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젊은 나그네 하나 수양버드나무에 기대서서 懷古[회고]에 잠겨 錦江[금강]과 ( )月城[( )월성]의 폐허를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나무껍질을 벗기고 노래를 쓴다.
5
泗沘水[사비수] 나리는 물에 석양이 빗길제, 버들꽃 달리는데 落花岩 [낙화암] 예란다. 모르는 兒孩[아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있는 나그네 창자를 끊노나. 落花岩[낙화암] 落花岩[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
6
七百年[칠백년] 나려오는 부여성 옛터에, 봄맞는 푸른풀 빛깔이 푸르다. 九重[구중]의 빛난 宮闕[궁궐]있든 터 어데며, 萬乘[만승]의 貴[귀]하신몸 가신 곳 몰라라. 落花岩[낙화암] 落花岩[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
7
깊은 밤 불길에 哭[곡]소래 나드니, 꽃같은 三千宮女[삼천궁녀] 물속에 든다. 님주신 비단치마 가슴에 안고서, 泗沘水[사비수] 깊은 물에 진단말가, 落花岩[낙화암] 落花岩[낙화암]에 왜 말이 없느냐.
9
幕[막] 뒤에서 합창소리 들려온다. (舞臺暗轉[무대암전])
12
義慈王[의자왕](御宇[어우] 二十年[이십년] 六月[육월]보름)
14
泗沘水[사비수](扶餘[부여]) 宮門[궁문] 밖.
16
義慈王[의자왕] 百濟[백제] 第三十一代王[제삼십일대왕]
17
王妃詩奈羅[왕비시나라] 新羅王[신라왕] 金春秋[김춘추]의 딸
24
興首[흥수] 內臣佐平[내신좌평](官職名[관직명])
27
任子[임자] 朝廷佐平[조정좌평](新羅[신라]와 內通[내통]하는 者[자])
28
未坤[미곤] 新羅金庾信[신라김유신]의 心僕[심복])
30
其他[기타] 侍臣[시신], 老侍女[노시녀], 어린 宮女[궁녀], 護衛兵[호위병], 羅卒[나졸], 獄司丁[옥사정]
31
宮[궁]의 후문인 玄武門[현무문]이 좌변에 있고 문 안으로 善美[선미]를 다한 御典[어전]과 후원이 보인다. 왕궁은 扶蘇山[부소산] 중턱에 있으므로 멀 ― 리 長安[장안]과 泗沘水[사비수](一名[일명] 白馬江[백마강])와 七白年[칠백년] 영화를 자랑하는 별궁 離闕[이궐], 寺刹[사찰], 亭樓等[정루등]이 一望[일망]에 보인다.
33
幕[막]이 오르면 悠暢[유창]한 풍악소리가 후원에서 성문으로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水門將[수문장] 성문에 파수를 보고있고 羅卒[나졸]로 변장한 未坤[미곤](신라 김유신의 머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들어온다.
34
守門將[수문장] 오늘 불노리에 장원할 궁녀는 누군듯 싶은가?
35
未坤[미곤] 自温臺[자온대]에서 말씀이오?
36
守門將[수문장] 그래. 삼천궁녀를 다 풀어 놓신다니 그중에서 누가 첫째를 할상 싶은가 맞춰봐.
37
未坤[미곤] 글쎄요. 詩奈羅[시나라] 마마께서 하실 것 같소.
39
未坤[미곤] 어째서요? 서라벌(新羅) 공주님이시라, 우리나라 아니셔서 그러시나요?
40
守門將[수문장] 태생은 그러시지만 상감마마께서 말갈과 손을 잡으시고 北界[북계] 삼시여 성을 내리치실 때 손수 빼앗어 오셨으니까 인제 그분은 우리나라 사람 되셨어.
41
未坤[미곤] 소인의 생각에 마마의 신라춤보다 잘 출 여자가 없을 것 같소.
42
守門將[수문장] 이놈 대역한 소리를 해도. 중전마마를 상감마마께서 며느님을 삼으시겠냐?
43
未坤[미곤] (놀라며) 며느님 이시라니요?
44
守門將[수문장] 오늘 불놀이 끝에 왜 歌舞會[가무회]를 베푸시는 줄 아냐? 마흔 한 분이나 되는 아드님 중에서도 그중 사랑하시는 동궁마마의 비전마마를 고르시려고 하시는거야.
46
守門將[수문장] 그뿐인가 월계관과 비단 백필을 하사하신다는 전교는 백제 만민이 다 알텐데 어찌 네놈만 모르느냐?
47
未坤[미곤] 그럼 전좌평 흥수대감의 딸 蓮姬[연희] 아씨일 줄 아오.
48
守門將[수문장] 옳다. 네 말이 맞었다.
49
未坤[미곤] 나으리 어떻소? 참 그많은 궁녀들 중에 아씨의 春鶯舞[춘앵무]와 노래와 얼굴을 따를 자가 누가 있겠오.
50
守門將[수문장] (비창한듯이) 그러나 틀렸어.
51
未坤[미곤] 틀리면 손톱에 장을 지지리다. 그렇지만 동궁마마께서는 연( )를 그중 사랑하신다 하지 않소.
52
守門將[수문장] 암만 그러셔도 상감마마께서 연희는 참석지를 못하게 하셨으니 어떻거니?
54
守門將[수문장] 이놈아 죄수의 딸을 며누님을 삼으시겠냐?
55
未坤[미곤] 아 ― 니 그럼 연희아씨도 궁중에서 내쫓기셨소?
57
未坤[미곤] 소인은 수일 전부터 신병으로 오래 누었었오.
58
守門將[수문장] 그런데 여섯달 전 일을 몰라? 네놈 하는 짓이 어째 수상하다. 바른대로 아뢰라. 네놈이 신라의 밀정이지?
59
未坤[미곤] (펄쩍 뛰며) 원 나리 농담을 하서도.
60
守門將[수문장] 밀정이 아니면 자객이냐?
61
未坤[미곤] 우슴이 소리라도 그러지 마오. 요새 신라에서 밀정과 자객이 많이 들어와 禁府[금부]에서는 눈이 벌겋게 방비망을 벌리고 있는데 바람결에 지금 그 소리가 검영부장께 들어가보오. 제 목은 제 손으로 버히어 쟁반에 받쳐 올리게 될거요.
62
守門將[수문장] 하하하… 네놈 꼴을 보아하니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도 잡을 것 같지 않구나 (돌연 가슴을 헤치며) 내가 상감마마를 모시고 신라 하미후 사십여성을 칠 때는 눈보라같이 날라오는 화살을 칼로 막으며 한 손으로 천병만마를 풀비듯… 쉬! 상감마마께서 거동하신다.
