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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강제노무자들은 이름과 성씨까지 바꿨다. 사진은 일본 히다치 광산 <노무문 제3집> 내용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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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징집돼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노무자들은 창씨개명을 두 번이나 당했다는 문서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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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제공한 김문길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는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후 20여 년간 일본에서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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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문길 교수가 보내온 자료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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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치(內鮮一致)'란 미명하에 조선민족의 전통사상을 없애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창씨개명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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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설씨 등 몇 종친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거절했다. 당시 총독부의 조사에 의하면 창씨개명을 적게 한 지역은 경상남도 기장군 고촌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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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끌려온 사람들은 성과 이름까지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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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제통치하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 노무자들은 창씨개명을 두 번이나 당했다. 소화 17년(1942년) 히다치광산에서 기록한 '반도노동자는 말한다'라는 <노무문 제3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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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년동안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는 김문길 교수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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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과 1916년 (2월, 3월, 8월) 일본에 왔던 징용자들은 전남, 충남, 경성 노동자들이었다. 일본은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조선에서 창씨 개명된 이름을 버리고 다시 이름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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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창씨 개명된 이름은 성만 일본명이지 자기 이름을 사용했지만 일본에 온 조선 노동자는 개인 이름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전남, 충남에서 온 사람은 모두가 단체명만 쓰도록 하고 '이치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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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에서 온 징용자들은 '아이도 이치로(愛宕一郞)'라 개명했다. 충남에서 온 징용자들은 '나스 이치로(那須一郞)'로 정해줬다. 붙잡혀온 지역민은 단체명을 받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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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히다치 광업소 문서이지만 다른 광업소로 끌려온 당시 조선 징용노무자들의 상황도 똑같았다. '이치로(一郞)'란 이름의 '랑(郞)'은 천황에게 용기 있는 인물, 충성한 인물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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