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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조와 선조가 묻힌 동구릉(東九陵)
2015년 6월 18일
2015년 6월 6일
about 문화재·역사·전
내서재
추천 : 0
(2019.11.21. 19:07) 
◈ 조선태조와 선조가 묻힌 동구릉(東九陵)
조선왕릉에 대한 강좌를 듣고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을 서울 용산도서관 학습동아리와 함께 다녀왔다. 이름처럼 한양의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왕릉이 있는 곳이다. 왕릉은 왕과 왕비가 묻힌 곳이다. 조선왕릉은 총 42기로 북한 소재 2기(정종과 비, 태조 원비)를 제외한 남한의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동구릉은 1408년(태종 8)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조성한 건원릉(健元陵)을 중심으로 임금 아홉 분과 17위의 왕비와 계비를 모신 곳이다.
조선왕릉에 대한 강좌를 듣고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을 서울 용산도서관 학습동아리와 함께 다녀왔다. 이름처럼 한양의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왕릉이 있는 곳이다. 왕릉은 왕과 왕비가 묻힌 곳이다. 조선왕릉은 총 42기로 북한 소재 2기(정종과 비, 태조 원비)를 제외한 남한의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동구릉은 1408년(태종 8)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조성한 건원릉(健元陵)을 중심으로 임금 아홉 분과 17위의 왕비와 계비를 모신 곳이다.
 
 
●동구릉(사적 193호)에 대해 알아보자
 
동구릉의 위치와 규모?
☞구리시 인창동에 9릉 17위의 왕과 왕비, 계비 등을 안장한 왕릉이다. 1408년(태종 8) 태조의 건원릉(健元陵) 터로 쓰여지기 시작한 왕릉군(王陵群)이다
 
동구릉의 유래는?
☞동구릉이라고 부른 것은 문조(文祖)의 능인 수릉(綏陵)이 아홉 번째로 조성되던 1855년(철종 6)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동오릉(東五陵)·동칠릉(東七陵)이라고 부르던 사실이 실록에 전하고 있다.
 
누구 누구의 왕릉이 있는가? (자세한 내용은 팜플릿 참조)
☞검암산 59만여 평(여의도 제방 안쪽 면적의 67%)의 광대한 숲속에 있다.
①태조의 건원릉(健元陵)
②제5대 문종과 그 원비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현릉(顯陵)
③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懿仁王后),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인 목릉(穆陵)
④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능인 휘릉(徽陵)
⑤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능인 숭릉(崇陵)
⑥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端懿王后)의 능인 혜릉(惠陵)
⑦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능인 원릉(元陵)
⑧제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孝顯王后),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의 능인 경릉(景陵)
⑨제23대 순조의 원자인 문조와 원비 신정익왕후(神貞翼王后)의 능인 수릉(綏陵)등 9개의 능이 자리 잡고 있다
 
동구릉의 배치는?
 
 
 
동구릉 관람 포인트는?
① 건원릉 정자각이 왕릉의 표준 건물로 정자각 안에서 왕릉이 보인다.
② 건원릉 신도비에 건국 과정과 업적이 적혀있다.
③ 건원릉의 봉분에 억새가 자란다.
④ 목릉의 참도는 특이하게 곡선이다
⑤ 경릉은 유일한 삼연릉(三連陵)이다.
⑥ 숭릉의 정자각은 유일한 팔작지붕이다
,
 
동구릉의 추천 관람 코스?
☞매표소 → 재실 → 수릉 →현릉 →건원릉 → 목릉 → 휘릉 → 원릉 →경릉 → 혜릉 → 숭릉
 
능침(봉분)까지 접근하여 볼 수 있는 곳은(6/12일 기준)?
선조가 묻힌 목릉이다.
 
제향일(양력)은?
건원릉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경릉
수릉
6.27
6.10
3.16
9.20
8.18
3월
넷째일요일
4.22
3월
둘째일요일
4월
첫째일요일
 
*북한에 있는 제릉은 10.29일, 후릉은 10.24일 건원릉에서 열린다.
 
왕릉은 왜 서삼릉, 서오릉, 동구릉처럼 왜 홀수인가?
☞홀수는 양수(陽數), 짝수는 음수(陰數)라 생각했기에 왕릉은 홀수로 조성했다.
 
동구릉 사진 (태조의 건원릉과 선조의 목릉을 중심으로)
 
 
 
 
 
\na-;▼무료 해설 안내
 
☎ 031-550-2345, 오전10시, 오후1시, 오후3시 (1시간 30분 소요)
 
 
 
\na-;▼들어가서 오른 쪽에 있는 역사문화관
 
 
 
\na-;▼홍살문(紅箭門)
 
 
 
 
 
\na-;▼재실(齊室)
왕릉의 수호관리를 담당하던 참봉(參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사에 쓸 향을 보관하고 제기(祭器)를 간수하며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곳이다.
 
 
 
\na-;▼수릉
 
 
 
\na-;▼좌측의 높은 길은 신도(神道) 우측은 어도(御道)
 
 
 
 
 
\na-;▼현릉
 
 
 
 
 
 
 
\na-;▼건원릉
 
 
 
\na-;▼개경사
 
\na-;▼금천교(禁川橋)
 
 
 
\na-;▼배위(拜位) : 이곳에서 절을 4배한다.
 
 
 
 
\na-;▼홍살문(紅箭門)
능역의 가장 아래쪽 정자각 남측 신도·어도가 시작되는 곳에 신성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놓은 문이다.
 
 
 
 
\na-;▼ 정자각 동쪽에서 올라가는 계단으로 좌측이 신계(神階) 우측은 어계(御階)로 각각 신도와 어도에서 연결된다.
 
