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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문덕 ◈
◇ 피 ◇
카탈로그   목차 (총 : 11권)     이전 8권 다음
1948
김동인
1
그 밤을 국향이의 방에서 묻고 이튿날 나라에 들어갔다가 나오매, 승상 댁에서는 국향이가 바위를 업은 채 종적이 없어졌다고 불끈 뒤집혀 돌아간다.
 
2
주부로서 가모로서 중대한 사고의 책임자인 승상 부인은 눈이 뒤집혀 하인들을 독려하여, 여기를 찾아 보아라 저기를 찾아 보아라 지휘하고 있다.
 
3
"아이를 잃다니? 바늘이나 숟가락을 잃는다면 모르거니와, 아이와 아이 업은 아낙을 잃다니, 어디 잘들 찾아 보아라."
 
4
두루 찾아 본 결과 국향이는 아이를 업은 채, 대문 밖으로 하여 한없이 북쪽으로 가더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5
"석다산으로 간 게 아닐까?"
 
6
승산부인이 이런 말을 하였다.
 
7
승상은 이 말을 듣고 뜨끔한 모양이었다.
 
8
"석다산이란? 어째서 석다산 생각이 나오?"
 
9
"글쎄요, 공주가 오늘 아침 끈끈하게 석다산 가는 길을 묻던데요."
 
10
"이 팔월 염천에 돐이 된 아이를 업고 석다산 육십 리를……."
 
11
"바위 낳은 지 돐이 지나서 얼굴이 보오얗게 피더니 바람이 났나 봅니다 그려."
 
12
"원, 바람이 났는지!"
 
13
그러나 승상에게는 쿡 가슴에 찔리는 일이었다.
 
14
장량이라 하는 젊은이가 공주더러 진나라 혈맥은 공주로서 끊어지느냐고 그냥 호소하고 힐난하더니, 젊은 아낙의 마음에 이 말이 박혀서 오늘날 등에는 을지 가문의 혈자를 업고 석다산 장량이를 찾아감이 아닐까?
 
15
만약 사실 그렇다 하면 유유한 문제였다. 정열의 여인이 정열에 들떠서 하는 일은 하늘도 지휘하지 못한다.
 
16
공주의 정열로써 '혈맥이라는 한 가지의 생각으로써 장량이라는 사람에게 몸을 내어맡겨, 을지가문에 생자하는 아낙의 피를 흐려 놓으면 큰 일이다.
 
17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연약한 여인의 몸이라, 곧 뒤쫓으면 국향이가 장량이 의 품에 들기 전에 뒤 및 게 될는지도 알 수 없다.
 
18
"내 자식의 어버이 되는 내게 맡기고 안돈들 하시오. 내 공주 더위에 지치기 전에 사람 보내 찿아 올께."
 
19
승상은 사람들을 대강 안돈시키고 스스로는 사랑으로 나왔다.
 
20
사랑으로 나와서는 연파대를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파대더러, 국향공주와 진나라의 장량이라는 젊은이의 사연을 상세히 설명하여 주고, 그 국향이 가 장량이를 따라 출분한 듯싶으니, 그대가 뒤쫓아 가서 만나거든, 좋도록 말하여 도로 이를 무사히 펴 보라고 부탁하였다.
 
21
향산서 산삼을 캐다가 을지 승산을 따라와서, 지금껏 승상 댁에 기거하며 승상 댁 책을 마음대로 읽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던 연파대는, 여기서 처음으로 승상의 제이 부인 국향 공주를 데려오는 데 임무를 띠고, 석다산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다.
 
22
×
 
23
잔서(殘暑) 아직 꽤 따가운 팔월의 어떤 날, 고구려 장안 서울의 교외를 한 아낙이 터벅터벅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24
완전히 포도 장치가 된 기분 좋은 길이었다. 아낙도 길 걸이에 꽤 숙련된 사람인 모양으로, 등에는 한 아이를 업은 모양이었지만, 아주 가벼운 발걸 으로 길을 가고 있었다.
 
25
을지 승상 댁에서 뛰쳐나온 국향이었다.
 
26
"응, 착하지 착해!"
 
27
등에 업은 아이를 연해 달래며, 주저 없이 북쪽으로 북쪽으로 간다.
 
28
지난해 엄동에 만여 리 길을 걸어온 경력이 있는 국향이었다. 지금 목표가 겨우 수십 리― 지난해에 비기건대 겨우 누워서 다리 조금 움직이는데 지나지 못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 아낙이 몸을 푼다는 위대한 사업을 겪고 나면 기력이 한 풀 꺽이는 모양으로,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다리가 약간 푸들푸들 떨렸다.
 
29
장량이를 만나 보고자, 장량이로 하여금 한 아이를 벌고자, 하마터면 끊길 뻔한 이 내 몸에 흐르는 진나라 혈맥의 계승자를 낳으려는 단 한 가지의 기 대로써 석다산의 장량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30
자기는 부왕의 명에 의지하여 을지 가문에 출가하여 끊겼던 을지 가문의 후계자를 낳았다. 그러면 이번은 하늘의 분부대로 진나라 혈맥을 이을 자를 낳을 큰 의무가 남아 있다.
 
31
이 천직을 이행하기 위하여 자기는 승상을 배반하고 젊은 사나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32
'진나라 천만 적자의 희망은 오직 공주의 몸에 걸려 있읍니다.' 연전에 자기가 팔을 늘이어 장량에게 잡혀 줄 때, 장량이는 손을 잡고 몸을 떨면서 국향이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33
을지 승상에게, '국향이라는 하늘이 주신 내 아내요.' 하고 사뢰던 정열의 사나이― 진경(陳京)서 고구려 서울까지 몇 만 리의 길을 오직 국향 자기의 뒤를 사 모하여 따라온 정열의 사나이에게 국향이의 관심을 꽤 깊은 것이었다.
 
34
"곧장 북쪽으로 그냥 가노라면 뿌주다리가 많은 산이 나타납니다. 거기가 석다산입니다."
 
35
이러한 막연한 지시로써, 사람이 설마 못 찾으랴 하고, 돐 된 바위를 등에 업고 을지 댁을 나선 국향이는, 뿌중다리 많은 산을 목표로 북쪽으로 북쪽으로 한없이 걷는 것이었다.
 
36
"석다산이라는 데가 여기서 몇 리나 됩니까?"
 
37
"이제 이십 리입니다."
 
38
"십 리만 더 가시오."
 
39
십 리 이십 리 길은 지난 겨울 만여 리 길에 비기건대 코앞이나 일반이었다. 그러나 생산이라는 큰 역사를 겪어서, 몸의 기력이 한 풀 꺽인 국향이에게는, 더욱이 독 같은 아이를 진 몸이라 한량없이 멀어 보였다.
 
40
그날 황혼에 석다산 십 리를 남긴 채, 국향이는 어떤 주막에서 한 밤을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41
국향이가 피곤한 몸을 하룻밤 편안히 쉬고 이튿날 꽤 해가 늦어서야 깨었다.
 
42
―여자의 해산이란 것이 그렇게도 큰 일인가? 일 년 전 경험만 보더라도 하룻밤 자고 깨어서는 이튿날은 백여 리의 길을 걷고 했는데, 지금 단 하루 걸은 데 지나지 못하거늘 이다지도 몸이 고달픈가? 이러다가는 아이 셋, 넷 만 낳으면 몸이 아주 죽어 빠질 것 같다.
 
43
일어나 몸을 가누로라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44
일어나 영창을 열었다. 그랬더니 밖에는 꽤 수다한 남녀가 안의 국향이의 일어나기를 기다리던 모양이었다. 국향이가 영창을 더르륵 열자, 꽤 여러 사람이 영창 쪽을 향하여 공손히 국궁례를 한다.
 
45
그 가운데 한 스무남은 난 젊은이가 덥석덥석 국향이의 영창 앞으로 가까이 왔다.
 
46
"지금 기침해 계시오니까? 소인은 연파대라는, 승상 댁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옵니다. 승상의 분부를 받자와 공주를 모시러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47
그리고는 댓돌을 덥석 짚고 올라서서 영창 안으로 들어왔다.
 
48
국향이는 파대가 들어오기를 기다려 영창을 도로 고요히 닫았다.
 
49
"승상께서 몹시 걱정하시지요?"
 
50
"걱정 여부가 있읍니까? 소인더러 어서 달음박질로 가서 공주를 모셔오라고 호령호령 하시어, 소인은 어제 내내 달음박질로 달려왔읍니다."
 
51
그래도 나는 장량이를 만나서 진나라 혈맥을 이을 혈자를 하나 구해야겠다는 이 커다란 책무감을 지닌 국향이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곁에 내려놓은 바위의 머리만 고요히 쓸어 주고 있었다.
 
52
"공주님! 공주님의 몸은 지금 이 나라에서는 여간 귀하신 몸이 아닙니다.
 
53
을지 승상의 부인이라는 공주의 몸은 온 고구려 사천만 만성의 촉망과 기대가 지워져 있는 몸이옵니다. 자중합소서! 공주의 몸 한 번 실수하시면 사 천만의 노염이 공주께 향하오리다. 이 연파대의 주먹이 결코 공주님을 용서치 않으오리다. 장량이라나 하는 되놈은 어제 연대파가 한 주먹으로 박살을 하려다가 잔명만은 그냥 남 경외(境外)로 내칠 작정입니다."
 
