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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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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5.08. 11:05 (2018.05.08. 11:05)

일본 향해 포효하던 독도 호랑이상 이전, 과연 온당한 일일까

▲ 안용복기념관 바깥에 안용복 일행이 일본으로 향하는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 오문수
 
지난 주 영토학회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를 거쳐 독도를 방문했다. 관광선에 올라타니 430여명을 수용하는 배에 빈자리가 없다. 초등학생부터 나이 많은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빈자리가 없다는 것은 두 섬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저동항에서 내린 일행은 도동항으로 이동해 여장을 풀고 울릉도 관광에 나섰다. 날씨가 좋아서일까? 차를 기다리는 동안 도동항에 내리는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가뜩이나 비좁은 도로에 차는 왜 그렇게나 많은지!
 
 
▲ 날씨가 좋아서인지 울릉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발디딜 틈이 없을정도로 많았다. 사진은 관광선을 타고 도동항에 내린 관광객들 모습 ⓒ 오문수
 
울릉군청에 들러 울릉군 현황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인구 9975명(2017기준)에 자동차만 5400여대이고 작년 한 해 동안 (2017년말) 34만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관광차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이렇게 관광객이 많으니 좋겠다"고 하자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손님이 많아 보여도 겨울에 해지고 나면 귀신 나옵니다. 이렇게 도로가 좁으면 차도 적어야 하는데 시내버스인 무릉교통이 큰 차를 유지하며 일년에 20억 적자를 내요. 여러분은 울릉도행 배삯을 5~6만원 내지만 울릉도 주민은 7천원만 내요. 겨울에 울릉도 주민들이 육지로 나가 모임도 하고 생필품을 사서 돌아오니까 울릉도 경제가 잘 안돌아가죠"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섬주민에게 까지 과도한 배 삯을 요구하면 섬에 남아있을 사람이 있을까?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잘도 운전하는 운전기사의 해설을 들으며 태하에 도착해 첫 번째 들른 곳은 '성하신당'이다.
 
▲ 울릉도 태하에 있는 '성하신당' 모습. 울릉도인들이 신성시 여겨 농사와 어업이 잘되기를 빌었을 뿐만 아니라 배를 진수할 때도 반드시 이곳에서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 오문수
 
다섯 평쯤 되어 보이는 성하신당은 동남동녀의 슬픈 전설이 어린 신당이다. 울릉도 개척 후 주민들은 매년 음력 3월 1일 (삼짓날)에 농사나 어업의 풍년을 바라는 제사를 지낸다. 모든 선박을 진수할 때도 반드시 이 사당에 제사를 올려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번창을 기원했다.
 
수토제도...조선정부가 울릉도 독도를 우리영토로 관리했다는 걸 의미
 
성하신당을 나선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울릉수토역사전시관'이다. 수토? 처음 듣는 건 아니다. 강릉항으로 오기 전 동아지도 대표와 함께 울진 구산항 근처 '대풍헌'에 들렀을 때 '수토사가 바람을 기다렸던 곳'이라는 안내문을 읽었기 때문이다.
 
일행과 함께 전시관에 들러 수토제가 무슨 제도인지 알아봤다. '수토(搜討)'는 '수색하여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해 조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울릉도 지세를 살피는 한편 불법으로 거주하는 조선인들과 벌목, 어로행위를 하는 일본인을 수색하고 토벌하는 정책이다.
 
▲ 울진 구산리 '대풍헌'은 조선시대 구산포에서 울릉도와 독도로 가던 수토사들이 머물며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의미의 건물이다. ⓒ 오문수
 
▲ 태하에 있는 '울릉수토역사전시관' 모습 ⓒ 오문수
 
▲ '울릉수토역사전시관'에는 수토제가 잘 설명되어 있었다. 조선정부에서 수토제를 시행했다는 건 울릉도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걸 증명한다 ⓒ 오문수
 
▲ 태하에 있는 '울릉수토역사전시관' 인근 바위에 있는 암각서로 '이보국' 수토사가 행적을 기록했다 ⓒ 오문수
 
즉, 정기적인(2~3년) 울릉도 순찰을 통해 군역, 공납을 피해 도망친 조선인을 쇄환시키고 왜구의 수탈로부터 조선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 시작했다. 수토제도는 안용복 사건이 일어난 다음해인 1694년 장한상 수토사가 울릉도 순찰을 시작한 이래로 1894년 수토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약 200년간 계속됐다. 수토사는 삼척영장과 월송만호가 번갈아 임무를 담당했고 반드시 역관을 동행했다.
 
안용복의 1차 도일(1693년)이후 일본 쓰시마번에서는 안용복을 조선으로 인도하며 향후 조선인이 울릉도에 들어가 어업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서계를 보냈다. 이에 조선정부는 삼척영장 장한상에게 명해 울릉도에 가서 섬의 형편을 살펴보도록 하는 한편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이며 일본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서계를 쓰시마번에 통보했다.
 
