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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불시로 송도를 떠나 이곳 안양으로 이사를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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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京釜線) 안양역(安養驛)이고 경성과는 바로 24킬로 상거(相距)에 아주 지근한 사이고 여름 한철이면 푸울과 포도와 수박으로 그밖에도 관악산(冠岳山) 하이킹의 초입처로 두루두루 서울 주민들에게 (그러니까 형한테도) 잘 알려진 그 안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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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러고저러고 궁벽스럽게 안양이라니? 그동안 몇해를 두고 무던히 벼르던 이사가 일껏 서울을 겅중 건너뛰어 하필 안양이란 말이냐고 형이며 지우(知友)들이며 퍽 이상히 여기기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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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스스로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뜻밖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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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이라고 이름이나 들었을 뿐이지, 그리고 경부선 열차로 가끔 지나다니기나 했을 따름이지, 근년 그렇게들 푸울이 좋으네 포도며 수박이 맛있네 관악산과 연주암(戀主庵)이 보암직하네 해싸도 진작에 한번인들 와 본 적도 없고, 뿐만 아니라 어디로든지 이렇다 할 조그마한 결연이나 연분도 없던 땅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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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내가 일조(一朝)에 안양이라는 이 고장엘 와 일간두옥(一間斗屋)일망정 기둥뿌리를 박고 다만 한때나마 거접(居接)해 살리라고는 막상 꿈밖이요 일찌기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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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했건만 나는 시방 이렇게 번연히 여기 그 안양땅 －⎯ 시흥군 안양면 안양리 하고도 양지말(陽智村) 한구석의 어떤 집인 이 집에서 이처럼 천연덕스러이 기거를 하고 있으면서 어느새 다 이런 글발까지 초(草)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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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만 미루어보아도 곰곰 생각을 하면 도시 인간이란 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대소사를 막론하고 항상 대인관계로 더불어 별의별 고장과도 뜻 아니한 인연을 맺겠그롬 이른바 운명이 마련된 게 아니런가 싶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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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길을 가자면 중도 보고 속인도 보고 한다고 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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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부지 모를 사람과 푸뜩 만나 알게 된 것이 급기야는 여러가지 운명적인 ‘생활’이 그리로부터서 복잡미묘하게 나팔상(狀)으로 벌어져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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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듯이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 않은 어떤 미지의 땅에를 가서 한때 혹은 영구히 거주를 하고 하게 된 것이 마침내 그로 하여금 그 땅이 아니더라면 십상 아니었을 특수한 운명적인 생활을 누리지 않지 못하게 되는 수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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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전에 문득 저 송도라고 하는 기실 나에게는 전설처럼 그새까지의 생활과는 인연이 먼 알지도 보지도 못하던 그곳엘 바람결에 불리듯 찾아가서 내처 4, 5년 동안이나 우거(寓居)를 했던 것이면 했던 걸로 하여 나는 막상 내가 그대로 서울바닥에 머물러 있었다거나 또는 송도 이외의 다른 어떤 지방으로 갔었다거나 했더니와는 그 득실(得失)의 공리적 판단은 아무렇든 전연 내용이며 무늬가 반드시 다름이 있는 생활을 한 구절(句節) 치렀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하찮으나마 문학적으로든지 혹은 사생활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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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또다시 이번엔 그때 송도로 바람에 불려가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순전히 우연한 사정으로 역시 송도만치나 인연이 없었던 이곳 안양으로 반이(搬移)를 해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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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앞으로 얼마 동안 살고 있느라면 정녕코 이곳이 안양이란 걸로 하여 나의 전반 생활은 송도 적의 그것과는 어딘가 달리함이 있는 즉 송도에 그대로 있었다거나 또는 서울이랄지 기타 다른 땅으로 떠났으니와는 어느 구석 어떠한 고비에고 운명적으로 독자스런 파문과 색채가 반드시 거기에 새겨지고야 말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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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장차 그것이 어떠한 문채(紋彩)로 아로새겨질 것인지를 쓸쓸히 미소하면서 기대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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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언제 그런 운명론의 독신자가 되었느냐고 웃지 마시오. 