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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연(海燕) ◈
◇ 해연 2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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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
함세덕
1
海 燕[해연] (1막 2 장)
 
2
2장
 
 
3
익일(翌日) 새벽.
4
멀-리 항구에 전등불이 일제히 꺼지며, 자욱이 까라앉은 해무(海霧)를 허치구 동이 훤-히 터온다. 항구로 추수곡(秋收榖)을 실은 목선이 들어가나 보다. 어디서인지 서해안 사공들 고유한 애상의 뱃노래가 청승이 뚝뚝 떨게 들려온다. 세진, 스며드는 냉기에 무릎을 세우고 움크리고 앉어 깜작 거리는 등댓불을 바라보고 있다.
 
 
5
間 [간]
 
 
6
등댓불이 딱 꺼진다. 세진, 잠겼던 사념에서 소스라쳐 깨여 등대쪽을 바라본다. 윤첨지, 등대 안에서 나와 층대를 내려온다.
 
 
7
세   진   영감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8
윤 첨 지   얼마나 추웠냐?
 
9
세   진   괜찮었어요.
 
10
윤 첨 지   밤에 덮을 걸 좀 가주 나올랴구 했지만, 난리통에 깜박 잊어버렸드랬지, 그만.
 
11
세   진   매가 뭐냐? 그 기집애가 되려 심통을 피구 집을 벌걱 뒤집어 놨단다.
 
12
윤 첨 지   그 럼, 그 후 누나 또 매맞었어요?
 
13
세   진   아-니, 웨요?
 
14
윤 첨 지   누가 아냐? 오밤중에 나를 깨가지구 항구까지 건너다 달라구 생떼를 썼단다. 가긴 어딜 간다구 이러냐구 붙드니까 ' 윤첨지가 안 태다주면 나 혼자 젓구 갈 테야’ 하구 붴 문앞에 세워 둔 노를 들구 나갈랴구 하는구나, 글쎄. 아이구나 그 기집애가 그렇게 강때 신 줄은 꿈에두 몰랐었다.
 
15
세   진   그래, 어떻게 하셨어요?
 
16
윤 첨 지   내 힘으로야 말릴 수 있드냐? 그래 이번엔 쥔 어른 소원대로 아주 일러바쳤지.
 
17
세   진   그런데 웨 집을 나가겠다구 해요?
 
18
윤 첨 지   누가 아나? 항구에 가서 방직회살 들어가든지 정미소엘 가서 쌀을 끌르든지 해서 혼자 먹구 살겠다구 하니까.
 
19
세   진   가뜩 역정나신 아버질 더 역정나시게 했겠군요.
 
20
윤 첨 지   어젯밤엔 밤새 그 앨 붙들구 지나간 얘길 쭉 - 하시면서 우셨단다.
 
21
세   진   우셨어요?
 
22
윤 첨 지   그럼. '내가 몹쓸 짓을 하구 등대지기가 됐기 때문에, 모두 이런 일이 생겼다’구 하시면서 우셨단다. 사실은 모두 내가 입 빠른 소릴 한 탓이지.
 
23
세   진   영감님더러 나가라군 안 하셨어요?
 
24
윤 첨 지   글쎄, 날 보구두 '윤첨지, 용서하게’, '노엽게 생각 말게’ 하구 사괄 하시는구나.
 
 
25
집쪽에서 진숙, 올라와 급히 층대를 내려온다.
 
 
26
윤 첨 지   좀 잠이 드셨든?
 
27
진   숙   응, 불 때다 나왔으니 좀 들어가보우.
 
 
28
윤첨지, 집으로 내려간다.
 
 
29
진   숙   추웠지요?
 
30
세   진   괜찮어요. 잠이 안 와서 밤새 별만 멀뚱멀뚱 쳐다보구 있은걸요.
 
31
진   숙   (세진의 손을 끌어다 자기 뺌에다 대며) 손이 다 꽁꽁 얼었군요.
 
32
세   진   누나, 웨 집을 나간다구 야단을 폈어요?
 
33
진   숙   아버지가 무서워져서 그랬어요. 난 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운 죄를 지신 양반인 줄은 몰랐어요. 그렇지만 아버지 얘길 듣구 나니까 아버지가 여간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어요.
 
34
세   진   그렇게 착하구 어지신 양반이 어쩌다 그런 죄를 지셨대요?
 