이 사건은 울릉도와 독도를 두고 조선 정부와 에도 막부간에 벌어진 최초의 한일 영토분쟁으로 조선에서는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 일본에서는 '죽도일건(竹島一件)'이라 칭했다.
 
이후 1695년 에도막부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울릉도와 독도는 단 한 번도 일본의 영토였던 적이 없었으므로 두 섬을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고 일본인으로 하여금 울릉도 출입을 금하는 '죽도도해금지령'을 선포했다.
 
전시관을 나와 바닷가로 가니 옛 수토사들이 국왕의 명을 받고 울릉도까지 와서 임무를 수행했다는 내용을 기록한 암각서가 있다. 전에는 다양한 각석문이 존재했었다고 하나 해안공사, 항만공사로 많은 자료가 사라지고 식별 가능한 것으로 김최환, 이보국 수토사가 기록한 암각서가 보였다.
 
안용복의 1차 도일...울릉도 독도를 두고 벌어진 최초의 한일 영토분쟁
 
도동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독도와 울릉도를 지켜낸 안용복의 업적을 기리는 안용복 기념관에 들렀다. 2003년에 개관한 기념관에는 조선의 영토와 바다를 지켜낸 그의 활약상과 독도가 우리 고유 영토임을 증명하는 다양한 사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안용복의 1차 도일과정에서 일본의 막부는 울릉도와 독도 영유권이 조선에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마도는 막부의 결정과 시행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이에 안용복은 영유권 문제의 선제적 해결을 결심하고 1696년 3월 2차 도일을 감행했다.
 
▲ 안용복 기념관에 전시된 일본 문서(위쪽)와 안용복이 지참했던 '조선8도지도' 모습. 2005년 5월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의 무라카와 가문에서 공개한 '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에는 1696년 안용복이 일본 태수에게 항의하러 가다 오키섬애 도착했을 때 일본관리들이 안용복을 조사 심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문서에 의하면 안용복은 조선8도지도를 꺼내 보이며 강원도에 울릉도(죽도) 독도(송도)가 속해있다고 설명했다. ⓒ 오문수
 
울릉도에 도착한 안용복은 불법조업 중이던 일본인들을 울릉도에서 몰아내고 독도까지 추격했다. 추격과정에서 일본에 표류한 안용복은 자신을 '조울양도감세장'이라 칭하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이라고 기록된 '조선팔도지도'를 지참했다.
 
그는 지도를 근거로 두 섬에 대한 영유권이 조선에 있음을 태수에게 분명히 밝혔다. 이에 태수는 안용복에게 두 섬은 조선의 영토이며 이후 다시 이곳을 침입하는 일이 있다면 무겁게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기 전 독도의 망양대에서 일본을 바라보고 포효했던 호랑이상으로 울릉도 안용복기념관 잔디밭으로 이전했다. 호랑이상이 세워졌던 자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방문을 기념해 세운 "독도(전면)와 대한민국(후면)"이라고 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오문수
 
▲ 독도경비대가 보이는 동도의 망양대에는 일본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호랑이 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불법설치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되어 울릉도 안용복 기념관 잔디밭에 전시되고 있다. 호랑이상이 있던 자리에는 '독도(전면)와 대한민국(후면)'이라고 써진 비석이 서있다. 동아지도 안동립 대표가 비석을 가리키고 있다 ⓒ 오문수
 
안용복기념관을 구경하고 전시관 밖에 나오는데 동아지도 대표인 안동립씨가 호랑이상을 가리키며 "저 호랑이상은 사연이 있는 동상입니다"라고 말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념관 앞에 있는 호랑이 동상은 원래 독도 망양대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불법으로 설치된 기념물이라며 철거한 후 안용복 기념관 앞에 전시하고 있는 겁니다. 호랑이상이 있던 망양대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방문 후 세운 비석이 있는데 전면에는 독도, 후면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태 박사가 한반도와 호랑이 상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 국사편찬위원이었던 이상태 박사가 안용복 사건이 주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조선시대의 영토개념은 '지인합일론(地人合一論)'이었어요.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로 그리자 최남선이 호랑이로 그렸습니다. 한반도라는 표현도 일본인들이 사용한 표현입니다. 일본인들은 대한민국을 반쪽섬인 '한반도'라고 하고 일본은 온전한 땅이라는 '일본전도'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왜 우리땅이 반쪽 섬입니까? 이런 표현 바꿔야 합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독도 망양대에서 일본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던 호랑이가 원래 있었던 독도를 그리워하는게 아닐까? 망양대에 설치된 호랑이상을 불법설치물이라며 안용복기념관으로 옮기고 이명박 전 대통령 방문을 기념하는 비석으로 대체한 게 옳은 일일까?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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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