세대가 나에게 그와 같이 미신을 마호멧적으로 전도하여 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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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지 않소? 그리고 아무려나 흥미스럽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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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걸 믿고 그리하여 앞으로 올 내일 것을…… 과연 무엇일꼬 하면서 고요히 기다리고 있어 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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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물론 이런 늙은이 반찬 같은 오락은 모처럼 갈수록 세대적으로 기개가 괄괄한 ‘장한(壯漢)’에게는 도시구미가 돋을 게 못 되고, 따라서 권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저 그렇더란 말일 따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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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안양으로 오면서는 집을 한 채 샀소. 살 집 주택을 샀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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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이 놀랐을 게요. 옳지! 이군이 한때 금광 어쩌구 부산나케 돌아다니더니 필시 눈먼 돈을 몇푼 좀 잡은 모양이라고 신통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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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변 아무려나 다행한 노릇이라고, 너도 그 지질한 궁(窮)을 인제는 면하게 되었으니 어쨌건 잘한 노릇이라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또 사람이란 불우하다가 영달을 하든지 빈곤하다가 치부를 하든지 하게 되면 옛 일과 옛 정의(情誼)를 씻은 듯 잊어버리는 법, 그러니 넌들 어디 그다지 못났다고 남처럼 빈구식정(貧舊食情)의 개구리가 되지 않을 까닭이 없는 것임에 우리는 하릴없이 친구 하나를 잃는구나 하여 형이며 여러 지우(知友)들이며 매우 섭섭해할는지도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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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점은 안심을 해도 좋소. 아무런들 내가 가령 금광으로 벼락부자가 되어 일조(一朝)에 팔자를 고치고 그래서 이런 서울 가깝고 산수 좋은 낙지(樂地)를 정성껏 택하여 고래등 같은 주택을 장만하고 할 지경이었다면 그래 무엇보다도 먼저 열 마리의 소를 잡고 열 섬어치의 떡과 열 섬어치의 술을 빚어놓고 형과 및 여러 지우들을 모셔다가 크게 한 자리의 잔치를 베풀어 마땅히 오랫동안의 우정과 신세를 치하하는 것이 아니라, 더우기 형에게는 형의 그 좋아하는 ‘탕수육’을 싫도록 듭씬 대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가서 남의 중방 밑이나 뚫고 훔쳐내온 재물이나 혹은 도척이처럼 가만히 살짝 나 혼자만 집을 산다 호강을 한다 할 이치야 천만 없을 테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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샀다는 집이라는 게 얼마짜리 집인고 하니 일금 2백 70원…… 홋 3백 원에서도 30원이 모자라는 2백 70원짜리 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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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 그뿐이겠소? 2백 70짜리 그 집을 사는데 우리 삼형제가 협력을 하여 그리고 시방 아랫방에서 눌러 살고 있는 복수(福洙) 김서방에게 70원이나 취대를 하여 겨우 1백 70원을 우선 치르고서 나머지 백 원은 이 달(5월) 말일까지로 계약을 하고는 아무렇든 집들이를 했었소. 했는데 잔액 그놈 백 원을 감당한다던 세째중형이 일 계량했던 것이 갑자기 낭패되면서 돈 예산도 그만 틀어져 기일까지에 끝전을 청장(淸帳)해 주지 못했고 해서 시방 사정이 무척 각다분하게는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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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곡절이면 내가 집을 사기는 샀어도 단연 부한(富漢)이 되었을 혐의가 없고, 따라서 심심치 않던 친구 하나를 잃어버릴 위험도 없고 하니 든든 안심을 해도 좋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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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옇든 그래서 지지리 근천스럽게나마 집이란 걸 사느라고 사기는 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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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샀으니 내 집을‘소유’한 것이고 내 집을 소유했으니 어쩐지 내가 일조에 셋집살이를 면하고서 내 소유의 내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졸지에 키가(소위 地體[지체]가) 쑥 솟은 것도 같아 자꾸만 발 밑이 내려다보이려고 하오. 옛날이라면 쌍놈이 처음으로 감투를 쓰고서 기분이 이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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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년(永年)의 하숙생활은 그만두고 명색이 살림을 하기 연년 근 10년이 온전히 이곳저곳으로 다니면서 셋집살이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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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어찌어찌 얼굴 간지럽게나마 이름만이라도 내 집을 지니어 구구한 그 셋집살이를 잠시일망정 면한 것이며, 일찌기 부모의 슬하를 떠나서 이후로 비로소 처음이거니 하면 조그마한 감상과 더불어 얼마간의 만족감이 노상 없지는 못할 것인데, 실상인즉 그런 건 덤덤하여 모르겠고 무단히 신분의 어색스러움만 느끼겠으니 서글픈 노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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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되어 길이 들지 않아서 혹은 소유했다는 그 내 집이라는 게 하도 빈약하여 마음에 차지를 않고 오히려 한심스러워서 두루 그렇달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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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요, 그러나 한편 생각을 하자면 보다 더 깊은 곡절이 있음인 듯싶으오. 