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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남한 산성(南漢山城)
최근 3개월 조회수 : 1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08.06. (최종: 2023.11.03. 17:34)) 
◈ 세계유산 남한산성 순례기 (상)
신라 주장성(晝長城) 초대형 기와 / 세계유산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4년(1626년)에 한양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전국 팔도에서 승려들을 동원해 만든 산성 도시로 국가사적 제57호이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성이 있었다. 남한산성의 둘레는 8km의 원성과 4km에 달하는 옹성과 외성을 포함하면 전체 12km에 달한다.
신라 주장성(晝長城) 초대형 기와
 
 
세계유산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4년(1626년)에 한양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전국 팔도에서 승려들을 동원해 만든 산성 도시로 국가사적 제57호이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성이 있었다. 남한산성의 둘레는 8km의 원성과 4km에 달하는 옹성과 외성을 포함하면 전체 12km에 달한다. 해발 500m로 높지만 산정에 항상 물이 풍부하고 방어하기 좋은 지형으로 이제까지 성을 한 번도 적에게 빼앗긴 적이 없는 신비한 산성으로 1757년에 나온 읍지 《여지조서》에는 이 성을 하늘이 만든 성 천작지성(天作之城)이라고 표현했다.
 
 
대한제국 경기 광주 수어장대(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건판 45)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하여 오전 9시 40분에 남한산성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할 친구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 장소가 제대로 전달이 안 돼 일부는 서울 남산으로 가고, 한 팀은 늦게 출발한다고 문자가 왔다. 친구들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어 새롭게 복원된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호)으로 올라갔다. 행궁 주변에는 42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었다.
 
 
남한산성 행궁 신라시대 기왓장 출토지
 
 
세월이 덧없이 지난 멋진 느티나무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담장 밑에 큰 유리로 된 안내판이 보였다. 그것은 신라시대 기장 출토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문화재 발굴 팀이 10여 년 전에 남한산성 행궁을 발굴하면서 대형 기왓장을 발견하고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고 유리 시설을 하여 원형을 보존한 것이었다.
 
 
남한산성 신라시대 기와 (사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남한산성 행궁 정비 계획은 1999년부터 10년간 토지주택 박물관이 8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행궁은 복원되었다. 2004년 4월 하궐지 앞마당의 토층 조사를 위하여 시굴 구덩이를 설치하고 땅을 파내려 가던 발굴조사단은 1m 깊이에서 놀랍게 통일신라시대의 기와를 발견했다. 당시 기와는 엄청나게 커서 기와를 조사했던 학자들은 기록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신라 문무왕대의 당나라와 싸우려고 성을 쌓은 주장성(晝長城) 무기고 관련 유구로 추정하였다. 이후 3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전모가 드러났는데 건물지는 길이 53.5m, 너비 18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건물지 주변에 많은 양의 기와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숯과 불에 탄 흙이 덮여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화재가 일어나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대로 땅 에 묻힌 것으로 보였다. 요즘 사찰에 사용되는 기와의 평균 무게는 3.75kg로, 2004년에 출토된 신라 기와 한 장의 무게가 무려 19kg는 엄청나게 무거운 기와였다. 당시 초대형 기와 350매의 출현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 상상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 실제로 나타났다.
 
필자는 1982년에 경기 오악(五岳)인 명산 감악산 근처에 있는 25사단 군법사로 근무했다. 장병들의 안식처가 될 사단 법당 호국비룡사을 창건하려고 봄에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내 봉선사 월운 조실 큰스님을 찾아뵙고 기와에 대하여 상담을 하였다.
 
"큰스님! 그간 청안하셨습니까? 이번에 25사단 법당을 신축하려고 찾아뵈었습니다.“
 
“기와는 어느 기와가 좋을까요?"
 
"그냥 살지! 법당 건립하는 것 생각보다 어려워!"
 
"지으려면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아! 깊이 생각해야 해!"
 
"그래도, 하고 싶은데요. 기와는 어떤 기와가 좋을까요?" 하고 다시 여쭈었다.
 
"봉선사 청풍루 기와는 의정부 은현기와에서 구웠는데, 지금은 수요가 없어 문을 닫았어!"
 
"왜! 기와를 생산하지 않나요?"
 
"요즘 절들마다 우리 전통기와 대신 가격이 싼 동기와를 선호해 손해가 무척 커!"
 
"사찰에서 기와 주문이 끊겨 사장이 사업을 그만두었지!“
 
“아마 봉선사 기와가 마지막 작업이었지."
 
"그러면 경상도 지방의 기와 공장에서 기와를 가져오면 안 되나요?"
 
"아래쪽 양산과 밀양기와도 좋은데 조금 약해“
 
“겨울 추위에 모두 견디지 못하고, 몇 년 못 가서 깨져버려 지붕에 물이 지“
 
“경기도 겨울 날씨가 무척 추운가요?”
 
