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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女子)의 일생(一生) ◈
◇ 오기로만 마련인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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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5
채만식
1
女子[여자]의 一生[일생]
 
2
5. 오기로만 마련인 것
 
 
3
주인편의 용길어머니는 박씨부인이 칙사 같은 손님이었다. 아들 용길이 그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어 드러내놓고 언약한 것은 없었다지만, 나이 스물이 넘고 하였으니 쉬이 장가도 들이고 박토 마지기라도 떼어주기를 은근히 바라 마지않는 참 일변, 그새 십여 년을 두고 그 집 땅을 도지 한톨 무는 적 없이 공으로 부쳐먹어 와 아쉰 때면 돈냥씩 돈관씩 손쉽게 얻어다 쓰곤 해 이렇게 두루두루 그 집 끈에 살아가다시피 하며 그 집에다 가볍지 아니한 소망을 걸고 있으며 하는 터라 단순히 친정 사촌이라기보다도 차라리 상전 셈이었고, 따라서 큰손님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보조원(憲兵補助員[헌병보조원])이 와서 야단을 쳐도 청결을 잘 아니하려 드는 집안을 새벽같이 안팎 다 말끔히 소쇄하고 엊그제 추석날도 차려먹지 못한 귀한 음식을 오는 이의 식성을 헤아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장만을 하여 놓고 장난꾸러기 둘째와 세째놈은 조반 일찌감치 먹여 외가(外家)로 쫓아버리고 하고서 이 어려운 손님을 그는 맞이하였었다. 사립문 밖에서 마주 서서 우선 이런 인사 저런 인사가 한 둘레 끝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들어가면서였다.
 
4
“참 오다 중로서 그애 못 만났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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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길어머니가 지날말삼아 물었다. 그애란 물론 용길이었다.
 
6
박씨부인은 심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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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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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앤 그럼 샛길루 해 갔구면 ?…… 동생은 신작로루 해 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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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 …… 난장 구경일 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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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된 소릴 허겠지 ? 딴 남의 집두 아니구 이모네 댁인데, 명절이랍시구서 집이 와서 열흘 보름씩 펀펀 자빠져 놀다 한 다 채우구섬 어실렁 어실렁 겨들어와서야 어디 도리냐구…… 쯧 명절은 쇘은깐 가 허다못해 조석으루 마당 귀탱일 쓸더래두 가 있어예지 않느냐구…… 그러믄서 즘슴 때 좀 못 돼 떠났지 아마 ? ”
 
11
“………”
 
12
박씨부인은 더럭 의증이 났다. 용길은 평소에 별반 게으름을 부린다던가 남의집살이의 행티를 낸다던가 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와락 근경 속 있고 지나치게 착실한 머슴인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예사 머슴이었다. 지나간 정월만 하여도 항용 남의 집 머슴이 하듯이 섣달 그믐날 세찬과 설빔 주는 것 한 짐 꽁꽁 짊어지고 저의 집으로 나가 설 세고 초이튿날 세배 겸 설음식 먹으러 들어왔었고, 보름날 두레 따라 기맞이(旗會[기회]) 구경왔다 들렀고, 그리고는 기한 스무 날을 다 채우고서야 아주 들어와 일을 거들었고 하였다. 그러던 아이가 그새 별안간 철이 나 그토록 알뜰한 머슴에 살뜰한 조카로 변한 것이라고는 막상 미덥지 못한 소리였다.
 
13
‘근사를 두느라고…… 어서어서 인제는 장가나 들여 땅이나 몇 마지기 떼어주어서 제노릇하고 살 마련하여 주기 바라느라고…… 그러자니 내 눈에 잘 보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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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는 생각이 가장 온당코 근리한 해석일 것이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선뜻 요 전날 밤의 그 우물두덩엣 광경이 눈앞에 서언하면서
 
15
‘딴 속이 있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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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심정이 무럭무럭 나면서 일 들어맞는 것이 고소하여 짜릿하니 쾌감이 아울러 솟았다. 하되 그것은 며느리를 두고서지 조카요 머슴 용길에 대하여는 아무렇지도 아니하였다. 어떤 꼬마동이리라, 때마침 집 뒤꼍으로 지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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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캐러 간다고 이 핑계 저 핑계 하더니 총각 낭군 무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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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제법 멋들어지게 부르는 노래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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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누가 아니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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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은 속으로 그러면서 입을 비쭉하였다.
 
21
저녁을 입맛 없이 마치고 내내 울울코 꺼림한 심사인 채 이윽고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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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속을 알 턱이 없는 용길어머니라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는 불붙는 데 부채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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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 용길이 땜에 난 요새 실없이 걱정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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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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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은 용길의 이야기이고 보니 얼른 귀가 반짝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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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혼인말을 내지두 못허게 허는구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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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말을 ?…… 무어라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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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끔 내 형편으로 무슨 수로 장갈 가구 어쩌구 허느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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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 성세 모아 부자장자 된 댐에 장가갈랬든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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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니래 !…… 올 정월만 해두 그땐 혼인말을 낸다 치면 되려 좋아허는 낯색이드니 이번 나와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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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디 반헌 데가 있는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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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제에 무슨 그럴 리야 있으꼬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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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우 ? 사내자식 나이 이십이 적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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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은 다른 게 아냐 ! 당장 쇠천 한푼 모아둔 것 없이 맨손 쥐구 혼인을 어떻게 허며…… 남 데려다 배곯리구 헐벳기구 허잘 며리가 있느냐구…… 전 거저 이모헌테 맨 놈인깐 이모가 넌 인전 고마안 가속이나 얻어 늙은 어머니 뫼시구 가 살라시믄 그럭허는 것이구 몇해 더 내 일 보살펴다구 허시믄 보살펴 드리는 것이구 허는 게 옳지. 무얼 괜히 마땅한 자리가 있느니 어쩌느니 해가지군 어머니가 나서서 그래쌓느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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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길은 실상 모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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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혼처가 있어 두루 가합할 듯싶으니 서둘러서 이 가을이라도 혼인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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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는 말에 간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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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더러 상의하시오. 오륙 년 부려먹었으니 자기도 생각이 있을 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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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 뿐이었었다. 한 것을 용길어머니는 없는 말 있는 말에 우는 소리 보태서 늘어놓았던 것이요 속인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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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서 장가도 들여 주고 먹고 살 것도 조금 떼어 주고 하여 달라.’는 은근한 재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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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박씨부인은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적실코 용길이 장가갈 마음이 없어서(그 소위 반한 데가 있어서) 역시 핑계를 댄 것으로만 해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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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의 기괴한 환상은 실로 이렇듯 단순하고도 정상한 재료에서 출발한 결론이었다. 무섭게 삐뚤어진 곳으로 대고 천착을 한 결론이었다.
 
43
추악한 패륜(悖倫), 죽여 마땅한 죄상, 가문의 치욕, 생각을 돌이켜 한다면 모골이 송연할 노릇이었다. 참으로 그와 같이 결론치 아니치 못하는 마음부터 송구할 일이었다. 부디 사실이지 말았으면 싶을 만큼 너무도 중대한 사건이었다. 최후적인 확증을 잡기가 오히려 겁이 났어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박씨부인은 그러한 희생이나 타격 다 불고하고 사실이 아니지 말았으면 싶었다. 아무리 크고도 메꾸기 어려운 희생과 타격이더라도 그는 며느리가‘죄 있는 며느리’인 것이 통쾌한 것이었다. 가까스로 첫닭을 울렸다. 마지못해 약수터로 가서 물맞이를 하는 시늉 하였다. 그리고는 그 길로 집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용길어머니가 질색을 하며 만류하였으나 긴한 일이 깜박 생각이 났노라고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큰 낭패를 보지 않게 될 일이라면서 잡는 손목 뿌리친 후 두 주먹 불끈 쥐고 집으로 집으로 반달음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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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두시를 치고도 한참이나 있다야 준호는 겨우 돌아왔다. 진주는 애를 쓰면서 기다리던 것은 하옇든, 아무 탈이 없고 무사하여 돌아와 주는 것이 생색처럼 고맙고 반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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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시장하여 가지고 들어단짝 인절미를 찾고 곰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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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그 큰 인절미를 여남은 개나 먹었다. 친 지 나흘이나 되어 약간 쉬치근할뿐더러 딱딱해지기까지 한 것을 새댁이 구워주마는 것도 쪄주마는 것도 급해서 마다하고 그대로 조청에 찍어 밀어넣듯 연방 먹어대었다. 그 위에다 다시 뜨끈뜨끈히 데운 곰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달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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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낮도 아니요 잘 자리에 너무 과식하는 것이 마음에 좀 걸리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시장 끝에 입맛이 당기어 잘 먹는 것을 양 나삐 물러나랄 수는 차마 없었다. 준호는 수저를 놓던 길로 나가 쓰러졌다. 쓰러져서는 새댁한테 오늘 난중에 갔던 이야기를 하려니 하려니는 생각하면서도 쏟아지는 졸음에 이내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어느만때나 되었는지 이상한 소리에 진주는 어렴풋이 잠이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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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배야 ! ”
 
49
새서방의 신음소리였다.
 
50
‘아뿔싸 !’
 
