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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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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5.03. 11:42 (2018.05.03. 11:42)

교통사고로 3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회복돼

고향에서 농장과 펜션사업하며 봉사활동하는 차금옥
▲ 집앞에서 선 차금옥(오른쪽)씨 부부 모습. ⓒ 오문수
 
며칠전 일이다.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던 고향에 들렀다가 어릴적 말로만 들었던 깊은 산속마을로 산책을 나갔다. '검사말골'. 행정구역 명칭은 전남 곡성군 오곡면 봉조 2구다.
 
풍수설에 의하면 '봉조리'는 '말이 도적을 쫒는 형국'의 명당이기 때문에 일명 '말골'이라고 불렀다. 필자가 찾아간 마을은 '검사말골'로 봉조리 2구다. 동네주민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에 선친 묘를 둔 순흥안씨들이 묘를 이장할 때 '검은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검은 새 말골'로 불렀다가 '검새말골'로 불린 후 종국에는 '검사말골'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오지 중 오지였던 '검사말골'
 
▲ 곡성군에서도 오지 중 오지인 '검사말골' 입구의 마을모습. 옛날엔 소달구지가 다녔던 길이지만 지금은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다 . 아름다운 모습에 발길이 끌려 올라갔다 ⓒ 오문수
 
토요일 밤새 비가 왔지만 오늘은 비가 그쳤다. 산중턱에 걸린 안개가 동양화 같은 모습을 띠고 놀란 꿩이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가느라 정적을 깬다. 비온 뒤라 나무에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고 길가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길을 따라 올라가는 데 '곡성 OOO 펜션'이란 간판이 보였다. 아니! 이런 산골짝에도 펜션이 있을까?하며 의아해 하던 찰나 눈을 들어보니 산중턱에 예쁘게 단장한 집이 보였다. 10여 채 있는 마을에는 승용차도 보인다. 도회지에 살던 자식들이 부모님을 찾아왔겠지.
 
가파른 고개길을 올라가려는 데 수염기른 사람이 트럭 운전대에서 "어디서 무엇하러 오셨습니까?"라며 묻는다. "저 아랫동네에서 열리는 동창회 왔다가 어릴적 말로만 들었던 마을이 있다기에 구경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커피한잔 하고 가란다.
 
교통사고로 3년 동안 식물인간이 되었던 차금옥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 때는 15가구에 30여명이 살았지만 현재는 5가구 10여명만 산다. 봉조2구에서 초등학교를 가려면 산길을 3㎞쯤 내려가 신작로를 따라 3㎞쯤 걸어가야 압록초등학교가 나온다.
 
그는 책보를 어깨에 메고 나이든 형들을 따라 학교에 가다 넘어져 부모님께서 군것질하라고 준 달걀이 깨져버려 낭패했던 추억도 얘기해 줬다. 고향에 계속 살다가 펜션을 지었느냐?고 묻자 한숨을 쉬며 눈물짓던 그가 "옛날 힘들었던 생각이 나 눈물이 났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가난해 고구마가 주식인 그는 아버님 밑에서 못살겠다며 곡성읍내에 있는 남의 집에 들어갔다. 얼마 후 아버지 지인이 서울에 취직시켜준다며 친구 5명과 함께 그를 서울 면목동 가방공장으로 데리고 갔다.
 
3층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간 공장에서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대신 빨래와 설거지, 청소만 시키고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고 자주 두들겨 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3년치 월급을 미리 받고 팔아버렸다. 사실을 안 친구들은 다 도망갔지만 제일 어린 그는 도망치지 못했다.
 
어느 날 마음씨 좋은 미싱 기술자의 도움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통행금지에 걸려 경찰에 쫒기다 맨홀 속으로 숨었다. 모기에 엄청 뜯기며 숨어있는 동안에 새벽 4시가 되어 통금해제가 되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에 돌아왔다.
 
그의 운명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아버지한테 물어 자신을 팔아버렸던 사람을 찾아갔지만 이미 다 죽어가던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해서 더 이상 추궁하지 못했다. 고향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배내기 소를 키워 판돈 1만 5천원을 가지고 곡성역에서 다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배내기 소란 이웃집 송아지를 맡아 키워 황소로 키워 판돈을 소 주인과 5대 5로 나눠 갖는 것을 말한다.
 
▲ 고향으로 귀향한 차금옥씨가 집 앞에 벌을 기르고 있다. 나무에 걸린 세숫대야는 분봉을 위해 나온 여왕벌이 붙기 쉽도록 설치해둔 것이다 ⓒ 오문수
 
▲ 벌을 기르는 차금옥씨 설명에 의하면 "벌통에 있는 여왕벌이 분봉할 때 잘 붙을 수 있도록 세숫대야 속에 멍석조각을 붙여놨다"고 한다. ⓒ 오문수
 
배가 고파 대전역에서 내려 가락국수를 먹고 다시 기차를 탔지만 어디로 가는 열차인지도 모르는 그는 미칠 듯이 기차 안을 헤매고 다녔다. 돈 숨겨놓은 괴나리 봇짐을 두고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새끼돼지 한 마리에 1500원 하던 시절이라 그에게는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눈앞이 캄캄해 열차 안을 헤매고 다니던 그는 자신의 조수가 되라는 구두닦이에게 잡혀가 화장실에서 구두닦이 통으로 엄청 두들겨 맞았다. 맞아 죽겠다 싶어 아무역이나 내린 곳이 경북 구미역이었다.
 
수중에 돈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그는 역 인근 논으로 들어가 보리타작하고 난 보릿대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아침이 되어 보릿대 속에서 자고 있는 그를 발견한 논주인이 그의 사정이야기를 듣고 아침밥을 먹여준 후 인근 이발소에 취직시켜줬다.
 
