더욱더 졸아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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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여지껏 준호는 안마루에 가 걸터앉았다. 집 후원으로 들어가 감나무의 감 열린 것을 세어보다 사랑마당으로 나와 오락가락 거닐다 수없이 이 짓을 되풀이하였다. 하다가 문득 나온 것이 지금 겨우 대문 밖 연자방앗간이었다. 그도 마침 모친 박씨부인이 나들이를 가고 집에 있지 아니함에서 오는 제풀안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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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은 그믐까지 파접을 하였으니 물론 말할 것이 없고, 학교도 추석이라서 보름날부터 오늘까지 사흘 동안 임시로 방학이었다. 준호는 그 사흘을 밤과 낮으로 꼬바기 잘 놀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준호에게는 차라리 그것이 심심한 사흘이었다. 보름날 하루는 성묘를 갔다 오느라고 그럭저럭 넘겼으니 치지 않는다고 하고. 어제와 오늘은 고스란히 심심하였다. 놀러 갈 곳이 있나, 놀러 갈 수는 있나, 놀러 오는 사람은 있나. 끈 떨어진 말처럼 혼자 비잉빙 집 안팎을 감돌면서 몸이 비비 꼬이도록 지리한 시간을 지웠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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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박씨부인으로도 이 사흘 동안만은 첫새벽 여섯시 땅 치는 소리에 맞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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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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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불러 일으키거나 글을 외어바치라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덕분에 아침 늦잠을 조금은 잘 수가 있었다. 그 졸려 죽겠으면서 고단하여 쓰러지겠으면서 억지로 억지로 가던 저녁 글방을 아니 가는 것이며, 또 평소에는 세철 방학때는 물론이요 일요일이나 축제일 같은 학교를 노는 날이면 그 날은 낮 글까지 가서 읽어야 하던 것을 역시 면한 것이며, 생각하면 그만하여도 명절 보람이 크지 아니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만 그뿐이었다. 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가 마음대로 놀지를 못하니, 일껏 노는 날이 막상 고통스럴 지경이었다. 따라서 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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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놀았으면! 하루고 이틀이고 실컷 마음 턱 놓고 놀아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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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것이 아무 생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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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방앗간 기둥을 한팔로 안듯하고 우두커니 지여 서서 먼산바라기에 세월이 없던 준호는 그러다 얼마만인지 문득 무료히 떨어뜨린 한손이 허리에 찬 빨강 염낭을 만진다. 한푼의 반원(半圓 : 五十錢[오십전])짜리 커다란 은전이 손가락 끝에 만힌다. 미소가 떠오른다. 추석날 아침 새옷 갈아 입을 때 새댁이 가만히 넣어서 채워 준 것이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큰돈이었다. 무시로 그것을 겉으로 만져도 보고 꺼내서 손에 쥐고 보기도 하고 하면서 만족하여 하는 노리개거리였다. 그 돈 한푼이 염낭 속에 들어있음으로 하여 심심하다가도 얼마나 마음이 무긋한 그 돈 무게처럼 마음 느긋하고 재미가 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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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새가 시꺼멓게 내려앉아 벼를 먹는다. 새막은 죄다 비고 아무 논에서도 새 보는 소리가 없다. 추석은 새들도 명절이다. 쉴새없이 지저귀고 푸덕이고 하면서 허리띠 풀어논 셈으로 막 먹고 막 노는 판이다. 준호는 새들까지가 명절이 즐거운 양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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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로 난 신작로다. 논을 가르고 퍼언히 깨어나가다 산 모롱이로 휘어졌다. 그 휘어진 모롱이로 좇아 한떼의 사람이 나타난다. 흰옷 입은 어른들과 무색옷 곱게 입은 아이들이다. 읍내로 난장 구경을 갔다 오는 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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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도 읍내나 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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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깜박 생각이 나고 반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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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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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그 생각을 못한 것이 이상하였다. 가도 상관없었다. 어제는 모친이나 집에 있었다지만 오늘은 아까 벌써 이른점심 마치고 나들이를 가고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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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은 재작년부터 시작하여 절골 약수터로 추석물을 마시러 다녔다. 삼년 동안 눌러 추석마다 그 물을 먹고 그 물로 아픈 자리를 씻고 하면 체증도 가슴아피도 냉도 사족 쑤시는 것도 부스럼도 피풍도 그 밖에 온갖 병이 다 낫는다는 흡사 장거리의 약장수 약 같은 약수였다. 박씨부인은 냉과피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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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골이 마침 친정 사촌 즉 용길네가 사는 동네가 되어서 박씨부인은 계제가 썩 좋았다. 미리서 낮때쯤 떠나 우선 용길네 집엘 들러 저녁도 먹고 밤을 묵으면서 첫닭 울기를 기다렸다 부리나케 약수터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되도록 남이 물을 더럽히기 전에 정히 맞아야 효험이 더하다는 진주가 붙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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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들이를 간 길이라, 오늘로 당일에 모친이 돌아오지 아니할 것은 번연하였다. 일러야 내일 낮이요 그렇지 않으면 내일도 저물녘에나 돌아올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 아직도 많이 남은 해와 그리고 오늘 밤 온밤은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고 놀아도 마냥 걱정 없을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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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이 나가 돌아다니지 말구 집에서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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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떠나려면서 이렇게 단속까지 하였으나 누가 고자질이라도 하여 바친다면이거니와 달리는 좀처럼 발설이 될 염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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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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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 그만큼 안전하고 그래서 가 놀다가 와도 아무 탈이 없기는 없을 터인데 웬일인지 처음 그렇게 와락 반갑고 당기던 것이 정작은 선뜻 나설 강단은 나지를 않고 슬며시 한편으로 뒤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긴치 못한 노릇 같았다. 혹시 들려나면…… 하는 사후(事後)의 두려움보다도 우선 먼저 사람 의젓스럽지 못하게 난장판엔 가서 구경을 하고 놀고 다니고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스스로 불가하고 위험스럽던 것이었다. 