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가극의 이야기 ◈
◇ 가극의 기원과 그 발달 ◇
카탈로그   목차 (총 : 2권)     이전 2권 ▶마지막
1923년 1월~
홍난파
1
가극의 이야기
 
2
2. 가극의 기원과 그 발달
 
3
『개벽』 1923년 2월호
 
 
4
전월(前月)에 가극이란 대체로 어떠한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가극의 기원과 그 발달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려 합니다.
 
5
본시 인간이란 것은 감정 동물이 된 이상에는 무엇이든지 느낌이 있는 때는 울고도 싶고, 웃고도 싶고, 또는 노래하고도 싶고 춤추고도 싶을 것이외다. 이것은, 곧 인간의 본능인 동시에 가극이란 인간 본능의 성(聲)이라고도 할 것이외다.
 
6
현대인의 엄중한 해석 하에서 볼진데, 가극이라 할는지 아니 할는지는 의문이지마는, 여하간 왕성(往昔) 희랍의 음악이란 것은 시가(詩歌)와 음악과 무도의 총괄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가사를 작(作)하고 창(唱)하고, 또는 무용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희랍의 음악은, 곧 원시적 가극이라고 할 것이외다. 또 중세에도 신비극 중에 음악을 가한 일이 있었지마는 그 방법이 화합(化合)이 아니오 혼합이었던 까닭에 극의 효과를 조(助)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파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외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이르러서 문예부흥 운동이 일어남에 온갖 학문과 예술이 개조되려 할 즈음에 음악도 역시 희랍시대로 복귀하여 고전적 정신 하에 순일(純一)한 융합물을 작출(作出)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여사(如斯)히 하여 음악 혁신의 제 1성(聲)은 이태리에서 발발하였습니다.
 
7
이때의 신운동은 곧 “음악은 시가를 조(助)하는 것이 아니되면 아니된다“는 방침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사가 표현하는 정서를 음악이 조력하지 않으면 아니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8
가극은 실로 문예부흥의 화(花)이외다. ‘카치니’란 악인(樂人)은 합창을 부(咐)한 희랍의 비극을 연구하여 거기다가 중세의 신비극의 형식을 가미하여 가극에 근사한 것을 작출(作出)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일종의 영탄조를 편출(編出)한 것도 역시 이 사람이외다. 그때에 피렌체 시에는 ‘페리’라는 작곡가가 나서 ‘리느치니’란 사람의 가사에 의하여 ‘유리디체’라는 것을 작(作)한 후 그것에다가 비로소 ‘오페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때부터 비롯하여 다수인에게는 합창, 1인에게는 영탄조, 대화에는 선서조란 형식으로 처음으로 가극이 생긴 것이외다.
 
9
그 후에 가극 작가로 위대한 ‘몬트베르디’와 또 ‘스칼라티’라는 작곡가가 속출하여 드디어 17세기 경에는 정가극이 비상히 발달되어 금일에 현존되어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한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같이 하여 18세기에는 이태리가 가극의 패권을 장악하였으나 그때까지도 희가극이란 것은 그다지 발달되지 못하여 독립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다만 막간에 연출됨에 불과하였습니다.
 
10
그런데 가극이 이태리로부터 국외에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경의 독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불, 영 제국에 전포(傳布)되며 점차로 세계 공유의 물(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7세기 말의 독일에는 함부르크 등지에 가극이 성(盛)하여 무대 예술로서 미하(美花)를 피게 했으며 또 희가극의 유(類)도 접종하여 성행되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각 주는 자못 가극의 화미(華美)만 환영하고 선율의 기교만 중시했을 뿐이오, 대작이라 할 만한 것은 하나도 나지 안 했습니다.
 
11
그러나 17세기에 재(在)하여 가극 발달의 가장 현저한 현상은 영탄조의 출현이라 하겠습니다. 선서조가 비록 음악적이라 하지마는, 필경은 보통 대화의 조자(調子)와 상거(相距)가 멀지 아니한 까닭으로 진정한 음악적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에 영탄조가 출현하기 전의 가극의 발달사는 흡연(洽然)히 선서조 발달사의 관(觀)이 불무(不無)하였습니다.
 
