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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皐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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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12.1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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皐 蘭[고란]
 
 
2
벌서 四年前[사년전] 가을 일이다. 그도 가을 날세이고 旅行[여행]하기 조흔 季節[계절]이엿다.
 
3
石草兄[석초형]이 시골서 오라고 하엿고 가면 百濟古都[백제고도]인 扶餘[부여]구경을 식혀준다는 것이엿다. 그래서 먼저 舒川[서천]으로 가서 石草[석초]집에서 二三日[이삼일]을 지난 후 扶餘[부여]로 가게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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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博物館[박물관]을 보고 宿舍[숙사]로 도라와서그집의 名物[명물]인 鯉魚料理[이어요리]를 식히고 술을 덥혀으니 石草[석초]가 黃菊[황국]을 다가 술잔에워주며 南[남]으로잇는 窓[창]문을 열고 달빗을 마저드리는 것이 안인가? 어느사이 술잔이 오거니 가거니 하는 판에 두사람이 모다 거나하게 취하게되자 거리로나와 무엇인가하는 料亭[요정]을 차저서 밤깁허 도라올는 술이 짓게 醉[취]하엿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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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白馬江[백마강]을 라올나 落花岩[낙화암]을 보고 皐蘭寺[고란사]를 왓슬 샘물을 마시게 되엿고 그 절 중은 皐蘭[고란] 잎파리를 서 물잔에 워주며 皐蘭[고란]에 對[대]하야 傳說[전설]을 얘기하는 것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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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慈王[의자왕]이 皐蘭寺[고란사] 샘물을 宮女[궁녀]들에게 오라 命令[명령]하면 宮女[궁녀]들은 王[왕]에게 보담 더 寵愛[총애]를 밧기爲[위]하야 一分[일분] 동안이라도 이오는 것이고 時間[시간]이 距離[거리]에 比[비]하야 너무 느면 王[왕]은 宮女[궁녀]들을 疑心[의심]하는 것이엿다. 그래서 반드시 皐蘭寺[고란사]의 石壁[석벽] 속에서 새여나오는 물을 오게 하고는 그 물에 皐蘭[고란] 입파리를 워오라 命令[명령]하섯다는 것이다.
 
7
그 나는 그皐蘭[고란]과 王[왕]과 宮女[궁녀]와 사이에 얼클인 로 ─ 만스를 생각하느라고 그만 皐蘭[고란]의 植物學的知識[식물학적지식]을 考究[고구]할 겨를도 업시 扶餘[부여]를 나고 말엇스나 그 뒤에도 항상 나의 回想[회상] 속에는 落花岩[낙화암]보다도 自溫臺[자온대]보다도 平濟塔[평제탑]보다도 三千宮女[삼천궁녀]보다도 이러한 모든 興亡盛衰[흥망성쇠]를 나서 바위틈에 한 입파리식 소사나서는 아름다운 宮女[궁녀]들의 고흔 손에 입사히 겨지고 남은皐蘭[고란]의 조으는 듯 는 듯한 푸른 입파리는 좀처럼 내머리에서 살어지지 안엇든 것이다.
 
8
今年[금년]여름 慶州玉龍菴[경주옥룡암]에서 도라와서는그만 절로 가지안코 牛耳洞[우이동]가는 中路[중로]에 小踰里[소유리]라고 하는 洞里[동리]가 잇는데 그곳에 나의 渭宅[위택]이 寓居[우거]하게 되야 새로 지은 집도 하려니와 空氣[공기]가 맑고 靜養[정양]하기 알맛다고 外叔母[외숙모]가 懇切[간절]히 勸[권]하심에 감사도 하지만 로는 外叔[외숙] 漢詩[한시]에 對[대]한 經緯[경위]도 듯고하면 療養[요양]에도 精神的[정신적]인 糧食[양식]이 되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솔곳하엿다.
 