63
풍악소리 한층 더 유장해지며, 성내로 횃불 뒤에 대신, 궁녀, 호위병들을 거느리시고 王[왕]의 輦[연]이 나온다. 駕驕一行[가교일행]은 얼근히 취했다. 守門將[수문장], 未坤[미곤] 길가에 업드린다.
64
王[왕] (輦[연] 문을 여시고) 참 달도 밝다.
65
任子[임자] (輦門[연문]아래 읍조리며) 상감마마, 대가(大駕)를 잠시 머물게 하오리까?
66
王[왕] 고만두오. 좀 거닐며 바람을 쏘이고 싶으나 한시 바삐 가무(歌舞)를 보고 싶으니 그대로 가교를 재촉하오.
67
이때 詩奈羅[시나라]의 老侍女[노시녀], 급히 城[성]안에서 달려와 輦[연]아래 부복하고,
68
老侍女[노시녀] 상감마마, 큰일났습니다.
69
일동, 놀라 老侍女[노시녀]에게 시선이 쏠린다. 이때 任子[임자]와 未坤[미곤]시선이 마주쳐 의미있는 듯이 눈짓들을 한다.
71
老侍女[노시녀] 다름아니오라 소신이 중전 마마의 보선을 짓고 있었사옵는데 북악 아래서 길이 사슴만한 검둥개 한 마리가 성벽을 넘어오드니 月影池[월영지] 앞 지당으로 들어갔읍니다.
72
王[왕] (역정을 내시며) 또 그 怪兆[괴조] 소리냐? 들개가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갔기로서니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루부(鹵簿)까지 좇아와서 방정을 떠노?
73
老侍女[노시녀] 오늘 따라 일어난 해괴한 일이 아니오니 시나라 마마께서는 역사를 불러 곧 그곳을 파보라고 분부가 계시었읍니다.
74
王[왕] (웃으시며) 그래, 파보니 귀신이 나오더냐?
77
老侍女[노시녀] 예. 그리고 이상한 것은 그 등에 글이 씌어있었읍니다.
79
老侍女[노시녀] ‘百濟如滿月[백제여만월] 新羅如新月[신라여신월]’이란 열자가 먹물이 흐를듯이 씌어있었읍니다.
82
王[왕] 해괴한 일도 많다 (좌우를 돌아보시고) 경사에 이름난 日官[일관]이 누구냐.
83
任子[임자] 철왕사 앞에 사는 칠성녀라는 무당이 점을 잘 친다하오.
84
老侍女[노시녀] 마마, 때마침 그 일녀가 입궐하였기에 물어보았드니……
86
老侍女[노시녀] 만월은 앞으로 장차 이즈러질 것이온즉 그와 같이 우리나라는 이제가 영화의 절정이라 점점 국운이 기울어질 것이고……
87
王[왕] (눈썹이 빳빳해지시며) 무엇이?
88
老侍女[노시녀] 초생달은 점점 커질 것이오니 신라는 국운이 융성해질 것이라고 풉니다.
89
王[왕] (烈火[열화] 같이 노하시며) 그 일녀를 당장 묶어다 당장 죽여라. 요사스러운 소리를 하여도 유만부득이지.
90
羅卒[나졸], “예” 하고 宮中[궁중]으로 들어간다.
91
老侍女[노시녀] 상감마마, 그 일녀에게 죄가 없을 줄 아옵니다.
93
老侍女[노시녀] 상감마마, 그 일녀는 중전마마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일녀입니다.
94
王[왕] 시나라는 왠 미신을 그리 믿는고? 짐이 요사이 몇일 후궁엘 못 갔는데 중전께서는 병환이 좀 쾌차 하시더냐?
95
老侍女[노시녀] 네. 그러하오나 아까 그 거북을 보시고는 별안간 안색이 파래지시며 여간 불안해하시고 걱정에 싸이시지 않으셨읍니다.
97
老侍女[노시녀] 예, 사월 파일 밤에는 불국사 불탄제 생각을 하시고, 또 오월 단오날은 왕흥사 탑돌이(塔[탑]을 도는 것) 생각이 난다고 하시면서 밤새 우시었읍니다.
98
王[왕] 너 들어가서 곧 마마를 모시고 나오느라.
99
老侍女[노시녀] 예. (급히 성내로 들어간다.)
100
王[왕] 여보라, 너희들 중에 지금 그 글을 풀 자가 없나냐?
101
이때 未坤[미곤], 輦[연] 앞으로 나아가 이마를 조아린다. 從臣[종신]들, 일제히 미곤을 바라본다.
102
未坤[미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 글귀는 글자 그대로 백제는 인자하옵신 상감마마를 뫼시옵고 만월과 같이 평화하고 부(富)하되, 신라는 초생달 같이 백성이 가난하고 국세가 난약하다는 것으로 해석되나이다.
103
王[왕] (금시에 喜色滿面[희색만면]하며) 오, 그 옳은 해석이다. 지당한 말이다.
104
未坤[미곤] 공축무비로소이다 (물러 나온다) .
105
王[왕] (任子[임자]를 보고) 거 나졸로 두기 아까운 인재요, 후이상하오.
106
任子[임자] 상감마마 저것은 신이 머슴으로 한 십년째 부리는 자요.
108
詩奈羅[시나라](이십일세, 新羅王[신라왕] 金春秋[김춘추]의 公主[공주]), 老侍女[노시녀]를 데리고 나온다.
109
王[왕] 공주는 무삼 걱정을 하기에 안색이 저대도록 파리하오.
110
詩奈羅[시나라] 상감마마는 고연한 말씀을.
111
王[왕] 짐 생전에 공주의 웃는 얼굴을 보았으면 또 다시 한이 없겠오.
112
詩奈羅[시나라] 작년 이월엔 백고가 궁중에 들어와 좌평의 書案[서안]에 앉드니, 사월엔 태자궁에 닭과 참새가 교미를 하고, 민간에서는 生草津[생초진]에 십팔척되는 여자 송장이 떳느니, 西海濱[서해빈]에 고기를 먹고 백성이 백여명이 즉사를 했느니, 날로 들리는 소리가 불길한 소리 뿐이든 차에, 오날 또 이런 해괴한 일을 보오니 마음이 더욱 불안만 해지옵니다.
113
王[왕] 공주는 그보다도 고국의 국운이 신월과 같이 가난하다는 것을 걱정하고 그러는게 아니오?
114
詩奈羅[시나라] 천지신명께 맹서하되 그런게 아니옵니다.
