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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혜화문 ~ 장충단) 걷기 -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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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19:07) 
◈ 한양도성(혜화문 ~ 장충단) 걷기 -후편-
전편에 이어 후편을 올린다. 비를 맞으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열정이 팍팍 느껴진다. 메르스와 내리는 비도 배움의 뜨거움을 식히지 못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인데 무사히 마친 참가자와 관계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번에 가지 못한 한양도성 구간은 날씨 좋은 날에 해설사분과 함께 다녀올 예정이다.
전편에 이어 후편을 올린다. 비를 맞으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열정이 팍팍 느껴진다. 메르스와 내리는 비도 배움의 뜨거움을 식히지 못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인데 무사히 마친 참가자와 관계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번에 가지 못한 한양도성 구간은 날씨 좋은 날에 해설사분과 함께 다녀올 예정이다.
 
▶코스 :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 → 혜화문을 우측에 보며 좌측 한양성곽 계단 → 한양성곽 → 낙산 장수마을 입구 → 한양도성 낙산 암문으로 입성 → 이화동과 연건동 등 설명 청취 → 한양도성 내려오다 창신동 방향 암문으로 나감 → 창신동 채석장 → 창신 골목시장 → 흥인지문 → 청계천 오간수문 → 동대문 DDP → 동대문 이간수문 → 광희문 → 장충동 성곽 → 남산입구 → 장충체육관 → 신라호텔 앞
 
\na-;▼수선전도
 
 
 
\na-;▼청계천 오간수문(五間水門)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 6가에 있는 동대문(흥인지문)에서 중구 을지로(乙支路)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조선시대의 수문(水門)이다. 오간수문은 수문이 5칸, 즉 5개의 수문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초기 도성을 수축하면서 물길을 낼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422년(세종 4) 1월 16일부터 2월 23일까지는 도성의 수문(水門) 정비에 주력하였다. 도성 수문의 수효가 적어, 지난해 장맛비에 냇물이 불어 넘쳐서 냇가의 인가(人家)가 물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이에 북쪽의 수문 세 칸(間)에 한 칸을 더 만들고, 남쪽 수문 두 칸에 한 칸을 더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대문 남쪽 성벽 아래로 흐르는 냇물이 도성 밖으로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치한 수문이다.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수문마다 쇠창살로 만든 철문을 설치하였다. 각 수문의 크기는 1.5m 정도이다.
 
그러나 쇠창살에 부유물이 걸리고 토사가 쌓여 2개의 나무문을 별도로 세웠는데, 이 역시 영조 때에 이르러 거의 막혔다. 이 때문에 1760년(영조 36) 청계천을 준설하면서 수문 앞에 쌓인 토사를 걷어내고 복원하였다.
 
그후 1907년(융희1) 중추원에서 청계천 하수의 원활한 소통을 이유로 수문을 헐고, 이듬해 3월에는 동대문 근처의 성벽과 함께 오간수문의 성벽마저 헐었다. 대신 같은 자리에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를 세웠는데, 오간수문을 오간수다리·오간수교·오간수문교로 부르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따라서 오간수문과 오간수교는 엄연히 다른 별개의 것이다.
 
오간수교는 1926년 다시 확장·건설되었으나,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개공사로 완전히 없어졌다. 그러다 2003년 7월부터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청계천 역사유적을 발굴할 때 오간수문의 아래쪽 끝받침과 홍예(虹霓:무지개 모양의 문) 기초부, 돌거북 등이 발굴됨에 따라 2004년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하였다. 새롭게 만들어진 오간수교는 오간수문의 전통적인 모양을 살려 5개 수문과 무지개 모양의 홍예 아치를 재현하였다.
 