51
그러면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핼쓱한 얼굴에 이마엔 방울방울 비지땀이 솟아가지고 부대끼고 있는 모양이 환하여지는 촛불빛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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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짚어보았다. 펄펄 끊었다. 손을 만져보았다. 차디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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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아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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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 아니 ! ”
 
55
살살 배를 쓸어주었다. 차차로 더 부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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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강집을 내어 데워다 사향소합환을 개어 떠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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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기다려 보았으나 갈앉는 동정이 없고 여전히 더 부대껴만 가더니 구토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원히 게우지도 못하고 되디된 것을 조금씩 넘길 뿐이었다. 등을 쳐주고 바르개에서 닭깃을 뽑아 목구멍에 넣어주고 하여도 별양 소용이 없었다.
 
58
한 시간 가까이 되었음직하여선데 안방에서 다섯시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는 준호는 몸을 뒤틀고 입을 딱딱 벌리면서 곧 죽는 거동을 하였다.
 
59
진주는 안방으로 건너가 쌈싸우듯이 삼월이를 두드려 깨워서 의원을 청하러 보냈다.
 
60
약방은 그리 멀지 않아서 이윽고 의원이 왔다. 오감찰이라는 신선처럼 허연 노인이었다.
 
61
암만 노인이라도 내외는 하는 체해야 하는 법이라 진주는 마루로 나와 문치에 가 넌지시 비켜섰다. 의원은 삼월이가 인도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62
의원은 맥을 보더니 먹은 것이 꽉 체했다면서 침대롱을 꺼내서 사관을 놓았다. 양 엄지손가락 사이와 두 팔목과 도합 네 대를 놓았다.
 
63
가느다란 침 끝으로 따끔 찌르고는 톡톡 퉁기고 찌르고는 톡톡 퉁기고 하던 것인데 그 간단한 사관이 거짓말같이 영검스레 마지막번의 침을 뽑기가 무섭게 우선 후련히 한바탕 토를 하는 것이었었다.
 
64
의원은 얼마 동아 앉아 동정을 보면서 배도 쓸어주고 하다가 마지막 한번 더 맥을 짚어본 후에 혼잣말로
 
65
“그만하면 급한 증세는 돌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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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병자는 그새 벌써 복통이 많이 개이고 앓는 소리도 덜했다. 진주는 비로소 가슴 두근거리던 것이 엔간히 진정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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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시를 치고 날은 활짝 다 밝았고 한새벽이었다.
 
68
의원은 삼월이더러 약을 몇 첩 지어 줄 테니 따라오는 말을 이르고는 한걸음 앞서 차면 밖으로 나갔고. 우물에서 걸레를 빨아다 건넌방에 들여놓느라고 잠깐 충그렸다 의원의 뒤를 좇아 삼월이가 마악 마당을 중간쯤 건너고 있는데 느닷없는 박씨부인이 우당퉁탕 뛰어들었다.
 
69
“이년 ! 새서방님 죽였지 ? ”
 
70
삼월이를 가로막듯 우뚝 그 자리에 가 멈추고 서면서 단박 을러메는 말이 이 말이었다.
 
71
절골로부터 달려오고 있던 박씨부인은 부전부전 날이 밝아감을 따라 현장을 증거잡기엔 십상 때가 늦은 것이라고 저으기 실망을 하였었다. 그러면서도 걸음은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72
마침내 동구 안으로 들어섰다. 동네 앞을 가로로 건너간 신작로요, 집은 동네 맨앞으로 신작로 외의 사이에 몇 이랑의 논을 격하고 있기 때문에 동구 안만 들어서면 우선 집이 보이게 마련이었다.
 
73
비밀을 머금은 듯 침침한 새벽빛에 잠기어 집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었다.
 
74
대문을 열게 하여서는 안되고 뒤꼍으로 해서 울타리를 뜯고라도 기척없이 들어가야 하느니라고 생각하면서, 어느덧 신작로에서 집으로 난 고무래정자 샛길 머리에 당도하였다. 집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75
‘ ? ……’
 
76
샛길로 꺾이어들려던 박씨부인은 움칫하고 놀란다. 대문이 환히 열리어가지고 있던 것이다.
 
77
‘그럼 딴 놈이었단가 ? 용길이가 아니고……’
 
78
‘워너니, 그럴 리가……’
 
79
다행중 더욱 다행이었다 기운이 갑절이나 솟았다.
 
80
샛길로 내려서서 두어 걸음 걷다 말고 또다시 놀라야만 하였다. 그 열린 대문으로부터 웬 사람인지가 처억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1
‘그러면 그렇지 !’
 
82
무릎을 탁 칠 뻔하였다.
 
83
‘저놈이 누구인지를 보아두어야……’
 
84
그러면서 급히 쫓아오는데 연자방앗간 앞으로 해 저편을 향하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그 인물은 뜻밖에도 동네 활량도 어떤 총각놈도 아니요, 허연 늙은이였으며 의원 오감찰이었다.
 
85
‘ ?……’
 
86
‘의원 ?……’
 
87
‘의원이 어째?’
 
88
‘오오 !……’
 
89
가슴이 철썩하고 새 정신이 번쩍 났다.
 
90
‘약을…… 죽일 약을 멕여놓고 !’갈데없었다.
 
91
이가 뿌드득 저절로 갈렸다.
 
92
자가사리 낚시에 잉어가 물린 셈이어서 생각이 않이 소득이 큰 것은 통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식의 생명이 제웅되었다는 두려운 사실이 숨어 있음을 생각할 때 통쾌를 통쾌하여 할 경황보다는 역시 치가 떨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때아닌 때에 의원이 다녀가니 아무라도 첩경
 
93
‘집안에서 누가 곽란이 났던지 혹은 낙상을 하였나보다 !’
 
94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상식일 것이었다. 한 것을 박씨부인은 집안 식구 다 젖혀놓고 하필 준호를…… 그리고 독살(毒殺)인 것으로 선뜻 단정을 ── 실로 단정을 ── 하여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와 같이 부자연스럽고도 특수한 예외의 단정을 함직한 근거가 있었더냐 하면 매양 아니었다. 억측의 선입관으로 인한 단지 독단이었다. 며느리로 하여금 ‘죄 있는 며느리’이기를 골똘히 욕망하는 박씨부인이었다. 이 골똘한 욕망이 현실의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는 그 중간에 억지 즉 독단이 불가불참예를 하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가령 그 독단이 나중 가서 흐너지는 동시에 결론한 바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버릴망정이라도…… 다못 두루 그런 욕망하고 억측 독단하고 하는 것이 모두가 소위 잠재의식의 시킴이지 알고서 하는 노릇은 막상 아니었다.
 
95
‘죽였지’와‘죽었지’는 뜻인즉은 대단히 다르나 발음으로는 획 하나 상관이라 매우 근사한 말이어서 박씨부인의 그
 
96
‘이년 새서방님 죽였지 ?’
 
97
하는 호통을 ‘죽었지’로 진주는 들었을 뿐이었다. 경우가 경우인만큼 ‘죽었지’로 들린 것이 차라리 당연한 노릇이었다. 만일‘죽였지’로 들었다면 그는 짜장 기절을 하였을는지도 모른다.
 
98
집 문전에서 마침 의원이 다녀가는 것을 만나 물어서든 짐작으로든 새서방이 밤 사이 곽란이 나서 아닐말로 죽을 뻔을 한 줄을 알았나보다 하면 별반 이상할 것이 없으나 도대체 이 첫새벽에 들이닥칠 줄이야 정히 마른 하늘에 벼락이었다.
 
99
의원과 갈려들어 새서방의 이마를 짚어 주고 앉았다가였다.
 
100
‘어머님이 ! 벌써 !’
 
101
밑도 끝도 없이 그 지는 호통소리에 그렇게 놀라면서 정신이 아찔하였고, 잠시는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했다. 앓는 준호도 순간 아픔을 잊고 한가지로 놀라면서 몸을 떨었다.
 
102
삼월이는 박씨부인의 돌아옴이 이른 것이 뜻밖이고 무엇하고여서보다도 무심코 걸어나가다 별안간 누가 펄쩍 뛰어드는 바람에 그만 제풀 소스라치게 놀랐고 주츰 그 자리에 가 마주 멈추어섰다.
 
103
“으응 이년 ? 새서방님 죽였지 ? ”
 
104
박씨부인은 발을 쾅 구르면서 재차 호통을 지르고 그제서야 삼월이는
 
105
“안직 안 돌아가싰이유우 ! ”
 
106
하고 잔뜩 겁먹은 소리로 대답이었다. 삼월이 또한 거듭하는 ‘죽였지’를 ‘죽었지’로 알아들었고 그 대답이었던 것이다.
 
107
“안지익 ? 안지익 ?……”
 
108
황소 영각하듯 으르렁거려 다지면서 한 발씩 한 발씩 대든다. 죽였지야고 물은 대답이
 
109
‘아직 안 죽었어요.’
 
110
니 죽이려고 한 사실이 있었음을 제풀로 증언함이나 다름이 없었다.
 
111
“이년, 내년이 증거인 줄 알아 ! ”
 
112
“쇤넨 아무 죄두……”
 
113
“이년, 누가 네년더러 죄지랄까봐 지레 방색야 ? ”
 
114
그러면서 박씨부인은 비로소 꼿꼿이 머리를 돌려 종종걸음으로 마중을 내려오고 있는 며느리를 무섭게 부릅떠 본다. 집어삼킬 듯이라더니, 며느리를 부럽떠 보는 박씨부인의 눈과 얼굴을 참으로 무섭고 험하였다.
 