하지만 그 내용을 여기에 드러내놓고 천착하기는 스스로 삼감이 마땅한 도리일까 해서 일단 붓을 멈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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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그 육중한 주택을 스케치하여 자랑 겸 구경시켜 드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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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눈으로 집 생긴 형편을 보기 전부터도 그동안 매매의 교섭과 수리 등을 보살피느라고 자주 왕래가 있던 네째중형에게서 대강은 이야기를 들어 모양새가 무릇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은 했던 터이지만, 따라서 그만큼 각오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침내 실지로 실물을 와서 섬쩍 보자니 그만 그 어설프고 머리가 득득 긁히게시리 걱정스럽더라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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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차(從此)론 너와도 인연이 적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생후 처음으로 안양역에서 차를 내린 것이 마침 석양 무렵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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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노순(路順)을 들은 대로 역전의 조선직물(朝鮮織物)이란 푯말이 섰는 골목으로 들어서다가 길목의 가겟사람더러 “양지촌(陽智村)을 어데로 갑니까?” 하고 물었더니 “양잿말요? 네에 글러루 곧장 가시오” 해서 우선 양지말을 양지촌이라고밖에 몰랐던 나의 무지를 시정할 수가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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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나가느라니 눈앞을 커다란 일괴(一塊)의 산이 가로막는게 기가 딱 질리는 것 같았고 그 산에서 밀려 내려온 사석(砂石) 바닥의 황폐한 하천 언덕을 바른편으로 조선직물 공장을 끼고서 걸어가기를 범 10분 게딱지 만큼한 오막살이 초가들만이 도들막 몇십 호가 박힌 갈데없이 가난해빠진 한촌(寒村)의 동구(洞口)에 다다라 자 이 흉악한 몰골들 가운데 대체 어느 게 내 집일 것인고 하면서 마음 가득 심산(心酸)스런 판인데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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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풀 묻은 손에 귀얄을 든 네째중형이 바로 길 어떤 한 집에서 내다보아 드디어 내 집이 그 집이로군 하고 확정이 되는 찰나 참으로 누가 집어다 내버렸대야 주워가지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실망이 되게 기구망측한 꼬락서니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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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이란 것에 대한 우리네의 상식적인 개념은 그 외양에 있어서는 우선 담이나 울타리가 있고 출입하는 대문이나 사립문이 있고 한 것이어야 되지를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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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그 당장 울타리도 없고 사립문도 없고 한 구차스런 집이 과연 내 집이라니 할 때에 그 순간만은 나도 먼 옛날의 덩시렇던 고향의 집과 동시에 소년 적의 내가 눈앞에 어리면서 자못 심회가 좋지 못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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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이라는 아까의 그 산을 안고 동남향으로 앉은 고패집이 아랫방 한 간 부엌 한 간 안방 한 간 마루 한 간 건넌방 한 간, 야속하게도 모두가 다 꼭꼭 한 간씩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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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 툇마루가 있을 턱이 없고 듣잖즉 복수 김서방이 이걸 외촌(外村)에서 헐어다가 다시 짓느라고 할 수 없이 기둥을 잘라내서 여섯자 춤으로 했다는데 짜장 땅바닥에 가 납작 늘어붙은 양이란 그야말로 기어들고 기어나고 하게 생겼었소. 그래서 나는 울타리와 사립문이 없으니 ‘한인물입(閑人勿入)’은 헛소리겠지만 부득불 ‘거인·대인물입(巨人大人勿入)’은 게시해야 할까보다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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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얕은 것은 그러나 둘째요 울타리와 사립문이 없는 것 다음으로 기막힌 발견은 변소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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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정전방(正前方)으로 가직이 이좌(二座)의 그것이 처억 버티고 있는데 하나는 돌멩이를 발 길 가량 쌓아올린 석조(石造!) 다른 하나는 거적을 둘러친 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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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다 지붕은 없고 이 알량한 주택에 그것이 둘이나 존재한 소치는 그새까지 두 세대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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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은 그래도 안팎으로 희게 종잇장도 붙이고 또 아주 운치있게시리 바자로 빙 둘러 울타리도 세우고 우물 두던과 앞뒤 마당도 고르고 그리고 변소도 임시나마 뒤꼍에다가 숨겨 만들고 기타 가지가지로 공력을 들인 덕에 집은 완구히 사람 명색이 들어 사는 형용을 갖추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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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안에서들 열심히 납뛰어 울타리 밖에다간 채전을 이룬다 울안으로는 꽃모를 심는다 울타리의 바자가 들이비친대서 아사가오 덩굴을 올린다 하여 살뜰히 정이 붙도록 정성을 쓰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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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거기에 감화가 되어서 내일쯤은 일전에 저 앞 율림에서 발견한 진귀한 화초를 한 포기 모종해다가 심을는지도 모르겠소. 