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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남한 산성(南漢山城)
최근 3개월 조회수 : 1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08.06. (최종: 2023.11.03. 17:42)) 
◈ 세계유산 남한산성 순례 (하)
1980년대 의정부 덕정에서 어렵게 생산한 은현기와를 생각하면서 남한산성 초대형 기와를 구경했다. 통일신라시대 기와는 정말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는 대부분 길이 50cm 내외의 기와가 주를 이루지만 일부는 길이가 64cm가 넘는 대기와도 있었고, 무게가 20kg에 달하는 초대형 기와도 출토되었다.
신라 주장성(晝長城) 초대형 기와
 
 
1980년대 의정부 덕정에서 어렵게 생산한 은현기와를 생각하면서 남한산성 초대형 기와를 구경했다. 통일신라시대 기와는 정말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는 대부분 길이 50cm 내외의 기와가 주를 이루지만 일부는 길이가 64cm가 넘는 대기와도 있었고, 무게가 20kg에 달하는 초대형 기와도 출토되었다.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발굴 보고서에 의하면 이처럼 큰 기와를 만들려면 높이 1m가 넘는 대형 와통을 사용해야 하고 기와 성형을 위하여 와통을 한 번 감는 데 필요한 점토의 무게만도 120kg이 넘어 젊은 와공 3~4명이 동시에 작업을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기와 중에는 갑진년 말촌주(甲辰年 末村主), 천주(天主) 등과 같은 각종 명문을 새긴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고, 이곳에서 채취한 목탄 시료를 탄소 연대 측정한 결과 AD 600~900년이라는 정확한 수치를 얻었다. 전문가들은 인화문 토기편 등의 출토 유물로 볼 때 건물이 사용된 시기는 7세기 후반-10세기 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초대형 기와 발굴 (사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연합뉴스)
 
 
대형기와를 보고 난 후에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킬 때에 친구들이 나타났다. 천천히 대화하며 걸어서 오전 11시경 산성 수어장대에 올랐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9월 6일 79세에 심은 전나무 앞에서 사진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러나 머리는 온통 신라시대에 만든 초대형 기와 생각뿐이었다. 수어장대를 내려오면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과 친구들이 싸온 오곡밥, 육전, 나물, 빈대떡, 과일을 점심으로 먹으면서 기와 이야기를 꺼냈더니 믿지를 않아 다음에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산에서 먹는 밥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지난주에 함께 산행을 했던 박순로·김정숙 친구 부부가 수어장대에서 찍은 사진을 선물로 주었다. 수어장대 액자를 집에 도착하여 열어보니 사진 속에 인물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큰 액자를 벽에 걸어두고 매일 아침마다 코로나19 팬데믹(COVID-19) 마스크를 쓴 필자를 만난다.
 
동양 건축의 특징은 목조건물에 기와를 사용한 것이지만 확실한 기원은 아직 모른다. 중국 고문헌인 《고사고(古史考)》에는 “하(夏)나라 때 곤오(昆吾)씨가 기와를 처음 만들었다(夏時昆吾氏作瓦).”는 기록이 남아있다. 기와는 3,000년 전 중국 주나라 때 사용된 기와가 현재 가장 오래된 기와로 알려져 있고, 한반도에는 기원전 2세기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2017년 발행된 황룡사 연구총서 15권 <황룡사 중문 와전 및 철물 복원 고증 연구 >를 보았는데 황룡사 암기와의 크기는 37cm가 많고 34.8cm도 있었다. 필자는 이런 큰 기와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어 여행을 갔던 일본 나라의 동대사, 법륭사, 중국 시안 진시황 능, 닝보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하노이, 동경박물관의 사진을 모두 찾아봤다. 앨범과 사진들을 모두 꺼내놓고 조사를 했지만, 남한산성에서 출토된 대형 기와와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남한산성을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나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다가 2015년 7월 17일 아내와 함께 갔던 일본 나라현 동대사 대불전 뒤에 놓인 초대형 기와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 나라현 동대사는 일본 화엄종의 본산으로 백제와 신라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로 건축되었다. 《동대사요록, 東大寺要録》에 따르면 동대사의 전신은 금종사(金鐘寺, 긴슈지)로 금종사는 서기 733년 백제 스님 양변(良弁)이 세운 절이다. 752년 도다이지(東大寺) 개원식 때는 항해술이 뛰어나 신라배 7척에 사신들과 귀족, 상인 등 700여 명의 참배객이 배를 타고 방문했다. 도타이지 법당 내부에는 높이 16.2m 무게 452t 규모의 청동 비로자나불이 있고, 이 불상은 여러 번 화재로 다시 주조되고, 건물도 화재로 여러 번 소실되었다.
 
