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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록 (壬辰錄) ◈
◇ 권지이(卷之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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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록 (壬辰錄)
2
권지이(卷之二)
 
 
 
3
차설, 순신이 중장을 호령하여 좌우로 내달아 급히 치니 왜적이 대패하여 징을 울리며 남녘을 바라고 달아나거늘 원균의 비장 이영남이 따라가 왜선 일 척과 왜병 오십 인을 잡아들인데 왜병이 넋이 없어 감히 우러러보지 못하거늘 순신이 창검을 쥐고 왈,
 
4
“너희 중 혹 조선 사람이 있느냐 바로 고하라.”
 
5
하니 한 사람이 고왈,
 
6
“소인은 거제(巨濟)사람 김대용이러니 적에게 잡혀 가 적군에 충수(充數)하였삽더니 오늘에야 우리나라에 돌아오니 부모를 만남 같도소이다.”
 
7
하고 울기를 마지아니하거늘 순신이 문왈,
 
8
“네 조선 사람으로 적군에 들었으니 반드시 조석의 기미를 알 것이니 자세히 아뢰라.”
 
9
그 사람이 왈,
 
10
“왜선 사백 척은 장화포에 들어 숨고 또 백여 척은 안골포(安骨浦)에서 왜장 심안둔이 영거하여 서해로 가고자 하나 장군이 여기 있으므로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아직 섬에 올라 군막을 치고 있으니 장군은 빨리 쳐 공을 이루소서.”
 
11
하거늘 순신이 무사를 호령하여 왜적을 다 죽이고 즉시 오백 전선을 조발하여 밤들기를 기다려 가만히 장화포로 가며 또 정병 백여 기로 아장을 주어 육로(陸路)로 들어가 우리 전선이 장화포 어귀에 이름을 보고 일시에 군막에 불을 놓고 앞을 엄습하라 하고 수다 전선을 재촉하여 나아갈새 장화포 어귀에 다다라는 문득 섬에서 불이 일어나며 왜병이 전선을 타고 장화포를 지나 안골포로 가거늘 순신이 전선을 몰아가며 짓치고 육로로 들어간 군마는 도적의 군막을 불지르고 마주치니 왜병이 갈 곳이 없음을 보고 물에 빠지며 혹 불에도 타서 죽으며 사면으로 이산(離散)하거늘 순신이 왜선 백여 척을 파하고 인하여 안골포로 향하여 들어가니 왜장 심안둔이 장화포가 다 파하고 순신의 전선이 안골포로 들어온다 함을 듣고 대경하여 즉시 전선을 거느려 안골포를 버리고 남해 안도(安島)섬으로 달아나니라.
 
12
순신이 전선을 재촉하여 나아가니 왜병이 간데없거늘 이억기 원균으로 더불어 한산도에 들어와 승전한 첩서(捷書)를 보내고 전선을 무수히 지으며 군기를 수정하여 주야로 왜적 파할 의논을 마지아니하더라.
 
 
13
각설, 조원익은 창원 사람이니 일찍 급제하여 벼슬하다가 나라에 득죄하여 평안도 강동(江東) 땅에 정배되니 원익이 강동에 이르러는 의탁할 곳이 없어 학동(學童) 삼십여 인을 데리고 이십여 년을 전학하였으되 뜻이 높고 행실이 출중하므로 타읍 선비들이 아름다운 이름을 듣고 구름 모이듯하더니 임진년에 이르러는 왜적이 조선을 쳐 경성을 범하여 상이 종사를 버리시고 평양에 유하신다 하거늘 원익이 생각하되,
 
14
‘이런 난세를 당하여 몸을 한가히 초야에 묻혀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리요.’
 
15
하고 탄식 왈,
 
16
“내 비록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자 하나 빈궁이 태심하여 단독 일신이 사고(四顧) 친척에 의지할 곳이 없으니 무엇을 하리요.”
 
17
하고 슬피 울기를 마지아니하니 모든 선비 그 마음을 감격하지 않을 이 없더라. 원익이 비록 기질이 잔약(孱弱)하고 무예 갖지 못하나 충의지심(忠義之心)과 정열한 행사로 인심이 감동하여 원익을 좇아 일어나는 자 이백여 인이어늘 원익이 다 거느리고 상원 고을에 들어가 군기를 내어 가지고 삭주(朔州)로 향하더니 홀연 대풍을 만나 사람이 붙어 섰지 못하거늘 잠깐 산곡에 들어 쉬더니 이경(二更)은 하여서 산중서 한 사람이 웨여 왈,
 
18
“예서 남으로 두어 고개를 넘어가면 큰 여염(閭閻)이 있고 그 고을에 왜적 백여 명이 둔취하였으니 조 장군은 이때를 타 들어가 도적을 파치 아니하고 어찌 공을 세우리요.”
 
19
하거늘 원익이 군사를 명하여 그 사람을 불러오라 하니 군사가 나아가 본즉 사람이 없는지라. 돌아와 그대로 고한대 원익이 탄왈,
 
20
“이는 반드시 신령이 길을 가르침이로다.”
 
21
하고 즉시 군사를 거느려 두어 고개를 넘어가니 바람이 크게 불거늘 그 마을 앞에 가 불을 놓으며 급히 고함치니 왜적이 대경하여 급히 내달아 보니 불꽃이 하늘에 닿았고 사면에 함성이 진동하거늘 창황히 나와 불을 무릅쓰고 사면으로 달아나는지라. 원익이 군사를 재촉하며 따라 어지러이 짓치니 왜병이 무수히 죽고 남은 도적은 겨우 목숨을 도망하여 달아나니라. 원익이 도적을 파하고 그 마을에 들어가 도적의 노략한 양식이 삼십여 석이오 우마계견(牛馬鷄犬)이 많이 있거늘 그 쌀로 밥짓고 그 고기를 삶아 호군하고 영원(寧遠)으로 향하니라.
 
 
 
 

1. 의병장 정문부(鄭文孚)

 
23
각설, 왜장 청정이 함경도에 들어가 함흥(咸興)을 웅거하고 이십칠관 수령을 다 제 앞으로 출석하며 각 읍 창곡(倉穀)을 수운하여 저의 근본을 삼으니 함경 일도는 전부 저희 땅이 되었는지라,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이때에 북병사(北評使) 정문부(鄭文孚)와 회계첨사 고경민(高敬民)과 갑산부사 이유익이 본군이 함몰하매 피난하여 백두산(白頭山)에 숨었더니 문부가 나라를 위하여 왜적을 치고자 하나 단신이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주야 자탄하며 생각하되,
 
24
‘산중에 피난한 자 중 혹 사의(死義)를 아는 자 있으면 함께 일을 도모하리라.’
 
25
하고 백두산을 곳곳이 심방하여 다니더니 한곳에 다다르니 백여 명 사람이 모여 소를 잡고 술을 많이 장만하여 잔치를 하거늘 문부가 문을 열고 들어가 좌중에 예하고 가로되,
 
26
“내 이제 말을 냄이 불안하거니와 이 같은 난세(亂世)를 당하여 음주연락(飮酒宴樂)은 무슨 일인고. 방금 천하가 대란하여 임금이 종사를 버리시고 의주로 피난하사 일일이 고국을 생각하시며 통곡하시니 조선은 예의지국이어늘 일조에 왜노가 창궐하여 도성(都城)을 취하여 웅거하며 백성을 잔해(殘害)하여 인심이 조현하매 회복할 기약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나는 북병사 정문부러니 매양 국가를 위하여 도적을 쳐 부끄러움을 씻고자 하나 다만 충의있는 사람을 만날까 하여 다니더니 천행으로 오늘날 그대 등을 만나니 신수와 기골이 장건할 뿐 아니라 반드시 충절(忠節)이 있을지라. 어찌 무단히 산곡에 둔취(屯聚)하여 백성의 재물만 노략하여 먹고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적화를 면치 못하리니 그대 등은 모름지기 재삼 생각하라.”
 
27
그 중 고경인이라 하는 사람이 자칭 의병장(義兵將)이라 하고 각군을 모아 백두산에 들어가 밤으로 행하여 노략할새 좋은 술과 고기를 얻어 매일 취하여 먹고 있더니 이 날 문부의 말을 듣고 마음에 무록하여 능히 대답지 못하거늘 문부가 다시 감언이어(甘言利語)로,
 
28
“그대들은 이제 날로 더불어 한가지로 왜적을 쳐 뜻을 이루면 아름다운 이름이 동국에 현달할 것이요, 불행하여 이기지 못하나 구천지하(九泉地下)에 충절의 사람이 되어 부끄럽지 아니하리니 다시금 생각하라.”
 
29
라고 이르자 고경인 등 백여 인이 일시에 절하고 항복하여 왈,
 
30
“장군의 말씀이 사리에 마땅하온지라, 어찌 순종치 아니하리오.”
 
31
하거늘 문부 즉시 고경인을 데리고 비아진에 들어가 군기를 수정할새 고경인 등이 각각 피난군을 모으니 오백여 명이라, 이 날 돝을 잡고 제문 지어 하늘께 제하니 그 글에 하였으되,
 
32
조선국 함경도 북병사 정문부 등은 삼가 일월성신(日月星辰)께 고하옵나니 국운이 불행하여 남방 오랑캐 방자히 들어와 조선 예의지국을 일조에 병탄코자 하오니 식록신민(食祿臣民)이 어찌 분울(憤鬱)치 아니리이까. 이제 충의를 들어 국가의 위태함을 붙들고저 하옵나니 일월성신과 후토신령(后土神靈)은 국가의 형세를 감동하여 전필승공필취(戰必勝功必取)하게 도우소서.
 
33
하였더라.
 
 
34
제사 지내기를 마치매 부윤(府尹)의 벼슬하던 사람 김익대 집에 내려와 명주 열닷 필을 내어 기치(旗幟)를 만들어 세우고 큰 기에 쓰되 ‘의병장 정문부(義兵將鄭文孚)’라 하고 군사의 전립(戰笠) 위에 충성 충(忠)자를 쓰며 군기를 정제하여 먼저 회령에 웅거한 왜적을 치려 할새 기치와 창검을 세우고 쟁북을 울리며 군사를 재촉하여 회령으로 나아가니 이때 회령 관속이 왜적에게 곤하여 매양 생각하되,
 
35
‘언제 본국병이 이르러 도적을 칠꼬.’
 
36
하며 대한(大旱)에 비 바라듯 하였더니 이 날 정문부의 군사가 이름을 보고 왜장 경감로에게 고왈,
 
37
“조선의 병 십만이 성하에 이르렀다.”
 
38
하거늘 경감로가 미처 군사를 모으지 못하고 필마로 황망히 나오더니 백성이 다투어 감로를 쏘아 죽이고 문부를 맞아 들어가니 문부가 회령을 회복하고 각 관에 발문하니 그 끝에 하였으되,
 
 
39
의병장 정문부는 십만 충의지사(忠義之士)를 발하여 함경 일도에 웅거한 왜병을 소멸하려 할새 동심육력(同心戮力) 하여 도성의 위태로움을 붙들고 수하에 든 백성을 건지고자 하나니 격문(檄文) 이르는 날에 기미를 살펴 서로 접응하라.
 
 
40
하였더라. 격문을 발한 후 창곡(倉穀)을 내어 기민(飢民)을 진휼(賑恤)하니 원근 백성이며 이산한 군민들이 달려오는 자 부지기수라. 열읍 청북(淸北) 등처 군민이 일시에 문부를 응하여 기군하고 회계첨사 고명이 가만히 본진 군사를 거두어 회령으로 오더니 경성 고을에 들어가 국경인(鞠景仁)을 버히고 주야로 행하여 홍원으로 도래하니 군사 만여 명이요 갑산부사 성일이 또한 갑병 천여 명을 거느리고 함흥으로 향할새 낮이면 산상에 올라 일자진을 치고 주라(朱螺) 대평소(大平簫)를 불어 혼동케 하고 밤이면 횃불을 들어 사면에 벌여 세우고 쟁북을 울리며 웅장한 형세를 뵈더라.
 