115
가까이 서 있어서 그를 똑바로 보고 있는 삼월이는 너무도 무섭고 험한 그 눈과 얼굴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늘 주인마님의 노한 눈과 얼굴을 대하여 왔지만 이런 무서운 노함은 처음이었다.
 
116
새서방을 독살을 도모한 며느리를 노하지 아니할 시어머니가 박씨부인 아니기로 없을 바 만무한 것, 그의 노함은 진성의 노함이었다. 여느때처럼 무단히 속이 상하여 내떠는 성이 아니었다. 성을 내기 위한 성, 억지로 내는 성이 아니었다. 정말로 나서 난 성이었다.
 
117
사건이 예사 사소한 일이 아니라 지극 중대한만큼, 또 성도 옳게 난만큼 박씨부인은 평소와 같이 덮어놓고 고함이나 쳐 기승을 부리고 함으로써 허턱 화풀이나 하고 하기로만 일을 삼으러 들지 아니하였다. 며느리의 죄상이 그쯤 분명하여진 이상 써 그 생살여탈을 임의로 할 수가 있다는 승리감·만족감으로 하여 훨씬 침착히 일 조처를 할 여유가 저절로 우러났다. 이를테면 살진 암사슴을 물어다 논 범처럼 마음이 느긋하여지던 것이었다.
 
118
죄가 없더라도 노염난 시어머니 앞이 어렵지 아니치 못할 터이거든, 항차 금령의 난장 구경을 보낸 과실이 있어 결국 그 빌미로 저렇듯 병이 난 것이요 하니 진주야 좀 마음 송구스럴 리가 없었다.
 
119
“어머님, 어떻게 이렇게 일찍……”
 
120
삼가롬을 다하여 인사를 드린다.
 
121
박씨부인은 사나운 중에도 다시 차가운 눈매로 쏘아볼 뿐 아직 아무렇단 말이 없다.
 
122
“지가 간밤에 먹은 것이 체해서……”
 
123
“흥 ! 체해서어 ? ”
 
124
그렇게 박씨부인은 빈정거리듯 말허리를 잘라 것질러버리고는 삼월이를 고쳐 족친다. 문초인 것이다.
 
125
“이년, 네 이실직고를 해야망정이지 털끝만치라두 기였단 네년 목버틈 썰어놓는 줄 알아 ? 응 ? ”
 
126
“마님, 살려주시유 ! 쇤년 아무 죄두, 마님……”
 
127
“어제 낮에 나 길 떠나구 없는 새 너 이년 나가 싸아댕기믄서 놀았지 ?”
 
128
“………”
 
129
“응 ? ”
 
130
“내애 ! ”
 
131
“밤엔 ? ”
 
132
“잤이유 ! ”
 
133
“초저녁버틈 ? ”
 
134
“내애 ! ”
 
135
“새성방님 즘심진지 잡수섰지 ? ”
 
136
“진진 안 잡숫구……”
 
137
“그럼 ? ”
 
138
“다식허구 엿 그런 것만……”
 
139
“잡숫구 나서 배아푸다구 토허구 허섰지 ? ”
 
140
“아니유 ! ”
 
141
“이년 ! ”
 
142
“낮엔 겐찮으섰이유 ! ”
 
143
“그럼 저녁진지 잡숫구 나서 ? ”
 
144
“저녁진지 잡수러 안 들오섰이유 ! ”
 
145
“안 들어와 ? 어디 나갔다 ? ”
 
146
“………”
 
147
“응 ? ”
 
148
“………”
 
149
“이년이 ! ”
 
150
“저어 난장……”
 
151
“난장 ? 난장 구경을 가섰단 말이지 ? ”
 
152
“내애 ? ”
 
153
삼월이는 하릴없어 대답을 아니하지 못하면서도 항상 저한테 살뜰히 하여 주고 제가 잘 따르고 하는 새아씨가 민망하여 연방 곁눈해 보고 보고 하기를 마지않는다.
 
154
“가시는 것 보았을 테지 ? ”
 
155
“아니유 ! ”
 
156
“그럼 ? ”
 
157
“널뛰구 놀다 들와 본깐 새서방이님이 안 기시길래…… 안 기시실래…… 새아씨께 이쭈어 보았더니 난장……”
 
158
“구경을 가섰다구 ? ”
 
159
“내애 ! ”
 
160
“으응 !……”
 
161
박씨부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끄덕이던 고개를 며느리에게도 돌린다.
 
162
“나 없는 새 제사날로 난장 구경을 감히 가지는 못했을 터…… 매양낭자(娘子)께서 가라구 보냈을 테지 ? ”
 
163
“………”
 
164
“어째 대답이 없는고 ? ”
 
165
“으응 ? ”
 
166
“하두우 심심해허믄서 가구퍼허길래 미련한 소견에 고만……”
 
167
“흥 ! 핑계가 좋아, 우선 난장 구경 내보내놓구서 말이 없다아 ?……”
 
168
그만큼 하고는 또다시 삼월이더러
 
169
“그래 난장 구경을 가셨다 오시긴 ? 어느만때쯤 오섰다 ? ”
 
170
“오시는 것두 못 뵈었이유 ! ”
 
171
“초저녁버틈 쿠울쿨 자빠져 자느라구우 ? ”
 
172
“………”
 
173
“그러구 ? ”
 
174
“아까 새아씨가 깨시길래 건너가 뵈었더니 새서방님이……”
 
175
“그래서 ? ”
 
176
“배가 아프다시믄서……”
 
177
“으응 !……”
 
178
박씨부인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깐 생각하다가 이윽고 음성과 표정을 새로이 사납게 하여가지고
 
179
“너 이년, 이제버틈이 정인 줄 알아 ? ”
 
180
“………”
 
181
“너 어제 새아씨 심부럼으로 저자에 가서 무엇 사온 것 있지 ? 응 ? ”
 
182
“어저끼유 ? ”
 
183
“그래 ! ”
 
184
“아무것도 안 사다 드렸이유 ! ”
 
185
“이년 ! 바른 대루 불지 못헐까 ? ”
 
186
“………”
 
187
“양잿물 사왔지 ? ”
 
188
“아니유 ! ”
 
189
“이년이 지금 죽질 못해 이러지 ! ”
 
190
“저업때 빨라허든 날은 양잿물 사왔어두 어저낀…… 어저낀 가게두 닫치구 어데 열어놓지두……”
 
191
“접때 사온 양잿물 쓰구 남았으렷다 ? ”
 
192
“내애 ! ”
 
193
“많이 ? ”
 
194
“내애 반 사발이나……”
 
195
“………”
 
196
박씨부인은 아까처럼 또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곰곰 생각을 하더니 ── 생각한다느니보다도 무엇인지를 거듭 망설이더니 마침내
 
197
“용길이 도령은 ? …… 왔었지 ? ”
 
198
“내애 ! ”
 
199
“와서 ? ”
 
200
“와서 바루 즘심 잡숫구 나가시구 안 들오섰어유 어태……”
 
201
“저녁두 안 먹으려 둘오구 ? ”
 
202
“내애 ! ”
 
203
“둘와 자지두 않구 ? ”
 
204
“내애 ! ”
 
205
“초저녁버틈 자빠져 잔 년이 머슴 둘와 자구 안 잘 걸 어떻게 알아 ? ”
 
206
“아까 의원 뫼시러 가믄서 겉이 가시자구 머슴 사랑으로 나가 봤이유 ! 아무두 없이유 ! ”
 
207
“용길이도령두 없구, 다른 집 머슴두 아무두 ? ”
 
208
“내애 ! ”
 
209
그럴 때 마침 당자 용길이가 밭은기침을 하면서 차면 안으로 끼웃하고 들어섰다. 신발에 이슬이 흠뻑 채이고 옷이랑 후줄근한 것이 새벽길을 걸어온 표적이 역력하였다.
 
210
박씨부인은 밭은기침 소리와 함께 홱 등 뒤로 돌아서면서 용길의 낯꽃과 행색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듯 날쌔게 위아래를 훑어본다.
 
211
용길은 아닌새벽에 대문 밖까지 큰소리가 들리어 들어와서 보니 식구들이 심상치 아니한 기색으로 웅기중기 마당 가운에 나와 섰어 하여 정녕 또 무슨 풍파가 인 것이라 직각하고 제풀에 목이 움칫하였다. 그러나 모르는 체 흔연히
 
212
“언제 오셨어요 ? ”
 
213
“넌 그래 어딜 갔다 지금야 이러구 오는 심이냐 ? ”
 
214
나무람조로 버럭 그러는 것을 용길은 손이 뒷덜미를 만지면서 히죽이
 
215
“난장 구경을 갔다……”
 
216
“난장이 새벽꺼지 선대드냐 ?
 
