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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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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338강 강의내용 요약 (24.1.11)
2024년 1월 4일
about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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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팔일편 # 사기 주본기
【학습】
(2024.01.13. 10:34) 
◈ 사마천 사기 338강 강의내용 요약 (24.1.11)
김영환 교수의 동양 고전 아카데미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일시 :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 5시40분 / 장소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 강사 : 남서울대 중국학과 김영환 교수 / 중화민국 국립대만대학 역사학대학원 (석사, 박사) / 대상 : 제한 없음 / 교재 : 무료제공 /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史記 1 (경인문화사, 2013)
2024년 1월 11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唐詩300首
 
 
1) 朱大를 秦으로 보내며 ~ 맹호연 작품
2) 중국어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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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연(孟浩然, 689년 ~ 740년)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다. 이름은 호이며, 자는 호연이며 호(號)는 녹문거사(鹿門居士)이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였다.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면서 시 짓는 일을 매우 즐겼다. 40세 때 장안(지금의 시안)에 나가 시로써 이름을 날리고, 왕유·장구령 등과 사귀었다. 그의 시는 왕 유의 시풍과 비슷하며,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5언시에 뛰어났다. 격조 높은 시로 산수의 아름다움을 읊어 왕유와 함께 ‘산수 시인의 대표자’로 불린다. 맹양양(孟襄陽)으로도 불리며 저서에 ‘맹호연집’ 4권이 있다. (위키백과)
 
* 千金 ~ 딸을 지칭한다
* 千金小姐 ~ 외동 딸
* 你走的陽光大路 我走我的獨木橋 (헤어질 때 하는 말)
너는 좋은 길로 가고 나는 험난한 길로 가겠다.
* 맏 아들 ~ 大, 佰, 老, 孟 (한국: 甲)
 
 
 

 
* 강의 교안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05강(2023,03,23) 강의 교안
 
《史記》〈周本紀〉 註釋
 
1. 士
 
5) 士大夫(관리 혹은 명망과 지식 있는)
宋文天祥, 《指南錄後序》「縉紳大夫士萃于左丞相府, 莫知計所出
고급관리와 대부와 士들이 좌승상 댁에 모여서, 원나라의 침입에 대한 계책을 내지 못하였다.
* 縉紳 ~ 고급관리
 
6) 사회계층-
《詩經》〈文王〉「殷士膚敏, 祼將于京」
상나라에서 귀순한 각 계층의 사람들이 주나라 수도에서 지내는 祼제사 상을 차리는데 힘써 도와주었다.
* 殷士(은사)~ 상나라에서 귀순한 사회 각층
* 膚敏 = 勤敏 ~ 힘써 일함
* 將 = 行
* 祼 제사~ 술을 올린 후 퇴주 잔을 방석에 붇는다.
 
7) 사람에 대한 美稱(女士, 人士)
 
8) 귀족의 최저등급
賈誼, 《過秦論》「于是六国之士, 有寧越、徐尚、蘇秦、杜赫之屬爲之謀」
또 육국의 귀족 최하위계층의 士들인 영월, 서상 소진 두혁의 무리들이 합종책을 도모했다.
* 六國 ~ 한 위 조(3晉) 제 연 초.
 
9) 기예 또는 무술을 배우는 사람
《戰國策》〈魏策〉「此庸夫之怒也, 非士之怒也」
이것은 소작농의 분노요 무술 배우는 사람들의 분노가 아니다.
* 庸夫 = 田農 = 소작농 <-> 지주, 자경농
* 敬賢禮士 禮遇士人
 
10) 지식분자의 통칭(士子, 士林, 士品, 名士)
《資治通鑑》 <卷六十五> 「孫討虏聰明仁惠, 敬賢禮士, 江表英豪, 咸歸附之」
손권(토로)장군은 총명하고 인혜하며,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선비들을 예우해서 강남의 영웅 호걸이 모두 손권 장군에게 귀순했다.
* 江表= 江南 ~장강 이남
 
* 토로장군(討虜將軍)은 오랑캐를 치는 장군이라는 뜻으로 잡호장군이다. 이 벼슬은 손권(孫權), 黃忠이 한 벼슬이다.
 
