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딩현 양허루(陽和樓) 복원 답사기-2
량스청이 방문한 문묘는 명나라 홍무(洪武) 7년(1374)에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건축 양식으로는 당나라 말기나 송나라로 본다. 현재 대성전은 넓이는 5칸, 깊이는 3칸, 홑처마 휴산(杪山)으로 기둥머리(柱頭)는 쌍투(雙偸)로 깔아 비우고, 두공(斗雄)이 웅장하여 보간이 없다. 문묘 안에는 중수(重修)를 기록한 비석이 남아있다.
1966년 8월 18일 베이징에 100만 명의 홍위병들이 모여들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지지했다. 홍위병은 몇 달간 지방을 돌며 공자의 초상과 사찰의 불상을 파괴했다. 이때 정딩현의 성대(城臺)와 관제묘도 크게 훼손되어, 주민들은 오랜 기간 아픈 기억을 갖고 살았다. 관제묘는 2016년에 복원되었다.
▲ 관제묘(關帝廟)와 철사자
1947년 9월 국민당 군대의 반격을 막기 위해 양허루 본관을 철거했다. 성대와 관제묘가 문화혁명 기간에 파괴되어 고대 도시는 아주 황폐해졌다. 정딩현은 1986년 임제사 징령탑, 1988년 개원사 종루, 1994년 광혜사 화탑, 2005년 개원사(開元寺) 수미탑(須彌塔)을 복원했다. 개원사 수미탑은 동위(東魏, 534~550) 때 세어진 9층 방형(方形) 벽돌탑으로 높이가 48m이며, 당나라 때 복원되어 당나라 탑의 특징이 남아있다.
▲ 개원사(開元寺) 수미탑(須彌塔)(사진:新華社)
2010년 정딩현 당정협회의에서 9명의 정협위원들의 양허루(陽和樓)의 재건을 제안하는 안건을 제출했다. 2016년에 양허루를 복원하고, 융흥사 등 사찰 복원과 아울러 정딩박물관(正定博物館), 성벽박물관(城牆博物館), 원곡박물관(元曲博物館), 비석 발굴, 노거수 보호 등을 건설하여 역사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17년 1월, '정딩현 正定新區 종합계획 및 고대 도시 풍모 복원 및 개선 계획 및 시행'이 전면 시행 단계에 진입했다. 2017년부터 정딩현은 13개의 공장을 이전하고 문화재 주변의 주택과 고대 도시의 풍경에 부합하지 않는 불법 건물은 모두 철거를 단행했다. 1,750가구의 이주를 완료했다. 남문 일대 500채 가옥을 철거하고 주차장과 녹지로 조성했다. 옛 성을 복원하기 위해 예전에 옮겼던 많은 벽돌을 주민들이 다시 날라 5.2km의 성벽을 보수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남쪽 성벽과 해자와 같은 옛 성벽의 상징적인 건물들은 LED로 화려하게 조명하였다.
▲ 정딩박물관(正定博物館) 문화재 (사진:人民网)
양허루에는 민속공연, 불꽃놀이, 별빛문화축제 등 볼거리를 개최해 관광객이 찾아오고, 주민들은 평생 살아오고 지켜온 고장의 문화유물을 통해 문화적 자신감을 가지고 관광객을 자랑스럽게 맞이한다. 정딩현 관리들은 시진핑 총서기가 말한 “문화재 보호 성과가 인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도록 하라.”는 요구를 성실히 이행했다.
정딩현은 고대 도시 보호와 도시 건설 및 대중의 이익 보호의 관계를 조정하고, 깊은 문화적 유산과 인민의 행복한 도시 건설을 위해 노력해 개방형 공공녹지를 형성하고, 도시 녹화 적용률을 40.26%로 높였다.
관광객들은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나무와 숲이 많아 공기가 신선하고, 매일 물차가 도로에 물을 뿌려 먼지가 없고, 소독과 방제는 일상화되고, 화장실에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 자동차의 소음도 없는 것을 경험하고 크게 만족했다. 정딩현의 면모와 명승지 주변 환경의 개선으로 코로나가 발생 전 2019년에는 1,496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고대 시인 묵객들이 “천년의 옛 모습과 북쪽 웅진의 역사적 풍모가 화려하게 나타나는 양허루에 올라 탑을 바라보며, 향수를 기억하라!”라고 한 말이 이제 당당하게 현실이 되었다.
▲ 양허루(陽和樓) 계단(고고학 발굴조사 사진)
정딩현의 관리와 주민들이 힘을 합쳐 복원한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고대 도시를 이틀간 방문하여 「九樓四塔八寺」를 즐겁고 유쾌하게 구경하였다. (끝)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