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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토(糞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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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7월
김동인
1944년 7월 《조광》에 발표된 후 총독부 검열로 중단된 「분토의 주인(糞土의主人)」, 1948년 《태양신문》에 연재 중단된 「을지문덕」과 하나의 계열체를 이루는 작품이다
목   차
[숨기기]
1
분토(糞土)
 
2
(몇 해 전 某誌[모지]의 부탁으로 그 誌上[지상]에 연재하려고 쓰려다가, 총독부 당국의 금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이야기다. 지금 좋은 기회를 얻어 다시 착수하게 된 것은 오직 작가인 나 한 사람의 기쁨만이 아닐 것이다.)
 
 
 

1. 出發[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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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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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두 신발 한 켤레만 밑지었군.”
 
6
제 발을 들어 보았다.
 
7
지푸라기가 모두 헤어져서 사면으론 수염을 보이는 짚신―.
 
8
“신발 서른 뭇을 허비했으니 벌써 삼백 일인가. 그동안의 소득은 단 두 뿌리….”
 
9
산삼(山蔘)을 구하고자 편답하는 삼백여 일에 간신히 두 뿌리를 얻고는 그냥 헛애만 쓰는 자기였다.
 
10
문득 눈을 들어 맞은편을 건너다보았다. 계곡(溪谷) 하나를 건너서 맞은편에 보이는― 역시 깎아세운 듯한 벼랑에는 나무가 부접할 흙도 없는 양하여 겨우 잔솔 몇 포기와 지금 바야흐로 단풍 들어가는 낙엽수 몇 그루가 석양볕 아래서 잎을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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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팔죽지만한 산삼 한 뿌리를 얻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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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건너다보았다. 건너다보다가 눈을 도로 아래로 떨어뜨렸다.
 
13
굽어 보이는 계곡― 거기는 까마아득한 저 아래 골짜기에 무엇이 아물거리는 것 같다.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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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주어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눈주어 보니 거기는 웬 사람이 하나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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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하였다. 보통 사람이 다닐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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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객일까? 인가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외딴 이 심산에 유람도 괴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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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초부나 목동도 아니었다. 의관까지 한 듯하니, 점잖은 사람인 모양인데 그런 사람이 단 혼자서 이 심산에 방황하는 것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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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파대(淵巴大)는 잠시 굽어보다가 그리로 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20
땅과 돌을 파기 위하여 가지고 다니던 연장을 구럭에 수습하고 그 자리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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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과 바위를 평로(平路) 다니듯 다니는 파대는 교묘히 몸의 중심을 잡아가면서 깎아세운 듯한 바위와 낭떠러지를 아래를 향하여 더듬었다.
 
22
앞에까지 이르렀다. 이르러 보매 아래의 사람은 파대가 내려오는 것을 안 모양으로 바위에 기대어 파대가 다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3
나이는 사십 혹은 오십 혹은 육십― 대중하기 힘들었다. 탄력 있는 피부와 빛나는 안광과 굵은 수염 아래 꼭 닫겨 있는 입 등으로 보아서는 사십 안팎의 장년인 듯이도 볼 수 있는 한편, 그 침착하고 인생에 피곤한 듯한 온 표정은 오십 육십의 노인으로도 볼 수가 있었다.
 
24
“여보소, 젊은이. 어디루 가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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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대가 물으려던 말을 도리어 묻기었다. 파대는 공손히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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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근처의 사람입지만 대인께서는 어디루 가시던 길이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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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 사람이면 잘 알겠군. 이 근처에 소리골이라는 데가 어느 편에 달렸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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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골은 여기서 백여 리가 남습니다. 그 소리골은 누구를 찾아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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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어느 방향이외까?”
 
30
“남쪽으루―.”
 
31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려 하였다. 그러나 가리키려는 방향에는 하늘 찌를 듯한 벼랑이 마주서 있어 가리킨댔자 벼랑밖에는 가리킬 수가 없었다.
 
32
“방향은 남쪽입지만 가시자면 이 골짜기로 이렇게―.”
 
33
그러나 요리 굽고 조리 굽고 그 위에 사면에 지류(支流)가 얽힌 이 골짜기로서 또한 어떻게 설명을 하나?
 
34
“참, 대인. 이렇게 하세요. 무턱하구 한참 남쪽으루 가시다가 사람을 ― 초부든가 약초(藥草)꾼이든가 만나시기만 하시거든 그 사람한테 을지대신(乙支大臣) 동네가 어디냐구 물으시면 다 알리다. 소리골이라면 모를 이도 있겠지만 을지 대신공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읍니다. 그렇게 물어가시는 편이 가장 첩경이리다.”
 
35
“내가 그 소리골서 온 사람이외다. 하두 심심하기에 어제 점심을 싸가지구 집을 떠나 이리저리 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길을 잃고― 어젯밤은 어느 토굴에서 한밤을 자구 오늘두 지금껏―.”
 
36
“아이!”
 
37
파대는 깜짝 놀랐다. 어제 점심만 싸가지고 떠난 이라니, 어제 저녁은? 오늘 조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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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장하시어요? 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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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두 약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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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집으로 잠깐 가시지요. 고 바위 지나서 막을 하나 틀고 살고 있읍니다. 얼마나 시장하시구 고단하실까….”
 
41
그 사람은 천천히 눈을 구을려 파대를 보았다.
 
42
“젊은이 마음씨 곱기두 해라.”
 
43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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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5
파대는 손님을 모시고 토막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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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쉬세요. 제가 저녁마련을 하오리다. 더러운 방입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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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대는 손님을 방(방이래야 나무를 찍어다가 얼커리한 단간방이다)으로 들어모시고 자기는 저녁준비를 하였다.
 
48
손님 시장한 것도 시장하겠거니와 어서 손님께 저녁을 드리고 손님께 여쭈어 보고 싶은 말이 있다. 손님이 스스로 ‘소리골서 왔다’하니 그러면 소리골 을지 대신의 동정― 건강 등을 알 것이다. 그것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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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조급하지만 정성을 다하여 지은 저녁과 산채 등을 도마에 받쳐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니 손님은 피곤을 못이기어 벌서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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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대인!”
 
51
“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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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진지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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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잠이 들었었군.”
 
54
파대는 손님께 저녁을 드리고 자기는 뜰에서 따로이 저녁을 먹고 그리고 또 방에 들어가 보니 손님은 저녁을 어느덧 끝내고 또 잠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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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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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조반도 끝난 뒤에야 파대는 비로소 손님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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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께서는 을지 대신을 조석으로 늘 뵙겠읍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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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먼눈으로 잠깐만 뵈어도 그런 기쁨 없겠거늘 이 손님은 조석으로 늘 뵐 수가 있을 것이 파대에게는 부러웠다.
 
59
손님은 어제부터 (단 몇 마디지만) 스스로 묻는 말은 많았지만 이쪽에서 묻는 말에는 대답을 피하였다. 이번도 역시 대답은 피하고 스스로 파대에게 물었다.
 
60
“젊은이는 약초(藥草)를 캐시는 모양이구려.”
 
61
“대인. 오냐를 해 주세요. 보잘것없는 소동(小童)이올시다.”
 
62
“약초를― 보아하니, 약초장수도 아닌 듯한데 약초는 무엇에―.”
 
63
“대인. 제가 한 가지 여쭤볼 일이 있읍니다. 이것만은 대답해 주세요.”
 
64
대답마다 피하는 손님에게 좀 물어보기가 떨떨했다. 그러나 하두 답답하던 일이라 종내 물어보았다―.
 
65
“다른 게 아니라 산삼은 정성을 드리고 산신께 제사를 드려야 눈에 뜨인다합니다. 그래서― 저는 산삼을 구하려 일 년 가까이 전부터 이 산간을 편답하는데 처음에는 무론 산신께 제사를 드렸읍니다. 드린 그 날 신명의 도우심으루 손가락만한 삼 한 뿌리를 얻었읍니다. 그 다음 지난 여름에 그때는 제사도 안 드렸는데 팔죽지만한 걸 또 하나 만났읍니다. 그 뒤 그 이래로는 다시는 삼을 만나지를 못했읍니다. 아무리 제사― 지성껏 큰 제사를 몇 번을 드리고 또 드려도 다시는 눈에 안 뜨입니다. 이 향산(香山) 봉우리란 봉우리, 골짜기란 골짜기 제 눈에 벗어난 데가 한 군데도 없읍니다. 편답하고 살피고 들추어도 다시는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이게 제 정성이 부족한 탓일까요, 혹은 이 향산엔 인젠 삼이 없는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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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역시 대답 대신 질문이었다―.
 
67
“허어. 참 기특두 해라. 그래 두 뿌리씩이나 캐구두 그래도 부족이오? 신령도 과한 욕심엔 응감치 않으시겠지.”
 
68
“세 뿌리를 목적했읍니다. 꼭 세 뿌리는 캐낼 예정이었읍니다. 제 사사로운 욕심은 아니올시다.”
 
69
“고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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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답은 피해버린다.
 
