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或이 第五倫려 무루 公도 아뎟 미 잇가
5
對 曰 昔에 人이 有與吾千里馬者ᅵ어늘 吾雖不受호나
6
답호 아래 나 됴 줄 사미 잇거 내 비록 받디 아니야도
7
每三公이 有所選舉ᅵ어든 心不能忘호 而亦終不用也며
8
三公이 사 거쳔야 저기어든 매 닛디 몯호 내내 디 아니호라
10
내 의 아리 엿거늘 열 번곰 가 보
11
退而安寢고 吾子ᅵ 有疾이어늘 雖不省視나 而竟夕不眠호니
12
믈러와 편히 자고 내 아리 엿거늘 비록 가 보디 아니나 새도록 자디 몯호니
14
이러 이리 엇디 아뎟 미 업다 니리오
15
○ 劉寬이 雖居倉卒나 未嘗疾言遽色더니
16
劉寬이 해 비록 밧분 저기라도 말 리 아니며 과 곳 아니더니
17
夫人이 欲試寬令恚야 伺當朝會야 裝嚴已訖이어늘
18
夫人이 寬을 여곰 로커든 보리라 야 朝會 저글 기들워 관 무믈 다여 잇거늘
19
使侍婢로 奉肉羹야 翻汚朝服고 婢ᅵ 遽收之러니
20
뫼션 겨집으로 여 고깃 羹을 드러가다가 관 옷새 업텨 더러이고 믄득 담거늘
21
寬이 神色不異야 乃徐言 曰 羹爛汝手乎아 니 其性度ᅵ 如此더라
22
寬이 고 달이 아니야 날회여 닐오 羹애 네 소니 데어냐 니 그 性과 도이 이러 더라
23
○ 張湛이 矜嚴好禮야 動止有則야 居處幽室호
24
張湛이 엄고 례도 려 거이 법다와 기픈 지븨 이실 제도
25
必自脩整며 雖遇妻子야도 若嚴君焉더니
26
반시 스싀로 모믈 닷가 졔히 며 비록 쳐ᅵ라도 졉호믈 존엄 얼운티 더라
27
及在鄕黨야 詳言正色대 三輔ᅵ 以爲儀表니라
28
이실 제도 말미 셔고 다이 니 三輔ᄉ 닷 사히 버블 삼더라
29
建武初애 爲左馮翊이러니 告歸平陵야 望寺門而歩대
30
建武 시져레 左馮翊이란 벼슬 여 잇더니 말믜야 본 平陵이랏 가셔 구읫 문을 라보고 걷거
31
主簿ᅵ 進 曰 明府 位尊德重니 不宜自輕이니다
32
主簿ᅵ 낫라 닐오 明府 벼스리 놉고 덕이 시니 모 가여이 몯실 거시다 여
34
湛이 닐오 禮예 구읫 문의 디나갈 제 브리며 님금 보고 구버 디내라 엿고
36
孔子ᅵ 겨셔 고디식고 온히 더시니
38
父母 사시던 나라 례도 호미 맛니 엇디 가여이 다 니뇨
39
○ 楊震의 所舉荊州茂才王密이 爲昌邑令이라
40
揚震이 거쳔 荊州 어디다 王密이 昌邑이란 고을 令 슬 엿더니
43
震이 曰 故人 知君이어늘 君不知故人 何也오
44
震이 닐오 나 그 알어늘 그 나 몰로 엇디오
46
密이 닐오 바미라 알 리 업스니라 여늘
47
震이 曰 天知神知吾知子知어니 何謂無知오 密이 愧而去니라
48
震이 닐오 하히 알오 귀신이 알오 내 알오 그 알어니 엇디 알 리 업다 니료 여 密이 붓그려 가니라
49
○ 茅容이 與等輩로 避雨樹下 衆皆夷踞相對어늘
50
茅容이 뉴엣 사과 비 피야 나못 아래 드럿더니 모 사 다 줏구려 서르 마조 안자 잇거늘
53
郭林宗이 行見之而奇其異야 遂與共言고 因請寓宿다
54
郭林宗이 디나가다가 보고 게셔 다 주늘 긔이히 너겨 더브러 말여 보고 인여 제 지븨 자리 비러 자더니