35
진   숙   밤새 그 얘길 해주셨어요. 교장이래야 이름이 교장이지 생도가 모두 삼백 명밖에 안 되는 사립보통학교였어요. 기둥이 썩어서 쓰러지게 된 걸 어리목으루 사방을 간신히 버팅겨 놨었구 장마가 지면 비가 줄줄 샜대요. 그래두 학생이 자꾸 모여드니까 반을 늘려야겠는데 교주는 돈을 당최 내놓질 않었대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사방으루 돌아다니시면서 기부금이 아니라 동냥을 얻다시피해서 한 오천 원을 모으셨다나 봐요.
 
36
세   진   요새 부자들이란 공립학교엔 몇 만원씩 턱턱 기부해두 사립학교엔 어디 눈이나 거들떠들 보나요?
 
37
진   숙   공살 시작할랴면 아직두 삼천오백 원은 더 있어야 하겠기 때문에 그 돈은 우선 저금을 해두셨드랬대요. 사람이 죄를 질랴면 하늘이 시키시나 봐요. 그때 어머니가 나를 배신 채 복막염이 걸려서 입원을 하셨대요. 수술을 안 하면 모아가 다 죽는다는 바람에 입원은 시켜 놓셨지만 무슨 돈이 있으시겠어요? 그래서 기부금 중에서 삼백여 원을 당장 급하니까 쓰셨던 모양이에요. 얼마 후 어느 과부가 삼천오백 원을 기부해줘서 공사를 시작하게 되니까 아버진 쓰신 돈을 갚어 놓실랴구 사방으로 변통을 하셨지만 돈 나올 길은 한 군데두 없었대요. 그러든 참에 어느 친구가 인천가서 미두를 해보시라 구 자꾸 권하드래요. 첨엔 못 하겠다구 하셨지만 나중엔 허둥지둥 아버지 자신두 모르게 미두장엘 드나들게 되셨는데 사면 사는 족족 시세가 떨어져서 나머지 사천여 원을 다 잃구 마셨대요.
 
38
세   진   어머닌 그 후 어떻게 되셨나요?
 
39
진   숙   나를 나서 맽기구 어디루 가버리셨다나 봐요. 감옥을 나오시니까 문깐에서 교무주임으루 계시던 박선생이 갓난 나를 주시드래요. (조용히 울며) 나를 안으시구 아버진 몇 번 자살을 하실랴구 하셨지만 내 눈을 드려다보시면 차마 목숨을 끊으실 수가 없으셨대요. 그래서 나만은 길르시겠다구 달리 생각을 하시구, 해사과를 찾어가셔서 등대 인부 자릴 구하셨대요.
 
40
세   진   그럼 첨엔 주임은 아니셨겠군요.
 
41
진   숙   네. 삼 년 전에 오가무라란 일본 사람 주임이 간질병이 들려 저 뒤 범바우에 고갤 쳐박구 죽구 나서 아버지가 주임이 되셨지요.
 
42
세   진   어머닌 그저 살아계시긴 하겠지요?
 
43
진   숙   인천서 어느 의사하구 사신대요.
 
44
세   진   의사요?
 
45
진   숙   네. 올봄에 언젠가 월급 타러 해사과에 가셨다가 선창에서 먼 발채루 보셨대요.
 
 
46
이때 정적을 깨트리고 발동선이 섬을 향해 질주해오는 소래.
 
 
47
세   진   (일어서서 발동선을 바라보드니 돌연) 누나, 어머니가 오시는군요.
 
48
진   숙   (발돋음을 하고 기웃거리며) 어디요?
 
49
세   진   저 선장 뒤에 앉었다 섰다 하는 이가 어머니여요.
 
50
진   숙   걱정이 되셔서 앉두 서두 못 하시나 분데요. 어젯밤에두 얼마나 걱정들 하셨겠어요?
 
51
세   진   뭘요. 응? 아버지두 타셨는데요.
 
52
진   숙   배에서들 내리시기 전에 먼저 가서 뵈우세요. 또 어저께같이 야단을 치러 오셨으면 어떻게 해요?
 
53
세   진   괜찮어요.
 