217
“술을 한잔 먹은 것이 고만 취해 떨어져 잔 것이 히 ! ……”
 
218
“어디서 잤단 말야 ? ”
 
219
“깨서 본깐 새벽인데 텅 빈 난장마당으 가 우리 일행 몇만 히히 ! ……”
 
220
“어제 즘심때 집인 댕겨 갔드라믄서 ? ”
 
221
“내애!……”
 
222
“그러군 지끔 들오는 길이지 ? 그 안엔 토옹 와 얼찐두 아니했지 ? ”
 
223
“내애 ! ”
 
224
“바른 대루 대야 헌다 ? ”
 
225
“바른 대루나마나 그뿐인걸요 머 ! ”
 
226
“겉이 난장 구경 가서 끝끝내 겉이 다니구, 술 먹구 난장마당으서 자구 그러구 겉이 나오구 헌 일행들이 다아 있으렷다 ? ”
 
227
“그럼요 ! 한둘인가요 ! 모두 해 다섯이 얼려가지구섬 ……”
 
228
“하루 저녁 한뎃잠 자길 신수 좋았지, 차라리 ! ”
 
229
박씨부인은 혼잣말로 그러고는
 
230
“아무데두 가지 말구 사랑으 나가 있거라 ! ”
 
231
하고 이른 후 비로소 건넌방을 향해 분주히 올라가는 것이었었다.
 
232
진주는 가슴이 들이 떨리고 오금에 맥이 빠져 곧 쓰러지려고 쓰러지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느라 연해 휘뚝거리면서 시어머니의 뒤를 따른다.
 
233
이미 저지른 과실이니 당하는껏 종용히 일을 당하는 것이라 하여 처음엔 매우 침착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차차로 그 말끝마다 딴 무엇이 있어 잡도리고 서둘면서 어딘지 평일 적과는 다르게 판을 차리는 품이 단순히 새서방의 병난 것을 노한 것이라거나 그리고 난장 구경을 가게 한 죄를 캐고 다스리고 하기 위한 거조와는 아무리 박씨부인이기론 지나치게 허겁스럼과 아울러 부전스런 구석이 보이곤 하여 내심에 퍽 이상타 싶은 생각이 노상 없지가 못했었다. 그러나 설마 새서방의 음식에 사약을 탄 세상에도 무섭고 끔찍한 혐의인 줄은 까맣게 눈치나 채었을 턱이 없었고…… 하다가 나중 양잿물 소리가 나와서야 화닥닥 정신이 들었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의 자초로 수상히 서둘던 태도가 주욱 되생각히면서 죄다 와 들어맞고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
 
234
꿈이 아닌가 하였다. 그러나 꿈결 같으면서도 버젓한 생시였다.
 
235
‘새서방을 ! …… 죽이려고 ! …… 양잿물을 !’
 
236
생각만 하여도 무서운 소리였다.
 
237
황당무계하다거나 그래서 애매하다거나 또는 하옇든 혐의를 받은 이상 장차로 치를 단련이 걱정스럽다거나 이런 것은 미처 경황도 나기 전이요, 겸하여 나중 문제였다. 우선 그리고 오직
 
238
‘새서방을 죽이려고 양잿물을 먹이었다.’
 
239
는 말 그것 스스로가 소름이 쪽 끼치고 무서웠던 것이다.
 
240
모친이 방으로 들어와 서는 줄을 알면서도 준호는 눈을 감은 채 뜨려고 하지 않는다. 얼굴에는 하룻밤 사이에 가뜩이나 핼쓱하여진 병색에다 겸치어 슬픔이 가득히 드리워 있다.
 
241
박씨부인은 한참 동안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섰더니 천천히 베개 옆으로 가 앉으면서 지천하듯
 
242
“이놈 입 벌려보라 ? ”
 
243
한다.
 
244
준호는 못 들은 체 눈썹 하나 까딱하는 반응도 없다. 준호가 모친의 말이면 말, 영이면 영 앞에서 이렇긋 제법 앙똥하기도 별반 드문 일이었다.
 
245
박씨부인은 그것만으로써 크게 한바탕 꾸짖었을 터이로되 병중일뿐더러 판국이 워낙 판국인지라 짐짓 씻어넘기고 만다.
 
246
“보나마나 입술이 저렇게 성헐 젠 양잿물을 앵긴 게 아니구먼 !……”
 
247
박씨부인은 혼잣말로 그러다가
 
248
“그래 먹으믄서 바루 입안이 불이 나구 허드냐 ? 그렇잖구……”
 
249
하고 얼마쯤 음성을 부드럽혀 묻는다.
 
250
그 말에는 준호는 얼른 고개를 젓는다. 독약을 먹었음을 부정함으로써 새댁을 싸고 돌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의 효과를 낳는 것이 되었다.
 
251
“그러면 그렇지 ! 양잿물이 아냐 ! 다른 약을 썼어 ! 매양 비상(亞砒酸[아비산])테지 ! ”
 
252
“어머니 ! ……”
 
253
따라 들어와서 한옆으로 비껴 섰던 진주는 더 참지 못하고 한마디 울음 섞어 그렇게 부르면서 접질리듯 방바닥에 가 엎드린다.
 
254
“어느 입으로 날 시에미라구 부르는고 ? 흉악헌 요물이 ! ”
 
255
“하늘이 내려다보실까 무서요 어머님 ! ”
 
256
그때였다. 준호가 잠시 신간하였던 복통이 다시 나
 
257
“아이구 배야 ! ”
 
258
하고 신음 소리를 가늘게 지르면서 허리를 틀었다.
 
259
박씨부인도 그리고 경황중에도 반사적으로 몸을 들어 진주도 한가지로 눈이 병자에게로 모였다.
 
260
박씨부인은 남의 어머니는 역시 어머니였다. 눈을 아들의 얼굴로 그리고 손은 저절로 아파하는 배를 쓸어주려 가지 아니치 못하던 것이었었다.
 
261
손에 뒤미처 눈도 자연 배로 옮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262
“으응 ? ……”
 
263
가던 손을 그대로 멈추면서 박씨부인은 더럭 더 험하여지는 눈을 아랫도리만 걸친 처네 위로 비어진 준호의 골마리로부터 며느리의 얼굴로 대고 부릅뜬다.
 
264
“이러구두 ? ”천둥소리처럼 우렁찬 호통이었다.
 
265
진주는 영문을 몰라 아직도 뻐언하고 있고
 
266
“배꼽으다 바눌을 꽂아놓구두 ? ”
 
267
박씨부인은 기운찬 손가락질과 함께 더욱 호기롭게 호통이다.
 
268
진주는 시어머니가 손가락질하는 곳 새서방의 골마리에 가서 배꼽 어림으로 짤막히 실을 꿴 채 꼿꼿이 반 넘겨 꽂혀가지고 있는 한 개의 바늘을 발견하기 전에 시어머니의
 
269
‘배꼽에다 바늘을 꽂아놓고도……’
 
270
하는 소리로써
 
271
‘아 ! 그 바늘이 !’
 
272
하고 놀라기에 넉넉함이 있었다.
 
273
얌전스런 여인이라도 바느질을 하다 골몰중에 바늘을 잃는 수가 더러 있다. 잃은 바늘이 바로 그 바느질 속에 가 묻히든지 꽂히든지 하는 수가 또한 없지 아니하다. 진주도 올 추석 바느질을 하면서 바늘을 잃었었다. 다른 곳에 떨어졌던지 바느질밥에 쓸려나갔던지 하였다면이거니와 혹시 바느질 속에라도 묻혀 들어간 것이라면 큰일이라고 애를 쓰면서 무한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 바느질이 곧 어제 새서방을 난장 구경을 보내면서 날이 저물게 되면 혹여 추워할세라 갈아 입혀 준 모시 겹것이었었다. 하필……
 
274
그렇더라도 또 하필 그 바늘이 배꼽 어림에 가서 묻힐 것은 무엇이며 진종일과 밤새도록 가만히 있다가 새벽에야 꼿꼿이 일어섰을 것은 무엇이며, 가사 그렇게 일어선 지가 오랬기로니 그동안 진주든지 하다못해 의원이나 삼월이가 그것을 못 보았을 것은 무엇이며, 그러다 필경 지금이야 사람의 눈에 뜨이되 유독 박씨부인의 눈에 뜨일 것은 무엇이며……공교롭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275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연으로 돌리고 말기엔 너무도 귀신의 장난에 가까왔다.
 
276
진주에게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면 부득불 귀신의 장난이었으나 박씨부인은 조금도 우연일 며리도 귀신의 장난일 필요도 없었다.
 
277
어엿이 사람의 한 짓이었다. 음식에 독약을 타 먹인 솜씨나 마찬가지로 사람 ── 며느리의 한 짓이었다.
 
278
이 배꼽의 바늘은 독립한 살의(殺意)를 머금고 있는 자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새서방을 없이할 목적으로 음식에 독약을 타 먹였다는 것이 드디어 역력한 사실임을 박씨부인으로 하여금 우선 박씨부인 자신에게 강조를 시키는 것이어서 매우 깔보지 못할 가치를 부차적으로 가지는 것이었었다. 그러한만큼 그는 반대로 진주를 위하여서는 대단히 불리한 재료가 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279
‘이러고도 ? 배꼽에다 바늘을 꽂아놓고도 ?’
 
280
하늘이 내려다보실까 무섭다고 한 소리가 무색하고 당장 말문이 칵 막혀버리고 말았다.
 