11) 고대 제후와 사대부가 천자에 대한 自稱
《禮記》「列国之大夫入天子之国, 曰某士」
제후국의 대부가 천자의 나라에 들어가 뵐 때 某士라 한다.
 
12) 品德, 학식, 기예를 갖춘 사람의 美稱(志士, 謀士, 医士)
《史記》〈魏公子列傳〉「公子爲人, 仁而下士, 士無賢不肖, 皆謙而禮交之」
위공자(신릉군)의 사람 됨은 어질고 자신을 낮추어 예로서 어진 선비와 교제한다. 선비가 어질든지 모자라든지 관계없이 모두 겸손히 예로서 교제한다.
* 醫士 -> 醫師 ->醫生 ->老師
* 下士~ 屈身交結賢士
* 屈身交結賢士는 '몸을 굽혀 교류하며 지혜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屈身은 몸을 굽히는 것을 의미하며, 交結은 사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를 낮추고 어진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속담(俗談)에 '평양 감사(平壤 監司)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정확(正確)하게 표현(表現)하자면 <평양 감사>가 아니라 <평안감사(平安 監司)>입니다.
조선 초기(朝鮮 初期)에 전국(全國)을 팔도(八道)로 나눴었는데 이때 관서지방(關西地方)을 평안도(平安道)라고 불렀고 이 평안도를 포함한 팔도에는 그 지방(地方)을 다스리는 지방관리(地方官吏)를 파견(派遣)하였는데 이 지방관리를 <관찰사(觀察使)> 또는 <감사(監司)>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평안도의 관찰사, 즉 감사가 머무는 감영(監營)이 평양에 있었습니다.
 
 
* 지사(志士)는 금전적인 지원이나 다른 형태의 지원을 통해 특정 이념이나 목적을 가진 운동이나 활동에 기여함. (애국지사 백범 김구)
* ‘의사’와 ‘열사’가 순국한 뒤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면 ‘지사’는 살아 있을 때도 쓸 수 있다.
 
 
平原君(평원군)
조승(趙勝).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공자(公子)이며 정치가이다. 씨(氏)는 조(趙), 휘(諱)는 승(勝)이다. 무령왕(武靈王)의 아들로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이다. 휘하의 식객(食客)을 모아 형인 혜문왕과 조카 효성왕(孝成王)을 보좌하였다. 전국 시대의 사군자(戰國四君)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인사(人士)을 좋아해서 식객이 수천 명에 달했다. 그 중에는 공손룡(公孫竜)이나 추연(鄒衍) 등도 있었다.
 
춘신군(春申君: ?~ 기원전 238년):
중국 전국 시대의 초나라의 정치가이다. 성은 황(黃), 이름은 헐(歇)이다.
전국 시대의 사군자(戰國四君)의 한 사람이다. 고열왕(考烈王)을 옹립하고 국세가 기울어가던 초를 지탱하였다.
 
孟嘗君(맹상군)
전문(田文).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정치가로 전국시대의 4공자(戰國四君: 全國4公子)의 한 사람이다. 성은 규(嬀), 씨(氏)는 전(田), 휘(諱)는 문(文)이며, 맹상군은 그의 시호(諡號)이다. 전국4공자는 제나라의 맹상군 전문(孟嘗君 田文), 조(趙)나라의 평원군 조승(平原君 趙勝), 위(魏)나라의 신릉군 위무기(信陵君 魏無忌), 초(楚)나라의 춘신군 황헐(春申君 黃歇)을 말하며, 전국 칠웅 간에 외교활동으로 강국 진(秦)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활약을 했었다. 맹상군은 제나라 왕족으로 평소 3천명의 식객을 두었으며 계명구도(鷄鳴狗盜)와 교토삼굴(狡免三窟)의 고사로 유명하다.
 