54
진   숙   가보세요, 어서. 세진씨가 여기 오거든 돌려보내달라구 눈물을 흘리다시피 하시구 부탁하구 가셨는데 세진씨가 여기서 밤을 샌 걸 알어보세요? 얼마나 우리 아버질 원망하시겠나.
 
55
세   진   일은 벌어질 대루 다 벌어지구 말지 않었어요?
 
56
진   숙   고만 가보세요. 자꾸 이러시면 난 어떡하란 말이여요?
 
57
세   진   (결연히) 여기 있다가 아주 담판을 짓구 말겠어요.
 
58
진   숙   뭐라구요?
 
59
세   진   난 이때까지 우리들 사이가 형제앤가 그렇지 않으면 그 이외 건가 그걸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야단을 맞구서두 다수굿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어저께 난 확실히 형제애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60
진   숙   그러니 그 말을 어머니 아버지한테 하시겠단 말이예요?
 
61
세   진   털어놓구 얘기하겠어요.
 
62
진   숙   (당황히 제어하며) 안 돼요. 우린 언제까지든지 형제같이 지내기루 하지 않었어요, 웨?
 
63
세   진   설흔 살을 먹어두 누난 날 동생같이 귀여만 한단 말이예요?
 
64
진   숙   (적적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어요.
 
65
세   진   배가 닸어요. 누난 올라가 계셔요. 조금 있다 어머니하구 올라갈 테니까요.
 
 
66
오늘은 특별히 발동선이 직접 섬까지 와서 정지한다. 기적. 경종. 소요. 좌안(左岸)에서 안의사와 그의 부인, 급히 달려온다. 발동선 소래, 다시금 멀-리 사라진다.
 
 
67
세   진   어머니.
 
68
부   인   (달려가 그를 어린애처럼 안으며) 에구, 이 망할 녀석아! 이 섬구석엔 뭘 찾어 먹으러 온단 말이냐, 글쎄. (기쁨에 넘쳐울며) 그래두 살았으니 다행이다.
 
69
안 의 사   잠은 어데서 잤냐?
 
70
세   진   여기서 잤어요.
 
71
부   인   이 냉냉한데 무슨 귀신이 씨여서 집 두구 한 데서 자냐, 글쎄. 얼마나 집에서 난리가 난 줄 아니? 각 파출소루 전화를 한다, 사람을 풀어 인천 바닥을 다 찾어 댄긴다, 벌걱 뒤집혔었단다.
 
72
안 의 사   (그래도 반가움이 앞서) 찾었으니 다행이지.
 
73
부   인   너 아버진 배타구 오시면서두 '내 볼일은 다 봤다’구 입때 그러셨단다. (사이) 난 이 섬에두 네가 없다면 그땐 참말 물에 빠져죽어버리구 안 갈랴구 했었다. (운다)
 
74
세   진   웨 새벽부터 울구 이래요?
 
75
부   인   이 녀석아, 울지 않게 됐냐? 죽은 네 누나년이 이 에미 속을 푹푹 썩히드니 인젠 네 녀석이 대났냐?
 
76
세   진   어머니가 그랬을 땐 목을 매구 죽은 누난 얼마나 썩었겠어요? 누나가 죽은 것두 모두 어머니 아버지 때문이었지요.
 
77
부   인   나 때문이라구?
 
78
세   진   그럼요. 웨 싫다는 의사 자식한테 강제루 시집을 보낼랴구 했어요?
 
79
안 의 사   듣기 싫여, 이눔아. 넌 누나년만 알았지 애비 에민 몰르냐? 너희들이 다 잘난 체해두 제대루 된게 아니야.
 
80
부   인   아-니 당신은 웨 또 소릴 꽥꽥 질르구 이래요, 이러길?
 
81
안 의 사   당신이 너무 자식을 귀하게만 길러서 저것들이 어른을 우습게 안단 말이요.
 
82
부   인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구 한번 했으면 그만이지 겨우 찾어내니까 또 시작이요?
 
83
안 의 사   불량자가 아닌 담에야 이따위 짓을 할 리가 있어야지. 말끝마다 세옥이년을 끌어내기 일쑤구. 그러니 저놈 말은 지가 무슨 짓을 하든 애비에겐 참견 말라는 거야.
 
84
부   인   살살 얘기해요.
 
85
안 의 사   냉큼 집으루 못 가겠냐?
 
86
세   진   싫여요.
 