54
국향이는 내심 일변으로 차차 무겁게 떠오르는 희열을 느끼었다. 아차 잠깐 실수했더면, 고구려 사천만의 노염은 둘째두고, 여인으로서의 씻지 못할 과실을 범했을는지도 모르는 자기를 여기서 이렇듯 꽉 억류해 주는 튼튼한 힘이 있었기에 자기는 과실을 범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다.
 
55
그러나 돌이켜 생각한다면 장량이는 과연 가긍하기 한이 없었다.
 
56
만여 리의 먼 길을 나를 뒤따라 예까지 왔거늘, 한 번도 따뜻이 붙안아 주 지도 못하고 경외에 내친 바가 되려는가?
 
57
"공주님, 장량이를 잠깐 보시렵니까?"
 
58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59
"승상 부인이시라, 추호라도 소홀함이 있었다가는 용서치 않는다."
 
60
이러한 주의와 함께 장량이가 이 방으로 인도되었다.
 
61
국향이는 눈을 굴려 들어오는 장량이를 보았다.
 
62
국향이가 장량이를 처음 본 것은 지난 해에 잠깐뿐이었다. 그러매 그얼굴 생김이며 몸매며 조금도 기억에 없다.
 
63
그러나 지금 연파대에게 인도되어 이 방으로 들어온 장량이의 꼴은, 국향 이는 간신히 부르짖음을 참을 만큼 참혹한 것이었다.
 
64
일 년 전보다 제법 골격이며 체격이 장대하게는 되었지만, 누구에게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이 몸 사면에 멍이 들었고, 얼굴은 눈 근처에 한주먹 단단히 얻어맞은 양, 왼쪽 눈두덩이는 주먹만큼 부어 올라서, 눈이나 상하지 안았는가 근심될 지경이었다.
 
65
"이 녀석아, 부여의 주먹맛을 단단히 보았느냐?"
 
66
"예……."
 
67
대답만은 진실로 고분고분하였다.
 
68
"그래 맛이 어때?"
 
69
"약간 아픕니다."
 
70
"약간만? 좀 더 먹어 보련?"
 
71
"싫소이다."
 
72
"공주님, 소인은 잠깐 저 방에 갔다 오리다."
 
73
파대는 장량이를 남긴 채 이방을 물러 나갔다.
 
74
파대가 물러간 뒤에 국향이는 한 걸음 두 걸음 장량이에게 가까이 내려갔다.
 
75
그리고 손을 들어서 장량이의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을 가만히 만져 주었다.
 
76
"아야!"
 
77
"아파요?"
 
78
"아프지 않겠나 보세요."
 
79
"왜 이렇게 되셨어요?"
 
80
"연기라 하는 지금 그 녀석이 무심중 지끈 받는데, 고구려 놈의 대가리는 돌덩이입디다."
 
81
"받쳤구료! 이 팔다리는?"
 
82
"거기는 두들겨 맞았지요. 공주님은 어떻게 여기를 오셨어요?"
 
83
"장 서방을 좀 보러―."
 
84
"나 같은 건 봐서 뭘 합니까?"
 
85
"진나라 혈맥이 남은 자, 오직 이 몸과 장서방뿐 아니오? 그 진나라 혈맥의 뒤를 물려야 할 게 아니오?"
 
86
"으으ㅡ 공주님!"
 
87
"나는 을지 승상의 혈자를 낳아 드렸으니까, 이제는 진나라의 혈손, 내 아버지의 손자를 낳아 드려야지요."
 
88
아프다 어떻다가 모두 거짓말이었던 듯이, 장량이는 이 말을 듣고는 몸이 흐늘흐늘 일어섰다.
 
89
그리고 양팔을 들어서 국향이를 얼싸안았다.
 
90
승상의 완숙하고 뻣뻣한 얼굴과는 마주 비벼 본 일이 있지만, 정열에 불붙은 젊은 얼굴과는 서로 마주 대어 본 일이 없는 국향이는 이 장량이의 정열의 입술이 자기의 얼굴이며 입술 근처에 뛰노는 앞에 고요히 자기의 얼굴을 정량이에게 맡기고 상쾌한 젊은 정열을 즐기고 있었다.
 
91
국향이는 장량이의 숨찬 소리와 그 호흡을 감각하면서, 두손을 들어 장량이 의 양볼을 붙안아 제 얼굴 위에서 그것을 떼어, 다시 정면으로 그 입을 자기의 입에 갖다 대었다.
 
92
볼을 붙안고 한참을 입을 맞대고 있다가 장량이의 얼굴을 다시 네댓치쯤 되는 거리에 떼어 치우고 국향이 역시 흥분된 음성으로,
 
93
"장서방!"
 
94
하고 불러 보았다.
 
95
"공주님, 소인의 아내가 되어 주십시오."
 
96
"국향이는 언제든 진인(陳人)의 아내입니다."
 
97
"진인 장량이의 아내가 되어 주십시오."
 
98
"장서방, 장 서방 연모(淵某)에게 끌리어 내일은 경외(境外)로 나가게 됩니다. 장 서방께서 다시 석다산 가까이로 찾아올 재간이 있겠어요?"
 
99
"어어 싫습니다. 저 연가 놈의 눈에 들켰다가는 이번은 꼭 죽습니다."
 
100
"나를 아내삼기 위해서도 연가가 무서웁니까?"
 
101
"죽은 뒤에 아내가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102
"들키지 않고 묘하게 숨어 들어오지?"
 
103
"고구려 순라는 새 한 마리, 파리 한 마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104
국향이의 아이 바위가 태치듯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국향이는 그것조차 괘념되지 않는 듯이,
 
105
"요게 왜 이리 야단이야!"
 
106
하면서 좀 떠밀어 버렸다.
 
107
바위를 떠미느라고 지금껏 붙안고 있던 장량이의 뺨을 놓으니까, 성적(性的)으로 미칠 듯이 흥분된 장량이는 국향이의 허리를 얼싸안으려 하였다.
 
108
그것을 가벼이 밀며,
 
109
"바위야, 엄마가 너를 떠밀던? 걸 왜 떠밀까? 내 새끼를……."
 
110
하며 바위를 끌어당겨, 그 부드러운 입술에 제 입을 대고 쪽쪽 맞추었다.
 
111
"공주님!"
 
112
"왜 그러오?"
 
113
"소인의 입도 좀……."
 
114
"지금껏 맞대고 있고도 부족하오?"
 
115
"해로동혈(偕老同穴)키 전에야 부족합지요. 게다가 공주님, 좀 쪽 소리가 나도록……."
 
116
국향이는 탄식하며 바위를 다시 붙안았다.
 
117
"고구려 젊은이들은 이렇지 않더구먼! 진나라 혈맥은 그냥 내게 남아 있건만 국맥은 살아날 가망이 없구나. 아아 운재명재(運哉命哉)로다!"
 
118
"공주님, 진나라 국맥은 소인이 붙드오리다."
 
119
"진나라 젊은이가 모두 연 서방의 주먹에 질겁을 해서 아내를 빼 내러 오지도 못하겠다는 장 서방 같아서는, 비록 국향이 있어도 진나라 명맥붙들 사람은 없소!"
 
120
"공주님, 소인이 승천잠지해서라도 다시 석다산 근처로 잠입을 하오리다.
 
121
공주님을 빼내고자……."
 
122
"……장서방!"
 
123
국향이는 다시 손을 펴서 장량이의 뺨을 끌어당겼다.
 
124
그리고 자기의 뜨거운 입술을 장량이의 입에 한참을 대고 있었다.
 
125
그 날 해가 꽤 높아서 국향이, 연파대, 장량이, 이 일행은 석다산을 떠나서 다시 장안으로 회정을 하였다.
 
126
국향이와 바위를 위해서는 소교가 하나 준비되었다.
 
127
한 절반 내려오다가 어떤 여막을 잡아 하룻밤 쉬기로 하였다. 장량이가 걷기 힘들어하므로 장량이를 위하여 하룻밤 쉬기로 한 것이었다.
 
128
장량이는 어느 방에 쉬게 되었는지, 국향이와 연파대가 한 방에 묵게 되었다.
 
129
괴상한 인연으로 젊은 남녀가 같은 방에 묵게 되어서, 국향이로서는 마음의 경계를 꽤 하였으나, 저녁을 먹은 뒤에는 파대는 뜰로 나가고 말았다.
 
130
옷고름의 경계를 꽤 하였으나, 저녁을 먹은 뒤에는 파대는 뜰로 나가고 말았다.
 
131
옷고름 졸라매고 몸단속을 단단히 한 뒤에, 국향이는 먼저 자리에 들고 말았다.
 
132
국향이가 한잠을 풀낏자고 깨어보니 파대는 여전히 뜰에서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133
또한 잠을 자고 나니, 그때는 밤도 어지간히 깊은 모양인데, 파대는 여전히 뜰을 거닐고 있었다. 승상 부인이 침실을 경계하고 지키는 파수의 구실을 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134
이 밤은 왜 그런지 국향이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연해 깨고 하였다.
 