41
이때에 청정이 사면으로 의병이 일어남을 보고 경겁하여 높은 대에 올라 적세를 살핀 후 돌아와 군사를 조련하더니 십여 일 후 정문부 조원익 등의 의병이 함께 이르니 삼만여 명이라. 함흥 십 리를 물려 진치고 밤들기를 기다릴새 문부가 장대(將臺)에 올라 제장을 보고 의논 왈,
 
42
“원익은 오천 군을 거느리고 먼저 동문을 범하라. 나는 후군이 되어 남문에 불을 놓고 치면 도적이 필연 서문으로 가리니 양문으로 급히 몰아 협공하면 일정 대평산(大平山)으로 달아날지라. 뉘 감히 대평에 매복하였다가 대공을 세울꼬.”
 
43
말이 마치지 못하여 한 장수 웨여 왈,
 
44
“소장이 원컨대 이 소임을 당하리이다.”
 
45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갑산부사 이유익이라. 즉시 삼천 군을 주어 보내고 삼경을 기다려 군사를 밥먹이고 사경에 행군하여 함흥성을 칠새 무수한 횃불을 세우고 크게 웨여 왈,
 
46
“적장 청정은 사면을 돌아보아 살기를 도모하라.”
 
47
하고 치기를 급히 하니 청정이 대경하여 황망히 말께 올라 장검을 들고 내달아 동문을 막더니 군사 급히 보하되,
 
48
“남문에 불이 일어나고 무수한 군사 벌써 성에 들어와 우리 군사를 다 죽인다.”
 
49
하거늘 청정이 더욱 놀라 남문을 구코자 하더니, 함흥 관속들이 가만히 군기에 불을 놓고 문 지킨 왜장을 죽이고 성문을 열어 의병을 맞으니 원익이 큰 칼을 들고 당선(當先)하여 왜병 백여 명을 죽이고 성에 들어가 좌우로 충돌하여 왜병을 삼 베듯 버히고 문부의 군사 또한 남문에 불을 놓고 일시에 들어가 어지러이 짓치니 청정이 죽도록 싸워 마침내 저당치 못할 줄 헤아리고 오직 서문이 고요하거늘 군사를 거느려 급히 서문을 나매 대평으로 달아나니 동방이 이미 밝았는지라. 청정이 대군을 거느리고 대평을 넘더니 문득 영상을 좇아 주라 소리 나며 대호 왈,
 
50
“의병장 이유익이 예와 기다린 지 오랜지라 궁진(窮盡)한 도적은 닫지 말라.”
 
51
하고 군사를 재촉하여 급히 쏘라 하니 청정이 군사를 태반이나 죽이고 죽도록 싸워 전면을 헤치고 패잔군을 거두워 안변(安邊)으로 들어가 웅거하니라.
 
 
 
 

2. 유정(惟政)의 승군(僧軍)

 
53
각설, 왜장 선강정이 삭령 고을을 함몰하고 이천(伊川)군수를 죽이며 인하여 김성(金城)을 치고 또 회양(淮陽)에 머물며 각처에 노략질하더니 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에 들어가 법당에 앉고 제승을 불러 호령 왈,
 
54
“너희 절에 있는 재물을 다 내어 놓으라. 만일 지완(遲緩)하면 즉시 버히리라.”
 
55
하니 절중들이 황겁하여 재물을 내어 월대(月臺)에 쌓으니 태산 같은지라. 혹 거역하는 중은 버히고 혹 동여매고 난타할 즈음에 한 중이 밖으로서 들어와 바로 부처께 예하고 돌아와 왜장을 향하여 읍하더니 선강정이 자세히 보니 그 중의 용모 비상하고 범의 눈이며 사자 뺨이요 수염 길이 자이 남으니 왜적이 좌우로 창검을 들리고 둘렀으되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거늘 비상한 중인 줄 알고 일어 답례하니 유정(惟政)왈,
 
56
“소승은 이 절에 있는 유정이라 하는 중이로소이다. 장군이 많이 험정에 괴로이 구치(驅馳)하사 폐암(弊庵)에 이르시되 소승이 먼저 맞지 못하오니 다만 죄를 기다리나이다.”
 
57
하니 소매에서 조그만 종과 차 넣은 병을 내어 표자(瓢子)에 부어 왜장에게 권하여 가로되,
 
58
“산중에 각별한 별미 없이 송백차(松柏茶)를 드리나니 고이히 여기지 말으소서. 산승 행장(行狀)이란 것이 오직 표자 일 개요 석간(石澗)에 흐르는 물과 산상의 백운(白雲)뿐이라. 구태여 가져가려 하시거든 마음대로 가져가라.”
 
59
하고 사기 태연하니 왜장이 그 말이 갈수록 안연(晏然)함을 보며 반드시 속승(俗僧)이 아니라 하여 가로되,
 
60
“그대는 진실로 범승이 아니로다.”
 
61
하고 유정을 청하여 데리고 안변 고을에 들어가 청정을 보고 가로되,
 
62
“차승은 범승(凡僧)이 아니라 머물러 두고 대사를 의논함이 좋을까 하노라.”
 
63
청정이 유정을 보고 예로 대접하며 고금지란(古今之亂)을 의논하니 문답이 창해 같은지라, 청정이 대희하여 머무를새 청정이 대접을 관곡(款曲)히 하되 유정이 돌아갈 의사를 생각하고 문득 청정에게 묻기를,
 
64
“왜국이 조선을 더불어 인국(隣國)이어늘 어찌 침노함이 이렇듯 심하뇨.”
 
65
청정 왈,
 
66
“조선이 스스로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명을 순종치 않으므로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이제라도 조선 국왕이 우리를 위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어 대명을 치고 인하여 우리나라를 섬겨 항복하면 도로 성지(城地)를 주고 왕을 봉하여 다시 침노치 아니리라.”
 
67
유정이 발연(勃然) 변색 왈,
 
68
“조선왕은 대원한 임금이시고 또 조선이 일본으로 더불어 비컨대 대국이라, 체통이 유별하고 일본 관백은 본디 미천한 사람으로 그 임금을 내치고 스스로 서니 이는 천하의 큰 도적이라, 어찌 대국 임금이 소국 도적을 섬기리요.”
 
69
꾸짖기를 마지아니한대 청정이 대로하여 좌우로 꾸짖어 원문(轅門) 밖에 버히라 한 대, 유정이 조금도 두리는 빛이 없고 앙천대소 왈,
 
70
“내 잠깐 장군을 시험함일러니 진실로 소장부로다. 한 사람이 도적이라 하면 도적이 되며 성인이라 하면 성인이 되는가, 천하가 다 성인이라 하여야 성인이요 천하가 다 도적이라 하여야 도적이 되나니 이는 작은 필부(匹夫)라 어찌 대사를 이루리요.”
 
71
하고 쾌히 걸어 나가니 청정이 도로 무료하여 친히 내려가 무사를 꾸짖어 물리치고 유정의 소매를 이끌어 장중에 들어와 사례 왈,
 
72
“내 거의 신승을 해할 뻔하였나니 그대는 모름지기 허물치 말고 안심하라.”
 
73
한대 유정이 웃고 손사(遜辭)하더라. 이튿날 유정이 청정에게 이르되,
 
74
“내 들으니 선강정이 삭령으로 간다 하니 반드시 경기감사 심대를 죽이리니 내 평일 심대로 더불어 좋은 사이러니 나아가 구코자 하노라.”
 
75
청정 왈,
 
76
“그대 여기 있어 어찌 죽음을 아는다.”
 
77
유정이 웃고 왈,
 
78
“대장부 세상에 처하매 비록 만 리 밖 일이나 어찌 헤아리지 못하리요. 하물며 삭령은 불과 천 리라, 어찌 모르리오. 장군이 사람 보기를 썩은 풀같이 하도다.”
 
79
하고 대소하기를 마지아니하니, 홀연 서문 지킨 군사가 글을 올리거늘 바라보니 이는 선강정이 심대를 죽인 승전보장(勝戰報狀)이어늘 청정이 대경하여 급히 유정을 청하여 가로되,
 
80
“그대는 진실로 세속 범승이 아니니 오래 요란한 전장에 머물음이 불가하리라, 빨리 산야로 들어가 선도(禪道)를 힘쓰라.”
 
81
하거늘 유정이 청정을 이별하고 유점사로 돌아와 사승(寺僧)들을 다 불러 왈,
 
82
“우리는 조선국 중이라, 이제 우리 예의지방(禮義之邦)이 마침내 왜노(倭奴)의 웅거한 바 되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며 우리 비록 중이나 또한 조선 인민의 자손이라, 이제 왜노에 속할진대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요. 내 당당히 나라를 위하여 은혜를 갚고자 하노라. 너희가 내 영을 듣지 않으면 즉시 버히리라.”
 
83
한대 모든 중들이 순종하거늘 유정이 차일 군기와 기치를 수정하고 큰 기에 쓰되 ‘조선 승군 도원수 유정(朝鮮僧軍都元帥惟政)’이라 하고, 일변으로 군복을 입으며 일변으로 강원도 각처에 사통하여 승군을 모으니 차차 이 소문을 듣고 바람을 좇아 오는 자 천여 명이러라.
 
 
84
각설, 유정이 유점사에서 승군을 데라고 들에 내려와 일일 연습하며 활쏘기와 총놓기를 익히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각처 승군들이 연일하며 유정이 그 군사를 거느리고 고성현에 들어가 군기를 내어 가지고 양덕 맹산을 지나 의주로 향하니라.
 
 
85
각설, 김제군수 정남과 해남현감 변홍정이 군사 오백여 명을 거느리고 웅천고을에 영채를 세우고 왜병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더니 차시 왜장 평정성이 이만 병을 거느리고 경성을 지나 전주로 향하더니 정남 변홍정이 웅천에 둔병함을 보고 총 잘 놓는 군사 일천으로 좌편에 있게 하고 창군 일백으로 우편에 세우고 일시에 북을 울리며 기를 두르고 좌우로 내달아 총을 놓으니 정남의 군사 삼대 쓰러지듯 하고, 또 창든 군사 일시에 달려들어 목책(木柵)을 파하고 썩은 풀베듯 무수히 죽이거늘 정남 변홍정이 각각 창검을 들어 적병을 대적하며 크게 군사를 호령하여 유엽전(柳葉箭)으로 쏘니 왜병이 잠깐 물러가거늘 정남 변홍정이 좌우로 충돌하니 왜병이 살을 맞아 수백 명이 죽고 진세(陣勢) 어지럽거늘 평정성이 쟁쳐 군을 거두고 남쪽으로 달아나더니 앞에 일지 군마가 오거늘 이는 왜장 안국사의 군사라. 평정성이 대희하여 합병하니 군사가 만여 명이러라. 다시 웅천을 향하여 나아오니 정남 변홍정이 맞아 대진하고 종일토록 어지러이 싸우니 피차에 죽는 군사 무수하여 주검이 뫼같이 쌓이고 피흘러 내가 되었더라.
 
86
차일 초혼(初昏)에 왜병이 군사를 몰아 정남의 진을 겁칙코자 하여 나아오거늘 정남이 군사를 호령하여 쏘라 한대 군사 동개에 살이 없는지라, 하나도 쏘지 못하니 정남이 하릴없어 좌수에 창검을 들고 우수에 철편을 두르며 왜군을 짓치니 붉은 피 점점이 튀어 군복에 사무치더라. 좌충우돌하여 적군을 죽이더니 문득 칼이 부러지거늘 주먹으로 무수히 치더니 기운이 쇠진하여 마침내 난군 중에 죽으니 변홍정이 또한 철퇴를 들고 왜진에 들어가 어지러이 치니 왜병이 철퇴를 맞아 팔도 부러지며 혹 머리도 깨어지며 무수히 죽이다가 또한 기력이 진하여 입으로 피를 토하고 죽으니 일군이 다 흩어지고 군기만 남았더라. 평명에 평정성이 보고 불쌍히 여겨 군사로 하여금 죽은 군사를 모아 쌓고 흙을 덮으며 큰 나무를 깎아 세우고 쓰되 ‘조선 충신 정남변홍정지처’라 하니라.
 
87
이튿날 안국사로 더불어 군사를 거느려 전주로 향하여 가니 차시 재령 사람 정남이 저희 노복과 동리사람을 데리고 피난하다가 급히 전주성에 들어가 관속과 인민을 놓아 군기를 주어 가로되,
 
88
“왜적이 웅천을 파하고 승승하여 전주를 치러 오니 제군은 힘을 다하여 싸우라.”
 