71
“대인, 제 정성이 그래두 부족한 탓일까요? 혹은 인젠 이곳엔 삼이 없는 탓일까요?”
 
72
“왜 하필 세 뿌리오? 또 산삼장사두 아닌 양한데. 혹은 양친 공양에라두 쓰시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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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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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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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댁 근처에 사시는 을지 대신께 바치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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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을지에게? 을지가 혹은 무슨 친척관계라두 되시우?”
 
77
“아니옵니다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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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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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께서 정무에 너무 골몰하시어 몸이 고달프시어,‘소리골’내려오셔서 쉬신다고 듣자왔기, 대신께 바치려구― 아무 연분은 없읍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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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 뜻으루?”
 
81
“네. 고구려 만성(萬姓)된 자 누구 대신의 은공을 모르리까? 그 은공의 만분 일이나마 갚아 올리고자….”
 
82
“기특두 해라. 여보소 젊은이 그 정성에 (산삼이 있기만 하면) 왜 눈에 안뜨이리. 내 어제 오다가 정녕 산삼잎 같은 걸 본 일이 있는데, 나는 욕심두 안 나는 물건이기에 그냥 지났지만 정녕 산삼 이파리야.”
 
83
“그래….”
 
84
파대는 벌떡 일어섰다. 숨이 놀랍게 씨근거렸다. 숨차게 물었다.
 
85
“그게 어디 오니까?”
 
86
“어제 내가 서서 젊은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그 앞 바위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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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가십시다! 제가 업어 모시리다. 피곤하실 터이니―.”
 
88
“피곤은 다 삭았소. 그럼 가봅시다. 잎으루 보아, 있으면 꽤 큰 게 있을 모양이야.”
 
89
파대는 손님을 모시고 움막을 나섰다.
 
 
90
4
 
 
91
“클 줄 짐작했소.”
 
92
전고미문의 큰 산삼 한 뿌리를 캐어 놓고 파대는 너무 기쁘고 감격하여 멍하니 서 있을 때에 손님이 파대의 어깨를 두드리었다.
 
93
파대는 펄떡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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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인젠 목적한 세 뿌리― 더우기 마지막에는 이 동자(童子)만한 삼까지 얻었으니 이것 가지구 곧 소리골로 가겠읍니다. 대인두 소리골루 가실테면 저하구 같이 가십시다.”
 
95
손님을 거기 멈추어 두고 혼자서 움막으로 돌아왔다. 산삼을 찾고 캐기 위하여 준비했던 모든 연장은 인젠 쓸데없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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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장들을 호기 있게 동댕이치고 그 새 연여(年餘)의 소득이었던 두 뿌리 산삼(손가락만한 것과 팔죽지만한 것 각 한 뿌리씩)을 지금 캔 바의 동자만한 것과 함께 잘 싸서 간수하고, 손님을 세워두었던 곳으로 달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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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가십시다. 곤하시거던 업어 올리오리다.”
 
98
“곤하긴―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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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대로 평탄한 시냇가를 잡아, 그들은 길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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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 정갈한 곳을 찾아 점심을 먹고 또 길을 더듬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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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가다가 문득 보니 저편 맞은편에는 웬 한 떼거리의 인마가 보인다.
 
102
길없는 산곡에 그것도 한 떼거리의 인마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103
모양은 조금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곳까지 이르러 보니 인마의 중심에는 꽤 높은 관원(官員)도 있는 듯하며 또한 맨 중심에는 빈 수레(매우 고귀한 사람이 탈 만한)까지 한 채 있고 그 빈 수레를 관원 여섯이 끌고― 모시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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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찾아오는 모양이군.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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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이마에 대고 바라보며 손님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106
나를 찾아? 파대는 눈을 들어 손님의 얼굴을 보았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그러나 거기는 어디인지 자애(慈愛)와 위의(威儀)가 역연히 드러나 있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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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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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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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께서는 혹은―(숨찬 숨 허덕이었다) 황공합니다만 을지 대신이 아니시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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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을지오.”
 
111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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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혔다. 넓적 엎드렸다. 엎드린 그의 눈앞에 을지 대신의 먼지 덮인 신발이 있었다. 파대는 대신의 발을 쓸어 안았다. 제 얼굴을 함부로 대신의 발에 부비었다. 감격과 감사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쁜 감정에 눈물만 펑펑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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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을지 대신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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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사모하고 존경하고 숭배하던 어른을 모신 줄도 모르고 자기는 혹은 무슨 창피스런 일 망신스런 일이라도 하지 않았던가. 지난 저녁 그 더럽고 좁은 방에 반찬도 없는 음식에, 게다가 그 곁에서 자기까지― 코나 요란스럽게 골지 않았던가. 땀내 나는 등에 업어드리고― 무슨 일인지, 가슴에 치받치어 뒤앞을 가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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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일어섰다. 마주오는 인마를 향하여 아직 소리는 들리지 않을 원거리(遠距離)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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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님 여기 계십니다. 여기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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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고함지르며 맞받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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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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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 칙사(勅使)가 칙령(勅令)을 받들고 내려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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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한 국사(國事)가 생겼으니 대신(大臣)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곧 상락(上洛)하라는 칙명이었다. 을지 대신은 고요히 눈을 들어 칙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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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무양하오시다니, 듣잡기 기쁘지만, 갑자기 나를 부르시게 된 그 연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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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숙여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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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陳)나라와 수(隋)나라는 그냥 다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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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망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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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은 깜짝 놀랐다. 침착한 그의 안색까지 한순간 창백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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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수(隋)가 혼자 남았다? 양광(楊廣―수나라 천자)이가 중원(中原)의 주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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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됐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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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그럼 내 곧 상락(上洛)해야겠소. 우리 성상도 그 일루 나를 부르시는군. 자, 곧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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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과 칙사가 하는 문답을 듣고 있다가, 연파대가 한 걸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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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님. 상락하시려면 소인을 데리고 가 주세요. 가까이 모시구 무슨 심부름이든 하오리다. 이 삼도 변변치 못한 겝지만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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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고구려 평원(平原)왕 삼십일년 가을이었다.
 
 

 
 

2. 자라는 七百年[칠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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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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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가 부여 땅 한편 귀퉁이에 고구려 나라를 세운 것은 저 중원에는 한(漢)나라이 전성했을 한(漢)의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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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건국하면서 그 국시(國是)로 영토확장을 서북쪽으로 하기로 하였다.
 
137
천하의 패자(覇者)로 자임하고 있는 한족(漢族)의 전한(前漢)은 고구려 건국된 지 사십여 년 뒤에 왕망(王莽)에게 망하고 왕망이 세운 나라가 십여 년 ‘천하의 주인’ 노릇을 하다가 그도 또 유현(劉玄)에게 당하고, 유현이 삼 년간을 천자(天子) 노릇을 하다가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에게 망하고―.
 
138
이리하여 나라 주인의 기복(起伏)이 무상한 ‘한토(漢土)’에서도 ‘후한’은 기특하게도 일백 사오십 년간을 국가를 유지해 가지고 버틸 동안― 동방의 한 조그만 부락에서 발원(發源)한 고구려는 동남쪽으로는 ‘백제’와 ‘서라벌’ (신라라는 국호는 썩 후년부터야 썼다)을 꾹 눌러만 두고 동북으로 물길(勿吉―혹칭 말갈)이라는 효용한 민족을 손안에 넣어가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의 국토를 벌리어 나아갔다.
 
139
‘고구려’ 의 서쪽에 연접해 있는 요(遼)지방은 본시 부여의 강역이다. 부여의 강역이매 부여의 주인인 고구려는 내땅으로 여긴다.
 
140
그러나 한족(漢族)은 천하의 땅을 천자의 것이라 본다. 그런지라 천자의 직할지인 한 본토는 물론이요 외지(外地)도 모두 천자의 땅이라 하여 부여의 국력이 쇠약하고 고구려 아직 대성하기 전에는 동방 각곳에 산재해 있는 부여 영토지역들에(그것이 천자의 명이라는 견해 아래) 한인(漢人) 관리를 파견하며 혹은 주인 모호한 빈땅에는 한인으로 왕을 봉하고 하였다.
 
141
그러나 고구려의 세력이 차차 커가면서는 그런 한인 본위의 영토권은 개의하지 않았다. 한인인 왕이 있건 태수가 있건 고구려에 필요한 지역은 실력으로 회수하여 갔다.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도(玄菟) 등등 한인이 한의 영토라 하여 왕이나 태수를 보내어 다스리는 지역에도 연해 토벌의 손을 가하는 일방 서쪽의 요(遼) 땅도 본시 부여의 변경(邊境)이니 당연히 고구려가 차지할 땅이라 하여 회수하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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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한(前漢)에서 왕망(王莽)으로 또다시 후한(後漢)으로 이렇듯 국가놀이〔國家遊戱[국가유희]―국가소유자 경쟁〕에 분망한 한인은 이 고구려의 침식(侵蝕)을 막을 겨를이며 실력이 없었다. 고구려에게 내땅을 빼앗기거니 분하게만 보고 눈만 흘겼지 다른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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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도 생긴 지 백 사오십 년 영제(靈帝) 때에는 인제는 국가의 통일공작도 대강 끝나고 국내 안돈도 좀 피고 실력도 웬만치 자랐으므로 그 새 괘씸히만 보고 치만 떨고 있던 고구려에게 한 몽치 가하여 보려고 움직였다.
 
