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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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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018년 9월 20일
동방경제 포럼에 참석했던 범선 코리아나호... 2000㎞ 항해 후 귀환
총살당한 아버지, 간첩으로 몰린 아들
2018년 9월 7일
“쌀알에 동물이 다녀요”
2018년 9월 5일
태풍지난 여수 신항 부두... 원양항해 떠나는 배들로 바빴다
2018년 8월
2018년 8월 14일
여수-블라디보스토크 잇는 1000㎞ 국제범선대회 열린다
2018년 8월 3일
일본해로 표기된 동티모르 역사교과서 동해로 바꾸기도
2018년 7월
2018년 7월 26일
몽골 울란바토르 한복판에 이태준 기념공원, 어떤 사연?
2018년 7월 24일
텐트 치다 산산이 부서진 몽골 초원에서의 낭만
2018년 7월 23일
황금산이라 불리는 알타이 산, 어머니 산이라 불리기도
2018년 7월 17일
'차별이요? 재학생 절반이 다문화출신이라 그런 거 없어요'
유라시아 고대문화의 심장, 몽골 유목문화
2018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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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3일
몽골에서 발견한 28수 별자리, 어디서 본 건데
12일간의 몽골여행... 평생 보고도 남을 가축을 보았다
2018년 7월 11일
선배들과 함께 꿈을 찾아봅니다
2018년 7월 10일
신선이 내려왔다는 선감도, 아이들은 지옥이었다
여수에서 열린 몽골 이주민들의 나담축제
2018년 7월 9일
"'죽음의 호수'였던 시화호 되살린 건 시민단체 노력 덕분"
2018년 7월 6일
웬만한 고장은 현장에서 해결하는 몽골운전사
2018년 7월 4일
몽골여행에서 알게된 '가시내'의 의미
2018년 7월 3일
몽골 여행, 라텍스 방석은 왜 필요한가 했더니
2018년 6월
2018년 6월 18일
태조 이성계가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는 '상이암'
2018년 6월 15일
영원한 별처럼 뜻이 기려지기를 바란 소충사 28수 천문비
2018년 6월 13일
조선 5대 명산이었던 회문산, 왜 '죽음의 땅' 됐나
2018년 6월 8일
"안용복과 독도수호 나선 뇌헌 스님에 관해 3가지 오류 있다"
2018년 5월
2018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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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5일
여순항쟁 희생자 위령비에 글귀 아닌 점만 찍혀있는 이유
2018년 5월 20일
왕인박사 후예들, 순천 매산여고 방문
2018년 5월 19일
차량통행 잦은 곳에 싱크홀이 발생했다... 신속한 보수공사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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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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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018년 4월 23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2018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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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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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에 이런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니
2018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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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일
전남교육감 예비후보 고석규... 단계별 고교무상교육 실시할 것
2018년 3월
2018년 3월 30일
'도무지'에 이런 끔찍한 뜻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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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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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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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1일
최내우가 쓴 26권 일기를 집대성한 〈창평일기〉
2018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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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8일
〈혼불〉 배경이 된 이웅재 고가를 아십니까
2018년 3월 16일
"독도는 일본이 강탈해간 우리 땅"
2018년 3월 14일
"정치인은 '심부름꾼', 선공후사로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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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인 은빛순례단 "한반도 전쟁 다시는 안돼"
2018년 3월 8일
'가짜 조선통신사 문서'로 조선-일본 모두 속인 대마도 번주
2018년 2월
2018년 2월 28일
3.1운동때 '조선인 귀무덤' 철거될 뻔했었다
2018년 2월 26일
김문길 교수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구"
2018년 2월 20일
항일독립운동에 일생 바친 조우식
2018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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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다시는 전쟁이 나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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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조직국장 이병철의 회한 "하늘이 준 기회 놓쳤다"
2018년 1월 3일
내 삶을 뒤돌아보게 한 이환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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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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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5.25. 12:05 (2018.05.25. 12:05)

【기사】여순항쟁 희생자 위령비에 글귀 아닌 점만 찍혀있는 이유

한반도 평화 만들기 1000인 은빛순례단 여수순례동행기
은빛순례단 일행이 여수지역 순례를 하고 있다. 14연대 반란이 시작된 곳에서 팔을 들고 설명하는 이가 주철희 박사다 ⓒ오문수
 
23일(수) 14시, 한반도 평화만들기 1000인 순례단 일행이 여수를 방문했다. 도법스님과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삼열 이사장을 비롯한 15명의 은빛순례단 일행이 선택한 여수 순례길은 여순항쟁 관련 행적을 찾는 길이다.
 