9
처음 이 마을에 나와 잇슬는 多小肅條[다소숙조]한 늣김이 업는 바도 아니엿스나 年來[연래]에는 健康[건강]의 關係[관계]로 될 수 잇스면 술과 게집과 會合[회합]을 避[피]하고 보매 自然生活[자연생활]이 前[전]과 갓치 華麗[화려]하고 淋漓[임리]하지는 못하여도 그 反面[반면]에 枯淡[고담]하고 淸靜[청정]하야 전날의 生活[생활]을 極彩畫[극채화]라고 한다면 오날의 生活[생활]은 水墨畫[수묵화]라고나 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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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생활]이 이러케 靜的[정적]으로 되고 보니 自然[자연]에 깃드는 마음이 자라고 저절로 泉石[천석]을 지나보지 아케되매 奇花瑤草[기화요초]가 모다 헛되히 바랄 것이 업스나 그래도 「나 ─ 르」와 가티 山中日記[산중일기]를 쓸 바 업고 「소 ─ 로 ─」 처름 森林[삼림]의 哲學[철학]을 說破[설파]하지도 못함은 나의 觀察[관찰]이 그들에 比[비]하야 距離[거리]가 다른 것을 모르는 바도 안이연만 아즉도 自然[자연]에 을 비빌 程度[정도]로 親[친]하여지지 못함은 歷史[역사]의 關係[관계]가 더 큰 것도 갓다. 다시 말하면 空間的[공간적]인 것보다는 時間的[시간적]인 것이 보담 더 나에게 重要[중요]한 것 만 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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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잇는집 東便[동편]에는 石壁[석벽]속에서 새여나는 샘물이 잇고 그 물맛이  淸洌[청렬]하지 아는가? 그만 아니라 그 물을 마시면 消化[소화]가 잘되는 것은  무슨 닭인지 科學的[과학적]으로 그 成分[성분]을 分析[분석]하지 아으면 모를 것이나 나의 생각갓해서는 分析[분석]이니 무엇이니 할 것 업시 그대로  몃 千年[천년]이고 두고 神秘[신비]롭게 지낫스면 하여 보기도 하지만은 그보다도 나로 하여금 이곳에 마음을 부치게 하는 것은 이 샘물우에 石壁[석벽] 사이에皐蘭[고란]이 난다는 事實[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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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義慈王[백제의자왕]이 皐蘭寺[고란사]에만 난다는 이皐蘭[고란]을 한 입식 물항아리에 너허 오게 한 것은 다른 곳 물을 마시지 안켓다는 意圖外[의도외]에도 다른 한가지 事實[사실]을 알 수가 잇다. 義慈王[의자왕]이 胃病[위병]이 잇섯다는 것도 헛된 推測[추측] 만은 아이라는 것은 漢藥方[한약방]의 唐材[당재]라는 것은 中國[중국]서 朝鮮[조선]에 올 에 百濟[백제]에 먼저 왓다는 事實[사실]이 「圖書樊合[도서번합]」에 記錄[기록]되여 잇는데 皐蘭[고란]이 中國[중국]서 漢藥[한약]의 唐材[당재]로 百濟[백제]에 移植[이식]되여 온 것인지는 알 수 업스나 엇지되엿든지 이곳에 皐蘭[고란]이 난다는 것은 植物分布學的[식물분포학적]인 興味[흥미]를 나서 皐蘭[고란]이 胃腸病[위장병]에 조타는 事實[사실]을 나는  한번 들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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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가 이곳에 와서 아즉 몃날이 되지 못한 여름날 午後[오후]이엿다. 이곳은 말하자면 市內[시내]와 갓치 人家[인가]가 連結[연결]하야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우에 新開地[신개지]가 되여서 차저오는 賓客[빈객]도 별로 드물고 나 自身[자신]을 차저오는 사람은 업슬 만 아니라 편지도 보내는 사람이 드문 形便[형편]인지라 對[대]하는 사람도 一定[일정]한 것인데 내 外叔[외숙]을 訪問[방문]하는老詩人[노시인] 멧 분이 잇서 그 샘물가 盤石[반석] 우에 자리를 펴고 詩會[시회]을 열거나 詩談[시담]에 해를 보내는 도 잇섯는데 그  昌慶宮典爵[창경궁전작]인洪翠岩先生[홍취암선생]이 이곳의皐蘭[고란]을 보고 이것은 俗名[속명]이 一葉草[일엽초]인데 胃腸病[위장병]에 特効[특효]가 잇는 것이라고 한 말을 綜合[종합]해 본다면 내 아즉 本抄綱目[본초강목]을 詳考[상고]해 볼 機會[기회]는 업섯스나 皐蘭[고란]은 一葉草[일엽초]이고 一葉草[일엽초]가 皐蘭[고란]인 바에야 百濟義慈王[백제의자왕]의 宮中生活[궁중생활]이 酒池肉林[주지육림]이엿는지는 몰나도 적어도 一國[일국]의王者[왕자]로서 華奢[화사]한 生活[생활]에 로 調馬運動[조마운동]이나 狩獵以外[수렵이외]에는 九重宮闕[구중궁궐]안에 가만히 안즈신 貴[귀]한 몸이시라 消化[소화]가 不良[불량]하실 도 잇슬 것이라 偶然[우연]인지 必然[필연]인지 皐蘭[고란] 입파리를 물 항아리에  너허오게 하신 것은 다만 宮女[궁녀]들과 심심파적을 하기 위한 가여운 작란만으로 解釋[해석]할 수는 업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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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샘물에 몇 차례나 皐蘭[고란] 입파리를  너허서 마서도 보고 百濟[백제] 마즈막 임금님의 心境[심경]! 그 當日[당일]의 悲劇[비극]의 王者[왕자]로서의 데리케 ─ 트한 運命[운명]의 王者[왕자]를 代身[대신]하야 몃번이나 悲憤[비분]도 하여 보앗스나 나 自身[자신]은 胃[위]만은 너무 健康[건강]하고 鋼鐵[강철]도 녹을 만하야 心理的[심리적]인 것보다는 차라리 生理的[생리적]으로 不可能[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 演劇[연극]이란 진실로 어려운 것이려니와 참다운 事實[사실]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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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 나는 요즈음 義慈王[의자왕]이기를 그만두고 그 샘물을 다가 茶[차]를 러 먹어도 보려니 하엿스나 이런 時節[시절]이라 茶[차]인들 前日[전일]갓치 맛나는 것을 어들 수 잇서야 말이지 그런데 얼마전 정말 中國産[중국산]의 菜莉香茶[채리향차]가 조금 생겨서 다러서 맛을 보앗더니 그것은 二十年前[이십년전] 北京生活[북경생활]에서 맛보든 그 맛이 그냥 남어잇지 아는가? 우리가 다 갓흔 感覺器官[감각기관]이면서도 눈이나 귀나 皮膚[피부]는 어릴 에 感覺[감각]하든 그것보다 年齒[연치]가 차차 老成[노성]하여지면 그에 라 變遷[변천]이 생기건만 味覺[미각]만이 變[변]함 업슴은 무슨닭일가? 그것은 江南[강남]의 生活[생활]에서 어든 잇지 못할 記憶[기억]이 一時[일시]에 이 菜莉花[채리화]의 향내를 通[통]하야 그 時[시]에 再生[재생]되는 것이 안일런지. 나는 지금 가을에도 丹楓[단풍]들지 안은 皐蘭[고란] 입파리를 바라보며 菜莉花茶[채리화차]를 마시면서 江南[강남]의 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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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 《每日新報寫眞旬報[매일신보사진순보]》 (1942년 12월 1일, 제305호)
【원문】고란(皐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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