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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룡(公孫龍) 조(趙) 한단시(邯鄲市) 허베이성([河北]省) # 광푸 고성 # 마오쑤이 # 모수 # 모수자천 # 평원군
【문화】
(2024.02.22. 17:37) 
◈ 평원군, 낭중지추 주인공 마오쑤이와 사군자 ‘식솔정치’
모수자천(毛遂自薦) 답사
광푸고성 남문 5리 떨어진 곳에는 고사성어 모수자천(毛遂自薦)으로 유명한 마오쑤이(毛遂)의 묘가 있다. 마오쑤이가 살던 시기는 지금부터 22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오쑤이가 어떤 인물이기에 낭중지추(囊中之錐), 탈영이출(脱颖而出), 이 이엔 지우 띠잉(一言九鼎)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을가? 이천 년이 지났는데도 마오쑤이의 고사를 인용하는지 몹시 궁금해 문헌을 찾아보았다.
모수자천(毛遂自薦) 답사
 
광푸고성 남문 5리 떨어진 곳에는 고사성어 모수자천(毛遂自薦)으로 유명한 마오쑤이(毛遂)의 묘가 있다. 마오쑤이가 살던 시기는 지금부터 22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오쑤이가 어떤 인물이기에 낭중지추(囊中之錐), 탈영이출(脱颖而出), 이 이엔 지우 띠잉(一言九鼎)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을가? 이천 년이 지났는데도 마오쑤이의 고사를 인용하는지 몹시 궁금해 문헌을 찾아보았다. 【출처】 毛遂自荐、脱颖而出、一言九鼎这三个成语都出自《史记•平原君虞卿列传》。
 
 
▲ 전국시대 사군자(사진:Sohu, 搜狐)
 
 
전국시대 조나라에 평원군(平原君, ?~ 251년)이란 멋진 공자가 있었다. 평원군은 조나라 군주무령후(武靈王, 기원전 340~295)의 아들로 혜문왕(惠文王, ? ~ 기원전 266)의 동생이다. 평원군은 인재를 좋아해 그들과 대화하며 사람들의 빈부를 차별하지 않고 사귀었다. 평원군을 좋아하는 3천 명이나 되는 문사들은 자랑스럽게 평원군의 식객을 자처하며 문턱이 달아빠질 정도로 평원군의 집을 드나들었다.
 
평원군은 식객들이 좋은 의견을 제출하면 친형인 혜문왕과 조카 효성왕에게 아이디어를 전달해 국정에 빠르게 반영시켰다. 평원군의 식솔 중에서 공손룡(公孫龍, 기원전 325~250)과 추연(鄒衍, 기원전 305~240), 마오쑤이(毛遂)가 유명하다.
 
전국시대 사군자가 살았던 시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사군자는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 ~ 기원전 278/279년),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 ? ~ 기원전 243/244년),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 ? ~ 기원전 238년)과 조나라의 평원군이다. 춘신군은 재상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왕족으로 모두 정치가들이다.
 
평원군의 성은 조(趙), 이름은 승(勝)으로, 형제 가운데 가장 현명했다. 그는 혜문왕과 효성왕(孝成王, ?~기원전 245) 때 세 차례에 걸쳐 재상을 하였으며, 동무성(東武城)을 봉지로 받았다. 평원군은 기원전 298년에 재상이 되었다. 그에게는 수천 명의 식객이 있었다.
 
 
▲ 전국시대 지도(사진: 나무위키)
 
 
식객 중에는 명가(名家)의 주요 사상가인 공손룡과 음양오행설을 제창한 추연도 있었다. 공손룡은 자신이 어떤 설을 택하더라도 토론자들이 그 설을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견백(堅白)의 논리에 뛰어났던 인물이다. 하루는 평원군이 공손룡과 추연에게 ‘흰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라는 설로 토론하게 하였다.
 
추연은 공손룡의 변론을 듣고 이치가 아닌 말을 이치에 맞는 것처럼 교묘히 꾸며 서로 다투게 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하면서 토론을 마무리하였다. 그들의 토론을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가 추연의 말에 동의하였다. 평원군은 이렇게 이름난 이들이 식객으로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인재를 거느리고 있었다.
 
