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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5~1408] 조선의 초대 왕(재위 1392~1398년). 성은 이(李), 이름은 성계(成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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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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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5~1408] 조선의 초대 왕(재위 1392~1398년). 성은 이(李), 이름은 성계(成桂)이다.
어려서부터 슬기롭고 용감하였으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
고려 말기의 장군 으로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빼앗고, 홍건적, 왜구와 싸워 이를 무찔렀다. 1388년에 랴오둥 정벌을 명령받았으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최영 등 반대파를 물리치고 권력을 잡았다.
1392년에 공양왕을 내치고 왕위에 올라 이듬해 국호를 조선이라 고치고, 1394년에 도읍을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옮겼다.
그는 밖으로는 명나라를 받들어 그 보호를 받으려는 사대 정책을 쓰고, 안으로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삼았으며, 경제적으로는 농업을 장려하고 전제(田制)를 개혁하여 농본주의에 의한 신분 사회 제도를 확립하였다.
1398년에 왕자들 사이에 왕위 다툼이 일어나 방번, 방석 두 아들이 죽자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가서 불교를 믿으며 여생을 보냈다.
3정승
• 남을번 (영의정), 배극렴 (좌시중), 조준 (우시중)
• 배극렴 (영의정), 조준 (좌시중), 김사형 (우시중)
• 정도전 (영의정), 조준 (좌시중), 김사형 (우시중)
• 정도전 (영의정), 조준 (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 고려인 이성계의 성장
- 1335 출생
→ 1361~ 반란 세력, 홍건적, 원, 왜, 여진과의 전투에서 꾸준히 전공을 올림
→ 1380 황산대첩 - 경상도와 전라도에 침입한 왜구를 섬멸 → 이후에도 여진과 왜를 격퇴
→ 1388 최영과 함께 이인임 일당을 제거 → 처리 문제로 최영과 의견이 갈림
■ 위화도 회군
- 1388 명나라에서 철령위 설치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은 요동정벌을 결정, 이성계는 4불가론 제시
→ 요동으로 진군하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을 단행
→ 최영을 유배 보내고, 창왕을 옹립 - 이성계는 정치·군사적 실권자가 됨
→ 1389 공양왕 옹립
→ 1390 이초의 옥으로 이색 등이 옥에 갇히거나 유배 - 처리 문제로 공양왕과 마찰, 정몽주와 의견 차이 발생
→ 1392 정몽주는 이성계 일파를 탄핵 →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 및 일파 제거
■ 새 왕조 건국
- 1392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을 내쫓고 국새를 이성계에게 권하여 왕위에 올림 - 국호 고려, 정치 개혁 표방
→ 1393 국호를 ‘조선’으로 확정
→ 1394 한양을 수도로 결정
→ 1395 종묘와 궁궐 완성 - 경복궁, 강녕전 등
→ 1396 도성 축조 - 흥인문, 숭례문 등 사대문과 사소문
→ 1398 1차 왕자의 난 - 왕자들과 정도전 등 공신들 사이에 대립으로 정도전 등이 살해됨
→ 1398 정종 즉위 → 정종에게 선위하고 태조는 한양을 떠나서 생활
→ 1400 2차 왕자의 난
→ 1400 태종 즉위
→ 1402 태조는 개성으로 돌아오고, 태종에게 한양 재천도를 명함
→ 1405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
→ 1408 서거 - 묘호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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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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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원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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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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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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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제 나는 정주(定州)로 가려고 선천역(宣川驛) 앞에 섰다. 처서(處暑)가 지난 요즈음은 제법 산들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일어나 풀숲에서 사는 벌레들에게 가을 소식을 전한다. 아침 일찍 정주(定州)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쪽에서 바닷바람이 불어 스치면 이따금 비린내가 섞인 더운 바람이 차창으로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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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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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단군굴(檀君窟) 안에서 그대로 밤을 새운 나는,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굴(窟) 안을 살핀다. 천연적인 바위가 뚫려 마치 집채같이 되어 있는데 천정에서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박쥐가 들린다. 제단(祭壇)도 없고 향각(香閣)도 없이 그대로 버려진 채로 있을 뿐이다. 단군(檀君)이 있었다는 유서 깊은 이곳을 이렇게 버려둘 수 있을까? 이 민족이 너무도 무심(無心)함을 느끼면서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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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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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
태조 이성계의 회군로回軍路 / 이성계의 황산대첩 회군로를 찾아 / 헬리콥터를 타고 성수산을 내려다보면 참으로 절묘한 산세를 발견하게 된다. 장수 팔공산의 준령이 치달아 우뚝 멈춘 성수산을 중심으로 세 가닥의 힘찬 맥이 뻗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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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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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함흥시(咸興市)에서 동쪽으로 약 15리(里)쯤 가면 설봉산(雪峯山)이라는 큰 산이 있다. 이 산의 기슭에 있는 절이 오늘 찾으려는 귀주사(歸州寺)이다. 전번에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개심사(開心寺)의 부처님의 법력(法力)으로 마음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개심사(開心寺)를 찾았던 것인데, 오늘은 함흥(咸興)에 가까이 있는 귀주사(歸州寺)를 찾는 것은 또한 의도하는 바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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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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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우왕6년 (1380년) 8월에 경상도 원수 우인열은 고려 조정에 급히 아뢰기를 ‘나졸의 말에 따르면 왜구들이 대마도로부터 바다를 덮고 밀려오는데 돛대가 잇달았다 하오니 조저원수를 급히 보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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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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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로 명산을 찾아 기도터를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웅장한 바위가 많은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위가 있다는 것은 기도터와 상당한 인연과 상관성이 있다는 증거인 셈이고 영험함이 따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땅속으로 흐르는 기운인 지기地氣는 바위가 많은 곳에 모여 있으므로 이런 곳에서 특별한 기운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험한 신력神力을 지닌 곳을 찾아서 기도처로 삼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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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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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 이 태조는 전국의 명산대천을 다니면서 기도를 드리고 제사를 지냈다. 