144
신대왕(新大王) 사년 후한 영제(後漢靈帝) 가평(嘉平) 원년 동짓달에 고구려 원정의 대군은 용감히 한나라를 떠났다.
 
145
고구려는 이 한의 대군의 내구(來寇)에 맞아 싸우지 않았다. 한군이 국내 깊이 들어오도록 다만 유격군으로 시달리는 뿐 회전(會戰)은 피하였다.
 
146
한군은 아무리 쫓아와야 누구 마주 싸워주지 않고 고구려 깊이 들어오매 식량수송 등도 곤란한 위에 날씨는 매운 겨울철이라 할수없이 도로 회군하기로 하였다.
 
147
무력전보다도 식량전과 수송전에 패하여 돌아가는 한군에게 고구려는 아직껏 감추어 두었던 온 병력을 모아 엄살하였다.
 
148
역사상에 이 싸움이 기록되기를
 
149
‘한군 대패하여 필마도 돌아가지 못하였다(漢軍大敗匹馬不返)’고 했다. 그로부터 십 수년 뒤 고구려 고국천(古國川)왕 금년 후한 헌제(獻帝) 중평(中平) 원년 이 철천의 원수 고구려를 어떻게든 멸하여 보려고 헌제는 요동 태수 공손(公孫) 씨를 명하여 또 고구려를 원정하여 보았다.
 
150
‘목 벤 것이 산과 같았다(斬首山積).’ 역시 참패하였다.
 
151
그로부터 오 년 뒤, 요동의 공손 씨(한족 계통이 아니다)는 한의 실력을 저울질하였으므로, 한의 굴레를 벗고 스스로 따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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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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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한 가지의 원인은 되겠지만, 본시부터 국가놀이, 천자되기 경쟁을 즐겨하는 한인들은, 후한도 선 지 백 사오십년 쯤 되어서는, 사면에서 천자되려는 무리들이 벌떼와 같이 일어났다. 고국천왕 말년경부터 산상(山上)왕 초년경에는 수만의 한인들이 이 ‘국가놀이’ 에 소란한 한토를 피해 낙원(樂園) 고구려로 와서 투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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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실(漢室)은 조조(曹操)에게 망하고 조씨의 위(魏)가 건설되자 촉에 유현덕(劉賢德)이 이어나서 촉한(蜀漢)을 이루고 강남에는 손권(孫權)이 일어나서 오(吳)를 세워 천하에 하나밖에 없어야 할 천자가 셋씩이나 생겼다.
 
155
여기서 천자의 위 경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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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자기네가 한실(漢室)의 뒤를 받았으니 자기네가 정통 천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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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은 한실은 유(劉)씨의 것이니 촉의 유현덕이야말로 한실의 정통주인이니 촉제야말로 천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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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부고(富庫) 천하의 중원 강남에 군림한 오야말로 진정한 중국천자노라고 오씨는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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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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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이(東夷) 고구려의 무세는 차차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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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동방의 오랑캐라 하여 우습게 보고 멸시하던 고구려지만 지금 세 천자 정립(鼎立)한 이때 그래도 호(胡)가 아니요 만(蠻)이 아닌 의관의 나라 (衣冠之國[의관지국]) 고구려를 자기네 편에 끌어넣으려는 공작과 경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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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東川)왕 사년 위의 둘째 임금 명제(明帝) 청룡(靑龍) 이년에 위에서 친선사가 많은 예물을 가지고 고구려로 찾아왔다. 이리하여 고구려와 위는 친선관계를 맺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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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다음해에 오에서도 고구려로 친선사가 찾아왔다. 고구려 이미 위와 친선관계를 맺었으니 우리와도 맺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와 벌써 친선관계를 맺은 고구려에서는 오는 거절하였다. 그리고 오에서 온 사신을 목 베어 그 목을 위에 보냈다.
 
164
위는 고구려와 친선관계를 맺기는 맺었다. 그러나 위와 고구려는 국경선(國境線)이 서로 맞닿은 관계로 끊임없이 작은 충돌이 있었다. 연해연방 국토를 확장해 나아가는 고구려라 자연 국경선 가까이서는 딴 나라와 충돌이 생기는 것이었다. 요 땅으로 늘 진출해 나아가는 고구려라 요 땅의 종주권을 가졌노라고 자임하는 소위 위와 자연 국경 경계선상에서 충돌 없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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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한토에서는 또 ‘국가놀이’가 행진되었다. 위 촉 오가 정립된 지 한 사십 년 되었으니 시작할만도 하였다. 진(晋)이 새로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위와 촉을 멸하고 십 오륙 년 뒤에는 오까지 없이하고 한토를 또 통일하였다.
 
167
그 통일이 한 사십년 계속된 뒤에 북방 오랑케[匈奴[흉노]]족이 일어나고 한[前趙[전조]]을 세우자 진씨는 남방으로 쫓겨 내려가고 소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시대가 현출하였다. 흉노 선비 갈 저 강(匈奴 鮮卑 羯 氐羌)의 북방과 서방의 다섯 오랑캐가 북지나의 사방에 일고 잦아서 혹은 일이십 년 혹은 삼사십 년씩 국가 노릇을 하였다. 오호(五胡)가 전후하여 세운 나라가 합계 열세나라였다.
 
168
동시에 흉노에게 쫓긴 한족의 진은 남쪽에 도망하여 소위 동진(東晋)이 되었다. 한족의 세운 나라도 셋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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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 무수한 민족의 국가놀이에 골몰할 동안은 고구려는 태평무사하였다. 눈의 가시같이 요지방 통일에 방해가 되던 연(燕)을 북위의 손을 빌어서 멸하며 혹은 동과 남으로 더욱 국토를 확장하며― 광개토(廣開土)왕과 장수(長壽)왕의 두 명군의 재위 백여 년간에는 인제는 누구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동방의 대제국이 되었다.
 
171
서쪽에는 그냥 국가놀이 ―국가도태작용― 이 계속될 때에 그때 새로 송(宋)을 멸하고 이룩한 남제(南齊)에서 (건국한 첫해에) 고구려에 친선사로서 많은 예물과 함께 고구려 임금(장수왕)께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의 벼슬을 보냈다. 장수왕 육십칠년이었다.
 
172
장수왕은 거기 대하여 감사하다는 사례사를 보냈다. 그런데 불행 그 고구려 사례사는 남제로 가는 길에 북위 군사에게 붙들렸다.
 
173
아직껏 고구려와 친선관계를 갖고 있던 북위의 천자는 노염을 냈다. 샘에 가까운 노염이었다.
 
174
“너희는 남제의 신하 노릇을 하려느냐.”
 
175
노염의 사신이 고구려로 왔다.
 
176
장수왕은 웃어버렸다.
 
177
“버려두어라. 경쟁이다. 인제 북위에서도 남제에 질소냐 하고 짐께 벼슬을 보내리라.”
 
178
과연 이 임금 승하하자 북위에서는 허둥지둥 ‘차기대장군, 태부, 요동군 개국공(車騎大將軍太傅遼東郡開國公)’의 벼슬을 보냈다. 그리고 신왕 문자(文咨)왕께도 바삐 그만한 벼슬을 보냈다.
 
179
신왕 삼년에 이번은 남제에서 합계 스물한 자(字)의 기다란 벼슬을 보냈다.
 
180
왕의 십칠년에는 양나라에서도 그만한 벼슬이 왔다. 드디어 노골적 봉왕경쟁(封王競爭)이 시작되었다. 안장(安臧)왕 이년―.
 
181
양이 안장왕께 기다란 벼슬을 보냈다. 그런데 그 사신은 고구려로 오는 길에 북위에 잡혔다.
 
182
북위는 낭패하였다. 양에게 졌다는 큰일이라 하여 양에게 지지 않는 기다랗고 높은 벼슬을 안장왕께 보냈다.
 
183
기성국가(旣成國家)는 물론이요, 한토에 생기는 새 나라는 생기기가 무섭게― 아니 오히려 생기려는 수속공작으로― 고구려 왕께 벼슬을 보냈다. 이것이 그들의 최대최급의 정사였다. ‘국가 신생 계출’(屆出[계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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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일종의 ‘국가승인 신청’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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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의 죽순(竹筍)같이 일변으로 생겨서 일변으로 소멸되는 한토의 뭇 작은 국가들.
 