분홍색 찔레꽃인데 흰 찔레꽃은 흔해도 분홍색은 썩 보기 드문 것이오. 또 향기가 여간만 아름다운 게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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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그렇게 해서 우선은 몸을 붙이고 안기는 앉은 셈이나 인제 멀지 않아 닥쳐올 여름 홍수철을 생각하면 마치 옛날 서울의 서부이촌동(西部二村洞) 주민이 된 듯싶은 불안이 없지를 않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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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두고 큰물이 질 때마다 산에서 사석(砂石)이 밀려내리고 밀려 내리고 한 것이 일찌기는 상당히 폭 넓었을 듯싶은 하천을 죄다 메워 평지가 거진 되었고 시방은 한복판으로만 가느다랗게 실개천이 흐르고 있을 따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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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지라는 게 그런데 일면 우툴두툴한 바닥에 대소의 조약돌과 퍼실퍼실한 모래와 그리고는 어지러운 잡초가 우거져 갈 데 없이 꺼칠한 황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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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천의 ‘행동권(行動圈)’ 안에 든 황무지의 한귀퉁이에 가서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본부락과 등져 듬성듬성 섰는 2, 3호의 이웃으로 더불어 오도카니 놓여 있는 게 내 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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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엔간한 물이라면 몰라도 한 번 큰 홍수가 지고 보면 하천은 옛날의 제 영역에까지 행동하기를 조금치도 거리껴하지를 않을 터, 집은 자연 침수를 면치 못할 터, 좀더 심할 경우엔 초가라 가붓하겠다. 중방은 얕겠다 본새있이 둥둥 떠내려갈 터…… 만일이라도 그 지경에 이르는 날이면 일을 장차 어떻게 하겠소? 수해 피구제민(被救濟民) 축에 한몫 들기는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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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말하기를 아무리 큰비가 와도 오는 대로 죽죽 다 물이 빠지고 수해를 당할 염려는 조금도 없다고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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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그러나 말하기를 아닌게아니라 물이 염려스럽다고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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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누구는 ‘공직자적(公職者的)’으로 말하기를 불원(不遠)하여 하천 개수(改修)공사를 실시할 터인즉 염려가 없다고 하는데, 그 설에 대하여 누구는 건 말뿐이지 언제 될는지 모를 소리라고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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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말을 믿어야 좋을는지 무던힌 답답한 노릇이오. 그러나마 내 집도 이웃집도 죄다가 작금 양년(兩年)에야 지은 집이어서 작년 같은 가물에 홍수를 치렀을 내력이 없고 하니 모두 다 큰물에 대해선 시험미제(試驗未濟) 이건 잘못하다가 무꾸리를 가게 될까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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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국유지고 동네 구장씨(區長氏)가 그것을 5천 평인가 대부(貸付)를 맡았다고 하오. 그래서 이 집도 처음 살 때에 듣기엔 대지 1백 평을 쓰고 매년 삼 원씩 도지를 물기로 했다고 하기에 국유지니 개인소유보다는 안심이요, 또 백 평에 사용료가 연 3원이면 공것이나 진배없다 하여 좋게 생각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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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울타리를 하고 다시 채전 소용(菜田所用)으로 전부 해서 백 평 범위를 잡아 돌멩이를 주워다가 한계를 쌓고 하는데 마침 예의 구장씨가 와서 보고는 백 평을 허락한 일이 없다고 간섭을 하여 미안을 당했소. 집 자체가 등기조차 나지 않은 것이니 대지에 무어 임차계약 같은 게 있었을 리가 없고 한즉 저편에서 쇠면 호소무처(呼訴無處)로 꼼짝없이 당하게 될 형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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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천금(千金)으로 매택(賣宅)을 하고 팔백으로 매린(賣鄰)을 하라 이르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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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이웃에 대해서는 아직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고 또 안다고 하더라도 부질없이 이웃을 흉아작하는 게 불가한 일이기로 짐짓 피하는 것이지만 인가 이외 거로 대단 유쾌하지 못한 이웃이 둘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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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와 상여집 이 두 가지의 반갑잖은 물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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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정전방(正前方)으로 빤히 바라다보이는 불과 삼사백 미터 상 거의 산등성이에 가서 공동묘지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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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런데 또 이사를 해오던 바로 첫날에 마침 한패의 장례가 있어서 상여로 더불어 인간들이 들끓고 무덤을 파고 게다가 경기(京畿)의 장례풍속이란 오죽 난(亂)한가요! 