87
부   인   가자, 어서.
 
88
안 의 사   내가 매장포 덮구 들어왔다면 모를까 두 눈 뜨구 있는 이상 느이들 사일 그대루 보구 있을 순 없어.
 
89
부   인   (달래듯이) 어저께두 느이 반 아이들이 두 번이나 찾어 왔구 느이 담임선생님이 우정 오기까지 하셨드라. 아무 말두 없이학굘 달포씩 쉰다구 하시면서 병이 있으면 진단설 써서 휴학 원서를 써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퇴학을 시켜버린다구 하시드라. 그러니 어머니하구 집으루 가자, 응?
 
90
세   진   (모(母)의 손을 뿌리치며) 놓아요.
 
91
부   인   가자, 고집 피지 말구. 생난봉을 펴두 유만부득이지,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냐?
 
92
안 의 사   달랠 것 없이 끌구 가요. 내가 먼저 죽으면 죽었지, 졸업두 하기 전에 결혼시킬 순 없어.
 
93
세   진   누가 지금 결혼하겠대요?
 
94
안 의 사   그렇지 않으면 무어야?
 
95
세   진   나는 그 여자 못 보군 하루를 못 살게 됐어요. (부(父)의 말을 미리 막으며) 아버지가 오만 가지 도리를 끄내 놓셔두 소용 없소. 내가 실지루 그렇게 된 걸 어떻게 해요?
 
96
안 의 사   영웅이나 학자들의, 네맘 때 전기를 눈이 있거든 떠들어 봐, 이눔아. 학교서 선생님이 역사 시간에 얘기두 안 하시든? 네 맘 때 그 사람들이 시간과 정신을 어데다 썼냐?
 
97
부   인   삼십에 장가가는 사람두 디리쟁였는데 이 녀석아, 글쎄 열 일굽에 무슨 색씨 궁릴 그렇게 한단 말이냐?
 
98
세   진   죽은 누나에 대한 사랑이 모두 그 여자한테 쏠렸으니까 그렇지요.
 
99
부   인   그게 동에 가닿는 소리냐, 어디?
 
100
세   진   어머니마저 나를 괴롭게 굴면 나두 인젠 생각이 있어요.
 
101
부   인   (펄쩍 뛰며) 생각이라니?
 
102
세   진   이 근처는 아라사 군함하구 전쟁하든 데에요. 물이 우이 아래루 엇갈려 흘르기 때문에 해군들두 송장을 못건졌대요.
 
103
안 의 사   네가 누굴 위협하는 거냐?
 
104
부   인   이게 무슨 소리냐? 하나님이 주신 네 목숨을 네가 끊다니?
 
105
           (운다)
 
106
세   진   어머니! 내 성격이 웨 이렇게 됐는지 나두 몰라. 아무튼 뭐든지 트집을 잡을랴구만 하게 됐어. 그냥 죽긴 싫은가봐.
 
107
부   인   네가, 이 녀석아, 어떡해서 난 줄 아냐? '늙은이 노리개는 손주입니다. 저에게 손주를 주옵소서’하구 느 할아버지가 백일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주신 예물이야.
 
108
안 의 사   개살구 지레 꾀진다드니 똑 맞었군. 내가 저런 자식을 날 줄 누가 알았겠어? 싹순 다 틀렸어. 건너다보니 절턴 걸 뭐.
 
109
부   인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다시 세진에게) 그러니 넌 어떡했으면 좋겠냐?
 
110
세   진   우리들을 맘대루 놀게만 해주세요. 앞, 뒷집에서 같이 자라난 동무처럼두 좋구 일가 친척처럼두 좋구 형제같이두 좋아요.
 
111
부   인   그러면 죽지는 않을 테냐?
 
112
세   진   죽는 게 뭐에요? 그렇게만 되면 난 공부두 열심히 하구 밥두 잘 먹구 몸두 튼튼해질 텐데.
 
113
부   인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할 수야 있냐? 아주 약혼을 해버리지.
 
114
세   진   (감격하여) 어머니.
 
115
안 의 사   당신이 미쳤소?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요?
 
116
부   인   약혼을 해버립시다. 이녀석이 트집을 잡을랴구만 하게 됐다는데 또 제 누나년 같은 짓을 저질러놓면 어떻게 되겠소?
 