187
혹은 이삼 년 혹은 일이십 년 잘하면 사오십 년씩 가다가는 쓰러지는 군소 국가들은 자기네가 스스로 한 국가를 이룩하고도 이것이 과연 국가인지― 국가의 자격을 가졌는지 스스로 의심스럽고 위태롭다. 남이 국가로 인정해 주기 전에는 스스로도 믿기 힘든 미약한 존재다. 동린(東隣)에도 서린(西隣)에도 하도 수두룩한 집단들, 현재 앞집 김 서방, 뒷집 이 서방도 부하 몇십 명씩 모아가지고 장차 세월 좋으면 칭제(稱帝)를 하려고 벼르고 있다. 어느 누가 진정한 제(帝)가 되고 국(國)이 될지 도깨비판 같아서 예측할 수 없다. 이렁저렁 자기가 부하 몇백이고 몇천이고를 모아가지고 칭제(稱帝)를 한다 할지라도 남이 인정해 주기 전에는 너무도 믿기 힘든다.
 
188
그리고 인정을 받는데도 이웃나라(다같이 비슷한 얼치기의 국가)에는 승인을 받으나 마나다.
 
189
여기 ‘고구려국’ 의 인정이라 하는 것이 천균(千鈞)의 무게를 갖는다.
 
190
건국 육칠백 년― 단일왕실의 밑에서 단일민족으로 순조롭고 건실하게 자라서 대제국을 이룩한 고구려의 지위는 진실로 닭 가운데 학이었다.
 
191
한편으로 생겨서 한편으로 스러지는 무수한 국가들이 내가 천자다, 네가 천자다, 이건 내땅이다 네땅이다 야단들 할 때에 동방에 묵연히 웅거하여 이 소국들의 소란을 굽어보며 한손 휘두르면 천하를 뒤엎을 실력을 가지고도 오직 내 옛터밖에는 눈 거듭떠 보지도 않는 무시무시하고도 점잖은 국가.
 
192
이 고구려에게 인정을 받는 국가, 넉넉히 국가라고 버틸 수 있다.
 
193
이 인정을 받기 위하여 각 국가는 온갖 수단을 다 강구한다.
 
194
마지막 안출해 낸 것이 봉왕(封王)수단이었다.
 
195
다른 인정과 달라 천자승인은 좀 예다르다. 태수나 제후(諸侯)는 천자가 내려주는 벼슬이니 어느 천자 후보자가 고구려 왕께 이 천자전속의 권한행사인 봉왕을 하거나 장군 혹은 제후로 봉하여 고구려 왕이 거절치 않고 잠자코 이를 받으면 즉 고구려 왕은 자기를 천자로 인정을 한 셈이다.
 
196
고구려 왕이 거절치 않고 잠자코 받게 하기 위하여 욕심날 만한 많은 예물과 함께 고구려 왕께는 천자승인 신청의 후보자들의 보낸 ‘왕’ 이며 ‘장군호’ 가 많은 예물과 함께 소나기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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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천자 후보자들은 고구려 왕께 많은 예물을 보내면서도 내심 전전긍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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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하지나 않을까, 거절치나 않을까.”
 
200
“모(某)가 보낸 것은 받았는데 내가 보낸 것은 거절하지나 않을까.”
 
201
그러나 인심 후한 고구려 왕은 누가 보내는 것이든 턱턱 받았다. 거절하거나 사양하는 절차가 귀찮기 때문이었다.
 
202
이러한 가운데서 고구려는 더욱 커지고 더욱 가멸어 갔다. 백(百)성을 자랑하는 고구려, 오호(五胡)가 부스러진 저 나라에 비기어 사족(예맥, 숙신, 물길, 부여)이 한데 뭉친 고구려.
 
203
자라고 완숙하였다. 겉과 속이 아울러.
 
204
겉이 그만치 자란 만치, 속(문화)도 찬란히 꽃이 되었다.
 
205
북방에는 부여의 웅대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북방문화가 자랐다.
 
206
남방에는― 국가놀이의 소란한 한 본토를 망명하여 낙원 고구려로 모여든 한인들이 가지고 온 한문화를 토대삼아 예술소질이 풍부한 이 민족이 만들어 낸 남방문화(소위 낙랑문화며 고구려문화)가 찬란히 빛났다.
 
207
게다가 저 한토에서는 국가놀이 천자놀이에 골몰하여 한 가지외 문화가 계속하여 성장하지 못하고 자라다가는 부러지고 피다가는 시들어 온갖 문화의 초생품(初生品)만 잡연히 널려 놓여 마치 ‘문화발생 간색마당〔見本市[견본시]〕’ 인 듯한 느낌이 있는 반대로 여기는 ‘칠백 년간 단일왕실 밑에서 단일민족의 힘’ 으로 자라고 닦달되고 퍼진 마치 고구려 국가의 광휘를 상징하는 듯한 한껏 빛나고 찬란한 문화가 최성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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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한토의 부단(不斷)한 국가놀이 천자놀이는 고구려로 하여금 외우(外憂)의 근심없이 마음놓고 국가 키우기에 몰두할 수 있게 하였다. 동남방의 소국(小國) 백제며 신라(서라벌이 신라라 이름을 고쳤다) 등이 각작각작 변경(邊境)을 끓기는 하였지만 이런 것은 전혀 문제도 되지 않았다.
 
210
서쪽에서 보내는 뭇 왕호(王號)나 턱턱 받아두고 친선사절이나 어름어름 교환해 두면 저들은 마치 시앗의 경염(競艶)같이 서로 곱게 보이기에만 급급하여 고구려는 언제까지든 베개를 높이하고 태평세월에 땅이나 두드리[擊壤[격양]]며, 나라 기르기에나 몰두할 수가 있을 것이다.
 
211
요(遼) 역내의 내 구역(舊域)도 인제 다 찾았다. 인제부터는 이 가멸고 기름진 강역을 곱다랗게 유지하여 나아가기나 하면 그만이다. 더 욕심나는 것도 없었다.
 
212
이러한 때에 저 한토에는 또 한 개의 새 나라가 생겨났다. 양광(楊廣)이라는 새 장수가 나타나서 한동안 휩쓸더니 종내 주(周)를 없이하고 수(隋)를 세웠다.
 
213
“또 하나 생겼구나.”
 
214
하도 평범한 일이라 고구려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다. 고구려 평원(平原)왕 이십사년이었다. 북제는 그보다 삼 년 전에 주(周)에게 망하였다. 그 주가 수에게 망한 것이었다.
 
215
인제는 저 한토에는 진과 수가 남았을 뿐이다. 고구려는 좀 경계하는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족이 수없이 많이도 생겼기에 자기네끼리의 경쟁에 다른 데 돌볼 겨를이 없지만 그 새 육칠백 년을 꾸준히 한족에게 무언(無言)의 위협을 가하여 한족이란 자존심까지 내버리고 고구려에게 굴해 지내오게 한 것은 온 한족의 절치부심하는 배다.
 
216
중원이라 하고 중국이라 하던 한족의 자존심과 자긍심은 그 새 육칠백 년간 동이(東夷) 고구려에게 여지없이 밟혀온 것이었다.
 
217
한족의 힘이 아직 나누여 있기에 그만그만 했지 한족이 한데 뭉치기만 하면 첫 창끝을 고구려에게 향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옛날 후한 광무제 때의 일로도 넉넉히 알 수 있다.
 
218
왕립(王立) 십육 국으로 부스러졌던 한토가 지금 전과 수의 단 둘의 대립으로 남았다 한다.
 
219
그들이 동이 고구려에게 설욕(雪辱)을 하기 위하여서는 혹은 진과 수가 합세가 될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지금 형세로 보아)반드시 한자가 먹히우고 한자가 먹어서 단일국가만이 남게 될 것이다.
 
220
그때야 말로 수백 년간 억울한 욕(?)(한족이 다른 민족에게 굴해 살았다하는)에 대한 설욕전이 시작이 될 것이다. 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야 살 수 있는 북국에서 겨울에도 온갖 과일이 때를 자랑하는 남쪽 끝까지― 얼마나 넓은지는 분명히 이해하기 힘든다. 이런 무변광대의 영토와 무한한 인구를 가진 한이 제나라 온 힘을 한데 뭉칠 수가 있다면 놀랄 만치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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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사실(진이 망하고 수만이 남은)을 무심히 보고 인제 또 어디서 한 새 사람이 일어나려니쯤으로 가볍게 취급하였다.
 
223
그러나 새 사람의 출현이 예상 외로 늦었다. 뿐더러 지금 남은 진과 수는 제 힘만 기르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같은 가벼운 행동을 스스로도 피하려는 기색이 분명하였다.
 
224
여기서 고구려는 이 형편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225
위대한 국가 고구려의 사활은 실로 지금 대책을 바로 세우고 잘못 세우는데 달렸다.
 
226
때의 고구려 대신(大臣)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이 얼른 보면 별다른 데가 없는 근일 형세에서 여상(如上)한 비상성을 발견하였다.
 
227
그 새 국가장식에 너무 골몰하여 등한시하였던 건강을 좀 돌볼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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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명과 국가의 긍지가 걸려 있는 중대한 판국이다.
 