술들을 퍼먹고서 장구 치고 노래부르며 춤추고 떠돌고…… 대단히 불쾌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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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북쪽으로 이웃한 집을 사이에 두고 삼십간 남짓한 곳에 짚으로 인 돌담집이 보이는 게 동중 공유(洞中共有)의 상여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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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가 불쾌한 거라면 상여집은 도무지 그로테스크하고 추해서 눈에 거슬려 견딜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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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위의 황무지를 기경(起耕)해 먹느라고 부절히 시비(施肥)를 하는 통에 주야없이 코로 스며드는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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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내 홀로 앉아 장태식(長太息)을 했소. 내 어이 만지(蠻地)엘 왔더뇨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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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문화 없는 풍습·풍물이 한두 가지뿐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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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물을 데워서 방안으로 들여다놓고 몸을 씻었소. 이 고장에 공중목욕탕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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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역전의 저자가 그만이나 은성(殷盛)하면서 목간 하나가 없다께 참으로 말도 못할 동네로구나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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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러면 여기 사람들은 목간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서울 가서……” “장사를 하러 거진 매일 서울 왕래를 하니까 그 길에 서울서 ……”라는 것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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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은 그럴 듯도 했소. 그러나 그 다음 말이 은근히 기가 막히는 절창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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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구 여름엔 저기 푸울에 가서 씻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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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울에 가서 목욕을 한다는 것이요, 때를 벗기는 목욕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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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에 어떻소? 남달리 수영을 좋아하는 형이겠다, 그래서 푸울에 다니기를 즐겨하겠다 하는 터이니 목욕을 한다는 즉 때를 벗긴다는 그 푸울에 관해서 상상이 어떠하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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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다가 욕실을 설비하자니 성세가 부치고 오늘처럼 물을 데워 자배기에 담아 놓고 방안에서 씻자니 군색스럽고 부득불 나도 서울로 목간을 하러 다녀야 하겠는데, 그 한번 목간에 1원 각수가 들겠으니 목간비 치고는 하품이 날 지출이 아닐 수 없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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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소가 바로 역전이고 게서 이 동네까지가 10분이 걸릴락말락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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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건만 우편물은 기수일(奇數日)의 격일 배달이오. 해서 서울서 오는 통신을 자칫하면 나흘 만에야 받게 될 경우도 없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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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라고 시각을 다투는 통신이 없을 법이 없는데, 사서함을 알아본즉 마침 빈 것이 있기도 하고 요금도 넉 달에 1원 25전이라 하여 한번 사용해 봄직도 하나 사서함이라니 어쩐지 허겁스런 것 같기도 하고, 또 매일매일 그것을 찾아온다는 것도 거역(巨役)이겠고 해서 아직 작정을 하지 못한 채 두루 궁리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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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한 벽지라면 멀어서 그렇거니 하고 이런 것 저런 것을 꿍꿍 참을 수가 있겠소. 