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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진현관 직제학(進賢官 直提學)으로 있던 김약시(金若時)는 종사(宗社)가 무너지매 부인과 함께 도보로 광주(廣州) 산골로 들어가 나무를 얽어 막을 치고 겨우 풍우를 가리우고 살고 있었다. 촌늙은이들이 그 의관을 괴이하게 여겨 종종 묻는 이가 있으되 대답지 아니하고 또 주식(酒食)으로선 사하되 또한 받지 아니하며 다만 늘 하늘을 우러러 답답하여 눈물을 지을 뿐이니 남이 그 소회를 모르고 또한 그 성명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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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조 사람을 놓아 물색하여 약시가 거기 있는 줄 알고 성명방제(誠明坊第)를 특사(特賜)하고 편지에 송헌(松軒)이란 어호(御號)를 써서 보내니 이는 약시와 동년생으로 전의 친분을 생각하여 한 일이다. 약시는 눈이 멀었노라 속이고 마침내 응명치 아니하고 집안 사람에게 이르 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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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국지대부(亡國之大夫)라 다만 멀리 도망치 못한 것은 선대의 무덤이 이곳에 있는 때문이로다. 내가 죽거든 또한 여기에 묻고 봉토(封土)도 말며 비(碑)도 세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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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침내 통곡하다 세상을 떠나니 집안 사람이 또한 그 뜻을 알아 유언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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