229
“급한 일 생기와 급사(急使) 보내오시면 곧 궐하에 달려오리다.”
 
230
임금(평원왕)께 하직하고 소리골로 내려와서 몸을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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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좋고 물 맑고 공기청신한 소리골에 몸을 잠그고 유유한한히 날을 보내고 있는 대재상 을지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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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날이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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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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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혼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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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고구려에 대한 수상한 말썽을 부리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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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사는 즉시 소리골 대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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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사따라 올라온 대신은 곧 어전에 달려가 엎드렸다.
 
239
“자라기 전에― 힘 기르기 전에 부수어 주오리다.”
 
240
“오호십육국이 아니라, 오백호십육만국으로― 아주 가루를 만들어 주리다. 내 나라 고구려 건드릴 딴 생각 품기만 했다가는….”
 
241
“그들에게 한족의 자랑이 있으면 우리에게는 단민(檀民)의 자랑이 있읍니다.”
 
242
고구려 만성을 대표하여 성조(聖祖) 동명(東明)께 굳게 맹서하였다.
 
243
효용키로 이름 높은 고구려 만성(萬姓)은 이 튼튼한 기둥을 맞아 힘을 다해서 수적(隋賊) 때려 부수기를 하늘과 성조께 맹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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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파대(淵巴大)는 을지 대신의 수행으로 대신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왔다. ―평원(平原)왕 삼십이년 수(隋)의 문제(文帝) 십년― 수가‘한토’를 통일한 그 첫해였다.
 
 

 
 

3. 平原[평원]―嬰陽[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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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가고 가을― 가을도 차차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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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에 피곤한 몸을 산 곱고 물 맑은 소리골서 한동안 쉬어 다시 예전의 건강을 회복해 가지고 서울로 돌아온 을지문덕(乙支文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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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보니 국제정세는 매우 미묘하게 되어 있었다.
 
251
천자(天子)는 별종자며 나는 별종자라 하여 내 힘이 조금만 남보다 수월해 보이면 나도 천자(天子)가 되어 보려고 덤벼드는 한인(漢人)이라 한(漢)의 역사 시작된 이래 허다한 천자가 생겼다는 없어지고 생겼다가는 없어지고 하여 한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라기보다는 ‘천자 야심가’의 연극사(演劇史)라는 편이 옳을― 이런 역사를 지으면서 내려오다가 수(隋)의 문제(文帝)에 이르러 드디어 뭇 천자 야망가를 토평하고 한(漢)의 천지를 통일하였다. 이 사실은 고구려로서는 대안의 불〔對岸火[대안화]〕같이 무심히 끌 수가 없었다.
 
252
한인(漢人)이 고구려를 밉게 본 것은 한 옛적부터다. 그러나 영특한 임금의 통치 아래 통일된 단일민족으로 개벽 이래 오직 민족의 힘만 길러온 고구려와 제각기 천자가 되려는 산산히 부스러진 ‘한’민족과는 그 실제의 힘이 서로 비길 바가 아니었다.
 
253
게다가, 한토에 새로 나라를 이룩한 새‘천자’는 ‘고구려’라는 튼튼히 자리잡힌 기성국가의 승인을 받고서야 비로소 국가행세를 할 수가 있는 관계상 고구려를 괄시할 수가 없었다.
 
254
이러하여 세부득이 고구려에게 머리를 숙이고 굴하여 오기는 하였지만
 
255
‘한민족(漢民族)’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동이(東夷) 고구려에게 여지없이 유린당한 그만치 한인(漢人)들의 마음에는 고구려에게 대한 원심이 자랄대로 자랐다.
 
256
과거 전한 후한 등 임시로나마 한토가 한천자〔一天子〕의 아래 통일되기만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고구려 토벌에 손을 대는 그들이었다.
 
257
그런지라 지금 수의 문제(隋文帝)가 한토를 통일하였으매 통일사업이 안돈이 되기만 하면 곧 고구려에게 손을 뻗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258
소리골서 몸을 정양하고 있다가 ‘수(隋)나라의 한토 통일’이라는 비보에 허덕허덕 서울로 달려온 대신 을지문덕.
 
259
그 새 한토의 외우(外憂)가 없느니만치 내치(內治)에만 오로지 하느라고 국방관계에 약간 결함이 보이기는 하였지만 워낙 효용한 민족인 위에 민족의 전통이 있느니만치 그다지 큰 힘 들이지 않아 천하무적의 대고구려를 쌓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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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평원왕)은 옥체 약간 미령하였다.
 
262
재위 삼십이 년간 저 한토에 일고 잦는 여러 나라에서 아첨의 선물인 ‘대장군’ 호며 ‘왕’ 호를 무수히 받고 명재상의 좋은 보필을 받으면서, 빛나는 대고구려국의 왕위를 누리기 삼십이년. 안온하고 무사한 고구려국에 약간의 풍파가 보이려는 듯한 무렵에 옥체에 이상이 보인 것이었다.
 
263
“이걸로 속세를 하직하는가보구려.”
 
264
가을의 석양볕은 영창으로 가득히 받아서 꽤 명랑한 침전에, 을지 대신의 시측으로 고요히 병상에 누워 있는 왕은, 눈을 감은 채, 이렇게 말하였다.
 
265
“태자(太子)께서 장성하오셨으니까, 뒤는 튼튼하옵니다. 태자도 장성했거니와 노련한 대신들이 버티고 있으니, 뒷근심은 추호 없지만, 세상 되어가는 형편을 내눈으로 좀 보고 싶구려.”
 
266
왕은 눈을 고즈너기 떴다. 늙기 때문에 피부에는 탄력이 없고, 눈정기도 약간 흐릿하기는 하지만, 이런 아래 감추어 있는 패기며 영기는, 능히 젊은이를 누를 만하였다.
 
267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부터 이 왕실에 전통적으로 흘러내린 만만한 투심(鬪心)을, 그것도 또한 유난히 많이 타고 난 왕은, 재위 삼십이 년간을, 평온하고 안온하게 보낸 것이 내심 퍽이나 미흡하였다. 한토의 뭇 군소제국(群小帝國)들이, 오직 고구려에게 아첨하고 환심사기 위하여, 요만한 분규도 없이 안온히 보낸 왕생애(王生涯) 삼십이 년간이, 그의 성격에 비추어 몹시 미흡하였다. 안온한 정애를 다 보내고, 임종을 눈앞에 보는 지금에 비로소 한 개의 분규가 생길 형편이었다.
 
268
이 운명의 작희에, 왕의 눈가에는 적적한 미소의 그림자가 흘렀다.
 
269
“하늘은 왜 짐(朕)의 마음을 모르시는고?”
 
270
“나랏님도…. 온 천하의 천자들을 호령하시며 일생을 보내시고도, 아직 부족하시오니까?”
 
271
군신은 서로 마주 보고 미소하였다.
 
272
“수제(隋帝)에게서 온 편지를 어디 한번 읽어 주시오.”
 
273
을지 대신은, 왕의 머리맡에 놓인 문갑에서, 일전 수제에게서 온 편지를 꺼내왔다. 그러고 왕의 요구에 응하여 그것을 읽었다―
 
274
‘(略[락])雖稱藩附[수칭번부], 誠節未盡[성절미진], 且曰[차왈], 彼之一方[피지일방], 雖坤狹人少[수곤협인소], 今若黜王[금약출왕], 不可盧置[부가노치]. 終須更撰官屬[종추경찬관속], 就彼安撫[취피안무]. 王若酒心昜行[왕약주심양행], 率由憲章[솔유헌장], 即是朕之良臣[즉시짐지양신]. 何勞別遣才彥[하노별견재언], 土謂遼水之廣[토위요수지광], 何如長江[하여장강], 高句麗之人[고구려지인], 多少陳國[다소진국]. 朕若不存念盲[짐약부존염맹], 資王前愆[자왕전건], 命一將軍[명일장군], 何待多力[하대다력]. 云[운]’
 
275
이것이 유명한 개황(開皇) 십년의 문제의 새서(璽書)였다.
 
276
요컨대, 문제(文帝)가 천하를 통일은 하였는데, 통일한 체면상, 우내(宇內)의 뭇 나라에서 마땅히 조공사(朝貢使)가 와야 할 것이고, 수제는 거기 대하여, 가납을 해야 할 것이다.
 
277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꿈쩍 소식이 없다. 고구려측으로 보자면, 도리어 전례에 의지하여 한토에 천자로 즉위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고구려 임금께, 예물과 함께 상당한 벼슬을 보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78
수나라이 한토를 통일하였다 하니 예전같이 아첨 경쟁은 안할지도 모르나 이쪽에서 먼저 저쪽으로 사절(使節)을 보낸다든가 하는 일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279
수나라 측에서는 대국(大國)의 면목이 있다. 한토의 천자면 즉 천하의 주인이라. 천하가 내게 와서 꿇어 절하여야 할 것이다. 안 하는 자가 있으면, 대국으로서 면목상 꾸짖어 절하도록 시키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280
천하의 주인이 된 수나라, 동이(東夷)의 나라 고구려에서 절을 받지 못하면 대국으로서의 면목이 부스러진다. 고구려가 절하지 않으면 정토(征討)의 벌을 마땅히 내리어야 할 것이다.
 