135
국향이가 세 번 잠에서 깰 때, 파대는 몸을 쉬느라고 방 툇마루 위에 걸터 앉아 있다.
 
136
국향이는 몸을 수습하여 파대를 불렀다.
 
137
"연ㅡ 서방이라고?"
 
138
"네, 연파대라 합니다."
 
139
"좀 방에 들어가 쉬세요."
 
140
"소인은 괜찮습니다. 공주님 더 주무세요. 아직 내일도 오늘만큼 길이 더 남아 있읍니다."
 
141
"좌우간 좀 들어와 쉬세요. 내가 이야기도 좀 하고 싶고……."
 
142
파대는 그리 사양치 않고 덥석 들어와 앉았다.
 
143
"공주님, 장량이라나 하는 되놈을 그렇게도 못 잊어 하십니까?"
 
144
"장 서방은 국향이의 남편이올시다."
 
145
"공주님은 을지 상공의 부인이 아니세요?"
 
146
"상공 부인은 상공 댁에 계십니다."
 
147
"저 바위 도령은?"
 
148
"바위는 승상 자제입니다."
 
149
"승상 자제이자 또한 공주님 아드님이 아니오니까?"
 
150
"공주―국향이는 승상님께 아드님 하나를 낳아 올린 것뿐이지요."
 
151
"당신네 진나라 부인네 생각은 그렇습니까?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말도 진 나라 성현의 말인 줄 아는데―."
 
152
"저는 열녀가 아닙니다. 열녀가 되고자도 안 합니다."
 
153
"공주님 생각은 고구려인의 생각과는 대상부동입니다. 저는 아직 총각입니다마는 이 총각이 거룩한 몸을 처녀 아닌 여인에게 더럽히기 싫어서 그냥 총각을 견지하고 있읍니다. 처녀로 적당한 짝은 아직 발견되지 않으니, 총각으로 늙을 밖에는 도리가 없겠읍니다.
 
154
파대는 천장을 우러르며 한 번 크게 웃었다.
 
155
국향이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뜻하지 않고 꾸벅 졸았다.
 
156
"공주님, 한잠 더 주무시지요. 밝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읍니다."
 
157
또 밖으로 나가려는 듯 몸을 움직였다.
 
158
국향이는 바위를 고용히 내려 뉘며 자기도 곁에 다리를 뻗고 누웠다.
 
159
"연 서방도 게서 좀 다리 펴고 주무세요."
 
160
"저는 나가서 이 근처를 살펴야겠습니다. 공주님, 주무세요."
 
161
하면서 파대는 그의 묏더미 같은 몸집을 일으켜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162
파대와 장량이와 을지 승상, 이 세 사람의 이성을 마음속으로 막연히 비교하여 보며, 국향이는 또 잠의 나라에 빠져 들어갔다.
 
163
이튿날 이 일행은 무사히 장안 서울 을지 댁으로 돌아왔다.
 
164
그때 저녁상을 받고 있던 승상 부인은 달려나와 국향이에게서 바위를 받아 안았다.
 
165
"어딜 갔었니? 도로 왔구나! 아이구 내 새끼야!"
 
166
하며 마치 잃었던 자식을 찾은 듯, 늙어 가는 그의 눈가에서는 눈물까지 한 줄기 흘러내렸다.
 
167
여기서 국향이는 자기가 무슨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무사히 돌아온 것을 무한히 만족하게 여기었다.
 
168
만약 자기가 얼굴을 들지 못할 무슨 실수를 하였더면, 지금 무슨 면목으로 이 댁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까?
 
169
하마터면 저지를 뻔하였다. 장량이의 뺨을 끌어다가 제 입술에 대고 마주 빨고 빨리울 때, 몸이 모로 쓰러지기만 하였더면 다시 얼굴 들지 못할 커다란 실수를 한 뻔하였다.
 
170
뿐더러, '나는 총각이오.' 하며 파대가 자신의 신분을 자랑할 때, 국향이는 그 총각이로라는 파대의 몸을 끌어안아 보고 싶은 충동을 파대의 그 엄한 얼굴의 표정 때문에 물리쳤다.
 
171
그때에 파대가 약간의 수상한 행동만 취하였더라도, 국향이는 파대에게 몸을 내어 맡기기를 주저치 안았을 것이다. 아니 도리어 국향이 편에서 파대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172
여기서 국향이는 여인의 정조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가 쉬운 것인지를 알아차리고 몸서리쳤다.
 
173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도덕관을 깊이 마음에 새겨 두고, 한 남자 밖에는 절대로 보기를 피하여 오는 고구려 아낙들의 갸륵한 정조관을 생각하여 보면 진실로 감탄할 만 한 것이었다.
 
174
승상 부인에게서 바위를 받아 안고 제 방으로 돌아와, 마음의 괴로움이 무 엇에서 해방된 듯, 고구려 아낙의 정조관념에 깊이 감복하며, 그의 사랑하는 아들 바위를 힘있게 안으며 그 자리에 엎드렸다.
 
175
까닭 모를 눈물이 스르르 그의 눈가에 흘렀다.
 
176
"바위야, 우리 집에 왔구나!"
 
177
국향이는 바위를 힘있게 안았다.
 
178
국향이에게 있어서는 을지 승상을 뵈올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승상은 어떤 태도로 어떤 심경으로 자기를 대할는지, 거기 대하여 자기는 어떤 태도로 대하여 드려야 할지, 이것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179
승상은 이튿날 아침에야 국향이의 방을 찾았다. 무뚝뚝한 얼굴에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180
"몸과히곤하지 않소?"
 
181
들어서면서 역시 무뚝뚝한 음성으로 승상은 이렇게 물었다. 거기 대하여 국향이는 싱겁게 씩 웃으며 조금 발치로 몸을 움직였다.
 
182
"요놈은 곯아떨여져 자는구나. 공주는 그래 장 서방을 만나 보았소?"
 
183
"네……."
 
184
"을지의 품보다 장 서방의 품이 그립습디까?"
 
185
하고 어린 바위의 잠자는 머리를 쓸어 주며 말을 계속하였다.
 
186
"그렇지만 여보 공주, 진나라 풍속은 모르지만, 고구려 습관으로 한 여인 이 시집을 가면 친정이고 옛 인연을 온통 끊고 시집 사람이 되는 법이오.
 
187
천자의 칙허와 칙명으로 내게 시집은 이상은, 장 서방 무슨 서방 할 것 없이, 옛 인연은 죄 잊어야 하는 법이오. 공주는 지금 완전한 고구려 여인이 외다."
 
188
"승상님, 그래도 소녀는 진나라 혈통을 잇는 자식을 천자 위해 낳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진나라 혈맥을 잇는 자, 오직 소녀 밖에는 없읍니다."
 
189
"진나라는 오 제 삼십삼 년 밖엔 가지 못하고 공주 아버님에게 끊어졌읍니다. 공주는 고구려로 시집왔으니 고구려 사람이지, 공주의 몸에서 진나라 혈맥을 이을 자가 어떻게 나오?"
 
190
"그래도 저 장 서방은 진나라 혈맥을 살리려는 정신을 갖고 있읍니다."
 
191
"계집의 뒤따라 만리길 오는, 허파에 바람 든 천하 부랑자 녀석이, 공주께서는 못 잊히오?"
 
192
"그래도 진나라…."
 
193
"진나라 뭐요? 젊은 놈의 품이 그리워 그러지! 그래 그 젊은 놈에게 붙안 겨 보기나 했소?"
 
194
문득 회상되었다.
 
195
바위의 아버지며 남편 되는 승상이 단 한 번이라도 그처럼 숨차게 자기를 붙안아 주면 국향이는 얼마나 기뻣을까?
 
196
승상은 자기를 사랑하기는 극진히 사랑한다. 그러나 승상의 사랑은 너무도 점잖고 정열과 힘이 없었다.
 
197
국향이의 나이 바야흐로 스무 살, 여인 스무 살이면 혼자 있을 때라도 그 몸은 정열에 불탈 듯한 한창의 시절이다.
 
198
반 아흔 살의 늙은이에게 시집와서, 이 내 청춘은 그저 썩지 않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에, 국향이의 마음은 적이 뛰놀았다.
 
199
'장 서방이 그립고나!'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200
그 날 국향이는 으레히 승상이 잠자리를 국향이 자기의 방에서 할 것으로 알고 몹시 기다렸으나, 승상은 대궐에 들어갔다 나와서는 사랑에 자리하고 서 자고 말았다.
 
201
승상이 들기만 하면 사뢰고 싶은 말, 호소하고 싶은 말, 사죄하고 싶은말, 가지가지의 천만 가지 사정이 가슴에 쌓이고 쌓였지만, 그것을 모두 삭이고 혼자서 지내자니 여간 마음 괴롭지 않았다.
 
202
그런데 승상은 어찌된 일인지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사랑에 자리하고 말았다 언젠가 한 번 승상의 소리를 듣고 국향이가 너무 반가와 마주 뛰어나 가려는데 승상은 돌아보며 빙긋이 웃으며,
 
203
"장서방댁, 장 서방 꿈이나 꾸었소?"
 