이태조가 제사를 지낸 것은 임금이 되게 해달라고 명산대천의 산신령에게 빌기 위해서였다. 제사를 지낼 때 이태조는 무쇠말을 만들어 놓고 기도를 드렸는데, 무쇠말은 6.25가 지난 후 없어졌다. 이런 까닭으로 ‘말봉산’과 ‘국사봉’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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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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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난달에 신계군(新溪郡)으로 가서 월은사(月隱寺)를 찾아보고 평산(平山)으로 노정을 잡았으나, 신계(新溪)에서 평산(平山)으로 가면 곡산군(谷山郡)으로 가기는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신계(新溪)에서 국도를 따라 북으로 치달아 곡산군(谷山郡)에 있는 고달사(高達寺)를 먼저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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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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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 이 태조는 전국의 명산대천을 다니면서 기도를 드리고 제사를 지냈다. 이태조가 제사를 지낸 것은 임금이 되게 해달라고 명산대천의 산신령에게 빌기 위해서였다. 제사를 지낼 때 이태조는 무쇠말을 만들어 놓고 기도를 드렸는데, 무쇠말은 6.25가 지난 후 없어졌다. 이런 까닭으로 ‘말봉산’과 ‘국사봉’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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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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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제 나는 정주(定州)로 가려고 선천역(宣川驛) 앞에 섰다. 처서(處暑)가 지난 요즈음은 제법 산들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일어나 풀숲에서 사는 벌레들에게 가을 소식을 전한다. 아침 일찍 정주(定州)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쪽에서 바닷바람이 불어 스치면 이따금 비린내가 섞인 더운 바람이 차창으로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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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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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단군굴(檀君窟) 안에서 그대로 밤을 새운 나는,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굴(窟) 안을 살핀다. 천연적인 바위가 뚫려 마치 집채같이 되어 있는데 천정에서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박쥐가 들린다. 제단(祭壇)도 없고 향각(香閣)도 없이 그대로 버려진 채로 있을 뿐이다. 단군(檀君)이 있었다는 유서 깊은 이곳을 이렇게 버려둘 수 있을까? 이 민족이 너무도 무심(無心)함을 느끼면서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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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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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난달에 신계군(新溪郡)으로 가서 월은사(月隱寺)를 찾아보고 평산(平山)으로 노정을 잡았으나, 신계(新溪)에서 평산(平山)으로 가면 곡산군(谷山郡)으로 가기는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신계(新溪)에서 국도를 따라 북으로 치달아 곡산군(谷山郡)에 있는 고달사(高達寺)를 먼저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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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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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함흥시(咸興市)에서 동쪽으로 약 15리(里)쯤 가면 설봉산(雪峯山)이라는 큰 산이 있다. 이 산의 기슭에 있는 절이 오늘 찾으려는 귀주사(歸州寺)이다. 전번에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개심사(開心寺)의 부처님의 법력(法力)으로 마음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개심사(開心寺)를 찾았던 것인데, 오늘은 함흥(咸興)에 가까이 있는 귀주사(歸州寺)를 찾는 것은 또한 의도하는 바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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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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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금강산의 각 사암(寺庵)을 두루 순례하고 서울로 돌아와 차분히 쉬면서, 그동안 추석 중추절을 보내고 나니, 북한땅에 남은 옛 조상님들의 고혼(孤魂)이 잠결에도 곁에 와 슬퍼함에 문득 마음을 다시 먹고 두루 여타(餘他)의 각 지방에 있는 사암(寺庵)을 찾아 불전(佛前)에라도 고혼(孤魂)을 달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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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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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우왕6년 (1380년) 8월에 경상도 원수 우인열은 고려 조정에 급히 아뢰기를 ‘나졸의 말에 따르면 왜구들이 대마도로부터 바다를 덮고 밀려오는데 돛대가 잇달았다 하오니 조저원수를 급히 보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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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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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로 명산을 찾아 기도터를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웅장한 바위가 많은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위가 있다는 것은 기도터와 상당한 인연과 상관성이 있다는 증거인 셈이고 영험함이 따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땅속으로 흐르는 기운인 지기地氣는 바위가 많은 곳에 모여 있으므로 이런 곳에서 특별한 기운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험한 신력神力을 지닌 곳을 찾아서 기도처로 삼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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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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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소장 김용욱)는 10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동구릉(경기 구리시)에 있는 건원릉(健元陵) 능침을 특별 개방한다.【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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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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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황산대첩 전장 터 인근, 당시 상황과 관련된 지명 여러 곳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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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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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
태조 이성계의 회군로回軍路 / 이성계의 황산대첩 회군로를 찾아 / 헬리콥터를 타고 성수산을 내려다보면 참으로 절묘한 산세를 발견하게 된다. 장수 팔공산의 준령이 치달아 우뚝 멈춘 성수산을 중심으로 세 가닥의 힘찬 맥이 뻗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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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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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향로봉은 성수산에서 내려오는 9개 지맥이 여의주를 향하고 있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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