115
王[왕] 그렇다면 다행이오, 자, 어서 수레에 오르오. 공주가 아즉도 쾌차치 않음므로 짐도 무리하야 동반키를 삼갔으나 아모리 생각해도 공주없이는 호젓해서 행행이 자미가 없소.
116
詩奈羅[시나라] 상감마마, 공주는 골치가 좀 아프니 오늘은 조섭코저 하옵니다.
117
王[왕] 또 그 고국생각이오? 벌써 여기 온지 사년이 되지 않았오. 문물세속도 이제는 낯익었을 듯 하니 아얘 그 생각만은 마오.
118
詩奈羅[시나라] 마마, 진정 골치가 아풉니다.
119
王[왕] 짐이 시나라의 속을 다 알매 오날은 특히 신라의 음식을 준비하고 신라에서 왔다는 악사를 청하야 공주의 그리운 풍악을 하도록 분부해두었오. 또 그뿐인가 가무에 참석할 여인 중엔 신라 태생들도 많을 것이니 완연 고국에 간거와 다름 없을거요.
120
詩奈羅[시나라] 상감마마, 내일은 大王浦[대왕포]에 선유가 있고, 모래는 또 大哉閣[대재각]에 꽃노리가 있지 아니하옵니까, 오늘은 신첩에게 자유를 주소서.
121
王[왕] 내 어이 공주없이 호올로 술을 들리오? 태자는 문사를 데리고 벌써 자온대서 기대리고 있을꺼요.
122
詩奈羅[시나라] (마음의 동요를 감추며) 태자께서?
123
王[왕] 그렇소. 배필될 여인이 짐의 눈에만 들면 무엇하겠오. 친모는 아니오되 어머니인 공주에게는 장차 며누리될 여자가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겠오?
124
詩奈羅[시나라] 그러면 대사는 언제 치르려 하시나이까?
125
王[왕] 오늘 칠월 칠석의 명절을 복하야 거행하려 하오. 隆[륭]도 제가 제눈으로 볼 織女[직녀]이니 부족함이 없을거요.
126
詩奈羅[시나라] 王[왕]의 부액을 받어 輦[연]에 오른다.
127
王[왕] 짐은 이제야 흩어진 마음이 가다듬어지오.
128
(輦門[연문]을 다시 열고) 효(孝) 뒤에 따르나냐?
129
孝[효] (輦[연] 앞으로 나오며) 네. (삼십오세쯤)
131
泰[태] (輦前[연전]으로 나오며) 네. (이십팔세쯤)
132
王[왕] 오늘 가무연엔 하나도 빠지지마렸다.
133
孝[효] 부왕마마. 동궁이 나이 스물이 가까오매 신은 외람되오나 내심 부왕께서 하로바삐 佳緣[가연]을 맺어주시옵기를 고대하였든 차였나이다.
134
王[왕] 孝[효]도 隆[륭]을 아우로 가진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겠지?
135
孝[효] 네. 어찌 신의 자랑에 그치겠나이까? 널리 백제의 자랑이오, 나아가 삼국의 자랑일 줄 믿나이다. 신의 아들 문사도 隆[륭]의 영향을 받어 지덕이 날로 겸비해 가나이다.
136
王[왕] 숙질간이되 짐은 그렇게 의좋은 사이를 일찍이 보고 들은 바가 없다. 문사가 한 스물만 먹어도 융을 보좌하고 능히 정사를 바르게 해 나갈거야.
137
泰[태] (저으기 불만하야) 신은 물러가겠나이다.
140
王[왕] 없는데 무슨 표정과 말투가 그러하냐?
141
泰[태] 신은 천성이라 고칠 길이 없나이다.
142
王[왕] (孝[효]를 보고도) 물러 가라.
143
孝[효]와 泰[태], 각자 자기 수레로 간다.
144
王[왕] (任子[임자]를 보고) 이십 팔년 동안을 두고 눈지켜 봤으되, 泰[태]에겐 호반(武)은 되었으나 백성을 다스릴만 한 어진 마음과 정치에 대한 식견이 없어.
146
(王[왕]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상감마마, 이제 생각하니 마마와 대군께서 모도 出闕[출궐]하시니 궁이 비지 않겠사옵니까?
147
王[왕] 거 참 하마트면 큰 실책할뻔 했오.
148
任子[임자] 황송하오나 신이 머물어 지키겠나이다.
149
王[왕] 부디 그리하오, 짐도 노경에 이르니 경이 없이는 정사를 해 나갈 길이 없게됐오.
151
王[왕] 쓸데없는 해괴한 일 때문에 고연히 시간만 지체됐다. 어서 가교를 재촉하라.
152
任子[임자] 상감마마, 아뢰올 말씀이 있오.
153
王[왕] 할말 있거든 두었다 내일 조회시에 하기로 하오.
154
任子[임자] 이제 생각하니 위급한 문제일줄 생각하오.
156
任子[임자] 오늘 일어난 괴조가 머지않아 항간에 들어가면 기대리고 있었다는 듯이 伊春[이춘]이 또 아까 그 일녀와 같은 소리를 하야 민심을 불안케 선동 시킬줄 아오.
157
王[왕] (한숨을 쉬시고 눈을 감으신다)
158
任子[임자] 조회 때도 아뢰웠사오되 털끝만한 괴이한 일만 생겨도 ‘이는 상감마마께서 정사를 돌보시지 않으심으로 하늘이 노하시여 나라를 멸망시키실려는 경종이라고 백성들을 모아놓고 떠든다하오니, 오늘밤이 지나면 또 국경으로 피란가는 백성들의 떼가 생길 줄 아오?
159
王[왕] 짐은 도모지 그 소리가 믿어지지 않소.
160
任子[임자] 신도 상감마마께서 부정하기에 누차 아뢰옵기를 삼갔사오나 하졸들을 시켜 탐정해 보온즉 거짓없는 사실이었나이다.
161
王[왕] 사실이라면 그대로 둘 수 있겠오.
162
任子[임자] 선동 뿐만 아니라 황공하게도 상감마마를 풍자하는 노래를 지어 고을마다 퍼처놓고 삼척동자까지 불온한 민요를 부른다하오. 그거는 고사하고 그의 제자가 수백이라 하오니 상감마마의 거동하신 틈을 타서 역모를 한다면 어찌하오리까?
163
王[왕] (한숨을 쉬시며) 이다지도 짐에게 덕이 없을고! 그럼 검군에게 명하야 그를 밤이 새기 전에 잡아 가두오, 내일 조회시에 짐이 손수 국문을 하겠오.
