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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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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8.07.02. 17:47 (2018.07.02. 17:47)

【여행】백범 김구 사진 모음(69주기)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가 지나고 무더위와 장마가 찾아왔다. 2018년 6월 26일은 탕, 탕, 탕 흉탄에 돌아가신 백범 김구 선생의 69주기입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보낸 김구 선생을 추도하고자 사진을 모아 올립니다. 특히 미·소 군정하에 1948년 4월 한반도 통일정부를 수립하고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에 참석하여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지만....
 
▼ 1949년 6월 26일 총탄에 뚫린 경교장 유리창 밖에 시민들 모습
 
▼ 김구 선생은 1876년 8월 29일(음 7,11) 황해도 해주(안중근 의사와 동향)에서 아버지 김순영(金淳永)과 어머니 곽낙원(郭樂園)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창암(昌巖).
 
▼ 양반이 되기 위한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해 관상 공부를 하며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함.(1892년)
 
▼ 김창수(金昌洙)로 개명하고 동학군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공격했으나 실패(1894년,19세)후 안태훈(안중근 의사 부친)에게 몸을 의탁함. 유학자 고능선(高能善)에게 위정척사론을 배웠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김형진과 함께 중국 만주지역(임강, 통화, 환인, 집안)에 다녀옴(1895년, 20세)
 
▼ 치하포 일본인 살인 사건(1896년, 21세)으로 체포돼 백범 김구가 갇혔던 인천 감옥 사진
 
▼ 인천 감옥에서 고종의 사형집행 정지로 서양 문물을 접했으며, 탈옥(1898년, 23세) 후 행로
 
▼ 인천 감옥 탈옥 후 1898년 공주 마곡사(법명은 원종 圓宗), 평양 대보산 영천암에서 승려생활
 
▼ 백범 구명운동을 벌인 강화도로 김주경을 찾아갔지만 찾을 수 없어(1900년, 25세),그곳에서 수개월 학생들을 가르치다 고향으로 돌아왔고 아버지 김순영 돌아가심.
 
▼ 스님에서 환속(1899년)하여 1903년 학교 교원이 되고(뒷줄 우측) 1906년(31세) 최준례와 결혼
 
▼ 1911년 서대문 형무소 수감
 
▼ 인천 감옥(안악 사건과 105사건으로 15년형) 복역 중 인천항 쌓기에 강제 노역(1914년, 39세)
 
▼ 1915년 출옥, 장남 인(仁)이 1918년 태어났고 1919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와 중경 외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고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을 전셋집처럼 중국에서 이동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영어: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년 ~ 1948년)
 
1919년 3월 1일 경성(京城)에서 선포된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9년 4월 11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정부이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의 임시정부들을 통합하여 중국 상해에서 단일 정부를 수립하였다.
 
1919년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하고, 정치 체제는 '민주공화국'으로 하였다.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리 제도를 확립하였다. 대한 제국의 영토를 계승하고 구 황실을 우대한다고 명시하였다. 임시정부 하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지원하였고, 중국 국민당, 소련, 프랑스 등으로부터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후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하였으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해산하였다.
 
 
▼ 둘째 줄 우측의 경무국장인 김구
 
▼ 둘째 줄 좌측의 김구
 
▼ 임시정부 문지기를 지원했던 백범에게 경무국장이 주어졌다.
 
▼ 가장 단란했던 상해 시절
 
▼ 둘째 아들 신(信)을 낳고 병을 얻어 사망한 아내 최준례(1889~1924) 순 한글 묘비
 
▼ 백범일지 집필 시작하고(1928년) 미주 교포에게 독립운동자금 지원 요청 및 1930년 한국 독립당 창당
 
▼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1931년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있던 김구(56세)에 의해 세워진 일본 제국의 주요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독립운동 조직.
 
1932년 이봉창의 의거와 상하이에서의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 (1932년), 유상근, 이덕주의 다롄 폭파 사건(1932년) 등을 지도하여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에 대항했다.
 
 
▼ 한인 애국단의 이봉창 의사(일왕에게 수류탄 투척)
죽음의 길로 가면서, 영원한 즐거움을 맛보고자 이 길을 떠난다며 웃는 사진을 남겼다.
 
 
▼ 상해 의거의 윤봉길 의사와 선서문
일본이 중국 상해 점령과 일왕의 생일을 축하해서 거행한 훙커우공원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짐
 
 
▼ 폭탄을 만들어준 왕백수, 김홍일
 
▼ 이봉창, 윤봉길 의거의 주모자가 김구임을 밝히자 일본은 체포하려 엄청난 현상금을 거는 등 더 이상 상해에 머물 수 없어 1932년(57세) 상해 탈출하고 임시정부는 항주로 옮김.
 
▼ 가흥으로 피신 중 김구 가족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로 국내에서 일제의 감시가 심해져 어머니, 두 아들이 다시 중국으로 나와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 좌측의 김구
 
 
▼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 후 백범이 피신했던 절강성 자싱(嘉興)의 수륜사창
 
 
▼ 1938년 창사(長沙) 남목청 조선 혁명당 본부에서 3 당 합당(한국 국민당, 조선 혁명당, 한국 독립당) 문제 논의 중(김구, 현익철, 유동렬, 이청천 참석) 이운한 저격으로 김구 중상.
 