12
말하자면 ‘글루크’ 이전의 음악은 그 형식상 아직 극적 변화를 표현하기 불가능하였으므로 연극과 밀접한 관계를 형작(形作)하기가 곤란했지마는 마침 ‘글루크’ 시대에 지(至)하여 ‘소나타’(후일에 악식이야기 할 때에 말하려 합니다) 악식이 생기게 되자 이 악식은 가극 상에 신 생명을 여(與)하여 그의 가극의 서곡은 총(總)히 단순한 소나타 형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3
독일에는 ‘렛싱’등의 국민 문학 운동이 일어난 후로부터 가극에도 1인의 대가가 출(出)하여 이태리풍의 화미한 음악을 기(棄)하고 전연히 면목을 일신(一新)하여 진정한 극적 표현을 가기에 노력했습니다.
 
14
그 2인이라 함은 ‘글루크’와 ‘모짜르트’이외다. ‘글루크’는 파리를 개신(改新)의 근성(根城)으로 하여 부화(浮華)한 이태리 악(樂)을 배척하는 일방으로 진실한, 순일한, 간소한 표정적의 가극을 일으켰으나 그의 대작(大作) ‘오일포이스’ 3막은 선율의 간소함과 선서조의 자연함으로 당시의 악단에 청신한 공기를 대취하였습니다. 그는 “음영의 색채를 조(助)함과 같이 음악은 시가를 조(助)하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하여 이 정신을 악곡상에 실현했습니다. 그리고 또 ‘모짜르트’는 ‘글루크’의 영향을 받아서 종래의 이태리식 가극에 비교하여 극적 내용을 많이 가진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글루크’와 같이 시가적이 아니오 우일층(又一層) 음악적이었습니다. ‘모짜르트’가 국민적 음악의 범위를 탈출하여 각국의 음악을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서 세계적 가극을 작성한 것은 실로 그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바이외다.
 
15
이의 애(愛)와 미(美)의 음악은 이윽고 독일 음악으로 하여금 ‘글루크’와 같은 자연적 형식을 실(失)하고 기교의 극단으로 주(走)하게 했습니다.
 
16
그 후 19세기 초에 독일에는 ‘베버’라는 악가(樂家)가 출(出)하여 당시의 로맨틱한 사상을 포용한 청신한 가극을 작(作)하였습니다. ‘베버’의 가극은 알기쉬운 재료를 택하여 열렬한 정감을 성(盛)하고 민요와 같은 선율과 역강(力强)한 악기의 힘으로 표현한 일종의 민중 가극이외다.
 
17
그러나 차등(此等)의 영향이 이태리에 입(入)하자 그것은 도리여 가공할 악결과를 양출(釀出)하였으니 ‘모짜르트’의 성악 형식의 발달은 이태리 가극 작자에게 대하여서는 창가자의 능력을 발양(發揚)케 할 만한 절호의 기회를 여(與)하였습니다. 이같이 하여 그들은 참가자에게 호감(好感)을 주기 위하여 그보다도 청중의 호감을 야인(惹人)하기 위하여 극으로서의 가극의 효과를 득(得)하기보다도 한갖 음악―특히 성악으로서의 효과를 수(收)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영탄조는 한갖 창법의 곤란함을 자랑하게 됨에 가극 전체는 성악의 대곡(大曲)을 수다히 연속해 놓았음에 불과한 감이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가자의 성(聲)의 체조가 되어버렸습니다. ‘롯시니’의 작품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같은 것은 그의 호례(好例)일 것이외다.
 
18
이 악풍조(惡風潮)는 이태리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비상히 세력을 점유했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짜르트’ 이후의 가극의 예술적 발달은 이태리에서나 얼마 동안은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불란서에는 이태리풍의 가극은 환영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극적 효과를 수득(收得)함에 노력하였으므로써 그 결과 롯시니 같은 작가로서도 그의 체불(滯佛) 중에는 이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극적 작품을 작출(作出)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
‘모짜르트’의 후계자를 불란서에서 찾으려 할진데 ‘케루삐니’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금일에는 거의 망실되었지마는 그 당시의 불란서 악단에는 유일의 거장이라고도 할 것이외다.
 
