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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정리 호산재(虎山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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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호산재
최근 3개월 조회수 : 11 (3 등급)
【향토】
(게재일: 2024.01.04. (최종: 2024.01.02. 23:03)) 
◈ 학정리 호산재(虎山齋)
이 재실은 삼계면 학정리 사우시 마을 북쪽 끝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밀양 박씨의 선조 박이룡(朴爾龍)의 재실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주련이 4개 걸려있다.
목   차
[숨기기]
학정리 호산재(虎山齋)
 
이 재실은 삼계면 학정리 사우시 마을 북쪽 끝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밀양 박씨의 선조 박이룡(朴爾龍)의 재실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주련이 4개 걸려있다.
 
 
 
 

1. 학정 호산재기(虎山齋記)

 
무릇 묘에는 재실[齋]이 있고, 재실[齋]에서는 제사를 준비한다. 제사[祭]는 곧 공경하는 것이니 그 있는 정성을 다하는 것은 이성(彛性)과 같은 것이며 고을의 좋은 풍속이다. 대개 뽕나무 가래나무에게도[桑梓] 반드시 공경하며403)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머무는 것이다.404) 하물며 집안의 조상이 안장된 곳을 감히 공경하지 않으며 추모하지 않겠는가!
 
나의 6대 조고(祖考) 가선공(嘉善公)의 무덤[堂斧]이 임실군 삼계면(三溪面) 사촌(沙村) 뒤기슭에 있으니 호곡산(虎谷山) 건좌(乾坐) 자리이다. 곧 우리 밀성(密城)씨가 수 백년간 세세토록 살던 곳이다. 묘소에서 수 리쯤 떨어진 옛터에 재실[丙舍]이 있었다. 비록 그다지 크지 않지만 비바람을 가릴 만하여 주선할 만하였다. 불행히 지난 경인년(庚寅)에 공비들의 난리[匪類之亂] 때에 쳐들어와서 다 불태워졌는데 탄식하며 참담하였다.
 
조상의 무덤[先壟]을 수호하는 일은 아무래도 소홀히 할 수 없는데 제사지내는 경건한 곳이 어지럽고 번잡하기 이를 데 없어 이렇게 한(恨)을 품은 지 오래 되었다. 자손이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나 본디 청빈하여 분수를 지키는 정도였다. 게다가 난리를 겪은 후에 일의 형편이 허락되지 않아서 서로 돌아보며 탄식하였다.
 
이에 종중에서 의견을 묻고 뜻을 모아 한 마음으로 분발하여 먼저 제전(祭典)을 풍성해도 절약하고 소박하게 취하여 대궁[餕]을 펼 때 그 넘침을 살피고 비용을 줄여 무덤가의 나무를 보살펴 끌어 모아 저축한 지 십 수년 만에 약간의 돈을 마련하여 정유년에 기공(起工)하며 한 해가 가기 전에 낙성을 하였으니 본래의 계획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이것은 여러 유사(有司)들과 여러 자손들이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정성을 다하여 힘썼기 때문이다. 안쪽에 재실 2칸(二間)을 지어 기와를 얹어 입혔으며 섬돌은 높이고 담장을 둘렀다. 밖에는 창고[直舍] 3칸을 엄정하게 배치하여 옛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이에 재숙(齋宿)에 규모가 있고 오르고 내릴 때 예의(禮儀)를 갖추게 되었으니 우리 가문의 숙원은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이 공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經紀)한 사람은 숙부 한진(漢鎭)이고 족형제(族兄弟) 원철(源喆)과 낙양(洛陽), 그리고 조카[族姪] 순군(順根)이다. 나는 뒤따르며 주선하였을 따름이다.
 
장차 낙성하고 재각의 이름에 대해 모의하였는데 내가 술잔을 드리며405) 축하하며 이르기를, ‘대개 산 이름으로 이름을 지어 이곳에 스스로 우거한다는 뜻을 담았다. 호랑이가 비록 미물(微物)이지만 오히려 부자 사이를 알고 있으니 천리인 것이다. 이것은 자애와 효도의 도리에 가까운 것이니 가하지 않겠는가.
 
아! 뒤를 이어서 여기에 오르는 사람은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항상 자애와 효도를 마음에 새겨 미물에까지 미쳐 세세토록 돈독하게 친목하는 정의를 영원히 제사를 받들어 전한다면 어찌 우리 종중의 무궁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이미 숙주(叔主)와 철(喆)형이 나에게 기문을 쓰라고 하여서 내가 비록 문장이 짧지만 외람되게 후손되어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대략을 기록하였으니 그 전말이 위와 같을 뿐이다.
 
임인(壬寅)년 양월(陽月) 하한(下澣)
6대손 원식(源植) 삼가 지음.
 
 
 

1.1. 虎山齋記

 
夫墓而齋 齋而祭祭而敬 致其如在之誠 彛性之攸同 而鄕土之善俗也 盖桑梓必敬止 羹墻必寓慕 而况祖宗冠履之所藏者乎 敢不敬歟 敢不慕歟 惟我六代祖考 嘉善公 堂斧之封 在於任實郡三溪面 沙村後虎谷山 乾坐阡村 卽我密城氏 數百年 世居地也 而距墓數里 强舊有丙舍 雖不甚閑曠 可庇風雨 足容周旋矣 不幸往在庚寅 匪類之亂 盡入於燒燼中吁亦慘矣 先壟守護 未免疎忽 俎豆處敬 多致旁午 以是茹恨者 有年所以子姓不爲不多 然素淸貧自守 且經亂後事力 不許相顧唏歔矣 迺者合宗詢謀 一心奮發 先自祭典 節於豊而取於溸 下至餕筵 省其濫貶其費 護養邱木 拮据貯蓄者 十數年于玆摠得金 略干額 起工於丁酉 未周年 而功告訖 不愆于素 是則諸有司與衆子孫之勤勞 殫誠之力也 內而齋室二間 瓦而衣之 砌而崇之墻而圍之 外而直舍三間 井井排置 舊覩復爲於是乎 齋宿有方 登降有儀 吾宗之宿 願可謂成矣 是役也 始終經紀者 叔父御漢鎭 族兄弟源喆洛陽 族姪順根也 而植亦隨後周旋 而己將以落之謀 所以名齋 植奉爵而祝之 曰盖以山名名之 此自有寓意者存焉 虎雖微物 猶知父子則天也 是亦近於慈孝之道也 不亦可乎 噫踵武而登斯者 顧名思義 常以慈孝 爲心推以 及物世修敦睦之誼 永傳香火之奉 則豈非吾宗無窮之幸也歟 旣叔主若喆兄 命植記之 植雖不文 忝在後昆之列 不敢固辭 略擧其顚 末如右云爾
 
壬寅 陽月 下澣   六代孫 源植 謹記
 
 

 
각주
403) 『시경』 〈소아(小雅) 소변(小弁)〉에 “뽕나무 가래나무 하찮은 것도, 반드시 공경하길 마지않는데, 존경할 분 오로지 아버님이요, 의지할 분 오로지 어머님일레.[維桑與梓 必恭敬止 靡瞻匪父 靡依匪母]” 하였다. 가래나무는 부모가 심어 자손에게 물려준 것이라 하여 고향을 뜻한다.
404) 『후한서(後漢書)』 이고전(李固傳)에, “순(舜)이 요(堯)를 사모하여, 앉아 있을 적에는 요 임금을 담에 뵙는 듯하고, 밥 먹을 적에는 요 임금을 국에서 뵙는 듯했다.” 하였다.
405) 봉작(奉爵) : 술잔을 드리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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