281
그러나 갖은 힘 다 써서 간신히 한토를 통일한 수는 인제는 동방의 대제국 고구려를 건드리려다가는, 아직 튼튼히 자리 잡히지 못한 내 나라 수가 도리어 부러질 염려가 있다.
 
282
대국의 면목상 정벌은 해야겠고, 정벌할 만한 힘은 부족하고― 이 양난(兩難)의 입장에 선 수는, 국내의 지자(知者)들을 다 모아 연구한 결과, 고구려에게 한 장의 새서(璽書)를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천하의 주인인 ‘수’의 면목도 상하지 않을 겸 고구려의 노염도 사지 않을 겸― 이런 어려운 역할을 해야 할 새서다. 꽤 신중히 의논하여 꾸민 글이었다.
 
283
―고구려 너희가 건방지고 괘씸하여, 마땅히 너희를 벌할 것이지만 그러고 너희 따위를 벌하려면 무슨 큰 힘까지 들일 것 없이, 아주 손쉬운 일이지만, 너희가 이전의 그릇된 행사를 뉘우치고 고치기만 하면 너희도 ‘짐의 양신(良臣)’이라 구태여 쳐서 무얼하랴. 그러니 인제부터는 마음을 다시먹고 짐의 헌장(憲章)을 잘 지키라.
 
284
문면(文面)에 나타난 뜻으로는 책망에 가깝지만, 이면의 의의는, ‘우리는 너희를 건드리지 않을테니, 제발 잠자코 있어다고. 나의 면목도 있고 하니, 남의 보는 데는 제발 너희도 수의 번방(藩邦)인 체하여다고’ 하는 것이었다.
 
 
285
3
 
 
286
을지 대신이 읽은 수제의 새서를 잠잠히 듣고 있던 왕은 다 듣고 나서 눈을 대신에게로 구을렸다.
 
287
“편지에 회답을 하잡니까?”
 
288
“회답까지 해서 무얼하리까. 자기네들도 회답이 있으리라고는 기다리지 않으리다.”
 
289
“수사(隋使)는 객관에 그냥 묵어 있소?”
 
290
“그럴 줄 아옵니다.”
 
291
“그걸 조롱이나 해서 돌려 보냅시다.”
 
292
“신이 알아 하오리다.”
 
293
왕의 환후(患候)가 무슨 증세인지는 국내의 이름 있는 의원 아무도 판단을 내리지를 못하였다. 특별히 어디가 아프든가 쏘든가 하는 것도 아니었다.
 
294
다만 맥―기력이 없었다. 사람이란 하루의 피곤을 밤잠으로 쉬고 나면 이튿날 아침에는 새로운 원기로 새날의 할 일에 나서는 것이어늘, 왕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가 귀찮고 마음으로는 늘 일종의 공박관념에 위협되었다.
 
295
왕은 이 증세를 곧 당신이 승하할 징조라 보았다. 세상에서 한 사업은 다 끝마치었고 태자(太子)도 장성하여서 뒷근심도 없이 되었으니― 즉 세상에는 더 생존할 아무 의의도 없으니, 하늘이 부르시는 것이라 이렇게 판단하였다.
 
296
이 나라의 국민성(國民性)의 일부분을 이룩한 ‘숙명사상(宿命思想)의 지배를 받는 왕은 이번 병상에서 당신은 다시 일어나 보지 못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이 지휘하시는 운명이라 믿으니만치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아닥바닥 일어나 보려고 안달아 하지도 않았다.
 
297
다만 너무도 안온하게 지낸 일생이 그냥 불만할 뿐이었다. 그 밖에는 이왕 재위기간 중에 ‘한토’에 생겼던 ‘북제(北帝)’‘진(陳)’‘주(周)’
 
298
통일 전의 ‘수(隋)’등의 뭇 ‘천자’가 고구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다투어 보낸 예물이며 벼슬 등을 받으며 국가적으로 아무 위협도 받지 않고 가멸고 굳센 국가의 광휘 있는 임금으로 좋은 재상을 좌우에 거느리고 영특한 태자를 아래 데리고 진실로 왕자(王者)로도 수월하게 훌륭한 일생을 보낸 것이었다.
 
299
“좀 분규를 겪어 보았으면―.”
 
300
이것이 이 왕의 유일의 불만이었다 하면 왕의 일대가 어떠하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301
4
 
 
302
연파대(淵巴大)가 을지 대신을 위하여 구한 산삼은 모두 왕의 건강을 위하여 왕께 바쳤다.
 
303
왕은 그 산삼을 쓰면서도 고소(苦笑)하였다.
 
304
“하늘이 부르시는데 이런 것이 무슨 효험이 있겠소?”
 
305
대신이 정성으로 바치는 것이니 물리치기 어려워 받기는 받으나 약효는 애당초 생각은 않았다.
 
306
입에 발린 아첨의 말을 할 줄을 모르는 고구려인의 천성을 타고 난 을지 대신은 역시 고소하였다.
 
307
“그래도 산촌의 소동(小童)이 정성으로 캐어온 게옵기 신도 감사히 받아 두었던 것이옵니다”
 
308
“진시황께나 보냈으면 좋아할걸…. 짐이야 하늘이 부르시니 이 아까운 신품을 헛되이 쓰는구려.”
 
 
309
5
 
 
310
과연 왕은 첫여름 시월에 승하하였다. 재위 삼십이 년간 부강한 국가의 영특한 임금으로서 다만 수나라의 거만한 코를 두들겨 주지 못한 것을 단 한가지의 한(恨)으로 남기고 그의 부조의 나라로 떠난 것이었다.
 
311
‘평원왕(平原王)’ 이라 호하였다.
 
312
이십여 년간을 이 왕을 모시고 협조하여 국가에 큰 공을 남긴 대신 을지문덕은 이 왕을 보내고 그의 맏아드님인 신왕을 모셨다. 일찌기 선왕 제칠년에 ‘태자’ 로 책정이 되어 이래 이십오 년간을 태자로서 부왕을 모신 신왕은 그 보령(寶齡)으로 보나 한 나라의 주재자가 되기에 아무 부족이 없는 이였다. 게다가 명재상 을지문덕이 선왕의 유촉으로 그냥 눌러 왕을 보좌하고 더우기 을지 대신과는 이십오 년간을 함께 선왕을 모신 우의(友誼)도 있는 관계상 서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유달리 컸다. 나이는 을지 대신이 약간 위이지만―.
 
313
“짐의 대에는 불행 그런 좋은 기회를 못 만났지만 태자의 대에는 반드시 생길테니 그런 기회 생기기만 하거던 ‘수’의 건방진 코를 보기좋게 두들겨 주어 망부의 유한을 펴라.”
 
314
선왕이 이런 유언까지 남긴 만큼 신왕과 을지 대신은 명심하고 그런 기회 있기를 기다렸다.
 
315
가면 나라, 효용한 국민― 비록 수가 백만 천만의 대군을 이끌고 내구할지라도 두들겨 쫓을 준비는 튼튼하였다.
 
316
장차 수의 문제(文帝)를 단단히 두들겨 주고 문제의 아들 양제(煬帝)를 네 번이나 여지없이 부숴 주어서 이로 말미여 수나라까지 엎어지게 한 영양왕(嬰陽王)과 을지문덕의 합작은 이리하여 실마리가 맺어진 것이었다.
 
 

 
 

4. 漢姫[한진] ‘菊香[국향]’

 
318
1
 
 
319
일찌기 을지 대신께 바치려고 산삼을 향산(香山)서 캐다가 을지 대신을 만나서, 그 길로 서울로 대신을 따라온 연파대(淵巴大)는, 이내 을지 대신 댁 한 방에 우거해 있었다.
 
320
천하의 형편이 좀 이상야릇하게 되어가므로, 대신은 서울로 돌아와서는 아침 일찌기 입궐하고 저녁 늦게야 귀택하며, 며칠 지나서부터는 왕의 옥체 미령하여, 대신이 집에 들어앉을 시간이 거진 없으므로 파대가 대신께 뵈올 기회가 태무하였다.
 
321
대신 댁에 있는 책을 보며 소일하였다. 그 책은 대개가 한적(漢籍)이었다. 한토에서 한인이 저술하여 발간된 책이었지만, 한토라는 데는, 끊임없는 역왕난리(易王亂離)와 혁명소동에, 저술의 본 고향인 한토에는 전하는 자 쉽지 않고 동방 낙원 고구려에 도리어 곱다랗게 보존되어 있어서, 본 고향 한토에서는 이름까지 잃은 희서 귀서(稀, 貴書)가 을지 대신댁 서고에 가득히 들어 있었다.
 
322
심심하기 때문에 소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거기 빠졌다. 빠져서 탐독하노라면, 읽느니만치 소득이 또한 컸다.
 