마치 그것은 무슨 무서운 것을 ─ 화약덩어리나 호랑이꼬리를 만지기처럼 지레 겁이 나서 팔이 내뻗쳐지지를 않고 연방 뒤로 움츠러들기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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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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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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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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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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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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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이렇게 망설이면서 넋을 놓고 섰다. 바짝 등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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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 무어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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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윤석이라고 한 반에 다니는 학교 동무였다. 나이는 준호와 한동갑 열두 살이라도 걸대가 크고 기운이 부룩송아지 같고 천하 장난괴수요 또래 중에서 왕 노릇을 하는 악동대장이었다. 사철 동저고리 바람에 다 낡은 사포 하나만 들얹고 못가는 데 없이 싸다니는 놈이 그래도 추석이랍시고 검정물 들인 삼베 두루마기에다 새 미투리 신고 새 모자까지 떨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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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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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차 그러면서 싱글벙글 일변 풋밤을 꺼내어 이빨로 페페 번데기를 벗겨 뱉으면서 껑충 개울을 뛰어넘어 연자방앗간으로 들어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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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안 갈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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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마음이 내키거나 아쉰 소리를 할 때 외에는 놈이 남의 집 새서방더러 깍듯이 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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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간다든 싫다든 대답이 없고 애매한 얼굴이면서 빙긋이 웃을 뿐이다. 준호는 노상 이 윤석이 부러워 못한다. 그 늠름한 체격이 부럽고 활달한 기상이 부러웠다. 아이가 퍽도 험히 굴건만 저희 부모는 통히 간섭을 아니하고 놓아먹여 기를 꺾어주지 않는 것이 부러웠다. 집이 몹시 간구하였다. 의복은 항상 남루하고 어쩌다 사게 되는 학용품도 여일히 사쓰지 못한다. 점심을 가지고 오는 날이 별반 드물다. 그렇것만 그런 것이 하나도 흉이 아니요, 아무한테도 기를 앗기거나 눌려 지내는 법이 없다. 배고픈 줄을 모르고 더럽거나 해어진 옷 입고 다니지 않고, 그러면서도 늘 마음이 편안할 적이 없이 찌뿌듬하니 걱정스럽고 아무 재미도 즐거움도 없고 한 저보다도 준호는 누더기를 걸치고 끼니를 굶을망정 활달하고 세상이 거침새가 없으며 언제나 즐거운 윤석이 영웅이었다. 지금도 그런 흠망의 빛이 가득한 눈으로 곰곰이 윤석을 보아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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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대꾸야 하거나 말거나 윤석은 저 할 소리만 부옇게 떠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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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읍내 구경 참 좋다아! 난장이 터지구 협률사가 들오구, 그리고 초라니패두 들왔어. 너 협률사 굿 못 봤지 어때? 홍동지 박첨지 허는 초라니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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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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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저끼두 갔다 왔어…… 너 참 나 어저끼 씨름 몇 허리 이긴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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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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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허리 이겼어. 스물세 허리! …… 스물세 허린깐 상이 모두 넷이냐? 이 대님이랑 그리구 이 염낭이랑 또 그리구 울어머니 드린 왜포 수건이랑 모두 어저끼 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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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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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리구 참 오늘이 마지막이다! 난장두 마지막이구 협률사랑 초라니패랑 오늘꺼정만 놀구 나간대. 난장은 그리구 오늘이 소씨름야 소씨름…… 하, 소씨름 참 무섭구 재밌다아. 소 따가는 소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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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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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머니가 못가게 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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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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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고개만 잘래잘래 젓고 윤석이 고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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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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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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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초립동이 싸개 맞을까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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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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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허구 가믄 일없어. 깐놈들 내가 다아 혼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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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언제 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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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준호가 한마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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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오지 머. 소 나가는 소씨름 구경허구 와예지 아니해? 그리구 협률사 굿이랑 초라니패 굿이랑 낮엔 놀지 않아요 밤에 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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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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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없어. 나허구 오믄 무섭지 않아. 