204
하며 지나가 버렸다.
 
205
국향이는 장 서방과 입맞춘 것을 연파대가 보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못 보았으리라고 보장도 또한 못할 일이다. 연파대의 입을 통화여 그것이 승상께 보고되지 않았다고 안심하지도 못할 노릇이다.
 
206
그 때문에승상은 이렇듯 냉담함인가? 사십 늙은이가 열 소리 하는 소녀를 아내로 맞았으면, 아내의 약간한 오입쯤은 묵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207
"진나라 풍습은 아내의 부정(不貞)이 허용되는가?"
 
208
그때 승상은 몹시 불쾌한 듯이 오히려 노여운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209
국향이 자기의 그때 행동이 혹은 부정으로 될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국향 이는 자기딴에는 이것도 일단 망한 고국의 혈맥을 이어 보려는 가여운 애국 행동의 일단이다. 그것을 너그러이 용인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승상이, 국향 이에게는 오히려 딱하였다.
 
210
―서방에게 미쳐서 조국도 버려야 하는가?
 
211
고구려 사람에게 고구려의 애국심이 있을진대, 진나라 딸에게는 진나라의 애국심이 있을 것이다.
 
212
이것도 서방 때문에는 버려야 하는가? 승상 댁에서 국향이에게 대한 대접 이 석다산 다녀온 뒤에는 전보다 현저하게 달라졌다. 전에는 승상 부인도 무시로 국향이의 처소에 들러서, 바위를 어르며 한참씩 놀고 하더니, 이제 부인은 일체로 들르는 일이 없었다. 시녀를 시켜서 바위를 부인 처소로 데려가고 하였다.
 
213
시비들도 이심전심으로 이 기분을 알아채고, 국향이의 시종은 그리 시원히 하지 않는다.
 
214
을지 가문에 칙명으로 시집을 와서, 시집오자, 한 아들을 낳아 바친 그 시절의 국향이의 처지에 비기건대 과연 참담한 형편이었다.
 
215
장서방과 입 한 번 맞춘밖에는 더 나아간 허물이 없거늘, 그 일이 이 결과를 낳았는가?
 
216
바위가 종내 승상 부인 방에서 자기까지 하였다.
 
217
독수공방이라는 경험을 처음 한 날 밤, 국향이는 한밤을 한잠도 못 이루고 일어나 앉아서 울면서 새웠다.
 
218
국향이는 잊혀진 존재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를 간섭하거나 눈여겨보는 이 가 없었다.
 
219
승상은 코끝도 볼 수 없을 뿐더러, 그 음성조차도 국향이에게는 다시 들을 기회가 없었다.
 
220
어머니의 배에서 세상에 떨어진 이래로 혼자 자 본 적이 없고, 하다못해 시녀의 시측이라도 받고야 자던 국향이는 비로소 독수공방이라는 것의 적적하고 아픈 것을 통절히 느꼈다.
 
221
바위 하나를 안고 자기가 용인되어 있지만, 그 바위도 간간 승상 부인께 가서는 도로 오지 않는 수가 흔히 있었다.
 
222
가을도 차차 깊어서 만물이 소슬한 절기에, 넓은 방에서 쪼그리고 혼자 자는 그 고통은 형언키 힘들었다.
 
223
이러한 때에 국향이에게 다시금 통절히 생각 나는 것은 정량이라는 진나라 젊은이의 정열의 품이었다.
 
224
장량이는 연파대라는 사람에게 끌리어 가서 경외(境外)에 내친 바 되었다.
 
225
그러나 아내(국향이)를 빼 내려 도로 잠입하기로 약속하였다.
 
226
'잠입하다가 연 서방에게 들키면 매 맞아 죽어요.' 겁에 질리어 이렇게 호소하던 장량이라, 믿음성 있는 약속은 아니었지만, 자기를 사모하여 만여 리 길을 온 정열로 미루어 그래도 국향이에게는 아주 잘라 버리지 못할 미련이 있었다.
 
227
자기의 입술에 맞대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던 정열의 젊은이, 그 정열의 뜨거운 입김과 힘찬 품이 국향이에게는 차차 그리워 갔다.
 
228
어린 바위를 힘있게 안고, 이것이 정량이거니 하는 생각으로 바위의 입을 빨아 주기도 여러 번이었다.
 
229
한 스무남은 살 되고 보니, 사람의 나고 죽는 의의(意義)의 엄숙하고 큼도 차차 짐작이 갔다.
 
230
부왕이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음에 임하여, 국향자기를 동이(東夷)의 재상 을지문덕에게 부탁함은 오직 국향이를 살리고자 함만이 아닐 것이다. 천하를 웅시(雄視)하는 대고구려 재상에게 딸을 맡겨, 사라지는 진나라 피를 그래도 남겨 보고자 하는 고충이 아니었을까? 만약 부왕의 진의가 그렇다 할 진대, 자기는 을지 가문의 아이 낳는 지어미로만 종시하는 것은 부왕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다.
 
231
이렇게 생각하면 장량이가 더욱이 애타게 그리웠다.
 
232
자기와 장량이와의 사이에 아이가 난다 하면, 그 아이야말로 순수한 진나라 아이일 것이다.
 
233
여상한 이론은 모두가, 요컨대 국향이가 이성의 품이 그리워서 생겨나는 억지의 이론이었다.
 
234
어떤날 밤, 국향이는 밤이 새도록 바위를 안고 운 뒤에, '소년은 부와의 유지를 계승합고자 오래 신세진 승상님 댁을 하직하나이 다.' 라는 간단한 글 하나를 남기고서, 모후(母后)에게서 노자로 쓰라고 받은 패물들만 몸에 지니고 을지 댁을 빠져 나왔다.
 
235
승상 댁에서 뛰쳐나온 국향이는 우선 그 목표를 석다산으로 잡았다.
 
236
석다산 아래의 마을까지 이르러 알아보았으나, 여출일구로 석굴 사람은 석굴까지 가야 알지, 그렇지 않고는 모른다 하므로 험한 골짜기 바위을 건너고 넘어서 그 많은 석국을 모두 뒤져 보았으나, 장량이의 소식은 막연하여 알아볼 길이 없었다.
 
237
그날 저녁 여막으로 내려와 몸을 여막에 잠글 때는, 국향이는 온몸이 피곤 하여 호흡조차 순조롭지 못할 지경이었다.
 
238
몸이 피곤하다가보다는 마음이 피곤하고 앞이 딱 막혔다.
 
239
아무런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없이, 그저 막연히 을지 승상 댁을 뛰쳐나온 제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여 마지않았다.
 
240
개 새끼 한 마리, 벌레 한 마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치밀한 고구려 경찰력 (순라)에 국향이는 일말의 희망을 붙였다. 승상이 자기를 그렇듯 사랑하였으니, 승상이 자기의 출분을 알아채고 온 고구려의 힘을 동원해서 자기를 찾아 보지 않을까?
 
241
그렇다 하면, 자기는 거기에 붙들여 다시 승상 댁으로 돌아가서, 승상작은 마마로, 바위의 자친으로, 다시 고구려의 아낙으로 결코 딴 생각 품지 않고 안온하게 생애를 지내리라.
 
242
문밖에서 저벅저벅 사내의 발소리가 날 때마다 국향이는 몸까지 흠칫흠칫 놀라며 기다렸다. 연파대의 발소리가 아닐까? 연파대가 자기를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닐까?
 
243
아아 승상님! 국향이는 진실로 잘못하였읍니다.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시고 용납해 주시면, 차후에는 국향이 결코 다시 승상님을 배반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으리다.
 
244
그러는 일방 국향이는 젊은 사나이 장량이의 굳센 팔 힘이며 뜨거운 입맞춤 등이 또한 가슴이 메도록 그리웠다.
 
245
'쪽 소리가 나도록ㅡ.' 정열에 미칠 듯한 눈을 번득이며 국향이 자기를 힘있게 안고 그 입을 마주 비며 대던 정열의 젊은이가 국향이에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246
국향이는 며칠 동안을 무위하게 석다산 아래 여막에 묶으면서, 행여연파대 나 승상 댁 심부름하는 누구가 오지나 않는가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 기대가 헛된 것을 깨닫고, 고구려 초동의 옷 한 벌을 준비하여 차리고 석다 산 아래의 여막을 떠났다.
 
247
'우리 부모가 나를 동이의 여편네로 만들려고 낳아 기른 바는 아니겠지.
 
248
진국향이는 진나라 백성 노릇하자.' 는 결으로써 오래 젖었던 고구려 재상가 아낙의 티를 벗어 버리고, 당분간 몸을 고구려 초동으로 차리고, 진나라 젊은이 장량이의 행방을 찾고자 정처 없는 길을 다시 떠났다.
 
249
'장 서방을 경외(境外)로 내친다.' 이 경외 경내의 접경지인 오리내(鴨綠江) 근처를 목표로 국향이는 다시 길을 떠났다.
 
250
석다산 아래를 떠나서, 다시 장안성까지 이르렀다.
 