55
旦日애 容이 殺鷄爲饌이어늘 林宗이 謂爲己設이러니
56
이튼날 아 容이 자바 차반늘 어 林宗이 저를 위여 니라 너겻더니
58
이고 제 어미 머기고 저 소로 손과 밥 먹거늘
59
林宗이 起야 拜之 曰 卿 賢乎哉ᄂ뎌 因勸令學야 卒以成德니라
60
林宗이 니러 절고 닐오 그듸 어딘뎌 고 인야 글 호라 권니 내애 어딘 사미 되니라
62
陶侃이 廣州ᄉ 고올 刺史ᅵ란 벼슬 엿더니 골 이셔 일 업슨 저기어든
64
믄득 아 벽 일을 손 드러 집 밧긔 옴기고 나조 도로 드려 집 안해 옴기더니
67
吾ᅵ 方致力中原노니 過爾優逸이면 恐不堪事노라 니
68
내 보야호로 中原 히믈 드려 도로 앗고져 노니 너모 편안히 놀면 이를 이긔여 디 몯가 저허 노라 니
70
그 닐와다 힘 브즈런호미 다 이 더라
73
侃이 性聦敏야 勤於吏職며 恭而近禮라 愛好人倫더니
74
侃의 본이 고 민달야 소을 브즈러니 며 온호 례법에 마자 人倫엣 이를 앗겨 즐겨더라
75
終日歛膝危坐야 閫外多事千緒萬端을 罔有遺漏며
76
져므도록 무루플 뎝수겨 러 안자셔 군문에 하나한 쳔만 가짓 이를 遺漏티 아니며
77
遠近書疏를 莫不手答호 筆翰如流야 未嘗壅滯며
78
이러뎌러셔 온 글워를 다 손 답호 붇귿티 흐르 시 야 머믈우디 아니며
80
먼 듸셔 온 사믈 즉재 졉야 문늬 머므런 소니 업더라
81
常語人 曰 大禹 聖人이샤 乃惜寸陰시니
82
해 사려 닐오 大禹 聖人이샤 치 만 디나갈 저글 앗겨 노디 아니시니
84
햇 사믄 만 디날 이도 앗길 거시니
85
豈可逸遊荒醉야 生無益於時며 死無聞於後ᅵ리오 是自棄也ᅵ라 고
86
엇디 편안히 놀며 간대로 술 야 사라 이셔도 시절의 더은 일 업스며 주근 후에도 일리 업게 리오 이 제 모믈 제 리논 디라 고
88
모 아랫 관원이 부야 놀오 일 아니거든
89
乃命取其酒器蒱博之具야 悉投之于江며 吏將則加鞭扑고 曰
90
제의 술 먹던 그릇과 저희 두던 뉵 긔흘 아 므레 드리티며 아젼과 군히 그리 더니란 티고 닐오
91
樗蒱者 牧猪奴戲耳오 老莊浮華 非先王之法言이라 不可行也ᅵ니
92
뉵 긔란 거슨 돋 치 노 노샛 이리라 老聃과 莊周의 부도 이른 녯 어딘 님금의 법다온 말이 아니라 디 아니 거시니
93
君子 當正其衣冠며 攝其威儀언 何有亂頭養望야 自謂弘達耶ᅵ리오
94
君子 衣冠을 히 며 威儀를 려 거시니 엇디 머리 헏틀오고 어디다 요믈 길워셔 어위크고 달호라 리오
95
○ 王勃와 楊烱과 盧照鄰과 駱賓王이 皆有文名이라 謂之四傑이라 더니
96
王勃와 楊烱과 盧照隣과 駱賓王과 네 사미 다 글 다 소 나 네 호걸이라 니더니
98
裴行儉이 닐오 기르 크게 도욀 사 도국과 슬거오미 몬졔오 글조 후엣 이리니
99
勃等 雖有文才나 而浮躁淺露니 豈享爵祿之器耶ᅵ리오
100
이 사히 비록 글 죄 이셔도 긔이 고 엳타오니 엇디 벼스를 누릴 그르시리오
101
楊子 沈靜니 應得令長이어니와 餘得令終이 爲幸니라
102
이 에 楊烱이 심팀고 안니 令長 스 려니와 그 나 사 이대 주구미 쉽디 몯니라 더니
