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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준(任元濬)의 자는 자심(子深)이요 호는 서하(西河)다. 총명이 있고 글을 잘 한다. 한번은 무슨 사건에 걸려 밀양(密陽)으로 귀양을 갔는데 그때에 경상도 관찰사가 순행하다가 본부에 이르렀다. 서하가 재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문제를 내고 시험을 하니 글을 어찌 빨리 짓는지 마치 지어 두었던 글보다 더 빨리 부른다. 또 그의 총명이 얼마나 많은 것을 시험하고자 해서 그 고을 기생의 기적(妓籍)이 있는데 그 신구 기생의 이름이 500여 명이다. 한번 보라 한 후에 명부를 덮어 놓고 기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점고(點考)하라 하니 그는 관찰사 앞에 앉아 기생을 호명하여 불러들이는데 이름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차서가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였다. 관찰사는 그의 재조를 탄복하여 곧 왕께 장계하기를 이 사람의 재조 같은 것은 우리나라 안에 많지 않을 것이외다. 비록 작은 죄과가 있을지라도 용서 하옵시고 불러 쓰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왕께서 그 장계를 보시고 곧 임원준을 불러 올리라고 영을 내리셨다. 그는 서울에 와서 대궐에 들어갔다. 왕께서 편전(便殿)에 납시어 세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옛적 사람은 주발을 치며 시를 재촉한 이도 있고 일곱 걸음에 시를 지은 자도 있었다. 구름으로 문제를 내고 운자를 불러서 임원준에게 재조를 시험하여 보아라 하셨다. 그 지은 시를 왕께서 보시고 크게 기뻐하사 곧 백의로 집현전 찬서(撰書)를 시키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