기원전 270년 무렵 조나라는 권세가들이나 부자들이 세금을 바치려 하지 않아 일반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경제가 점점 힘들어졌다. 조세를 거둬들이는 관리인 조사(趙奢)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세가인 평원군의 세금을 먼저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세금을 받아내고자 결심한 조사(趙奢)는 이를 방해하는 평원군의 하인 9명을 죽였다. 당시 혜문왕의 동생으로 그 어떠한 귀족보다 강한 권력을 지닌 평원군에게 이와 같은 행위를 한 관리는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조사는 화난 평원군에게 솔선하여 세금을 바치면 다른 귀족들도 따라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안정되고 강성해지므로 결국 평원군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계속 설득하였다. 이 말을 들은 평원군은 깨닫는 바가 있어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까지 내며 조사를 특별히 대하였다. 평원군의 추천으로 조사가 조나라 전체의 부세(賦稅)를 다스리게 되어 백성은 물론 국고가 풍족하게 되었다.
 
조나라는 진나라와 2년간 ‘장평(長平) 전투’를 하였다. 조사의 아들인 조괄(趙括)이 이끈 군대가 진나라 백기(白起) 장군에게 처참하게 패하자, 기원전 258년 진나라는 조나라를 아예 멸망시키려고 조나라의 도읍지인 한단(邯鄲)을 공격하였다.
 
 
▲ 한단(邯鄲)
 
 
조나라 효성왕 9년(전 257년), 서쪽에 있던 강력한 군대를 가진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동쪽의 여러 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나라의 도읍지인 한단을 포위 공격하자, 평원군은 문무를 겸비한 문객 20명을 초나라로 보내 초왕에게 합종 항진할 것을 요청하려고 하였다.
 
평원군은 식객 중에서 말을 잘하는 문신 19명을 찾았지만, 남은 자리 1명을 찾지 못했다. 이때 마오쑤이(毛遂)가 나서서 “송곳을 자루에 넣으면 날카로운 부분이 드러납니다.”라고 하며 자신을 추천했다. 그러자 평원군은 “왜 당신에 대해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까요?”라며 반문했다. 평원군은 마오쑤이에게 “어진 선비는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살짝이라도 보이는데, 왜 자네는 나의 식솔로 삼 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껏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무슨 재주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마오쑤이(毛遂)는 평원군에게 “저는 오늘에서 처음 주머니 속에 넣어졌을 뿐입니다. 만약 주군이 저를 일찍 주머니 속에 넣어 주셨다면 제가 송곳 끝만 보이겠습니까. 송곳 자루도 모두 내보였을 겁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마오쑤이(毛遂)의 평범한 말에 평원군은 마음에 들어 함께 초나라로 길을 떠났다. 이것이 고사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유래다.
 
 
▲ 초나라 고열왕(楚考烈王)(사진:淮南日報)
 
 
초 고열왕(楚考烈王, ?~기원전 238년)은 미(芈)씨, 웅(熊)씨, 이름은 완(完)이다. 경양왕의 아들로 초나라 경양왕 27년(전 272년)애 진나라로 볼모가 되었다가 경양왕 36년(전 263년)초 경양왕이 위독해지자, 웅원(熊元) 황헐의 도움으로 초나라로 도망쳐 왕위를 계승해 제39대 왕이 되었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초 고열왕을 알현하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초나라 왕은 합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수는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서며 “합종의 이해는 벌써 끝났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말할 수 있습니까?" 초나라 왕이 노하여 소리쳤다. “내가 평원군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당신은 왜 나왔습니까?” 모수는 칼을 들고 앞으로 더 나아가 왕을 위협하며 진나라가 초나라 왕의 조상들을 욕보였음에도 원한을 갚으려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대왕께서 저를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하지만 초나라에 사람이 많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열 걸음 안에 대왕의 목숨은 제 손에 있습니다.
 
초나라의 강대함은 천하에 적수가 없습니다. 진(秦)나라 백기(白起) 장군이 초나라를 함락시켜 이릉을 불태우고, 초나라 조상을 모욕했습니다. 이것은 초나라의 큰 원수입니다. 조나라도 수치심을 느끼지만, 합종의 목적은 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조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초나라는 5천여 리의 땅과 백만 명의 병사로 패권 할 수 있는 대국입니다.”라고 마오쑤이는 힘주어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고열왕(考烈王)은 마오쑤이의 말에 수긍하고 합종 제의를 받아들였다. 조나라는 초나라와 동맹을 맺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 린펀시 汾城古镇 성황묘(사진:Sohu, 搜狐)
 