순례의 해설은 주철희 박사가 진행했다. 해설을 맡은 주철희 박사는 여수에서 나고 자란 역사학자이며, 여순사건 전문가이다. 그는 <불량 국민들>,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등의 여순사건 관련 저서와 많은 연구 논문이 있다.
 
순례단의 첫 번째 행보는 신월동에 소재한 제14연대 현장이다. 제14연대의 현장은 한화여수공장이 위치해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 공장주변은 잘 다듬어진 가로수 길과 정원수가 어우러져 녹음이 짙게 우거져 있다.
 
 
14연대 반란이 있었던 신월동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판 방공호와 무기고가 있다. 방공호를 둘러보는 은빛순례단 일행들 ⓒ오문수
 
공장 앞 파란바닷물이 넘실대며 하늘이 유난히 밝다. 바다는 70년 전 여수를 피바다로 물들였던 사건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무심히 흐르고 있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세웠던 공장굴뚝이 높이 솟아 이곳이 역사의 현장이란 걸 증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역사는 또 있다. 정문 앞 인근 언덕아래 일제가 파놓은 무기고와 방공호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해군202 부대가 있었던 이곳은 해방 후 국방경비대들이 사용했고 국군으로 개명한 제14연대가 주둔한 곳이다.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며 시작된 제14연대 봉기
 
 
여순사건은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동포의 학살을 거부하며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면서 발발하였다. 그들은 <애국인민에게 호소함>이란 성명서에 '동족상잔 절대반대'와 '미군 즉시철수'를 주장하며 여수, 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지역을 점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진압한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했다.
 
신월동을 떠난 일행의 다음 행선지는 여수서초등학교이다. 이곳은 토벌군에 점령당한 후 부역자심사가 이뤄진 후 학살이 있었던 곳이다. 일행은 봉기군과 경찰 간에 최초 총격전이 있었던 충무지서를 경유하여 당시 여수 우체국과 금융조합 등이 있었던 여수 시내 중심지로 이동하였다.
 
제14연대 병사들이 여수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길을 따라 걷다가 화단 앞에 조선수군복장을 한 인형이 세워진 의자에 앉아 주철희 박사의 설명을 들었다.
 
 
여순항쟁 당시 중심지역으로 14연대 반란군들이 지나갔던 길이다. 주철희 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은빛순례단 일행들 ⓒ오문수
 
 
14연대 군인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 순례하는 은빛순례단 일행들 ⓒ오문수
 
"여기서 20여미터 떨어진 OO통만두집이 당시 여수우체국이며, 그 옆이 여수일보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10월 24일에 '여수인민보'로 개명한 후 신문이 발행된 곳입니다. 당시 여수 시내는 모두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중앙동 진남관을 지나 여수경찰서를 거쳐 여수중앙초등학교로 간 일행은 학교나무그늘에서 주철희 박사로부터 강의를 들었다. 중앙초등학교는 여순사건 당시 김종원 대위의 제5연대가 주둔해 부역혐의자들을 총살하거나 일본도로 죽인 곳이다. 여수중앙초등학교 바로 뒤에는 여수여중이 있다. 나무그늘아래 앉은 일행들에게 주철희 박사가 강의를 계속했다.
 
 
여순항쟁 당시 중요한 위치에 속했던 여수중앙초등학교 모습. 바로 뒷편에 여수여중이 있다 ⓒ오문수
 
 
경찰들로부터 취조를 받고 있는 부역혐의자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여순항쟁 당시 희생됐던 시신들 모습 ⓒ여수지역사회 연구소
 
"여순사건에 있어 여수중앙초등학교와 여수여중은 중요한 곳입니다. 당시 뉴스보도를 보면 제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도했습니다.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으면 군인반란의 책임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그걸 깨달았는지 10월 27일 이후 보도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전남지역 좌익분자들이 반란을 했는데 일부 군인들이 동조했다' 즉, 군인 반란을 민간인 반란으로 책임을 전가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반란의 총지휘자로 여수여중 송욱 교장을 지목하여 숱한 고문을 당하고 그는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총살되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금지곡 <여수야화>
 
여순사건이 끝난 뒤 이 사실을 지켜봤던 당시 여수여중 국어교사였던 전병순이 여순사건을 그린 <절망 뒤에 오는 것>이란 소설을 썼다. 주철희 박사는 여순사건과 관련된 노래가 세 곡이 있으며 그 중 한곡은 대한민국 최초의 금지곡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남인수가 부른 '여수야화'는 민심에 악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최초의 금지곡이 되었다.
 