164
任子[임자] 엄령대로 곧 시행하겠나이다.
165
王[왕] 빨리 가교를 달리라, 이 동궁이 얼마나 기대릴고. (풍악소리와 함께 王[왕]의 루부 무대를 통과한다)
166
任子[임자] (守門將[수문장]을 보고) 禁軍[금군]에게 정좌평 伊春[이춘]을 잡으라시는 엄명을 전해라.
169
未坤[미곤] (주위를 둘러본 후 임자에게로 바싹 다가오며 가림없는 親知[친지]와 같은 소리로) 대감, 혼났오니다. 진땀이 나오.
170
任子[임자] 쉬 ― 이놈아, 누가 들을라.
171
未坤[미곤] 쥐도 새도 없오. 대감, 소인의 글 재주가 어떻소?
172
任子[임자] 비범하다. 그래 언제 왔니?
173
未坤[미곤] 오긴 오늘 새벽에 닿었으나 당최 대감을 뵈올 수가 있어야지요. 나졸 복색을 하고 문 앞을 빙빙돌다 수문장한테서 자온대에 가무연이있다기에 대감도 상감마마 모시고 이 문으로 나오실 줄 알었지요.
174
任子[임자] 그래 요새 지도는 무사히 전했냐?
175
未坤[미곤] 예. 그걸 가지고 관문 넘는데 십년 살 건 감해졌오.
176
任子[임자] 장군이 언약을 어길 분은 아니시겠지.
177
未坤[미곤] 원, 대감도 아, 그분이 누구시기에 한번하신 말씀을 이행치 않으시겠오.
178
任子[임자] 그렇지! 김유신이라면 바이 대장부 중에 대장부지.
179
未坤[미곤] 소인이 대감댁을 나와 신라로 간 후 이년간이나 그분의 머슴살이를 했오이다만은 백제에는 계백장군 빼놓고는 그 분만한 장명이 없오.
180
任子[임자] 나는 네 말만 태산같이 믿고 일을 해나간다만은 어째 만일이 두려웁다.
181
未坤[미곤] 대감은 십년동안이나 시중을 들든 소인을 이내껏 못 믿어하오? 土含山[토암산] 밑에다 臨海殿[임해전]같은 고루당을 열 채나 벌써 다 지어놨소. 절골 여기 대감댁에다 대겠오? 계집종만 수무명이오, 그뿐이오? 성사만 되면 왕에게 여짜와 김유신 장군과 똑같은 벼슬에 똑같은 국록으로 하사하시기로 내정이 다 됐오.
182
任子[임자] 그렇지만 거꾸로 만일 우리나라가 승전하야 김유신 장군이 捕虜[포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183
未坤[미곤] 그땐 장군말씀대로 장군이 여기와서 대감의 신세를 지셔야지요.
184
任子[임자] 그럼 큰일이지, 난 장군을 맞이할 아 ― 모 준비가 없는데.
185
未坤[미곤] 대감, 아예 꿈에라도 우리나라가 신라를 이기리라고는 생각지 마오. 신라왕께서도 우리나라 임금님 같이 밤낮 유흥으로 세월을 보내시는 줄 아오, 어림 없위다. 김춘추 대왕은 매일 새벽마다 皇龍寺[황룡사], 佛國寺[불국사]로 승전의 기도를 올리시오. 또 김유신장군은 일년을 두고 군선과 무기를 장만하셨고 밤을 새며 병사들의 훈련을 하셨오. 군사만 오만인데 거기다 당나라 원병이 십삼만이 올거라고 하니 뭘로 십팔만 군사를 당해내겠오.
186
任子[임자] 백제가 연합군을 물리치기란 일월이 바뀌지 않는 한 못바랄 일이야?
187
未坤[미곤] 대감 저기는 준비가 됐거니와 여기는 어떻게 됐오?
188
任子[임자] 중신들은 다 조정에서 몰아냈지만 내힘으루 좌우치 못할 사람이 아직도 한 사람 남었다.
191
未坤[미곤] 우리나라 조정을 자기 속 들여다보시듯 하고 계시오.
192
任子[임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든?
193
未坤[미곤] 대감, 염려마오. (소리를 한층 낮춰) 나를 따라 자객이 세 사람 들어왔오.
195
未坤[미곤] 신라에서는 계백장군을 그중 무서워하오.
196
任子[임자] (주머니에서 封書[봉서]를 끄내주며) 지금 말한 여러가지 얘기는 여기 적혔으니 빨리 장군께 전해라.
197
未坤[미곤] (封書[봉서]를 저고리 섶을 뜯고 넣은 후) 정말 칠월 칠석을 기하여 요전 그 지도대로 진군을 해도 관치 않겠오?
200
守門將[수문장] 대감나으리, 나졸에게 무슨 상을 나리시었읍니까?
201
任子[임자] 兵部[병부]에게 말 한필을 주라고 편지를 써주었다. (任子[임자]는 성내로 未坤[미곤]은 좌변으로 퇴장. 주위 차츰 달빛에 밝어온다. 守門將[수문장], 伊春[이춘]을 잡으라는 告示板[고시판]을 성문 앞에 세우고 돌을 들어 박는다. 가까이서 처량한 피리소리 들린다. 守門將[수문장] 슬픈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다가 소리나는 곳을 바라본다)
202
守門將[수문장] (돌연 낭패하며) 이 우짠 일일고, 어느새 가무연이 파했을 리가 없는데 동궁마마께서 왜 이리오실가?
203
이윽고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초롱을 들고 文思[문사](십육세)는 피리를 불며 太子[태자] 隆[륭](이십세)는 좌변에서 나온다. 守門將[수문장], 길채에 부복한다.
204
文思[문사] (피리를 끊이며) 숙부, 오늘밤은 이 성 궁 밖에서 밝힙니다.
205
守門將[수문장] (고개를 들고) 황송하오나 소인은 마마께서 자온대에 행행하셨다고 상감마마의 부르심에 대답하였나이다.
206
隆[륭] 가다가 옥에 계신 좌평대감을 생각하니 참례할 맘은 커녕 부왕마마가 더한층 원망스러워졌다.
207
守門將[수문장] 마마, 소인의 목은 어찌하오리까?
208
隆[륭] 나라의 주석이 될 만한 충신의 목이면 모르되 그 잘난 목을 버혀다 무엇에다 쓰시랴.
209
(侍女[시녀]를 보고) 애들아, 너희들도 밤낮 나를 부액하기에 얼마나 고달프겠니. 여기는 궁밖이니 예절 다 집어치우고 迎月臺[영월대] 달구경이나 하고 쉬자.