281
박씨부인뿐만 아니라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가지고 우물 두덩과 고샅길에 모여 서서 동네 아낙네들이 찧고 까부는 소리를 듯더라도 가령
 
282
‘양잿물을 몰래 타서 앵겼다구 ?’
 
283
‘아냐 ! 비상이래 !’
 
284
‘종작없는 ! …… 괜히 무함을 잡느라구 그랬지 무슨 그럴 !’
 
285
‘오감찰두 그러는데 곽란이란대 !’
 
286
‘아냐 ! 배꼽으다 작대기만한 바늘을 꽂았대 !’
 
287
‘오온 절 ! ……’‘누군 바누질하다 바눌 안 잃어버리나 ?’
 
288
‘그래두 ! …… 아 열 길 물속은 알아두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구, 고 얌전한 것이 혹시……’
 
289
이렇듯 열에 하나나 둘쯤은 남들도 진주를 의심하는 축들이 없지가 못하였다. 침소봉대(針小棒大)란 말이 있거니와 과연 바늘이 작대기질을 하는 판이었다.
 
290
“에이 끔찍헌지고 ! 에이 흉헌지고 ! 에이 무선지고 ! ”
 
291
박씨부인은 커다랗게 몸서리를 쳐싸면서 연방 그러다가 벌떡 떨치고 일어서더니 호기 있게
 
292
“삼월아 ! ”
 
293
“내애 ! ”
 
294
얼른 앞 툇마루에서 대답이다.
 
295
“에이 끔찍헌지고 ! …… 너 이년 힝나케 말우물댁에 가서……”
 
296
말우물댁이란 친정집 ── 준호의 외가였다.
 
297
“에이 흉헌지고 ! 에이 무선지고 ! …… 힝나케 가서 생원님허구 아씨허구 지끔 곧 좀 건너옵사구 응 ? ”
 
298
“내애 ! ”
 
299
“냉큼 가 선 자리에서 겉이 모시구 와 ! 응 ? ”
 
300
“내애 ! ”
 
301
“물으시드래두 주둥이 까지 말구 거저 모시구만 와 ! ”
 
302
“내애 ! ”
 
303
“에이 끔찍헌지고 ! ”
 
304
“………”
 
305
“삼월아 ? ”
 
306
“내애 ? ”
 
307
“나가다 용길이도령 들여보내구 ! ”
 
308
“내애 ! ”
 
309
“에이 흉헌지고 ! 에이 무선지고 ! …… 내 집이 어떻게 망허면 못 망해서 천하에 이런 ! …… 에이 끔찍헌지고 ! ”
 
310
무수히 그렇게 박씨부인은 그 끔찍한지고와 흉한지고 무선지고를 되풀이하면서 몸서리를 치고 하던 것이나 이상힌 조금치도 끔찍하거나 흉헙고 무선 실감은 나지를 않고 몸서리도 일부러지 저절로 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서 오직 자각하겠는 것은 박하물을 들이켠 듯 가슴 후련한 통쾌감이었다. 가슴 후련한 품이라니, 십여 년 고생하는 체증이 일시에 쑤욱 내리는 것 같았다. 평생에 이처럼 통쾌한 꼴은 보아본 적이 없었다.
 
311
뜨락에서 용길의 기척이 들렸다.
 
312
“에이 끔찍헌지고 ! …… 용길이냐 ? ”
 
313
“내애 ! ”
 
314
“너, 이 길루 곧 가서 두팔이 …… 두팔이 알지 ? 교군 미는……”
 
315
“내애 ! ”
 
316
“가서 발 맞는 놈 아무나 하나 데리구, 담배 한대전 안에 대령허라구
 
317
……”
 
318
“담배 한대전 안에유 ? ”
 
319
“담배 한대전 안에 대령허면 오늘 교군삯 외에 따루 후헌 상급을 주만다구……”
 
320
“내애 ! …… 그렇지만 댐배 한대전 안에야 어디……”
 
321
“잔소리 말구 가 시키는 대루 허기나 해 ! ”
 
322
“내애 ! ”
 
323
“그리고 용길아 ? ”
 
324
“내애 ? ”
 
325
“두팔이더러 단단히 그렇게 일르구서, 널랑은 말야 ? ”
 
326
“내애 ! ”
 
327
“구월쇠네루 가서……”
 
328
“저 방물장수허는 구월쇠네유 ? ”
 
329
“그래 ! 가서 선 자리서 덜밀 짚어 앞장세워 가지구 와 ! ”
 
330
방물장수 구월쇠네란 혼인을 중매한 동네 매파였다.
 
331
성화같이 분부를 마친 후 박씨부인은 인하여 준호를 누운 채 그대로 떠안고 불끈 일어선다. 안방으로 옮겨가던 것이다. 바늘은 손도 대지 않고 꽂혀 있는 채 고스란히…… 그러나 본시 옷 속에 묻혔던 것이 옷이 이리저리 밀리다 어쩌다 그렇게 꼿꼿이 일어섰던 것이라 심히 불안하였음은 물론이요, 따라서 몸을 한번 건드리자 옷이 약간 밀리기가 무섭게 바늘은 비스듬히 누워버리고 말았다.
 
332
준호는 새댁을 위하여 어떻게 하든 발명을 해주고 싶은, 아니해서는 안되겠다 싶은 퍽 절박한 마음이었으나 생각뿐이지 와락 좋은 묘책이 없었다.
 
333
무턱대고
 
334
‘나 아프지 않소 !’
 
335
한다는지 또는
 
336
‘양잿물도 비상도 먹은 일 없소 !’
 
337
‘제가 꽂은 바늘이 아니라 내가 바늘을 가지고 장난을 하다 잃어버린 것이 그렇게 되었소 !’
 
338
한다든지 하였자 번연한 소리여서 속이나 보였지 간대로
 
339
‘오오 그렇더냐 ?’
 
340
하고 얼른 곧이들으려 할 리 만무한 노릇이었다.
 
341
가사 또 그럴듯한 무슨 발명될 말이면 말, 핑계이면 핑계가 있다손치더라도 평상시에도 주눅이 들어 그 앞에서 고개 한번 똑바로 쳐들지 못하며 말 한마디 제대로 다하지 못하는 터이거든, 항차 이 하늘을 찌를듯 기승을 떨면서 무섭게 서두는 판이리요. 좀처럼 의사를 행동으로 옮기고 할 강단 같은 것을 내는 수가 없었다.
 
342
답답하고 슬펐다.
 
343
그런데다 새댁이 옆에 있어 병간을 하며 살뜰히 시중들어 주는 손 앞에서 마저 떨어져 안방으로 안기어 가자 하니 또한 슬프기 한량없었다. 죽은 듯 감은 눈으로 눈물이 솟아 이슬방울처럼 맺어졌다.
 
344
진주는 혼자 있게 되자 더 참지를 못해 그 자리에 엎드러져 소리를 삼키면서 울었다.
 
345
맨처음 당도한 이가 밤골아씨라는 준호의 외숙모였다. 준호의 외숙은 손님들과 사랑에서 밤새도록 술을 먹다 밝을녘에야 자리에 들어 세상 모르고 잔다는 것이었다. 가족회의는 그래서 자못 단출하였다.
 
346
“온 세상에 이런 변괴가 있겠소 ? 참 남이 알까 무선 노릇이지 ! …… 에 이 끔찍헌지고 ! 에이 흉헌지고 ! ……”
 
347
박씨부인은 친정오라범댁이 들어서는 참 한바탕 이렇게 띄어놓고 요란을 떨고 나서
 
348
“글쎄 다른게 아니라……”
 
349
하고 주욱 며느리의 죄상을 일장 주어 꿰는 것이었다. 간밤의 사단을 물론 중심으로 하되 중간중간 평상시의 온갖 흠결을 연방 가미하여 가면서 그 좋은 언변으로 썩 그럴듯하고 들음직하게.
 
350
준호의 외숙모는 소위 그 끔찍하고도 무서운 변괴를 이야기 들으면서도 조금치도 놀라 하는 기색이 없었다. 족히 종작할 것이 못되는 소리기때문이었다. 한 동네요 해서 종종 다니면서 보는 바 다시없이 얌전하고 상냥스럴 뿐만 아니라 땅에 기는 버러지 하나 밟죽이지 못하도록 마음자리 약한 소부였었다. 그 생질며느리가 새서방을 죽여 없애려고 무얼 어쩌고저쩌고 하다니 「장화홍련전」이나 「숙영낭자전」보다도 더 야속한 무함이었다. 보나마나 미운 며느리요 못 볶아 체증이 성해하는 시어머니라 공연히 또 생트집을 잡는 속인 것이 빠안하였다. 막상 그렇다고 즉석에서 맞대놓고 사리를 따지어 그의 밝지 못함을 밝힌다든지, 결과 며느리를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든지 하여서는 가뜩이나 성깔을 덧들여 섣불리 일만 점점 더 시끄러워질 모양이어서 밤골아씨는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만 앉았다 잠자코 건넌방으로 건너왔다.
 
351
“가 빌어라 ! 죽여 주시라고 빌어라 ! 시어머니 앞에선 거저 비는 게 제일이니라 ! 그게 시집살이란다 ! ”
 
352
건너와서도 여러 말 않고 이렇게 달래는 것이었었다.
 