89
하고 급히 성문에 올라 성가퀴[城堞]마다 무수한 기를 세우고 군사로 하여금 고각을 울리며 방포와 시석(矢石)을 내리어 왜군이 이미 웅천싸움에 많이 죽은지라, 급하여 밤으로 도망하니라.
 
 
90
각설, 조방장 원후 이전부 등이 군사 오천을 거느리고 여주로 나오더니 왜적 평수정이 육만 군을 거느리고 충주를 지키며 김수 등은 사만 군을 거느려 원주를 지키게 하고 군사를 놓아 각처에 노략할새 혹 사오백이며 혹 육칠백이 연하여 죽산 양지 용인 양근 광주로 왕래하며 노략질하니 원후가 군사를 거느려 여주 기미포에 매복하였더니 왜장 길인걸이 오천 군을 거느리고 기미포를 건너오거늘 원후가 방포를 놓으니 복병이 일시에 내달아 급히 치니 왜병이 물에도 빠지며 살도 맞으며 죽으니 길인걸이 군사를 다 죽이고 겨우 목숨을 보전하여 도망하니라. 이 적에 이천부사 변응성이 삼천 군을 거느려 전선을 타고 가만히 안개 속으로 배를 저어 나아가며 도적을 살피더니 왜병 오천이 노략질하거늘 편전과 유엽전으로 일시에 쏘아 왜적 천여 명을 죽이니 왜군이 도망하여 그 후부터는 여주 양주 근처에 감히 다니지 못하더라.
 
 
91
재설, 강원감사 유형립이 원후로 하여금 도적을 치라 하되 원후가 군사 오천을 거느리고 나아가더니, 군사 기갈이 심하여 걷지 못하거늘 노변 여사(旅舍)에 들어가 양식을 얻어 밥을 지으며 군사를 쉬게 하더니 왜장 선강정이 탐지하고 군사를 몰아 급히 엄습하니 원후가 대경하여 미처 군기를 차리지 못하고 군기 다 헤어지거늘 원후가 하릴없이 군관 칠 인만 거느리고 창검을 두르며 달아드니 선강정이 맞아 싸워 삼십여 합에 이르러는 적세를 능히 대적지 못하여 한 문을 헤치고 달아나 한 언덕을 의지하고 앉았더니 언덕 위에서 문득 고함 소리 나며 적이 일시에 내달아 총을 놓아 원후와 군관 칠 인을 일시에 철환을 쏘아 죽이니라.
 
 
 
 

3. 곽재우(郭再祐)와 김덕령(金德齡)

 
93
각설, 회람 사람 곽자위(郭再祐)의 자는 계수(季綏)니 감사 곽월의 아들이라, 비록 급제는 못하였으나 문장이 출중하고 지략이 관영(貫盈)한지라, 시절이 어지럽거늘 가산을 흩어 사람을 사귀어 군정(軍丁) 수백 인을 얻으니 즉시 나와 도적을 칠새 왜선 삼십 척을 쳐 물리치고 창곡 백여 석을 취하여 군사를 크게 호궤(犒饋)한 후 초계(草溪)고을에 들어가 군기를 내어 가등첨사 정응남으로 군관을 삼고 열읍 창곡 일천여 석을 얻어 기민(機敏)을 진휼(賑恤)하니 이십여 일 만에 군사 만여 명이 모였더라. 이 적에 안국사 갑병 팔십만을 거느리고 물을 건너 의령을 치려 할새 강변의 해자(垓字)깊으니 혹 군사 빠질까 나무로 깎아 물의 표를 삼으니 곽자위 군사로 탐정하여 왜적이 물에 표함을 알고 즉시 그 표를 빼어 옮겨 꽂고 해자 가에 복병하였더니 과연 차야에 안국사 이만 군을 거느리고 물을 건너오다가 표를 그릇 보고 군사 다 빠져 죽거늘 복병이 일시에 내달아 어지러이 치니 안국사 대패하여 달아나니라. 자위가 비로소 군위를 정할새 장대에 앉고 기치검극(旗幟劍戟)을 좌우로 세우고 제장을 다 붉은 옷에 백마를 태우며 큰 기에 쓰되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하고 장졸을 모아 호령 왈,
 
94
“오늘 안국사 패하였으니 밤을 타 반드시 우리 진을 엄습하리니 제장은 모름지기 상심하여 적을 막으라.”
 
95
하고,
 
96
“장수 십여 인씩 정하여 좌우 전후 산곡에 매복하였다가 적병이 지나거든 내달아 시살하되 혹패혹주(或敗或走)하라, 자연 계교 있으리라.”
 
97
하고 분부하기를 마치매 일군을 지휘하더니 차일 안국사 오만 군을 거느리고 바로 곽자위 진을 향하여 돌입코자 하거늘 자위 진문을 닫고 요동치 아니하거늘 국사가 싸움을 돋워 날이 늦으매 자위 진문을 크게 열고 백마 탄 장수 창검을 두르고 적장으로 더불어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산곡으로 달아나니 왜장이 승승(乘勝)하여 따르더니 문득 한 모롱이를 지나며 간 곳을 아지 못하고 주저할 즈음에 홀연 좌편 수풀에서 홍의(紅衣)를 입은 백마 탄 장수가 문득 패하여 산곡으로 달아가거늘 패장이 따르더니 또 잃고 주저할 즈음에 홍의에 백마 탄 장수 내달아 싸워 이렇듯하기를 십여 차에 이르러는 왜장이 크게 의혹하여 속은 줄 알고 급히 군사를 물리더니 문득 방포 소리 나며 사면팔방으로서 함성이 대진하거늘 안국사 실색하여 달아나고자 하나 사면 복병이 일시에 일어나니 왜병이 크게 어지러워 짓밟혀 죽는 자 그 수를 알지 못하고 남은 군사는 각각 명을 도망하는지라. 곽자위 군사를 몰아 전진가의 목책을 버리고 홍기(紅旗) 백기(白旗)를 십 보에 하나씩 꽂고 아장 정지명으로 하여금 군량을 준비하라 하고 이운정으로 군정사를 삼아 가음 알게 하고 심대승 백맹신으로 선봉을 삼고 정달로 군기 찾이를 삼고 정인으로 후군대장을 삼고 유락으로 용인을 지키게 하고 심기로 전선을 차지하게 하고 탐지군을 놓아 서로 출입하며 지키더니 왜적이 감히 근처에는 엿보지 못하더라. 조정이 이 소식을 듣고 병조정랑 유정을 보내어 그 지략과 공을 표하니라.
 
 
98
각설, 왜적이 조선 팔도 삼백여 주를 아니 간 곳이 없이 인민을 살해하더니 여러 해 되매 인민이 서로 모여 사면으로 의병이 일어나 군위고을 좌수 장사진이 의병을 거느려 왜적 팔백여 명을 죽이고 또 충청도 대홍사 중 수운이 승군을 거느리고 청주고을에 웅거한 왜적 백여 명을 죽이고 홍경삼이 신계고을에 웅거한 왜적을 파하고 이정함은 연안성에 든 선강정으로 파하고 광주교생 김덕령(金德齡)은 재인군으로 오색 반의(班衣)를 입히고 각각 장창을 주어 호남 호서로 왕래하여 왜적을 만나면 평지에서 뛰놀고 말 위에서 거꾸로 서며 혹 몸을 날려 공중에 오르니 왜적이 그 의복과 재주를 보고 가장 괴이하게 여겨 이르되,
 
99
‘이는 진실로 신병(神兵)이로다.’
 
100
하여 매양 만나면 피하여 달아나더라.
 
 
 
 

4. 중원(中原)에 재원병(再援兵) 요청

 
102
이때에 유격장군 심유경(沈惟敬)이 돌아간 후 일향 천병의 소식이 없는지라, 상이 근심하사 즉시 이덕형(李德馨)으로 청병사(請兵使)를 삼아 천조(天朝)에 들어가 구병(救兵)을 청할새 덕형의 일행이 성야(星夜)로 행하여 천조에 들어가 병부상서 석성(石星)을 통하여 천자께 주하자 천자 사신을 인견하사 위문하시니 덕형이 울며 복지 주왈,
 
103
“신의 나라가 왜란을 만나 팔도 인민을 다 죽이고 도성이 함몰하며 국왕이 종사를 버리시고 의주성에 몸을 감추어 일야호곡(日夜號哭)하오매 오직 천조구병을 기다리오니 바라옵건대 폐하는 인홍대덕(仁弘大德)을 드리우사 특별히 천병을 조발하여 왜적을 진멸하옵고 억만창생(億萬蒼生)을 건지시며 고국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104
하고 인하여 통곡하거늘 천자 가로되,
 
105
“짐(朕)이 일찍 요동도독(遼東都督) 조승훈(祖承訓)을 보내어 구하라 하였더니 조선이 군량(軍糧)을 수운치 아니하기로 대군이 주려 마침내 패하여 돌아왔으니 이제 너희 경상은 불쌍하거니와 대군이 나아가는 날 무엇으로 군사를 거느려 먹이려 하느냐. 대국이 또한 연흉(連凶)을 만나 백성이 곤궁함을 면치 못하니 어찌 구응하리요. 연이나 짐이 생각하여 처결하리니 아직 관역(館驛)에 머물러 조명(朝命)을 기다리라.”
 
106
하시고 예부(禮部)로 후대(厚待)하라 하신대 덕형 등이 옥화관에 머물러 음식을 전폐하고 주야 비읍(悲泣)하니 보는 자 아니 차탄할 이 없더라.
 
107
이러구러 수월이 되도록 구병을 얻지 못하더니 임일은 신종황제(神宗皇帝) 한 꿈을 얻으니 무수한 계집이 볏단을 이고 조선대해로 이르러 상을 밀치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마음에 의심하더니 홀연 해오되,
 
108
‘조선이 왜란을 만나기로 몽사(夢事) 그러하도다.’
 
109
하시고 글자로 해독하시니,
 
110
‘사람인(人)변에 벼화(禾)를 하고 벼화 아래 계집녀(女)자니 왜국 왜(倭)자라, 왜적이 반드시 범할 뜻이 있도다.’
 
111
하시고 가장 놀라시더니, 또 몸이 곤하여 신음하더니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홀연 공중에서 번개 세 번 하고 천문(天門)이 열리는 곳에 일위신장(一位神將)이 운무중(雲霧中)으로 내려와 계하(階下)에 서거늘 황제 괴이히 여겨 물어 왈,
 
112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짐을 보아 무엇 하려 하느뇨.”
 
113
그 사람이 여짜오되,
 
114
“소장은 삼국적 관장(關將)이로소이다. 소장이 안양 문추를 버히매 옥제(玉帝)께서 무죄한 사람을 죽이다 하사 다시 세상에 환생치 못하게 하시니 외로운 넋이 조선에 의지하여 향화(香火)를 받잡더니 이제 조선이 왜란을 만나 억만창생이 수화중에 있삽고 조선왕이 종사를 버리고 의주로 달아나 몸을 감추고 위태함이 경각(頃刻)에 있으니 바라건대 전하는 인홍대덕(仁弘大德)을 드리우사 천병을 조발하여 조선을 구하소서.”
 
115
황제 가라사대,
 
116
“짐(朕)이 조선을 구코자 하나 대장 할 사람을 얻지 못하여 근심하노라.”
 
117
운장이 여짜오되,
 
118
“요동제독 이여송(李如松)이 지용(智勇)이 쌍전하오니 대장을 하이사 조선을 구하소서.”
 
119
황제 다시 묻고자 하시더니 홀연 음풍(陰風)이 삽삽(颯颯)하고 흑무(黑霧) 소소하여 문득 간 바를 알지 못할러라. 놀라 깨달으시니 침상일몽(枕上一夢)이라. 드디어 뜻을 정하사 조선을 구하려 하실새 즉시 이덕형을 불러 위로 왈,
 
120
“중국이 흉황할 뿐 아니라 인마여력(人馬餘力)이 많이 상하매 경동치 못하더니 여 등의 충성을 감동하여 조선왕을 구하려 하나니 여 등은 돌아가라.”
 
121
하신대 덕형 등이 천은을 숙사하고 관사에 들어와 행리(行李)를 수습하여 성야로 행하여 의주에 이르니 상이 인견하사 천병 나옴을 아시고 크게 기뻐하시더라.
 