103
其後에 勃 溺南海고 照鄰 投頴水고 賓王 被誅고
104
후에 勃 南海예 디여 죽고 照隣 潁水에 여드러 죽고 賓王 죄 니버 죽고
106
烱은 盈川ᄉ 고올 令이란 벼슬 여 주그니 다 行儉의 닐온 말 더라
108
孔戡이 올 일 기예 즐기 며 탐 야
109
不顧前後고 於利與祿야 則畏避退怯호 如懦夫然더라
110
앏뒤 도라보디 아니야 고 利와 祿과애 저허 피야 믈러가 섭온 사 더라
111
○ 柳公綽이 居外藩 其子ᅵ 每入境이어든 郡邑이 未嘗知더니
112
柳公綽이 졀도 여 이실 제 제 아리 그 디에 드러도 각 고올히 아디 몯더니
113
旣至야 每出入에 常於戟門外예 下馬며 呼幕賓호 爲丈야
114
게 니르러도 나들 저긔 살문 밧셔 브리며 겟 관원 블로 얼우신니라 야
116
다 저를 받게 고 게 가 우 우 말믈 친친히 디 몯게 더라
117
○ 柳仲郢이 以禮律身야 居家애 無事ᅵ라두 亦端坐拱手며 出内齋호 未嘗不束帶더라
118
柳仲郢이 례도앳 일로 모 가져 녀 지븨 이셔 일 업슨 제도 다이 안자 곳고 안의 날 저기어든 아니 저기 업스며
119
三爲大鎭호 廐無良馬며 衣不熏香며 公退야 必讀書야 手不釋卷더라
120
세 번 졀도 호 오의 됴 리 업스며 옷 약내 내디 아니며 파고 믈러와 의식 그 닐거 소내 을 노티 아니더라
122
가무네 로 법에 벼슬 여셔 祥瑞로온 거슬 님금 엳디 말며
123
不度僧道며 不貸贓吏法며 凡理藩府호
124
과 도류와 도텹 여 주디 말며 니 죄 줄 법을 누기디 말며 믈읫 외 다료
125
急於濟貧卹孤며 有水旱이어든 必先期假貸며
126
가난니 졔도며 어버 업슨 사 에옛비 너규믈 시급히 며 운이 므리 만커나 어나 거든 미리 의게 머글 거슬 이며
127
軍士호 必精豐며 逋租 必貰免며 舘傳을 必增飾며
128
군의 머글 곡식을 고애 녀허 두 조코 만케 며 몯 갑파 잇 환자 받디 말며 손 드 집과 역을 다 됴히 며 두며
129
宴賓犒軍을 必華盛而交代之際예 食儲帑藏이 必盈溢於始至며
130
손 이바드며 군 머규믈 다 됴히 호 벼슬 라 교 뎐 저긔 고애 잇 거시 고 나모미 처 올 적두곤 더으게 며
131
境内예 有孤貧衣纓家女及筓者ᅵ어든 皆爲選婿야
132
그 고을 디 안해 어버 업고 가난 반의 이 나 니 잇거든 다 사회 오
134
녹 그믈 주어 결속야 셔 게 더라
135
○ 柳玭이 曰 王相國애 涯方居相位야 掌利權이러니
136
柳玭이 닐오 王涯라 相國이 뵈야호로 도야 나라 쳔 만 權을 자밧더니
137
竇氏女ᅵ 歸야 請 曰 玉工이라 貨一釵니 奇巧ᅵ라 須七十萬錢이리다
138
竇가 며느리 되옛 리 뵈라 와셔 야 닐오 옥바치 빈혀 니 교야 모로매 돈 칠십만 바도려 다
139
王 曰 七十萬錢 我一月俸金耳니 豈於女에 惜이리오
140
王涯 닐우 돈 칠십만은 내 녹 그미니 엇디 네게 앗기리오마
141
但一釵七十萬이 此ᅵ 妖物也ᅵ라 必與禍相隨라 대
142
빈혀에 돈 칠십만이 니 이 요괴로 거시라 이런 거슨 모로매 화란이 좃차 잇니라 여
145
數月에 女ᅵ 自婚姻會로 歸야 告王 曰
146