20
상술(上述)한 ‘베버’와 공히 초기의 ‘바그너’에게 대 영향을 준 이는 ‘마이어베어’라 할 수 있으니 그는 ‘롯시니’의 악풍을 계승하여 불란서풍의 대 가극을 완성한 악가이외다. 그는 일방으론 낭만주의의 정신을 체(體)하여 흥미있는 대사를 재료로 하는 동시에 타방(他方)으론 이태리 가극의 풍려(豐麗)한 악풍을 채(採)하여 성악에나 관현악에나 장차(將叉) ‘그랜드 오페라’의 형식적 요소되는 무용에나 종횡으로 그의 악재(樂才)를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악재를 과신하고, 또는 명(名)을 구하기에 급히 한 결과 그의 작품은 도연(徒然)히 영광적 합창이나 대규모의 무대면에만 용력(用力)했을 뿐이었습니다. 낭만주의의 정신과 이태리 가극의 형식이 양자의 불상용(不相容)하는 것이 표면적 타협을 수(遂)하여 그 과실로 획득한 것이 곧 ‘마이어베어’의 가극이라 할 것이외다.
 
21
상술한 바와 같이 구주 악단은 한갖 형식적 화미(華美)를 취하기에 급급히 지내었더니‘바그너’라는 대가가 출(出)함에 지(至)하여 독일은 전구악단(全歐樂壇)의 군사(君士)가 되었습니다.
 
 
22
3. 신악극의 창조와 현대의 가극
 
 
23
‘바그너’의 출생은 가극계에 일 신기원을 획(劃)하였습니다. 1813년에 가극의 혁명아 ‘바그너’가 탄생하자 그는 ‘글루크’와 ‘베버’의 2인의 행방을 합하여 가극을 그의 본능의 지위로 복귀케하여 최고 이상인 ‘미래 예술’을 창조코자 하였습니다. 그가 자기의 작품을 말할 때에 가극이라 하지 않고 ‘악극’, 곧 ‘뮤직 드라마’라 한 것은 의미심장한 말이외다. 그는 음악을 시가의 언더라인(underline)으로 사용코자 하였습니다. 즉, 근본을 가사(脚本)에 치(置)하고 음악을 그 보조 기관으로 사용코자 하였습니다.
 
24
그의 사고는 말하자 ‘글루크’의 정신에 기초를 두고 다시 근본적으로 신진(新眞)한 가극을 작출(作出)코저 함이외다. 다시 말하면 문예부흥의 정신 즉 희랍의 정신에 역상(逆上)하여 다시 한번 가극이란 것을 자연에 복귀케 하려 함이외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신화나 전설에서 재료를 구하여 극히 장대한 부대 예술을 건설하려 하였습니다.
 
25
이와 같은 생각으로 그는 악극 ‘트리스탄과 이솔떼’에 신양식의 조직을 시(試)하고 ‘니벨룽겐의 지환(指環)’에 지(至)하여서는 더욱 더욱 그 기색(旗色)을 선명히 한 것이외다. 그러나 공평한 눈으로 볼진데 ‘바그너’의 이상은 그 전부가 악극 중에 실현된 것은 아니외다. 그의 음악의 표현법은 물론 조직적이지마는 너무나 규칙적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26
‘바그너’ 자신은 당지(當地)의 공허한 음악을 지면상(地面上)에 부(附)하고 자연에 귀(歸)케 하여서 인생의 근본 정신과 심절(深切)한 교섭을 맺기에 힘썼지마는 그의 생명은 관현악에 용(用)한 ‘심포니’에 있고 시가에는 없습니다. 또 시가와 음악을 접촉시킨 그곳에도 있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가사를 근본으로 하고 거기에 음악을 부가(附加)하였지마는 그가 지은 바 가사는 시로서의 최고 가치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27
엄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신시대를 획(劃)한 인이라기 보다도, 차라리 19세기 중경(中頃)에 재(在)하여 로맨틱 악풍에 최후의 광명을 여(與)한 인(人)이라 함이 적당할 것이외다.
 