이발소에서 먹고 자며 6개월 정도 열심히 하자 이발소 주인은 "착실하게 잘한다"며 영화구경을 시켜줬다. 영화구경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3년 동안 식물인간이 됐다.
 
다행히도 마음씨 좋은 버스 안내양이 병원비를 부담해줬다. 돌봐줄 보호자가 없는 그의 머리는 발목까지 자랐고 온몸에 이가 기어다녔다. 3년 동안 연락이 두절되자 부모님은 죽은 줄 알고 면사무소에 사망신고를 냈다. 한 숨을 쉬던 그가 말을 계속했다.
 
"죽으란 팔자는 아닌가 봐요. 3년이 지난 어느날 의식이 돌아와 집에 전보를 쳤더니 부모님께서 찾아오셨어요. 울고불고 난리가 났죠. 다행히 좋은 안내양을 만났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왼쪽 팔다리가 부서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병수발을 받으며 6년만에 회복이 됐다. 그의 다리에는 철심이 60개 박혀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다시 구미로 가 코오롱 하청회사에 입사했지만 철심과 살이 잘 붙지 않아 고름이 나기 시작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먹고 살아야하고 아픈 몸을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약 살돈이 필요한 그는 동네에서 경운기를 갖고 있는 분에게 부탁해 곡성장까지 나무를 운반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경운기에 나무를 가득 싣고 곡성장에 가면 1만 5천원을 받았다. 그 중 1만원은 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5천원은 자신의 몫이었다.
 
당시는 산림감독관들의 감시감독이 심한 때라 나무를 밤에만 운반했다. 남들은 하루에 한번 실어낼 때 밤새 3번씩 실어 나르던 그는 산림감독관의 감시감독이 싫어 차라리 산림감독관에게 걸려 감옥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감독관에게 걸릴 작정을 하고 어느 날 아침 9시에 출발해 면사무소 앞에서 나뭇짐을 풀었다. 화가 난 면장 앞으로 불려간 그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나 이런 몸으로 살길이 없으니 차라리 나를 감옥에 보내주시오"
"어떻게 도와줄까요?"
"영세민 카드를 만들어주세요"
 
 
딱한 사정을 들은 면장이 만원을 주고 지서장은 돼지고기 한근과 5천원을 줬다. 그는 그 돈을 들고 조선대학교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담당의사는 다리를 살릴 수 없다며 절단하자고 말했다. 절망한 그는 담당의사가 돌아가려는 순간 옷자락을 붙잡고 사정했다.
 
"다리를 절단하지 말고 차라리 수련의들한테 내 다리를 실험용으로 수술해서 성공하면 좋고 안 되면 다리를 잘라주세요"
 
다행히 수술이 잘된 그는 1년 만에 퇴원했다. 집에 돌아온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왔다.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통지서가 날아왔다. 광주로 간 그는 신체검사 전날 전라남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여관에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곳에 온 많은 젊은이들 중 군대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담배갑 속에 들어있는 은박지를 태워 마시는 걸 봤다. 은박지를 마시면 엑스레이에 이상증세가 나타나 군면제가 되기 때문이다.
 
▲ 차금옥씨가 기르는 멧돼지 농장 모습 ⓒ 오문수
 
차금옥씨 생각은 달랐다. 구미의 회사에 근무했을 때 군제대자와 미필자의 대우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몸 상태를 본 군의관은 "야! XXX야! 여기가 어디라고 신체검사 받으러 왔냐!"며 정강이를 걷어찼다. 군입대하고 싶은 그가 다시 뒤로 돌아가 세 번이나 줄을 서자 군의관은 방위병 근무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오곡지서에서 방위병 근무하던 그는 또 다시 발병해 치료를 받은 후 특명제대를 했다. 세 번에 걸친 수술로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그가 말했다.
 
 
"군번도 받고 미필자보다 낫잖아요?"
"내가 살 수만 있다면 평생 사회봉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다시 구미로 간 그는 택시운전을 하며 새마을 교통봉사대회원으로 일했다. 그는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등의 교통법규 지키기 계도 활동을 하며 노약자, 장애인, 소년소녀가장이 자신의 차를 타면 대한민국 어디까지 무료로 태워줬다. 한 번의 교통사고로 평생 장애를 입은 그는 교통신호위반 행위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결과는 그에게 '인간신호등'이란 별명이 붙었다.
 
어느 날 그는 구미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교통사고가 사망한 학생을 목격한 후 밤 10시부터 11시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 이것을 본 학부모와 시민들의 제보로 신호등이 설치됐고 구미시 1등 시민으로 수많은 표창을 받았다.
 
김천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라는 주제 강의도 했다. 그는 2000년도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똑같은 내용의 강의와 섬진강지킴이 활동을 하고 산다. 곡성군 장애인협회 수석이사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가 말을 계속했다.
 
▲ 차금옥씨 집 뒤 계곡에는 수영장까지 만들어 놨다 ⓒ 오문수
 
"곡성인구 3만명 중 장애인인 3368명이니 1/10이 장애인인 셈이죠. 이들을 위한 복지혜택이 주어졌으면 해요. 제 고향에도 버섯재배사 같은 걸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노인들이 먹고 살 수 있어요"
 
어릴 적 개울물에 들어가 돌만 들춰내면 가재, 징검살이 등 1급수에만 사는 고기들이 많았는데 오염돼 보이지 않는다고 한 그는 오폐수정화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원룸식 펜션을 운영하고 선친이 물려준 3500평 산에서 멧돼지와, 토종닭, 개, 염소를 기르고 산다. 가을이 되면 대봉을 수확하지만 값이 형편없다고 말한 그는 시골에서도 살기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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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