두 마 리 婚姻 몯지예 녀러 와셔 王涯 더브러 닐오
147
前時釵ᅵ 爲馮外郞妻의 首飾矣라 니 乃馮球也ᅵ라
148
아래 니던 그 빈혀 外郞 슬 여 인 馮球의 겨집비 사 머리예 고자 잇더다 여
149
王이 嘆 曰 馮이 爲郞吏야 妻之首飾이 有七十萬錢니 其可久乎아
150
王涯 탄야 닐오 馮球ᅵ 가온 벼슬 야셔 겨지븨 머리예 민 거시 돈 칠십만이 거니 엇디 오라리오 더니
152
馮球ᅵ 賈餗이랏 의 지븨 드나 손이 되여 친히 더니
154
賈餗의 이 외여 사 주기며 사며 유셔 거
155
馮이 召而勖之더니 未浹旬야셔 馮이 晨謁賈ᅵ어늘
156
馮球ᅵ 블러 계더니 열흐리 몯여셔 馮球ᅵ 새배 賈餗이 뵈라 갓거
157
有二靑衣捧地黄酒야 出飮之대 食頃而終커늘
158
두 아 이 地黃오로 비즌 수리라 고 내여다가 머기니 밥 머글 더든 여셔 죽거
160
賈餗이 슬허 눈므를 내요 내내 주근 연유를 모니라
162
이듬예 王涯와 賈餗이 다 화란 만나 주그니라 슬프다
164
王涯 보옛 긔특 거슬 요괴로 거시라 니
165
信知言矣나 徒도 知物之妖而不知恩權隆赫之妖ᅵ 甚於物耶뎌
166
진실로 마리 아라 도다 커니와 갓 보옛 거시 요괴로 주 알오 님금 괴이여 유셰 딛고 빗나미 보두곤 더 요괴로오 아디 몯두다
167
馮이 以卑位로 貪寶貨야 已不能正其家며
168
馮球 가온 벼슬 야셔 보옛 거슬 탐야 제 그 지블 히 몯고
170
제 셤기 사게 다가 제 몸도 보젼티 몯니
171
斯亦不足言矣어니와 賈之臧獲이 害門客于牆廡之間호 而不知니
172
이 죡히 니르디 몯리어니와 賈餗은 제 이 지븨 드나 손을 집 담 이에셔 주규 아디 몯거니
174
내내 부귀를 고져 가히 득랴
176
이 비록 이리라도 계 되요 여러 가지로다
177
○ 王文正公이 發解와 南省과 廷試예 皆爲首冠이러니
178
文正公 王曾이 급뎨 제 시와 회시와 뎐시를 다 원 얏더니
179
或이 戲之 曰 狀元로 試三塲니 一生喫着이 不盡이로다
180
或이 부야 닐오 三場애 다 원 니 一生애 머그며 니블 이른 니르 디 몯리로다 야
181
公이 正色 曰 曾 平生之志ᅵ 不在溫飽니라
182
王曾이 正色고 닐오 내의 平生 든 더이 닙고 블오매 잇디 아니니라
184
文正公 范仲淹이 져머셔브터 큰 졀가 이셔
185
其於富貴貧賤과 毀譽歡戚애 不一動其心고
186
가멸며 귀며 가난며 쳔며 나라며 기리며 깃븐 이리며 측 이레 일도 움즉디 아니야
188
녜 애라 天下애 들 둣더니 닐오
189
士 當先天下之憂而憂고 後天下之樂而樂也ᅵ라 니
190
士 시름도 일란 天下앳 사믜게셔 몬져 시름고 즐거온 일란 天下앳 사믜게셔 후에 즐길 거시라 더라
192
우흿 사 셤기며 사 졉기 티 믿비 야
193
不擇利害야 爲趨捨고 其有所爲어든 必盡其方고 曰
194
내게 리 일와 해로온 이를 야 며 말며 디 아니고 욜 이리 잇거든 모로매 그 모해 이를 다고 닐오
195
爲之自我者 當如是어니와 其成與否ᅵ 有不在我者
196
날로브터 욜 이른 이러시 리어니와 그 일며 몯 일우미 내게 잇디 아니 이른
198