323
이십 미만의 한창 총명한 나이의 파대였다. 게다가 천품까지 총명하였다. 한번 읽으면 좀체 잊어지지 않았다.
 
324
부쩍부쩍 늘어가는 자기의 지식에 스스로도 경이의 눈을 던지면서, 파대는 욕심사납게도 그냥 읽고 또 읽었다.
 
325
서고와 자기방 새에 왕복하는 밖에는 일체로 나다니지 않고, 독서에 미쳤다.
 
326
대신의 존재까지 잊었다. 대신도 파대의 존재를 잊었는지, 집에 데려다 둔 뿐 아무 참견이 없었다.
 
 
327
2
 
 
328
파대가 소리골서 을지 대신을 따라 경사로 올라온 지 거진 반 년이나 지나서, 이듬해(영양왕 제이년) 정월이었다.
 
329
글읽기에 피곤한 허리를 좀 펴보려고 파대는 방을 나섰다.
 
330
하늘을 우러르매, 북국 특유의 맑게 개인 하늘에는, 바람 한 점 없는 양하여, 움직임없이 고요하고 찬 공기는 도리어 일종의 쾌감을 준다.
 
331
파대는 머리와 눈을 하늘로 향하고, 상쾌한 한기(寒氣)를 즐기며, 한참을 그 자세대로 서 있었다.
 
332
문득 두선두선하는 소리에, 머리를 돌리며 보니, 지금 막 대궐에서 돌아오는 을지 대신의 수레가 대문안으로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333
대신 댁에 묵어 있으면서도 대신을 뵈옵기 진실로 오래간만이었다. 그렇게도 사모하고 존경하던 대신을 오래간만에 뵈옴에, 참으로 반가웠다. 좀 비켜서서 수레가 가까이 들어와서 대신이 수레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334
수레가 파대의 앞을 지나 정방 뜰아래까지 이르러 대신이 수레에서 내릴 때에, 파대는 빨리 그 앞에 가서 국궁하였다.
 
335
“대신. 오래간만에 뵈옵겠읍니다.”
 
336
대신은 고개를 돌려 파대를 보았다. 낯익은 젊은이나 언뜻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337
그 눈치에 파대가 자기가 누구임을 바야흐로 말하려 할 때, 대신은 비로소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338
“이게 누구요? 언제 올라왔소?”
 
339
“저는 상년에 대인을 따라 올라와 지금껏 대인댁에 식숙하고 있었읍니다.”
 
340
“그렇소? 한 뜰안에 살면서도 모르고 지냈군. 좌우간 들어오오.”
 
341
파대는 대신을 따라 정방으로 들어갔다.
 
342
“나는 하두 바쁜 몸이라, 집에 손을 두고도 전연 무관심했군. 과히 나삐 생각지 말우.”
 
343
“아이, 대인. 온―대인, 보잘것없는 소동이올시다. 오냐를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당초에―.”
 
344
마치 소녀와 같이 얼굴이 다홍빛이 되었다.
 
345
“어허, 남의 사람을 오냐야 할 수 있나? 그렇게 어렵다면 하게를 하지.”
 
346
“네 제발.”
 
347
평생을 두고 사모하던 분을 이렇게 가까이 모시고 직접 그이와 수작을 하니, 파대는 다만 황공할 따름이었다.
 
348
“동무두 없이, 게다가 내가 주인구실을 못했으니 그 새 퍽 갑갑했겠군.”
 
349
“네. 대신 댁 많은 책을 여쭈어 보지도 않고 꺼내다 읽느라고, 적적한 줄은 모르고 지냈읍니다.”
 
350
“거 기특하지. 젊은이가, 놀든가 장난할 생각을 않고 공부를 하단― 책이란 무슨 책이든 읽어 해롭지 않은 게니….”
 
351
“하두 읽을 욕심에 급하와 대인께 여쭤보지도 않고 서고에서―.”
 
352
“천만에. 책이란 읽으라고 생긴 게지, 서고에 잠재우라고 생긴 게 아니니, 읽을 사람이 있으면 읽을 게지.
 
353
한창 놀고 싶을 나이에 공부에 빠지단 참 기특하지.―참 젊은이가 그 정성으로 구한 산삼 나랏님의―”
 
354
왕의 일을 말할 때는 으례히 대신은 머리를 깊이 숙이는 것이었다.
 
355
“―탈이 중하시어, 나라님께 바쳤소. 내가 먹을 것보다 더 흡족하겠지.”
 
356
“삼의 효험을 보오셨읍니까?”
 
357
“하늘이 부르시는데 삼 따위가 무슨 효과가 있겠나.”
 
358
파대는 칵 머리가 수그러졌다. 왕의 승하도 모르고 지낸 불충의 꾸지람이 가슴을 눌렀다.
 
359
아무리 공부에 열중했다기로 이 나라 신자된 도리로 나라님의 승하도 모르고 지내단, 이런 불충이 어디 있으랴.
 
360
대신은 고요히 말을 계속하였다―.
 
361
“적자(赤子)된 우리로야 애통망극한 일이지만, 우리 전 나랏님, 만왕의 왕으로서 천하를 눈아래 보시며 일생을 지내셨고, 보령이 고희(古稀)를 지나시어, 명민하신 태자께 뒤를 부탁하시고 유감없이 떠나셨으니, 한(恨)되는 일은 조금도 없네.”
 
362
무론 대신으로는, 그 임금을 임종 때까지 모시고 그 뒤, 고이고이 안장까지 해 모셨으니 한되는 일이 없겠지만, 파대는 이 나라 만성(萬姓)으로 더우기 한 서울 안에 있으면서도 독서에 혹하여 임금의 승하까지 모르고 지낸 불충에 대한 가책 때문에 이 충성의 덩어리인 대신 앞에 감히 머리도 들 수가 없었다.
 
363
머리를 깊이 숙이고 좀 더 무연히 앉아 있다가, 기회보아 대신께 하직하고 자기의 방을 돌아왔다.
 
 
364
3
 
 
365
이치로 따지자면, 대신 댁 한편 방에 있는 자기에게 국상(國喪) 같은 중대한 일도 알려주지 않은 주인 대신을 원망하든가 나무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파대에게 있어서는 을지 대신은 다만 신성한 존재일 따름이지, 원망이나 나무람의 대상이 아니었다.
 
366
가까이 모시어 본 일은 없었다. 용안(龍顔)조차 우러른 일이 없었다. 따라서 정(情)으로는 관심되는 배 없으나 이나라 만성의 가슴 깊이 전통적으로 새겨져 있는 ‘임금께 대한 충심’ 의 탓으로 파대는 무거운 자책감을 느낀 것이었다.
 
367
저녁상도 그 자세대로 받았다. 저녁 뒤에도 또 그 모양이었다.
 
 
368
4
 
 
369
그냥 망연히 앉아 있는 파대의 귀에 문득 한 개 이상한 음률이 들렸다.
 
370
귀를 기울이니 거문고 소리― 무엇을 사뢰는 듯 조르는 듯, 밤하늘에 울려나가는 그 음향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음에 커다란 오뇌를 가진 사람이, 몇 가닥 줄로써 가슴의 오뇌를 하소연하는 애끊는 음조에 틀림이 없었다.
 
371
자기 따로의 오뇌를 따로 가지고 있는 파대는 처음에는 무심히 들었다. 들리어(저절로)오니 들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부득부득 가슴에 사무쳤다. 그 음조는, ‘이런 것이라’는 격식과 틀에 맞는 종류의 것이 아니고, 탄자(彈者) 스스로가 자기의 가슴에 사무친 호소를 거문고를 통하여 사뢰는, 진정한 호소였다. 매한가지로 가슴에 큰 수심을 가지고 있는 파대에게는, 절절이 심현에 울리는 음조였다.
 
372
무심히 거기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덧 공명하였다.
 
373
자기로도 무슨 때문이지 모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서서 뜰에 내려섰다. 얼굴과 온몸에 홱 끼얹는 밤의 냉기에 뜻하지 않고 몸서리치면서 파대는 그 음률의 날아오는 방향을 타진해 보고, 그쪽으로 차차 발을 떼었다.
 
374
캄캄한 그믐 칠야였다. 백만을 자랑하는 대고구려 서울 ‘장안경(長安京)’도, 겨울의 밤에는,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국상(國喪)중의 장안경은, 이 나라 만성의 임금께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무한한 정숙이 있을 따름이었다.
 
375
파대는 그냥 들려오는 음률을 향도삼아 차차 뒤로 돌아갔다.
 
376
이 댁에 온 지 반 년이 넘었다. 하지만 지리(地理)를 전연 모르는 파대는 오직 그 음률만을 향도삼아 어딘지도 모르는 모퉁이를 몇 개를 돌았다. 그리고 이 댁 후당 쪽으로 들어섰다.
 
377
한 모퉁이를 돌아서니 비로소 빛이 보였다. 캄캄한 가운데를 뚫고 오던 파대는 맞은편에 홀연히 나타난 광명에 한순간 멈칫 섰다.
 
