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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대회(Berlin Olympic大會) 손기정(孫基禎) # 그리스 청동 투구
최근 3개월 조회수 : 1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10.04. (최종: 2023.11.03. 22:36)) 
◈ 손기정 선수의 사라진 투구
그리스 청동 투구는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이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선물이다. 1875년 에른스트 쿠르티우스(Ernst Curtius, 1814~1896)가 이끄는 독일 고고학 팀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을 7년 동안 조사하다가 다른 수많은 전쟁유물과 함께 발굴했다.
그리스 청동 투구와 손기정 (상)
 
 
그리스 청동 투구는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이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선물이다. 1875년 에른스트 쿠르티우스(Ernst Curtius, 1814~1896)가 이끄는 독일 고고학 팀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을 7년 동안 조사하다가 다른 수많은 전쟁유물과 함께 발굴했다. 에른스트 쿠르티우스는 뤼베크 출신으로 대학 졸업 전, 고고학 연구를 위해 그리스로 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고대 도시들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1844년에는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1867년 베를린 구 박물관의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1874년에는 독일 정부의 지시로 아테네로 가서 올림피아 유적지를 연구하였다.
 
 
에른스트 쿠르티우스(Ernst Curtius), 사진: 위키백과
 
 
청동 투구는 고대 그리스 올림픽 제전 때 승리를 기원하면서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제우스 신전에 바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높이 21.5㎝, 가로 18.7㎝의 크기이며, 기원전 6세기 유물로 평가됐다. 투구를 머리에 썼을 때 두 눈과 입이 나오고 콧등에서 코끝까지 가리도록 만들어졌다. 머리 뒷부분은 목까지 온전히 보호하게 되어 있다. 눈과 입의 노출을 위해 도려낸 부분과 목과 접촉하는 부분에는 윤곽선을 따라 실을 꿸 수 있도록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투구 안쪽에 천을 대어 머리에 썼을 때 완충 효과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스 청동 투구,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현존하는 코린토스 양식 투구들 가운데 가장 초기에 제작된 것 중 하나로 학술 가치도 대단히 높고, 보존 상태도 매우 뛰어나 고대 그리스 전쟁사를 연구하는 외국 역사학자들도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와서 이 투구를 조사하였다.
 
그리스 청동 투구는 그리스 브라디니 신문사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의 부상(副賞)으로 독일 올림픽조직위원회에 기증하였으나 조직위는 우승자 손기정에게 수여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선수단은 손기정 선수에게 “아마추어 정신에 위반이 된다.” 어쩐다 하는 트집을 잡았다. 그리고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독일 베를린에 있는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런 내용은 동아일보 1936년 8월 16일 자 2면에 보도가 되었다.
 
손기정 선수는 투구에 대하여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손기정은 마라톤 제패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다가 동아일보 기자에게 “투구를 찾아 달라.”고 인터뷰한 내용이 해방 후인 1946년 8월 17일 자 동아일보에 해당 기사가 남아있다. 1956년 세계선수권대회 때도 투구에 대하여 조사를 하였다. 1970년 초에 베를린 올림픽 제패 40주년 기념 전시회를 열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손기정 선수는 우연히 일본 육상연맹 임원으로부터 받은 사진첩을 보면서 자신에게 수여되었다는 투구 사진을 다시 보게 된다.
 
손기정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 초청받아 독일에 갔다가 독일 광산에 근무하던 노수웅 씨를 만난다. 손기정은 노수웅 씨에게 투구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이 투구를 내가 1936년 베를린 마라톤 우승상으로 받아 독일올림픽위원회에 기증했다고 하는데 나는 받은 적도 없고, 누구에게 기증하지도 않았다.”고 하시면서 교포 노수웅 씨에게 간곡하게 청동 투구의 행방을 알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내용은 동생인 노순근 베를린 문향회 2대 회장이 증언했다.
 
그때부터 노수웅 씨는 투구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한독가정의 로젠베르크 씨로부터 기념 화보를 구입하여 조사에 들어갔다. 노수웅 씨는 동독의 여러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투구들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사람이 결정적인 제보를 해주었다. 히랍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손기정 투구를 발견하고 즉시 손기정 선생님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서독 베를린에 있는 샤를로텐부르크 박물관을 방문하여 진품을 확인했다. 이 소식이 1975년 9월 동아일보에 기사가 나면서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당시 노수웅 씨는 동아일보 유럽지국장을 하였고 무역회사를 운영했다. 노수웅 대표는 1976년 물건을 구매하러 서울에 왔다가 거래처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했는데 어떤 대화가 빌미가 되었는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이 되었다. 노수웅 씨는 투구에 관한 일을 동생인 노순근 씨에게 일임하였다. 이후 두 형제는 청동 투구 일에 적극 매달렸다. 노순근 씨는 현재 76세로 청동투구 반환운동에 관한 모든 일을 소상히 알고 있다. 그는 “손기정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샤르로텐부르크 박물관, 사진: 위키백과
 
 
손기정 씨는 독일에서 날아온 기쁜 소식을 듣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체육회도 진상을 조사하고 IOC에 협조를 구했다. 손기정은 청동 투구의 원래 주인이었던 그리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아테네 신문대학원 교수이자 한국-그리스 친선협회 회장인 타티스 파파야노폴로스가 손기정을 적극적으로 돕고 나섰다. 그리스 브라다니 신문사의 체육부장이었던 카피초글루도 타티스 회장을 통해 1936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전해 들었다.
 
그리스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의 유물을 주는 관행은 제2회 파리 올림픽인 1900년부터 실시되어 고대 유물의 ‘유출 금지령’이 내려진 제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490년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후 그 소식을 빨리 알리기 위해 약 150마일(약 40km)의 길을 달려온 달리기 병사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병사는 승전보 소식을 전하고는 안타깝게 죽었다.
 
1936년 당시 브라디니 신문사의 사장인 아라반티노스가 당시 그리스 집권자인 요안니스 메탁삭스(1871~1941) 장군으로부터 마라톤 우승자에게 기증한다는 조건으로 투구를 얻어냈고, 정식으로 반출 허가까지 받았다. 그리스 청동 투구는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시포로스 스피라돈 루이스’ 그리스 선수단장이 독일 올림픽조직위원회에 기증했다.
 
 
그리스 요안니스 메탁삭스(1871~1941) 장군, 사진: 위키백과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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