오죽했으면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경찰이 노래를 지었을까? 여수경찰인 강석호가 작곡한 '여수부르스', 전북 경찰인 정성수 작곡인 '산동애가'가 나머지 두 곡이다.
 
할 말을 못 다한 두 개의 비석
 
순례의 마지막 코스는 만성리다. 한 때 검은모래로 유명했던 만성리 인근 산에는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여수에서 마래터널을 지나 백여미터 왼쪽에는 차량 대여섯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고 자그마한 산기슭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그런데 뒤쪽 비문이 여느 비문과 다르다.
 
 
"1948년 10월 19일 ㆍㆍㆍㆍㆍㆍ2009년 10월 19일"
 
 
당시 비석을 세웠던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오성 여순사건위원장은 "여수시가 비를 세워주면서 '학살'이라는 단어를 제한했기 때문에 점 6개로 유족들의 못다한 말과 울분을 함축시키기로 했다"고 했다.
 
 
만성리 여순항쟁 희생자 위령비 뒷편에는 글귀가 적혀있지 않고 점 6개만 찍혀있다. 당국에서 '학살'이라는 글귀를 허용하지 않아 억울한 유족들의 심경을 이같이 표현했다. 거울처럼 다듬어진 대리석이라 도법스님 옆에서 촬영하는 필자의 모습이 보인다. ⓒ오문수
 
 
만성리 형제묘 옆에서 묘의 내력을 설명하는 주철희 박사. 여순항쟁당시 희생된 시신을 한 자리에 묻고 불태워 시신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되자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는 의미로 형제묘라 불렀다. 초기 묘비뒷면에는 125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으나 좌익후손이라는 멍에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산 유족 중 한 분이 글자를 지워버렸다. ⓒ오문수
 
당시 여수시청 관계자에 의하면 "정부차원에서 진상규명이 끝나지 않았고 일부 단체에서 '학살'이라는 견해를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령비를 지나 만성리 해수욕장 쪽으로 20여미터 가다 계단을 20여미터 올라가면 형제묘가 있다. 군인들은 부역혐의가 있는 민간인 125명을 끌고 와 학살한 후 시체를 불에 태웠다.
 
사건이 끝난 후 시신을 수습하려던 유족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는 의미에서 비석을 세우고 형제묘라고 이름 지었다. 초기에 세워진 비석 뒷면에는 희생된 125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지만 희생자 유족 중 한 명이 좌익불순분자 집안으로 낙인찍혀 평생 고생하는 게 지겨워 희생자 이름을 지워버렸다. 희생자 이름이 지워진 뒷면 내용이다.
 
"이정최문자쓰다"
 
이정은 호이고 최문자는 유족이름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신기동으로 자리를 옮겨 주철희 박사의 '여순항쟁과 국가'란 주제의 추가 강의를 듣고 난 후 이삼열 교수와 도법스님으로부터 평화순례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도법스님의 얘기다.
 
 
만성리 형제묘를 참배하고 난 후 기념촬영한 세분. 왼쪽부터 이삼열 교수, 前전남대 강정채 총장, 도법스님 ⓒ오문수
 
 
여순항쟁 관련지역 답사를 마친 은빛순례단 일행이 저녁식사를 마친 후 oo 카페에서 주철희 박사로부터 종합정리한 내용의 강의를 들은 후 이삼열 교수와 도법스님으로부터 은빛순례단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오문수
 
"우리가 과거문제만 논의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전쟁은 전쟁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핵을 핵방식으로, 분노와 증오를 분노와 증오로 푸는 것은 불로 불을 끄는 것이며, 피를 피로 씻는 것과 같습니다. 다들 세계평화, 남북평화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상의 평화, 내안의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평화가 깨지면 어떤 것도 풀어지지 않아요. 인내와 관용 평화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아! 바로 저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부부간, 이웃간, 지역간에도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이 필요합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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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