그러나 조선의 수도 서울이 겨우 24킬로 상거에, 시속 70킬로짜리의 문명이 하루도 몇 차례씩 왕래를 하는 이 바닥에 앉아서 그러한 불편을 겪다니 적지않이 억울한 노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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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배달이 더디고 목간집이 없고 상여집과 선린을 해야 하고 병인(病人)이 있어도 자동차는커녕 인력거 한 채 구해낼 수 없고 백물(百物)이 심지어 채소까지도 서울서 내려먹어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싸고…… 하다지만 그러나 그런 것쯤 식량문제에 비(比)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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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닷 되에 쌀 한 되, 이것이 이곳 일대의 잡곡 대 백미의 혼합량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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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시국이니 혼식을 하여 마땅하고 만약 국책이나 당국의 방침이란다면 5 대 1은 말고서 순잡곡만이라도 먹을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은 물론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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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방 어디를 가든지 1 대 1, 즉 반반이 최고율이고 바로 지척사이인 서울만 하더라도 외미(外米) 백미 잡곡 해서 3 4 3의 비율이 확보되어 있는데 사오십 리를 벗어진 이곳이 5 대 1이라니 대체 그 기준이 무엇에 의거함인지를 알 길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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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경기도 당국이 촌이라서 그러한 차별적인 고율(高率)을 과했을 이치는 만무하고 상필(想必) 지방 소관원의 지나친 혼식률 강화의 실시가 아니면 배급조합의 무능인 듯싶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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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미를 먹여야만 할 병인을 데리고 또 나 자신도 위장이 약하여 보리로 반섞이 정도라면 그럭저럭 못 먹을 것까지는 없으나 그 이상은 건강상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처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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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포도와 수박이 얼마나 좋으며 푸울이 얼마나 시원할는지, 그래서 이 갖추갖추의 불편과 불쾌를 넉넉히 메꿔주려는지 어찌려는지 모르겠으되 이사 오던 3일이 못하여 사람을 생으로 변화시키는 이 고장이 그만 싫증이 나고 말았소. 유일한 득이라면 송도에 비하여 서울까지의 거리가 3분지 1 밖에 안 되므로 내왕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라 하겠지만, 하나 그와 같은 편리가 있는 만큼 더 자주 다녀야 하겠으니 득실이 상반일 따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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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지도 않은 외래한(外來漢)이 남의 고장엘 들어와서는 지지리 흉만 보았으니 오늘일랑 어디 추앙을 좀 하는 것도 공평하여 무사(無私)한 노릇일 뿐더러 또한 예의일까 싶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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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대단히 흔소. 아무 데를 파도 삼사 척이면 물이 나지 않는 바닥이 없고 한 길만 넘으면 정갈한 식수를 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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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그래서 조그만씩 조그만씩한 옹당우물이 제각기 없는 집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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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질도 좋기로 또한 유명하오. 물이 좋아서 이 고장 사람들은 체증이란 걸 모른다고까지 하니 식량이 귀한 이 당절에 도리어 무서운 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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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 덕에 나도 적년의 소화불량이나 나수었으면 만행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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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는 안양물을 오랫동안 먹으면 디스토마가 없어진다고도 하오. 사실이라면 쿨룩거리는 토질환자(土疾患者)들에게 그 위험한 (연전의 해남(海南)사건처럼) 에메친 주사가 아니라도 반가운 복음이겠으나 잘못하다가는 너무 많이 모여들어 나의 풍치구역을 해칠 염려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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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림(栗林)과 나와는 아마 얕지 않은 인연이 있나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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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바로 집 가까이 넓고 그윽한 율림이 있어서 무시로 나가 거닐기에 매우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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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이 우뚝 솟았고 그 아래로 작은 봉들이 첩첩이 싸이고 그리고는 하천을 따라서 ○장의 평탄한 녹지대인데 거기에 가서 무려 수천 주의 밤나무가 울창하니 들어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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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서는 바로 손이 닿을 듯 그 앞이고, 하천을 지나 자갈 운반의 인입선(引入線) 철둑을 넘어서면 이내 그 율림이 나서오. 