117
안 의 사   약혼이란 게 어떻게 중요한 일이라구 백줴 집안내력이나 형편두 보지 않고 해.
 
118
부   인   여자 아버진 예전에 교장까지 했다는 어른이구, 여간 점잖하시지 않드라구 어저께 와서 당신 입으루 그러지 않었소?
 
119
안 의 사   그건 그렇지만.
 
120
부   인   뱃속에 든 채 약혼시키는 부모들두 디리쟁였구, 열두살에 장가가서두 대과급제만 잘하는 사람두 쌨습디다.
 
121
안 의 사   해두 중학이나 마치구 나서면 몰를까, 지금은 할 수 없어.
 
122
부   인   아-니 지금 와서 또 무슨 딴소리요? 밤새 아버님이 뭐라십디까? 섬에 가서 있거든 아주 약혼을 해버리구 오라시지 않으셨소?
 
123
안 의 사   (난처한 표정)
 
124
부   인   세옥이 죽었을 때두 일주일이나 물 한 모금 안 자셨는데 또 이 녀석이 일만 저질러놔보우. 아버님은 당장 세상 떠나실거요. 그렇게 되면 우린 자식 잡어먹구, 부모한텐 불효하게 되구, 그게 뭐란 말이요? 그때처럼 또 신문에나 나보우 인젠 그눔의 병원두 다 해먹게 될 테니.
 
125
안 의 사   (말 없이 허공을 응시할 뿐)
 
126
부   인   어서 올라가서 그애 아버질 찾어뵙구 약혼을 하자구 하슈.
 
127
안 의 사   갈랴거던 당신이 가우. 난 그분한텐 두 번 다시 얼굴 쳐들구 못 가겠으니
 
 
128
이 때 이를 듣고 등대지기, 집에서 올라온다. 뒤따라 죽은 제비를 들고 눈물이 글성글성한 진숙.
 
 
129
세   진   어머니, 안성마침으루 이리 오시는군요. 뒤에 슨 여자가 바루 그 여자에요.
 
130
부   인   참 음전하게두 생겼다. 네 말마따나 꼭 죽은 네 누나 닮었구나.
 
131
세   진   이뿌지요?
 
132
부   인   (남편에게) 저만한 여자 며느리루 얻기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133
등대지기와 딸, 돌층대를 내려온다. 부인, 등대지기를 보자 돌연 얼굴이 창백해지며 경련한다. 등대지기도 자기착각이나 아닌가 하고 '설마’ 소릴 나즉이 중얼거리며 가까이 오다 정면으로 부인 앞에 서자 악연(愕然)하여 화석이 된 듯 땅만 내려다본다.
 
 
134
세   진   안녕히 주무셨어요?
 
135
안 의 사   안녕하셨습니까?
 
136
등대지기   네. (떨리는 소래로) 어떻게 또 오셨습니까?
 
137
안 의 사   뵈울 낯 없습니다.
 
 
138
(무거운 침묵)
139
등대지기, 생각난 듯이 땅을 판다. 두어 번 판 후 진숙에게,
 
 
140
등대지기   묻어라.
 
141
진   숙   (다시 한번 제비 미부(尾部)를 입에 대고 불어보드니 소생할 가망 없음을 알자 뺌에다 부빈 후 묻구서 손으로 흙을 덮는다. 세진과 그의 부모는 기이한 눈으로 보고 있을 뿐)
 
142
세   진   (진숙에게) 어떡하다 죽었어요?
 
143
진   숙   에미 제비 한 마리가 아침에 나간 채 저녁때까지 안 들어왔어요. 부엌문-을 열어 놔둬야 하는 걸 어저껜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깜박 잊어버리구 열어 놓질 않었드랬지요. 아침에 보니까 문 앞에 죽어 있겠지요. 밤새 머리루 문짝을 쫏다가 죽었나 봐요.
 
 
144
間 [간]
 
 
145
안 의 사   (처에게) 당신이 어서 말씀 여쭈.
 
146
부   인   (경악, 혼란, 가책, 고뇌 가운데 들릴락 말락한 소래로) 그냥 갑시다.
 
147
세   진   (모(母)에게) 어머니, 어데가 아프세요?
 
148
안 의 사   어디 기분이 나뿐 게 아니요? 별안간 얼골빛이 웨 이러우?
 