210
槿香[근향],槿召奴[근소노] 마마, 망극하오이다.
211
隆[륭] 문사야, 우리 오래간만에 성문에 올라가볼까? (隆[륭], 文思[문사] 城門[성문]에 올라간다)
212
文思[문사] (城門[성문] 우에서) 숙부, 영월대에 달이 솟되 ( )月臺[( )월대]에는 어둠이 짙지 않소, 국운이 저와 같어 영화 후에는 반드시 멸망이 있을 줄 아오.
213
隆[륭] 그 소릴 들으니 더한층 옥중에 계신 선생이 그리워 지는구나.
214
文思[문사] 숙부가 國仙[국선]으로 계실때는 달 밝은 밤이면 선생이 가끔 우리를 더리시고 이 북문 밖에 나와 사자성의 예찬도, 왕자와 왕손의 길도, 정치 역사 천문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밤이 지새도록 들려주시지 않으셨오.
215
隆[륭] 어언간 옥으로 가신 지가 반년이 지났구나.
216
文思[문사] 조왕마마께서는 대체 무엇 때문에 선생을 하옥 하시는거요.
217
隆[륭] 옳은 말씀 여쭙는 것이 귀찮다는 것 뿐이지 뭐야.
218
文思[문사] 단지 그것 뿐으로 하늘이 몇백년만에 한번씩 나리시는 대정치가 대학자를 어의대로 가두시는거요?
219
隆[륭] 전 좌평 成忠[성충]은 안그러셨니. 옥중에서 쇠잔해 돌아가셨는데도 남겨놓으신 유서도 부왕께서는 안읽으셨어.
220
文思[문사] 그분도 돌아가신지 벌써 삼년이 됐군요.
221
隆[륭] 오늘이 몇일이지? (城下[성하]를 내려보며)
223
隆[륭] 어쩐지! (달을 한참 바라보고 있드니) 저달은 고금으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뜯어주었어. 오늘밤도 불노리가 더한층 흥이 나시겠다. 나는 왜 그런지 달만보면 그냥 혼자서 목놓고 울고만 싶드라.
224
槿召奴[근소노] 마마, 고만 入殿[입전]하셨으면 좋을까 하나이다. (멀 ― 리 皐蘭寺[고란사]의 夜鐘[야종]소리 은은이 들려온다. 一同沈默[일동침묵]) .
225
隆[륭] (호소한다) 상서러운 달아, 무한과 변화를 자랑하는 달아, 너의 빛을 머금은 우리나라는 너와 같이 태평하고 ( )稷[( )직]이 무궁해야 하겠다만 나라는 어즈러운지 이미 오래라. 백성이 도탄에 울고 부왕과 백관들이 정사를 잊었으니 오! 철월 이일을 어쩌면 좋으랴.
226
槿香[근향] (울며) 마마께옵서는 이렇게 국사에 옥흉을 태우시는데 어째서 상감마마께옵서 밤낮으로 연유만 베푸시오는지.
227
文思[문사] 숙부, 너머 애태우지 마오.
228
隆[륭] 웨 허구많은 사람들을 다 두고 태자로 태여났을까?
230
隆[륭] 궁중에 있으면 모두 그냥 부셔버리구만 싶고 부왕과 백신들의 얼굴만 대해도 신물이 도니 차라리 誠丹[성단]이 그린 王興寺[왕흥사] 벽화같이 사지가 굳어지기나 했으면 좋겠다.
231
槿召奴[근소노] 만승의 귀하옵신 몸이 어즈러우신 정국을 가지시고 애통하시는 모양 저희들은 참으로 뼈가 저리나이다.
232
隆[륭] 오늘같은 날 蓮姬[연희]라도 있어 내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었으면.
234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조용히 운다
236
守門將[수문장] (고개를 들고) 동궁마마, 閉門鐘[폐문종]이옵니다. 고만, 환궁하심이 어떻하오리까?
237
佐平興首[좌평흥수]의 딸, 蓮姬[연희](십구세), 侍女 [시녀] 那美[나미]를 데리고 초연히 우변에서 나타난다.
239
槿香[근향] 연희언니 어떻게 여기를……
240
蓮姬[연희] 동궁마마께선 벌써 입내 하셨냐?
241
槿香[근향] (城[성]위를 가리키며) 저 ― 기
242
隆[륭] (蓮姬[연희]를 보고) 연희 (달려 내려온다) .
243
蓮姬[연희] 啞然[아연]하야 道上[도상]을 바라보드니 ‘동궁마마’ 한마디 들릴락 말락 부르더니 전신이 풀린듯 픽 쓰러진다. 一同[일동] 달려들어 붙든다.
244
隆[륭] 연희 정신차리오. 얘들아 물을,
245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宮[궁]으로 급히 들어간다.
246
隆[륭] 나미야, 이게 어찌된 일이냐?
247
那美[나미] 아씨는 밤을 드새이신지 오늘째 사흘이 되셨읍니다.
249
那美[나미] 동궁마마의 배필을 뽑으신다는 말을 들으신 후부터 오늘까지 물 한모금 아니 마시었읍니다.
250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물을 들고 나온다
251
隆[륭], 蓮姬[연희]에게 먹인다. 蓮姬[연희] 정신을 수습한다.
252
隆[륭] 그래 지금 어데서 오는 길이오.
253
蓮姬[연희] 마마 행맹이 없는 소인을 용서하옵소서.
255
蓮姬[연희] (隆[륭]의 품에서 벗어나오며) 네.
257
蓮姬[연희] 문지방에다 발을 찍되 안갈려고 하였사오나 풍악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매 안도 못하게 마음이 어즈러워 정신을 차리니 벌써 불노리터에 발이 닿었더이다.
258
隆[륭] 대장부 그대에게 한번 한 언약이 나라를 주기로서니 변할 것 같으오?
259
蓮姬[연희] 그렇지만 마마 그것은 안될 말씀이외다. 오늘 베푸심이 오로지 마마 한 분을 위하심이온데 주인공되시는 분께서 참석치 않으시면 상감마마께서 크게 노하실 것은 해를 봄과 같이 빤한 일이외다.
260
隆[륭] 내 아즉도 정신이 맑거늘 밤새 계집애들의 춤을 보고 어찌 사랑을 구하리오?
261
蓮姬[연희] 그렇지만 부왕마마의 하시는 일을 거역하실 길이 없지 않사옵니까. 일국의 대사이오니 깊이 생각하옵소서.
262
隆[륭] 나는 나의 뜻이 있으니 연희는 내 일에 걱정마오.