28
‘바그너’의 형향은 국내와 국외를 불문하고 그 세력이 지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사후에 독일에는 그를 모방하는 가극단이 작출(作出)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적(後跡)을 밟으면서도 오히려 독창적 재능을 발휘한 이는 그의 몰후(歿後)에 오직 시트라우스 1인이 있을 뿐이외다. 가극 〈살로메〉는 그의 대표작이라 하겠지요.
 
29
바그너의 가극 중에 유명한 것은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솔떼〉 등이 있고, 또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로서의 작품 중에는 베르디의 〈리고레토〉, 〈아이다〉와 구노의 〈파우스트〉와, 비제의 ‘카르멘’과 시트라우스의 〈살로메〉등이 가장 명고(名高)한 것이외다.
 
30
그 후의 작가들로 말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만치 제제다사(濟濟多士)입니다마는 가장 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위대한 악재를 가졌던 가극 사상에 빼어놓을 수 없는 작가만으로도 그 이름만 열거키에도 불황(不遑)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가극을 말하려 하면 반드시 하기(下記)한 3대가를 내어놓을 수 없으니 그들은, 곧 독창의 천지(天地)로 걸어다니면서 새로운 광휘(光輝)의 세계를 창조한 사람들이외다.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면 그 중에도 유명한 것은
 
 
31
드뷔시 작
32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33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34
시트라우스 작
35
〈살로메〉
36
〈엘렉트라〉
 
37
푸치니 작
38
〈라 보엠〉
39
〈토스카〉
40
〈호접(胡蝶)부인〉
 
 
41
대강 이와 같습니다. 지금 이 3대 악가의 작품에 대하여 일언(一言) 할진데 ‘드뷔시’의 음악은 전인(前人), 미개의 경역(境域)을 보(步)한 자니 그는 형식에 구속됨이 없이 전혀 인상적, 시가적의 특질을 유(有)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트라우스’는 ‘드뷔시’가 전연 독창적임에 반하여 그는 ‘바그너’의 후계자로서 자기의 천재를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혁명적인 동시에 ‘표제악(表題樂)’―(후일에 다시 말하려 합니다)―을 절정까지 발달시킨 공적은 특필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음에 ‘푸치니’의 가극은 드뷔시와 같이 내면적이 아니오, 또 시트라우스와 같이 자극적이 아니지마는 미려(美麗)한 신취(新趣)의 요소에 풍부한 점이 도리어 전자보다도 만인에게 환영됩니다. 그의 가극의 양식에는 별로이 신기할 것이 없지마는 그의 선율에는 독창적의 마력이 있고, 또 그는 극적 기분을 발휘하기에 극히 노력하였습니다.
 
42
이상에 거(擧)한 3인의 작가의 대작 7곡은 현대 세계의 걸작 가극이라 말할 수가 있으니 가극을 연구하는 인(人)이 우선 이7곡의 내용과 형식에 취하여 비교 연구하여 각 작가의 특징을 발견할진데 반드시 깨닫는 것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43
4. 가극 연구자를 위하여
 
 
44
그 다음에는 가극을 연구하는 인(人)을 위하여 일언(一言)하려 합니다. 가극 연구라 하면 자연히 2개의 방향으로 구별될 것이니 1은 제작, 즉 작곡, 작가(作歌)를 말함이요, 1은 상완(償翫), 즉 기성품의 음미를 의미함이외다. 그러나 나는 지금 후자에 취(就)하여서만 간단히 그 연구 방법을 말하려 합니다.
 
