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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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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342강 강의자료 요약 (202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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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2024.03.17. 10:13) 
◈ 사마천 사기 342강 강의자료 요약 (2024.3.14)
司馬遷《史記》〈本紀〉 4-023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竹裏館-王維〉에 대해서 상세히 분석 설명 ; (2)《論語》〈八佾〉「子夏問曰..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何謂也?子曰..繪事後素。曰..禮後乎」에 관하여 古注, 新注, 美術學, 衣類(絲綢)學, 考古學 등 관련 학문을 참고하여 최종 분석 정리하였음 (3)《論語》〈八佾〉「夏禮吾能言之......文獻不足故也。足, 則吾能徵之矣」에서 文獻의 상세한 의미(文-典籍, 獻-夏禮와 商禮에 밝은 賢人 or 史官) 설명 ; (4)商 or 殷의 정확한 왕조 명칭 및 기타 관련내용 상세 설명 ; (5)《孝經》 중에서 《今文孝經(18장)》과 《古文孝經(22장)》 및 朱子의 독자적인 《孝經(刊誤-經1장, 傳14장》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6)顏回의 聞一知十과 子貢의 聞一知二 비교 설명하였습니다.
2024년 3월 14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1) 죽리관 왕유 작
2) 중국어 발음
 
裏(里)
Du2zuo4you1huang2li3
Tan2qin2fu4chang2xiao4
Shen1lin2ren2bu4zhi1
Ming2yue4lai2xiang1zhao4
 
왕유(왕웨이, 王維, 699년 ~ 759년)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 (摩詰)이다.
 
* 五言律詩에 28개의 형식이 있다.
 
 

 
* 《論語》〈八佾〉 아래 원문의 최종 분석정리(2014,03,05)
 
【원문】「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何謂也? 子曰:繪事後素。曰: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Ⅰ. 분석1→위 원문 중 《詩經》의 인용문은?
1說.
2說.
3.對照
4.小結
 
Ⅱ. 분석2→「素以爲絢兮」는 누구의 말?
1. 子夏의 말.
2. 孔子의 말
 
Ⅲ. 분석3→「素以爲絢兮」의 문자학적 의미는?
1 素
2 絢   사마천 사기 341강 강의자료 요약 (2024.3.7) 참조
 
 
Ⅳ. 분석4 → 「繪事後素」의 상세한 풀이는?
1. 본문의 의미는 《周禮》〈考工記〉「凡畵繢之事後素功」
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나중에 횐 색으로서 작업을 한다.
 
注引《論語》「繪事後素」와 동일한 의미라고 하였다. 즉 「凡畵繢之事, 後素功。曰繪畵之事後素功。......猶人有美質, 然後可加文飾」
사람이 아름다운 본 바탕이 있고 연후에 가히 마무리하는 것과 같다.
 
2. 古注
1) 첫째, 鄭玄, 《論語注》「繪畵, 文也。凡繪畵, 先布衆色, 然後以素分布其間, 以成其文」
그림 그리는 것은 문식하는 것이다. 무릇 그림 그리는 것은 먼저 5색(흑, 백, 청, 황, 적)을 바르고, 그 연후에 흰색으로서 그 공간을 칠하여 장식하므로 그림을 완성한다.
 
둘째, 何晏, 《論語集解》「凡繪畵, 先布衆色, 然後以素分布其間, 以成其文, 喻美女雖有倩盼美質, 亦須禮以成之。一說先敷白色後施彩色」
비유하 건데 미녀가 비록 예쁜 본 바탕이 있어도 역시 반드시 예로서 그 본 바탕을 꾸며 완성한다. 일설에 먼저 흰색을 바르고 그 후에 채색을 한다는 설도 있다.
 
셋째, 邢昺, 《論語注疏》「案〈考工記〉云. 畵繢之事, 雜五色。下云..畵繢之事, 後素功。是知凡繪畵, 先布衆色, 然後以素分布其間, 以成文章也」
그림 그리는 일은 오색을 먼저 섞는다. 그 안에 이르기를 그림 그리는 일은 후에 흰색으로 작업한다. 이것은 무릇 회화는 먼저 여러가지 색을 바르고 그런 연후에 흰색으로 그 사이를 칠하고 그렇게 해서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그 외에 淩廷堪(淸), 戴震(淸), 劉寶楠(淸) 등 모두 동일하다.
 
2) 근거→《論語》의 뜻은 《周禮》〈考工記〉의 뜻이다. 즉 子夏는 五彩에서 어찌 홀로 以素爲絢(흰색으로 완성)하는가, 그래서 孔子에게 질문하였고, 孔子는 繪事後素로 대답하였다. 또 子夏의 禮後乎의 대답은 여러 색으로 그린 후 흰색은 나중에 한다는 이치를 깨달음. 사람의 仁義禮智信 五性은 그림에서 青黃赤白黑 五色과 같은 것이다. 禮는 五性의 하나이고 五性은 반드시 예를 갖춘 이후에 완성이 되고, 五色은 반드시 素 이후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以素喻禮에 비유하고 禮後乎라고 한 것이다. 鄭玄의 주장은 완전히 孔子 사상과 부합한다.
 