353
심히 무모한 권임즉도 하였다.
 
354
가령 밭은기침 소리가 너무 요망스럽다고 하여 책망이 내렸다든지, 혹은 밥상에 수저 놓임새가 단정치 못하였다고 하여 꾸지람을 들었다든지 이런 어디까지고 소위 시집살이 법도의 범위 안의 일이라고 한다면, 그야 암만 과실이 없었더라고 고즈너기 잘못했읍니다고 비는 것이 며느리의 도리요 현명한 며느리일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는 죄하고도 극흉한 죄, 새서방을 없애버리려고 음식에 사약을 타먹였다는 둥 배꼽에다 바늘을 꽂았다는 둥 무서운 누명을 쓰고 있는 사람더러
 
355
‘잘못했소 !’
 
356
하고 용서를 빌라니 결국 없는 사실을 자백하여 애매히 죄를 쓰고 들어 가란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357
‘새서방을 죽여 없애려고 하기는 하였소. 음식에 정녕 사약도 타먹였고 배꼽에다 바늘도 이 손으로 분명히 꽂고 하였소. 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오.’
 
358
영락없이 이런 뜻이었다.
 
359
밤골아씨는 그러나 사건이라는 것을 전혀 미더워하지 아니할뿐더러, 잘 아는 바, 시뉘아씨도 지금 공연히 성정을 부리던 것이지 설마 그 허황한 사실을 정말 그렇게 믿고서 시방 이러는 것은 아닌 줄만 여기는 터이었었다. 따라서 덮어놓고 빌기만 하면 역정은 갈앉는 것이요, 역정이 갈앉고 나면 혐의는 제풀에 풀리어 뒷일은 씻은 듯이 곧 무사하고 말려니 하는 썩 낙관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였기 때문에 태연히 그는 가 빌기를 권하던 것이었다.
 
360
시어머니가 무단한 역정이지, 말하는 것처럼은 적실한 혐의를 두는 것은 아닐 줄로 진주 역시 얼마쯤은 밤골아씨와 마찬가지로 낙관을 하는 생각이 없지가 못하였다. 해서 그는 별반 주저함이 없이 안방으로 밤골아씨를 뒤따라 건너갔다. 얼른얼른 치맛자락으로 눈물도 닦고 헝클어진 머리도 쓰다듬고 하면서.
 
361
박씨부인은 진주가 대청마루의 샛문으로부터 한걸음 들어서자 들이 호령호령, 어딜 내 눈앞에 얼찐거린단 말이냐면서 말도 못 붙이게 하였다.
 
362
진주는 겨우 문턱 안으로 팔 짚고 꿇어앉았으나 죽여달라고 한마디 비는 소리는 모기소리만큼 가늘기도 하였거니와 박씨부인의 우렁찬 목청에 막히어 들렸는지 말았는지 하였다.
 
363
“형님이 진정을 허시요 ! 진정허셔가지구 제 말두 좀 들어보시구 !……”
 
364
밤골아씨가 비로소 무마를 시키고자 하던 것인데 박씨부인은 그 진정이니 제 말 즉 변명을 들어보라느니 하는 소리가 비위에 거슬렸다.
 
365
“그럼 내가 발광이 됐단 말요 ? ”
 
366
“오온 형님두 ! …… 조용조용히 어떻게 된 사맥인지 제가 허는 말두 들어보아야 헐 일이 아녜요 ? ”
 
367
“들어보나마나하지요.”
 
368
“예사 사소한 일두 아니구 형님 말슴따나, 참……”
 
369
“그럼 내가 괜히 절 무함을 잡았단 말요 ? 없는 죌 뒤씌우느라구 그랬단 말씀요 ? ”
 
370
“그럼 날 무엇하러 불러오섰소 ? ”
 
371
밤골아씨의 얼굴과 음성은 마침내 평온치 못하여졌다.
 
372
“좀 오시란 게 잘못이요? ”
 
373
“우두커니 병신처럼 말 한마디 거들지두 못하구 앉아서 이 잘난 구경이나 허라구 불러셌읍디까 ? ”
 
374
“아따, 그렇다면 오시라기가 잘못했나 보우 ! 어서 가시우 ! ”
 
375
“있으래도 아니 있어요 ! ……”
 
376
밤골아씨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는 이 집 며느리는 아니었다. 매어서 눌려 지낼 며리가 없었다.
 
377
“이왕 집안간이라구서 불러왔거들랑 의논껏 뒷일 갈무릴 허두룩 하는것이지, 사뭇 이건 반찬 먹은 무엇 잡두리허듯…… 내가 잘못한 게 무어람 ? 죽이던 살리던 가부간에 제 말두 들어보구 헐 일이지, 그러랬단다구 되려날……”
 
378
밤골아씨의 마지막 말은 벌써 차면 밖에서 들렸다.
 
379
퀄퀄한 것은 좋았을는지 모르나 되도록 무마를 하여 무사히 진정을 시켜놓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티격태격을 하다 퍼르르해 돌아가버리니, 그 역시 필경엔 속 좁은 여인이었지 별수 없었다.
 
380
밤골아씨와 엇갈리어 중매 노파 구월쇠네가 용길을 따라 대령하였다. 박씨 부인은 구월쇠네의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381
“두팔이랑은 아니 오느냐 ? ”
 
382
하고 용길이더러 묻는다.
 
383
“곧 온대요 ! ”
 
384
“곧이라니 담배 한대전이 지난 지가 언제길래 ? ”
 
385
“………”
 
386
“또 쫓아가 봐 ! ”
 
387
“내애 ! ”
 
388
두팔이 등 교군꾼들이 와서 가마를 꾸며서 마룻전에다 가마 채장을 들이대기까지는 짧지 아니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구월쇠네는 심히 졸연치 아니한 공기를 눈치채고 왜 불렀느냐고, 무슨 일이냐고 누누이 물었으나 박씨부인은 잠자코 있으랄 뿐 일체 말을 아니하였다.
 
389
패랭이 쓰고 먹등삼 걸치고 감발하고 짚신 걸매고 양어깨에 가마 걸빵메고 이렇게 날아갈 듯 차린 두팔이가 토방 아래서 굽신하면서
 
390
“가마 어디루 대오리까요 ? ”
 
391
한다.
 
392
“해정을 든든히 했느냐 ? ”
 
393
“네 ─ 이 ─”
 
394
“저 윗문 바루 대라 ! ”
 
395
“네 ─ 이 ─ ! ”
 
396
두팔이가 앞을 메고 또 한 자가 뒤를 메고 가마는 안방 윗문 바로 마룻전에다 걸쳐놓는다. 두팔이는 그러고는 일단 마당으로 내려선다.
 
397
“이게 다아 혼인 중신 잘못한 허물이니 그런 줄이나 알구서……”
 
398
박씨부인이 비로소 구월쇠네더러 준절히 말을 이르던 것이다.
 
399
“지금 이 길루 교군 뒤따라가서 그댁 마나님께 내 전갈 이쭈되……”
 
400
“글쎄 어둔밤으 홍두깨지 웬일이세요 ? 마나님 ! ”
 
401
“자네더러 일 참견허라구 불른 게 아냐 ! 자네가 중매 선 혼인을 물르는 마당이니 자넬랑은 내가 시키는 대루 그 댁에 가 내 전갈이나 허구 와 ! ”
 
402
“………”
 
403
구월쇠네는 혼인을 무르다니 알고도 모를 소리어서 눈만 홉뜰 뿐이다.
 
404
“똑똑히 듣구 가, 꼬옥 그대루 이쭈어 ! …… 나는, 그리고 이 김진사댁은, 사람이나 가품이 두루 너그럽지가 못해 신랑을 음식에 사약을 타 멕이구 그래두 부족해서 배꼽에다 바눌을 꽂구 허는 며느리는 두구 볼수가 없어 도루 보내니 그리 아십사구…… 응 ? ”
 
405
“………”
 
406
구월쇠네는 하마 뒤로 벌떡 나가 자빠질 뻔하게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박씨부인과 앓아 누웠는 준호와 진주를 연방 번갈아 보기에 눈동자만 한참 바쁘다. 그러다 이윽고
 
407
“에구 하누님 맙시사! 말씀두 끔찍허지, 아무려면 저 새아씨가……”
 
408
“무엇이 어째 ? ……”
 
409
박씨부인은 버럭 호통을 지르면서
 
410
“그럼 내가 없는 죄를 무함을 잡았단 말야 ? ……”
 
411
“글쎄 온 하두 온……”
 
412
“속시원히 보겠거든 자아 보게 그려나 ! 와 보아 ! ”
 
413
박씨부인은 준호의 골마리를 손가락질하여 가리킨다.
 
414
구월쇠네는 시쁘듬히, 원시 된 노안으로 박씨부인이 손가락질하는 자리를 더듬다가
 
415
“어쩌나아 ! 아마 바누질을 허시다 옷 속으로 묻혀 들어갔든감 ! 그렇죠? 새아씨 ? ”
 
416
진주를 건너다보면서 묻던 것이나 아까부터 어깨만 한결같이 떨고 있을 뿐 아무 반응이 없다.
 
417
구월쇠네의 그 바느질을 하다가 옷 속으로……라는 말에 박씨부인은 퍼뜩
 
418
‘혹시 참 !’
 
