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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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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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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龍山區) 효창 공원(孝昌公園)
【여행】
(2018.07.02. 15:45) 
◈ 일제가 파괴, 훼손한 효창원
서울 용산 효창공원은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 의빈 성씨의 묘가 있던 효창묘(원)이었다. 일제에 의해 효창원은 일본군 주둔지, 이임식 잔치장소, 경성 효창골프장, 눈 놀이장, 공원 그리고 왕실 묘의 서삼릉 이장 등으로 망가지고 수난을 당했는데 그 내용에 대하여 알아본다.
 
▼ 효창묘 위치
 
ⓐ 일본인들이 이 효창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894년 동학 혁명전쟁과 청일전쟁 때 일본 병력이 효창원 앞 송림 안에 만리창(萬里倉)이 있던 곳에 야영하면서부터이다.
 
 
일본군 주둔 기념비 설립:1929. 10월
 
ⓑ 효창원 최대 영역은 만리동, 도화동, 공덕동, 청파동을 포함한 넓은 지역.(1907년 자료)
 
 
ⓒ 1915년 용산 경찰서장 이임식 잔치를 효창원 일대에서 했다.(매일신보)
 
ⓓ 금정(錦町)이란 지명 옆에 효창원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1917년)
 
 
ⓔ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조선 왕조의 상징인 궁궐을 파괴하기 시작해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고, 덕수궁은 공원으로 꾸몄으며, 경희궁에는 경성중학교를 세웠고, 남산에는 일본 야스쿠니신사처럼 조선신궁을 설치했다. 그러니 왕실 묘역에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1919. 5월부터 효창원에 경성 효창원 골프장(9홀. 57,000평) 공사하여 1921. 6월에 개장하였다가 1924년 청량리 골프장(경종의 의릉 자리)이 오픈해 폐장하였다. 청량리 골프장도 경성 군자리 골프장(순종 황후능 유릉 위치, 현재 능동 어린이 대공원)이 생기면서 닫았다. 이처럼 왕실 묘역에 골프장을 조성한 일제였다.
 
 
 
ⓕ 일제가 효창원의 일부인 81,460평을 공원용지로 지정한 것은 1924년 6월이고, 같은 해 8월부터는 순환도로와 공중화장실 등을 설치하여 일반인의 이용을 허용하였다.
 
ⓖ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이재민 수용소와 병원을 효창원 숲속에 임시 설치하였다.
 
ⓗ 1927년 효창원에서 열린 벚나무(사쿠라)식목 광경
 
 
효창원 일부를 공원으로 사용허가(1927.11.24, 중외일보)
 
효창공원을 3번으로 표기(1920년대 말)
 
ⓘ 1929년 눈내린 효창공원에서 스키(눈 놀이) 시험 주행
 
 
ⓙ 효창원에서 여름 씨름대회(6/22~26)가 열린다.(1933년 6월 19일. 동아일보)
 
ⓚ 경성에 5개 공원(장충단 공원, 남산공원,사직공원, 효창원공원, 파고다공원) 완비 (1933.10.26, 동아일보)
 
1936년 경성부 지도에 효창공원이라 표기
 
ⓛ 효창 공원 설계 개략도
 
 
ⓜ 도시계획상의 공원이 된 것은 삼청공원·장충단공원과 함께 1940년 3월 당시 공원 면적은 317,000㎡이었다.
 
ⓝ 1944년 6월 효창원에서 일본군 충령탑(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사망자) 설립 위한 지진제(地鎭祭) 집행
 
 
ⓞ 1944년 10월 효창원내의 모든 묘를 고양군 원당의 서삼릉으로 이장하였다.
문효세자의 효창묘는 조선시대 왕실 묘를 만드는 형식에 따라 정자각, 비각, 문인석, 장명등, 석마, 혼유석, 망주석, 석호, 석양 등을 만들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만들려고 1944년 서삼릉 경내로 이장했으며 이장 과정에서 정조의 신도비와 석물, 표석만 옮겼다.
 
 
▼서삼릉 내 문효세자 효창원
 
▶ 하고 싶은 말
 
국가을 빼앗긴 대한 제국의 시설들은 일제 강점기 때 너무 많이 훼철되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 건축(현재 철거하고 광화문 이전 복원) 및 궁궐 건물을 없애고 조선 박람회(공진회) 개최, 한양도성을 허물고 조선 신궁(현재 남산 백범 김구 동상, 안중근 기념관, 구 어린이 회관 건물 위치) 신축하였다. 또한 창경궁(昌慶宮)을 놀이 시설인 창경원(昌慶苑)으로 바꾸고 창경궁과 종묘를 도로로 분리(복원코자 율곡로 지하화 공사 중), 경희궁을 없애고 일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 건립(현재 경희궁 일부 복원), 덕수궁 공원화, 돈의문(서대문) 철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왕실 묘역에 골프장(효창동, 청량리, 군자동) 개장, 장충단(奬忠壇. 을미사변, 임오군란, 갑신정변의 사망자 제단)을 공원으로 만들어 박문사(이등박문을 위한 사찰)를 짓고,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올린 환구단에 조선 반도 철도 호텔을 세우는 등 수많은 파괴 행위를 하였다.
 
이처럼 이웃나라의 침략을 당해 국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잊지말고 교훈 삼아 파워(경제력, 문화력, 군사력)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한겨레신문, 구글, 네이버, 민족문화대백과, 서울역사박물관
용산구(龍山區) 효창 공원(孝昌公園)
【여행】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 효창공원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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