비록 현이샤도 긔필티 몯시니 내 엇디 구챠히 리오 더라
200
司馬溫公이 녜 닐오 내 게셔 더은 이리 업거니와
202
오직 平生애 욘 이리 더브러 몯 닐올 이리 업소라 더라
203
○ 管寧이 嘗坐一木榻야 積五十餘年이로
204
管寧이 해 나모의 안자셔 쉬 나믄 로
205
未嘗箕股더니 其榻上當膝處ᅵ 皆穿니라
206
무롭 셰여 안 아니니 우희 무롭 다핫던 히 다 들워디옛더라
207
○ 呂正獻公이 自少로 講學호 卽以治心養性로 爲本더니
208
正獻公 呂公著ᅵ 져믄 제브터 글 호 다리며 본 길우믈 읏듬으로 더니
210
아름뎟 즐겨 고져 이리 져그며 음식을 됴히 아니며 말와 과 곳 아니며
211
無窘歩며 無惰容며 凡嬉笑俚近之語를 未嘗出諸口며
212
뵈앗 거르미 업스며 게으른 업스며 믈읫 희앳 우과 야쇽 말믈 입 밧긔 내디 아니며
213
於世利紛華聲伎游宴로 以至於博奕奇玩애 淡然無所好더라
214
셰가 리 일와 어즈러이 빗난 일와 며 이바디며 바독 긔 됴 구도 거세 다 도히 너겨 즐길 거시 업더라
215
○ 明道先生이 終日端坐시니 如泥塑人샤
216
明道先生이 녜 져므도록 다이 안자 겨실 제 고로 사 샤
218
사 졉실 제 자내 모미 젼 얼읜 유화 긔운이러라
219
○ 明道先生이 作字時예 甚敬더시니 嘗謂人 曰
220
明道先生이 글 스실 저긔 조심더시니 사려 니샤
222
글 됴케 고져 주리 아니라 이리 호미 자보 호미니라
223
○ 劉忠定公이 見溫公야 問盡心行己之要ᅵ 可以終身行之者대
224
忠定公 劉安世 司馬溫公을 보아 무로 믈 다며 몸 가져 뇨매 조로온 이리 므스 이리 죽도록 염즉니오 (영인본에는 ‘ᄒ뇨매’로 오기)
228
劉公이 무로 호매 므스거슬 몬져 료
230
溫公이 니샤 거즛말 아니호모로브터 비르서 거시라
232
劉公이 처믜 뎌 말믈 듣고 쉬이 너겨 더니
233
及退而自檃栝日之所行과 與凡所言니 自相掣肘矛盾者ᅵ 多矣러니
234
믈러와 날마다 일와 믈읫 니 말와 견줍 고티힐훠 보니 븓들여 서르 어긘 이리 하더니
235
力行七年而後에 成야 自此로 言行이 一致며 表裏相應야 遇事坦然야 常有餘裕더라
236
닐굽 힘서 후에 일워 말와 일와 가지오 안팟기 서르 마자 맛난 일마다 훤츨히 유여더라
238
劉公이 손을 졉여셔 말믈 이슥히 호
239
體無欹側며 肩背竦直며 身不少動며 至手足야도 亦不移더라
240
모 기우리디 아니며 엇게와 이 고즉며 모 죠고매도 움즈기디 아니며 손발도 옴기디 아니더라
241
○ 徐積仲車ᅵ 初從安定胡先生야 學호
242
徐積의 仲車ᅵ니 처믜 安定 胡先生 가 글 호
243
潜心力行야 不復仕進고 其學이 以至誠로 爲本야 事母至孝더니
244
믈 가디여 힘서 야 벼슬 아니고 글 호 지으로 읏드믈 사마 어미 셤규믈 지극이 효도더니
245
自言初見安定先生고 退야 頭容을 少偏다니
246
자내 닐오 처 胡先生 뵈고 믈러날 제 머리톄를 져기 기우시 호니
247
安定이 忽厲聲云頭容 直也 ᅵ라 야시
248
先生이 믄득 소리를 이 야 니샤 머릿톄 곧게 가질 거시라 야시
249