251
성 밖에 사관하고 묵었다. 단 한순간이나마 바위를 보고 싶었다. 바위가 아니거든 을지 승상이라도, 을지 가문의 하인이라도, 옛 인연에 관련되는 누구든 잠깐 보고 싶었다.
 
252
뭇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매를 맞고 창피를 당하면서도, 다시 을지댁에 끌려갈 기회가 생기기를 기다렸다.
 
253
그러나 차마 성 안에는 스스로 부끄러워서 들어가지 못하였다.
 
254
옛 인연 있는 사람에게 들킬 목적으로 사흘을 성 밖에 사관하고 성 밖을 배회하다가, 드디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또다시 길을 떠날 때에, 국향이 에게는 온 천하가 다 원수같이 보였다.
 
255
'바위? 바위보다 돌멩이를 보리라. 을지 상공? 길가의 초동을 보리라, 나를 위해 만리길을 찾아온 장서방이나 만나리라. 아아! 그러나 장서방은 어디 있는가? 그 우악스러운 연 서방을 다시 만나서 욕이나 보지 않는가?
 
256
바위야! 바위야!
 
257
속으로 외치며 부르짖으며, 국향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장안성을 떠나서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장량이를 만나러 다시 길을 걸었다.
 
 
258
을지 승상 댁에서는 국향이가 나간 날, 꽤 늦게야 국향이의 실종을 발견하 였다. 승상 부인께 가서 밤을 자고 엄마를 찾아 아침에 왔다가, 텅빈 방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엄마, 엄마ㅡ 울며 부르짖기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알리우고, 승상 부인도 알려와서 국향이의 남긴 글월도 발견되고 하여 국향이의 실종이 알려진 것이었다.
 
259
승상은 그 사연을 듣고, 입맛이 쓴 듯이 두어 번 혀만 찼다.
 
260
"양호유환이라더니 공연한 것 기르다가 걱정만 남겼군. 바위는 이젠 부인 이 맡아서 기르시오. 어미 없는 아이니 그렇게 아시오."
 
261
"바위 기르기야 누군들 걱정 있으리까마는 하여간 누구를 공주 찾아내보 내야지요."
 
262
"내버려 두오. 철없는 애도 아니요 제 생각으로 나간 공주를 찾아오면 무러하오? 또 나갈걸 ㅡ 좌우간 바위나 잘 기르도록 합시다. 늙은이 싫다고 젊은 놈 찾아간 걸 불러야 쓸데 있소? 진나라 여인의 생각은 우리 고구려 사람으로는 잘 알지 못할 게야. 어느 서방이건 잘 섬기기만 하면 열녀라는 게 진나라 사람들의 생각이거든. 게다가 공주의 나이 이젠 스물이 아니오?
 
263
스무 살 여인이 저 하고 싶어하는 노릇은 하늘도 다시 잡지 못하는 법이오."
 
264
"그렇지만 애처로와! 그 연약한 몸이 이제 나가서 몹쓸 세상에 부딪칠 생각을 하면, 더욱이 바위의 생모라 애처롭지 않습니까?"
 
265
"한 번 부딪쳐서 세상 맛 쓰고 단 걸 알고 들어오면 그때 받아 주지."
 
266
승상은 아주 국향이를 내버리고 말았다.
 
267
승상 댁의 누구ㅡ 하다못해 하인배의 눈에라도 행여 뛸까 하여 며칠을 성 안 성 밖을 배회하다가 국향이는 종내 스스로 단념하고 자기의 길을 가려고 발 뗄 때는, 국향이의 마음은 통곡하고 싶도록 괴로왔다.
 
268
이제는 하릴이 없었다. 승상 댁 혈자를 받으려는 욕망을 버릴진대, 이제는 진나라 혈손을 받을 노력을 해야 하겠다. 장량이― 장 서방은 어디있는가?
 
269
연파대에게 두들겨 맞고 달아난 진나라 혈맥의 소유자, 장량이 는 어디 가 있는가? 다시 장량이의 소식을 찾으려고 국향이는 대동강 연변으로, 살수 연변으로, 향산, 의주 등 각 연변을 샅샅이 뒤지면서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270
꽤 세밀히 찾아 보았지만 석다산 이후의 장량이의 소식은 망연하여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271
이리하여 초동으로 변복한 국향이는, 이르는 곳마다 장량이의 소식을 탐색하면서 오리내까지 넘어섰다.
 
272
장안을 상거하기 오백여 리ㅡ 연전 온 바의 만여 리에 비기건대 몇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가을의 짧은 해를 이용하여 가다 쉬다 하 는 길이라 국향이에게는 지루하고도 한없는 길이었다.
 
273
상하천여 리가 되는 오리내 연변을 샅샅이 오르내리며 뒤질 수는 없어서, 대국으로의 교통로의 연변만 뒤지면서 북상하면서도, 국향이는 장서방을 어디다가 내려뜨린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 뒤로 끌리었다.
 
274
오리내를 넘어서는 말갈 부락의 꽤 띄엄뜨엄 있었다.
 
275
국향이가 비록 고구려 승상의 아내가 되고 고구려의 가정에서 아니 낳고 살림을 하였다 하나, 그동안 익힌 것은 모두가 고구려의 상류 사회의 풍습과 언어들이었다. 말갈족과 부여족의 풍습과 언어가 뒤섞여 새로운 언어 풍습을 이룩한 이곳 풍습에는 아주 초면이었다.
 
276
이 초면인 풍습에 외국인 티를 내지 않고 어떻게든 무사히 뚫고 나가려고 국향이는 꽤 애를 썼다.
 
277
이렇듯 꽤 애를 쓰며 뚫고 나가다가 국향이는 드디어 병상에 넘어지고 말았다.
 
278
그것은 칠백 리 요동의 초입정에서였다.
 
279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몸살쯤으로 여기고 심상히 알았는데, 하루 여막에서 쉬고 이튿날 길 떠나려 하니,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이 도저히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280
주인 마누라를 불렀다.
 
281
"주인 아주머니, 나 하루 더 쉬겠읍니다. 아이구 골치야!"
 
282
부여식의 구들을 놓아서 꽤 뜨뜻한 방에 국향이는 몸을 놉히고 앓기 시작하였다.
 
283
"총각 손님, 노독이 나셨구료."
 
284
"노독인지 뭔지 아이구 골치야!"
 
285
"의원 불러 드릴까?"
 
286
"의원이 있으면 좀 청해 주세요. 웬 쫄쫄한 의원이 있겠어요?"
 
287
웅국 고구려에는 이런 촌락 시골에도 씀직한 의원이 있었다. 한 의원이 국향이를 위하여 초빙되어서 국향이의 맥을 짚었다.
 
288
국향이의 맥을 짚고서 한참을 위아래를 살피던 의원은,
 
289
"내 조용히 이 손님과 상의할 일이 있으니, 다른 이들은 잠깐 밖에 나가 주시오."
 
290
하고 청하였다.
 
291
다른 이래야 주인 마누라밖에 없지만 주인 마누라는 이 소청을 듣고 고요 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 뒤, 의원은 양손으로 국향이의 손을 들여다 보며, 손님은 부인네시지요? 아낙네시지요?
 
292
하고 묻는다.
 
293
의외에도 진실을 지적받은 국향이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방침이 서지 않아 한순간 머뭇머뭇 하였다.
 
294
"몸에 별 병환이 있는 바 아니고 노독 피곤에 겸한 회임이신데, 몸을 좀 안정히 쉬시면 별 탈 없으시리라."
 
295
날짜로 따져 보아야 만약 이것이 회 임이라 할진대 틀림이 없는 을지승상의 제이자이다. 따지고 뭐고 할 것 없이 장량이라는 사람과 입을 접하여 본 밖에는 남자라는 것을 모르는 자기거니와, 회임이라는 것이 남녀가 살을 접하고 동침하고나서야 되는 것이라면 을지 승상 밖에는 자기와 더불어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296
장량이, 연파대 등 감정상으로는 여러 사내를 아는 국향이로서는, 회임이라는 의원의 말에 한순간 뜨끔하였으나, 천상천하에 을지 가문 밖에는 이것이 당신 아이요 하고 내놓을 곳을 못 가지고 있는 국향이로서는, 또 하나 생겼다는 일종의 희열을 무드기 느꼈다.
 
297
국향이는 의원한테, 자기는 양가의 처녀로서 양가에 출가를 했는데, 가정 사정상 시가를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하늘 아래 부끄러울 데가 없는 귀한 신분의 아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298
의원을 돌려 보낸 뒤에 국향이는 망연히 앉아 있었다.
 
299
자기는 을지 가문을 배척하고 뛰쳐나왔지만, 자기의 몸 속에는 그때 벌써 을지 가문의 씨가 들어 있었다.
 
300
나는 을지 가문을 배반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을지 가문의 아이를 낳는 아낙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게 부과해 주신 사명이다.
 
301
부왕의 우지? 진나라? 아아, 하마터면 몸을 더럽혀 얼굴 들어 사람을 대하지 못할 한 신세가 될 뻔한 이 몸을, 그냥 여전히 곱게 유지하게 된 하늘의 처사에 국향이는 진심으로 사례하였다.
 
