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왕이 이 세상에 끼치고 간 자녀는 적출(嫡出)이 팔남 이녀요, 서출이 십남 이녀—합계 스물 두 분이다. 대행왕(세상 떠난 임금—大行王)의 뜻을 이어서 毗아드님(文宗)이 위에 올랐다.
3
재궁(梓宮)이 아직 빈전(殯殿)인 휘덕전(煇德殿)에 있을 동안 신왕은 한 시 한 때도 재궁의 곁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승하한 것이 이월 열 이레—아직도 꽤 추운 절기요, 더욱 이 밤에는 화기(火氣)도 없는 넓다란 빈전엔 건강한 몸이라도 추위가 뼈까지 스며들며, 몸이 오그라지도록 추웠다. 넓 다래서 한데 같은 빈전에 찬바람이 자유로 왔다 갔다 하였다.
4
바깥은 볕이나 들었지만 침침하고 막을 데 없는 빈전 안은 밖보다 훨씬 더 추웠다. 시종 드는 내관들은 속에 두꺼운 옷을 겹쳐 입어서 이 냉기를 얼마만큼 막고 그리고도 우들우들 떨고 빈전 밖으로 심부름이라도 나가면 할 수 있는 대로 거기서 오래 시간을 보내서 빈전에 들어오기를 피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일시적으로 남의 눈이나 속일 처지가 아 닌 신왕은 한결같이 부왕의 영해를 지켰다.
5
본시 약질인데다가 오래 부왕의 병석을 모셨는지라 건강상태는 말할 여지도 없었다. 본시 수염이 많은 데다가 그 동안 소세도 안 하여 때는 낄 대로 끼고 손톱은 돋을 대로 돋고 옷은 구기고 덜미고—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6
영해(靈骸)를 영능(英陵)에 안장(安葬)하기 위하여 비로소 몸을 기동하였다.
7
몸을 일으키다가 눈이 아뜩하여 앞이 캄캄해졌다. 무엇을 붙들으려고 양손을 휘저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서 허공만 어루만졌다.
8
내관이 황급히 달려와서 부액을 하였지만 왕은 부액 받은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들으려고 힘썼지만 그 반대로 머리는 무릎에 묻히고 몸은 내관의 품에 쓰러졌다.
9
모두 당황하였다. 인산(因山)에 수행하려고 전정에 모였던 왕족이며 삼공 이하 문무 제신이며 백관들도 모두 어쩔 바를 모르고 설레대었다.
10
대군렬(大君列)에 섞여 있던 수양이 먼저 뛰쳐나왔다. 두서를 차리지를 못해서 빙빙 도는 중관들을, 두 사람을 불러서 왕을 부축케 하고, 돈피 이불로 옥체를 싸게 하고, 일변 따뜻한 꿀물(밀수)을 가져오게 하고 스스로는 왕의 수족을 주무르고 불피운 화루를 몇 개 가져오게 하여 왕에게서 한 반 쯤 되는 곳에 둘러놓게 하였다.
11
잠시 뒤에 왕은 정신이 들었다. 먼저 당신의 곁에서 팔다리를 주무르던 수양에게로 눈이 향하였다. 훈훈한 화로의 온기로써 화로의 존재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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