419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녕 그런 듯싶어 못하겠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강경히 그 생각을 밀어 물리치면서
 
420
“흥 ! 바누지일 ? 핑계야 좋지 ! ”
 
421
“에구 마님두 ! 마님두 젊어 시집살이허시믄서 바누질허시다 바눌 더러 잃어버리구 하섰을 텐데……”
 
422
“듣기 싫여 ! 그런 사살 듣자구 자넬 부른 줄 알아 ? 대관절 나 시키는 대루 가마 뒤 따라갈 텐가아 ? 아니 갈 텐가 ? ”
 
423
“시상으 이 늙은 것이 마른벼락을 맞자구 그런 심부름을 허구 갑니까 제에발……”
 
424
“그래, 아니 갈 테란 말야 ? ”
 
425
“못 갑니다 ! ”
 
426
“그런 흉악한 자리다 혼인 중신을 허구두 ? 좀 들이껴서만 같아두 매파 자네버틈 성문이 부러질 줄 모르구 ? ”
 
427
“성문 아냐 시방 당장 허리가 부러져두 못헙니다. ! …… 가엾어라 ! 저런 요조숙녀 같은 새아씨가 어쩌다 이 횡액을 ! 가엾어라 ! 쯔쯔 ! ”
 
428
“낼버틈 이 고장서 못 살구 말 줄 알렷다 ? 하늘이 두 조각이 나두 쫓겨나구야 말 줄 알렷다 ? ”
 
429
“쫓겨나긴 말구 제주도루 귀양을 가기루…… 옛날 어진이들은 도적이 마신 우물두 아니 먹었대는걸요 ! ”
 
430
결국 불붙는 데 키질이었다.
 
431
“오냐, 두구 보자꾸나 ! ”
 
432
박씨부인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삼월이를 불러 건넌방의 준호가 쓰는 필연과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한 장의 간찰을 적는다. 사부인 ── 진주의 친정 조모에게 방금 구월쇠네더러 전갈하라고 이르던 말을 고대로 적던 것이다.
 
433
간찰을 봉하여 두팔이를 불러서 잘 가지고 가 그 댁 노마님께 드리라고 내주고 나서 처음으로 진주를 향하고 똑바로 앉는다.
 
434
“여러 말 허기두 싫다마는 내 승깔대루 허자면 벌써 작두를 들이댔을것이로되 열 번 참는 것이니 그리 알구…… 어서 나가 타거라 ! ”
 
435
“………”
 
436
“냉큼 ! ”
 
437
“………”
 
438
“아 냉큼 타지 못허느냐 ? ”
 
439
“어머님 ! ……”
 
440
진주는 가까스로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애원하듯 박씨부인을 한번 보고는 이내 도로 숙이면서
 
441
“죽여 주세요 ! 죄가 있거들랑 차라리 죽여 주세요 ! ”
 
442
“이렇게 이퉁을 쓰구만 앉었을 테냐 ? ”
 
443
“………”
 
444
“응 ? ”
 
445
“참으세요 마님 ! 잠깐 그저 승정 참으시면 허실걸 가지구.”
 
446
구월쇠네가 옆에서 이런 만류의 말을 하던 것이나 박씨부인은 들은 성도 않고 다시 삼월이를 시켜 이번에는 보시기에다 냉수와 숟가락을 가져 오게 한다.
 
447
냉수와 숟가락이 들어왔다.
 
448
박씨부인은 웃목으로 가 반닫이를 열고 서랍에 간직한 조그만한 약봉지를 하나를 꺼내가지고 오더니
 
449
“너 고개 들구 이걸 보아라 ! ”
 
450
한다.
 
451
세 번 재촉을 하여서야 진주는 조금 고개를 쳐든다.
 
452
박씨부인은 물을 한 모금은 되게 지워 놓고 봉지를 풀어 하얀 그 가루 약을 팥알만큼 숟가락총으로 떠서 물에다 탄다 그러면서 잘 보여주지도 않았으면서
 
453
“이게 무슨 약인지 너두 알 만허리라 ? ”
 
454
“………”
 
455
“비상인 줄 너두 알 테란 말야 ! …… 일러루 와 앉어라 ! ”
 
456
박씨부인은 왼손에 약보시기를, 바른손에 숟가락을 갈라 들고 준호의 누웠는 베개 옆으로 다가앉으면서 일변 진주더러 그 맞은편 턱으로 가리킨다.
 
457
진주는 조금도 저어함이 없이 종용히 일어나 가리키는 곳 준호의 저편 짝 베개 옆으로 가 앉는다. 저더러 사약을 먹으라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458
삼월이는 마루에서 벌벌 떨고. 구월쇠네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면서 대들어 약그릇을 빼앗을 듯 엉거주춤 밑을 들고는 그대로 잠깐 하회를 여살핀다.
 
459
그러나……
 
460
박씨부인의 입에서는 뜻밖으로 다른 말이 떨어졌다. 약을 한 숟갈 떠 준호의 입 바로 가져다 대면서
 
461
“네 손에 죽이느니 내가 내 손으루 차라리 죽이구 말겠다 ! ”
 
462
“어머님 ! ……”
 
463
쥐어짜듯 그러면서 진주는 한 손으로 준호의 입을 덤쑥 가린다. 하면서 동시에 또 한손을 내밀어 숟가락을 움키면서
 
464
“지가 먹으께요 ! 지가요 ! ”
 
465
“흥 ! 왜 내가 너를 죽이느냐 ? 너 같은 걸 죽이구서 내가 살인헌 죄를 써 ? 흥 ! ”
 
466
유유히 숟가락을 끌어들이면서 거듭 냉소를 한다. 준호는 먼저에 박씨부인이 비상이란 소리를 하면서 진주를 불러앉혔을때에는 백지장처럼 얼굴이 핼쓱하였었다. 그러다 그 역시 의외로
 
467
‘내가 내 손으로 차라리 죽이고 말겠다 !’
 
468
하는 말을 듣자 얼굴은 정반대로 새빨갛게 피가 솟쳐 올랐다. 눈은 처음부터 내내 따악 감고 누워서……
 
469
다같이 심장에 격동을 받던 표적이었었다.
 
470
“어떡헐 테냐 ? 이래두 못 갈 테냐 ? ”
 
471
“지가 먹으께요 어머님 ! ”
 
472
“아니 네가 시방 네 눈으로 이 김씨네 문중의 삼대 독자가 죽어 없어지는 꼴을 보구라야 속이 후련해 물러설 테란 말이지 ? ”
 
473
“절 죽여주세요 어머님…… 다아 그랬어요 ! ……”
 
474
진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울음 섞어 끊겼다 이었다 하면서
 
475
“간밤에 인절미다랑 곰국으다랑 비상두 타 멕이구, 그리고 배꼽으다 바눌두 꽂구 그랬어요 ! 백번 죽어 마땅허니 절 죽여주세요 ! ”
 
476
“거 보려무나 ? 누가 아니래 ? ”
 
477
박씨부인은 기가 나서 그러면서 보란 듯이 구월쇠네더러
 
478
“들었지 ? 지금 허는 말 죄다 들었지 ? ”
 
479
“제발덕분 승정 고마안 갈앉히시래두 ! …… 어떡허시자구 질래 이러세요? 이러시길……”
 
480
“제 입으루 활활 저렇게 불어두 날 무함잡았다구 헐까아 ? ”
 
481
“홍두깨루 쳐, 담 아니 넘는 장사 없답니다 !여북허니 글쎄.”
 
482
“저 늙은 것이 시방 죽질 못해 저러지이 ! ”
 
483
“살 날이 며칠이라구, 바른소리 허다 죽기가 그대지 무섭겠읍니까 ! …… 세상일이 참아서 해룬 법 없으니 부디 참으세요 ! ”
 
484
박씨부인은 분통이 터지는 깐으로 하면 얄밉살스럽게 앉아서 이기죽이기죽 옳은 말과 적절한 말만 일일이 하고 있는 늙은 것을 잡아 태질을 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울컥울컥 치달으나 그도 못할 노릇, 그야말로 참고 탄을 아니하기만 못하였다.
 
485
‘홍두깨로 쳐 담 아니 넘는 장사 없다 !’
 
486
미상불 그런 성불렀다. 마지못해 아닌 죄를 쓰고 들어가는 것이 분명 한 것 같았다. 바늘이 살해를 목적으로 배꼽에다 몰래 가만히 꽂아놓았다느니보다 바느질을 하다 잃은 바늘이라고 하기에 옳게 여겨지던 것처럼……
 
487
그러나 사실이 있고 없는 것이나 도리에 맞고 어그러지는 것이나, 또는 경우가 옳고 그른 것이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억지 하나면 고만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대고서나 남에게 대하여서나 쑤지 아니할값에 팥으로 메주를 쑤느니라고 우선 우겨대면 고만이요, 뜨지 아니할값에 해가 서쪽에서 뜨느니라고 우선 우겨대면 고만이었다. 항차 이 일에 들어서야 본인의 버젓한 자백이 있음이리요. 그것이 무근한 거짓 자백이라는 것은 알은체도 고려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었다.
 
