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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화면 (다빈치!지식놀이터) ::【 오문수의 지식창고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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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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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018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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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018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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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대문화의 심장, 몽골 유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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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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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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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018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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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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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뒤돌아보게 한 이환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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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5.08. 10:50 (2018.05.08. 10:50)

【기사】안용복이 독도를 향해 떠난 항구는 어디일까?

"일제가 지정한 ‘죽도’를 그대로 받아들여 '죽도산" 됐다" 주장 나와
▲ 축산항 모습. 중간이 좁고 맨 아래쪽은 넓은 호리병처럼 생겨 양향이다 ⓒ 오문수
 
독도를 지켜낸 안용복의 2차 항해 당시 독도를 향해 출발한 항구는 영해가 아닌 축산항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안용복이 독도로 출발한 항구가 축산항이라고 주장한 이는 동아지도 대표 안동립씨다. 독도를 사랑해 14년 동안 18번을 방문해 독도 유일주민 김성도씨 댁에서 80일 정도 머물며 독도 지리와 식생지도 80만부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는 안동립씨.
 
"꼭함께 가볼 곳이 있다"며 필자를 안내한 곳은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5길에 있는 축산항이다. 서울을 떠난 승용차 안에서 그가 축산항을 찾아 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 안용복이 독도로 떠난 항은 '축산항'이라고 주장한 동아지도 대표 안동립씨 모습 ⓒ 오문수
 
"1696년 안용복과 박어둔 일행이 울산을 거쳐 영해에서 독도로 출발했다고 하는데 영해는 육지이기 때문에 제 추정으로는 축산항에서 출발했어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영해는 육지다. 그래서 영해에서 3.8㎞떨어진 대진항으로 갔다. 항구 형세를 보니 조그마할 뿐만 아니라 인공방파제가 아니면 어선들이 정박하기에 곤란한 지형이다. 따라서 17세기에 살았던 안용복이 육지인 영해에서 독도로 떠났을 리는 만무하고 대진항도 큰 배들이 정박하기에 적절한 곳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영해시장에서 유명한 물가자미 횟감을 사들고 13분여만에 도착한 곳은 축산항이다. 대진항에서 6.3㎞ 떨어진 남쪽에 자리잡은 축산항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죽도산 전망대에 올라 항구형세를 살펴보았다. 원래 지형을 살펴보니 입구는 넓고 중간이 좁을 뿐만 아니라 맨 밑바닥은 넓어 호리병처럼 생겼다. 자세히 보니 정박한 배들을 보호하기 동해안쪽에 면한 입구 한쪽을 현대식 방파제로 막아 배들이 정박하기 안성맞춤이다.
 
항구 동해안쪽에 죽도산이 위치해 동해안 파도를 막아주고 호리병처럼 생긴 밑바닥 부분은 넓게 퍼져있었다. 천혜의 항구다. "야! 항구입지가 기가 막히게 좋네!"라며 감탄하자 안동립씨가 입을 열었다.
 
 
▲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에는 '축산도'가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지도의 바다에 면한 맨 오른쪽에는 '축산'이란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안동립씨의 설명에 의하면 바다에 산처럼 생긴 그림은 '섬'을 의미한다고 한다 . 그렇다면 '축산'이라고 기록된 섬은 '축산도'가 된다 ⓒ 안동립
 
▲ 일제강점기 에 그려진 지도로 한문으로는 '죽도'로 표기되어 있고, 오른쪽에 일본말로 토를 달아서 '축섬'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 안동립
 
"자! 이 대동여지도를 보세요. 죽도산은 원래 '축산도'라고 불린 섬으로 '축도'라고 약칭했습니다. 이 섬이 축산천과 바닷물의 영향으로 자연스런 퇴적과정을 거치며 연결됐습니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매립공사를 했고 '축산'을 '죽도'로 개명했어요. 그런 연유를 모른 후손들이 지금 우리가 서있는 전망대를 '죽도산' 으로 불렀어요. 아니 어떻게 독도를 지켜낸 안용복이 출발한 항구를 일본인들이 개명한 '죽도'라고 부를 수 가 있어요? 일본인들은 독도가 죽도라고 부르짖으며 자기네 땅이라고 하잖아요"
 
일리가 있었다. 전망대에는 '죽도산' 형성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그림과 글이 있었다. 설명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죽도산에 대한 최초의 문헌자료인 <대동여지도>에는 이곳이 육지와 떨어져있는 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매립공사로 인해 현재는 인공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나 매립형태는 과거 모래둔덕의 모양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죽도산은 육계사주라는 퇴적구조가 발달해 육지와 연결되었으며 육계사주는 육지와 육지 사이를 잇는 긴 모래둔덕과 같은 구조를 뜻한다. 죽도산 뒤에 가려진 서쪽부분은 바닷물이 잔잔하기 때문에 바닷물에 쓸려온 모래들이 쉽게 쌓인다. 동시에 축산천이 흐르며 운반해온 모래들 또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속도가 느려지는 곳에서 쌓이게 된다"
 
마을에서 만난 촌로에게 "안용복이 영해에서 독도로 출발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영해는 바다에서 떨어진 육지에요. 말이 안되죠. 옛날 어르신들 말씀에 의하면 이곳이 영해항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관방요해처...어선의 출입이 쉽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곳
 
선군은 수군을 말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전국 해안에 많은 관방요해처(關防要害處)를 설치해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막게 했다. 관방요해처는 어선의 출입이 쉽고 대형 전함이 정박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태풍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곳에 수군 만호진을 설치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관방요해처인 축산포에 만호진을 설치했다.
 
고려말 권근이 쓴 영해부 서문루의 기록에 의하면 1381년에 가장 많은 왜구가 침입해 와서 영해읍성을 괴롭혔다고 하고 언제나 축산도를 거점으로 침입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동립씨가 영덕군청 문화해설사에게 질의해 들은 답변은 "축산항이 영해항이 맞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역사적 사료를 찾아보기 위해 축산면사무소를 찾아가 담당자와 대화하고 자료를 얻었다 영덕문화원이 발간한 <축산면지>에는 축산면의 연혁이 나와 있었다. 24페이지에 나온 축산면 연혁 내용이다.
 
▲ 축산항 바깥에 동해안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현대식 방파제가 보인다. ⓒ 오문수
 
"현재의 축산면은 본래 영해부에 소속되어 영해부사의 관할을 받던 곳으로 1896년까지는 영해부의 남면이었고 1896년 이후는 영해군의 남면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종전의 부,군,면을 통폐합했는데 317군 중 97개 군을 폐지했다. 이때 영해군이 폐군되어 영덕군에 흡수되었다"
 
독도에 관한 자료에는 안용복의 도일행로를 그린 그림들이 많다. 두 번째 행로도를 보면 안용복이 육지를 떠난 항구가 울산으로 나와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울산 - 축산도 - 울릉도 - 독도 - 오키도 - 돗토리 - 양양이라고 기재해야 하지 않을까?
 
김정호와 권근이 기록한 문서에는 '죽도산'을 '축산도'라고 명명하고 있다. 일본식 표현인 '죽도산'을 버리고 조상의 얼이 서린 '축산도'로 되돌아가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면 어떨까?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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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