 
▼ 모친 각 노원(1859~1939,1999년 대전현충원으로 이장) 묘비
 
 
 
▼ 한국 독립당,조선 혁명당,한국 국민당을 통합해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중앙 집행위원장이 됨
 
▼ 한국 광복군(韓國 光復軍)
1940년 9월 17일 중화민국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다. 1939년 1월 창립된 한국독립당 당군(黨軍)과 기타 독립군 및, 지청천, 이범석 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1940년 9월 17일 성립전례식(중경 가릉빈관)을 갖고 결성되었다.
 
 
 
 
▼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이 돼 1941년 12월 10일 일본에 선전포고
 
 
 
▼ 김원봉 등 좌파, 임시의정원에 참여
 
 
▼ 장남 김인(金仁,1917~1945, 1999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 배우자는 안미생으로 안중근 의사가 큰 아버지)과 차남 김신(金信,1922~2016)
 
 
▼ 미군 OSS 도노번 장군을 만나 광복군의 국내 진입 작전 합의(1945년, 70세)
 
▼ 광복 직후 최초로 국내에 진입했던 한국광복군 정진대와 미군 OSS 대원들 (1945. 8. 27)
 
▼ 일본 항복했지만 한국은 전승국(戰勝國)에 포함되지 못해 승전국 미군이 성조기를 올리고 있다. 미군은 9월 8일 인천에 상륙하여 9월 9일 서울에 공식적으로 진주하였다.
 
▼ 1945년 9월 12일 취임한 미 군정장관 아놀드(1889~1973)는 10월 10일 성명을 통해 "남한에는 미 군정이라는 단 하나의 정부가 있을 뿐이다"라 발표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였다. 국력이 없으면 나라와 국민이 어떻게 대접받는지 보여준다.
 
 
▼ 장개석 총통과 1933년 5월 면담, 1943년 7월 회담, 1944년 9월 면담 등 한국 독립 지원 요청
 
▼ 광복 후 미 군정이 이뤄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였다.
 
▼ 미 군정의 하지 장군과 만남
한국의 군정기(韓國의 軍政期)는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독립이 확정된 한반도를 북위 38도 이북에서 소련군이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전까지, 38도 선 이남에서는 미군이 1945년 9월 9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다스린 기간이다.
 
 
 
▼ 서울 운동장에서 열린 임시정부 환영식
 
 
 
▼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인 신탁통치 반대 집회
 
▼ 조국 해방을 위해 노력했지만 광복 후 서로 생각이 달라 1949년 6월 26일 결국 김구는 암살당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7주년 입헌식(1919.4.11 입헌)
 
▼ 매헌 윤봉길 의사 생가, 충남 예산
 
▼ 일본에서 돌아온 3의사 유해
 
▼ 고종의 사형 집행 중지로 살아나 조국 광복 후 참배
 
 
 
☞ 진해 남원 로터리 글
 
서해어룡동(誓海魚龍動) 바다를 두고 맹세하면 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 산을 두고 맹세하면 풀과 나무도 알아줄 것이다.
 
▼ 순천 송광사(1946.9.21)
 
▼ 개성 선죽교 방문 (1946. 11월)
 
▼ 인천 감옥 탈옥과 도움을 준 강화도 김주경 집 방문
 
 
 
 
 
 
▼ 1946년 3월 부터 시작된 미·소공동위원회(한국 배제된)가 1947년 10월 결렬되어 한국문제를 국제연합(UN)에서 해결하자는 미국의 제안이 가결되어 5월 10일 남한 단독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회가 구성되다.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3년간의 미 군정이 끝났다.
 
 
 
 
▼ 남북 연석회의 참석 차 38선 넘다.(1948.4.19)
 
 
 
 
▼ 최초의 남북 연석회의(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 4김)
4김 회담의 합의와 추인을 거쳐 남북 지도자협의회에서 4월 30일 채택한 ‘남북 조선 제정당·사회단체 공동성명서’에는 ① 외국 군대(미국, 소련) 즉시 동시 철수, ② 외국군 철수 후에도 내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 ③ 총선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④ 단선단정 반대와 불인정이라는 4가지 원칙이 담겨 있다.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남북연석회의의 합의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이 회의는 분단의 길목에서 남북의 정치인들이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나 통일정부 수립 방안을 논의하고 합의를 이루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
 
 
 
▼ 이동녕,차리석 선생 사회장으로 효창원에 모심
 
▼ 금호동의 백범 학원, 염리동의 창암 학원을 세움(1949년)
 
▼ 건국 실천원 양성소 2주년
 
▼ 백범 김구(1876 ~ 1949)를 저격한 살인 범죄자는 육군 포병장교인 안두희(1917~1996)다.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 서재에서 권총으로 암살하였다. 그 이후로 잠적 생활과 납치 등을 겪었다가 1996년 10월 23일 박기서에게 살해되었다.
 
 
 
 
▼ 효창공원에 모셔진 백범 김구 부부의 묘(1999년 부인 최준례 여사와 합장)
 
 
▼ 자서전인 백범일지(白凡逸志)
우리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삼천만이 저마다 이 이치를 깨달아 그대로 행한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이 아니 될 수 없고, 또 좋은 나라, 큰 나라로 이 나라가 보전되지 아니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 김구가 평생에 생각하고 행한 일이 이것이다.
 
 
▼ 한국은행 발행 주화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가 되는 의미 있는 해가 됩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은 국민들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다.
 
2018년은 남북 관계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고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시작하는 해가 되기바란다. 물론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만큼의 국력을 키워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길 원한다.
 
 
출처 : 한겨레신문, 백범 기념관, 김구재단, 국사편찬위원회,민족문화대백과,한국근현대사 사진모음,위키백과, 나무백과,구글,백범일지,중앙일보,한국조폐공사,네이버,MBS,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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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