122
대명 신종황제 조서(詔書)를 내리사 병부상서 송응창(宋應昌)으로 경략(經略)을 삼고 병부시랑 유황상으로 방해군무(防海軍務)를 삼고 요동제독 이여송으로 대장을 삼아 삼영장(三營將) 이여백(李如栢) 장세작(長世爵) 등과 남경장수 낙상지(駱尙志) 등을 거느려 가게 하고 산동미(山東米) 삼만 석과 대군 십만을 조발하여 조선을 구하라 하신대, 이여송 등이 하직코 대군을 휘동하여 조선으로 향할새 정기는 해를 가리우고 쟁북을 일제히 울리니 그 소리 산을 움직이며 군열(軍列)이 수백 리에 이었으니 사람은 천신(天神) 같고 말은 비룡(飛龍) 같더라. 대군이 호호탕탕 행하여 연경(燕京)을 지나 봉황성(鳳凰城)에 이르러 제독이 먼저 패문을 만들어 의주로 보내니 상이 대희하여 즉시 이항복으로 접반사(接伴使)를 삼아 청병을 맞아 좌하신대 항복이 명을 받자와 책문(柵門)에 이르러 청병을 맞아 압록강에 이르러는 문득 해오리[白鷺] 서녘에서 북녘으로 날아가거늘 이여송이 마상에서 활에 살을 먹여 하늘을 우러러 가만히 빌어 왈,
 
123
‘대명 대도독 이여송이 황명을 받자와 대군을 거느려 왜적을 치고 조을 구하고자 하옵나니 만을 공을 이루리라 하시거든 해오리 맞아 떨어지고 만일 성공치 못하리라 하시거든 맞지 않으소서.’
 
124
하고 빌기를 마치며 공중을 향하여 쏘니 활시위를 응하여 해오리 살을 띠고 발 앞에 떨어지거늘 이여송이 대희하여 군사를 재촉하여 압록강을 건너 통군정(統軍亭)에 올라 제장으로 더불어 좌정하고 조선 체찰사(體察使)를 보니 이때는 아무런 줄 모르고 답지 못하더니 다시 재촉하는 소리 우레 같은지라. 병조판서 이항복이 체찰사 유성룡을 데리고 들어갈새 정충신(鄭忠信)이 조선지도를 오성(鰲城)의 품에 드리더라. 오성이 무사를 좇아 당하에 이르니 제독이 호상(胡牀)에 거러앉아 이르되,
 
125
“대병이 이에 이르렀으니 조선이 향도(嚮導)를 겸하여 선봉이 될 것이요, 또 왜적을 칠 기계(奇計)를 차렸느냐.”
 
126
오성이 창황중 생각지 못하다가 품으로조차 지도를 내어 드리니 제독이 보고 대희 왈,
 
127
“조선 국운이 불행하여 왜란을 만났으나 이제로 보면 졸연히 망치 아니하리라.”
 
128
하고 또 이르되,
 
129
“조선 왕을 한번 보고자 하노라.”
 
130
말이 마치지 못하여 승전(承傳)이 들어와 고왈,
 
131
“조선 국왕이 오신다.”
 
132
한대 이여송 등이 상에 내려 예필 좌정 후 이여송이 눈을 들어 조선왕의 상을 보니 제왕(帝王)의 기상이 아니라, 문득 의아하여 조선 체찰을 불러 왈,
 
133
“너희 조선이 간사함이 특심하여 우리를 업신여겨 임금이 아닌데 임금이라 하여 우리를 취맥하니 내 어찌 구할 뜻이 있으리요.”
 
134
하고 분기를 발하여 회군하는 영을 내리고 징을 쳐 군사를 물리라 하니 백관이며 모든 백성이 일시에 통곡 왈,
 
135
“이제 천병이 물러가니 동방예의지국이 속절없이 왜국이 되리로다.”
 
136
하고 곡성이 진동하는지라. 이항복 유성룡이 상께 주왈,
 
137
“이제 천병이 물러가오니 왜적을 저당치 못하올지라, 일로 혜옵건대 조선이 일조에 왜국이 되올지라. 어찌 망극지 아니하리요. 전하는 통촉하소서.”
 
138
하고 인하여 통곡하니 상이 또한 방성대곡(放聲大哭)하시더니 이때 이여송의 무리 장중에 있더니 곡성을 듣고 좌우에게 문왈,
 
139
“이 어인 곡성이뇨.”
 
140
제장이 가로되,
 
141
“천병이 물러가옴을 조선왕이 통곡한다 하나이다.”
 
142
이여송이 가로되,
 
143
“이는 반드시 용(龍)의 소리라. 분명한 왕의 울음이라 가히 아니 구치 못하리라.”
 
144
하고 제장을 분부하여 회군하는 영을 거두니라.
 
 
145
차설, 이 제독(李提督)이 왕상(王相)을 청하여 다시 위로하기를 마치며 즉시 의주를 떠나 안주에 이르매 성남에 하채하니 정기(旌旗) 폐일하고 검극은 상설(霜雪) 같고 군용이 융성하니 조선사람이 아니 기뻐할 이 없더라. 체찰사 유성룡이 들어와 이 제독을 보고 일을 의논하매 이때에 제독이 안주 동헌(東軒)에 앉아 혼연히 좌를 주고 왜정을 자세히 물으니 성룡이 일일이 대답하고 인하여 평양지도를 내어 드리니 제독이 보기를 마치매 성룡에게 이르되,
 
146
“왜적이 다만 조총(鳥銃)만 믿었나니 우리 대포를 발하면 오륙 리는 가는지라. 적이 능히 어찌 대적하리요.”
 
147
성룡이 대희하여 칭사하고 물러 왔더니 제독이 본총병사 대수로 하여금 먼저 순안에 보내어 왜적을 속여 왈,
 
148
“천조 이미 화친을 허하시고 심유경이 장차 이리로 온다.”
 
149
하니 왜적 평행장이 대희하여 잔치를 벌여 서로 경하할새 왜승 현소(玄蘇) 글을 읊으니 그 글에 가로되,
 
 
150
부상복중화(扶桑伏中華)
151
사해통일가(四海通一家)
152
희기능소설(喜氣能銷雪)
153
건곤태평하(乾坤太平下)
 
154
일본이 중원을 항복받으니 사해 한집 같도다. 기쁜 기운이 능히 눈을 녹이니 하늘 땅이 태평하도다.
 
 
155
하였더라.
 
156
이때는 계사 춘정월(春正月)이라. 평행장의 부장 평호란으로 하여금 사십여 인을 거느려 순안에 가 심유경을 맞으라 하였더니 부총병사 대수 거짓 속여 술을 먹으라 하고 인하여 평호란을 미리 보내고 그 수하 군사를 다 잡아 죽이려 하더니 그 중 두어 사람이 도망하여 평양에 들어가 보하니 적이 비로소 천병이 이른 줄 알고 마음에 가장 두려워하더라. 제독이 안주를 떠나 수안에 이르러 군사를 쉬게 하고 이튿날 군을 나와 평양을 싸고 보통문(普通門) 칠성문(七星門)을 치니 왜병이 조총과 돌을 발하거늘 천병이 또한 대포를 놓으니 연염(煙焰)이 충천하고 성중 거처에 불이 일어나 왜병이 황겁하여 능히 성을 지키지 못하거늘 천장 낙상지(駱尙志) 오유충(吳惟忠) 등이 절강 용사 수백을 거느려 각각 단검을 차고 성상에 뛰어오르니 왜적이 능히 대적치 못하고 내성으로 달아나거늘 지국이 뒤를 따라 엄살하고 제독도 대군을 몰아 내성을 싸고 왜적이 성상에서 조총을 발하며 돌을 날리니 천병이 많이 상하는지라, 제독이 즉시 군사를 거두어 성 외에 진치고 제장으로 더불어 의논하여 왈,
 
157
“궁적(窮敵)을 급히 핍박(逼迫)하면 반드시 죽기로써 싸우리니 스스로 달아나게 한 후에 그 뒤를 따라 엄습하면 가히 크게 이기리라.”
 
158
하더라.
 
 
159
재설, 평행장이 천병의 물러감을 보고 서로 의논하되,
 
160
“이여송이 지용이 겸전하고 또 천병의 용맹을 대적하기 어려우니 장차 어찌하리요.”
 
161
평의지 평조선 등이 이르되,
 
162
“우리 만일 싸우지 아니하고 굳게 지키면 천병이 양식이 진하여 물러가리니 그때를 타 엄습하면 가히 전승함을 얻으리라.”
 
163
평행장이 이르되,
 
164
“우리 만약 고성(孤城)을 지키다가 조선군사 천병으로 협력하여 전후로 협공하면 어찌 능히 대적하리요.”
 
165
하고 연하여 얼음을 타고 대동강(大洞江)을 건너 경성을 바라고 가더니 의승장(義僧將) 유정(惟政)을 만나 일진(一陣)을 대패하고 급급히 도망하니라. 원래 유정이 금강산으로부터 평양으로 향할새 얻은 바 승군이 천여 명이라, 나아가 장림에 진치고 왜적의 체탐을 많이 죽이고 이 날 밤에 왜적이 도망함을 보고 그 뒤를 따라 짓치고 치중안마(輜重鞍馬)를 많이 얻으니라. 이튿날 이 제독이 왜적의 도망함을 보고 드디어 성중에 들어가 웅거하고 적병을 따르지 아니하더라.
 
 
166
각설, 의병장 고충경과 황해도 열읍에 웅거한 왜적을 엄습할새 호성 도정이 풍천으로 좇아 구월산(九月山)에 이르러 와 왜적의 종적을 탐지하다가 궁산벽처(窮山僻處)에 물을 곳이 없어 정히 방황하더니 마침 중 셋이 오거늘 그 중을 불러 왈,
 
167
“이제 왜적이 웅거한 곳이 많거늘 너희는 임의로 다니니 필연 연고 있도다. 만일 실정을 고치 않으면 당장 버히리라.”
 
168
그 중이 대왈,
 
169
“소승은 강원도 중으로 적장 선강정에 잡히어 밥짓는 군사 된 고로 이렇듯 다니나 조선을 어찌 일신들 잊으리오마는 다만 호혈(虎穴)에 들어가 일시도 평안치 못하오니 언제 좋은 사람을 만날까 하나이다.”
 
170
말을 마치며 눈물을 흘리거늘 호성 도정이 이르되,
 
171
“너희 말에 하늘이 감동하시리니 내 말을 들으면 더욱 충성이 빛나리다.”
 
172
하고 독약(毒藥) 한 쌈을 주어 왈,
 
173
“이 약을 가지고 왜병을 호궤할 제 음식에 섞어 먹이면 반드시 죽으리니 생심도 누설치 말라.”
 
174
한대 그 중이 허락하고 이르되,
 
175
“장군은 모름지기 성 밖에 복병하여 있으면 소승이 약을 하수한 후 즉시 나와 고하리니 장군이 군사를 몰아 들어와 급히 치면 승전하리이다.”
 
176
호성 도정이 군사를 일으켜 산성밖에 매복하였더라. 그 중이 성중에 들어가 석반(夕飯)에 그 약을 섞어 모든 도적을 먹였더니 적은 듯 밥먹은 도적은 절로 쓰러지거늘 그 중이 급히 나와 호성 도정을 보고 그 일을 자세히 고하니 호성 도정이 급히 군을 거느려 성중에 돌입하여 일시에 고조납함하고 나아가니 선강정이 대경하여 비록 싸우고자 하나 군사 태반이나 독을 만나 아모런 줄을 모르는지라, 이미 모책이 있는 줄 알고 남은 군사를 거느려 달아나고자 하더니 호성 도정이 중군을 지휘하여 일시에 불을 놓고 어지러이 짓치니 선강정이 능히 저당치 못하여 성을 버리고 달아나고자 하더니 호성 도정이 중군을 재촉하여 뒤를 따라 신천 땅에 이르러 홀연 전면을 바라보니 티끌이 이는 곳에 일조군마 풍우같이 이르러 선강정 가는 길을 막으니 이는 의병장 고충경이러라. 원래 충경이 봉산 안악 등처에 있는 왜적을 죽이고 황주로 가다가 정히 선강정을 만나 일진을 엄살하니 선강정이 황망히 북편 소로로 달아나더니 초토사 이정함을 만나 군사를 무수히 죽이고 남을 바라보고 급히 달아나더니 또 방어사 이시언을 만나 크게 싸우더니 호성 도정과 고충경이 함께 따라와 전후로 협공하니 선강정이 사면에 달아날 길이 없음을 보고 스스로 자문(自刎)하여 죽거늘 이시언 등이 남은 적장을 짓치고 황주로 행하더니, 이때 평행장이 평양을 버리고 대군을 거느려 검수참에 이르러 기갈을 못 이겨 대오(隊伍)가 어지럽거늘 이시언 등이 뒤를 따라와 엄살하여 도적 천여 명을 버히고 일변으로 이긴 기별을 평양에 보하며 일변으로 뒤를 따르니라.
 