《論語》〈泰伯〉「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공경해도 예로 절제함이 없으면 헛수고요, 신중한데 예로 절제함이 없으면 그냥 두려워할 뿐이다. 용감한데 예로 절제함이 없으면 난리가 난다. 강직하나 예로 절제 함이 없으면 사람을 찌르게 된다.
 
또 〈八佾〉「人而不仁, 如禮何」 이 외에도 고고학적 유물 湖南 長沙 陳家大山 楚墓에서 출토된 《人物龍鳳帛畫》와 長沙 子彈庫 楚墓에서 출토된 《人物禦龍帛畫》 등 많은 자료가 鄭玄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 以禮成其德 ~ 예로서 그 덕을 완성한다. 예는 흰색이다
그림 그릴 때 흰색으로 그림을 완성하듯이 사람이 아무리 이쁘고 잘 나도 예가 있어야 인격이 완성이 된다.
 
* 人而不仁 如禮何 ~ 사람이 되어서 어질지 못하면 예의를 지킨 들 무슨 소용 있어. 같은 의미로 人而不仁 如樂乎 (음악이 무슨 소용 있어.)
 
* 孝經
1) 효경은 증자가 저술했으나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없어 졌다.
2) 한나라 초기에 예서체로 18장의 책이 나왔는데 이것을 '금문효경(今文孝經)'이라 부른다.
3) 한 무제(武帝) 때 노(魯)의 공왕(恭王)이 공자의 옛집을 헐면서 벽 속에서 《상서》, 《논어》 등과 함께 《효경》이 나왔는데, 이것은 전서체의 고문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고문효경(古文孝經)'이라고 한다 (22장으로 구성되어 있음)
4) 당(唐)의 현종(玄宗)은 719년(開元7)에 여러 학자들에게 명하여 두 종류의 효경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의하게 하였다.
현종은 스스로 금문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주를 내고, 소(疏)를 지어 천하에 반포하였는데, 이것을 어주효경(御注孝經)이라고 한다. 현종은 그 뒤 743년(天寶2) 5월에 효경을 다시 주하여 천하에 반포하고, 2년 뒤인 745년 9월에 이것을 돌에 새겨 태학(太學)에 건립하였는데 이것을 '석대효경(石臺孝經)'이라고 한다.
5) 남송 때 주희는 고문효경과 금문효경이 같지 않음을 보고, 효경의 내용을 독자적으로 분류하여 장(章)과 절(節)로 나누어서 효경간오(孝經刊誤)를 지었는데, 이것은 고문을 위주로 하였다. 주희는 효경을 경(經) 1장과 전(傳) 14장으로 나누고, 경 1장은 공자와 증자가 묻고 대답한 것을 증자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 하고, 전은 혹자가 전기(傳記)를 이끌어 경문(經文)을 해석한 것이라 하였다.
(위키백과 일부 보완)
 
3.新注
1) 첫째, 朱熹, 《論語集注》「繪事, 繪畵之事也後素, 後于素也。……謂先粉地爲質, 而後施五彩」
그림을 그리는 일은 먼저 흰색을 칠한다. …일컫기를 먼저 분지에 흰색 칠한 것을 본 바탕으로 하고, 후에 오색을 칠한다.
 
또 《朱子語類》卷二十五「伊川云. 美質待禮以成德, 擾素待繪以成約, 卻似有質須待禮, 有素須待絢。曰..不然。此質卻重。素以爲絢, 言人有好底姿容材質, 又有口輔之美, 盼倩之佳, 所以表其質也。此見素以爲質, 而絢以文之也」
아름다운 본 바탕은 예를 기다려 덕을 이룬다. 흰색을 어지럽게 해서 그림 그리기를 기다렸다가 마무리 장식을 해서 완성한다. 본 바탕이 예쁜 데 필히 예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본 바탕이 흰색이면 필히 예쁘게 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이 본바탕이 오히려 중요하다. 흰색으로 아름답게 한다.
사람이 좋은 것 예쁜 얼굴재질이 우월한 조건이 있어도 또 보조개의 아름다움과 눈동자가 예쁘고 소위 본 바탕을 드러낸 것이 흰색으로 본 바탕을 아름답게 한 것이 보인다. 그래서 아름답게 채색해서 그림을 완성한다
 
* 底 ~ 的, 之
 
즉 朱子는 문답 형식으로 質重于文(본 바탕이 색칠하는 것 보다 앞선다)과 素先於絢의 이치를 강조하였다. 또 朱子는 古注를 인정하지 않고 「後素, 後於素也」로 바꿔 인식하였는데 이것은 〈考工記〉의 注와 반대이다.
 
둘째, 朱子의 「後素,後於素也」는 다시 「禮必以忠信為質, 猶繪事必以素粉為先」이라 하여 素先繪後와 忠信先禮後의 이치를 비유하여 繪事後素의 後를 後於 혹은 先으로 주장하고 禮後乎의 後는 後로 주장하였다. 같은 後字를 달리 해석하는 모순을 드러내었다.
셋째, 素先繪後는 忠信先禮後로 여겨서 논리적으로는 통하지만 古注에 비하여 설명이 부족하다.
넷째, 그 외에 全祖望(淸),李澤厚,楊伯峻 등 모두 동일하다.
 