149
부   인   아이, 괜……괜찮어요.
 
150
안 의 사   이게 이녀석 어밉니다.
 
151
등대지기   그러셔요?!
 
152
안 의 사   어저껜 영감님께 힐책하는 소리를 하든 제 입으루 이런 말씀 여쭙는 건 참말 부끄럽습니다만…….
 
153
등대지기   (될 수 있는 대로 평정을 꾸미며) 말씀하십쇼.
 
154
안 의 사   사실은 이 녀석이 죽은 제 누날 생각하구 댁에 따님을 그리워 했었다구 합니다. 저……그래서……그렇다구……의남맬 삼을 수두 없구……그렇다구 그대루 가깝게 할 수두 없구…… 그러니 기왕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저…… 저…… 약혼을 하시면 어떨까요?
 
155
등대지기   (단호히) 못 합니다.
 
 
156
세진과 진숙, 원망스러운 눈으로 등대지기를 바라본다.
 
 
157
부   인   (부(父)에게) 그럼 가……갑시다. 할 수 없겠소.
 
158
안 의 사   물론 외따님을 내놓시는 거니까 여러 가지루 생각두 많으시겠지만 이 애들의 장래두 참작하셔서 다시 한번 생각 해보십쇼.
 
159
등대지기   나이루 봐서두 못할 뿐 아니라…….
 
160
안 의 사   물론 저두 그 말씀하실 줄은 알구 여쭌 겁니다.
 
161
등대지기   그것보다두 얘한텐 정식으루 약혼은 안 했지만 벌써부터 말해오던 사람이 있습니다.
 
162
진   숙   아버지, 경비선 기관수한테 난 안 가요.
 
163
등대지기   닥디려.
 
164
부   인   (등대지기와 부딪치려는 시선을 피하며) 정 그러시다니 할 수 없겠군요. 도루 가는 수밖에.
 
165
안 의 사   이럴 걸 왜 당신은 아까 내 말을 우겨댔소?
 
166
부   인   약혼한 사람이……있어 할 수 없다시는 걸……길-게 말씀 여쭈면 뭘 하우?
 
167
안 의 사   정식으로 하신 게 아니라 하시지 않어? (다시 등대지기에게) 따님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나 분데 억지루 시키시느니 보다 서루 믿구 의지하는 친한 사이를 키워주시는 게 좋지 않으실까요?
 
168
등대지기   자기들 하구 싶은 일을 하게 해주는 게 결국은 좋은 결과를 맺게 된다는 건 저두 몰르는 배 아닙니다. 비단 결혼만이 아니라 공부나 직업두 마찬가지겠지요.
 
169
안 의 사   그러신데 왜 허락을 안 하십니까?
 
170
등대지기   사실은 첨 학생이 섬에 왔을 때부터 나두 퍽 귀여워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과자란 누명을 지니구 있는 나로서는 서루 친척지간 맺기가 부끄럽습니다.
 
171
안 의 사   무슨 죄를 지셨기에요?
 
172
등대지기   학교신축 기부금을 쓰구 공금소비죄루 2년 복역을 했습니다.
 
 
173
부인, 화살이 가슴에 콕 콕 백히는 듯 고통(苦痛)한다.
 
 
174
안 의 사   정 그렇게 못 하시겠다면 할 수 없지요.
 
175
세   진   아버지 죄를 자식이 받을 리가 어데 있어요? 그것두 살인이나 강도라면 몰를까 처와 자식을 살리실랴다 지으신 과실이 아니에요?
 
176
등대지기   나 때문에 학생들이 백여 명이나 학교를 못 댄기는데 그게 과실만 되겠니?
 
177
세   진   그것이 죄라면 그 죄는 진숙 아버님과 진숙이 누날 버리구 도망간 그 여자가 받아야 할 꺼에요.
 
 
178
부인, 낙뢰(落雷)에 맞은 듯 미칠듯이 좌안(左岸)으로 달려간다.
 
 
179
안 의 사   (세진을 붙들고) 가자.
 
180
등대지기   학생, 아버님 모시구 집으루 가게. 약혼을 하면 결혼을 해야지. 어저께 명함을 뵈오니까 아버지께선 부협의원이시구 또 보통학교 후원회장이구 하시니 결혼식장엔 부윤도 올꺼구 각 학교 선생들두 올께 아닌가?
 