 
 
※수원화성 화홍문의 수문으로 가운데 칸이 가장 넓고 크며 나머지는 동일하다. 아치 위로는 다리돌을 놓아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na-;▼옛 동대문 운동장 조명탑
 
 
\na-;▼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시민들의 쾌적한 쉼터이자 역사와 문화가 조합된 도심형 열린 공원이다. 동대문역사관 1398,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이간수 전시장, 갤러리 문門 등 다양한 시설을 통해 즐거움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na-;▼ 동대문 이간수문 발굴 스토리
2008년에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면서 그곳에서 발굴된 이간수문(二間水門)에서 수문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na-;▼ 현재 이간수문
 
 
 
 
 
 
\na-;▼ 발굴에서 나온 흔적
 
 
 
 
\na-;▼광희문(光熙門)
동대문과 남대문의 사이, 즉 도성의 동남쪽에 있는데 1396년(태조 5)에 도성을 쌓을 때 창건되었으며, 1711년(숙종 37)에 고쳐 쌓았다. 1719년에 석축 위에 문루를 짓고 ‘光熙門’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에 복원할 때 홍예석축(虹霓石築)을 해체하여 남쪽으로 15m 옮겼고, 문루 12평을 새로 지었으며, 주변의 2백평을 녹지화하였다.
 
광희문은 소의문(소덕문,서소문)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내가던 문으로 속칭 시구문, 수구문(水口門) 이라 불렸다. 광희문으로 나간 시신은 인근 신당동, 왕십리 쪽으로 운반해 매장했다.
 
이처럼 광희문은 시구문이란 별칭을 가질 만큼 임금이 다닐 만한 품격에는 어울리지 못했는데, 인조는 병자호란 때 이곳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피난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광희문은 조선시대때 도성안 시신을 밖으로 내보내는 문이었다. 광희문 밖 동네는 혼을 위로하는 신당(神堂)이 많아 신당동으로 불렸고, 갑오개혁때 한자를 ‘新堂’으로 바꾼 지명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na-;▼ 성벽 일부를 집의 축대로 사용중
 
 
\na-;▼ 빗속에서......
 
 
\na-;▼남산입구
 
 
\na-;▼돌을 쪼개려던 흔적
 
 
\na-;▼ 신라호텔의 영빈관 정문은 원래 경희궁의 정문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의 건물이었다 .
 
 
 
\na-;▼장충단(奬忠壇)
장충단은 1895년(고종 32) 경복궁에서 일어난 명성왕후(明成王后, 1851∼1895) 시해사건인 을미사변 때 일본인을 물리치다 장렬하게 순사(殉死)한 시위대(侍衛隊) 연대장 홍계훈(洪啓薰, ?∼1895)과 궁내부(宮內府) 대신 이경직(李耕稙, 1841∼1895) 을 비롯한 여러 신하와 장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1900년 (광무 4) 9월 고종 황제가 남소영(南小營,영조 때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던 부대) 자리에 세운 사당이다.
 
사당건립 후 매년 이곳에서 봄ㆍ가을로 제사를 지냈으나 1910년 일제강점 이후 폐사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이곳 일대를 '장충단공원'이라 이름하여 벚꽃을 심고 공원시설을 설치했으며, 상해사변(上海事變) 때 일본군 결사대로 전사한 육탄삼용사(肉彈三勇士)의 동상과 안중근(安重根) 의사에 의해 살해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혼을 달래기 위한 박문사(博文寺)를 세웠다. 광복 후 육탄삼용사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었으나, 6·25전쟁으로 장충단의 사당과 부속건물이 파괴되면서 장충단비만 남게 되었다. 1988년 9월부터 중구청 주관으로 매년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장충단비는 장충단을 세우게 된 내력을 새긴 비로 1900년 11월에 세워졌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석을 얹은 간략한 형식이다. 앞면에 새긴 "奬忠壇"이란 전서(篆書) 제목은 뒤에 순종(재위 1907∼1910)이 된 황태자의 예필(睿筆)이며, 뒷면에 새긴 비문은 당시 육군부장(陸軍副將)이던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이 짓고 썼다. 1910년 이후 일제가 뽑아버렸던 비신을 광복 이후 찾아서 현 신라호텔 자리 에 세웠고, 1969년 지금의 자리인 수표교(水標橋,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서쪽으로 옮겼다.
 
 
 
\na-;▼ 단체사진
 
 
 
 
 
\na-;▼ 추억의 동대문 운동장 팜플릿
 
 
 
 
 
 
 
 
 
 
 
 
\na-;출처: 민족문화백과,네이버지식백과,문화유산채널,위키백과,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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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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