263
蓮姬[연희] 지금 자온대에서는 동궁마마를 뫼실 영광을 차지하고저 사해절색들이 춤과 인물을 다투고 있사외다.
264
隆[륭] (蓮姬[연희]를 안으며) 연희, 내마음은 연희와 백제강토 외엔 갈 바가 없오.
265
蓮姬[연희] (隆[륭]의 품에서 빠지려고 하며) 동궁마마 안 되옵니다. 안 되옵니다.
266
幕[막] 뒤에서 말발굽소리 들리더니 第二王子[제이왕자], 泰[태] 말에서 내려 右邊[우변]에 나타난다.
268
隆[륭] (泰[태]를 노려보며) 연희를 사랑하는 게 허물 되서 그러오?
270
隆[륭] 고요히 부드친 혼이 희비를 같이하고저 서로 사랑하는게 어째서 그르오.
271
泰[태] 나는 지금 동궁의 相思[상사] 강의를 들으러 오지 않았오. 시각이 급하니 어서 말을 타고 회장으로 가오.
274
隆[륭] 연유는 부왕께 즉접 아뢰겠오.
275
泰[태] 너머 만사를 임의대로 하지마시오. 엄부형 시하라는 말도 못들었오? 이유가 있거든 나와 같이 가서 아뢰든지 말든지 하오. 육좌평 이하 만조백관과 삼천궁녀가 부왕을 모시고 기대리고 있거늘 아우는 예절도 법의도 헤아리지 못하오?
276
隆[륭] 나는 그속에 끼어 한같이 태평의 꿈에 취해 황음이락하기 싫으니 부왕께서 벌하실진데 그 벌을 달게 받고저하오.
277
泰[태] 동궁은 자기 이야기만 하는구료. 부왕께서는 나를 보시고 성화같이 불러오라 하시니 아우 심부름에 내가 고달프오.
278
隆[륭] (心情[심정]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형님, 미안하오.
279
泰[태] (비웃으며) 깎듯이 형 대접을 하는구료. 그럼 난 부왕께 동궁의 말대로 아뢰겠오.
280
泰[태], 右邊[우변]으로 다시 나간다. 말발굽 소리 정적을 깨고 멀리 사라진다.
281
蓮姬[연희] 마마, 소인에겐 노벌중천하신 상감마마의 용안이 뵈옵니다.
282
隆[륭] 걱정마오 (긴 ― 한숨을 쉰 後[후]) 나라의 우아래가 얼마나 영화를 누리면 상궁내시들이 몸에다 금가루를 바르고 다니겠오? 자온대 목욕탕에서 흘러나오는 금만 모아도 삼천명 군사와 마필을 키우고 남을거요. 삼년 째 비가 아니 와 백성이 흉년에 우는데, 논에 대일 물을 모조리 이십리 밖에서 끌어다 연못에 대어 선유를 하시니 내 백성이 끊어지지 않은 이상 그곳을 어찌 가겠오.
283
蓮姬[연희] 마마는 장차 이나라의 임군이 되실 몸이외다. 버금왕자 마마께서 소인과 마마가 같이있삽드라고 아뢰이면 노하시는 나머지 태자의 자리를 형님께 들리실지 어이 알겠나이까?
284
隆[륭] 나는 그 잘난 태자를 벗어나 연희와 산간 초옥에 살게 된다면 춤을 추겠오.
285
蓮姬[연희] 마마, 안될 말씀이외다. 백제의 흥망성쇠가 오 ― 즉 마마의 양견에 있고 민심의 신뢰가 마마에게 달려있나이다. 천한 계집하나로 말미암아 일국의 대사를 헤아리지 않으셨다면 천추만세에 누명이 씻어지지 않을 줄 아옵니다. 원하오니 마마께서는 저를 잊어주시고 새로운 공주를 맞으시어 기울어지는 이 나라를 바로잡아 주옵소서.
286
隆[륭] 나는 연희없는 백제를 생각할 수 없오.
287
蓮姬[연희] 제 부친이 애매한 누명을 쓰고 옥중에 계시온데 소인마저 마마의 대의를 그르치시게 하였다면 설상가상으로 부친에게도 누명을 가하게 될 듯 하옵니다.
288
이때 성위에 섰는 文思[문사], 성문하를 내려다보고 외친다.
289
文思[문사] 숙부, 또 누가 잡혀가오.
290
일동, 文思[문사]의 가르치는 곳을 바라본다.
293
隆[륭] (守門將[수문장]을 보고) 너 혹시 모르겠니?
294
守門將[수문장] 보나 안 보나 예전 좌평 이춘 대감이신 줄 아뢰오.
295
隆[륭], 文思[문사] 무엇이, 이춘?
296
守門將[수문장] (告示板[고시판]을 가리키며) 신라 병정들이 쳐들어 올거라고 떠들고 단기시기 때문에 백성들이 겁을 집어먹고 벌써 고구려 국경으로 피난들 간다 하옵니다. 그래서 상감마마께서 잡아다 손소 국문을 하신다 하셨읍니다.
297
隆[륭] 나라를 걱정타 끝내 미치셨다드니 그럼 그게 정말이였구나.
298
槿召奴[근소노] 마마, 그뒤로 또 들것 하나가 이리로 향해오나이다.
300
文思[문사] 하로 안빠지고 충성이 지극한 분들이 원죄를 입고 옥으로 가니 장차 얼마나 무서운 끝장이올까.
301
蓮姬[연희] 마마, 분명코 부친의 들것인가 하나이다.
303
守門將[수문장] (기겁을 하야) 마마, 성문을 고만……
304
隆[륭] (격분에 떨며) 물러가라, 성문은 내가 지킬테니.
305
守門將[수문장] 질겁을 하고 城內[성내]로 들어간다. 蓮姬[연희] 右邊[우변]으로 달려간다. 文思[문사], 城[성]우에서 뛰어 내려온다. 이윽고 獄司丁[옥사정] 逆賊興首[역적흥수]라고 거적문에 大書[대서]한 들것을 들고나온다. 蓮姬[연희] 매달려 울며 다시 나온다. 隆[륭]과 文思[문사] ‘선생’하고 달려가 구멍으로 손을 넣어 興首[흥수]의 손을 잡는다.
306
隆[륭] (獄司丁[옥사정]을 보고) 어데로 모시는 길이냐.
307
獄司丁[옥사정] 젓사옵기 황송하오나 검부영감께서 오늘밤 삼경안으로 북악 밑 岩屈[암굴]로 옮겨 모시라는 분부가 계시었읍니다.