큰 집단의 녹음이 보기에도 눈이 즐겁고 나는 집에 있는 때면 매일같이 거기서 한시경씩 거니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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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유유히 풀을 먹고 있고 이때만은 나도 소와 더불어 한가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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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요새 한참 찔레꽃이 피어 흐드러져서 꽃도 꼽거니와 향기 또한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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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일전엔 분홍색 찔레꽃을 발견했던 것이오. 참으로 분홍색 찔레꽃의 이쁘장스럼이란 말할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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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아까는 가보았더니 숱한 풍뎅이떼가 시꺼멓게 엉켜가지고는 그 이쁜 꽃을 싹싹 모두 갉아먹고 있지를 않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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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연히 막대를 휘둘러 천하에 몹쓸 그 벌레들을 응징해 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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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오래지 않아 율림에는 밤꽃이 피고 그게 또한 향기가 한 운치를 더할 터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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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면 거기엔 반드시 도라지가 있고 핑크가 피고 초롱꽃이 조랑조랑 매달리고 했을 게요. 송도에서처럼 도라지를 좀 떠옮겨다가 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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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早晩)하여 이곳을 뜨기는 쉽지 못하겠으매 불편한 것 불쾌한 것에는 되도록이면 억지로라도 눈을 감고 참는 대신 무어나 이것저것 재미들임직한 것을 궁리해내야만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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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율림에서 울던 뻐꾹새가 청산으로 그윽히 여운을 끄을며 들어가고 나면 이윽고 해가 지면서 연달아 두견이가 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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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따라서는 두견의 울음이 대단히 듣기 귀한 것이지만 송도에나 예서 나는 흔하게 들을 수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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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울고 때로는 두 마리, 세 마리가 서로 겨루듯이 한꺼번에 우오. 이 두견의 울음 하나만 가지고도 풍류객으로 하여금 안양을 귀히 여기게 하기에 족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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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런데 나에게는 두견의 울음이 신통찮은 수수께끼가 되어서 섭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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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제혈(聲聲啼血)이라 하여 소리마다 피가 나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회(悲懷)를 자아내게 한다고 하지를 않소? 그리고 자고로 동양의 허다한 시인 중에 두견을 읊지 않은 시인이 없고, 그것이 하나도 비가(悲歌) 아닌 것이 없지를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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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표현이 허겁스런 한시(漢詩)이기로서니, 그래도 어딘가는 실감이 다소간 있기 때문에 그렇듯 슬픈 노래의 제재로 두고두고 울궈먹은 게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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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건만 내가 듣기엔 도무지 비조(悲調)라고는 없고, 따라서 만날 들어야 조금치도 슬픈 줄은 모르겠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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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음악적으로 세련이 되지를 못한 귀의 소유자인 탓인지 또는 시방은 교통이 지편(至便)해서 귀촉도(歸蜀道 ; 不如歸[불여귀]가 아니라) 가이귀(可而歸)가 되어서 촉혼(蜀魂)이 역사적 한을 말끔 풀었기 때문에 요새는 경쾌 명랑한 재즈곡으로 울음을 우는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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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이야기지만 오죽하면 한번은 어디선가 두견의 울음을 듣게 되었길래 위정 좀 슬퍼보려니 해도 덤덤했었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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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자랑함직한 거리가 많을 것이나 엔간히 지면도 넘치고 했으니 이번일랑 이 어림에서 줄이고 붓을 놓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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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0. 6. 5∼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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