그리구 우리 동네서 간 사람들허구랑 함께 오구 헐 텐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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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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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깜작깜작 생각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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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옷 입구 나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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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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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얼른 입구 나와예지 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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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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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구우 준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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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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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가지구 가예지 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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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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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준호는 도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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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돈 있어예지 협률사랑 초라니패랑 구경 헐 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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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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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률산 아이들은 십 전야. 초라니팬 오 전이구…… 넌 그렇지만 초립동이깐 으런표 사라구 헐 끼다? 으런푠 아이들 곱장이 내예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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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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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구 또 배고플 텐깐 무어 사먹어예지 헐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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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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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그런 것도 걱정이었다. 염낭 속에 그 돈 오십전짜리 한푼이 있으니 돈이 없는 바는 아니었다. 물론 돈이라기보다도 보배스런 노리갯감인 걸 써버리기가 아깝기야 할 터이지만 반드시 써야 할 경우라면 못 쓸 것도 또한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사당패(협률사) 구경을 하고 장거리의 주막집에 들어 음식을 사먹고 하는 것이라면 졸연한 일이 아니었다. 일찌기 해본 적이 없는 짓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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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으로 인하여 처음엔 갈 편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이 뒤미처 돈이니 협률사 구경이니 음식 사먹기니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만 꺼리는 생각도 더럭 더하여 결국은 피장파장이 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또다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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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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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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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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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망설이기를 되풀이하고 섰는데, 그런 속도 모르고 악동은 제딴엔 한참 돈 나올 구멍을 훈수한다는 수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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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돈 가진 거 없건 느이 각시더러 달래. 새각신 시집오믄서 으례껀 함에다 좀씩 돈 넣어가지구 오는 거래. 어여 가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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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부끄럼을 타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나 그 얼굴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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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 옳아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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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이 있다는 것을 그는 윤석의 그 말에서 깜박 깨우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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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더러 물으면 될 것이었다. 새댁은 이 답답한 산술을 속 후련하게 풀어줄 것이었다. 보나마나 선뜻 가라고 할 것이었다. 새댁이 가라고만 하는 날이면 거뜬한 마음으로 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혹시 가지 말라고 하여도 하릴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어떻게든 가도록 하여 주었지 가지 말라고는 아니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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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겨 나오께? 기댈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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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총총히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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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은 마악 건넌방에서 마루로 나오고 있었다. 새각시요 추석이라 곱게곱게 호사를 하였다. 금자박이 자주호장 낀 노랑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를 받쳐 입고 치마끈에단 한 묶음의 은패물을 찼다. 세면하고 분바르고 윤나는 머리쪽에는 크고 작은 은비녀가 골고루 꽂혔다. 준호는 새댁이 이렇게 노랑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로 차렸을 때가 그중에도 제일 이쁘고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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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싱그레 웃으면서 연방 새댁을 위아래로 씻어보면서 꽃당혜를 신고있는 옆으로 다가선다. 우선 쥔마나님이 나들이를 가고 없는 바람에 실컷 동네집으로 마을을 싸다니는지, 삼월이년도 보이지 않고 하여 둘이는 마음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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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엿 좀 꺼내다 드리우?”
 