45
가극을 연구함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사상의 연구요, 둘째는 악곡의 연구요, 셋째는 무대의 연구이외다.가사상의 연구라 함은 대곡(大曲)이 어떠한 내용을 가졌는지 어떠한 가사로 구성되었는지 작자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노력 하였는지 이러한 것을 고찰하려면 불가불 가사를 해부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극의 서악이 어떠한지 독창과 합창의 경우에 어떠한 방식을 취하였는지 관현악의 조직이 어떠한지 이러한 방면의 연구는 직접으로 악곡 기물(基物)을 고찰해야 할 것이외다. 그 다음에 말할 것은 비록 동일한 악곡이라도 악보를 볼 때와 혼자서 구창(口唱)해 볼 때와 또는 무대상에서 연주됨을 들을 때는 비상히 상위(相違)되는 감을 깨닫는 것이외다. 두말 할 것 없이 무대가 훌륭할 때는 거기서 얻는 정취는 가극의 무대면을 보고 거기서 연출되는 제반 현상으로부터 심절(深切)한 인상을 얻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외다.
 
46
이러한 이유 하에서 볼진데 우리 나라에는 아직까지 가극다운 가극이 없었고, 또 가극을 연구하려 하여도 그 자료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현상이 이 후 몇 해 동안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음을 생각할 때에, 나는 가슴이 쓰리고 기분이 맥맥해짐을 느낄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무대에 대한 실지 연구는 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가극에 대한 예비지식으로 가극의 역사적 연구라든지 작가의 인물적 연구라든지, 또는 제타(諸他)의 자매 예술과의 관계만이라도 알아 둘 필요는 확실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47
마지막으로 나는 음악에 취미를 가진 독자를 위하여 가극 연구상에 필요한 서적을 말해 두고자 합니다.
 
 
48
가. 일반 음악에 관한 자
49
끄보르씨의 『음악 및 음악가 사전』 5권(英文[영문])
50
끄레빌씨의 “음악은 여하히 청(聽)할까?”(英文[영문])
51
전변상웅(田邊尙雄)씨의 『서양 음악 강화(講話)(日文[일문])
52
동의철적(東儀鐵笛)씨의 『음악 통해(通解)』(日文[일문])
53
소송보경(小松輔耕)씨의 『서양 음악의 지식』(日文[일문])
54
전전삼남(前田三男)씨의 『음악의 상식』(日文[일문])
 
55
나. 가극사 및 평론서
56
엘슨씨의 『가극사』(英文[영문])
57
엡솔프씨의 『과거 및 현재의 가극』(英文[영문])
58
낄만씨의 『근대 가극 별견(瞥見)』(英文[영문])
59
태전흑원웅(太田黑元雄)씨의 『가극대관(歌劇大觀)』(日文[일문])
60
시전환(柴田環 ; 現時[현시]의 三逋環[삼포환]여사)의 『세계의 오페라』(日文[일문])
61
낄만씨의 『명일(名日)의 음악』(英文[영문])
62
카―타씨의 『희곡 및 예술의 신 정신』(英文[영문])
 
 
63
내가 이 글을 쓰게된 이유는 전문가를 위함 보다도 ― (나도 역시 전문적 연구가 없지마는) ― 보통인에게 음악에 대한 상식을 보급케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필 가극 뿐이 아니겠지마는 제1 착수로 말하게 된 것이 지금이 “가극의 이야기”가 된 것이외다. 나는 될 수 있는데까지는 통속적으로 쓰려고 하였으나 급기야 써 놓고 보니 너무 번잡하고 전문적으로 치우친 듯한 감이 불무(不無)합니다. 또 이 글을 쓸 때에 소림애웅(小林愛雄)씨의 현대의 가극을 많이 참조 했음도 아울러 독자께 말씀해 둡니다.
 
 
64
다음 호부터는 “관현악의 이야기“를 시작할 예정임으로 가극에 대한 이야기는 이에 끝을 마치고 붓을 씻습니다. (1923년 1월 8일 夜[야])
【원문】가극의 기원과 그 발달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음악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33
- 전체 순위 : 1524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01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아스팔트
• (1) 합소문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가극의 이야기 [제목]
 
  홍난파(洪蘭坡) [저자]
 
  개벽(開闢) [출처]
 
  1923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음악평론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목차 (총 : 2권)     이전 2권 ▶마지막 한글 
◈ 가극의 이야기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