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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회와 회견한 이튿날 수양은 신 숙주를 숙주의 집으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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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安平)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한 명회와는 단지 그 꾀—지혜를 의논하였다. 유문(儒門)의 출신인 신 숙주와는 의리와 도덕이 겹친 끼를 의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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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거꾸로 신으며 뛰어 나오는 신숙주와 하게 조용한 산정(山亭)으로 돌아갔다. 먼저 한헌의 인사 한두 마디가 지나간 뒤에 수양은 한 무릎 다가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뜻을 알아챈 숙주는 마주 다가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수양은 숙주의 양손을 자기의 양손으로 꽉 잡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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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燕京)을 다녀왔으면 인제는 서장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양은 그냥 숙주를 「서장」이라 부르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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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 집현전이나 성균관(成均館)소년들 새에 어떤 말이 돌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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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는 대답치 않았다. 난처한 질문이었다. 바른대로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또한 감추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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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의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나 있었다. 기쁨을 나타내는 미소도 아니요 우습다는 미소도 아니요 또는 고소(苦笑)도 아니요—호기심으로 기다린다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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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는 주저하다가 매우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말을 더듬 으며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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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소년들의 말을 무엇을 괘념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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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바른대로 알려달란 말이 아닌가? 내가 그런데 괘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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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사람들의 말이 나으리께서 대보(大寶—옥새)를 엿보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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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의 얼굴에 나타났던 미소는 한층 더 농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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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울 세. 자네 입에서 내 뜻에 맞을 거짓말이 나올 줄 알았더니 들은 대로 말해 주니 참으로 고마울세.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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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이야 나으리의 뜻을 모르오리까? 다시 안 물으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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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은 자기의 손에 잡혀 있는 숙주의 양손을 마치 장난하듯 주물면서 말소리를 더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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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의 일이 걱정일쎄그려. 저를 어쩌나? 절재의 심술로 자기 혼자 죄를 쓰겠나? 안평대군을 물고 들어갈겔세 그려. 그 아니 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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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는 얼른 수양의 낯을 한번 쳐다보았다. 숙주의 생각으로는 안평이고 누구고 간에 이번의 숙청에 방해되는 사람은 일소하여 버리고 싶었다. 조정의 인심이라는 것을 잘 아는 숙주는 지금 어린 왕이 위에 임한 이 기회에 한몫 보려는 사람이 비단, 모, 모, 뿐이 아님을 짐작한다. 수양이라 하는 튼튼한 기둥이 버티고 있기에 표면소동이 못 일어나지 만약 수양이나 한사람이던가, 혹은 수양이 엄중히 감시하고 있지 않으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울근불근 덤벼들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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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왕이고 그 위에 또 한 아직 총각이니 이 왕의 신상에 여차 하는 일이 생기는 날에는 숙행(叔行)이 당연히 나설 차례라 좀 눈치가 들은 어떤 숙(淑)들은 딴 궁리 수군거리는 형적이 보였다. 어느 숙에게는 누가 문객으로—누구에게는 누구가 문객으로 필요 이상 자주 출입하는 형적이 뻔하였다. 안평을 찾는 사람들은 이 나라의 정승들이라 가장 형세가 급박할 뿐이지 안평이 없어지면 그 뒤가 또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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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양의 그 명민한 관찰안도, 동기간의 문제에는 무디게 되는 모양으로 수양의 생각은 지금 안평은(본시 주착없는 사람이라) 뒤에서 충돌하는 무리들 때문에 놀림감에 놀아나지 뒤에서 딴 사람의 충동만 없으면 잠잠하여 버릴 것이고 태평 무사한 세월이 되리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수양이 지금 말하는 바「이 아니 딱한가」하는 것은 안평까지 걸려들 것을 근심하는 뜻에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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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마음이 이러하거늘 동생은 사사에 형님을 배반하는 행위만 하는가? 일전에도 수양과 조용히 의논을 하던 때에 또 이 문제가 난 일이 있었다. 그 때 숙주는 수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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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는 수(首)와 종(從)이 있압고 수범이 있아오면 종범은 면사(免死)를 하게 되는 게라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면사키 위해서 수범을 반드시 불러 넣으리다. 대군은 면치 못할 줄로 생각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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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더니 수양은 질색을 하며 엄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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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양의 심경을 잘 아는지라 숙주는 수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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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안평대군을 온전히 율론하오면 국인이 승복치 않을 터이오니, 논죄하는 마당에서 어명을 받자와 가까운 어느 섬에 찬배를 보냈다가 국인들이 잊어버린 때쯤 해서 소환(召還)하오시도록 하오면 최상책일까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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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일을 결행하는 이상에는 이편에서 먼저 손 쓰야지 저편이 먼저 손쓰는 날에는 되려 뒤집혀 잡혀 이편이 패배를 할 것이니 이편에서 먼저 손쓰되 중십일(重十日)인 시월 열흘날로 기일을 정하고, 결행하는 세목 절차에 관해서는 한 명회에게 꾀를 꾸미게 하게 하고, 지금의 정부에서 뽑아 쓸 사람과 제거해 버릴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신 숙주에게 맡기기로 하고, 장사패 지휘에는 홍윤성(洪允成)이 담당하기로 하고, —이렇게 대게 담임 사항까지도 내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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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차 결행할 일이 어떤 일인지며 또 그 결행한 날짜가 어느 날인지는 두드러진 몇몇 사람 밖에는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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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수양의 놀라운 지배력과 감화력이 그들에게 작용되어 수양의 지휘에는 무조건으로 복종하려는 사상만이 굳게 뿌리 박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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