488
‘나이 어린 새서방을 죽여 없애려고 음식에다 독약을 타 먹이고, 배꼽에다 바늘을 꽂고 한 며느리다. 제 입으로 자백까지 하였다. 그런 야차를 며느리라고 그대로 두어둘 시집이 있을까보냐. 옛법에 따라 작도에 걸고 목은 쓸지 아니하나마 제 친가로 쫓기조차 아니하고 말소냐.’
 
489
이렇게 사개가 꼭꼭 들어맞을 수가 있었다. 거두절미하여 버리고 말이었다.
 
490
박씨부인은 구월쇠네를 젖혀놓고 다시 진주를 다긏는다.
 
491
“네 좁은 소견에두 생각을 해보렴 ? 명색이 가장이란 걸 죽여 없애려든 너를 내가 이 집안에다 붙여두구 볼 듯싶우더냐 ? 용서헐 일이 따루 있구 참는 것두 분수가 있지 ! ”
 
492
“………”
 
493
“네가 있구 보면 이놈은 언제 죽어두 네 손에 죽구 마는 놈야 ! 그럴 일이 있어 ! 말은 아니헌다만……”
 
494
“………”
 
495
“그러나 네 손에 죽게 허느니 진직 내 손으로 죽여 ! 차라리 이 에미 손으루……”
 
496
“………”
 
497
“너 한 반년 겪어보았으니 내 승미 알겠구나 ? 한번 이런다 허면 하늘이 무너져두 그여히 허는 승민 줄 알지 ? ”
 
498
“………”
 
499
“지켜 앉어 못허게 방해할 테거든 허려므나 ? 이따라두 낼이라두 요거 한 숟갈 입에다 떠널 새가 없을까봐서 ? ”
 
500
“………”
 
501
“더 여러 소리 헐 것 없구 자량해 해라 ! 선뜻 일어나 가던지 웬 변덕인지는 모른겠다만 아니 가구 있다 이놈이 내 손에 죽는 꼴을 보던지…… 자량해 해라 ? ”
 
502
“………”
 
503
한순간 방안이고 바깥이고 깜박 괴괴하다. 숨결조차 멎은 듯 괴괴하였다.
 
504
다음 순간 진주가 고요히 몸을 일으키는 옷 스친 소리로 침정은 흔들리었다.
 
505
몸을 일으킨 진주는 몇 걸음 물러나 박씨부인한테 나풋이 절을 한다. 그러고는 도로 일어서면서
 
506
“어머님 갔다 곧 오겠어요 ! ”
 
507
“온단 말은 가당치두 않다 ! …… 혹 이 동네 달리 만날 사람이라두 있어 왔다 지날길에 들른다는 건 모르되, 도루 이 집으로 올 생각일랑 애야 말구 가거라 ! 이 날 이 시각으로 너는 이 집 사람이 아냐 ! 남이 이 집을 어째 오는고 ? ”
 
508
박씨부인의 그 혹 이 동네에 달리 만날 사람이라도 있어…… 하던 말은 뜻이 자못 깊었으나 속을 모르는 진주는 심상히 들었을 따름이었다.
 
509
진주의 눈은 잠시 준호의 얼굴에 가 멎은 채 차마 떠나지 못한다. 눈을 감고 뜨지 아니하니 눈으로나마 작별과 다시 올 뜻을 일러주지 못함이 한스러웠다.
 
510
진주는 드디어 천천히 윗문치로 해 걸어나가 가마에 들고 만다. 거처하던 건넌방에 들러 버선 한짝 갈아 신을 생각도 아니하고 입은 채 차린 채 그대로……
 
511
구월쇠네가 보고 있다 참다 못해 입을 실룩실룩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512
“에구 가엾은지구 ! 가엾은지구 ! 따라가 보아 드려예지 ! 아암, 내가 따라가 보아 드려예지 ! ”
 
513
하면서 일어나 나간다.
 
514
진주가 갈 결심을 한 것은 박씨부인의
 
515
‘……아니 가고 있다 이놈이 내 손에 죽는 꼴을 보던지 자량해 해라’
 
516
이 말을 듣고서였다 그전까지는 일왈 정신이 현혹하여 무얼 조리있이 생각해 보고 어쩌고 할 경황이 없었다. 그러다 그 말 끝에 문득 어둔 밤길에서 등불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머릿속에 화안히 떠오르는 것이
 
517
‘좌우간 가는 것이 옳겠다. 어떻게든지 해서 쫓고라야 말자는 노릇이니 갔다 성정이 갈앉기를 기다려 도로 오기로 하고 좌우간 가는 것이 옳겠다.’
 
518
는 이 생각이었었다. 마음이 진정된 표적이요, 아마도 어려운 일을 당하여 당황치 말고 침착하라던 친정할머니의 가르침의 덕택이었으리라. 만일 그 고패를 잘못 넘겼다면 그는 가마에 올라 친가로 가는 대신 미구하여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광의 대들보에 목을 매어 황천길을 가고 말았기가 십상이었을 것이다.
 
519
마당으로 내려서는 가마 뒤에다 대고 박씨부인이 마지막 말을 이른다.
 
520
“세간은, 옷이랑 네가 가지구 온 걸 따루 다아 참겨서 실려 보낼 테니 그리 알구…… 그리구 행여 참 도루 온다고 올세라 ? 그런 생의는 허지두 말아야지 ! 이 집 문전에 다시 들여세울 바이면 애당초에 이렇게 보내구 헐내드냐 ? ”
 
521
어느 겨를에 빠져나왔는지 삼월이가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 교군 채장을 부여잡고 늘어져
 
522
“새아씨이 어떡허세유우 ! ”
 
523
하고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524
진주는 그 또한 창연한 심사를 돕는 것이었으나 강잉하여 흔연히
 
525
“울지 마아 ! 내가 어디 영영 가드냐 ? ”
 
526
“그래두유우 ! 새아씨이 ! ”
 
527
“걱정 말구, 나 없는 새 마나님 뫼시구 새서방님 시중 잘 들어 드리구 해! 병환두 나시구 허섰으니 응 ? ”
 
528
“내애 ! ”
 
529
“그리구, 저녁이구 낼 아침이구 조용헌 틈 타서 이 말씀 이쭤라. 갔다수이 도루 오겠읍니다구. 아무 걱정 허실라 마시구 몸조섭 훨씬 허시다 기운차리시거든 학교랑 글방이랑 부지런히 댕기시라구……”
 
530
“내애 ! ”
 
531
“네가 촉량해서 밤참 잡수실 것 장만해 뒀다 글 읽구 돌아오시거든 찾으시기 전에 가져다 드리게 허구 ? ”
 
532
“내애 ! ”
 
533
“오오 참 ! ……약 ! ……”
 
534
그럴 때 마침 약방의 하인이 약을 가지고 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535
“아마 너 오길 기대리시다, 댁 하인 시켜 보내섰나보다. 얼른 가 한첩 먼점 댈여 드려 ? ”
 
536
“내애 ! …… 새아씨 정말 오시지유 ? ”
 
537
“그래 ! ”
 
538
“언제유 ? ”
 
539
“한 며칠 있다……”
 
540
그다지 큰부자는 아니었을망정 팔패 교군에 호피 덮어 타고 견마성 소리 높이 울리면서 시집 온 진주였었다. 그런지 겨우 여섯 달 만에 그는 이 낡아빠진 두패 교군에 실린 바 되어 친정으로 쫓기어 가고 있었다. 친청에로의 초졸한 길은 곧 운명 미지의 길로 통하는 길인 것도 알 바가 없이……
 
541
며느리를 쫓고 나서 박씨부인은……
 
542
교군이 차면 밖으로 건듯 돌아나가고 보이지 않자 난데없이
 
543
‘아뿔싸 ! ’
 
544
하는 후회가 나면서 무단히 마음이 섭섭하였다.
 
545
‘이토록은 너무 과했지 ! ’
 
546
‘도로 불러들여 ? ’
 
547
‘부질없은 일을 저질렀어 ! ’
 
548
차차로 무엇인지 모를 불안한 생각이 일기 시작하였다. 통쾌하다거나 속시원하다거나 한 줄은 도무지 모르겠고, 음식 얹힌 식후처럼 가슴이 꺼림답답하였다. 넋을 놓고 앉았다 약방 하인이
 
549
“약 가지구 왔어워요 ! ”
 
550
하여서야 정신이 들었다.
 
551
“세 첩을 연거퍼 댈여 잡숫두룩 헙시사구요 ! ”
 
552
“오냐 ! ”
 
553
“이 약 쓰시면 첸 내리실 텐깐 쓰시구 나서 동정 보아 기별허시면 다른 약 또 지어 드리겠읍니다구요 ! ”
 
554
“오냐 ! 애썼다 ! ”
 
555
박씨부인은 준호의 병이 체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마음 가운데나마 아무런 미심이 이는 줄을 모르겠었다.
 
556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박씨부인은 무심코 돌려다보았다. 준호가 비상을 탔다던 소위 사약보시기를 집어다 마셔버리고는 마악 엎드리던 참이었었다.
 
557
박씨부인은 놀라지도 당황하여 하지도 않고 도리어 눈을 흘기면서 끌끌 혀를 찬다.
 
558
“어머니 ! ……”
 
559
처량히 한번 부르고 준호는 설움이 복받쳐 흑흑 느껴 운다.
【원문】오기로만 마련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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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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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의 일생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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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