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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은 창씨 개명 두 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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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南區) # 김문길 # 조선인 강제 징용자
【소식】
(2018.05.02. 20:21) 
◈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은 창씨 개명 두 번 당했다"
김문길 교수 "'이치로'란 이름 붙은 단체명으로 바꾸게 해"
▲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강제노무자들은 이름과 성씨까지 바꿨다. 사진은 일본 히다치 광산 <노무문 제3집> 내용 ⓒ 오문수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징집돼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노무자들은 창씨개명을 두 번이나 당했다는 문서가 발견됐다.
 
자료를 제공한 김문길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는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후 20여 년간 일본에서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다.
 
다음은 김문길 교수가 보내온 자료 내용이다.
 
1939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치(內鮮一致)'란 미명하에 조선민족의 전통사상을 없애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창씨개명을 실시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설씨 등 몇 종친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거절했다. 당시 총독부의 조사에 의하면 창씨개명을 적게 한 지역은 경상남도 기장군 고촌부락이었다.
 
"일본에 끌려온 사람들은 성과 이름까지 바꿨다"
 
그러나 일제통치하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 노무자들은 창씨개명을 두 번이나 당했다. 소화 17년(1942년) 히다치광산에서 기록한 '반도노동자는 말한다'라는 <노무문 제3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20여년동안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는 김문길 교수 ⓒ 오문수
 
1915년과 1916년 (2월, 3월, 8월) 일본에 왔던 징용자들은 전남, 충남, 경성 노동자들이었다. 일본은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조선에서 창씨 개명된 이름을 버리고 다시 이름을 지어주었다.
 
조선에서 창씨 개명된 이름은 성만 일본명이지 자기 이름을 사용했지만 일본에 온 조선 노동자는 개인 이름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전남, 충남에서 온 사람은 모두가 단체명만 쓰도록 하고 '이치로'라고 했다.
 
전남에서 온 징용자들은 '아이도 이치로(愛宕一郞)'라 개명했다. 충남에서 온 징용자들은 '나스 이치로(那須一郞)'로 정해줬다. 붙잡혀온 지역민은 단체명을 받아 사용했다.
 
이 문서는 히다치 광업소 문서이지만 다른 광업소로 끌려온 당시 조선 징용노무자들의 상황도 똑같았다. '이치로(一郞)'란 이름의 '랑(郞)'은 천황에게 용기 있는 인물, 충성한 인물이란 뜻이다.
남구(南區) # 김문길 # 조선인 강제 징용자
【소식】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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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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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