111
새댁이 그러는 것을 준호는 고개를 젓고 나서
 
112
“저어 나아……”
 
113
하고 더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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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죄끔만 가 놀다 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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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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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묻는 진주의 음성은 무심결에 황급하였다.
 
117
준호는 가만히
 
118
“응! 죄끔만……”
 
119
“글쎄에……”
 
120
진주는 난처하였다. 나들이를 가고 안 계시는 시어머니를 대신하여 새서방의 어른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감독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121
변덕이 잦은 시어머니였다. 물맞이를 가시다 말고 별안간 중로에서 돌아오지 않으신다고는 누가 장담을 하며, 또 이 다음이라도 누설이 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었다. 일이 만약 뒤집혀지는 마당이면 어른 노릇 ── 감독 잘못한 죄로 중한 책을 당하는 판이었다. 무서운 벼락불이 떨어지고라야 말 것이었다. 요 전번의 풍파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못하지는 아니할 터이었다. 써 부질없이 일을 저질르려 드느니 짐짓 보내지 마는 편이 매양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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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일이 그와 같이 염려스럽기도 하려니와 난장이란 온갖 잡인이며 불량한 모산지배와 더불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함부로 노는 곳이라고 들었다. 오죽해 난장이리. 그런 잡스럽고 험한 곳엘 이 방안길림의 파겁 못한 애기로 하여금 지망지망히 놀러가게 한다는 것은 자못 조심스럽지 못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거듭 보내지 마는 편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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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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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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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말은 입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사정이니 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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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명절이었다. 모처럼 모처럼 노는 때를 당하였으면서도 남처럼 기를 펴고 나가 돌아다니면서 마음대로 놀기를 하나…… 진종일 집안에 들갇혀 예가 섰다 제가 앉았다…… 조옴 갑갑은 하며 심심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말리는 어른이 마침 안 계시고 하니 웬만하면 선뜻 그대로 가기라도 벌써 하였을 것이지만, 그래도 생심을 못해 마음을 놓지 못해 와서 묻는 것이 아닌가. 미덥고 임의로운 마음에 반가운 대답을 바라고서 말이었다. 한 것을 일껏
 
127
‘못 가오!’
 
128
하여버린다면 오죽이나 낙담실망을 할 것인고.
 
129
“가믄 못쓰우?”
 
130
오래도록 새댁이 침음을 하면서 대답이 없는 것을 말긋말긋 눈치만 보다 어렵사리 그렇게 묻는다. 어깨를 처뜨리고 풀기 하나도 없이…… 그러는 양이 어떻게나 애처로운지 진주는 곧 눈물이 나려고 하였다. 무엄한 비유로 데리고 온 자식 같았다. 더 주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131
‘이따가 죽을망정이라도! ……’
 
132
비장하게 마음을 도사려 먹었다. 그것이 입술이 보살로, 그러나 얼토당토 않게 불측스런 액을 또 한톨 씨앗 뿌림이었을 줄이야 인간 된 지혜로는 감히 꿈엔들 짐작이나 하였을 바 없는 것이었었다.
 
133
“그렇지만…… 혼자 어떻게? …… 길은 늘 댕기는 길이지만서두……”
 
134
“윤석이하구 겉이 가. 지금 밖에서 기댈려!”
 