181
세   진   그럼 우리 아버지 체면이 손상될 꺼란 말씀이에요?
 
182
등대지기   물론이지. 그것보다두 내가 그 식장엘 못 가게 될꺼란 말일세. 내가 이 섬구석에 틀어백혀서 귀양살일 하는 것두 남한테 내 얼굴 두 번 다시 뵈구 싶지 않을랴구 하는 걸세. 그러니 내 입장두 잘 양해해 주게. 어머니께서 너머 걱정을 하셔서 몸이 편찮으신 듯하니 어서 모시구 돌아가게. (안의사에게) 그럼 난 실례하겠습니다.
 
 
183
등대지기, 뒤도 안 돌아보고 층대를 올라간다. 섬 뒤에서 발동선이 가까워오는 소래.
 
 
184
세   진   (따라 올라갈랴는 진숙을 붙들고) 누나.
 
185
진   숙   (조용히 뿌리치며) 그대루 가세요. 도저히 우린 같이 될 수 없는 숙명이 있나 보군요.
 
186
세   진   누나가 가라면 가지만 우린 어젯밤 그 머리카락이 썩지 않는 한 언제까지든지 끊어질 수 없어요.
 
187
진   숙   만나구 얘기하구 해야만 맛이겠어요. 서루 떨어져서 속으루 사랑 하는데야 누가 말리겠어요.
 
 
188
세진, 부(父)를 따라 좌안(左岸)으로 나간다. 부인, 잊어버린거나 있는 듯 당황히 다시 나오드니 진숙의 손을 꼭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189
부   인   잘 있어요.
 
190
진   숙   (솔직하게 애정을 받으며) 네. 안녕히 가세요.
 
 
191
부인, 뒤를 돌아다보며 좌안으로 나간다. 진숙, 일행의 나간 곳을 멀거니 바라보구 섰다가 층대로 올라간다. 철비(鐵扉) 앞에서 부(父)의 가슴에 얼굴을 묻구 조용히 운다.
 
 
192
등대지기   울지 마라.
 
193
진   숙   아버지, 난 세진이 못 만날 게 슬퍼서 그런 게 아니여요.
 
194
등대지기   그럼?
 
195
진   숙   아버지가 결혼식장에두 못 나가시게 된 게 슬퍼서 그래요.
 
196
등대지기   이때까지 너한테두 속여왔을라구. 내 과거를 누가 아는 사람이 있다든?
 
197
진   숙   그럼 왜 승낙을 해주시지 그러세요?
 
198
등대지기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단 말같이 식장에 못 가게 돼서 허락을 안 했겠느냐?
 
199
진   숙   그럼 왜…….
 
200
등대지기   (신음하는 듯 나즉이) 지금 왔든 이가 사실은 너를 난 어머니란다.
 
201
진   숙   어머니요?
 
202
등대지기   갈 때 네 손을 붙들구 부르르 떨지 않든? 그러니 세진이는 네 친동생이다.
 
203
진   숙   (부(父)의 가슴을 두드리며) 아버, 아버지, 아버지.
 
 
204
발동선의 출발의 기적 일성(一聲). 이어서 질주하는 '스크류 -’ 도는 소래. 양인(兩人), 말없이 배를 바라본다. 돌연 집쪽에서 사기 그릇이 깨지는듯 한 윤첨지의 떠드는 소래가 들려온다.
 
 
205
윤첨지의 소래   진숙아, 진숙아, 제비가 떠나나 부다. 내 말이 어떠냐? 오늘 바람이 자니까 떠나기엔 똑 졸 거라구 그러지 않든?
 
 
206
맑은 아침 햇빛 속에 제비들 한떼가 남쪽으로 떠난다.
 
 
207
윤 첨 지   (올라오며) 저 앞에서 셋째루 짝을 잃고 어리둥절하구 있는게 우리 에미 제비야. 그 뒤에 것이 새끼들이구.
 
 
208
양인(兩人), 제각기 비애와 괴롬을 품고 날아가는 제비떼를 따라 나란히 창공을 바라본다.
 
 
209
윤 첨 지   인젠 정말 겨울이 오나 부다.
 
 
210
- 막
 
 
211
(《조선일보》 연재 1940. 1. 30∼2. 9)
【원문】해연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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