308
隆[륭] 북악 밑으로? 내 부를 때까지 물러가 있어라.
309
獄司丁[옥사정]들, 멈즛멈즛하고 망설인다.
310
隆[륭] (칼에다 손을 대며) 물러가지 못하겠냐?
311
獄司丁[옥사정]들, 右邊[우변]으로 나간다.
312
隆[륭] 선생, 이 떼여다 붙친 듯한 심줄, 살은 깎아낸 듯이 남았구료.
314
興首[흥수] 언제나 아름다우신 옥안을 배하와 공축무비 하오.
315
蓮姬[연희] 아버지, 시장하시지는 않으셔요?
316
興首[흥수] 부처가 찬 돌 우에 삼년을 보내셨으랴.
317
文思[문사] (주먹을 쥐고) 조왕께서 너무 횡폭하셔, 해도 너머 하신단 말이오. 이래서야 어디 충신열녀가 있겠오? 조왕마마 한분때문에 충성이 지극한 선비들의 눈물이 이땅에 얼마나 뿌려졌겠오.
318
隆[륭] (격분하야 全身[전신]을 떨며) 오날이야 말로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오. 선생이 애매한 원죄를 입고 이런 고난을 겪는데 내 홀로 도의와 충효만 찾겠오? 나는 부왕을 뵈오는대로 단판을 하겠오.
319
興首[흥수] 마마, 소홀히 태자의 길을 망각지 마오소서.
320
隆[륭] 태자가 다 뭐요? 그 잘난 태자때문에 내가 이리 눈물로 세상을 살지않소? 자식의 도리와 신하의 의무만 찾다가 칠백년 사직을 끊어논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오?
321
文思[문사] 그렇소, 조왕 한분으로 말미암아 천만생명이 도탄에 울고 종사가 위태해진 것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을 줄 아오.
322
隆[륭] (興首[흥수]의 포승을 끌르며) 이길로 향리에 내려가 시골에 숨은 지사들을 모아 이 위태한 국사를 구해주오, 서울엔 장군 계백이 있으니 아즉껏 염려는 없겠오.
323
興首[흥수] 마마, 포승은 상감마마의 지존하신 엄령이오니 풀지 마소서.
324
隆[륭] 지금은 그럴 수밖에 딴 도리가 없오. 나는 서울서 동지를 모아 옥문을 깨들고 원죄를 입은 충신들을 구하야 일거 간신배들을 조정에서 내몰아치겠오.
325
文思[문사] 선생, 시국이 급하오, 내일은 이춘을 국문하신 후 물론 사지를 車裂[차열]하실꺼요. 신라에선 사처에서 명장책사를 모아 싸울 준비를 톡톡히 하고 있는데 여기는 하루가 갈사록 인재가 물러가오.
326
興首[흥수] 살피건데 신라와 내통하는 자가 조정에 있는 듯 하오.
327
隆[륭] 부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으니, 난들 알면서도 할바가 없오.
328
興首[흥수] 오늘 옥을 옮기는 것도 동궁마마께서 가끔 옥에 오시는 것을 보고 행여 무슨 계책을 꾸미지 않나 두려워 가까이 왕래를 끊을려고 하는거요.
329
隆[륭] 그 옛날 선생이 좌평에 앉았을 때 부왕께서는 선생의 말이라면 사슴을 소라해도 곧이들으시어 선생의 깊은 造詣[조예]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훌륭한 정치에 백성은 부왕의 성덕을 찬송하드니……
330
이때 어린宮女[궁녀](15세) 하나 右邊[우변]에서 달려온다.
331
어린宮女[궁녀] 동궁마마, 큰일났나이다. 상감마마께서 연희 언니를 곧 잡아올리라는 엄령을 내리셨나이다. 벌써 검부에서 말을 타고 내달아 오나보외다.
333
어린宮女[궁녀] 소인은 그소릴 듣고 장막뒤로 빠져나왔오이다. 빨리 피신토록 하옵소서. (쏜살같이 宮內[궁내]로 사라진다.)
334
蓮姬[연희] 소인은 이렇게 될줄 벌써부터 알았소이다.
336
那美[나미],槿香[근향],槿召奴[근소노] 언니, 빨리 피신하오.
337
蓮姬[연희] 도망을 간들 백제 하늘 밑에 어데 숨을 곳이 있사오리까?
338
興首[흥수] 연희야, 너는 백성인 이상 아무리 어그러지신 일이되 상감마마의 명령을 거역지 말라.
340
興首[흥수] 그대로 게 있다가 나리시는 포승을 받어야 한다.
341
나졸 3, 4인 右邊[우변]에서 나온다.
342
興首[흥수] 상감마마께서 연희아씨를 잡아다 곧 루하에 대령시키라는 분부시옵니다.
343
隆[륭] 물러가라. 손대는 자는 버히리라.
344
興首[흥수] 마마, 황송하오나 연희는 성상의 적자요 아즉은 제딸이오.
348
興首[흥수] 마마, 그래서 충효가 지극히 어렵다는거요. 저는 죄가 있어 옥중에 반해를 보냈오? 다만 왕도를 받드신 성상을 바른 길로 인도하옵지 못한 것이 대죄지요.
349
蓮姬[연희] 나졸들에게 끌려간다. 城門[성문] 앞에서 발을 멈추고 돌아다보며
350
蓮姬[연희] 마마, 이몸 한몸 죽사오면 고만이오되 마마에게는 이 나라의 사직과 천만생령이 걸렸사옵니다. 부디 상감마마의 엄령을 준수하시와 그릇된 대계를 바로해 주옵소서. (울며 城內[성내]로 들어간다)
351
隆[륭] 충을 다할려면 효가 아니요, 효를 다하자니 사랑을 버려야 하니 이 무삼 죄많은 생일고. (멀 ― 리 풍악소리)
352
文思[문사] (一方[일방]을 응시하고 있다가) 자온대엔 불길이 하늘에 닿을 듯하오. 저놈의 풍악 소리가 끊이는 날 나라가 바로 될꺼요.
353
興首[흥수] 그렇소. 이제는 성상께서 마음을 예전으로 돌리시기 전에는 무슨 일도 소용이 없오.
354
隆[륭] 적이 오늘 쳐들어올지 내일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때 언제 마음이 돌아가시기를 기대리겠오?
355
興首[흥수] 기대릴 수밖에 별도리가 있오?
356
隆[륭] 그렇지만 마음을 바로 가지실 때를 기다린다는 건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기 기다리는 거와 같이 허사요.