135
“윤석이? 아따 저 쌈 잘허구 헌다는 도령? ……”
 
136
동무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또 어떻고 하단 이야기를 노상 듣기 때문에 아무개 하면 어떤 누구라는 것을 대강 알아듣는다.
 
137
“그런 사난 도령허구 같이 갔다 괜히……”
 
138
“아냐 나헌텐 잘 그리지 않아. 난 역성해주구 그래!”
 
139
“그렇다면 몰라두……”
 
140
마음 같아서는 나가서 부디 잘 좀 데리고 갔다 오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었다.
 
141
“저물기 전에 인해 와예지 해요오 응?”
 
142
“밤이 구경이 더 좋대는걸?”
 
143
“저녁은 어떡허구요? …… 그리구 저……”
 
144
“안 먹어두 배 안 고파!”
 
145
“에구 참! …… 그리구 혹시 동무나 잃어버리든지 허믄 밤중에 혼자 무서 어떻게 나와요?”
 
146
“우리 동네 사람 따란 못 나오나 머! …… 혼잔 또 못 나오나 머!”
 
147
“그래두우! ……”
 
148
“그럼 용길이형허구 겉이 갈까? 두레 노는 데 간다구 갔은깐 삼월이 보내 데려올까?”
 
149
“글쎄에……”
 
150
용길이는 아까 점심나절에 박씨부인과 엇갈리어 당도하였다. 일가는 일가라도 머슴은 머슴인데 추석을 쇠로 간 머슴이 겨우 사흘 만에 도로 올 이치는 없고 아마 동무 찾아 놀기도 할 겸 잘 차린 명절 음식도 먹을 겸 잠깐 하루 다니러 온 길이거니 하고 진주는 심상히 여겼었다. 그야 하옇든 이왕 온 길이니 심부름삼아 놀기삼아 같이 갔다 같이 나오도록 안동해 보낸다면 한결 마음이 놓이고 그런 십상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 말이 그 입에서 혹시 시어머니의 귀로 들어가든지 하게 된다면 사서 후환을 장만하기요, 차라리 혼자 보냈더니만 못한 노릇이었다.
 
151
진주는 준호를 여름살이 고의적삼을 다듬이한 모시 겹것으로 갈아 입혀 주었다. 요새 날씨가 낮에는 더워도 해만 지고 나면 제법 산산하기 때문에 행여 밤에 추워할세라 그런 것이요 살뜰한 정성이었다. 한 것인데 이것 역시 불측스런 액을 거듭 씨앗 뿌린 바 되었으니 한갓 기구하다 이를밖에 없었다.
 
152
준호는 다듬이 윤이 치르르 흐르는 모시 겹것 위에다 진분홍 두루마기에 남갑사 쾌자 받쳐 입고 술띠를 띠고 초립 쓰고 깜장 가죽신 신고 이렇게 이쁘장스런 초립동이로 차리고는 입이 연방 벙긋벙긋 벌어지면서 마침내 마당으로 내려선다. 조끼 호주머니에는 한편치엔 십전박이 은전이 다섯 닢, 한 편치엔 동전 엽전 섞어 얼마의 잔돈이 각각 들어 있었다. 새댁이 갈아 입을 옷과 함께 짜장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것인 듯함은 아니라도 농 속의 귀주머니에서 꺼내서 넣어준 것이다. 말도 아니하였건만 어쩌면 그렇게 ─ 비단 돈뿐이 아니라 무어든지 죄다 ─ 알아채고서 입 안의 혀처럼 손 안 닿는 데 긁어주듯 알뜰히 뜻을 맞추어 추는지를 몰랐다. 소년은 오늘의 이 시간처럼 행복되어 본 적이 일찌기 없었다. 지나간 기억은 너댓살 그 무렵부터 시작이 되나 기억이 미치는껏 한번도 이렇게 흠씬 즐거웠던 일이라곤 없었다.
 
153
대문 밖에서는 ‘학도야 학도야’ 를 창가 부르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154
“자 이거 가지구 가시다……”
 
155
진주가 그러면서 조그맣게 준호의 책보로 싼 것을 들고 대청마루로부터 뒤따라 내려온다. 준호가 학교 점심 싸가지고 다니는 싸리삽짝에다 송편이니 강정이니 다식이니 약과니 등속을 골고루 담아서 꾸린 것이었다.
 