177
처음에 제독이 평양을 칠 제 천병은 보통문을 치고 순변사 이일은 김응서로 더불어 함구문으로 좇아 들어가더니 제독이 군사를 거두며 이일 등이 성 외에 물러와 둔병하였더니 야반에 도적이 달아났는지라, 제독이 도적을 놓아 보낸 허물을 아군에게 돌려보내어 깊이 책하고 그 일을 의주로 이문하니 좌의정 윤두수(尹斗壽)를 보내어 문죄하고 이빈으로 이일의 벼슬을 대하고 정병 삼천을 거느려 제독을 따라 경성으로 향케 하니 이때 대동강 남편부터 연로(沿路)에 둔취하였던 왜적이 다 도망하였으매 이 제독이 비로소 도적을 따르고자 하여 체찰사 유성룡을 불러 왈,
 
178
“독군(督軍) 전로에 양초(糧草)없다 하니 그대는 급급히 군량을 준비하여 조금도 소루함이 없게 하라.”
 
179
성룡이 청령하고 급히 달려 중화를 지나 황주에 이르니 이때 왜병이 물러간 지 오랜지라. 일로가 공허하여 인민히 희소하매 베풀 계교없어 급히 황해감사 유영성에게 이문하여 김응서로 하여금 평양 있는 곡식을 수운(輸運)하여 황주로 오게 하니 바야흐로 군량을 준비하여 대군이 이미 개성부(開城府)에 이르니라. 이때 경성에 웅거한 도적이 행여 아국 백성이 내응함이 있을까 두려 의심할뿐더러 또 평양의 패함을 분노하여 국중 신민을 낱낱이 죽이고 장차 천병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는지라. 제독이 군사를 나와 패주 주찰하였더니 차일 부총사 대수가 아국장수 고언백으로 더불어 수백 군을 거느려 도적 백여 인을 버히니 제독이 듣고 제장을 머물러 영채를 지키게 하고 다만 천여 군을 거느려 혜음령(惠陰嶺)을 지나가더니 적이 대군을 여석령(礪石嶺)에 매복하고 다만 수백 군을 거느려 영상에 있는지라, 제독이 적병의 적음을 보고 업신여겨 군사를 재촉하여 영상으로 오르더니 홀연 일성포향(一聲砲響)에 산 뒤에서 수만 복병(伏兵)이 내달아 어지러이 짓치니 천병이 능히 대적지 못하고 죽고 상한 자 많은지라. 제독이 급히 군사를 물려 동으로 돌아가려 하거늘 체찰 유성룡이 우상 유홍과 도원수 김명원 등으로 더불어 제독을 보고 힘써 이르되,
 
180
“승패는 병가의 상사라, 마땅히 적세를 살펴 다시 진병할 것이어늘 어찌 가벼이 물러가리오.”
 
181
제독 왈,
 
182
“우리 군사 작일에 적병을 많이 죽였으나 다만 이 땅이 비오기로 물이 많아 영채 세우기 편치 않은지라, 이러므로 잠깐 동파(東破)로 돌아가 다시 진취키를 도모코자 하노라.”
 
183
하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동파로 돌아왔더니 마역(馬疫)이 크게 일어나 전마(戰馬) 만여 필이 죽은지라, 제독이 부총병 사대수(査大受)로 임진을 지키게 하고 송파로 돌연 왔더니 전하는 말이 있어 적장 청정이 함흥으로부터 양덕(陽德) 맹산(孟山)을 넘어 평양을 엄습하라 하거늘 제독이 북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더니 이 소식을 듣고 이르되,
 
184
“만일 평양을 잃으면 아 등이 장차 어디로 가리요.”
 
185
하고 다만 왕필적으로 송도를 지키게 하고 접반사 이덕형에게 이르되,
 
186
“이제 조선 군사 외로우니 빨리 제군을 거두어 임진 북녘으로 모으라,”
 
187
하니 전라 순찰사 권율(權慄)이 행주(幸州)목을 지키게 하고 도원수 김명원으로 임진(臨津) 남녘을 지키고 있는 고로 제독이 여러 곳 군마를 거두고자 함이라. 체찰사 유성룡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 중로에 이르러 제독을 보고 다섯 가지 퇴군치 못함을 베풀어 왈,
 
188
“선왕의 분묘(墳墓)가 적혈(賊穴)에 침몰하였으니 가히 버리지 못할 것이요. 백성이 날마다 왕사(王師)의 이름을 바라다가 물러감을 들으면 다시 굳은 마음이 없어 도적에게 귀순할 것이요, 아국 토지를 척촌(尺寸)이라도 가히 버리지 못할 것이요, 아국 장사가 비록 미약하나 장차 천병의 위엄을 의지하여 진취하기를 도모하다가 이제 물러감을 들으면 반드시 이산할 것이요, 대군이 한 번 물러가면 적이 필연 따르리니 임진 북녘을 또한 보전치 못하리라.”
 
189
한대 제독이 듣지 아니하고 돌아가니라.
 
 
 
 

5. 권율(權慄)의 행주대첩(幸州大捷)

 
191
각설,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천병이 장차 물러가 경성으로 행하려함을 듣고 강을 건너 고양으로 행주산성(幸州山城)에 올라 결진하였더니 천병이 물러가매 적이 경성으로 쫓아 행주에 이르러 산성을 치니 인심이 흉흉하여 달아나고자 하되 강을 등졌는 고로 감히 도망치 못하고 죽기로써 싸우니 적이 능히 대적지 못하여 달아나거늘 권율이 뒤를 따라와 수백 인을 버히고 즉시 군사를 거느려 임진에 이르러 체찰 유성룡이 권율로 하여금 순변사 이빈(李蘋)으로 합병하고 파주산성(坡州山城)을 굳이 지켜 서로 가는 도적을 막게 하고 방어사 고언백 이시언과 조방장 정희현 등으로 하여금 창릉(昌陵) 근처에 매복하였다가 적병이 만일 많이 오거든 피하고 적게 오거든 싸워 짓치라 하니, 이로 인하여 적이 성 밖에 나오지 못하더라. 성룡이 또한 창의사 김천일(金千鎰)과 경기수사 정길 등으로 배를 타고 용산 근처에 행하여 순강(巡江)하는 왜적을 무수히 죽이니 이러므로 적세 많이 피폐하였더라.
 
192
이때 적이 경성에 웅거한 지 이미 수년이라. 백성이 주려 죽는 자 무수하더라. 마침 성룡이 동파에 있음을 듣고 남은 백성이 늙은이를 붙들고 어린이를 이끌고 돌아오는 자 무수한지라, 총병사 대수가 길가에서 어린아이가 죽은 어미의 젖을 빨아 먹는 양을 보고 참혹히 여겨 군중에서 기르고, 성룡에게 이르되,
 
193
“왜적이 지금 물러가지 아니하고 인민의 형상이 이렇듯 참혹하니 장차 어찌하리요.”
 
194
성룡이 마음에 가장 슬퍼 눈물을 흘리며 왈,
 
195
“왕이 이제 비록 진휼하고자 하시나 저축한 양식이 없고 남방으로 양전(良田)이 물가에 매였으나 천병이 장차 이르니 어찌 감히 다른데 쓰리요.”
 
196
하고 정히 근심하더니 마침 전라도 소모관(召募官) 안빈학이 피곡(皮穀) 천여 석을 배로 수운하여 이르렀거늘 성룡이 대희하여 일변 설진하는 뜻을 장문하고 일변으로 설진하여 기민을 구제할새 전군수 남진관으로 감진관(監賑官)을 삼아 송엽(松葉)가루를 피죽에 섞어 기민을 먹이되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은 고로 능히 구하지 못하는지라, 대수가 참지 못하여 군량 삼십여 석을 진휼(賑恤)에 보태고 오히려 미치지 못하더니 일야간에 큰 비 붓듯이 오는지라, 기민의 신음하는 소리 그치지 아니하더니 이튿날 보니 죽은 자 심히 많거늘 성룡이 차탄함을 마지아니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땅을 파고 묻으라 하다.
 
 
 
 

6. 심유경(心惟敬)의 화친교섭(和親交涉)

 
198
창의(倡義) 김천일의 군중에 이시충이란 사람이 있으되 스스로 경성에 들어가 왜적을 탐지할새 양 왕자와 배행(陪行) 황정욱 등을 찾아보고 돌아와 이르되,
 
199
“적이 강화(講和)할 뜻이 있다.”
 
200
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적장 평행장이 글월을 김천일의 진주에 보내어 강화하기를 청하거늘 이때 천일이 주사를 거느려 용산에 있더라. 천일이 그 글로써 성룡에게 보내니 성룡이 천장 사대군으로 하여금 뵈고 제독에게 보내여 품(稟)하니 사대수가 즉시 가정 이성으로 하여금 글을 평양으로 보내니 제독이 보고 즉시 유격장군으로 심유경을 경성에 보내어,
 
201
“왜적의 동정을 탐지하라.”
 
202
하고 뒤를 따라 대군을 거느려 송도에 주찰(駐札)하니라.
 
203
이때 심유경이 행하여 동파에 이르니 도원수 김명원이 유경에게 이르되,
 
204
“적이 평양에서 속음을 분노하여 하니 반드시 좋은 뜻이 없을까 하노라.”
 
205
유경이 소왈,
 
206
“적이 어찌 나를 해하리요.”
 
207
하고 드디어 경성에 이르러 적장 평행장을 보아 가로되,
 
208
“너희 만일 강화하고자 할진대 먼저 조선 왕자와 배신을 돌려보내고 군을 부산으로 물린 후 비로소 화친을 허하고 만일 그렇지 않으면 목금(目今)에 조선팔도 용병이 벌[蜂] 일 듯할 뿐 아니라 천자 분노하사 대병을 보내어 너희를 전멸하려 하시나니 일찍이 뜻을 결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라. 만일 말을 듣지 아니하면 하늘과 신령이 한가지로 노하시면 그때 비록 돌아가고자 하나 미치지 못하리라.”
 
209
한대 평행장이 이르되,
 
210
“그러면 우리 군사를 물려 본국으로 돌아간 후 중국이 조선으로 더불어 벼슬을 일본으로 보내어 화친을 이르게 하라.”
 
211
유경 왈,
 
212
“실로 화친할 뜻이 있거든 조선 왕자와 배신을 돌려보내라.”
 
213
평행장이 허락하거늘 유경이 즉시 돌아오니라.
 
214
이때 청정이 함경도를 좇아 경성에 돌아왔더니 행장이 청하여 퇴군할 일을 의논하되 청장 왈,
 
215
“이제 어찌 무단히 물러가리요. 더 나아가 이여송을 항복받은 후 바야흐로 돌아가리라.”
 
216
하고 즉시 날래 장수 엄홍 이현을 불러 왈,
 
217
“너희 장진에 나아가 이여송을 불러 이르되 만일 퇴군하여 본국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거든 즉시 그 머리를 베어 오면 중상이 있으리라.”
 
218
한대 양장이 청령하고 각각 비수(匕首)를 감추고 송도에 이르러 장영으로 들어가니라.
 