378
맞은편에는 별당 한 채가 있었다. 꼭꼭 닫긴 창안에 휘황히 켠 불이, 창을 통하여 이 근처 일대를 훤하게 비추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문고의 음률은 그 방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하였다.
 
379
음률의 유혹에 끌려서 여기까지 무심히 오기는 하였지만, 무슨 목적이며 목표가 없는 파대는 거기 우두커니 서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380
서는 것과 동시에 파대의 머리에는 여러가지의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381
그 음조는, ‘이런 곡조는 이렇게 뜯는다’ 는 능한 솜씨만이 아니라, 탄주자의 마음에 오고 깊이 박혀 있는 오뇌를 진정으로 사뢰는 마음의 하소연이니, 그도 정녕, 무슨 오뇌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는 사내일까 여인일까.
 
382
그 섬세한 솜씨로 보아 단아한 음향으로 보아, 절절히 애끊는 곡조로 보아, 탄주자는 분명 여인으로 보았다. 여인일진대 젊은일까 노파일까 중년녀일까.
 
383
그 음조의 박력(迫力)과 탄력으로 보아, 세상만울에 피로한 노파로 보기보다, 중년이나 젊은이로 보는 것이 지당하였다.
 
384
‘어떤’‘젊은’‘여인’일까. 의문과 함께 일어나는 호기심은, 파대로 하여금 그냥 못〔釘[정]〕박은 듯이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였다.
 
385
언제부터나 시작된 탄주인지, 언제까지나 계속될 탄주인지, 방안의 탄주는 그냥 계속되었다.
 
386
그 방 밖에도 몇 채 후당이 후둥우둥 서 있는 모양이지만, 다른 방에는 불빛도 인기척도 없고, 오직 그 한 방에서 거문고 소리만이 울려나오는 것이었다.
 
387
그 타는 곡조가 무슨 곡조인지는 파대는 모른다. 그런 곡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탄주자의 마음에서 울려나온 호소다. 젊은 파대의 가슴에 푹푹 들어박히는 것이었다. 탄주자는 마음에 무슨 큰 오뇌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가슴에 오뇌 품은 젊은 여인―.
 
388
누구일까. 대신 댁에 누구일까.
 
389
문득 다른 음률이 한 가지 더 섞이었다. 사람의 음성으로써의 노래였다. 지금껏 거문고로만 하소하던 음률의 주인은 옥성까지 섞어서 부르기 시작하였다.
 
390
여성(女聲)이었다. 그리고, 탄력 많은 젊은 소리였다. 그런데 여기서 파대의 호기심과 의혹을 크게 한 것은 육성으로 부르는 노래의 가사(歌詞)가 고구려말이 아니라, 한어(漢語)인 듯싶었다. ‘한어’ 를 모르는 파대라, 분명 ‘한어’ 라 단정키는 힘들지만, 그 악센트라 발음이라 청이 분명 ‘한어’의 계통이었다.
 
391
‘한어? 한녀(漢女)?’
 
392
알지 못하는 방언이라, 가사의 뜻은 알아들을 바이 없지만, 거문고와 어울려 들려오는 그 육성은 오장을 끊는 듯한 무슨 호소일시 분명하였다.
 
 
393
5
 
 
394
‘한토’ 에 생기는 뭇 제왕(帝王)들이 고구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고구려 왕께 무슨 높은 벼슬과 아울러 값진 보배를 보내는 전례가 있는 것은 파대도 잘 아는 배다.
 
395
그러면 이 ‘한녀’ 는 저곳 어느 천자가 을지 대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보낸 한 공녀(貢女)일가.
 
396
저 여인은 울지 대신의 한 애첩일까.
 
397
외국 여인을 애첩으로 두었다는 일종의 분개심이 을지 대신께 일어나려는 것을 파대는 힘있게 눌렀다.
 
398
을지 대신은 파대에게 있어서는 신성한 존재였다. 그 신성한 존재에 대하여 신성치 못한 현실이 보이려 할 때에 파대는 마음에 저절로 일어나는 불쾌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399
눈앞에 현재한 외국의 젊은 여인을 보며 그런 것이 있는 이상은 을지 대신의 신성이 얼마간 깎일 것이로되 그래도 대신만은 절대로 신성시하고 싶은 파대는 이 불쾌한 현실에 직면하여 자기가 여기까지 나왔던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방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발을 떼려 하였다.
 
400
그때엔 후당 안에서 들려오던 거문고가 문득 멎었다. 그리고 거문고를 약간 밀어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401
“아―아.”
 
402
그것은 노래 부르던 음성의 탄식성이었다.
 
403
“인젠 다 뜯으셨어요?”
 
404
후당 안에는 두 명 이상의 여인이 있는 듯하여 노래부르던 음성과는 다른 음성이 하는 말이었다.
 
405
“아아 곤하다 인젠 자련다.”
 
406
분명 고구려말에 발음이 약간 서툰 외국 여인이었다.
 
407
“곤하시구 말구요. 언제부터시라구. 금침 펴리까?”
 
408
“승상께서도 주무시는지?”
 
409
“승상께서는 자정이 지나서야 주무시니까 아직 안 주무실걸요.”
 
410
“그럼 나도 더 앉아 있으련다. 승상께서도 그냥 기침해 계신데 나같은 미천한 게 벌써 다리 뻗고 자서야 되겠니?”
 
411
그 뒤에는 기다란 한숨. 진실로 적적하고 진정미를 띤 한숨이었다. 그 한숨 소리에 동정이 간 듯한 시녀(侍女)의 소리가 뒤를 이어났다.―
 
412
“참 아씨도 적적하시겠어요. 이십팔 젊으신 신세로 부모님 슬하 떠나 만 리 밖 타국에―. 쇤네네 같으면 가슴 답답해 칵 죽겠는걸요.”
 
413
“답답하거든 장짓문이나 좀 열어라.”
 
414
“창문 연다고 가슴 답답하신 것도 좀 낫습니까?”
 
415
“하여간 좀 열어라.”
 
416
그 소리의 응하여 밖으로 향한 장짓문이 더르륵 열렸다.
 
417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피해서 좀 비켜서며 파대는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 촛불 화광 아래 드러난 방안의 광경은 파대의 앞에 전개되었다.
 
418
시녀와 마주 거문고를 약간 밀어놓고 앉아 있는 색시는 분명 ‘한녀’였다. 나이는 십칠팔.
 
419
‘한녀’ 의 어떤 천자가 고구려 대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골라서 보낸 선물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희대의 미녀였다. 그 눈초리, 그 입매, 그 눈매, 코모양 추호 나무랄 데가 없는 희대의 미녀였다. 불쾌한 감정으로 그 여인을 보려 했고 또한 보아야 할 파대였지만 열어젖힌 창안에 나타난 ‘한녀’ 의 자태에 눈을 던질 때 파대도 황홀하여 하마터면 뜻하지 않고, 밝은 데까지 나설 뻔하였다.
 
420
“고국 만리….”
 
421
“가고 싶으시겠어요.”
 
422
“아니. 추호 가기 싫다. 승상께서 두어주시기만 하시면 백 년이라도 여기서 살고 싶다.”
 
423
“아씨. 창을 열면 단단히 서늘한걸요. 도로 닫읍시다.”
 
424
“좋도록 하려무나.”
 
425
다시 더르륵 창이 닫겼다.
 
426
창이 열렸던 것은 진실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닫겼다.
 
427
짧은 시간이니만치, 파대가 ‘한녀’를 본 것도 잠깐 사이였다. 그러나 창이 도로 닫긴 뒤에는, 파대는 마치, 그 창에 넋을 앗긴 사람처럼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428
그것을 파대는 분명 공녀(貢女)요 대신의 애첩으로 보았다. 저런 미녀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시기와 부러움에 가까운 감정이 일어남과 함께 욕심까지 무럭무럭 일어났다. 숭배하여 마지않는 영웅 을지 대신과 미인 ‘한녀’의 주인 을지문덕과는 분리되어, 을지문덕에게 대한 엷은 시기까지 마음 한편 구석에 일어났다.
 
429
예전 같으면 을지 대신께 대한 불쾌한 감정은, 죄악으로 여겨서 스스로 크게 꾸짖을 파대였지만 평소 경건함을 자랑하던 파대의 마음에도 그런 더럽고 불쾌한 감정이 연해 일어나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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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불을 끄고 금침에 드는 소리를 듣고야 파대는 무슨 큰 보물을 떨어뜨린 듯한 애석한 느낌을 무드기 느끼면서 제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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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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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은 한인 미녀는 과연 공녀(貢女)였다. 진(陳)의 천자가, ‘진’ 이 ‘수’ 에게 망하는 직전에, 무슨 보람이라도 볼까 하는 요행심으로 고구려 대신 을지문덕에게 보낸, 황실 지천(至親) 그 가운데서 고르고 고른 특선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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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국향(菊香)’ 이라 하였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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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1946. 5~10)
【원문】분토(糞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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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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