156
준호는 내켜하지 않는 얼굴로
 
157
“밥 아니우? 오곡밥……”
 
158
“아뇨!”
 
159
“그럼?”
 
160
“송편이랑……”
 
161
“나 안 가지구 갈래 아무것두……”
 
162
“왜애?”
 
163
“안 먹어두 갠찮아!”
 
164
“괜히! …… 이따가 시장해 어떡허실 양으루?”
 
165
“사람들 많은데 어떻게 먹우?”
 
166
“학교나 그런 사람 없는 데루 가 잡숫지? 겉이 가는 그 도령허구 함끼…… 그 요량허구 나우 담구 했은깐……”
 
167
“그래두우!”
 
168
“그래두 가지구 가세예지 해요! 학교 우물 있죠오?”
 
169
“저어 그럼 내……”
 
170
그러고는 휭하게 달려나갔다 이내 도로 들어오더니 두말 않고 받아든다. 윤석더러야 그야말로 귀신 듣는 데 떡 이야기하기지 반대할 리 만무하였던 것이다.
 
171
제 솜씨로 아무렇게나 맨 쾌자띠를 진주는 고쳐 잘 매어주면서 신신당부를 한다.
 
172
“부디 밤 너무 늦잖어서 나오시구요 네?”
 
173
“응!”
 
174
“남허구 시비허지 말구요. 남이 좀 언짢은 말을 해두 거저 못 들은 체 허문 그만일 거 아녜요?”
 
175
“응!”
 
176
“애야, 끌어낸다구 씨름허지 말구요…… 모양두 숭업구 그러다 어딜 다치기나 하면 큰일 아녜요?”
 
177
“난 씨름헐 줄 몰라!”
 
178
“그런깐 더구나 말이죠…… 그리구 이거 부디 우물 있는 데루 가서 목 메지 않게 물 마시믄서 잡숫구.”
 
179
“응!”
 
180
“그리구, 참 저어 어머님이 혹시 아시드래두 네?”
 
181
“………”
 
182
“나헌테 다아 밀어요 네? …… 제 가속이 가라구 해 갔읍니다구 네?”
 
183
“………”
 
184
준호는 시무룩하고 고개만 젓다가 한참 후에야
 
185
“난 머 아무두 몰래 갔다구 헐걸 머!”
 
186
“에구우! 그럼 매 더 맞잖아요?”
 
187
“아냐 머! …… 나 맞아두 좋아!”
 
188
“에구 참! 매맞으믄 아프지 무어가 좋우?”
 
189
“일없어!”
 
190
“아, 나헌테 밀문 매 죄금만 맞을 텐깐 그거가 좋지 매 많이 맞는 거가 좋아요?”
 
191
“매만 죄끔 맞으면 고만인가 머!”
 
192
“그럼요!”
 
193
“………”
 
194
“나 꾸지람 들을까바?”
 
195
“………”
 
196
“난 꾸지람은 암만 들어두 맨 안 맞은깐, 내가 꾸지람 많이 듣구 그대신 매 덜 맞으시믄 좋잖아요?”
 
197
“난 맨 암만 맞어두 쫓견 안 가니깐 말이지 머!”
 
198
“오오! ……”
 
199
비로소 그런 깊은 속이 있어 하는 말인 것을 알아들었다. 순간 진주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가슴 뿌듯이 차올랐다.
 
200
요 전번의 풍파는 진주가 이튿날 하루를 두고 아침에 가서 빌어 낮에 가서 빌어 그러다 세번째 석양에 가서 빌어서야 겨우 용서가 내려 시늉이나마 수습이 되었었다. 그 석양에 빌러 가면서는 쓰개치마를 쓰고 마악 대문간으로 나서다 마침 학교로부터 돌아오는 준호와 딱 마주쳐 할 수 없이 전후 곡절을 토파하였고, 해서 준호도 비로소 사연을 다 알았으며 저도 가겠노라고 하여 같이 가기까지 하였었다. 그때 박씨부인은 아들과 나란히 앉혀놓고 며느리더러 다지기를
 
201
“오냐. 너의 외숙네 내외분이서 굳이 말리는 낯을 보아 이번 한번 참는다마는 이 다음 다시 무슨 일이 있는 날이면 하늘이 두 조각에 나드래두 나는 네 꼴 아니 볼 테니 그리 알렷다? 그 당장에 친가로 쫓겨가구라야 말 줄 알렷다?”
 