219
이때에 제독이 장중에서 머리를 빗더니 홀연 은독 둘이 장중으로 들어오거늘 제독이 자객(刺客)인 줄 알고 황망히 한 손으로 빗던 머리를 붙들고 한 손으로 보검(寶劍)을 들어 이 적으로 장중에서 시살하니 병기 서로 부딪는 소리 장 밖에 들리는지라. 제장이 놀라 창틈으로 엿보니 은독 셋이 장중에서 구르니 대개 검술을 잘하면 검광이 왼몸을 둘러 은독같이 되는지라. 제장이 감히 들어가지 못하더니 이윽고 제장을 불러 이것을 치우라 하거늘 제장이 그제야 비로소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의 시신(屍身)이 있거늘 제장이 놀라 왈,
 
220
“장이 좁기로 들어와 돕지 못하옵더니 도독의 신위(身位)로 양적을 하례치 아니리이까.”
 
221
도독이 웃어 왈,
 
222
“자객(刺客)이 본디 칼쓰기를 너른 곳에서 배운 고로 장중에서 임의로 쓰지 못하여 내게 버힌 바 되나 만일 장 밖에서 싸웠다면 힘을 많이 허비할 뻔하였다.”
 
223
하더라.
 
224
이때 진중에서 양식이 진하여 주려 죽는 자가 많은지라, 평행장이 청정으로 더불어 의논을 정하고 평조선 평조강으로 더불어 충청도로 내려가 군량을 수운하라 한대 양장이 청령하고 일만 정병을 거느려 남대문으로 쫓아 청파(靑坡)로 향하더니, 문득 대풍이 일어나며 검은 기운이 적진을 둘러싸고 무수한 신병(神兵)이 쫓아 오는 곳에 일위대장이 당선하여 왜장을 충돌하니 낯은 무른 대추 빛 같고 단봉안(丹鳳眼)에 눈썹을 거스리고 손에 청룡도(靑龍刀)를 들고 적토마(赤免馬)를 탔으니 위풍이 늠름한지라, 적병이 신위를 두려 황망히 달아날 새 서로 짓밟아 죽는 자 무수하더라. 그 장수 바로 남문으로 좇아 깨쳐 들어와 동대문을 짓쳐 나아가더니 홀연 간데없는지라. 평조신 등이 군사를 태반이나 죽이고 겨우 목숨을 보전하고 돌아와 평행장을 보고 그 일을 고한대 행장이 대경하여 왈,
 
225
“이는 반드시 삼국적 관운장이 현성함이로다. 전일 당장 심유경이 이르되 우리 만일 돌아가지 않으면 천신이 한가지로 노하리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맞았도다. 이제 만일 돌아가지 않으면 반드시 화를 입으리라.”
 
226
하고 즉시 각 전에 천령하여 군사를 거두어 도성을 떠나 어지러이 한강을 건너 삼남을 향하니라. 이때는 계사(癸巳) 이 월이라, 제독이 송도 있어 왜적의 물러감을 듣고 대군을 거느려 경성에 이르니 방방곡곡에 주검이 뫼같이 쌓이고 남은 백성이 귀형(鬼形)이 되었으니 그 참혹한 형상을 이로 기록지 못할러라. 제독이 처소를 남별궁(南別宮)에 정하고 군사를 조발하여 성중을 쇄소(灑掃)하고 안둔코자 할새 이때 종묘 사직의 대권과 각 사문이 불에 타 남은 것이 없으되 남별궁은 오직 평수명이 머물던 곳이라, 이러므로 남았더라. 유성룡이 먼저 종묘터에 와 통곡하고 제독 하처(下處)에 와 문후(問候)한 후 인하여 물어 가로되,
 
227
“적이 물러간 지 오래거든 도독은 어찌 따르지 아니하느뇨.”
 
228
제독이 가로되,
 
229
“내 또 이 마음이 있으되 다만 강의 선척(船隻)이 없음을 근심하노라.”
 
230
성룡이 가로되,
 
231
“제독이 만일 따르고자 하실진대 비직(鄙職)이 마땅히 선척을 준비하리이다.”
 
232
제독이 즉시 허락하거늘 성룡이 급히 달려 강변에 이르러 경기감사 선영과 정걸 등으로 하여금 대소 선척을 모으니 이미 팔십여 척을 얻었는지라. 급히 제독께 고한대 제독이 즉시 이여백으로 더불어 일만 군을 거느려 도적을 따르라 하니 여백이 강상에 이르러 호령하고 성중으로 돌아오니 이는 다른 연고 아니라, 제독이 본디 도적을 따르지 말고자 하는 고로 여백이 짐짓 따르지 않은 배러니, 도적이 물러간 지 수십 일 후에야 비로소 패문을 발하여 이 제독으로 하여금 적병을 따르게 하니 이는 사람의 의논이 있을까 두려함이러라. 제독이 비로서 적을 따라 문경에 이르니 도적이 이미 물러가 울산 동래 김해 웅천 거제에 영채를 세워 오랜 계교를 삼고 결복하여 바다를 건너지 아니하는지라. 제독이 사천총병 유경으로 하여금 각처에서 초모한 군사 오천을 거느려 팔계를 지키게 하고 이청 조승으로 거창을 지키게 하고 갈봉 오유충으로 성주를 지키게 하고 스스로 경성에 돌아와 심유경을 일본에 보내어 관백을 보고 화친을 허하니 적이 양 왕자와 배신 황정욱 등을 놓아 돌려보내고 일변 군사를 나와 진주(晉州)를 싸고 이르되,
 
233
“우리 전일 패한 원수를 갚으리라.”
 
234
하고 임진년에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성을 굳게 지키게 하고 적을 많이 죽였는 고로 이를 복수하려 함이러라. 처음에 적병이 물러가매 조정이 제장을 재촉하여 도적을 따르라 한 대 도원수 김명원과 순찰사 권율과 각처 의병장이 다 의령에 모여 의논할새,
 
235
“권율이 한 번 행주서 싸워 이김으로부터 기운이 승승하여 팔을 뽐내며 가히 강을 건너 따르리라.”
 
236
한대 의병장 곽재우와 전 양주목사 고언백이 이르되,
 
237
“적세 바야흐로 성할 뿐 아니라 아군은 본디 오합지졸(烏合之卒)이요 전로에 양식 없으니 가히 나아가지 못하리라.”
 
238
권율이 듣지 아니하고 드디어 강을 건너 함안에 이르러 보니 성이 비었고 또한 양식이 없거늘 제군이 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싸울 마음이 없더니, 체탐군사 보하되,
 
239
“왜병이 김해로부터 크게 이른다.”
 
240
하거늘 혹 이르되 함안을 지키자 하여 의논이 분분하더니 홀연 포향(砲響) 소리 일어나며 사람마다 크게 두려 다투어 전진물을 건널새 죽은 이와 이때 피난한 사민(士民)과 각처 의병장의 죽은 자 육만여 인이라. 대저 왜병이 일어남으로부터 사람의 죽은 적이 이만함이 없더라. 그 난을 평정한 후 조정이 천일로써 왕사에 죽다 하여 의정부(議政府) 우찬성(右贊成)을 추중하고 순찰사 권율이 능히 도적을 두리지 아니한다 하여 김명원이 도월수를 배하니라. 천병 의승 수정이 진주 함몰함을 듣고 파례로부터 합천에 이르고 오유충은 초계에 이르러 우도를 보호하니라. 적이 이미 진주를 파하매 계견(鷄犬)을 남기지 아니하고 부산에 들어가 말을 전하되,
 
241
“천조가 만일 강화함을 기다려 바다를 건너리라.”
 
242
하더라.
 
 
243
재설, 이 제독이 사람을 의주에 보내어 상(上)을 청하니 상이 즉시 의주를 떠나 도성에 이르시니 성곽이 다 무너지고 인민이 희소한지라, 상이 체읍(涕泣)하시기를 마지않으시고 인하여 이여송을 보아 공로를 치하하시고 잔치를 배설하여 관대하실새, 천자가 사자를 보내어 왕상과 이여백을 위로하시고 용포(龍袍)를 상께 사급하고 이여송에게 호군할 은자(銀子)와 채단식물을 사급하시니 상과 이여송이 북향사배하고 다시 술을 나와 서로 권하시더니, 이여송이 계충 삼 개를 내어 상 위에 놓고 이르되,
 
244
“이 버러지는 서촉(西蜀) 회자국에서 진공한 것이니 하나의 값이 삼천 냥이라 사람이 먹으면 늙기를 더디 하는 고로 조선왕을 각별 대접하사 특별히 보내시더이다.”
 
245
하고 저(箸)를 들어 그 버러지 허리를 집으니 발을 허위적거리며 괴이한 소리를 지르니 부리는 검고 빛은 오색을 겸하였으니 보매 가장 홀란한지라, 상이 처음으로 보시매 한창 진어치 못하사 주저하시더니 이여송이 소왈,
 
246
“세상에 희귀한 진미(珍味)를 어찌 진어치 아니하시나이까.”
 
247
인하여 그것을 집어 먹으니 보는 자 낯을 가리우고 눈썹을 찡그리지 않을 이 없더라. 상이 가장 무료하여 안색을 변하시거늘,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항복이 급히 장 밖에 나와 사람으로 하여금 생낙지 칠 개를 얻어 쟁반에 담아 상께 드리니 저로 집어 진어하실새 낙지발이 저에 감기고 또 수염에 감기는지라, 상이 또 이여송을 권하신대 이여송이 낙지의 거동을 보고 눈썹을 찡그리고 능히 먹지 못하거늘 상이 소왈,
 
248
“대국 계충과 소국 낙지를 서로 비하매 어떠하뇨.”
 
249
이여송이 대소하고 다른 말하더니 이때 경상병사 김응서가 잔치에 참여하였다가 나아와 이르되,
 
250
“금일 연석에 즐길 것이 없으니 소장이 검술(劍術)을 시험코자 하나이다.”
 
251
여송이 허락한대 응서가 즉시 빛나는 군복을 입고 두 손에 비수(匕首)를 가로 잡고 대명전(大明殿) 월대(月臺)에서 검술을 시작하니 중국 사람과 아국 사람이 좌우에 둘러 구경할새 검광이 응서의 몸을 둘러 백설이 날리는 듯하더니 홀연 사람은 보지 못하고 은독[銀甕] 하나가 공중에서 구르는지라. 보는 자 칭찬 않을 이 없더라. 이윽고 응서가 검무를 파하고 당전에 나아가 이여백에게 왈,
 
252
“소장이 삼국적 관운장(關雲長)께 비하면 어떠하니이까.”
 
253
여백이 소왈,
 
254
“네 어찌 이런 오활(迂闊)한 말을 하느뇨, 너희 열이 내 부장 낙상지를 당치 못하고 낙상지 열이 나를 당치 못할 것이요 나 열이 관공(關公)을 당치 못하리니 네 비록 종일을 죽였으나 어찌 관공께 비하느뇨.”
 
255
응서가 무료히 물러가니라.
 
256
선시에 심유경이 일본에 들어가 소섭으로 더불어 관백의 항표(降表)를 가지고 중국에 돌아오니 천조가 거짓 항표라 하여 의심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적이 진주를 함몰하니 그 일이 허탄한지라. 중국이 소섭을 요동에 두고 오래 희보치 아니하더라.
 
257
이때 이여송이 제장으로 더불어 돌아가고 오직 사천총병 옥정과 남성장사 오유충 왕필적 등을 각각 일지군을 거느려 성주 등처에 주찰하였더니 노약(老弱)은 군량 운반하기에 곤하고 장정은 싸움에 곤할 뿐 아니라 여역(礪疫)이 대치(大熾)하여 인민이 거의 다 죽게 되었고 사람을 서로 잡아먹는지라. 유정 등이 군사를 남원에 옮기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경성에 와 십여 일을 머물더니 또 서로 돌아가고 적이 오히려 해상에 있으니 인심이 흉흉하더라.
 