某ᅵ 因自思不獨頭容이 直이라 心亦要直也ᅵ라 야
250
내 글로 인야셔 각호니 갓 머릿톄를 곧게 니 아니라 도 곧게 거시로다 야
251
自此로 不敢有邪心호라 卒커늘 謚節孝先生니라
252
일로브터 샤곡 믈 먹디 아니호라 더니 죽거시늘 시호를 節孝先生이라 니라
253
○ 文中子之服 儉以潔며 無長物焉더니
254
文中子ᅵ 오 검박히 호 조케 며 나 거시 업더니
256
깁이며 비단을 지븨 드리디 아니고 닐오
257
君子 非黄白이어든 不御ᅵ니 婦人則有靑碧이니라
258
君子 누른 것과 흰 것과 아니어든 닙디 아니홀디니 부곳 프른 거슬 닙니라
259
○ 柳玭이 曰 高侍郞兄弟三人이 倶居淸列호
260
柳玭이 닐오 高侍郞 뎨 세히 다 조 벼슬 야 이쇼
261
非速客이어든 不二羹胾며 夕食엔 齕蔔匏而已리라
262
손을 티 아니 저기어든 과 고기와 두 가짓 거슬 초 아니고 나죄븨 무와 박만 야 먹더라
263
○ 李文靖公이 治居第於封丘門外호 廳事前이 僅容旋馬ᅵ러니
264
文靖公 李沆이 살 지블 封丘門 밧 지 대 알피 계우 도라셜 만 더니
267
公이 笑 曰 居第 當傳子孫이니 此ᅵ 爲宰輔廳事댄 誠隘이어니와
268
公이 웃고 닐우 살 지븐 손의게 뎐 거시니 이 의 집 대으론 진실로 좁거니와
270
大祝 奉禮만 사믜 대이 도면 너모 너니라 더라
271
○ 張文節公이 爲宰相야 自奉이 如河陽掌書記時러니
272
文節公 張知白이 외여셔 자내 몸 받티유믈 아래 하 고올 掌書記ᄉ 벼슬 여 이신 적티 더니
276
이제 公이 록 져기 아니 샤 몸 바티유믈 이리 사오나이 시니
277
雖自淸約이라두 外人이 頗有公孫布被之譏니 公이 宜少從衆라
278
비록 렴코 간략호라 셔도 밧긧 사 모 녜 公孫弘이란 의 뵈로 니블 다 야 긔홈티 리 잇니 公이 져기 티 라
279
公이 嘆 曰 吾今日之俸이 雖舉家錦衣玉食인 何患不能이리오마
280
公이 탄야 닐오 내 이제 록이 비록 집 안 사미 다 금의를 니브며 귀 차바 머근 엇디 몯가 분별리오마
281
顧人之常情이 由儉入奢 易고 由奢入儉 難니
282
오직 사믜 미 검박다가 샤치예 드루 쉽고 샤치다가 검박애 드루 어려우니
283
吾今日之俸이 豈能常有ᅵ며 身豈能常存이리오
284
내의 이젯 록이 엇디 이시며 내 모민 엇디 사라시리오
285
一旦애 異於今日이면 家人이 習奢已久ᅵ라 不能頓儉야 必至失所리니
286
아 이제와 달이 도의면 지븻 사미 샤치호 환 디 오라 믄득 검박디 몯야 가난야 실소케 도리니
288
엇디 내 벼슬 여신 저기나 벼슬 업슨 저기나 사라 이신 저기나 주근 저기나 가지로 홈만 리오
289
○ 溫公이 曰 先公이 爲群牧判官야셔 客至어든 未嘗不置酒호
290
司馬溫公이 니샤 우리 아비 아 群牧判官 벼슬 여 겨신 졔 손이 오나 일즉 잔치 아니신 저기 업수
291
或三行或五行이오 不過七行며 酒沽於市며
292
혹 세 번식 돌이며 혹 다 번식 돌여 닐굽 번의 너므디 아니며 수를 져제 가 사고
293
果止梨栗棗柹며 肴止於脯醢菜羹며 器用甆漆호
294