2) 근거→《禮記》〈禮器〉「甘受和, 白受彩. 忠信之人, 可以學禮。苟無忠信之人, 則禮不虚道。是以得其人之爲貴也」
단맛은 여러가지 맛과 조화를 이루고, 흰색은 5색과 조화를 이루고,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예를 배울 수 있다. 만약 충신 지인이 아니면 즉 예는 헛되이 실행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충실한 사람을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4. 타 학문 注
1) 《絲綢的歷史》→당시에 순백색 비단 없음, 종이도 唐代까지는 황색이었음. 즉 「絹非白色. 雜色後于素描造型., 素非白色專指」 ; 《中國繪畵史》→白描(일종의 초안 스케치)
2) 그동안 해석이 분분한 부분으로 주요 원인은 《論語》 註釋가들이 위에 인용한 《禮記》〈禮器〉의 기록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임. 繪事後素는 「繪畵之事, 後于素」이고, 素는 白描(일종의 초안 스케치)를 가리킨다. 이상은 모두 朱子의 주석을 참고하여 도출된 것이다.
 
 
Ⅴ. 분석5→「繪事後素, 禮後乎」의 상세한 풀이는?
 
1. 禮後乎는 鄭玄은 마땅히 禮事後素乎이다. 즉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繪事) 이후 禮(素)가 충족되어야 한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됨됨이가 갖춰진 다음에 禮 등을 구비함. 주자는 繪事-화장-文彩-畵-禮, 예쁜 얼굴-본바탕-忠信-素가 먼저다. 이상의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鄭玄(素흰색 나중, 흰색은 禮, 모든 조건이 갖춰져도 禮가 없으면 불가)과 朱子(素흰색 먼저, 흰색은 忠信, 忠信이 없으면 禮가 무슨 필요?)의 풀이는 완전히 상반됨을 알 수 있다.
 
 
Ⅵ. 도표
 
* 素以爲絢兮......繪事後素......禮後乎? 정리
 
 
* 論語의 뜻
1) 言 ~혼자서 중얼중얼 하는 것이다. 自言自答하는 것이다.
2) 語 ~대화
3) 論語 ~ 聖人之話 즉 공자와 제자의 대화이다. 정치, 도덕, 윤리, 경제 등 온갖 것에 대하여 비유로 제자들과 주고받고, 혼자서 중얼중얼 하기도 하며 사람의 비유를 이야기한 것이다
 
 

 
*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08강(2023,04,13) 강의 교안
 
《論語》〈八佾〉 注釋
 
3-9. 子曰:夏禮吾能言之,杞不足徵也。殷禮吾能言之,宋不足徵也。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徵之矣。
 
夏나라의 예를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하나라 왕족이 제사 지내도록 세워준 杞나라는 증거가 부족하다. 은나라 예를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商나라 왕족이 제사 지내도록 세워준 宋나라는 증거가 부족하다. 주석의 전적과 賢人(史官)이 부족한 연고이다.
문헌만 충분하면 내가 능히 증명할 수 있다.
 
 
1) 夏 - 夏朝
논어에 이미 하나라를 언급하고 있다.
일본 학자들은 상나라를 은(마지막 300년간 도읍지)이라고 폄하하고, 그 이전 2천년의 중국 역사를 부인하고 있다. 상을 은으로 표현하면 일본 책을 베낀 것이다.
 
2) 杞 - 杞国(b.c.2000年—b.c.445年) 夏代부터 战国 初年까지 존속한 제후국으로 楚나라에 멸망, 군주의 성씨는 姒姓, 禹의 직계 후예 국. 고사성어는 杞人憂天이 있다. 기 나라는 하나라 왕족들이 제사 지내도록 분봉 받은 국가이다
 
3) 徵 - 증명
 
4) 殷 - 商(自稱)은 國號, 殷(他稱)은 도읍지 명칭.
a. 문헌 -《詩經》「天命玄鳥, 降而生商」, 지도자 명칭 商=契(설)
《書經》「大邑商」, 「天邑商」 《竹書紀年》
b. 고고학-甲骨文-有商(大邑商, 天邑商), 無殷
c. 지명-商은 유목민족 국가, 舜이 최초 책봉, 地名 商(河南省 商丘市, 黃河在南)에서 도읍을 자주 옮김(自契至於成(商)湯八遷)
殷은 최후의 도읍지명, 盤庚이 北蒙으로 천도, 北蒙을 殷으로 개칭(殷墟-河南省 安陽市, 黃河在北).
d. 특성-商業에 유능
e. 周가 商을 정복한 이후에 비하하는 명칭 殷을 사용, 殷은 夷에서 유래
 
5) 宋 - 宋国(b.c.11世纪—b.c.286年)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도읍은 商丘(今河南省商丘市), 군주는 子姓、宋氏, 商 紂王의 형 微子啓를 책봉하여 나라를 건국하게 함.
 
6) 文獻 ~文 = 歷史典籍
獻= 賢人, 史官, (미국 ~Histor grapher)
 
 
【학습】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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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