신릉군(信陵君, ? - 기원전 243년):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위소왕(魏昭王)의 아들이다. 이름은 위무기(魏無忌). 신릉군은 중국 전국시대의 저명한 정치가, 군사가로서 조나라의 평원군 조승(平原君 趙勝), 제나라의 맹상군 전문(孟嘗君田文),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春申君黃歇)함께 전국시대의 4공자로 불린다.
 
* 지역별 차량번호 앞글자
북경 ~ 京
상해 ~ 申
후난성~湘
 
* 중국 31개 성시(省市)와 간칭(简称): 네이버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bigredcu/110178532865
 
13) 일처리, 종사하다
《書經》〈康誥〉「侯甸男邦采衛, 百工播民和, 見士于周」
侯甸男邦采衛는 기복제의 6복이요, 상나라 백관과 일반 유민이 서로 화합해서 알현하여 주나라 제사상 차리는데 종사했다.
* 후전 ~ 6복
* 백공 ~ 백관
* 播民 ~상나라 유민
 
 
중국 고대의 畿服制는 왕실의 직할지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제후국을 계층적으로 구분하여 관리하는 제도로, 주나라 초기에 형성되어 이후 여러 왕조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王畿는 왕실의 직할지로, 왕의 거주지인 도읍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합니다. 王畿는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합니다.
 
5服은 王畿를 중심으로 하여, 왕에게 복속된 제후국을 5등급으로 나눈 제도입니다. 5服은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王畿: 왕실의 직할지
畿服 : 王畿와 인접한 제후국
侯服: 畿服과 인접한 제후국
伯服 : 侯服과 인접한 제후국
子服 : 伯服과 인접한 제후국
 
5服은 왕실의 권위에 따라 제후국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제도였습니다. 王畿와 인접한 제후국은 왕실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으며, 군대를 파견하거나 조공을 바치는 등 왕실의 명령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5服의 가장 낮은 단계인 子服은 왕실의 영향력이 미미한 지역으로, 제후국의 자율성이 비교적 컸습니다.
 
6服은 5服에 甸服을 추가한 제도입니다. 甸服은 왕실의 군사적 지원을 받는 제후국으로, 왕실의 군사적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6服은 주나라 중기 이후에 형성되었으며, 5服보다 더 정교한 제후국 관리 제도로 발전했습니다.
 
9服은 6服에 采服과 邊服을 추가한 제도입니다. 采服은 왕실의 조세를 납부하는 제후국으로, 왕실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는 역할을 했습니다. 邊服은 왕실의 국경을 지키는 제후국으로, 왕실의 외교와 국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9服制는 주나라 후기에 형성되었으며, 6服보다 더 복잡한 제후국 관리 제도로 발전했습니다.
 
畿服制는 중국 고대의 정치 체제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고, 제후국을 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중국 고대의 지리적 구분과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14) 仕와 通, 벼슬하다
《荀子》〈大略〉「古者匹夫五十而士」
옛날에 일반 보통 사람은 5십이 되면 관직에 나아간다
 
15) 恃와 通, 의지하다
《孫臏兵法》〈見威王〉「孫子見威王, 曰.夫兵者, 非士恒勢也。此先王之傅道也」
손자가 위왕을 뵙고 말하기를 “무릇 전쟁이라는 것은 영원불변한 유리한 형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것은 선왕이 전하는 가르침이다.
 
 

 
* 강의 교안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06강(2023,03,30) 강의 교안
 
《論語》〈八佾〉 注釋
 
3-7. 子曰:君子無所爭,必也射乎! 揖讓而升,下而飮,其爭也君子.
 