과시를 와 밤과 대초와 감과 고 안쥬를 포육과 젓과 호로 과 고 그르슨 사긔와 옷 칠 것
296
그 시졀 됴히 다 그리 호모로 사미 서르 외다 아니니
298
몯지 조 례도 브즈런고 차반 사오나오 은 후더니
300
요이 됴의 지븨셔 술이 대궐의셔 빗시 아니거나 (영인본에는 ‘됴ᄉ’로 오기)
302
과실이 먼 셔 온 귀 거시 아니어나 차반이 여러 가지 아니어나
303
器皿이 非滿案이어든 不敢會賓友ᅵ오 常數日營聚然後에 敢發書니
304
그르시 의 기 버리디 아니면 손을 뫼호디 아니고 여러 날 차반을 어더 뫼혼 후에 손 글워를 내니 (영인본에는 ‘치반’으로 오기)
305
苟或不然이어든 人爭非之야 以爲鄙吝이라니 故로 不隨俗奢靡者ᅵ 鮮矣니
306
그리옷 아니여든 미 모다 외다 야 더럽다 셰쇽의 이를 조차 샤치티 아니리 져그니
307
嗟乎ᅵ라 風俗頹弊l 如是니 居位者ᅵ 雖不能禁이나 忍助之乎아
308
차홉다 風俗의 사오나이 도유미 이러니 벼슬 여 잇 사미 비록 금티 몯나 마 도아 랴
309
○ 溫公이 曰 吾家ᅵ 本寒族이라 世以淸白相承고
310
溫公이 니샤 우리 지비 본 가난 가문이라 부조로 호믈 니 오고
311
吾性이 不喜華靡라 自爲乳兒時로 長者ᅵ 加以金銀華美之服이어든 輒羞赧야 棄去之다니
312
내 이 호화코 빗난 이 즐기디 아니호모로 아 시졀브터 일우니 금은이어나 빗난 오슬 모매 니펴든 믄득 붓려 내여 리다니
313
年二十에 忝科名야 聞喜宴에 獨不戴花다니
314
나히 스믈힌 제 급뎨야 나라셔 이바디여 머기실 제 내 혼자 고 아니 고즈니
315
同年이 曰 君賜ᅵ라 不可違也ᅵ라 乃簪一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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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年 벋히 닐오 님그미 주신 거시라 마디 몯리라 곳 나 고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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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오 치옴 리올 만 며 바블 브 만 호 부러 더러오며
319
亦不敢服垢弊야 以矯俗干名이오 但順吾性而已로라
320
헌 옷 니버 시쇽을 고텨 일홈 어두 아니고 다믄 내 에 마즐 만 노라 시더라 (영인본에는 ‘아나고’로 오기)
321
○ 汪信民이 嘗言호 人이 常咬得菜根 則百事 可做ᅵ라 여늘
322
汪信民이 닐오 사미 휘만 머그며도 편안히 너기면 잡미 업서 온 가짓 이 다 일오리라 야
324
胡康侯ᅵ 이 말믈 듣고 손 고 차탄야 기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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