302
그러나 장차 이 뱃속의 아이가 세상에 나온 뒤에, 승상이 이것은 정녕 내 자식이오 하고 인정을 하여 줄까? 자기는 그 사이 승상 댁을 나온 이래 숱한 사내를 접하였다. 길 가는 농군, 초동과도, 날씨가 산산한 관계로 서로 품고 품기며 밤을 지내기도 여러 번 하였다.
 
303
생면부지의 사내와 서로 품고 하면서 그 따뜻한 체온이 자기에게 스며들 때에 스무 살 난 생산한 젊은 여인으로서의 정욕이 움직인 일도 없지 않았다.
 
304
이렇고 저렇고 나는 딴 사내를 모르는 을지문덕의 아내로다. 을지 가문의 장래 주인 될 바위 소년의 생모로다.
 
305
국향이는 여막 주인 마누라를 청하여 의원에게 한 말과 비슷한 말을하여, 자기는 임신한 것 같으니 뒷방 한 방을 깨끗이 치워, 자기가 몸을 풀기까지 있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여, 그는 몸을 뒷방으로 옮겼다.
 
306
의원의 말이 틀림이 없었던 듯, 국향이가 뒷방으로 몸을 옮기고 몸을 정양 하려 드러눕자, 입맛이 분명 달라지고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이 먹고 싶고, 냄새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고, 분명 뱃속에는 한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307
바위를 밸 때와 달라서, 온갖 것이 부족한 객지 생활에서 입덧이 나고보니, 이것을 이제 칠팔 개월 겪어야 할 일이 한심하였다. 늦가을에서 겨울에 걸친 시절이라, 음식물에 부자유를 느끼는 바는 아니었지만, 입덧난 특수한 입에 맞는 음식을 구해 먹기는 지난한 일이었다.
 
308
모든 부자유를 참고서 지낼밖에는 없었다.
 
309
이러한 가운데서 국향이는 지나간 두세 달 동안 장량이라나 하는 소년의 뒤를 쫓아서 석다산으로 장안으로 헤매던 광란의 몇 달의 생활을 회상하여 보았다.
 
310
자기는 자기 부모의 음탕한 성격을 유전받았음인지 왜 그렇게도 그때 마음이 들떴던가? 장량이라는 소년의 어디를 추려 내면 감히 을지 승상의 발 뒤꿈치엔들 비길 수 있으랴! 짐작컨대, 장량이라는 소년은 진궁(陳宮)의 음탕한 풍습에 젖은 모후(母后)의 한 총애하던 소년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 할진대, 그 장량이에게 자기가 입을 제공하여 입을 맞춘 것만 할지라도 이 고구려땅에서는 용서받지 못한 난륜의 죄악이다. 무게 있고 튼튼한 일국의 승상인 을지 공과 어디 감히 비길 수가 있으랴. 그 장량이를 그려 장량이로 하여금 진나라 혈맥을 이을 아이를 만들도록 하려고 을지 댁을 버리고 뛰쳐 나온 자기는, 모후에게서 유전받은 음탕한 피의 소치가 아니었던가?
 
311
을지 가문의 아들을 낳은 아내로서 흔들림 없는 튼튼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자기가 무슨 바람으로 그가 문을 뛰쳐나왔던가? 오직 젊은 사나이의 품을 그려 젊은 품에 안겨 보고자 하는 자기의 음심의 소산이 아니었던가?
 
312
이 때문에 바위라 하는, 내 몸을 아프게 하여 낳은 자식까지 버리고, 자기를 그렇게 귀여워하던 승상 이하 승상 부인이며 그 댁 하인배까지 모두 버리고 석다산으로 달려가지 않았던가?
 
313
고구려의 아낙은 남편 아닌 사내에게 음심이 생기면 몸을 부젓가락으로 지져서 스스로 음식을 삭인다고 들었다.
 
314
자기는 왜 부젓가락으로 몸을 지질 용기가 아니 났던가?
 
315
바위― 이제는 꽤 잘 걸어다닐 게다. 그 귀여운 바위까지 내어버리고 장량이의 뒤를 따라 을지 댁을 뛰쳐나오다니― 아아 과연 미쳤었구나!
 
316
이젠 쉬운 말은 제법 할 수 있을 사랑하는 아들 바위가 안타깝도록 그리웠다. 또한 자식 뱃속에 있는 것이 분명하니, 이도 또한 을지 가문의 둘째 아들이라, 제 형처럼 귀우운 것이 생기려는가?
 
317
국향이는 과거의 온갖 잡념에서 해탈되어, 오직 태교에 힘써서 좋은 둘째 아들을 얻으려고 노심하였다.
 
318
장래 계집애가 나올지, 사내가 나올지는 알 바이 아니지만, 분명을지승상과 진국향이라는 남녀의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이다. 그 진국향이는 이 아이가 뱃속에 든 뒤에 한때 바람이 나서 돌아다녔지만 그래도 이 아이만은 신성하고 깨끗한 을지 승상 을지문덕 공의 자식이다.
 
319
짐작컨대 모후의 총애하던 소년이었을 장량이라나 하는 소년을 사모하여 을지 댁을 배척하고 뛰쳐나온 제 어리석은 행동을 못내 뉘우쳤다.
 
320
남녀의 관계라는 것은 삼천 후궁을 자랑하는 진나라 궁실처럼 색욕만으로 될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는 음탕한 진나라 피를 물려받은 탓에 하마터면 이 내 몸을 망칠 뻔하였다.
 
321
을지 댁에 출가를 하여 승상 부인으로 고구려 아낙이라는 것을 자랑하고자 하던 자기가, 여전히 진나라 아낙의 뒤를 밟으려 하였던 것을 보면, 핏줄의 위대한 관련성에 다시금 느끼는 바가 없지 않았다.
 
322
이 여막 주인 여편네라는 사람은 순전히 부여에서 고구려로 전통이 흘러내린 고구려 아낙이었다. 여객들의 편의를 돌보아 주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운 여막의 경영자로서, 일찍이 홀몸이 되어 이 여막 하나를 유지하면서 이십 년간을 살아 온 아낙이었다.
 
323
의지 굳건한 믿음성 있는 고구려 아낙이었다. 양가의 며느리로서 가정 사정으로 집을 뛰쳐나왔노라는 국향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324
"사내란 다 바보야! 저런 이쁜 아낙을 놓아주다니! 그렇지만 색시,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보다 얼굴이 썩 못했소이다. 음식 거처 등이 맞지 않는 탓인지?"
 
325
하며 마주 나와 국향이의 손을 잡았다.
 
326
"내 집처럼 여기시고 마음 놓고 계세요. 무얼 자시고 깊은 것이 있거들랑 아무것이고 부르세요."
 
327
"아이구 주인 아주머니두! 내 집에 있으면 별다르겠어요? 그저 밤에는 왜 그런지 좀 적적해 못 견디겠어요."
 
328
"서방님 품을 떠나니 왜 적적치 않겠어요? 만날 꼭 품에 안겨 재롱이나 부려야 할 어린 색시가…."
 
329
"저의 서방님이라는 분은 나이 마흔다섯이 지난 영감인걸 뭐…."
 
330
"색신 스무 살이시라지?"
 
331
"네…."
 
332
"스무 살에 한 마흔아믄 나야 꼭 맞지. 색시 가장 귀염받으시댔겠구먼.
 
333
우리 영감도 살아 계시면 금년이 환갑이신가―."
 
334
주인 마누라는 적적한 듯이 머리를 돌렸다.
 
335
이러한 가운데에서 뱃속의 어린애는 나날이 자라서 세상에 고함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336
날이 차차 지남을 따라 국향의 배는 현저하게 불러 갔다.
 
337
배가 불러 감을 따라서 국향이의 마음을 차차 불안하게 하는 근심이 생겨서 커 갔다.
 
338
그것은 장차 이 뱃속의 애가 세상에 나온 뒤에. 애 아버지인을지 승상이 이것은 틀림없이 내 자식이라고 인정해 줄는지, 혹은 아비 모를 애라고 내 버릴는지, 여기 대한 근심이었다.
 
339
자기의 정조가 하늘 아래 부끄러울 데는 없는 바이지만, 마음의 정조는 온 전하다고 장당할 수 없는 국향이로서는, 더욱이 장량이와 마주 붙안고 입을 맞추었고 연파대와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지낸 경력을 가진 국향이는, 남의 앞에 버젓이 자랑할 정조는 되지 못하였다.
 
340
'남에게 마음 흔들리었으면 이것이 벌써 정조가 깨어짐이라.'고 갈파한 옛 성현의 말씀은 있지만, 국향이는 이로써 뱃속의 아이에게 일말의 불안을 안 느낄 수 없었다.
 
341
이런 때에는 고구려 아낙의 특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주인 마누라가 국향이에게는 좋은 의논 상대자였다.
 
342
"주인 아주머니!"
 
343
"네?"
 
344
"좀 들어와 주세요"
 
345
"왜 그러우? 남 바쁜데."
 
346
"잠깐만 들어와 주세요. 그렇지! 그렇게 다리 뻗고 누워 주세요."
 