1) 爭-경쟁
2) 必-반드시~하다
3) 也-또한, 句 가운데에 사용된 語氣詞 ; 必也射乎 반드시 해야 한다면 또한 활쏘기가 아니겠는가?
4) 射-古代의 射禮를 가리킨다. 종류는
a. 大射(天子 또는 諸侯가 祭祀 지내기 전에 제사에 참가하는 사람 중에서 선발하여 거행하는 射祀)
b. 賓射(諸侯가 천자를 朝見하거나 또는 제후끼리 모일 때 거행하는 射禮)
c. 燕射(평상시 쉬는 날 거행하는 射禮)
d. 鄕射(地方官이 어진 선비를 천거하면서 거행하는 射禮이고, 射禮 전후로 항상 술을 마신다.
방법은 射禮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서로 揖을 한 이후에 射臺에 오른다.
활을 다 쏜 후에 다시 서로 揖을 하고 내려온다. 이후에 다시 서로 揖을 하고 술을 마신다.
 
관련 문헌은 《禮記》〈射義〉「射者,仁之道也。射求正諸己,己正而後發。發而不中,則不怨勝己者,反求諸己而已矣。孔子曰君子無所爭,必也射乎。揖讓而升,下而飮,其爭也君子」
활 쏘는 것(射者)는 仁을 실행하는 道이다. 射는 바르게 하는 일을 구할 때는 자기에게 구해야 한다. 자기를 바르게 한 후 활을 쏘아야 한다. 쏘았는데 맞지 않으면 즉 나를 이긴 상대에게 불평하지 말고, 반대로 자기에게 물어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으나, 필히 다툰다면 활쏘기 뿐이다. 읍을 하고 양해를 구하고 사대에 올라가고 다 쏜 후 내려와서 술을 마신다 그것이 바로 군자의 다툼이다 "
 
5) 揖-拱手하고 맞이하는 禮를 행한다.
6) 讓-물러나며 謙讓을 나타내는 예절
7) 升-오르다(射臺)
8) 下-내려오다
9) 飮-술 마시다.
 
 
적중的中. ‘과녁 적的, 가운데 중中’을 써서 과녁 가운데에 화살이 맞는다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목표에 꼭 들어맞을 때 적중했다’라는 말의 어원.
 
정곡正鵠을 찌르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일컫는 정곡이란 말은 활쏘기에서 나온 말이다. 과녁 전체를 적的이라 하고 정사각형의 과녁 바탕을 후侯라고 한다. 그 과녁 바탕을 천으로 만들었으면 포후布侯, 가죽으로 만들었으면 피후皮侯라 한다.
 
동그라미가 그려진 과녁의 정가운데에 작게 그린 그림을 포후에서는 정正이라 하고, 피후에서는 곡鵠이라 한다. 정正은 본래 민첩한 솔개의 이름이고, 곡鵠은 고니를 가리키는 말인데, 과녁 가운데 표적으로 솔개나 고니 같은 새를 그려 놓았다는 데서 정곡이란 말이 생겼다. 그래서 과녁 중에서도 가장 맞히기 힘든 부분인 정가운데를 맞혔을 때 ‘정곡을 찔렀다’고 한 것이다.
 
같은 뜻을 가진 말로 ‘적중的中’이 있다. 오늘날에는‘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조선시대는 정곡에 곰(웅후熊侯), 사슴(미후麋侯), 멧돼지(시후豕侯) 등의 머리를 표적으로 그려 붙였다. 과녁을 사후射侯(과녁 侯)라고 부르고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베(포, 布)로 만들어 세웠고, 정곡은 과녁 1/3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과녁 가운데 붙였다. 백성들이 사용하던 과녁에는 새(꿩 등), 토끼, 물고기 등을 그려 붙였다.
 
관혁(貫革) - sillokwiki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관혁(貫革)
# 논어 팔일편 # 사기 주본기
【학습】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 사마천 사기 339강 강의내용 요약 (24.1.18)
• 사마천 사기 338강 강의내용 요약 (24.1.11)
• 사마천 사기 337강 강의자내용 요약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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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