258
조선이 다시 청병사를 천조에 보내다. 경략사 송응창(宋應昌)이 죄를 얻어 돌아가고 고양겸이 요동에 이르러 부장 호척으로 하여금 글월을 아국 군사에게 부치니 그 대략에 가라사대,
 
 
259
왜적이 호흡 사이에 조선 삼도를 파하고 왕자와 배신을 사로잡으니 황상이 크게 놀라서 군사를 일으켜 문죄하시매 적이 천위를 두려 왕자와 배신을 도로 돌려보내고 마침내 멀리 도망하니 조정이 소국을 대접하심이 이에 지나지 못할지라, 이제 양향(糧餉)을 이루지 못할 것이요 군사를 또한 다시 쓰지 못할지라, 왜적이 또한 천위를 두려 항복하기를 청하고 또한 봉공하기를 구하매 천조 바야흐로 다시 침노치 않게 하려 하나니 이는 천조가 조선을 위하여 구완지계를 함이어늘 이제 조선이 양식이 진하여 사람이 서로 먹기에 이른지라. 스스로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시 군을 청함은 무슨 연고뇨. 대국이 이제 병량(兵糧)을 발치 아니하고 또 왜적을 봉공하기를 그치면 적이 반드시 노를 벌할 것이니 조선이 어찌 화를 면하리요. 모름지기 일찍이 장구한 계교를 정하라. 옛날 월왕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서 곤하였을 제 어찌 오왕 부차(夫差)의 고기를 먹고자 하지 않았으리오마는 오히려 분(忿)을 참고 욕(辱)을 견디어 마침내 원수를 갚았나니 이제 조선 군신이 분을 참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기를 생각한즉 천의(天意) 순환하기를 바라리니 어찌 복수할 일이 없으리요.
 
 
260
하였더라.
 
 
261
호척이 관중에 머무른 지 달이 남되 조정 의논이 능히 결치 못하는지라. 유성룡이 탑전(榻前)에 계사하대,
 
262
“왜인의 봉공을 청함은 대의에 불가하오니 마땅히 근일 사정을 자세히 주문하여 증조 처분을 기다리게 하소서.”
 
263
상이 그 말을 좇으사 허유로 하여금 지주사(知奏事)를 삼아 즉시 발행케 하였더니 천조에서 왜사 소섭을 황경(皇京)으로 불러 세 가지 일을 언약하니, 하나는 다만 봉왕하기를 허함이요 입공하기는 허치 않으며, 둘은 하나도 부산에 머무르지 아니함이요, 셋은 다시 조선을 침노치 아니함이라. 소섭이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하여 약속함을 좇으리라 하거늘 천조가 심유경으로 하여금 소섭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왜진에 가 성지(聖旨)를 권유하라 하시고 이종성과 양방현으로 더불어 상부사(上副使)를 삼아 일본에 보내어 평수길을 봉하여 옹을 삼고 종성 등으로 조선에 머물러 왜인이 다 돌아간 후 가라 하시니라.
 
264
을미 사 월에 천사(天使) 종성 등이 조선에 이르러 왜인의 해도(海渡)하기를 재촉하니 적이 거제와 웅천에 둔취하였던 두어 진을 거두어 신(信)을 보이고 이르되,
 
265
“평양에 속았으니 천사 왜진에 온 후 바야흐로 언약같이 하리라.”
 
266
한대 팔 월에 양방현이 먼저 부산에 이르러 적이 오히려 천연(遷延)하고 다시 상사를 청하니 사람이 의심할 이 많으되 홀로 병부상서 석성(石星)과 심유경이 이르되,
 
267
“왜인이 별로 다른 뜻이 없다.”
 
268
하고 또 퇴병하기를 급히 하여 여러 번 이종성을 재촉하니 부사 양방현이 홀로 대진에 있어 여러 도적을 무휼하고 아국에 이문하여 경동치 말라 하고, 심유경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더라. 이종성이 왜진을 떠나 도망할새 감히 대로로 가지 못하고 성주로 좇아 경성에 이르러 인하여 서로 돌아가니라. 양방현이 왜진에 머무른 지 수월이 지난 후 심유경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돌아와서 겨우 촉도에 둔취하였던 도적을 거두고 다만 부산에 있는 군사만 거두지 아니하고 양방현으로 더불어 바다를 건너갈새 심유경이 아국 사신을 데려가고자 하여 그 조카 심우지를 보내어 재촉한대 조정이 즐겨 듣지 아니하더니 무신이 한가지로 가려 하거늘 무신 이봉추로 사신을 삼아 보내려 하니 혹왈,
 
269
“무신이 문사에 익지 못하여 그릇함이 많으리니 문관 중 해사(解事)하는 이를 가려 보내라.”
 
270
한대 이에 접반사 황신으로 사신을 삼고 발행케 하니 천사 심유경 등이 조선 사신으로 더불어 행하여 일본국 중에 이르러 관백을 보니, 평수길이 처음은 위의를 갖추어 봉작(封爵)을 받으려 하다가 홀연 좌우에게 묻되,
 
271
“조선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
 
272
소섭이 대답하되,
 
273
“이는 조선 말짜 신하 황신(黃愼)과 이봉춘이니라.”
 
274
수길이 대로 왈,
 
275
“내 일찍 조선 왕자를 돌려보내었는데 조선이 마땅히 왕자를 보내어 사례함이 옳거늘 이제 지극히 낮은 신하로 사(使)를 삼아 보내었으니 이는 나를 업신여김이라.”
 
276
하고 즐겨 왕작을 받지 아니하는지라.
 
277
황신 등이 시러곰 국서(國書)를 전치 목하고 즉시 양방현 심유경으로 더불어 재촉하여 돌아올 제 또한 천조의 사은함이 없더라. 청정이 뒤를 따라 대군을 거느려 부산에 이르러 말을 전하여 이르되,
 
278
“만일 조선 왕자 이르러 사례치 않으면 우리 또한 군사를 물리지 아니하리라.”
 
279
하니 대개 평수길의 구하는 바라, 다만 봉작뿐이 아니라, 천조 다만 봉작을 허하니 수길이 이로 인하여 군사를 물리지 아니하더라. 당초에 심유경이 왜진에 출입하여 다닐 제 평행장으로 하여금 사리 미후한 고로 일을 임하여 구차히 미봉하고 실정을 말하지 아니한 고로 천조 아국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저에게 속은 바더라. 이미 아국이 사신을 천조에 보내어 그 일을 주문하니 이로 인하여 병부상서 석성과 심유경이 다 죄를 얻고 천병이 다시 나오니라.
 
 
 
 

7. 원균(元均)과의 불화

 
281
처음에 경상수사 원균(元均)과 통제사 이순신이 구함을 입어 능히 보전하였는 고로 서로 사귐이 가장 후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서로 공을 다투어 틈이 있는지라, 이로 인하여 조정이 원균을 옮겨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삼았더니, 원균의 성정이 본디 시험할 뿐 아니라 순신의 벼슬을 앗고자 하여 순신을 모함하니 매양 이르되,
 
282
“순신이 처음에 나를 구하지 말고자 하다가 나의 괴로이 청함을 보고 경상도에 이르러 크게 이겼으나 이는 실로 나의 공이라.”
 
283
하고 또한 원균을 도와 순신을 훼방하는 자 많으되 홀로 이원익이 그렇게 여기지 아니하고 또 이르되,
 
284
“순신이 원균으로 더불어 각각 경계를 지켰으니 처음에 즉시 나오지 아니함이 고이치 아니하다.”
 
285
하더라. 병진에 이르러 적장 평행장이 거제(巨濟)에 이르러 결진하고 순신의 위병을 꺾어 백계(百計)로 도모코자 할새 그 수하 말장 요시라(要時羅)로 하여금 반간(反間)하는 계교를 행하라 한대 경상병사 김응서의 진중에 들어가 응서를 보고 은근히 이르되,
 
286
“우리 주상 평행장이 본디 강화할 뜻이 있거늘 청장이 홀로 싸움을 주장하니 이로 인하여 서로 틈이 있는 고로 우리 주상이 반드시 청정을 죽이고자 하는지라. 오래지 아니하여 청정이 다시 나오리니 우리 즉시 소식을 통하거든 조선이 통제사로 주사를 거느려 나와 치면 가히 청정을 버혀 조선 원수를 갚고 또한 우리 주상의 한을 씻으리라.”
 
287
하고 인하여 거짓 진실하는 일을 뵈는 체하더라. 응서가 그 일을 주문하니 조정이 그 말을 믿을 뿐 아니라, 유근수 더욱 그 말을 주장하여 기회를 가히 잃지 못하리라 하고 여러 번 계청하여 이순신으로 하여금 나아가 청정을 치라 하고, 또 도원수 권율이 한산진(閑山陳)에 이르러 순신에게 왈,
 
288
“그대는 마땅히 요시라의 언약을 좇아 기뢰를 잃지 말라.”
 
289
하는지라. 순신이 이미 간사한 도적의 계교인 줄 알고 여러 날 주저하고 나아가지 아니하더니 정유(丁酉) 정월에 이르러 운천에서 글을 보하되,
 
290
“금월 십오 일에 적장 청정의 전선이 이미 장문도에 이르렀다.”
 
291
하고 요시라 또 이르되,
 
292
“청정이 이미 뭍에 내렸는지라, 기회를 잃으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요.”
 
293
하고 거짓 뉘우치기를 마지아니하니 조정이 듣고 허물을 순신에게 돌려보낼 뿐 아니라 대간(臺諫)이 계사하여 나국엄문(拿鞠嚴問)함을 청하고, 현풍현감 박성이란 사람이 또한 상소하여 순신을 버힘이 가하다 하거늘 상이 즉시 금부도사(禁府都事)를 보내어 이순신을 나래(拿來)하시고 원균으로 통제사를 시키시고 오히려 진적(眞的)한지 모르사 어사(御使)를 보내어 염탐하라 하시니, 어사 발행하여 전라도에 이르러 보니 인민이 다투어 길을 막고 순신의 원억(冤抑)함을 고하는자 무수하되 어사 실문치 아니하고 다만 이르되,
 
294
“청정의 전선이 해중에 걸려 칠 일을 능히 운동치 못하는지라, 아군이 만일 나아간들 반드시 사로잡을러니 이순신이 짐짓 두류(逗遛)하고 기약을 잃었다.”
 
295
하는지라.
 
296
이 날 김명원과 관부사 정탁(鄭琢)이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였더니 주하되,
 
297
“왜적이 물에 가장 익거늘 어찌 칠 일을 해로에 걸리게 하리이까. 이 말이 실로 허(虛)한가 하나이다.”
 
298
상이 가라사대,
 
299
“내 뜻과 같은지라, 가히 그 실상을 구핵(究覈)하리라.”
 
300
하시더라. 그 후에 원균이 패하고 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대공을 세우고, 전일 어사 되었던 자가 옥당(玉堂) 벼슬하여 입직하였는지라, 동류가 조용히 묻되,
 
301
“왜적의 전선이 해중에 칠 일을 걸려다 함을 어느 곳에서 들었느냐. 내 또한 호남의 어사 되어 갔으되 이 말을 일찍 듣지 못하였도다.”
 
302
기인(어사)이 능히 대답지 못하다가 가장 부끄러워하더라.
 
303
정유(丁酉) 이 월에 순신이 나명(拿命)을 만나 장차 경성을 향할새 일로의 군민이 길에 메여 이르되,
 
304
“이제 장차 어디로 가시느뇨. 우리 등이 이로 좇아 능히 죽기를 면치 못할까 하나이다.”
 
305
하더라. 순신이 이미 행하여 경성에 이르매 혹 이르되,
 
306
“상이 노하시고 조정 의논이 또한 중하니 일을 가히 중량치 못하리라.”
 
307
한대 순신이 이르되,
 
308
“사생(死生)이 유명(有命)하니 어찌 죽기를 두려하리요.”
 
309
하더라.
 
 
310
화설, 이순신이 옥중에 들어가매 혹 이르되,
 
311
“뇌물(賂物)이 있은즉 죽기를 면하리라.”
 
312
한대 순신 왈,
 
313
“사즉사의(死卽死矣)라. 어찌 회뢰(賄賂)를 행하고 구차히 살기를 도모하리요.”
 
314
하더라. 이때 순신의 제장의 친족이 경사에 있는지라, 순신의 하옥(下獄)함을 보고 행여 연루(連累)함이 있을까 두려하더니 순신이 초사(招辭)하기를 당하여 다만 전후 수말(首末)을 베풀 따름이요 조금도 다른 사람을 인증(人證)함이 없는지라, 듣는 자 탄복지 아닐 이 없더라. 상이 금오당상(金吾堂上)으로 하여금 순신을 향문 일차 후에 대신을 명하여 다시 그 죄를 의논하라 하신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정탁(鄭琢) 주왈,
 
315
“순신은 명장이라, 여러 번 대공을 세웠으니 가히 죽이지 못할 것이니 군정의 이해를 멀리 있어 헤아릴 바 아니라 순신이 나아가지 아님이 아니니 청컨대 잠깐 관서(寬恕)하옵시어 후에 공을 세워 죄를 속하게 하옵소서.”
 