347
"이 색시가 왜 이러나? 서방님 생각이 나나 봐."
 
348
"서방 생각도 납니다. 왜 안 나겠어요."
 
349
하면서 국향이도 주인 마누라 곁에 눕는다.
 
350
"아주머니, 대체 아이라는 건 누구를 닮습니까?"
 
351
"부모를 닮지 동네 총각 닮겠어요?"
 
352
"부모라면 어미를 더 닮습니까? 아버지를 더 닮습니까?"
 
353
"내 짐작으론 아버지를 더 닮을 것 같습디다."
 
354
오오! 하느님, 제발 그래 주면― 유난히 특징 많은 아버지 을지 승상을 닮아 주면 얼마나 고마우랴!
 
355
"왜? 색시, 동네 총각 닮을까 봐 걱정스러우?"
 
356
"걱정도 스러워요. 아이 들자 그 댁에서 뛰쳐나왔으니, 이건 나모르는 아 이라고 밀치면 어떻게 해요?"
 
357
"얼려 둔 동네 총각이라두 있수?"
 
358
"입쯤 맞춘 것으로는 닮는데 뭘 영향 없겠지요?"
 
359
"입맞춘 낭군은 있는 모양이군. 장안 총각 녀석들도 요런 이쁜 색실 그 저 둘 까닭이 없겠지."
 
360
"아주머니두! 전 그런 거 없어요. 아무도 그런 사람 없어요."
 
361
"괜히 발뺌하느라구 야단이군. 입 같은 건 천백 번 맞춰두 별 탈 없는가 봅디다. 그저 동침해야 아이가 되구 안 되구 하는 게지."
 
362
동침이란 것에 대한 신비성에 국향이는 마음 깊게 울리었다. 자기와 동침 한 과거를 가진 사람은 을지 승상 밖에는 이 세상에 없다. 이 뱃속의 아이는 천하에 누가 무엇이든 간에 을지 승상의 씨다.
 
363
어떤 날 유난히 뛰노는 뱃속의 어린애를 어루만지며 국향이가 망연히 앉아 있을 때에,
 
364
"되놈이란 참, 저런 게 다 나락을 먹고 있으니까 되 땅에 나락이 모자라지."
 
365
여막 주인 마누라가 투덜거리며,
 
366
"색시 있소?"
 
367
하면서 국향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368
대체 고구려 사람은 고구려인이 아닌 인종은 통 몰아 '되놈'이라 하므로, 그 되놈의 한계를 잘 가릴 수 없어서 국향이가,
 
369
"되놈은 웬 되놈입니까?"
 
370
하고 물어 보았다.
 
371
"사랑에 일전부터 되놈이 하나 묵어 있는데, 나더러 자꾸 장가를 들여달라구 성화구료. 그래서 앞집 김서방 댁 암캐가 이즈음 암내가 일어서 야단 이기에 거기라두 중매를 해달라느냐구 물었더니, 암캐에게야 차마 어찌 장가들겠느냐고 하며, 이쁜 색시건과부건 사람의 종자에게 장가들고 싶으니, 꼭 중매를 서 달라는구료. 호호호호!"
 
372
주인 마누라는 쾌활하게 한 번 너털웃음을 웃었다.
 
373
"그랬더니 이 녀석이 내 방엘 기어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내 이불귀를 들치고 내 자리에 뛰어든단 말이지.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깔구 앚았구료.
 
374
그랬더니 깽깽 하면서 자기는 진나라라나 양나라라나 하는 되 땅에서 색시를 따라 장안 서울까지만여 리를 왔다가, 겨누던 색시는 그만 남한테 빼앗기고 도로 제 나라로 가는데, 고구려까지 왔다가 색시 하나 얻지 못하면 면목이 서지 못하노라고, 그래 이 늙은 할미나마 건드려 보려고 그랬노라고, 손을 싹싹 빌지 않겠어요?"
 
375
진나라라나 양나라라나에서 만리길을 왔노란다는 그 되놈에게 대하여 국향 이는 아주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376
장서방 아닐까?"
 
377
"그래 그 되 사람은 아직 있읍니까?"
 
378
"장가들여 주기 전에는 죽어도 안 떠나겠노라는구료. 그래 마침 집에 머슴도 하나 구하려던 차이라 머슴 겸해 한동안 있으라고 그랬소,"
 
379
"그러다가 아주머니께 장가들 모양이구먼요."
 
380
"설마 내가 장차 서방 생각이 나면 뒷집 수캐를 붙이지 되놈을 붙이겠소?
 
381
색시, 어떠우? 서방 생각 안 나우? 중매할까?"
 
382
"서방 생각이 나면 베개를 붙안고 자지요. 그런 추근추근한 되놈은 싫어요."
 
383
"하기는 색시는 뱃속에 아기가 있으니 더 그리울이 없겠소."
 
384
그날 낮 좀 기울어서 국향이의 방 앞에서 머슴을 뜰을 쓰는 소리에 가만히 열고 내다보았다.
 
385
거기서 국향이는 장량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연파대에게 맞아서 뚱뚱 부었던 눈시울은 다 도로 나았지만, 그 사이의 빈한 때문인지 초췌하게 여위고 마른 장량이가 뜰비를 들고 뜰을 쓸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386
"장 서방!"
 
387
국향이의 입에서는 뜻하지 않고 속살거림이 나왔다.
 
388
장량이는 힐끗 머리를 들어 마주 국향이를 쳐다보았다. 국향이를 알아는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벽촌 구석에서 국향이를 발견한 그 의의를 이해 할 수 없는지, 잠시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389
그러다가야,
 
390
"공주님!"
 
391
한 소리 부르짖고 손에 들고 있던 비를 내던지고 국향이의 방으로 달려들어왔다.
 
392
"이 되놈! 어디라고 객실엘 뛰쳐드니?"
 
393
주인 마누라가 질겁을 해서 장량이를 도로 내쫓으려는 것을 국향이는,
 
394
"나 아는 사람이에요."
 
395
하여 밀어 버렸다.
 
396
"색시 아는 이요? 그래도 색시 삼가시오. 내 지내 보니, 천하에 음흉하고 염치 없고 뻔뻔하고, 게다가 색시 미친광이입디다. 너 대체 어디 녀석이냐?
 
397
분명 고구려 사람은 아닌데, 대체 어디 녀석이야?"
 
398
"나요?"
 
399
"그래!"
 
400
"고구려 사람이오. 천하 절색이 색시의 서방이랍니다."
 
401
"예끼!"
 
402
국향이와 주인 마누라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소리가 났다.
 
403
국향이로서는 한때 장서방에게 향하여 나는 장서방의 아내로라고 선언한 일이 있었지만, 주책없은 소리를 벙벙하여 일종의 색광으로 인정받은 장서방에게 아내란 소리는 차마 듣기 싫었다.
 
404
"이녀석, 김서방 댁 암캐나 불러다 주련? 살이 찌고, 엉덩이 퍼지고, 지금 한참 암내 일었더라!"
 
405
"아주머니도, 괜스레 남 장가 들려는데 훼방 놓으시네!"
 
406
"색시도 저런 색광을 너무 오래 대척 마시오!"
 
407
하며 주인 마누라는 저 볼일 보러 저편으로 가 버렸다.
 
408
주인 마누라가 간 뒤에 장량이는 국향이의 손을 덥석 잡고 정욕에 불붙은 시뻘건 눈을 국향이의 얼굴 근처에 헤매었다.
 
409
"장 서방은 어떻게 여기를 왔소?"
 
410
"연 서방 녀석에게 경외로 내친 바 되어서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411
"죽는 한 있더라도 석다산으로 오마고 하지 않았소?"
 
412
"그게야 한때 입놀림이지요. 다시 연가 놈에게 들켰다가는 매 맞아 죽을 일을."
 
413
아아 이것이 진나라 사상이었던가? 사랑하는 이에게 철석같이 맹세하였던 것을 한때의 입놀림으로 돌려 버리니 남자의 한 마디 말이 천금과 같다는 말은 모두가 허언이던가?
 
414
"나는 고구려 승상의 아내요. 이 몸에는 승상의 둘째 자식이 현재 들어 있소. 그러니 장서방은 좋은 규수 얻어 드릴 테니 거기 장가드시오!"
 
415
"암캐는 싫어요."
 
416
"왜 암캐요? 한다 하는 고구려 색시를 중매해 주지."
 
417
"공주만한 이가 고구려에는 없읍디다. 모두 우그렁 바가지 같거나 선머슴 같은 것뿐이지…."
 
418
"만성을 호하는 대고구려에 왜 일색이 없겠소? 국향이 따위는 발꿈치에도 못 미칠 자가 수두룩하리다."
 
419
"아니올시다. 소인은 그저 공주님께 장가 들려고 전지신명께 맹세했읍니다."
 
420
"그 공주께야 지난 가을에 장가드셨지?"
 
421
"아니올시다. 손목 한 번 잡아 본 뿐이지…."
 
422
"입은? 볼은?
 
423
"볼 좀 맞추어 보고 입 한 번 맞추어 보고…."
 
424
"그만했으면 되지 않소?"
 