357
興首[흥수] (날카롭게) 그렇다고 아들로서 어버이를 버리시겠오, 신으로서 성상을 보위에서 물러나십사고 역모하겠오?
358
隆[륭] (찔린 듯이 몸을 떤다. 다시 기운이 탁 풀리며) 선생, 그러니 난 어떻게 했으면 좋소?
359
興首[흥수] 들으실 때까지 옳은 길로 가시도록 간언할 수밖에 없오. 만일 동궁마마께서 젊으신 혈기에서 소홀히 왕자와 신으로의 길을 잊으신 언행을 하신다면 저는 마마의 스승되었든 것을 후회하겠오.
360
獄司丁[옥사정] 一[일], 二[이] 급히 뛰어 들어온다.
361
獄司丁一 [옥사정일] 저기 상감마마께서 거동하시옵니다.
362
獄司丁二 [옥사정이] 대감을 빨리 암굴로 모셔야 하겠읍니다.
363
興首[흥수] 물러가 있거라. (隆[륭]에게) 제가 마즈막 상감마마께 한번 더 간언해 보리다.
364
獄司丁[옥사정]들, 벌벌 떨며 下手[하수]에 없드린다.
365
興首[흥수] 동궁마마를 보시면 역정 나신 끝이시라 저는 돌보시지는 않으실 터이오니 마마께서는 성문 뒤에 은신하셨다가 저의 말씀을 아니 들으실때 나오셔서 한 말씀에 상감께서 반성하실 피를 짜는 듯한 말씀을 아뢰시오.
367
文思[문사]와 시녀들을 데리고 성내로 들어간다. 幕[막]뒤에서 ‘동궁아’ ‘동궁아’ 부르시는 王[왕]의 怒聲[노성]. 왕 나온다. 수레도 안타시고 孝[효]를 데리고 右邊[우변]에서 들것을 보고 발을 멈추신다.
368
興首[흥수] (왕께 절한 후) 대죄인 ( )수 빛나시는 용안을 배하오니 공축무비 하옵니다.
369
王[왕] (興首[흥수]의 수척한 모양을 보시니 본래가 인자하신 임군이시라 불시에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앞으로 가까이 오시며) 이 수척한 모양. 경이 짐을 못살게 굴지만 않은 들 뉘라 즐겨 현명한 경을 고생케 하겠오!
370
興首[흥수] 망극하옵신 성은을 무엇으로 갚사오리까!
371
(다시 절하고) 상감마마 소신이 옥중에 병을 얻어 노구 살 날이 머지않사오니 생전에 한번 더 아뢰옵고저 하옵니다.
373
興首[흥수] 태자궁 望海亭[망해정] 馬川城[마천성] 등 대역사에 백성이 지치었고, 國庫[국고]가 말랐사오며, 연거퍼 삼년간 흉년으로 창생이 기근에 울고 있사옵니다.
374
王[왕] (미간을 찌푸리시며) 또 그소리요?
375
興首[흥수] 이제 武器庫[무기고]에 무기가 없고 병력이 부족하오니 연유도로 고만 중지하시고 병사를 키워 적군을 막을 도리를 강구하셔야 하겠사옵니다. 지금 이대로 가실진데 선조가 묻히신 왕성을 보전할 길이 없사옵니다.
376
王[왕] 듣기 싫소, 그만두오. 그래 경은 끝까지 짐을 괴롭혀야 온전히 저승엘 가겠오?
377
興首[흥수] 상감마마 반드시 크게 후회하실 때가 올줄 아옵니다.
378
王[왕] 경은 나를 위협하는거요? 경이 이렇게 짐의 욕을 할진데 경의 딸이 어찌 짐의 속을 안썩히겠오.
379
興首[흥수] 딸에게 죄가 있을진데 손소 국문 하옵소서.
380
王[왕] 경이 하라고 안해도 지금 하러왔오.
381
孝[효]는 무안하야 말없이 섰을 뿐, 隆[륭] 당장 王[왕]에게 달려들듯 뛰어나온다.
383
興首[흥수] 동궁마마. (눈으로 삼가라고 말린다)
384
王[왕] 네 형의 말을 들으니 연회에 못올 이유는 나에게 즉접 말한다고 했다니 어데 말해봐라.
385
隆[륭] 신은 첫째 백성의 눈물과 피로 된 그 산해진미가 입에 맞지않고, 둘째 계집애들의 춤이 눈에 거슬리고, 셋째 불노리 연기내가 코에 비위상코, 넷째 초상집 곡같은 풍악소리에 귀가 아퍼서 못가겠읍니다.
386
王[왕] (열화 같이 노하시며) 뭐라고? 다시한번 말해봐라. 내 너의 그 혀줄기를 버혀 가마귀를 먹이리라.
388
隆[륭] 형님, 신라왕이 우리나라를 칠려고 唐[당] 황제 高宗[고종]에게 아들을 시켜 원군을 청케했다는 것은 형님도 잘 아실꺼요. 사직은 촛불같이 위태해가는데 부왕마마께서는 국방엔 조금도 뜻을 안두시고 궁녀들과 더불어 태평구가 속에 연유만 베푸시니 나마저 그틈에 끼어 퉁소를 불어야 옳단 말이오?
389
王[왕] 잘한다, 못하는 소리가 너는 없구나. 아비를 앞에 세워두고 그렇게 험담하는 놈을 나는 일찌기 들은 적이 없다.
390
文思[문사] (성내에서 나오며) 조왕마마 숙부의 하시는 일이 결코 불효가 아니옵니다.
391
王[왕] 오 나중엔 나어린 손주까지가 짐을 조롱하는구나.
392
文思[문사] 선생이 투옥당한 것이 애매한 거와 같이 숙부가 불효소리 듣는게 억울하옵니다. 앞으로 이 땅에 충신열녀가 날 수 없고 효자문이 세워질 수 없을 줄 아옵니다.
393
王[왕] 저애가 어데서 저런 대역한 소리를 배웠을고, 孝[효]야, 저 애를 빨리 데리고 들어가라.
394
孝[효], 文思[문사]를 데리고 성문로 들어간다.
395
王[왕] (興首[흥수]를 보고) 짐이 경을 믿고 섬기되 아들과 손주의 교육을 맡겼거늘 가리친 것이 고작 이꼴이요?
396
어린것들을 꾀여 계획적으로 짐에게 반항을 시켜야 옳단 말이요. 과히 경은 충신이요.
397
(獄司丁[옥사정] 들을 보고) 들것을 들고 이길로 고마머지현(無人村[무인촌])으로 가라.
398
隆[륭] 절망의 설움 속에 들 것을 붙들고 흐느껴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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