 
행기 대승정(行基 大僧正) (위치: 나라킨데스역 2번출구)
 
 
일본 나라(奈良)는 헤이안(교토) 이전의 헤이조쿄(平城京)의 수도로 신라의 경주와 아주 흡사하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큰 사찰과 신사가 많아 일본 전국에서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과 유럽 관광객이 항상 붐비는 도시이다. 필자는 일본의 오사카에서 긴테스 전철을 타고 한 시간 걸려 긴테스나라역에 도착하면 2번 출구로 올라가 제일 먼저 백제(百濟)계 승려인 교키 대승정(行基 大僧正, 행기 대승정, 668년-749년)에게 예를 올린다. 행기는 백제 근구수왕(近仇首王)의 명으로 진손왕(辰孫王, 356~ ?)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준 왕인박사 후손으로 항상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었다. 행기 스님은 전국을 다니면서 부랑자들을 거두고 글을 가르쳤다. 이런 민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막부는 행기 승려의 모든 일들을 알고는 포교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승려 행기는 억압에도 불구하고 선(善)을 행하여 합숙소이며 공동생활체인 수도원을 전국에 49개나 건립하여 민중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20년간 산림 수행을 한 뒤 민중을 교화시키려고 따르는 3,000여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일본 전국을 순행하면서 교량 건설, 제방공사, 도로 보수, 전답 개간, 항구 건설 등 민중을 위한 복리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에 더욱 놀란 야마토(大和) 정권은 행기 일행을 탄압하고 종교 활동을 금지시켰다. 행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중으로 더 파고들어 민중의 아픈 고통을 치유했다. 행기대승정이 전국을 다니면서 기록한 지도가 일본 최초의 지도이다. 쇼무 천황은 동대사 대불 비로자나불 조성에 필요한 공사비 조달할 목적으로 스님에게 권진(勸進)을 여러 차례 청했으나 절대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쇼무 천황의 간곡한 요청으로 행기 대사는 따르는 신도들에게 시주를 권하여 마침내 도다이지(東大寺) 대불 건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 행기 스님은 78세에 대승정에 임명된다. 동대사 대불전 위쪽에 행기 대승정을 모시는 행기당이 따로 건립되어 있다. 행기 대승정은 668년에 태어나 749년 82세로 입적할 때까지 중생구제에 앞장을 섰던 살아있는 보살로 찬양과 공경을 받아 나라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하철역 작은 분수대에는 일본 시민들이 행기 대승정에게 바치는 꽃이 항상 놓여있다. 고승(高僧) 행기보살상은 염주를 손에 잡고 가사를 수하고 민중의 평온을 기원하고 계신다. 필자는 시민들과 관광객이 제일 좋아하는 약속 장소에서 스님께 오래오래 인사를 드렸다. 백제계 교키(行基, 행기)스님의 원력으로 탄생한 동대사는 지금도 많은 참배객이 방문한다.
 
 
세계유산 도다이지(東大寺)대불
 
 
도다이지 대불전 건물은 1709년에 소실된 것을 3/1로 축소하여 다시 지었다. 대형 기와 사진을 찍은 장소는 대불전 내부를 참배하면서 돌아올 때 맨 뒤쪽에 있다. 대불전 기와와 치미는 유리 전시장 안에 있으며, 설명문에 정창원 창건 시 제작된 치미와 기와라고 적혀있다. 기와의 크기와 중량 표시가 없어 기와의 크기를 확인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거리가 멀어 5m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겨우 눈으로만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일본 동대사 기와 안내판 (사진: 동대사, 2015년 7월 17 촬영)
 
 
일본의 초기 기와 생산은 백제 와공(瓦工)의 지도로 시작되었다고 «일본서기»와 747년에 발간한 «元興寺伽藍緣起幷流記資財帳»에 기록이 나온다.
 
남한산성에서 출토된 초대형 신라기와는 언제 만든 기와일까 진짜 궁금하다. 백제 기와일까, 통일신라시대 기와일까?
 
 
남한산성 수어장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40년 전, 필자에게 의정부 은현기와 사장을 소개시켜주고, 전통기와를 다시 생산하게 해주신 봉선사 회주 월운(月雲, 1929년-2023년) 스님은 2023년 6월 16일 법랍 74년, 세수 95세로 봉선사에서 원적(圓寂)에 들어, 큰 스님의 높은 덕을 추모하며 봉선사를 참배했다. 송파둘레길(탄천길)을 산책하면서 남한산성의 오랜 역사를 돌아본다.
 
 
봉선사 청풍루에서 바라본 큰법당(글씨: 운허 큰스님)(사진 2023년 6월 18일 촬영)
 
 
*참고문헌
 
남서울대 중국학과 명예교수이신 김영환 교수님께서 고기와에 대한 참고문헌을 알려주셨습니다.
 
1.문헌
1) 神農氏 시기 출현 - 北周의 역사책 《周書》「神農作瓦器」
2) 夏나라 시기 출현 - 《禮記》〈檀弓〉「夏時昆吾作瓦」
3) 夏나라 시기 출현 - 《史記》〈龜箂傳〉「桀爲瓦室」
4) 夏나라 시기 출현 - (蜀)譙周, 《古史考》「夏世昆吾氏作屋瓦」
5) 夏나라 시기 출현 - (西晉)張華, 《博物志》「桀做瓦」
 
2,고고학
여러 군데 출토 - 시기는 대략 신석기시대 말기 (BC2500년 전~)
 
 
2023년 8월 6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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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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