425
"아닙니다. 한자리에 벗고 누워서 살을 대야 합니다."
 
426
국향이는 내심 탄식하였다.
 
427
사내라는 동물은 왜 꼭 하필 여인과 동침을 하고야 만족하려 하는가?
 
428
동침을 하고야 아이도 생긴다 한다. 동침의 신비성과 기괴한 작용에 대하여 일종의 공포에 가까운 감상을 느끼며, 이러하니까 여인의 정조라는 것은 동 침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스러이 느끼며, 여인이 출가하여 한 사내의 혈통을 계승하는 자식을 낳은 이상은, 혈통의 순결성이란 것을 지켜야 할 것을 통절히 느꼈다.
 
429
"하여간 진나라 국향 공주는 부왕의 칙명으로 고구려 승상 댁에 출가한 몸이니까, 을지 승상 아닌 사람에게는 몸을 허락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장 서방은 적당한 색시를 골라서 장가드시오."
 
430
"아아 진나라 혈맥은 끊겼구나!"
 
431
"진나라 혈맥은 붕왕에게서 끊긴 셈이오. 오 제 삼십삽년으로 남조(南朝)의 혈맥은 사라졌소."
 
432
"공주님 살아 계셔도?"
 
433
"출가외인이라, 공주는 고구려 혈맥을 잇는 사람입니다. 공주를 빼내려 석다산으로 오리다던 장서방의 말을 곧이듣고, 신세 태산 같은 승상 댁을 배반하고 뛰쳐나온 국향이지만, 이 몸에 승상의 씨가 있는 동안은 승상의 부르실 날도 있을 겝니다. 이 몸에 고구려 만성이 한결같이 부모처럼 우러르는 을지 승상의 아내, 진나라 강아지(狗兒) 장 서방 같은 사람과 오래 상종할 신분이 아니니 물러 나가오! 내 이 댁 아주머니와 의논해서, 진나라에서 공주를 고구려에 준 대신, 이곡 색시를 하나 물색해 장서방께 드릴테니, 그 색시를 데려다가 잘 사오."
 
434
"공주님!"
 
435
"이제부터는 승상 부인이라 부르시오."
 
436
"승상부인! 승상부인! 진나라 공주가 고구려 승상 부인이란 웬말이십니까? 아아 진나라도망했구나!"
 
437
"망한 줄 이제야 알았소? 좌우간 한동안 이 댁에 기거하시오. 숙식비용은…."
 
438
"그 비용은 소인이 머슴살아 갚으오리다."
 
439
"그럼, 좋은 색시를 하나 골라 둘 테니…."
 
440
이리하여 장량이는 이 여막의 한 식객으로 묵어 있게 되었다.
 
441
이리하여 장량이는 손님도 아니요 하인도 아닌, 명색 분명치 못한 신분으로 그 여막에 숙식하고 있게 되었다.
 
442
그런데 주인 마누라는 장량이를 하인인 듯 막 부려 먹었다. 장량이는 또한 장량이로서, 아무리 부려 먹어도 탄하지 않고 예예 하며 성실하게 일을 보았다.
 
443
그러나 국향이로서 불안한 것은 일찍이 장량이가 밤중에 주인 마누라 방에 기어들었다가 쫓겨났다 하는 사실에 의하여, 또 그런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근심이었다.
 
444
이번에 장량이가 기어든다 하면, 그것을 결코 사십 줄의 주인 마누라 방이 아닐 것이다. 진나라에서부터 그리워 따라온 국향이가 한집에 있는 이상, 왜 하필 이를 버리고 노파의 방에 들랴!
 
445
"색시, 삼가세요! 저 되놈은 천하 음흉한 놈이니까ㅡ 색시 방에 기어들면 어떻게 해요?"
 
446
"한 번 겪지요. 처녀 아닌 이상에…."
 
447
"저런 소리 하다간 한 번 겪는걸."
 
448
"아주머니도, 염려 마세요. 저는 고구려 아낙입니다. 고구려 아낙은 제 몸을 보호할 만한 재주는 일찍부터 배워 두었답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아주머니나 주의하세요."
 
449
"내 방에 들었다가야 또 깔고 비벼 주지."
 
450
"깔고 비비다가 영감님 생각이 나면 어떻게 해요?"
 
451
"나는 그런 생각 다 잊은 사람이오. 색시나 잘 삼가시오."
 
452
사실 염치를 불구하고 암캐에게라도 덤벼들려는 장량이라, 신변은 보장할 수가 없었다. 부왕의 슬하에 있을 때, 여인으로서의 약간한 호신 무술을 익혀 둔 것이 있지만, 그 사이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느라고 통 버려 두었으 니, 이제는 호신할 자신이 없었다. 다만 마음으로만나는 고구려 아낙이거니 하고 버티고 있을 따름이었다.
 
453
이 벽촌의 여막은 겨울이 되면서는 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두 아낙과 장량이가 쓸쓸히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454
주인 마누라는 그동안 여러 번 국향이에게 한방에 거처하자고 하였으나,국향이는 '염려 마세요'의 한 마디로 거절하고, 불어 가는 배를 어루만지며 혼자서 단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455
해가 바뀌어 새해가 이르렀다.
 
456
그 새해 어떤 날, 국향이는 이 날따라 몹시 뒤숭숭하여, 저녁을 먹은 뒤에는 일찍이 자리하고 누웠다. 뱃속의 아이가 유난히 뛰놀아 몸도 적지 않게 불쾌하였다.
 
457
주인 마누라는 안방에서 잤다.
 
458
장량이는 이즈음 사귄 친구를 찾아 투전판에 나간 모양이다.
 
459
촛불까지 끄고 혼자 누워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고 있을 때에 문득 국향이의 방에 달린 부엌문이 뿌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460
평소에 몸단속을 굳게 하는 국향이는 더욱 몸단속을 굳히며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 동정을 엿들었다.
 
461
국향이의 방문이 삐걱 하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462
국향이는 그 문 열리는 소리로 장 서방이 틀림없이 없는 것을 직각하였다.
 
463
방 안으로 풍겨드는 마늘 냄새는 둘째 하고, 장 서방 밖에는 국향이 혼자 있는 줄 다 아는, 이 방에 밤중에 숨어들 사람이 없을 것이다.
 
464
진나라에서 고구려까지 만리 길을 뒤쫓아 와서, 연 서방에게 그런 욕을 보 고 경외에 내친 바 되어, 그래도 그냥 사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장서방의 경우를 생각하면 일변 측은하기도 하였다.
 
465
그러나 일변으로, 자기는 진나라 황녀요 저는 이름없는 한낱 초동에 지나지 못하거늘, 그래도 추근추근 뒤따르는 것은 또한 쾌씸하기 한량없는 것이었다. 더우기 고구려에 와서는 승상 부인으로 인처로 지위가 자리잡힌 나에게 그냥 전 생각을 계속한다니, 그 쾌씸한 마음보는 국향이에게는 한껏 밉게 보이기도 하였다.
 
466
'요놈, 네 두고 보자!' 국향이는 몸을 약간 움직여 자세를 바로 하고, 장차 이를 사변에 대처할 몸 위치를 준비하였다.
 
467
방 안에 들어온 괴한은,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은, 발소리를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468
성큼성큼 국향이에게로 두어 발자국 왔다.
 
469
그리고는 손을 놀려 국향이의 몸이 어디즘 있는지 짐작을 보고는, 한 발을 국향이의 몸 건너쪽으로 넘겨 짚고 국향이를 가로 타고나서는 차차 주저앉기 시작하였다.
 
470
괴한의 몸이 국향이에게 차차 덧얹히려 할 때에, 제 몸을 준비하고 있던 국향이는 몸을 벼락같이 일으키며, 괴한의 팔을 잡고 두 발을 들어 괴한의 배를 차며 한 번 나꾸어 찼다.
 
471
그 순간 괴한의 몸집은 한 번 공중으로 떴다가 영창을 짓부스며 뜰에 나가 떨어졌다.
 
472
만약 국향이로서 조금만 힘을 덜 들였더면, 괴한은 문턱에 걸려 허리가 부러졌을 것이다.
 
473
철썩! 하고 뜰 빙판에 나가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에, 내실에서 자고 있던 주인 마누라가 놀라서 일어났다.
 
474
"이게 무슨 소리냐?"
 
475
옷을 주섬거리며 뜰로 뛰쳐나왔다. 나와서는 거기 장량이가 기다랗게 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476
"이 되놈! 뜰에서 왜 자고 있니?"
 
477
"색시, 어디 다친 데 없소?
 
478
"다치긴 왜 다쳐요?"
 
479
"이 되놈이 색시방에 기어들지 않았소? 음흉한 놈이더니…."
 
480
"되놈이요? 문에 들어오기 집에서 뜰로 내쳤지요. 그게 되놈 장 서방입니 까?"
 
481
"색시 방 영창이 다 부러지고 했으니, 태중의 몸 어디 다치지나 않았소?"
 
482
국향이는 더듬더듬 촛대에 촛불을 켜 놓았다. 그러는 동안 기절에서 겨우 정신이 든 장량이를, 주인 마누라는 붙들어서 방 안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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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문덕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