316
상이 그 말을 좇으사 잠깐 삭직(削職)하여 도원수 막하(幕下)에 충수케 하라 하시나 원래 노모(老母)의 나이 구십이라 충청도 아산(牙山)땅에 있다가 순신의 하옥함을 듣고 마음에 놀라 인하여 죽었는지라. 순신이 옥에서 나와 전 원수의 진중으로 갈새 길이 아산을 지나는지라. 잠깐 들어가 성복(成服)하고 즉시 발행할새 크게 통곡하여 왈,
 
317
“이제 충효(忠孝)를 양실(兩失)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318
하더라.
 
 
319
차설, 판중추 정추밀이 주왈,
 
320
“순신은 명장이라, 여러 번 대공을 세웠으니 죄 비록 중하나 죽이지 못할 것이요 또한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순신의 죄를 아직 사하여 후에 공을 이루어 죄를 속하게 하소서.”
 
321
상이 의윤(依允)하사 순신을 도원수 권율 막하에 충군(充軍)하여 두시니라.
 
322
정유 오 월에 천자 다시 군사를 발하여 병부상성 형개(邢玠)로 군무총독을 삼고 요동조정사 양원호로 경리를 삼고 총병관 마귀(麻貴)로 제독을 삼아 조선을 구할새 부장 동일 원유정 등이 각각 일군을 거느려 먼저 이르러 전라도로 내려가 남원을 지키니 대개 영남은 호남을 왕래하는 길이요 성이 자못 굳은지라. 이러므로 지키더라. 성 외에 곤룡산성이 있으니 제장이 이곳을 지키고저 하거늘 양원호가 들어와 해자(垓字)를 깊이 하고 양마장(養馬場)을 만들어 오래 지킬 뜻을 하더라.
 
 
323
재설, 이순신이 한산도에 있을 제 한 집을 짓고 우주당(宇宙堂)이라 하고 제장과 그 집에서 의논할새 지어소졸(至於小卒)이라도 하정(下情)을 통하더니, 원균이 통제사 되매 모든 기녀(妓女)를 우주당에 모으고 장(場)을 둘러 내외격절(內外隔絶)하니 제장이 그 낯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균의 천성이 잔포(殘暴)하여 형장을 과히 하니 일군이 변심하여 이르되,
 
324
‘적병이 이르면 도주할 따름이라.’
 
325
하더라. 칠 월에는 반간(反間)하는 계교를 행하여 이순신을 해하고 또 경상병사 김응서의 진에 이르러,
 
326
“왜군이 장차 청정의 뒤를 따라 나오나니 조선이 이번은 기회를 잃지 말고 군사를 준비하였다가 치라.”
 
327
한대 도원수 권율이 그 말을 믿을 뿐 아니라 이순신이 이미 지류(遲留)하고 나지 아니하다가 죄를 당하였는지라. 다만 원균의 진병함을 재촉하니 균이 순신을 함해(陷害)하고 그 대신 통제사 되었으니 형세 비록 어려우나 마지못하여 군사를 거느려 앞으로 나아가니 적이 언덕위에 영채를 세웠다가 아국 전선이 이름을 보고 서로 전하여 소식을 통하더라. 원균이 전선을 재촉하여 절영도(絶影島)에 이르렀더니 풍랑이 대작하며 날이 이미 저물었고 전면을 바라보니 왜선 수백 척이 해중에 출몰하고 즐겨 나오지 아니하니 균이 제군을 총독하여 싸우고자 하되 주중사람이 한산도로부터 종일토록 배를 저어 왔는지라, 피곤하고 또 기갈(飢渴)이 심하여 능히 배를 운동치 못하고 적이 즐겨 교봉(交鋒)치 아니하더니 밤들기에 이르러 전선이 표박하여 지형을 알지 못하는지라. 원균이 겨우 남은 배를 거두워 가더니 덕섬[加德島]에 다다라 중군이 다 기갈을 견디지 못하여 다투어 배에서 내려 물을 먹더니 적병이 그 섬중을 내달아 크게 엄살하니 원군이 장사 백여 인을 잃고 거제(巨濟) 칠천도[漆川梁]로 물러오니 도원수 권율이 원균을 고성에서 불러 책하여 왈,
 
328
“네 일찍 이르기를 이순신이 싸움을 잘못하고 도적을 두려한다 하더니 네 이제 나지 않음은 어쩜이뇨.”
 
329
하고 인하여 결장오도(決杖五渡)하니 원균이 진중에 돌아와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술에 취하여 장중에 누웠으니 제장이 능히 서로 보지 못하는지라, 일군이 분부하여 각각 흩어지고자 하더니, 차야에 적선이 크게 이르러 군사를 사면에 싸고 일진을 대살하니 균의 군사 대란하여 네 녘으로 흩어지는지라, 원균이 대경하여 소선을 타고 도망하여 해변 언덕에 올라 대구로 달아나더니 몸이 비둔(肥鈍)하여 능히 닫지 못하는지라, 길가의 소나무 허리를 안고 감히 일어나지 못하더니 종자 다 헤어지고 혹 이르되,
 
330
‘도적의 해를 만났다.’
 
331
하고 혹은,
 
332
‘멀리 도망한다.’
 
333
하니 그 진가(眞假)를 아지 못할러라.
 
334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대진이 패함을 보고 힘써 싸우다가 적세 급한지라, 능히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인하여 물에 빠져 죽으니 삼도 수차 도적에게 함몰한 바 된지라, 적세 더욱 치성(熾盛)하더라.
 
335
전시에 경상수사 배설(裵偰)이 여러 번 원균의 패할 형세를 간하되 균이 즐겨 듣지 아니하더니 이 날 또 이르되,
 
336
“칠천도는 물이 얕아 선천선천 왕래하기 편치 못하니 진을 다른 데로 옮김이 가하다.”
 
337
하되 원균이 마침내 듣지 아니하는지라, 배설이 애달아 가만히 본부 전선을 모으고 다만 변이 있음을 기다리더니 과연 적병이 이름을 보고 달아났는 고로 그 군사 홀로 보전하니라. 배설이 이미 난을 벗어나매 즉시 양초(糧草)를 불지르고 도중에 있는 백성을 멀리 피난케 하니라. 한산도 이미 패하매 적이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남해 순천을 함몰하고 인하여 군을 몰아 남원을 싸니 양호(兩湖)가 진동하더라. 대개 적이 아국에 들어옴으로부터 오직 우리 수군을 피치 못하였더니 평수길이 평행장을 책하여,
 
338
“반드시 주사(舟師)를 취하라.”
 
339
하는지라. 행장이 이로 인하여 이순신으로 하여금 죄를 얻게 하고 또 원균을 유인하여 행중의 허실을 탐지한 후 드디어 엄습하여 파하니 그 계교 여차하되 아국은 아지 못하고 그 계교에 빠져 이에 미치니 어찌 가석지 아니하리요.
 
340
이때 이순신이 권율을 좇아 초계에 있더니 권율이 원균의 패함을 듣고 급히 이순신을 진주에 보내어 산병(散兵)을 초집(招集)하라 하였더니 팔 월 초삼 일에 조정이 비로소 한산도(閑山島) 패함을 듣고 사람마다 놀라 아무리 할 줄 모르더라. 상이 제신을 불러 의논하신대 군신이 감히 대답지 못하더니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과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이 주하되,
 
341
“이는 진실로 원균의 죄라. 가히 다시 이순신으로 하여금 삼도 수군을 총독케 하소서.”
 
342
상이 그 말을 좇아 순신을 기복(起復)하여 통제사를 삼으니 흩어진 장사 이 소식을 듣고 점점 모이는지라. 순신이 즉시 군관 십여 인과 군사 수십 명을 거느려 진주에서 급히 달려 옥과(玉果)에 이르니 도내 사민이 길이 메여 순신의 오는 양을 바라보고 건장한 군민은 그 처자에게 이르되,
 
343
“우리 사또 이르니 너희들이 죽기를 면하리라, 우리는 먼저 가나니 너희 등은 차차 오라.”
 
344
하더라.
 
345
순신이 행하여 순천에 들어가니 백성이 따르는 자 부지기수라. 병기를 수습하여 보성에 이르니 군사 이미 수백여 인이라. 드디어 해평도에 이르니 전선이 겨우 십여 척이 있는지라, 즉시 전라우수사 김억추를 불러 전선을 수습하게 하고, 또 제장을 불러 분부하여 빨리 선척을 만들어 군용을 돕게 하고 드디어 언약하여 왈,
 
346
“우리 등이 왕명을 받자왔으니 마땅히 죽기를 그음하여 나라를 갚으리라.”
 
347
하니 모든 장졸들이 감도치 않을 이 없더라.
 
 
348
재설, 이순신이 전선을 거느려 어란포(於蘭浦)에 이르니 적선 십여 척이 나와 아군을 엄습코저 하거늘 순신이 금고를 울리고 기를 두르며 전선을 재촉하여 짓쳐 나아가니 적이 능히 대적지 못하고 각각 배를 돌려 달아나니라. 순신이 적군을 물리치고 제장을 모으고 충루(忠淚)를 흘려 왈,
 
349
“순신이 국은을 망극히 입었는지라. 성은(聖恩) 갚기를 사모하나 미치지 못하는지라, 즉금 제장의 힘을 입어 다행이 도적을 물리쳤으나 원균의 해이한 후를 이었는지라. 도적이 반드시 또 이를지니 만일 해이하면 방어키 어려우리라. 각 채에 지휘하여 싸울 기계를 준비하였다가 불의지변을 방비하라.”
 
350
제장이 또한 눈물을 흘리고 청령하여 선척과 화포를 정제하고 기다리더니 과연 그날 밤에 적선이 이르니 후망군(堠望軍)이 급히 보하니 마군(馬軍)이 이미 준비하였더라.
 
 
351
재설, 이순신이 드디어 전선을 거느려 어란포에 이르니 적선 십여 척이 나아와 아군을 엄습하고자 하거늘 순신이 금고를 크게 울리고 기를 두르며 전선을 재촉하여 나아가니 도적이 능히 대적지 못하여 달아나거늘 순신이 뒤를 따라 짓쳐 크게 엄살하고 드디어 진도 벽파진(碧波津)에 진치고 경상우병사 배설로 더불어 도적 파할 모책을 의논할새 배설이 이르되,
 
352
“대주사 힘이 외롭고 일이 급하였으니 마땅히 배를 버리고 뭍에 올라 영남으로 나아가 도원수의 진중에 의지하여 싸움을 도움만 같지 못하다.”
 
353
하거늘 순신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는지라. 배설이 군사를 버리고 도망하려 하거늘 순신이 사로잡아 인하여 버히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더니 홀연 적선 백여 척이 군사를 몰아 나아가니 왜적이 능히 대적지 못하여 달아나거늘 순신이 즉시 쟁을 울려 군을 거두어 군중에 전령하여 가로되,
 
354
“오늘밤 도적이 반드시 우리 진을 엄습할 것이니 제장은 준비하였다가 변을 기다리라.”
 
355
하더니 차일 적이 과연 이경(二更)에 진 앞에 이르러 포성이 대발하며 아군을 놀래거늘 아군이 이미 준비하였는지라, 또한 방포하여 서로 응하니 적이 아군을 경동치 못할 줄 알고 물러가니 대개 야경(夜警)하기로써 한산도에 의지함을 얻은 연고라. 이 해 조정이 주사로써 힘이 외로워 도적을 막지 못하리라 하여 순신으로 하여금 뭍에 내려 싸우라 하니 순신이 즉시 주문(奏聞)하여 가로되,
 
356
“임진년으로부터 이제까지 육 년 간 도적이 감히 횡행치 못함은 아국 수군이 험요(險要)한 곳을 지킨 연고라. 신이 이제 전선 수십여 척이 있으니 만일 주사를 거느려 죽기로써 싸운즉 가히 공을 이루려니와 만일 주사를 폐한즉 왜적이 양호로 좇아 바로 한수(漢水)에 이르리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요, 그러나 신이 죽기 전에는 왜적이 감히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357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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