“무척 추워, 법당의 물이 다 얼어버려”
 
"봉선사 기와도 아주 잘 깨져"
 
"그러면 어떻게 하죠?"
 
"은현기와 공장 사장을 찾아가서 통사정해야지 별 수 있나“
 
“기와를 다시 생산하자고 설득하고 싹싹 빌어야지!"
 
"그런데 문을 닫은 지 여러 해 되어 사장 설득하기가 무척 어려워“
 
“법당은 한옥이 좋을까요? 청풍루 법당처럼 시멘트로 하는 게 좋을까요?”
 
“한옥은 시간도, 돈도 많이 들어요. 포탄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고, 부대가 자주 이전하니 시멘트로 조성하면 좋겠네.”
 
“예! 큰 스님 말씀대로 실천하겠습니다.”
 
"큰스님! 제가 은현기와 사장을 찾아가서 꼭 설득시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다.
 
광릉 내의 봉선사를 나와 그 길로 바로 은현기와를 찾아갔다. 주소를 어렵게 찾아 도착한 은현기와는 의정부에서 동두천으로 가는 국도 중간에 위치한 덕정 검문소 부근에 논바닥에 있었다. 간판도 없고, 작업을 안 한 지 오래되어 주변에 황토도 없었다. 이후 10여 차례 은현기와 사장을 찾아가서 간곡하게 부탁을 드렸지만 은현기와 사장은 기와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지금은 일꾼들이 모두 떠나 어렵다고 귀찮아하셨다. 필자는 은현기와 사장님에게 "예전 선조들이 양주 회암사 대웅전의 천 년 기와를 만들었듯이 추위에 강한 단단한 옛 기와를 한 번만 생산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매달렸다. 하도 귀찮게 떼쓰고 간청하니까 은현기와 사장님은 "이제 내가 힘도 떨어지고, 기와 만드는 기술자들이 모두 떠나서 사람을 새로 구하기도 어렵고 작업이 정말 힘들어요. 그냥 포기하세요!" 하고 말을 했다. 필자는 서울로 출장을 나갈 때마다 담배와 과일을 사들고 공장 사장을 계속 찾아가서 간곡하게 부탁을 드렸다. 사장님은 가을이 지나서 "그럼 젊은 사람 소원 한 번 들어주지! 한 번 해보세"라고 말씀하셨다.
 
 
25사단 군법당 호국비룡사 건립에 도움을 준 공병대 장교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 덕정의 은현기와에서 대형기와 6,000장을 직접 생산하고, 서까래를 시멘트로 양생하여 하나씩 지붕에 올리고, 기와를 얹어 1983년 7월 31일에 25사단 비룡사 법당이 낙성되었다. 벌써 40년 전의 오래된 기억이다. 당시 은현기와는 경기도 북부 지역의 사찰 기와 수요가 줄어들어 어렵게 버티다가 끝내 폐업을 했다. 사찰 지붕마다 흙으로 구워 만든 멋진 기와를 올려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전통미를 살려주었는데, 사람들이 질기와가 겨울에 추워서 잘 깨지고 수명이 20년 정도로 짧고 번와를 할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생각 때문에 많은 사찰에서 전통기와가 천대받았다. 당시에는 멋스럽고 비싼 기와보다는 국적불명의 제품이지만 동기와 수명이 천 년 간다는 소문이 돌아 경망스럽기가 짝이 없는 일본식 구리기와를 선호했다. 그 결과 전국의 많은 기와 공장들이 동시에 모두 문을 닫고 제와(製瓦)기술자들이 모두 실직했다.
 
1960년대 플라스틱 바가지와 그릇이 출현하면서 항아리를 만드는 공장이 사라지고, 바다에 큰 옹기들을 싣고 제주도, 흑산도, 진도로 팔러 다니던 범선과 뱃사공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강을 오고 가던 나룻배도 육상도로가 생기고 다리가 연결되어 모두 사라졌다. 2015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뵈었던 故 신연호 옹은 27년간 옹기배(돛단배) 사공을 하면서 방문했던 항구와 에피소드를 필자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선생님은 강진 칠량면 봉황마을 출신으로 25세 때 옹기배 선장이 되어 서남해안을 누볐었다. 새벽녘 뱃전에 앉아 바람과 하늘을 느끼며 그날의 날씨를 예상했는데 거의 정확하게 맞았다고 하였다. 1960년에는 라디오가 나와서 일기예보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주파수가 약해 무용지물일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2009년에 청자 뱃길을 재현할 때 ‘온누비호’의 선장이었다.
 
고려청자 뱃길을 재현한 ‘온누비호’의 선장 故 신연호 옹(2015년 촬영)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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