 
 
 
\na-;▼정자각에서 본 건원능
 
 
 
\na-;▼건원릉 신도비, 보물 1803호
①1409년(태종 9 ) 4월 건립.
 
② 규모
☞ 총 높이 448㎝, 비신 : 높이 227㎝, 폭 120㎝, 두께 37㎝
☞ 이수 : 높이 108㎝, 폭 129㎝, 두께 38㎝
☞ 귀부 : 높이 113㎝, 폭 231㎝, 두께 228㎝
 
③태종의 명을 받아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이 지은 비문을 좌정승(左政丞) 성석린(成石璘)이 글씨를 썼으며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정구(鄭矩)가 전액(篆額)을 담당하였다. 비석 뒷면에 새기는 글인 비음기는 예조좌참의(禮曹左參議) 변계량(卞季良)이 글을 지었고 역시 성석린이 글씨를 썼다. 총 높이 448㎝의 규모에 귀부이수(龜趺螭首) 양식을 갖추었다. 1691년(숙종 17)에 건립한 비각에 안치되어 있다.
 
④신도비 비신(碑身)의 앞면에는 권근이 지은 비문이 성석린의 단정한 해서체(楷書體)로 쓰여 있다. 비문에는 태조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 탁월한 무공(武功)과 정치력으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을 거쳐 조선을 개국한 후 왕위에 올라 선정을 펼친 전 과정이 개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문의 첫 머리에 “유명(有明) 시강헌(諡康獻) 조선국태조(朝鮮國太祖)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 건원릉신도비명병서(健元陵神道碑銘幷序)”라 표기되어 있고 비신의 상단 중앙에 새긴 전액이 “태조건원릉비(太祖健元陵碑)”라 되어 있어 건원릉 신도비임을 알 수 있다. 비문 말미에 새겨진 “영락(永樂) 칠년(七年) 사월(四月) 일(日) 입석(立石)”이라는 연대를 통해 1409년(태종 9) 4월에 건립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na-;▼1900년 세운 대한 태조 고황제 건원릉 비
 
 
 
\na-;▼망우리(忘憂里)의 유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종묘사직을 마련한 후, 선왕들의 능지를 정하기 위해 대신들과 함께 현재의 동구릉을 답사하였다. 그런데 무학대사는 그 자리가 선왕의 능지보다는 태조의 신후지지(身後支地)로 더 적합하다고 권고하였다. 태조는 그 권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능지로 결정한다.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고개 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의 능지로 결정한 곳을 바라보니 과연 명당이었다. 이에 태조가 “이제는 근심을 잊게 됐다.”라고 한 데서 ‘망우(忘憂)’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na-;▼선조의 목릉 (유일하게 봉분까지 갈 수 있다. 2015.6.12현재)
 
 
 
 
 
 
 
\na-;▼선조대왕 목릉 신도비
 
 
 
 
 
 
 
\na-;▼좌측부터 문인석, 석마, 무인석, 석마
 
 
 
\na-;▼장명등
 
 
 
\na-;▼홀(笏)을 들고 있는 문인석(문석인)
머리에 쓰는 복두(幞頭), 포(袍)로 불리는 옷, 허리띠인 대(帶), 손에 드는 홀(笏), 가죽신인 화(靴)를 갖춘 공복을 착용한 백관의 모습이다.
 
 
 
 
 
\na-;▼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칼을 잡고 서 있는 무인석(무석인)
 
 
 
 
\na-;▼ 바늘처럼 구멍있는 망주석(望柱石)은 혼이 자기의 유택을 찾을 때 이용한다.
 
 
 
\na-;▼혼유석과 받침돌인 고석
 
 
 
\na-;▼병풍석
 
 
 
\na-;▼난간석
 
 
\na-;▼석호(돌 호랑이)
 
 
 
 
 
\na-;▼석양(돌 양)
 
 
 
\na-;▼석마
말의 크기나 형태가 사실감이 떨어진다. 크기는 문무석인에 비해 말의 크기가 너무 작고 안장이 없으며 꼬리도 길게 땅에 끌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na-;▼곡장 뒤에서
 
 
 
\na-;▼좌측이 정자각 , 멀리 계비의 능이 보인다.
 
 
 
 
 
걷기 좋은 길
 
 
\na-;▼휘릉
 
 
 
 
\na-;▼원릉
 
 
 
 
 
\na-;▼끈질긴 나무의 생명력처럼 살자.
 
 
 
동구릉 주차 요금?
소형 2000원, 대형 5000원
 
찾아가기
☞ 주소 :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 버스
①청량리에서 88, 202→상봉역(88, 202)→구리시→동구릉
②강변역에서 1,1-1,9-2→구리시→동구릉
③전철(중앙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 2,6 → 동구릉
☞ 승용차
①서울 → 동서울 → 구리시 → 동구릉
②서울 → 의정부 → 퇴계원 → 동구릉
③서울 → 화랑대 사거리 → 구리시 → 동구릉
④서울 → 망우리 → 교문사거리 → 동구릉
 
구리시내에서 퇴계원 방향(43번국도)으로 약 2㎞
 
 
★ 동구릉 팜플릿
 
 
 
 
 
 
 
 
 
 
 
 
 
 
 
 
 
 
 
 
 
 
 
 
 
 
 
 
 
 
 
 
 
 
\na-;출처: 문화재청,민족문화백과. 위키백과.네이버, 동구릉 홈페이지,조선 왕릉 관리소 홈페이지
 

 
※ 원문보기
문화재·역사·전
• 한성백제 박물관을 다녀와서
• 조선태조와 선조가 묻힌 동구릉(東九陵)
• 조선왕릉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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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