 
초나라 고열왕 6년(전 257년), 한단 전투에서 조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초나라 왕은 춘신군과 경양(景陽)에게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를 구하라고 명령했다. 진나라 린펀에 있는 분성(汾城)을 공격하여 진군을 대파했다. 【출처】楚考烈王六年(前257年),邯郸之战,赵国向楚国求救。楚考烈王命春申君、景阳率兵救赵,接着又救魏新中、进攻秦国汾城,大破秦军。
 
이때 초나라에서는 춘신군이, 위나라에서는 신릉군이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구하러 왔다. 그러나 구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진나라 군대가 빠른 속도로 한단을 포위하여 항복할 지경에 놓였다. 평원군은 한단(邯鄲)의 전사(傳舍) 관리자의 아들인 이동(李同)을 통해 한단(邯鄲)의 백성들이 땔감이 없어 죽은 자의 뼈를 모아 땔감으로 삼고, 식량이 없어 자식들을 서로 바꾸어 잡아먹으며 버티고 있는 상황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라가 망하면 포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평원군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어 군사들의 배를 채워주고, 부인을 제외한 첩들에게 군대의 일을 돕도록 하였다. 그 결과 죽음을 각오한 3천 명의 새로운 군사는 이동(李同)의 군사들과 함께 지원군이 도착하기를 바라며 진나라와 싸우며 오래 버텨 한단을 지켜냈다.
 
조나라는 이후 장평 전투에서 참패하여 군사력이 많이 쇠퇴해져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평원군은 전국시대 사군자처럼 인재를 우대하고 선비들을 공경하여 명성을 떨친 인물이지만, 7년 후 기원전 251년에 삶을 마감하였다.
 
 
▲ 홍산암 높이 11.09m, 무게 142톤, 마오쑤이(毛遂) 동상(사진:Sohu, 搜狐)
 
 
평원군은 귀국하면서 “내가 앞으로 선비의 관상을 보지 않겠다. 마오쑤이는 단지 혀로 초 왕을 상대했는데, 그 힘은 백만 명의 군사보다 더 힘이 세고 강력했다.”라고 말했다. 평원군은 마오쑤이(毛遂)를 상빈(上賓, 上客)으로 모시며 곡량(曲梁)으로 봉했다.
 
평원군은 많은 식객을 상대하다 보니 군자로서 약속하고도 못 지킨 적이 있었다. 하루는 평원군의 얼굴이 반반한 첩이 다리를 저는 식객을 보고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식객은 화가 단단히 나서 평원군을 찾아가 첩의 목을 내놓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평원군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첩을 죽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한참 후에 평원군이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아주 천대한다는 거친 소문이 조나라에 돌았다. 며칠 후 식객들 절반이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다.
 
평원군은 그때 자기가 한 약속을 기억하고 심각성을 깨달았다. 평원군은 어쩔 수 없이 첩을 죽여 그 식객과의 약속을 지켰다. 소문을 들은 식객들은 평원군의 집을 옛날처럼 다시 드나들었다. 평원군은 왕족으로 오랫동안 재상을 역임하면서 주변에 현명한 자들의 간언(諫言)을 듣고 많이 깨달아 자신은 물론 나라를 지켰다.
 
최근 안후이성에서 2000년 전의 고대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왕릉은 도굴꾼들에 의해 여러 차례 도굴되었지만, 2022년 8월 발굴에 들어갔다. 고고학자들은 평생을 진나라와 싸운 초나라 고열왕(楚考烈王, 熊完, ?~기원전 238년)의 왕릉이 유력하다고 주장한다.
 
 
▲ 호좌봉조칠목고가(虎座凤鸟漆木鼓架)(사진:中華遺産)
 
 
호좌봉조칠목고가(虎座凤鸟漆木鼓架)는 초나라 고유 악기로 다른 묘에서 출토된 같은 기물보다 훨씬 크다. 위의 사진은 호랑이 받침대로 복원도에 따르면 맹호가 봉황새의 발밑에 엎드려 있고, 봉황새는 고개를 들고 우뚝 서 있다. 큰 북은 두 봉황새 사이에 매달려 있다. 봉황새는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으며 위엄과 기세가 대단해 이천 년 전 초나라 사람들의 상상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까지 감춰졌던 초나라 문화(文化)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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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룡(公孫龍) 조(趙) 한단시(邯鄲市) 허베이성([河北]省) # 광푸 고성 # 마오쑤이 # 모수 # 모수자천 # 평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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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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