202
라고 크게 부릅뜬 눈과 큰 호통소리로써 하였었다. 준호에게는 그것이 비수를 겨누기같이 가슴 서늘한 위협이었다.
 
203
‘음식 싫은 건 개나 주지! 사람 보기 싫은 것 억지로 보다 생병 나라구?’
 
204
입버릇처럼 늘 그러면서 눈에 벗거나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잠시 한 때도 꼴을 못 보아하는 모친이었다. 하인이고 종년이고 머슴이고 하다못해 잠깐잠깐 며칠씩 사 부리는 놉(日傭勞動者[일용노동자])까지도 한번 보기 싫은 날이면 기어이 쫓아내고 마는 성미였다. 작인(小作人[소작인])이면 논을 떼어버린다. 허드렛일을 다니며 해주는 동네 여편네 누가 한번만 눈에 벗어? 발걸음도 다시는 붙여주지 아니한다. 그러느라니 하인이며 머슴이며 그밖에 드나드는 사람의 갈림이 남달리 잦다. 이러는 그 모친의 솔성과 처사를 항상 보고 잘 아는 소년은, 그러므로 그것이 단순한 엄포나 한때의 지날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머슴이, 하인이 꼼짝 못하고 쫓겨나고 쫓겨나고 하듯이 새댁도 아차 그 ‘무슨 일……’ 이 즉 쫓겨날 일이 있는 마당이면 결단코 친정집으로 쫓겨가지 않게 될 이치가 없으며, 쫓겨 보내지 아니하고 말 까닭이 없는 모친이었다. 그날에 당신이 집을 나갈 지경이었으면서 길래 쫓아보내지를 아니하고 용서한 것이 차라리 뜻밖일 지경이었었다.
 
205
‘……하늘이 두 조각에 나드래두……’
 
206
무어 영락없을 판이었다. 영락없이 이번은 쫓겨가게 될 것이었다. 옴낫달싹 못하고 쫓겨가고 말 것이었다.
 
207
새댁이 쫓겨가다니, 소년은 생각만 하여도 앞이 캄캄하였다. 이 상냥하고 알뜰스런 새댁이, 그리고 이 이뿐 새댁이, 그래서 세상에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좋은 이 새댁이 만약 쫓겨가고 없는다면 그날로 곧 죽었지 단 한시를 살 것 같지가 않았다. 한 것을 어떡하자고 새댁한테다 죄다 밀어? 번연히 쫓겨가게 해? 참 큰일날 소리였다. 탄로가 나거들랑 그저 아무도 몰래 갔던 줄로 죽여라고 내뻗는 것이었다. 매 같은 것이야 암만 맞아도 좋았다. 새댁을 쫓겨보내지 말아야 하였다. 새댁을 쫓겨보내지 마는 노릇이라면 매는 암만 맞아도 달지 아프지 아니한 것이었다.
 
208
진주는 일껏 좋아하면서 가는 것을 부질없이 그런 말을 하여 가 안심하고 놀지 못하게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차면 앞까지 따라나가면서 아니라고…… 막상 몰라 그런 것이지 어머님이 실상 아시기는 어떻게 아실까 보냐고…… 혹시 참 아시고서 네 집으로 가라고 꾸지람을 하신다더라도 꾸지람으로 그러시는 것이지 정말 어디 쫓아보내자고야 그러시느냐고…… 나한테도 꼭같은 어머님이신데,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쫓아내시겠느냐고…… 그러니 하옇든 뒷일 걱정일랑 할라 말고서 마음 턱 놓고 실컷 놀다나 오라고…… 이렇게 여러 말로 흔연히 타일러쌓기를 마지않는다.
【원문】 마지막 호궤(犒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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